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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Husk

Summary:

*스포일러 주의*
244화-회고(1) 스포일러. 극중 스토리 연출상의 갭을 채우기 위한 연성입니다. 스포일러 주의.

Notes:

(See the end of the work for notes.)

Work Text:

"집에 가서 눈이라도 붙이고 오시는 게 좋겠습니다."

테오도르가 말했다.

그럴 수 없다고 대답하려고 입을 크게 벌렸지만 아무리 해도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시문은 목 언저리가 답답해 몇 번이고 아무 소리도 내지 못한 채 입만 벙긋거리다가 겨우 옆을 돌아보았다. 그는 한참이나 시문을 응시하고 있던 듯, 상체를 앞으로 숙인 채 양 팔을 무릎에 괴고는 단호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시문은 다시 한 번 입을 열었다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고개를 돌렸다.
수술실 문이 닫힌 지 벌써 몇 시간이었다. 복도는 휑했다. 앰뷸런스를 부르고, 주소를 부르고, 병원으로 오는 내내 시문의 팔을 붙들고 침착하라는 말을 주문처럼 외우던 바람은 그가 수술실로 들어가자마자 긴장이 풀렸는지 울음을 터뜨렸다. 내내 굳은 얼굴로 있던 소피아는 좀 전에 바람이를 달래고 오겠다며 함께 밖으로 나갔다.

시문은 깍지 낀 테오도르의 손을 보았다. 피가 굳어 버석거리고 있었다. 어딘지 익숙한 풍경인데 동시에 알 수 없는 기시감이 몰려왔다. 한 번도 살아낸 적 없는 순간을 착각하듯. 시문은 그의 제안을 거절하려다가, 자신을 바라보던 테오도르의 시선을 떠올리고 말없이 일어섰다.

그들은, 적어도 지금 의식불명일 그는,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집은 아침에 두고 나간 그대로였다. 시문은 현관문을 닫고 거실로 올라섰다. 문 앞에 몇 켤레나 나뒹구는 그의 신발을 보았지만 의식적으로 눈길을 주지 않고 지나쳤다. 정리를 해 두고 나갔기 때문에 집 안은 여전히 깨끗했고, 그의 흔적이라고는 없었다.

어젯밤에도 그는 여기에 없었다. 들어오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싱크대 앞에 서서 씻어 놓은 머그컵에 물을 받던 시문은 몇 달 전에 그에게 주었던 여분의 키를 떠올렸다. 되짚어보면 그는 이상할 정도로 시문을 시야에서 놓치지 않았고 어딜 가든 동행했기 때문에 굳이 여벌 열쇠가 필요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시문은 부러 하나를 더 맞춰 그에게 주었다. 그 때는 그래야 할 것 같았다. 매번 번잡스럽게 그에게 문을 열어 주고 집까지 동행해야 하면 귀찮으니까. 물론 그런 상황은 한 번도 없었다. 그리고 사실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소리내어 말하지 않았지만 시문은 알고 있었다. 단지 귀찮아지기 싫어서 준 건 아니었다. 때문에 그가 원한다면 뻔뻔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 올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다.

'이게 네 방식이라며?'

눈이 번쩍 뜨였다. 대체 언제 눈을 감았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두 팔로 싱크대 가장자리를 짚은 채 서 있던 시문은 물을 잠그고 넘쳐버린 머그컵을 기울여 물을 조금 버렸다. 물을 한 모금 마시자 마자 피로했던 정신이 아주 잠깐 맑아졌다가 다시 깊이 가라앉았다. 피곤했다. 당장 잠들고 싶었다. 그렇지만 눈을 감으면 계속해서 떠올랐다.

추락은 순식간이었다. 그가 잔해 사이로 사라지기 직전 찰나의 순간에 시문을 돌아보았던 것도 같다. 돌덩이들이 쿵쿵 떨어지는 소리에 시문의 심장도 같은 소리를 내며 가라앉았다. 먼지가 가라앉고 그의 구겨진 몸이 잔해들 사이에 누워 있는 것을 발견하자마자 누군가가 비명을 질렀다. 누구 음성인지도 알 수 없었다. 어쩌면 시문의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건물이 붕괴하고 그가 시야에서 사라진 직후 시문은 기시감을 느꼈다. 전에도 꼭 이런 적이 있었다.

