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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tegory:
Fandom:
Characters:
Additional Tags:
Language:
한국어
Stats:
Published:
2020-10-31
Completed:
2020-10-31
Words:
11,147
Chapters:
3/3
Kudos:
4
Hits:
165

Madame Midwinter's Dog

Summary:

유령 사냥 행렬이 떠도는 동지 십이야의 첫 밤, 조촐한 저녁식사를 차려놓고 탐정을 기다리던 악마의 밤이 계획과는 전혀 다르게 흘러가기 시작한다.
올 할로우싀 이브와 이어지는 이야기.

Chapter Text

01.

바람이 휘몰아치는 밤이었다. 절벽 위에 매달린 그 마을에는 바람이 없는 날이 없었지만 그날따라 바람소리는 유난히 음산한 울음소리처럼 들렸다.

동네 주민들은 하나같이 성탄절과는 인연이 없는 존재들이라 인간들이 사는 마을처럼 붉고 푸른 장식물을 달거나 즐거운 캐롤을 부르지도 않았고, 심지어는 불조차 켜지 않았지만 그래도 굴뚝마다 연기는 피어오르고 있었다. 아마 다들 같은 것을 태우고 있을 것이다. 인간들에게야 성탄절이지만, 그보다 더 오래 된 것들에게는 겨울의 가장 깊은 구렁이기 때문이었다.

다른 말로 하자면, 동지 십이야의 시작이었다. 긴 밤이 뱀처럼 몸을 가장 길게 늘였다가 여름의 걸음에 다시 서서히 똬리 틀기 시작하는 시기. 유령 사냥꾼들이 바람을 타고 하늘을 내달리고 해가 바다 가장 깊이 떨어져 빛이 사라지는 날. 사냥당하는 건 바다를 건너갈 때를 놓친 불쌍한 인간들의 영혼이었으나, 겨울의 창끝은 사람 아닌 것들을 구별해서 찌르지 않기에 모두가 숨죽이는 밤이다.

악마는 부엌 벽난로 앞에 의자를 끌어다 놓고 앉아 있었다. 오래된 나무 식탁에는 붉은 리본을 매단 촛대에서 양초가 타오르고 있었고 두 명분의 잔과 포도주 한 병이 놓여 있었다. 사과 파이는 이제 막 오븐에서 꺼내온 듯 따뜻한 김을 뿜고 있었다. 그리고 부지깽이 옆에는 솔방울과 겨우살이 장식을 두르고 얌전히 앉아 있는 커다란 장작 하나.

똑똑, 누군가가 문을 두드렸다.

악마는 소리를 듣고도 눈만 데구륵 굴렸을 뿐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동지 십이야 첫날밤에, 그것도 해가 지자마자 문을 두드리는 소리라니? 이런 흉흉한 밤에 대체 누가 바깥을 돌아다닌다는 말인가. 오라고 초대한 사람이야 있었지만, 그것도 낮에, 해가 있는 사이에 오라고 신신당부했었다. 하지만 상대는 그 말을 몇 번이나 듣고 알겠다며 손사래를 쳐 놓고선 결국 나타나지 않았으니, 솔직히 말해 악마는 심기가 불편해 있던 참이었다. 그런데도 문을 두드리는 소리는 들려왔다. 그러니 저건 그를 바람 맞힌 상대거나, 혹은 동지 밤에 장난이나 치러 오는 삿된 영혼이 틀림없었다.

예의 바르게 똑똑 두드리던 소리는 어느샌가 난폭하게 쾅쾅거리는 두드림으로 변했다.

“악마 씨!”

쾅, 쾅, 쾅.

“문 좀 열어요! 우릴 얼려 죽일 셈이에요?”

문 너머에서 외치는 음성은 익숙한 목소리였다. 악마는 부엌 의자에 앉아 짜증스럽게 이마를 구겼다.

망자의 영혼보다 더 귀찮은 게 나타났다.

“빨리 와서 문 열어요!”

악마는 테이블에 팔꿈치를 괴고 아주 피곤한 얼굴로 한숨을 쉬고는, 마지못해 자리에서 일어나 느릿느릿 문으로 걸어갔다.

"어휴, 추워라."

"안녕하세요 악마씨."

악마가 떨떠름한 얼굴로 문을 열자마자 소피아와 시계가게 주인이 비집고 들어왔다. 성난 바람이 문틈으로 밀려들었다.

"지금 눈 내리기 시작한 거 알아요?"

어깨에 앉은 눈을 털어내며 소피아가 투덜거렸다. 그녀는 악마를 지나쳐 부엌으로 성큼성큼 들어가 들고 온 바구니를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악마는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어안이 벙벙해져 멍하니 서 있다가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문을 쾅 닫았다.

