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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 took my heart (i was sleep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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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은 계단 꼭대기에서 발을 멈춘 채, 들려오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부엌으로부터 희미하게 들리는 중얼거림이 들려왔다. 느릿하고 규칙적인 시계의 분침 소리를 빼면 통로는 쥐 죽은 듯 고요했다.

어제의 아침처럼, 윌이 눈을 떴을 때 마이크의 침대는 텅 비어 있었다. 그리고 또 어제의 아침처럼, 윌은 그의 베개와 이불을 조용히 지하실 밑으로 옮겼다.

마이크의 부모님은 지하실로 자주 내려오지는 않았지만, 윌은 이 일을 들킬 가능성을 차단했다. 윌러 아저씨가 새 배터리나 촛불을 찾으러 지하실로 내려와 베개도, 이불도 없이 덩그러니 놓인 매트리스 한 장만 발견할 걸 생각하면 눈 앞이 아찔했다.

윌이 어디서 밤을 보냈는지에 관한 질문은 더더욱 받고 싶지 않았다.

 

부엌의 윌러 가족들은 심해진 추위에 창백하게 질려 있었다.

윌은 마이크를 바라보았다. 예상과 달리, 이번엔 그들의 눈이 마주쳤다. 마이크는 웃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윌의 존재를 드디어 인정하는 느낌이었다. 꽤나 큰 진전이라고나 할까.

"좋은 아침," 윌이 조나단 옆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평소랑 달리 늦게 일어났네?" 윌러 아주머니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

"아, 그러게요." 윌이 버터를 조심스레 토스트에 바르며 말했다. 평소라면 진작 일어났을 시간이었다. 하지만 마이크의 방에선 평소보다 쉽게, 그리고 더 깊게 잠들 수 있었다.

윌이 고개를 돌리자 이미 자신을 바라보고 있던 마이크와 눈이 마주쳤다. 시선이 얽힌 것도 잠시, 두 사람의 시선이 어색하게 엇갈렸다.

"오빠, 지하실은 얼마나 추워?" 홀리가 호기심에 가득 찬 채로 물었다. "막 입김도 보여?"

홀리의 순수한 질문에 윌의 말문이 막혔다. 그가 대답을 주저하는 사이, 묘한 정적이 흐르며 화살 같은 시선들이 윌에게 쏠렸다. 홀리부터 윌러 부인, 조나단, 낸시, 마이크에 이르기까지. 심지어 신문만 보던 윌러 씨마저 눈썹을 움찔거리며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 윌은 자신을 기다리는 그 수많은 눈동자들에 숨이 막히는 기분이었다.

설마 윌러 아저씨가 이미 뭔가 알아챈 걸까?

"아, 어." 윌의 얼굴에 열이 빠르게 올랐다. "추워. 근데 담요도 있고 하니까 그럭저럭 지낼만 해. 요즘 좀 잘 자고 있기도 하고."

윌은 왜 자신이 거짓말을 하고 있는 지 이해할 수 없었다. 마이크와 그가 뭔가 잘못된 일을 한 건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며칠 전 윌러 아저씨의 말이 윌의 머릿속에서 메아리처럼 울렸다. 다 큰 남자애들끼리는 같이 자는 거 아니야.

그는 마치 오물을 보듯 불쾌한 기색을 내비치며 말했다. 마치 윌이 불순한 의도라도 품고 있는 것처럼, 혹은 윌이 가진 그 문제 가 닫힌 문 너머의 마이크에게 옮기기라도 할 것처럼.

설령 그것이 노골적인 비난이 아닌 은근한 암시일 뿐이라 해도, 윌은 제 본모습을 지우며 살아왔다. 평생을 숨어 지내온 윌에게 그런 경계는 익숙한 습관이자 그림자처럼 따라붙는 목소리였다. 괜히 이상한 짓 하지 마, 수상하게 보이지도 말고.

그리고 뭐가 됐든 간에 윌러 아저씨는 윌을 쫓아낼 힘 이 있었다. 여긴 그의 집이었으니까. 말 그대로 그의 소유였다.

"어쨌든, 필요한 거 있음 나한테 말해, 알겠지?" 윌러 아주머니가 윌과 조나단을 바라보며 말했다. "조이스에게 너희 둘은 따뜻하고 안전하게 지낼 거라고 약속했거든. 지하실에서 애들을 얼려 죽였다는 소릴 듣고 싶진 않단다."

윌러 아주머니의 농담에 윌은 미소 지었다.

"아, 아녜요, 진짜로. 그렇게 안 추워요."

"맞아요, 지낼 만해요." 조나단이 얼른 거들었다. 그 또한 일 년 넘게 그가 어디서 자는 지에 관해 거짓말을 해왔기 때문이었다.

윌이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 마이크의 미간에는 깊은 주름이 잡혀 있었다. 왜 그러냐고 눈짓으로 물었지만, 마이크는 윌의 시선을 외면한 채 고개를 돌려버렸다.

윌러 아주머니가 마이크를 바라보며 한숨을 쉬웠다. "윌한테 방 같이 쓰자고 물어보긴 한 거지, 마이크?"

너무 긴 침묵이 부엌을 가득 채웠다. 윌은 마이크의 표정이 더더 나빠져 가는 걸 목격했다. 마이크가 막 대답을 하려 할 때, 윌러 아저씨가 목을 가다듬고 끼어들었다. "어휴, 얘네들은 남자지, 애기들이 아니라. 막말로, 윌이 차고에서 자는 것도 아니잖아?"

"그쵸," 윌이 수상할 만큼 너무 빠르게 대답했다. 그는 헛기침을 하고 다시 말을 천천히 이었다. "아, 제 말은, 그쵸. 저희는 아직도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요. 필요 이상으로 챙겨주고 계셔서..."

게다가 윌러 아저씨의 그 꿰뚫어 보는 듯한 시선이 윌의 목을 죄어왔다. 그 눈길에 떠밀린 윌은 침묵을 견디지 못하고 하지 않아도 될 말을 웅얼웅얼 덧붙였다.

"저는 지하실에서 자는 게 꽤 좋은 거 같아요, 이제 그냥 제 방 같아서요. 그래서 다른 데서 자는 게 오히려 불편할걸요."

