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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nguage:
한국어
Stats:
Published:
2018-07-01
Words:
680
Chapters:
1/1
Comments:
1
Kudos:
2
Hits:
81

Dragonfly

Summary:

텐카의 우주선에 실려 어디론가 가며 악몽을 꾸는 시문,

Work Text:

악몽을 꿨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등이 식은땀으로 축축했다. 셔츠가 등에 달라붙은 기분 나쁜 감각. 시문은 그대로 누운 채 파이프가 이리저리 구물거리는 천장을 한참이나 바라보다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일어나고 나서야 보니 귀마개가 떨어져 있었다. 머리맡을 더듬어 약한 조명을 키려다 말고 시문은 작게 난 창 밖을 내다보았다. 아주 멀리 고정되어 움직이지 않는 별들. 희미하게 들려오는 노랫소리. 천천히 눈을 깜빡이던 시문은 낡은 담요를 두른 채 침대를 나왔다.

꿈들은 항상 기억나지 않았다. 알람 소리에 잡혀 끌려나오고 난 후면 간데없이 기억에서 지워지곤 했다. 하지만 악몽은, 악몽들만은 끈적한 땀자국처럼 자국을 남기며 달라붙었다.

맨발로 선내를 서성이던 시문은 커피를 한 잔 내려 조종간에 앉았다. 넓게 트인 전면유리 위로 우주선에 탑재된 고물 인공지능이 자동운항 표시등을 깜빡이고 있었고 다음 항로까지의 거리와 도착 예정 시각이 구석에 작게 표시되었다. 시문은 자리에 가만히 앉아 커피를 마시며 멀리 붙박힌 별들이 그를 향해 천천히 움직이는 것을 지켜보았다.

돔 안에서 나고 자란 시문이 처음으로 별을 보게 된 건 성인이 된 후였다. 졸업 시험을 통과하고 명찰을 받은 후 짐을 챙겨 셔틀베이의 대기실에 앉아서야 가로로 좁고 길게 난 창으로 본, 검은 바탕 위의 무수히 많은 하얀 점들.

"머 함니카?"

잠에 취한 목소리가 등 뒤에서 불쑥 튀어나왔다. 그 바람에 시문은 하마터면 조종판 위로 커피를 쏟을 뻔했고, 겨우 그 목소리가 누구의 것인지 깨달았을 때엔 그가 빈 옆자리에 털썩 앉아서 찢어지게 하품을 하고 있었다.

"건드린 건 아니지?"

게슴츠레한 눈이 영 못 미덥다는 듯 바라본 탓에 시문은 괜히 짜증이 치밀어 혀를 찼다.

"몇 번이나 말합니까. 당신 장난감에 손 안 댄다고."
"댔어, 그럼. 왜 화를 냅니카."

그렇게 중얼거린 텐카가 시문의 손에서 커피를 슬그머니 빼앗아 한 모금 넘겼다.

"뭡니까? 커피 마시고 싶으면 당신 거 만들어 와요."
"초잔하게. 어차피 이거 내 우주선이고 이 커피도 내가 샀슴니다? 내가 이거 구하자고 올마나 고생한 줄 아라?"
"어차피 이거 진짜 커피콩 아니잖아요. 합성향료로 향만 낸 거면서."
"커피콩 묠종한지가 언젠데. 요 동네에서는 이고도 없어서 못 구함니다?"

그러면서도 그는 순순히 시문에게 잔을 돌려주었다.

사실 맞는 말이라 반박할 수가 없어 시문은 더 기분이 나빠졌다. 그는 다시 손에 들린 커피를 마시려고 내려다 보았다가 인상을 팍 구기고 텐카에게 도로 내밀었다. 텐카는 입을 양쪽으로 늘리며 웬일이냐는 듯 돌아보면서도 별 말 없이 시문이 내민 잔을 받아 마시기 시작했다.

"그래서, 잠 안 자고 여기서 머 하는데."

시문은 한 손으로 턱을 괴고 밖을 바라보았다. 판판한 유리에 비치는 검은 바탕에 하얗고 파랗고 노랗고 붉은, 아주 먼 별들.

"...별을 보고 있었어요."

담요 바깥으로 드러난 맨발이 시렸다. 시문은 발가락을 꿈지럭대다가 접어 올려 의자 위에 양반다리를 했다. 어디서 먼지가 들어올 수도 없건만 차가운 금속 판으로 깔린 바닥은 항상 지저분했고 맨발로 다니기에는 영 불쾌하기만 했다. 어디엔가 내려 한번 죄 쓸어내 버릴 수 있다면 좋을 텐데. 하지만 그들은 쫓기고 있었고, 도망 중이었고, 마음 편하게 청소를 할 만한 처지가 아니었다.

"...어렸을 적엔,"

한참만에 텐카가 입을 뗐다. 그의 손에 들린 커피잔은 이미 비어 있었다. 시문이 돌아 보았을 때 그는 부조종석에 삐딱하게 기대 앉아 먼 별들을 보고 있었다. 팔걸이를 톡톡 두드리는 길고 투박하고 하얀 손가락.

"별들이 참 낭만적으로 보였지. 마법 같잖아. 땅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은 사실 대체로 그래. 하늘을 올려다 보면서 저 별들엔 뭐가 있을지 궁금해하는 거지. 닥쳐올 현실이 아니니까."

"지금은?"

"지금은,"

말을 하려다 말고 텐카는 킬킬 웃었다. 거뭇하게 수염이 자라난 턱을 손 끝으로 긁으며 그는 고개를 기우뚱이 옆으로 숙였다.

"글쎄. 모르겠네."

가늘게 뜨인 눈이 시문을 돌아보았다.

"싀문씨는 어때?"

그와 눈을 마주치던 시문은 다시금 별들로 시선을 돌렸다.

그를 잠에서 끌어낸 악몽의 시작은 이러했다. 시문은 생명유지장치도 없이 맨몸으로 우주 공간에 덩그러니 버려져 있었다. 살갗이 얼어붙어 움직이지 않는데도 감각은 없었고, 눈을 감고 있는 건지 아니면 눈이 멀어버린 건지 사방은 온통 컴컴할 뿐이었다. 그리고 수많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모두 다른 목소리들이었지만 전부 다 텐카의 것이었다. 어리고 늙고 가늘고 굵은 음성이, 텐카의 목소리가 시문이 모르는 기억들을 속삭였다. 시문이 살아본 적 없는 기억들이었다. 시문의 것이었고 곧 시문의 것이 아닌 생의 조각들. 한 번도 살아내지 못했지만 언젠가 같은 순간이 있었던 듯한 착각이 들었다.

가만 꿈을 되짚던 시문의 미간이 슬쩍 우그러들었다. 가만 있어봐. 이게 악몽인가?

"별 생각 없어요."

한참만에 시문이 부루퉁하게 내뱉었다. 담요를 둘렀지만 추웠다. 선내 온도가 다시 올라가기까지는 아직 몇 시간이나 남아 있었고 다음 목적지까지는 그보다 더 오래 남았다. 시문은 차가운 바닥에서 발을 꼼지락거리다가 말없이 일어서서 침대로 돌아갔다. 옆자리에 앉아 있던 텐카는 시문의 뒷모습을 눈으로만 좇다가 말없이 일어나 스테레오 볼륨을 높였다. 고물이나 다름없는 오디오 플레이어에서 흘러나오는 아주 오래 된 지구의 노래가 잡음에 섞여 무겁고 낮게 깔리고, 시문은 등을 돌린 채 누워, 달로 날아가고픈 낭만을 노래하는, 아마 그가 평생이 걸려도 이해하지 못할 가사를 들으며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