"뭐야. 너희 대체 무슨 배짱으로 동지 밤에 밖을 돌아다녀?”

“아니 왜요? 우리 집에서 여기까지 몇 걸음이나 된다고 호들갑이람.”

여태 문가에 서 있던 악마가는 소피아가 자신이 기껏 차려놓은 식탁을 엉망으로 어지르는 광경에 짜증이 솟은 목소리로 외쳤다.

“누가 너희더러 여기에- 야! 누가 멋대로 식탁에 손 대라고 했어?”

"탐정씨가 여기로 가라고 해서 왔어요. 어휴, 정말이지 이런 좋은 밤에 악마씨 집으로 오라고나 하고 말이야. 얼굴이 잘생겼으니 망정이지 그렇잖았으면 진작에 돼지로 만들어서 베이컨을 떠 버렸을 거예요.”

“갑자기 쳐들어와서 죄송해요, 악마 씨.”

어쩔 줄 모르고 악마 옆에 서서 쩔쩔매던 시계가게 주인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악마는 제 허리까지밖에 오지 않는 작은 소녀를 내려다보며 이마를 짚었다. 골치 아프게 되었다. 바람을 맞았으니 오늘 밤은 조용히 혼자 지내야겠다 싶었는데 이런 불청객들로 시끄러워질 줄이야.

하지만 시간은 이미 늦었고, 오늘 밤은 동지 첫 밤이었다. 아무리 꼴 보기 싫은 면면이라도 이런 밤에 집으로 들어온 손님을 문밖으로 내쫓는 건 아무리 악마라도 할 짓이 아니었다.

“그나저나 동지 장작은 때우고 계세요?"

소피아가 묻는 말에 맥이 탁 풀린 목소리로 악마가 재차 물었다.

"뭐?"

“어머니, 이 양반 봐. 해 떨어진 지가 언제인데 아직까지 동지 장작을 안 때고 있었어요? 아, 됐어. 그보다 여기 접시 좀 꺼내 주세요!”

소피아가 온 찬장을 다 열어젖힐 기세로 요란을 떨며 외쳤다.

악마가 성큼성큼 부엌으로 다시 돌아왔을 때 이미 식탁은 소피아가 들고 온 음식으로 한 상 가득이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칠면조는 노릇한 겉면에 정향을 잔뜩 꽂고 있었고 속은 온갖 향신료와 말린 과일, 그리고 사과주에 절인 쌀로 채워져 있었다. 그 기름에 구워진 듯 바삭하고 따뜻해 보이는 뿌리채소 구이에도 갖은 허브와 향신료가 아낌없이 올라 있었다. 막 가게에서 구워 온 빵은 건포도와 무화과가 들어 있었고 커다란 그릇에 가득 담긴 샐러드는 갓 뒷마당에서 따 온 듯 싱싱했다.

상차림을 보고 약간 기가 죽은 악마가 물었다.

"탐정이 여기로 오라고 했었다고?"

"아까 낮에요."

얼른 뒤따라서 부엌으로 들어온 시계가게 주인이 답했다. 그러자 악마가 준비해 놓은 와인병을 따려던 소피아가 거들었다.

"아직 안 왔어요? 등대에 불이 꺼져 있어서 난 진작에 여기로 온 줄 알았죠."

이마가 지끈거렸다. 악마는 소피아의 손에서 와인을 낚아채 몸을 홱 돌려서는 쭈뼛쭈뼛 부엌으로 들어오는 시계가게 주인을 지나쳐 문으로 향했다.

"기다리고 있어. 데리고 올 테니까."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는 외투를 걸쳐 입고 문을 열었다. 소피아가 뭐라고 말할 틈도 없이 문이 쾅 닫히고, 악마는 바람이 몰아치는 동지 첫 밤의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등대에 도착한 악마는 다짜고짜 문부터 두드렸다.

"문 열어!"

쿵쿵쿵, 주먹을 말아 쥐고 몇 번이나 두드렸지만, 안에서는 대답이 없었다. 악마는 휘몰아치는 바람에 정신없이 나부끼는 머리칼을 쓸어 넘기며 짜증 가득한 얼굴로 뒷걸음질 쳐 등대 꼭대기를 올려다보았다. 불빛이 없었다. 그는 혀를 차고 문을 몇 번 더 두드리다가 결국 참지 못하고 문고리를 잡았다. 생각과는 달리 잠겨 있지 않던 문은 쉽게 열렸고, 등대로 들어와 뒤로 문을 닫은 악마는 엉망이 된 머리를 정리하며 위를 향해 외쳤다.