"나도 내 방 좋아하는데!" 홀리가 윌의 말에 동의하며 말했다. 덕에 관심은 홀리로 옮겨갔고, 윌은 그의 폐에 다시 공기가 들어차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아침 먹는 내내 윌은 마이크와 눈을 마주치려 애썼지만, 마이크가 고개를 숙인 채 접시로부터 음식만 밀어대던 탓에 눈은 마주칠 수도 없었다. 찡그림은 그의 눈썹에서 벗어날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아침을 먹고 난 뒤, 조나단과 윌은 엘과 엄마를 만나러 호퍼의 오두막으로 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윌은 새로 갈아입을 옷을 챙기기 위해 지하실로 내려가던 중이었다. 지하실 계단을 절반쯤 내려갔을 때였다. 등 뒤로 문이 열리더니 누군가의 기척이 그를 붙들었다.

마이크였다.

“왜 거짓말했어?”

“뭐?”

윌이 몸을 돌렸다. 마이크는 곱슬머리가 삐져나온 후드를 눌러쓴 채 계단 위에 서 있었다. 그는 계단 위에서 윌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왜 거짓말했냐고.”

들려온 마이크의 목소리는 낯설기만 했다. 대놓고 화를 내는 건 아니었지만, 폭발하기 직전의 아슬아슬한 경계에 서 있는 듯했다. 깊게 파인 미간의 주름과 얇게 다문 입술. 그는 마치 윌에게 상처받기라도 한 듯한 얼굴로 윌을 응시하고 있었다.

윌의 속이 뒤틀렸다. 둘 사이의 공기가 단숨에 식어 내려갔다. “갑자기 무슨...”

윌은 시선을 피해 서랍장 쪽으로 걸어가 갓 빨아놓은 스웨터를 집어 들었다. 그 뒤로, 마이크가 계단을 내려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어제 어디서 잤는지 눈도 깜빡 안 하고 거짓말 했잖아. 모두 앞에서.”

마이크의 말이 이어졌다. “여기서 자는 게 얼마나 좋은지까지  말하면서. 너가 왜 그랬는지 난 도무지 이해가 안 가.”

“이해가 안 간다고?” 윌이 거짓말을 한 건 사실이었다. 나름의 이유도 있었고, 마이크에게 설명하려면 얼마든지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예고도 없이 지하실까지 쫓아 내려와 취조하듯 몰아붙이는 마이크 앞에 서자, 준비했던 변명들이 신기루처럼 흩어져 버렸다. 애초에 마이크가 왜 이렇게까지 예민하게 구는지 이해할 수조차 없었다. 그게 대체 자기와 무슨 상관이라고. “그래서?”

"그래서? " 마이크가 반복했다. "난 니가 왜 고의로 우리 엄마가 너 걱정하게 만들었는지 이해가 안 간다니까?" 단어들이 그의 속에서 끓어오르는 것 같았다. "그리고, 하… 모르겠어. 너가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거짓말을 한다는 게 너무 이상해. 우리 중에 거짓말은 나쁜 거라고, 누구에게도 속이는 일 따윈 없을 거라고 단언했던 건 너뿐이었는데..."

고작 이게 문제였던 걸까. 조나단은 일 년이 넘도록 똑같은 거짓말로 마이크의 부모님을 속여왔고, 마이크 역시 매한가지였다. 게다가 마이크는 윌에게도 수시로 거짓을 늘어놓았다. 다시 예전처럼 최고의 친구가 되자는 말, 우린 여전히 한 팀이라는 말, 그동안 모질게 굴어서 미안하다는 그 말까지. 윌은 이제 그 모든 말들이 거짓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알고 있었다.

"내가 너 한테 거짓말 한 건 아니잖아, 마이크. 왜 배신 당한 사람처럼 말을 해."

마이크의 얼굴에 낯선 감정이 스쳤다. 반짝이던 눈빛은 일순간 빛을 잃었고, 입가에는 조소 섞인 헛웃음이 맴돌았다. 어젯밤 보았던 그 포근한 다정함은 온데간데없었다. 윌은 이제 마이크의 부드러운 순간이 실제로 존재했었는지조차 가늠할 수 없었다.

"배신? 윌, 나는-"

마이크의 감정이 일순간 격하게 요동쳤다. 윌은 겉으로 평온한 가면을 쓰고 있었으나, 심장은 점점 거칠게 박동하기 시작했다. 가라앉은 공기를 가르고 마이크가 차갑게 말을 내뱉었다.

"... 아니다. 너가 얼마나 변했는지 내가 실감을 못 하나보네."

윌의 심장이 발끝까지 덜컥 내려앉았다. 이 세상 그 누구보다도, 다른 사람도 아닌 마이크 가 변화에 대해서 논할 자격이 있긴 하단 말인가. 윌은 치밀어 오르는 억울함에 목 끝까지 뜨거운 것이 울컥 치밀었다.

"너도 별반 다르진 않아, 마이크."

"뭐," 그의 톤에 확고함이 묻어났다. "그럼 우리는 이제 서로를 잘 모르나 보지."

"그런가 봐."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맞물렸다. 윌은 이 순간을 천 번도 넘게 머릿속으로 그려왔다. 한때 그는 둘 사이의 벽을 허물고 모든 걸 털어놓는 날이 올 거라 믿었다. 서로가 변해버린 모습마저 애틋하게 받아들이며 지나온 시간들을 공유하는 그런 풍경을 기대했었다.

하지만 이런 식은 아니었다. 이토록 시리고 서늘한 공기는, 단 한 번도 그의 상상 속에 발을 들인 적이 없었다.

윌은 옷을 갈아입으려던 계획을 버리고 그냥 옷 위에 스웨터를 한 겹 더 입기로 결정했다.

"나 가야 돼," 그가 말했다. "더 따질 거 없지? 비켜."

마이크는 아무런 대꾸도, 표정도 없이 비켜서며 길을 터주었다. 윌 또한 망설임 없이 마이크의 어깨를 밀치며 지나쳤다. 계단을 단숨에 뛰어 올라간 윌은 통로 끝에서 조나단과 마주쳤다.

"지금 나가면 안돼? 당장?"

 

자전거를 타고 오두막으로 향하는 내내 윌은 조용했다. 그의 심장은 혼란과 분노로 빠르게 뛰고 있었다. 어젯밤까지 둘은 아주 괜찮았다. 어쩌면 괜찮은 것보다 조금 나았을 지 모른다. 윌은 상황이 이토록 순식간에 뒤집힐 수도 있다는 사실을 도저히 믿고 싶지 않았다.

윌은 마이크에게 거짓말 했던 이유를 설명할 의향이 있었다. 마이크가 곱게 물었으면 말이다.