어쩔 줄 몰라 집안을 서성거리다 정신을 차려보니 소파 위였다. 시문은 한 팔로 눈을 가리고 길게 누워 있었다. 베란다 창으로 지는 햇빛이 길게 기어들고 있었다.

"텐카씨, 커튼..."

무심결에 내뱉은 시문의 목소리가 몇 음절 가지 못 하고 사그라졌다. 딱딱하게 굳은 심장이 금방이라도 목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구역질이 났다. 시문은 숨조차 쉬지 못하고 가만 누워 있다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핸드폰에는 소피아의 문자만 몇 통 들어와 있었다. 바람이를 집으로 데려다 주고 왔다며. 답을 할 기력도 없었다. 뭐라고 해야 하면 좋을지도 알 수 없었다.

어떤 소리도 기억나지 않았다. 피투성이가 된 그의 몸이 잔해 사이에 널브러진 모습을 본 이후로는 온통 날카로운 백색 소음뿐이었다. 순식간에 진공의 공간으로 내던져진 듯 숨조차 쉬어지지 않았다. 소피아와 바람이 뛰쳐나가 그의 곁을 감싼 후 뒤에서 누군가가 다급하게 달려왔다. 귀를 찢는 이명 사이로 낯선 이름을 불면서. 그는 우두커니 선 시문의 어깨를 치고 지나가 소피아와 바람이를 밀치고 그의 몸 옆에 주저앉았다. 시문은 그제야 정신이 들었다.

"텐..."

"헨리!"

넌 그의 이름도 모른다.

시문을 향해 내보인 등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휴대폰 앞면이 아래를 향하도록 내려둔 후 시문은 샤워를 했다. 욕실이 온통 그의 물건이었다. 무의식적으로 몸을 숙여 그가 일전에 사 두었던 비싼 샴푸를 집어들어 향을 맡자마자 알 수 없는 죄책감이 엄슴했다. 잠시 굳어 있던 시문은 다시 몸을 일으켜 비누를 집었다.

'지금으로선 장담할 수 없습니다.'

수술에 들어가기 전 담당의가 말했다. 다른 대화 중에 어떻게 그 말만 그토록 또렷히 들렸는지도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시문은 말 없이 수술실 밖 의자에 테오도르와 나란히 앉아 그에게 한 마지막 말이 무엇이었는지 되짚었다.

'당신은 상관 없잖아요!'

목이 막혔다. 그리고 그제야 이해가 됐다. 그가 왜 그렇게 무리하게 몸을 내던졌는지. 그의 핸들러인 동생의 입으로 말하길, 그는 시문의 신변보호를 위해 파견된 요원이었으므로 당연히 상관이 있었다. 그리고 꼭 그런 이유만은 아니었으리라. 시문은 알 수 있었다. 그에게 여별 열쇠를 맞춰 주며 겉으로 주워 섬긴 핑계 외에 다른 이유가 있었던 것처럼.

물을 잠그고도 시문은 얼마 동안 그대로 욕실에 서 있었다. 뜨거운 물로 데워 놓은 몸이 차갑게 식어 오한이 들 때 즈음에야 그는 어쩔 수 없이 몸을 닦고 욕실을 나섰다.

집 안에 흔적이 없는 곳이 없었다.

옷을 갈아입으려 옷장을 열자마자 시문은 다시금 말문이 막혔다. 살짝 벌어졌던 입을 아프도록 깨물고도 시문은 옷장 문을 닫지도 옷을 꺼내지도 못한 채로 서 있을 뿐이었다.

'텐카씨, 이게 다 뭡니까?'

'모? 모가?'

'옷이요, 옷! 내 옷이 다 구겨지잖아요! 그리고 걸어 놓을 거면 좀 잘 걸어 놓던가!'