"탐정!"

악마의 목소리만 웅웅 울릴 뿐 조용했다. 악마는 혀를 차고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꼭대기에는 아무도 없었다. 방은 여전히 온갖 편지와 종이 쪼가리로 지저분했고 빛 한 점 없이 어두웠다. 문가를 더듬어 가스등을 찾은 악마는 포도주를 옆구리에 끼고 불을 붙였다. 사물의 윤곽을 겨우 알아볼 정도의 빛이 생겨나자 너저분한 책상 위에 묵직하게 올라앉은 무언가가 보였다. 겨우살이, 호랑가시나무 열매와 잎, 솔방울과 계피 다발을 금실로 묶어 장식한 동지 장작이었다.

램프를 책상에 올려놓은 악마가 동지 장작을 들어 올려 향을 맡았다. 주목, 그것도 아주 좋은 상등품이었다. 그리고 장작을 뒤집자 그 밑에 깔려 있던 작은 쪽지가 드러났다.

‘숲 경계에서 기다리고 있을게요.’

답답한 신음을 짧게 뱉어낸 악마는 쪽지를 구겨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이 밤에, 그것도 동지 십이야 첫 밤에 숲 경계에서 보자니. 분명 또 뭔가 꾸미고 있는 게 분명했다. 지난 일 년간의 경험으로 미루어 보건대 이 인간와 얽히면 항상 자기만 고생하고 끝날 게 뻔했지만, 이번에야말로 도저히 안 갈 수가 없었다. 십이야 밤에 인간 혼자서 숲을 돌아다녔다가는 죽는 거로 끝나지 않을 것이 분명했으니까.

손가락을 한번 휘두르는 것으로 램프의 불이 훅 꺼졌고, 악마는 들고 온 포도주와 탐정이 남긴 동지 장작을 챙겨 등대를 나섰다.

 

작은 반도에 얹힌 클리프행은 숲을 등지고 바다를 향해 돌아앉은 모양새였다. 동남쪽과 북서쪽을 길게 가로지르는 오래된 숲으로 들어오는 길은 초행자라면 절대 찾지 못할 오솔길 하나만이 유일한 길이었고 그마저도 악마의 마법으로 전성야를 제외한 대부분의 날에는 철저하게 숨겨져 있었다. 운이 좋아 숲을 통과했다 해도 마을은 밤의 주민이 아닌 보통 인간이 보기에는 그저 을씨년스러운 폐허에 불과했고, 허락 없이 들어온 이들은 음험한 분위기에 압도되어 대개 도망을 쳤다. 다시 말하자면 그곳을 드나들기 위해서는 마을의 주인인 악마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는 의미였다.

"이번엔 또 뭐에 홀리려고 여기서 이래."

숲과 마을을 나누는 낮고 오래된 돌담에 기대 서 있던 탐정은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에 몸을 돌렸다. 귀를 찢을 듯한 바람 소리에 묻혀 자칫하면 놓칠 뻔했다. 가스등을 들어 목소리가 들려온 곳을 비추니 옆구리에 장작을 끼운 악마가 매우 불만스러운 얼굴로 다가오고 있었다.

"왜 이렇게 늦게 왔어요?"

탐정의 뻔뻔한 태도에 악마는 인상을 쓰고 구시렁거렸다.

"내가 올 줄은 알고 있었고?"

"쪽지 남겼잖아요."

"그걸 네 책상 위에 남기면 내가 그걸 무슨 재주로 알아? 그리고 동지 장작은 무슨 배짱으로 집에 놓고 혼자 여기까지 덜렁 기어온 거고? 정신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또 잔소리.”

“그건 그렇고 그 여자를 왜 내 집으로-”

“왜요, 성탄절이잖아요. 동지가 열두 밤이나 되는데 가족도 없는 사람들끼리 명절 좀 같이 쇠는 게 어때서요?”

“내가 분명히 올 거면 너 혼자-“

“아, 이런. 그런 의미였어요? 제가 괜한 짓을 했네요. 악마 씨, 따로 계획이 있었던 거로군요? 어휴, 엉큼하긴.”

능청스럽게 웃어대는 모양새에 악마는 입을 벌린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 모습을 가만 지켜보던 탐정은 짧게 웃음을 터뜨리곤 대답 대신 실쭉 눈웃음을 치며 낮은 돌담을 훌쩍 뛰어넘었다.

더 뭐라고 따지고 들 힘도 없었다. 악마는 답답한 한숨을 코로 푹 내뿜고 느릿느릿 탐정의 뒤를 쫓아갔다.

"그래서,"

툴툴거리며 입을 뗀 악마의 발이 마른 낙엽을 밟으며 버스럭거리는 소리를 냈다.