"뭔 일 있었어?" 조나단이 윌 옆에서 페달을 밟으며 말했다. 옆으로 앙상한 겨울 나무들이 빠르게 지나갔다.

"아니." 윌은 그 일에 관해 생각 도 하고 싶지 않았다.

오두막에 도착하자마자 윌은 다른 일에 몰두하며 제 머릿속을 짓누르던 생각들을 억지로 밀어내 버렸다. 그의 엄마는, 마치 몇 달 동안 생이별이라도 했던 사람처럼 그를 품에 꽉 끌어안았다.

벽난로에 불이 붙자 집 안이 아늑해졌다. 마치 진짜 집같이 말이다. 자라오면서 윌의 집은 항상 더러웠고, 저들만의 규칙으로 어지럽게 뒤섞인 공간이었다. 이제 그의 엄마가 호퍼와 함께 사는 만큼, 두 무질서가 합쳐진 집 안의 그 어디도 정상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하지만 꽤 편안하긴 했는데, 식탁에 빵 부스러기 하나만 흘려도 온 신경이 곤두서게 만드는 마이크네 집의 그 숨 막히는 청결함과는 극명하게 달랐으니까.

"우리가 생각해 본건데," 엘이 윌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모두는 조그마한 커피 테이블에 빙 둘러 앉아 있었다. 정전이 시작됐을 때부터 해동되기 시작해 아직 반쯤 언 케이크가 테이블 위에 놓여 있었다. 눅눅해보였다.

"정전에 관해서 말이야. 우리한테 아무 정보도 안 주는게 이상하지 않아?"

엘은 소파 옆 바닥에 놓인 바인더를 집어 들었다. 참으로 기가 막힌 위치였다. 그녀는 무심하게 바인더를 열었다. 안에는 손글씨로 적힌 종이 여러 장과 낙서들, 그리고 윌이 모르는 사람들의 사진이 빽빽하게 들어 있었다.

윌의 반대편에 앉아 있던 엄마가 한 장을 집어 들기 위해 손을 뻗었다. “물론 확실한 건 아니야. 그래도 뭐라도 해야겠다 싶더라. 혹시 모르니까. 그냥, 대비는 해두고 싶었어.”

"이건 뭐에요?" 조나단이 다른 페이지를 집어 들며 물었다.

윌은 조나단이 마인드맵처럼 생긴 것의 선을 따라가는 걸 보았다. 마인드맵의 주제는 '정전' 이었다.

"이게 그 게이트랑 연관이 있을수도 있다고 생각이 들어서. 터널에서 도망쳐 나온게 전선에 문제를 일으켰을 수도 있잖아." 그들의 엄마가 설명했다.

"아무도 이 정전의 원인을 알려주지 않는 이유도 설명이 되지." 호퍼가 덧붙였다.

"도망..." 윌이 심장 박동이 빨라지는 것을 느끼며 나직이 반복했다. 지난 이틀동안 우려했던 일이 정확히 이거였다. 그 터널 아래에 숨어서 그를 킁킁거리며 찾아내고, 차가운 상태의 그를 발견하는 일.

그가 마음에서 빼내려고 안간힘 쓰던 두려움의 파도가 그를 덮쳤다.

마이크와의 언쟁은 잊혀진 지 오래였다.

"그건 모르는거죠." 윌의 감정 변화를 느낀 조나단이 말했다. "군이 게이트를 감시하고 있잖아요. 누가 알아채지도 못하게 게이트 밖으로 나오는 건 불가능해요. 나오면 군이 뒤집혔을걸요. 그러니까 결론을 서두르지 말자고요."

"그래, 맞는 말이다. 이건 그냥 꼬인 전선들이 뭐 터졌거나 아님 회로 차단기가 과열된 그런걸 수도 있지." 호퍼가 말했다.

"우린 확신이 있었으면 좋겠어." 조이스가 윌의 팔을 만지며 말했다. 윌은 엄마가 그를 바라보는 눈빛이 싫었다.

"뭐가 됐든 간에요," 윌이 손바닥에 손톱을 세게 눌러 목소리를 최대한 차분하게 만들며 말했다. "계획이 뭐에요? 나가서 전선을 확인해본다던가 게이트를-"

"이미 하고 있어." 엘이 윌에게 사진들을 건넸다. 윌이 한 번도 보지 못한 남자들 투성이였다. "엄마가 신문지에서 오렸어. 정전에 관해 뭔갈 알만한 중요한 사람들이거든. 내가 다 감시하고 있어."

"진전이 있어?"

"아직은."

몇 문장의 대화가 더 오고 간 후에, 테이블에는 침묵이 가라앉았다. 윌은 죄책감이 느껴졌다. 그가 아니었다면 모두가 아마 그들의 이론과 상상을 공유하고 있을 터였다. 하지만 모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윌은 이게 싫었다. 모두가 그의 눈치를 보는 일 말이다.

"마지막으로 묻는 건데," 엄마가 다시 말했다. "케이크 더 먹고 싶은 사람?"

 

몇 시간 후, 윌은 엘, 엄마와 호퍼가 부엌에서 반 장난으로 싸우는 걸 봤다. 그들이 집 안에서 행동하는 게 너무 자연스러워 보였다. 마치 진짜 집을 찾아 그들만의 가정을 꾸린 것처럼 말이다.

"나도 좀 질투 나." 조나단이 윌 옆에 털썩 앉으며 한숨 쉬었다.

"형. 사람 마음 읽는 거 쫌 이상한 거 알지."

조나단이 으쓱이며 웃었다. "너한테만 되던데."

윌이 미소를 짓고 다시 시선을 셋에게 옮겼다. "... 마이크네 집에서 사는 거 지겨워,"

조나단이 그를 부드럽게 쳐다봤다. "너랑 마이크가 화해할 수 있을 거라 믿어, 나는."

윌이 눈알을 굴렸다. "제발 내 뇌 속에서 나가줘."

"미안."

해가 질 때쯤에야 그들은 가로등이 죽었다는 걸 기억해냈다. 조이스는 그들의 귀가를 재촉했다.

집에 가는 길에, 윌은 결정했다. 오늘 밤엔 마이크의 방으로 돌아가지 않기로 말이다.

솔직히 얼어 죽는 게 나았다.

 

이번에는 윌이 추위를 위해 단단히 준비하고 있었다.

그는 캠핑용 버너에 물을 좀 데워놓고 그의 머그컵에 부었다. 수증기 속에 티백을 넣고, 그는 지하실에서 촛불을 켰다. 촛불 몇 개가 방 온도를 조금이라도 올려주길 간절히 바랐다.