'아 그럼 오쪼란 말입니카! 싀문씨 옷장 너무 작아!'

'그러니까 누가 맨날 옷을 그렇게 사 모으래요? 남의 집에 살면서 염치도 없게. 그리고 대체 돈이 다 어디서 나서 이런 비싼 옷들 사는 겁니까, 예? 그럴 돈 있으면-'

'아아아아아아, 안 들림니다! 안 들려!'

'이 인간이! 야, 너 일로 안 와?'

줄세워 다림질한 시문의 양복이 가지런히 걸린 다른 쪽에 아무렇게나 들쭉날쭉 걸린 그의 옷들. 나란히 걸린 색색의 선글라스들. 아직 신지도 않은 새 구두들. 시문은 정신이 아득해졌다. 시문이 제 것과 같이 세탁해 다림질해 걸어 놓은 그의 셔츠에서 익숙한 세제 향이 났다. 그가 아무렇게나 옷에 뿌린 향수의 잔향과 함께. 그제야 시문은 왜 그가 추락하던 그 찰나에 그와 함께했던 주마등을 보았는지 이해했다.

이제 돌이키기에 너무 늦었다. 그 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적어도 이렇게 갑작스럽게는 그럴 수 없다. 더 이상 그럴 수가 없었다.

 

다음날 소피아에게서 전화가 왔다.

"이 형사님. 집이세요?"

시문은 잠시 뜸을 들이다 조금 갈라진 목소리로 답했다.

"예."

"...잘 하셨어요. 좀 쉬어요. 수술 방금 끝났고, 잘 됐대요. 여긴 그 사람 동생이 지키고 있으니까 걱정 마세요."

"의식은..."

"아직이에요. 시문씨, 너무 자책하지 마세요."

전화를 끊고 시문은 청으로 돌아가 경위서라도 쓸 생각으로 집을 나섰다. 사실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기보다는 그저 집에서 벗어나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집에 혼자 있다가는 정신이 어떻게 돼 버릴 것만 같았다. 적막에 귀가 멀 것 같아서.

주차장으로 내려가 차를 찾던 시문은 한참이나 헤매고서야 차를 병원에 두고 온 것을 떠올렸다. 항상 주차해두는 곳에는 다른 사람의 차가 서 있었다. 답답하게 고인 숨을 일부러 크게 모아 내뱉자 공중에 허연 입김이 뭉쳤다. 시문은 키를 든 손을 점퍼 주머니에 찔러넣고 단지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어차피 걸어갈 만한 거리였다.

'아우, 추워 죽겠네.'

'그러게 두껍게 입고 나오랬잖아요. 아직 봄 아닙니다.'

담장에 얽힌 시든 장미덩굴을 지나며 시문은 괜히 찾아드는 기억에 고개를 도리질쳤다. 물론 그런다고 잊히지는 않았다.

대체 어떻게 자책을 하지 말라는 말인가.

최악을 생각해야 했다. 그래야 최악을 대비할 수 있었다. 기적처럼 최선의 결과가 나올 때도 있었지만, 사실 그렇지 못할 때가 더 많았다. 그리고 시문은 대비책도 없이 최악의 상황을 맞닥뜨릴 만큼 여유로워 본 역사가 없었다.

하지만 최악의 상황을 상상한다고, 대책이 서나?

시문의 걸음이 서서히 멎었다. 그는 주머니에 두 손을 찔러넣은 채 멍하니, 울퉁불퉁하게 일어난 보도블럭을 내려다보았다.

그가 죽는다면, 그 때는?

심장박동이 한 박자 건너뛰었다. 시문은 놀라서 저도 모르게 급하게 숨을 들이켰고 그 바람에 약하게 사래가 들려 콜록댔다. 그 탓에 눈가에 눈물이 조금 맺혔다.

자책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돌이켜보면 모든 것이 명확했다. 그의 언사를 믿지 못했다 쳐도 그의 행동을 보고 시문은 알 수 있었다. 적어도 그가 자신에게 해를 끼치기 위해 온 사람은 아니란 것을. 입으로 거짓을 고하는 사람들이 몸짓으로는 진실을 드러낸다는 걸 굳이 형사라야 알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시문은 아주 오래 전부터 그 둘을 구분해낼 줄 알았고, 자신에게 그런 능력이 있다는 걸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런데 왜...