"어떤 제정신 아닌 인간이 동지 십이야 첫 밤에 유령이 득시글거리는 숲으로 기어들어?

"제가요."

"그러니까 뭐 하러."

"사냥 행렬이 여기로 지나가잖아요."

탐정을 따라가던 악마의 걸음이 멎었다. 앞서가던 탐정은 갑자기 뒤따라오던 발소리가 들리지 않자 저도 멈추어 서고 뒤를 돌아보았다.

"뭐 해요, 안 오고?"

"정신이 나갔지?"

놀란 악마가 무심코 밤의 언어로 말했다. 바람이 휘몰아치는 숲에 그의 목소리가 저렁저렁 울렸다. 탐정의 머리 위로 나뭇가지에서 눈이 풀썩 쓰러져 내렸다.

그리고 그제야 돌풍 같은 바람 소리가 제대로 들려오기 시작했다. 바람 소리가 아니었다. 허공을 박차는 말발굽 소리. 갑옷 안에서 뼈가 부딪히며 덜그럭대는 소리. 녹슨 쇠붙이가 챙챙거리고, 흥분한 사냥꾼들의 고함이 개 짖는 소리와 뒤엉켜 내달리고 있었다.

탐정이 약간 겁을 먹을 얼굴로 검지를 입술에 대 보였다.

"사람 말로 해요, 사람 말로. 그리고 조용히 좀."

"사냥 행렬을 쫓아가겠다고? 너 그게 먼지는 알아?"

"왜 이래요? 나도 십이야 첫 밤에 뭐가 돌아다니는지는 알아요."

"아는 인간이 여길 기어 나왔다고?"

말해 놓고 보니 그는 전성야 당일 밤에 분장도 하지 않고 덜렁 코트만 걸치고 기어 나왔다가 유령에게 홀려 절벽에서 떨어질 뻔한 사람이었다. 악마는 그저 이마를 짚을 뿐이었다.

"그래서 같이 나와 달라고 한 거잖아요."

"뭘 같이 나와? 내가 쪽지를 못 봤으면 어쩌려고 그랬는데?"

탐정이 어깨를 으쓱했다. 악마는 낮게 투덜거리면서 찡그린 미간을 꼬집고 입을 다물었다. 지난 일 년간 깨달은 게 있다면 이 인간은 하는 일마다 대책도 없는데다 고집도 황소고집이라는 것이었다.

"죽은 개를 찾아달라는 의뢰가 들어와서요."

"뭐?"

대답 대신에 탐정은 주머니에서 낡은 개목걸이 하나를 꺼내 악마에게 건넸다.

악마는 그가 내민 것을 멍하니 보다가, 이 인간이 드디어 실성했구나 싶은 얼굴로 탐정을 응시했다.

"…농담이지?"

"농담 아니에요."

"대체 누구한테 무슨 빚을 졌길래 동지 첫 밤에 개를 찾아오라고 해?"

"살아 있는 개였으면 제가 동지 밤에 여기까지 나왔겠어요?"

램프를 들고 옆에서 걷던 탐정은 개목걸이를 거둬 주머니에 집어넣고 다시금 어깨만 으쓱해 보일 뿐이었다.

오래된 나무들이 빽빽한 숲에는 달빛 한 점 들지 않았다. 한겨울의 숲은 불길하리만큼 고요했고 앙상하게 마른 나뭇가지가 마녀의 손가락처럼 뒤틀린 채 늘어진 곳이었다. 간만의 만월인데도 달빛을 쬘 수 없는 악마는 심기가 불편했다.

"완전히 정신이 나갔군."

악마가 재차 구시렁댔다.

탐정은 그의 심기가 얼마나 불편한지는 조금도 신경 쓰이지 않는다는 양 태연하게 나무 사이를 헤집고 나아가며 말했다.

“전설에 따르면 죽은 개들은 대개 주인이 죽을 때까지 주인 주변을 맴돈다고 하죠. 주인이 마지막 숨을 거두면 그를 바다 건너까지 바래다주기 위해서. 하지만 주인이 생겼다가 그를 잃어버린 개들은 죽으면 기다릴 사람이 없죠. 그래서 사냥 행렬의 주인이 거두어 간다고 해요.”

악마는 콧등을 찡그리고 하얀 숨을 내쉬며 숲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키 큰 전나무의 빽빽한 가지들 사이로 희미한 달빛이 비치고 있었다.