정전이 이틀째 이어지자 공기는 눅진히 가라앉았고, 옷 속으로 스며들어 좀처럼 빠져나가지 않는 추위가 피부를 갉아먹듯 파고들었다. 그 냉기는 결국 뼛속까지 내려앉았다.

윌의 찬 입김은 희미한 빛 속 공기를 잠깐 뿌옇게 만들었다.

그는 담요 두 장을 어깨에 두른 채 책상 앞 의자에 다리를 모아 웅크리고 앉았다. 떨림을 가라앉히기 위해 그는 속절없이 식어가는 찻물을 조금씩 들이켰다. 희미한 전등 불빛 아래로 찻잔에서 피어오른 김이 힘없이 흩어졌다.

그의 앞에 열린 스케치북이 놓여 있었다. 생각을 정리하려는 처절한 노력의 흔적이었다. 마이크와의 언쟁과, 더 중요하게는 엘과 엄마가 말한 것을 잊고 싶었다.

만약 무언가가 게이트를 통해 도망쳐 나왔다면... 그게 과연 말이나 되는 소리일까. 하지만 윌은 그 희박한 확률이 자꾸만 마음에 걸려 차마 차를 들이킬 수 없었다. 만약 뭔가가 윌을 잡으러 나온 거라면?

그리고 윌이 인정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정말로 인정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솔직히 마이크와 보낸 이틀 간의 밤이 도움이 많이 됐었다. 왜냐면 그가 춥고 어두운 방에 혼자 있는 지금, 공포가 바로 그를 덮쳤기 때문이었다.

모든 것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그는 더 이상 마이크에게 의지하고 싶지 않았다. 마이크에게서 그 어떤 것도, 아주 작은 위로조차 원하지 않았다.

그는 온기를 위해 한 손에는 머그컵을 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머리에 떠오르는 것들을 그리기 시작했다. 지금 그는 집을 그리고 있었다. 몇 줄을 그리고 멈추는 일이 반복되었다. 그가 손바닥을 손가락에 비벼야 했기 때문이었다. 손 안의 연필은 뻣뻣하게만 느껴졌다. 그는 선을 먼저 그리고 집의 디테일을 잡았다. 문의 모양, 창틀의 모양, 그리고 지붕의 모양 같은 것들이 완성되고 있었다.

그가 열세 살이었을 때, 윌은 몇 달동안 그림 그리는 걸 멈췄다. 스노우볼 바로 직전이었는데, 그가 거실에 쌓인 그림들을 발견 했던 때였다. 그는 그림들에 관해 엄마에게 물었고, 엄마는 윌이 미친 사람처럼 줄기들과 나뭇가지들을 그리면서 잘 알지도 못하는 호킨스의 지도를 만들었다고 말해주었다.

윌은 한숨을 쉬었다. 페이지를 죽 찢고 다시 시작했다.

어떤 사람이 몸의 통제권을 앗아갔다는 사실은 너무 비참한 기분이었다.

윌이 다시는 느끼고 싶지 않은 기분이었다.

그가 연필을 다시 종이에 누르려는 순간, 그는 작은 쿵 소리를 들었다. 너무 작아서 소리의 출처는 알기 어려웠다. 위층의 바닥 소리일 수도 있고, 가구의 나무 소리였을 수도 있었다. 윌은 어둡기만 한 계단을 바라보았다. 아니면 문일 수도 있었고, 윌의 곁을 지켜주기 위해 내려온 조나단이었을 수도 있었다.

다시 한 번 소리가 들려왔고, 윌은 그게 노크라는 걸 확신했다.

"들어오세요." 윌이 크게 말했다. 이가 떨리는 소리가 밖으로 새 나가지 않게 그는 턱을 세게 맞물렸다. 목소리에 힘을 실으며 그는 자신을 잠식하려는 한기와 공포를 간신히 억눌렀다.

문이 삐걱거리더니, 곧 계단을 내려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어둠 속이라 윌은 그가 가까이 다가왔을 때서야 그를 알아볼 수 있었다. 그는 두툼한 스웨터에 몸을 파묻은 채, 팔을 감싸안고 있었다.

“와, 씨...” 마이크가 중얼거리듯 말하며 방 한가운데서 멈춰 섰다.

윌은 연필을 세게 쥐며 그를 바라보았다. 서로에게 한 말들이 빠르게 스쳐지나갔다.

 

너가 얼마나 변했는지 내가 실감을 못 하나보네.

 

"여기 진짜 너무 추워," 마이크가 말했다. "거의 밖에 있는 거 같이..."

그는 발뒤꿈치로 몸을 앞뒤로 흔들며 소매를 손등까지 끌어내렸다. 마이크는 더 말하고 싶은 기색이었지만, 스스로 멈춰 세운 듯했다. 대신 방을 가로질러 걸어가며, 마치 이곳에 처음 내려와 본 사람처럼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럼 우리는 이제 서로를 잘 모르나 보지.

 

윌은 그를 찬찬히 바라보았다. 왜 내려왔는지 설명하길 바라는 눈치였다. 예상대로 설명은 없었다.

"뭐 그려?" 마이크가 물었다.

"왜 왔어?" 윌은 의도보다 더 거친 말투로 말했다.

마이크는 어깨를 으쓱이곤 스케치북으로 시선을 돌렸다. "너가 내 방으로 다시 올 줄 알았지." 그리고 점점 다가오더니 몸을 테이블 쪽으로 기울였다. "꽤 잘 그렸는데?" 그가 스케치를 가리키며 말했다.

윌이 눈을 굴리며 말했다. "너가 뭘 보고 있는지도 모르잖아."

"당연히 알지. 집이잖아."

"이건-"

윌은 입을 다물었다. 이미 마이크 앞에서는 한 차례 무너진 모습을 보인 적이 있었고, 당시에는 그것이 그리 어긋난 일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마이크가 윌을 도와줬었기 때문이다. 그를 위해 자리를 지켜주기도 했고 말이다.

하지만 오늘의 소동을 겪고 난 지금, 윌은 그들이 대체 무엇을 위해 애쓰고 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낮에는 그렇게 서로를 할퀴어놓고서, 왜 다시 밤이 되자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대화를 나누는 상황이 허용되는 건지, 그 이유 또한 알 수 없었다.