'슬픈 이야기네요.'

그 때 그가 돌아보던 얼굴을 기억했다. 그가 나직하게, 영어와 알아듣지 못할 독어를 섞어 더듬거리며 털어놓던 이야기를 기억했다. 거짓일 수가 없었다. 그는 시문이 물은 질문에 한 치의 거짓도 없이 고했다. 그의 말에 조금의 거짓이라도 있었다면 그 때 그 자리에서 알아차렸을 것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자책을 안 할 수가 있나. 그 후로도, 그 후로도 그는 끊임없이 시문의 신뢰를 구했다. 몸을 사리지 않았다. 그리고 시문은 그에게 의심을 돌려주었다. 그래서는 안 되었는데. 그래서는.
땅바닥만 내려다보던 시문은 한참만에야 겨우 고개를 들었다. 이런 상태로는 일할 수 없었다. 어차피 사무실에 가도 그의 물건들이 있을 것이다. 그의 흔적들은 곳곳에 있었다. 문득 돌이켜보니 그와 함께 하지 않았던 곳이 없다. 빈 껍데기같은 웃음이 허연 입김과 함께 터져나와 찬 공기에 흩어졌다. 시문은 한 손으로 마른세수를 하고, 오는 길에 지나친 포장마차를 향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가 죽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

첫 잔을 따르며 시문은 생각했다. 엄지와 검지로 가득 채워진 잔을 들어올리자 이상하게 머리가 차분해졌다. 그래, 그가 죽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

짐은 아마 그쪽에서 정리해갈 것이다. 시문은 문만 열어주면 될 일이다. 국가요원이니 유해 수습도 전부 그쪽에서 할 것이다. 만일 그쪽에서 책임을 묻는다 해도 정식으로 채널을 열어 공조를 한 게 아니기 때문에 시문은 대답할 이유가 없다.

그런 거 말고.

귓가에 어떤 목소리가 속삭였다. 시문은 잔을 탁 소리 나게 내려놓고 병을 들었다. 이상하게 가벼웠다. 눈을 떠 보니 병은 이미 텅텅 비어 있었고, 그 옆에 있는 병도, 그 옆에 있는 병도 마찬가지였다. 어리둥절해진 시문은 눈을 가늘게 뜨고 테이블 위에 대체 빈 병이 몇 개나 있는지 세려고 했지만 여덟 병 쯤 셌을 때 아홉 번째가 자꾸만 두 개가 되어 옆의 것과 겹쳐지거나 앞뒤로 하나씩 분화되어 도저히 끝까지 셀 수가 없었다.

"총각. 총각, 나 이제 문 닫아야 해."

어느샌가 옆으로 다가온 포장마차 주인이 시문의 어깨를 흔들었다. 여전히 얼떨떨한 기분으로 시문은 고개를 들어 그녀의 얼굴을 올려다 보았다. 피곤하고 주름진 얼굴이 두 개로 세 개로 갈라지고 있었다.

"총각도 집에 들어가야지. 계산하고."

얼떨결에 일어난 시문이 지갑을 꺼내 만원짜리를 집히는 대로 꺼내 건넸다.

돌아오는 길은 잘 기억나지 않았다. 정신을 차려보니 현관에서 신발이 벗겨지지 않아 주저앉아 있었다. 겨우 운동화를 벗고 신발장을 짚고 일어나 방으로 들어가려다 말고 시문은 현관에 엉망으로 나뒹구는 구두를 뒤돌아보았다. 그의 것과 자신의 것이 죄 섞여 있었다. 정리를 해야 하는데. 그래야 나중에 신고 나갈 수 있다. 술김에 엉망인 정신으로 비틀비틀 걸어가 시문은 미간을 있는대로 구기고 자신의 구두와 그의 것을 구분해서 가지런히 신발장 안에 넣어 놓고 들어가지 않는 것은 바깥에 꺼내 놓았다. 신고 나가기 좋도록, 구두코가 문을 향해서.