“어렸을 때 키우던 개였대요. 태풍에 어미와 형제들을 모두 잃은 강아지를 거둬서 키웠는데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고 합니다. 의뢰인의 부모는 아직 어렸던 그에게 개가 집을 나간 거라고 했지만 사실은 그분들이 내다 버렸던 거죠. 그 후로 백방으로 수소문했지만 결국 찾지 못했다고 하더라고요.”

“내가 맞춰볼까. 그 의뢰인 지금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지?”

빈정대는 목소리에 탐정은 어깨너머로 그를 잠시 돌아보고는 다시 앞을 향했다.

“아무도 없으신 분이에요. 혼자서 맞을 죽음이 두렵기도 하겠죠.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닐 겁니다.”

악마는 미간을 조금 찌푸렸다. 멍청한 짐승들 같으니라고. 버림받고도 남 좋은 일만 실컷 하는 불쌍하고 바보 같은 것들.

"어쨌든, 나와 줘서 고마워요. 사실 미리 말을 할까 했는데, 그랬으면 안 된다고 펄펄 뛸 거 같아서 일부러 말도 안 했어요. 기껏 초대해줬는데 바람맞혀서 미안합니다."

악마는 코웃음을 쳤다.

"너 사실은 하나도 안 미안하지?"

"진심이에요."

"네가 이러는 게 하루 이틀이어야지. 매번 시키지도 않은 일을 해서 제 목에 밧줄이나 걸고 말이야."

"이미 나와 버렸는데 어떡해요. 뭐 정 여기 있기 싫으면 먼저 집으로 돌아가셔도 괜찮지만요."

식 웃은 탐정이 망토 아래서 뜨끈한 병 하나를 꺼내 보였다. 설탕과 과일, 계피와 정향 그리고 육두구를 잔뜩 넣어 끓인 포도주일 테다. 악마가 며칠 전 집으로 돌아왔을 때 멋대로 들어온 탐정이 부엌에서 끓이고 있었던 그것.

"술도 가져왔으니까 기분 풀어요."

"난 술 안 마셔."

“누가 준대요? 내가 마시고 서비스 해주려고 했더니만. 지난번 일 때문에 그러는 거라면 안심해요. 이번엔 아무것도 안 넣었으니까."

악마의 눈알이 위로 굴렀다.

바스락 바스락, 그들은 얼은 낙엽을 짓밟고 숲 가운데로 더 깊숙이 들어갔다. 들짐승들도 오늘 밤엔 모두 제 둥지로 돌아가 몸을 웅크리고 숨죽여 보낸다. 그 흔한 부엉이 우는 소리도, 사람의 비명 소리 같은 여우 울음도 들리지 않는 고요한 밤이었다. 불길한 바람 소리만 거칠게 윙윙댄다.

“계획은 있어?”

악마가 물었다. 앞서가던 탐정은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어깨를 으쓱했다.

“대충.”

“대충?”

점입가경이었다. 그제야 악마는 그가 걱정된다고 무턱대고 따라 나온 걸 후회했다. 따뜻한 난롯가와 폭신한 의자와 따뜻한 사과 파이를 내다 버리고 이 추운 밤에 사냥 행렬을 쫓으러 나오게 만들었으면서 제대로 된 계획 하나 없다니.

“사냥 행렬이 적당한 거리 안으로 다가오면 이 목걸이를 써서 강령술을 쓸 거예요.”

“강령술? 네가 강령술을 쓴다고?”

“왜 이래요, 나도 책 정도는 읽고 살아요.”

턱을 치켜들고 제법 당당하게 말하는 모양새에 악마는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하! 초심자가 케케묵은 이론서로 배워서 성공할 만큼 강령술이 퍽이나 만만한 주문이다. 그래, 우리 탐정님께서 누구 책을 읽으셨을까? 켈마니? 슐로만?”

“걱정 마세요, 적어도 표지는 성한 걸로 읽었으니까. 거기다가 그건 모르죠. 초심자의 행운이란 것도 있잖아요. 그리고 악마 씨가 있는데 무슨 걱정이에요.”

탐정이 태연하게 웃는 낯으로 대답했다. 악마는 입을 이죽거리면서도 이제 완전히 포기한 눈치였다.

바람에 섞여 멀리서 들려오는 개가 사납게 짖는 소리. 뿔 나팔의 긴 울음. 바람을 탄 말발굽 소리가 들린다. 쇠붙이가 절그렁대고, 불길하고 왁자지껄한 함성이 들려왔다.

"잠깐."

팔뚝을 잡힌 탐정이 자리에 멈춰 섰고 그와 동시에 악마가 옆구리에 끼고 있던 커다란 장작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탐정도 같이 멈추어 서서 장작 주변의 낙엽을 치웠다.