마이크는 윌의 머뭇거림을 알아챈 듯했다. 그는 의자를 하나 끌어와 천천히 테이블 앞에 앉아 윌을 마주봤다. 다리가 너무 길어 어색한 자세로 무릎을 가슴 쪽으로 끌어올린 뒤, 한쪽 팔로 그것들을 감싸 안았다. 몸이 살짝 떨렸다.

"이건?" 마이크가 다시 물었다.

윌은 스케치북만 바라보며 말했다. "왜 내려왔어?"

"그냥 물어보는거였는데, 미안. 굳이 말 안해줘도 돼."

"아니," 윌이 중얼거리듯 말했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행동하잖아, 너가."

마이크가 조금 더 반듯하게 앉더니 입술을 씹기 시작했다. "아... 그, 내가 아깐 좀 과했어. 미안."

윌은 그를 혼란스러운 눈으로 바라봤다. 그게 다야?

"그래서 뭐 그리고 있었어?"

"왜 신경쓰는데?"

"뭐?" 마이크의 얼굴에 깃든 그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표정이 윌의 이성의 끈을 끊었다.

"우리 대화하는 사이는 아니잖아, 마이크." 윌은 스케치북에 각종 선들과 끝없는 원을 그리기 시작했다. "까놓고 말하면, 우리 몇 달동안 제대로 된 대화도 안 하지 않았어? 그리고 뭐 우리는 이제 서로를 잘 알지도 못하잖아. 그래서 나는 너가 여기 있는 게 이해가 안 돼."

마이크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윌은 마이크의 표정이 보고 싶었지만 스케치북에 애써 시선을 굳게 고정시켰다.

"어... 맞아," 잠깐의 정적이 오간 후, 마이크가 살짝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다. "너 말이 맞아. 그 말은 하지 말았어야 됐는데. 너한테 밀어붙여서 미안해. 그, 어젯밤 이후로, 너가 말해준 거 때문에... 그냥 너가 혼자 있고 싶지 않을까봐..."

윌이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그가 원하는 대답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건 윌이 정확한 질문을 하지 않아서였기 때문이었다.

질문은 왜 내려왔어? 가 아니었다.

지난 일 년동안 어디에 있었어?

"같이 있어줄 사람 없어도 돼," 윌이 스케치에 집중하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의 연필은 목적 없이 의미없는 도형들만 그려댔다. 윌은 손의 떨림을 멈출 수 없었다. 그는 언제나 상처받는 쪽이 되는 것에 질렸다. 언제나 실망하고, 마이크가 다가올 때까지 매일 기다리고 기다리고 기다리는 게 지쳤다. 이제 와서 말하자면, 마이크가 윌을 피했던 때가 더 쉬웠다.

"미안해," 마이크가 다시 말했다. 매우 고요했다. 순간, 윌은 마이크가 사과한 이유가 정확히 뭔지 알지 못했다. 지하실로 내려온 거? 아니면 여기에 오랫동안 내려오지 않은 것? 그들의 언쟁? 아니면 그 다른거?

윌은 마침내 고개를 들어 스케치북을 바라보는 마이크를 응시했다. 그의 어깨는 축 처져 있었다. 마치 거의 진 사람 같았다. 그 모습은 윌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윌은 했던 말들을 주워담고 싶었지만, 그러지 않아야 된다는 걸 알고 있었다.

침묵이 둘 사이에서 늘어졌다. 마침내, 윌이 더 이상 견딜 수 없어 정적을 깼다.

그는 뒤로 기대며 크게 숨을 내쉬었다. "그냥 끄적이려고 했어. 아무거나 그리고 싶었거든. 근데... 마음대로 잘 안되더라."

마이크의 어두운 눈이 스케치북으로부터 윌의 얼굴로 향했다. 그의 비참했던 표정이 흔들리며 호기심으로 바뀌었다. "왜?"

윌의 목이 조여왔다. "멍청하잖아," 그가 종이에 눈을 고정하며 말했다. "내가 몇 달동안 그림 그리는 거 멈췄던 거 기억나? 열세 살 때. 내가 펜을 조종하고 있지 않다는 걸 느낀 가장 오랜 순간이었어. 그리고 이젠 추위에 둘러싸여 있으니까, 나는 그냥..." 그의 말이 공기에 흩어졌다. 윌은 그의 말이 말이 되는지도 알 수 없었다.

윌은 입 안의 볼을 씹었다. "어, 여기. 봐봐." 그는 스케치북의 페이지들을 넘기며 그가 몇 시간동안 그렸던 모든 걸 보여줬다. "형식적으론 이게 내가 그냥 생각해낸 의미 없는 것들이긴 한데, 만약 이게 내가 떠올려서 그린 가로등이 아니면 어떡해? 그가 나에게 갈 장소를 보여주거나 그런 거면?"

마이크가 종이들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우리집 가로등이네," 그가 가리키며 말했다. "그리고 이건 우리 엄마 머그컵이고. 똑같이 생긴 멍청한 꽃들이 그려져 있거든. 그리고 이건... 이건 홀리의 못생긴 빗같은데."

“그래, 그래. 알겠어.” 윌은 웃으며 마이크의 손에서 스케치북을 낚아챘고, 놀리기엔 어딘가 조심스러운, 조금은 지나치게 조심스러운, 그의 미소를 마주했다. 하지만 그 웃음은 목에 걸린 듯 멈춰 섰다. 몇 달 만에, 둘이 함께 웃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마이크의 눈이 그의 얼굴에게서 멀어져 갔따. "얘네들은 그냥 우리 집에 있는 물건들의 스케치일 뿐이야. 너가 아는 것들."

"알아, 아는데-" 그는 짧게 숨을 내쉬었다. 손은 제대로 제스처를 할 만큼 풀리지도 않았다. “왜 하필 이런 것들을 그리게 된 걸까? 한 번은… 내 몸을 완전히 장악했잖아. 생각도 전부 뒤섞였고. 그래서, 이게 정말 내 선택이었는지... 솔직히 어떻게 확신해야 할지 모르겠어.”

마이크는 위자 뒤로 몸을 기댔다. 그의 윗입술이 선명하게 떨리고 있었고 그의 두 손은 소매 안으로 들어가 있었다. "내가 너한테 뭘 그릴 지 알려줄게."

"뭐?"

"그러면 이게 그의 생각이 아니란 걸 알 수 있잖아."

윌은 눈을 게슴츠레하게 떴다. 하지만 그는 마이크가 그를 바라보는 방식이 좋았다. 그가 너무 잘 아는 마이크 특유의 어색한 표정이었다. 이 옅은 불빛 아래에서 마이크는 4년 전의 얼굴과 같이 보였다. 키는 절반 정도 작았지만 두배로 친했던 때였다. 그가 전에 느낀 분노는 어느새 찬 바람으로 흩어졌다.