그가 죽으면 어떻게 하지.

마지막으로 놓은 신발은 그가 가장 최근 산 켤레였다. 부드러운 송아지 가죽으로 만들어진 잘 빠진 옥스포스화. 옅은 갈색이었고, 일주일 전에도 그가 신고 나갔다가 산을 타게 되는 바람에 종일 꺅꺅거리고는 집에 돌아와 정성스럽게 구두솔로 엉겨붙은 흙을 털어냈다.

그가 죽으면, 그건 오롯이 시문의 탓이었다. 자책을 하고 안 하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는 계속해서 자신에게 허락된 최대한의 진실로 시문에게 신뢰를 구했고 시문은 그를 믿지 않았다. 그를 믿지 않고 다른 이들의 속삭임에만 귀 기울이며 그를 밀어내고 몰아붙였다. 그가 참지 못하고, 왜 너는 매번 네 목숨 아까운 줄 모르고 무턱대고 몸부터 던지느냐 물은 건 그 자체로 의문문이 아니었다. 제발 그러지 말라는 부탁이었다. 시문도 알았다. 그 때 그렇게 답하지 말았어야 했다. 그가 요구하지 않았는데도 시문이 자청해서 그에게 열쇠를 주었던 것으로 이미 답을 주었었는데, 그렇게 대답하면 안 되는 것이었다. 그는 상관 없는 사람이 아니었다. 둘 다 알고 있었다. 시문은 피가 엉겨붙어 버석거리는 테오도르의 손을 보며 느낀 기시감이 대체 어디서 온 것인지도 사실 알았다. 예전이라면 피투성이가 되어 수술실로 실려 들어간 건 시문이었을 것이다. 그가 먼저 나서지 않았다면 아마 이번에도 그렇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악몽을 되풀이하는 것만 같았다. 그는 이런 상황을 벌써 몇 번이나 겪었다. 정신이 아득해졌다. 상황이 여의치 않을 때 몸부터 던지고 보는 것이 그의 버릇이었지만, 그래선 안 되었다. 적어도 그런 식으로 그를 몰아붙여서는...

주머니에 쑤셔넣은 휴대폰이 울렸다. 시문은 벽에 기대어 앉아 수신인을 확인했다. 소피아였다.

숨이 얼어붙었다.

최악을 생각해야 했다. 그래야 실망하고 절망하지 않을 수 있었다. 항상 그렇게 해 왔다. 그래야 대비할 수 있다.

하지만 이번은 아니었다. 대책이 없었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지도 알 수가 없었다. 그를 그런 식으로 대하면 안 됐다는 생각만 앵무새의 대답처럼 돌아왔다.

벨소리가 갑작스럽게 끊기고 화면이 거멓게 죽었다. 휴대폰을 쥔 손에 어찌나 힘이 들어갔는지 손이 다 떨리고 있었다.

짧은 알람 소리가 튀어오르며 화면이 밝아졌다.

'깨어났어요. 생명에 지장 없답니다.'

참았던 숨이 한꺼번에 몰려나왔다. 잔뜩 우그러들었던 어깨가 천천히 가라앉고, 아플 정도로 휴대폰을 쥐고 있던 팔이 서서히 바닥으로 꺼져들었다. 시문은 차가운 벽에 머리를 기대고 눈을 감았다. 목 저 아래, 명치 언저리에서 아주 오래도록 눌려 있던 것만 같은 뜨거운 것이 울컥울컥 치솟았다. 입술 안쪽을 깨물어도 소용 없었다. 시문은 눈을 더 꽉 감고, 아랫입술을 더 꽉 깨물고, 한 손으로 눈가를 감쌌다. 앞으로 깊이 구부러진 등이 아주 조금씩 들썩거리다가 울음소리와 섞여들었다.

Notes:

여러분... 제가 살 수가 없다... 범인은 싸담님... 범인은 김텐카... 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