탐정이 한 걸음 물러나자 장작 위로 손바닥을 쫙 편 악마가 뭔가를 잡고 끌어당기는 듯 팔을 위로 들어 올렸고, 그러자 장작에서 발간 불이 용의 혓바닥처럼 훅 솟아났다가 가라앉았다. 장작이 붉게 타오르며 발간 불씨가 탁탁거렸고 곧 매캐한 연기가 자욱하게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악마가 말없이 탐정을 불 가까이 밀어 세웠다. 바람을 맞은 연기를 정면으로 맞은 탐정이 콜록거리며 고개를 돌리고 몸을 물리려 했지만, 악마가 그의 팔뚝을 강하게 잡아 세웠다.

“피하지 마. 연기가 몸에 배어야 해.”

“인간은 연약하다고요. 연기를 많이 마시면 사람 죽는 거 몰라요?”

“이 정도로 사람 안 죽어. 연기를 쐬어야 저것들을 마주쳤을 때 목숨 부지할 기회라도 생기겠지. 왜 첫 동지 장작을 땔 때 굴뚝을 막아 놓겠어?”

“미신인 줄 알았죠.”

“동지 첫 밤에 죽은 개를 찾으려고 강령술까지 배워서 사냥 행렬을 쫓아 나온 사람이 동지에 굴뚝 막는 걸 미신이라고 부른다니, 나 참.”

소매로 코와 입을 막은 탐정은 눈을 잔뜩 찡그리고 연기를 맞았다. 악마도 그의 옆에 바짝 붙어 서서 연기를 쐬다가 바람이 자꾸만 연기를 흐트러트리자 아예 겉옷을 벗어 자신과 탐정을 감싼 채 바람을 등지고 섰다.

정말 추웠다. 동지라 이미 해가 떨어진 지 오래였고 땅을 녹였던 햇빛은 숲엔 들지 않았다. 다 타들어가 이제 연기가 멎은 장작 앞에서 몸을 웅크리고 덜덜 떨던 탐정이 겨드랑이 아래 끼었던 병을 꺼내 들었다.

“마실래요?”

“건드리지 말고 남겨 놔.”

“왜요.”

“아마 뇌물로 써먹어야 할 테니까.”

“그게 무슨……”

“쉿.”

바람 소리가 잦아들었다. 사냥 행렬의 함성도 조금씩 가라앉고 있었다. 악마는 다시 외투를 걸쳐 입고는 긴장한 얼굴로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귀를 기울였다.

“왜 그래요?”

악마가 검지를 입술에 갖다 대었다. 탐정의 팔을 틀어쥔 손에 지긋이 힘이 들어가는 게 느껴졌다.

“너무 가까워졌어.”

“예? 소리가 작아졌잖아요.”

“사냥 행렬은 소리가 작을수록 가까이 있는 거야.”

잇새로 속삭인 악마가 탐정의 팔을 놓고 잿더미로 변한 장작을 낙엽으로 숨겼다. 그리고 바람이 부는 방향을 확인한 뒤 바람을 등지고 걷기 시작했다.

“좀 더 떨어져야 해.”

탐정은 이제 먼저 걸어 나가는 악마의 뒤를 쫓기 시작했다. 좀 전과는 달리 걸음이 빨랐다. 매캐한 연기를 잔뜩 뒤집어쓴 탓에 눈이 따갑고 기침이 멎질 않았지만, 악마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했다.

얼마나 걸었을까, 사냥 행렬의 왁자지껄한 소란이 다시금 일어났다. 돌담에서 들었던 만큼 귀를 먹게 할 만큼은 아니었지만 좀 전보다는 확실히 커진 소리였다. 악마는 소리가 다시 커진 것을 확인하고는 근처에서 가장 큰 떡갈나무 아래로 탐정을 이끌었다.

“이 정도면 됐겠지.”

“나무는 왜요?”

나무의 몸통과 높이를 둘러본 악마가 대답했다.

“보험.”

날카로운 손톱으로 손바닥을 죽 그은 그가 피를 나무의 뿌리에 뿌리며 밤의 언어로 주문을 걸었다. 탐정은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로 오래된 말들이었다. 탐정은 그를 말리지도 못하고 있다가 문득 나무를 올려다보았다. 별안간 가지들이 조금 더 낮게 내려온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내 편을 하나라도 더 만들어 놔야 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까.”

악마는 탐정이 건넨 손수건을 고맙다는 말도 없이 받아 손에 감쌌다. 그가 하는 모양새를 가만 보면 탐정은 언짢아진 얼굴로 그의 손을 잡아 손수건을 제대로 묶어 주었다. 그에게 가만히 손을 맡기고 있던 악마는 작게 콧숨을 내쉬고, 장갑을 낀 손이 제 손등을 가볍게 톡톡 두드리는 걸 보고서야 그와 눈을 마주쳤다.