"뭐 그리면 될까?" 윌이 눈썹을 올리며 말했다. 그는 손이 점점 뻣뻣해가는 걸 막기 위해 손을 비볐다.

"촛불?"

윌이 한숨 쉬었다. "내가 벌써 멍청한 촛불을 7번이나 그렸거든." 그는 마이크에게 스케치를 보여주기 위해 손을 뻗었다. 모든 촛불은 저마다 디테일이 달랐다. 어떤 건 촛농의 질감에 집중되어 있었고, 어떤 건 은촛농의 빛반사에 집중되어 있기도 했다.

"아니, 이 방이 너무 어두워서 그릴 게 많이 없긴 했어."

"그렇긴 하네."

마이크는 계속 뭘 찾으려 두리번거리다가 자신의 무릎에 시선을 고정했다. 그는 몇 초간 조용했다. 그리곤 마이크는 망설이듯 윌을 바라보곤 이내 말을 뱉었다. "나는 어때."

윌이 눈을 깜빡였다. "너?"

"응, 나. 아니, 내 말은, 내가 너 앞에 가만히 앉아 있을 테니까-"

"너가 가만히 앉아 있는 건 상상이 안되는데."

"일단 해봐."

윌은 아랫입술을 물며 마이크를 바라보았다. 

옛적에 윌은 마이크를 서랍 맨 밑에 보관하던 '비밀 스케치북'에 그리곤 했었다. 그가 마이크의 눈썹이나 곱슬머리의 모양같은 걸 외우게 된 건 겨우 한 여덟살 즈음이었다. 낮에는 마이크를 쳐다보고 밤에는 그의 얼굴을 종이 위에 복사했다. 어린 그는 이 행동이 얼마나 위험한 거였는지 알만큼 똑똑하지 못했다. 윌은 그 즈음에 그런 감정들을 멈췄길 바랐다. 그는 아예 마음에 이는 고집스러운 설레임을 굳이 겪지 않았을테니까.

하지만 지금은 너무 늦었다. 이건 일종의 슬픈 사랑 이야기였다. 단지 마이크와 진전이 없었으니 매년마다 슬픔이 커져가는 이야기였다.

그제야 그는 자신이 마이크를 바라보고 있었음을 깨닫고 눈을 깜빡였다. "난 잘 모르겠어," 그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연필을 향해 손을 뻗고 있었다.

"뭐, 나는 너 그림들을 좋아하잖아. 시간도 많고." 마이크가 말했다. 그는 솔직해보였다. 그리고 윌은 다른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바로 오늘 어디서 잘 지에 관한 고민이었다.

"알겠어," 윌은 스케치북을 손에 쥐었다.

초상화를 그리는 것에 관해 말하자면, 화가는 그리는 대상을 계속 관찰해야된다는 점이었다. 첫 선들을 그리며, 윌은 자신이 계속 마이크의 눈을 바라보고 있다는 걸 알아챘다. 그는 마이크를 최대한 보지 않으려 했지만 초상화를 그릴 때 피사체를 응시하는 건 필수적이었다. 윌이 마이크의 코에 집중하자, 윌은 어색함 따윈 새까맣게 잊은 채 그림에 몰두했다.

사실 마이크의 얼굴은 손바닥 보듯 익숙했다. 늘 곱슬거리던 그의 머리칼은, 윌이 머리카락을 그릴 때마다 자연스럽게 떠올리던 레퍼런스였고, 그의 짙은 눈동자는 빛의 반사를 연습할 때 모델처럼 쓰이곤 했다.

그리고 그의 입술은 윌의 연습과 망상을 도왔다. 윌은 당연히 그게 옳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망상들은 윌이 가장 힘들어 했던 시간 동안 그를 간신히 버티게 해주던 것이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채, 윌은 마이크의 입술을 몇 번이고 머릿속으로 그려냈다.

"그래서, 너희 엄마랑 엘은 어땠어?"

그 질문은 무해했다. 그래도, 그들 사이의 모든 문장은 대본 밖의 대사들 같았다. 마치 둘 다 대사를 까먹어서 그냥 만들어내는 듯 했다.

"음, 그냥 그랬지. 뭘 조사... 하고 있더라."

"조사?"

"정전이 게이트랑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나봐. 엘이 정보를 캐내려고 낯선 사람들을 보고 있던데."

"그래? 뭐, 안전하게 있으려는 건 좋은 거니까."

윌은 자신이 마이크의 입술을 뚫어져라 바라보는 걸 숨기려고 노력했다. 사실은, 윌은 지난 10년 간 마이크의 입술을 자주 훔쳐봤다. 너무 자주 봐서 눈을 감고도 그려낼 수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지금 촛불 아래에서는 빛이 다르게 작용했다. 그림자는 더 짙고 깊어졌고, 밝은 부분은 더 밝아졌다. 윌은 완전히 집중해야 했다. 너무 집중한 나머지 자신의 손이 차게 얼고 이가 살짝 떨리고 있다는 걸 자각하지는 못했다.

지난 몇 년간 윌은 마이크의 얼굴에 변화가 생길 때마다 기억 속 마이크의 얼굴을 조금씩 수정해 와야 했다. 그의 얼굴에 미묘한 변화가 생길 때마다, 윌은 늘 새로운 무언가를 다시 배우는 느낌을 받았다. 마이크의 얼굴선은 자라면서 점점 또렷해졌고, 한때 곡선이 자리하던 곳에는 이제 각진 윤곽만이 남아 있었다.

지금 이렇게 마이크를 바라보며 초상화를 그리다 보니, 윌은 마지막으로 그를 그렸을 때는 없던 것들을 몇 가지 발견했다. 마이크의 얼굴은 어느새 균형 잡힌 비율을 갖추고 있었고, 눈썹은 짙고도 표정이 풍부했으며, 광대는 날카롭게 도드라져 있었다. 그리고 입술은 여전히 도톰했다.

윌이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 마이크는 가만히 앉아 있었다. 그의 입김에 선명하게 보였다. 윌은 자신도 모른 채 침을 삼켰다.

그가 마이크의 어깨가 떨리는 것을 알아차리자, 어색한 헛기침을 내뱉었다.

"춥겠다." 윌이 말했다.

"너도 추워 보여." 마이크가 약간 장난스러운 톤으로 말했다.

"너 슬슬 자러 가야 될 것 같은데."

"나랑 같이 위층 안 가?'

"나는-"

하지만 윌이 제대로 대답하기도 전에, 마이크가 덧붙였다. "나 그림 계속 보고 싶은데."

윌은 잠시 망설이며 자신이 그린 그림을 들여다봤다. 자기가 만든 것에서 좋은 점을 찾아내는 건 늘 어려웠다. 그의 시선은 언제나 사소한 오점들에 먼저 가 있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그게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다.

“여기.”

그는 스케치북을 테이블 위에 툭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담요와 베개를 챙기기 위해서였다. 마이크가 마음을 바꿀 새도 없이, 윌은 이미 계단 앞까지 가 있었다. 그는 마지막으로 지하실을 바라보았다.

지하실 한 가운데의 마이크는 촛불 가까이 몸을 숙인 채 종이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림의 작은 디테일 마저도 놓치지 않으려는 것처럼 아주 천천히 훑고 있었다. 그는 지나치게 조용했다. 그 모습에 윌은 괜히 불안해졌다.

선의 곡선에 드러났을까, 페이지 전체에 다 적혀 있는 건 아닐까.

자신이 그 얼굴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마이크, 나갈 때 촛불 좀 꺼주라. 난 먼저 위로 올라가 있을게.”

 

윌러 아저씨의 코 고는 소리가 집안 복도를 가득 채웠다. 윌은 조용히 계단을 올라 빈 마이크의 방으로 들어갔다. 탁상 위의 촛불은 낮게 타오르고 있었다. 이불도 제대로 정리되지 않은 침대 위엔 만화책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윌은 아직 바닥에 놓여 있는 매트리스 위에 몸을 눕히고 담요를 꼭 끌어당겼다.

그리곤 주변에 귀를 기울였다. 일 분 즈음 지났을까, 발소리가 가까워졌다. 침대가 삐걱거리는 소리. 천이 스치는 소리. 그리고-

"그림 진짜 잘 그렸더라." 마이크의 목소리.

윌은 벽면에 비치는 촛불의 깜빡임을 지켜보았다.

“너가 이렇게 잘 그리는 줄 몰랐어. 아니, 그러니까... 네가 마지막으로 나를 그려줬을 때도 대단하긴 했는데, 그...”

아.

마지막 그림.

윌은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는 그 그림에 대해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작은 부분 하나하나에 자신의 모든 실패가 담겨 있는 그림이었다. 그 그림을 그리던 때가 떠올랐다. 디테일 하나를 완성하는 데에도 터무니없이 많은 시간이 들었고, 결국에는 서둘러 마무리할 수밖에 없었다. 마이크가 공항에 도착하기 전에 그림이 다 말라야 했기 때문이었다.

윌의 머릿속에서는 그날 공항의 순간이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었다. 마이크의 표정마저도 지나치게 선명하게 떠올랐다. 그때의 자신이 얼마나 순수하고 멍청했는지, 지금 와서는 쪽팔릴 정도였다.

"사실은," 마이크가 작게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전과 달리 생각에 깊이 잠긴 것 같았다. 가만히 앉아 있었을 때 많은 걸 생각했었나 보다. "나는 애초에 너가 그 그림을 그린 이유를 모르겠더라."

윌은 가슴이 서서히 조여 오는 걸 느끼며 벽만을 꿋꿋이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난 너가 그 일에 대해 거짓말했다는 것도 알고 있잖아.”

사실, 마이크가 이 이야기를 꺼낸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엘과 헤어졌던 때, 마이크는 그 그림에 대해 윌과 이야기를 하려 했다. 윌이 그림에 관해 거짓말을 했다고 따졌고 그 말에 윌은 지나치게 방어적으로 굴었다. 그리고 그게 그들이 나눈 마지막으로 제대로 된 대화였다. 그 이후로는, 모든 게 자연스럽게 식어 버렸다. 멀어지고, 차게 굳었다.

"있잖아, 내가 화가 좀 나 있었거든," 마이크가 말을 이었다. 그는 둘 사이의 공간에 문장을 채워넣고 있었다. "왜냐면 나는 너한테 내가 불안해하는 거에 대해서까지 말했는데 너는 그냥... 그냥 내가 듣고 싶어 하는 말을 해주면서 내 감정을 갖고 논 것 같아서... 그게 날 더 비참하게 했거든. 엘이 너한테 하지도 않은 말을 했다고 믿게 했잖아. 엘은 그런 생각을 하지도 않았었는데. 그래서 좀 상처를 받았던 거 같아."

윌은 자신이 숨을 참고 있었다는 것을 자각했다. 그의 심장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이런 식으로 얘기하는 건 절대 마이크답지 않았다. 한 편으로는 윌이 항상 이런 솔직함을 바라오긴 했지만, 자신이 그 솔직함에 눌릴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그리고 이건 엘 때문도 아니야. 우리 사이엔 원래 문제도 많았고 그냥 잘 안 된 거지, 뭐. 걘 반 년 넘게 편지에 거짓말을 써서 보내기도 했잖아. 근데 나는… 나는 그냥, 나한테만큼은 절대 거짓말하지 않을 사람이 너일 거라고 생각했어. 아니, 그걸 바랐던 것 같아."

"..."

"그때가 너가 나한테 처음으로 거짓말을 한 순간이었잖아. 그런데도 제대로 된 설명 하나 없이 넘어갔고. 나는 아직도 이해를 못 하겠어. 그래서 내가 계속 좀 오버했나 봐. 네가 거짓말하는 게 너무 익숙해 보였고, 너무 쉽게 하는 것 같아서... 혹시 너가 또 다른 것에 대해서도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건 아닐지, 자꾸 불안해졌거든.”

윌은 배가 잔뜩 뒤틀리는 느낌이 들었다. 마이크의 문장과 문장 사이에 끼어든 침묵이 지나치게 크게 느껴졌고, 그 공백을 어떻게든 채우고 싶었지만 입이 말을 듣지 않았다.

“아무튼.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은, 너가 그린 그림이 정말 좋았다고 하고 싶었어. 넌 항상 나를… 잘 모르겠어. 좀 잘생겨보이게 그려. 실제보다.”

그게 내 눈에 비치는 너의 모습이니까. 윌은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침묵이 방 안을 메웠다. 마이크의 숨소리는 짧고 뻣뻣했다.

"미안해." 윌이 드디어 숨을 내쉬었다.