어둠에 가려서 얼굴의 윤곽만 겨우 드러났다.

피는 벌써 멎었다.

손을 거둬들인 악마가 얼기설기 얽힌 나무뿌리 사이의 평평한 바닥을 손으로 가리켰다.

“여기서."

탐정은 주머니에서 목걸이를 꺼내 낙엽을 치운 흙바닥에 조심히 내려놓고 그 주변으로 가져온 흙과 잿가루, 그리고 말린 만드레이크 가루를 크게 원을 그리며 뿌렸다. 그리고 그 원의 가장자리를 따라 책에 적힌 대로 주문을 새겨넣었고, 개와 그 주인의 이름도 함께 얽어 넣었다. 그가 주문을 외는 내내 악마는 나무에 몸을 기대고 서서 잔뜩 날이 선 채로 주변을 경계했다. 왁자지껄한 바람 소리에 웃음소리가 점점 섞여들었고, 귀를 기울이던 그의 얼굴이 점점 창백해져 갔다. 퍼뜩 정신을 되찾은 사람처럼 악마가 고개를 돌리자, 마법진에 무릎을 꿇고 몸을 굽히고 있던 탐정의 어깨에 뼈만 앙상하게 남은 왼손이 걸쳐져 있었다. 약지가 없는 왼손. 바다 비린내가 훅 터져 나오고, 바람 소리가 잦아든다.

"탐-!"

악마가 탐정의 어깨를 잡아 돌려세우는 바람에 그는 무게중심을 잃고 뒤로 엉덩방아를 찧었다. 그 사이에 해골의 손은 이미 간데없이 사라져 있었다.

바람이 불어 진의 일부가 휩쓸려 나갔다. 망자의 마지막 숨처럼 음산한 바람에 희미한 바다의 악취가 섞여 있었다. 악마는 탐정의 어깨를 붙든 채 바람이 불어온 방향으로 고개를 홱 돌렸다.

"무슨 짓이에요? 주문이 아직 완성되지도 않았는데 이러면-!"

짜증이 벌컥 솟은 탐정이 고함을 쳤다. 하지만 고개를 돌리고 숲 저쪽을 바라보는 악마의 창백하게 질린 얼굴을 보고는 입을 다물고 말았다.

짐승처럼 울부짖던 바람은 어느샌가 거짓말처럼 멎어 있었다. 무거운 적막이 강바닥 흙처럼 가라앉은 어둠 속에서 탐정은 몇 야드조차 되지 않는 거리의 나무들 사이로 보이는 희끗희끗한 형체들에 저도 모르게 숨을 삼켰다. 창과 화살로 무장하고, 바짝 마른 살갗이 앙상한 뼈에 달라붙은 말에 올라탄 유령들이 그들을 에워싸고 있었다.

끔찍한 고요였다. 숨소리도 들을 수 있을 만큼 가까운 거리였지만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뼈가 앙상한 개들이 허공을 향해 짖고, 살점조차 남지 않은 말들이 기수를 태운 채 고개를 흔들고 발을 굴렀지만, 마치 귀에 진흙이 가득 들어찬 듯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 순간 갑자기 바로 옆에서 개가 짖었다.

악마와 탐정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옆을 내려다보았다. 뼈만 남은 해골 개가 입을 벌리고 꼬리를 흔들며 탐정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성공…했네요?"

탐정이 얼빠진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개는 마치 반가운 사람을 만난 양 꼬리를 흔들며 앞발을 들어 시문에게 엉겨붙었고, 그가 마법진에서 주워든 목걸이에 주둥이를 박고 킁킁댔다.

악마는 골이 아파서 뭐라 말을 얹지도 못했다. 개 한 마리 부르자고 동지의 사냥 행렬을 죄다 끌어들였는데, 이걸 속 편하게 성공이라 부르는 탐정을 나무라야 할지 아니면 지금이라도 잽싸게 이 남자를 들쳐메고 숲에서 도망 나가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이제 어쩔 거야?"

" 어쩌긴요, 데리고 가야죠." 무릎을 꿇어 제게 살갑게 덤벼드는 해골 개의 머리를 쓰다듬던 시문이 조금 상기된 음성으로 답했다.

"대체 무슨 수로-"

"너로구나. 우리를 쫓아 온 것이."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적막을 깨었다. 악마와 탐정은 동시에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소리도 없이 다가온 기수가 전차에 오른 채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그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어쭙잖은 마술사에 불의 입이 토해낸 짐승이라.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은 아닌데."