이제는 머릿속이 전부 흐릿해져 있었다. 조금 전까지 남아 있던 분노는 사라지고, 그 자리를 죄책감이 대신하고 있었다. 작년에 대한 기억이라고는, 마이크가 그에게 거리를 뒀다는 것 뿐이었다. 윌은 그저 엘 때문이라고, 마이크가 헤어져서 그랬던 거라고 생각했고, 그 모든 이유를 마이크에게 탓하고 있었다.

"나 화난 거 아니야," 마이크가 말했다. "날 이렇게 잘생기게 만들어줘서 고마워."

마이크의 농담을 이해하기까지는 몇 초가 걸렸다. 윌은 새어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마이크도 따라 웃기 시작했다.

"거짓말해서  미안해, 마이크." 윌이 목소리에 진심을 담아 말했다. "아까는 그냥- 너희 아빠가 좀 무섭달까. 너희 아빠가 나한테 어디서 잤는지 안 물어봤으면 좋겠어서 거짓말하는 게 편하겠다고 생각한거야. 근데 너 말이 맞아. 나는... 나는 예전만큼 솔직하지는 않나봐. 그리고 그림에 대해서 거짓말한 것도 미안해. 진심으로."

짧은 정적이 오갔다. "아직도 설명하려고 하지는 않네." 마이크가 중얼거렸다.

그리고 그건 사실이었다. 윌은 밴 안에서 자신이 마이크에게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절대 설명할 수 없었다.

그래서, 윌은 그냥 입을 닫았다. 그는 이불의 부스럭거림을 들었다. 자신에 뒤통수에 따갑게 닿는 마이크의 시선도 느껴졌다. 대답을 들으려고 하면서.

어떤 면에서는, 모든 게 결국 다시 그에게로 돌아올 게 뻔했다. 이 모든 것에 대한 수치심을 포함해서 말이다.

감정들이 그가 했던 모든 거짓말의 원인이었다. 그림에 대한 거짓말도, 오늘 아침 식탁에서 했던 거짓말도. 그리고 몇 년이 흘러도 그는 이 감정에서 끝내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어느 순간, 마이크가 다시 몸을 돌렸다. 윌은 한참이 지나서야 잠들었다.

 

몇 신지 알 수 없었다. 방은 어두웠고 초는 거의 다 녹아 없어지고 있었다.

방금 누가 말을 했던 것 같기도 했다. 아니면 그냥 꿈이었나? 무슨 말을 들은 건지조차 분명하지 않았다.

그때 따뜻한 온기가 몸에 잠깐 닿았다. 어깨 쪽에 닿은 마이크의 무릎이었다. 잠에 반쯤 잠긴 채 윌은 무의식적으로 그쪽으로 몸을 조금 더 붙였다. 마치 따뜻함을 놓치기 싫다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곤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낮고 작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윌, 일어나. 너 너무 차가워."

윌은 눈을 제대로 뜨고 있기조차 버거웠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옥수수밭, 아니면 유채꽃... 어쨌든 온통 노란색으로 가득한 꿈을 꾸고 있었던 것 같다. 그는 눈을 몇 번 깜빡이며, 자기 옆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는 마이크를 겨우 인식했다.

“뭐…?”

윌의 목소리가 늘어진졌다.

“너 이를 떠는 소리에 깼어.”

마이크의 목소리는 낮았고, 숨결이 느껴질 만큼 가까웠다.

그때 윌은 자신의 이마 위에 얹힌 손을 느꼈다. 따뜻하고 부드러웠다.

그들 사이에는 암묵적인 규칙이 하나 있었다. 서로를 절대 만지지 않는 것. 거의 일 년 가까이 이어져 온 약속이었다. 서로에게서 가능한 한 멀어지려 애쓴 결과였다. 친구들과 함께하는 무비나잇에도 마이크가 굳이 윌의 옆자리를 피하던 이유이기도 했다.

“손이 왜 이렇게 따뜻해…?”

윌은 여전히 상황을 잘 이해하지 못한 채 중얼거렸다.

“나도 몰라.”

마이크가 낮게 말하더니, 곧 덧붙였다.

"이리 와. 위로 올라와.”

"어?"

"바닥은 너무 추워. 너 전혀 따뜻해지고 있지 않잖아. 어제 지하실에서 오래 있는 게 아니었는데..."

윌의 정신은 몸을 따라가지 못했지만, 그는 마이크에게 붙잡힌 채로 반쯤 끌려 올라가고 있었다.

"마이크, 아니야. 굳이 안 그래도 돼."

"왜 이렇게 복잡하게 굴어?"

"너무 좁-"

"이거 2인용 침대야. 공간은 넉넉하니까 걱정하지 마."

"아냐, 진짜로 안 이래도 돼."

"윌, 제발."

마이크의 목소리는 날카롭다기보단 애원하는 쪽에 가까웠다. 조금 지친 것 같기도 했다.

윌은 포기하고 침대 위로 끌려 올라갔다. 폭신한 매트리스가 그의 무게에 살짝 눌렸다. 바닥의 매트리스보다 훨씬 따뜻했다. 마이크가 침대의 이쪽에서 잔 게 분명했다. 윌은 숨을 내쉬며 바로 안정을 찾았다.

"이불도 바꾸자. 내꺼 완전 따뜻해. 여기."

윌이 마이크의 이불에 덮인 순간, 울고 싶어졌다. 너무 따뜻했다. 마이크는 윌의 배게와 이불을 바닥에서 집어들곤 침대의 다른 쪽에 누웠다.

마이크의 이불을 턱 끝까지 올리며 윌은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몸이 살짝 떨렸다. 그의 몸이 녹기 시작하고, 근육들이 하나씩 풀리기 시작했다.

그는 따뜻하게 있는 게 얼마나 좋은 지 설명할 수 없었다.

"이거," 윌이 조심스레 입을 뗐다. 자신이 조금 불쌍하게 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그는 말을 이었다. "진짜 좋다."

마이크는 피곤함에 살짝 젖은 웃음을 내뱉었다. 숨결이 닿을 만큼 가까운 거리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그래? 춥게 있으라는 내면의 목소리 같은 건 이제 없고?"

"응, 다행히도." 윌은 미소를 띄우며 말했다. 윌은 미소지으며 다시 감겨오는 피곤함에 몸을 맡겼다. 눈꺼풀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난 이제 안전한 것 같애."

"당연하지, 너 안전해." 마이크는 확신을 실으며 대답했다. 그의 목소리는 낮고 부드러웠다.

그리고 이번에야말로, 윌은 마이크를 믿기로 했다.

Notes: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