모피와 가죽으로 만든 오래된 사냥 예복을 입고 활과 검으로 무장한 귀부인이 서늘하게 말했다. 그는 한밤의 달처럼 푸르스름하고 반투명한 빛으로 둘러싸여 있었고 주름지고 단단한 눈매를 가지고 있었다.

"당돌하다고 해야 할지, 간이 배 밖으로 나왔다고 해야 할지. 동지 십이야 첫날 밤에 내가 사냥을 한다는 것을 모르느냐?"

고덴의 눈이 파르스름한 망자의 안광을 뿜으며 탐정을 꿰뚫어 보았다. 뼈마디가 앙상한 말의 발치에 덩치가 큰 개들이 쉴 새 없이 입을 벌려 소리 없이 짖어대며 꼬리를 흔들어댔다.

죽은 자들의 여왕. 악령을 사냥하는 자. 긴 겨울밤 끝자락에서 태어나 수많은 딸과 사냥개를 거느린 사냥꾼. 옛날이야기에서나 나오는 요정의 앞에 서게 된 시문의 목덜미의 털이 바짝 섰다. 인간 아닌 것들이 사는 클리프행에 살았지만, 그들 중 그 누구도 이런 싸늘한 한기가 도는 자는 없었다. 지금 그의 앞에 선 자는 욕망을 가진, 살아 있는 자가 아닌, 가차 없이 피어나고 메마르는 계절의 힘 같은 존재였다. 이런 존재와 협상을 할 수 있을까? 시문은 바싹 말라드는 입술을 혀로 축이며 이젠 나도 모르겠다는 심정이 되었다.

시문은 고매한 귀부인 - 틀린 말은 아니다 - 에게 하듯 예를 차려 고덴에게 허리 숙여 인사했다.

"실례를 용서하십시오, 고덴 부인. 사냥을 방해할 의도는 없었습니다."

"의도가 중하느냐?"

고덴이 탐정과 그가 그린 소환진을 번갈아 보며 말했다. 그의 음성은 너무나 차갑고 이질적으로 들려 사람의 음성처럼 기분을 읽어낼 수가 없었다.

"사과의 뜻으로 이것을 받아 주셨으면 합니다."

탐정이 허리를 깊게 숙이며 품에서 포도주를 꺼내 내밀었다.

저 멍청이가, 그렇게 쓰라는 뜻이 아니었는데! 하지만 얼굴이 백지장처럼 하얘진 악마가 말릴 새도 없었다. 말에 탄 채 탐정을 못마땅한 눈으로 내려다보던 귀부인의 눈매가 조금 풀어지는가 싶더니 그가 팔을 뻗어 포도주를 받아갔다. 손끝이 잠깐 스쳤을 뿐인데도 탐정은 한기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예의는 차릴 줄 아는 아이로구나. 좋다. 왜 이런 장난질로 내 사냥을 방해한 건지 들어나 보자."

귀부인의 창백한 말이 발굽을 굴러 흙바닥에 그려진 마법진을 지워냈다.

"이건 좋은 생각이-"

악마가 잇새로 속삭였지만 고덴이 손을 들어 보이자 그도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제아무리 악마라도 그는 황야의 산에서 온 악마일 뿐이었고, 바다와 인연이 멀다고는 하나 고덴은 망자를 이끄는 권능을 가진 오래된 자였다.

"말 해 보려무나. 동지 첫 밤에 내 개를 부른 이유가 무엇이냐?"

탐정은 말하기에 앞서 다시 한번 허리를 깊이 숙여 공손하게 인사했다.

"제가 신세를 진 분께서 곧 바다의 부름을 받으실 예정입니다. 그분께서는 어릴 적, 어미를 잃은 견공을 하나 거두시는 공덕을 쌓으셨는데, 그만 사고로 그 견공을 잃어버리셨다지 뭡니까. 그 선생님께서도 백방으로 수소문을 하고 발품을 팔았지만 여태 찾지 못하셨고, 결국 나이가 들어 병석에 누우셨습니다. 바다의 부름이 코앞인지라…."

"내다 버린 개를 좀 찾아오라 네게 일렀다 그 말이냐?"

탐정이 말을 끝맺기도 전에 고덴이 무섭게 소리쳤다.

시문은 등골이 서늘해졌다.

“그게 아니라-"

고덴이 쯧 하고 혀를 차며 눈을 가늘게 좁혔다.

"인간들이란 모두 그렇다. 저 아쉬울 때가 되면 귀찮아 내다 버린 개 한 마리도 아쉬워 죽은 혼령이라도 아쉬워 갖은 수를 쓰는 것들이지."

어둠 속에서 먼 별처럼 빛나던 그의 얼굴에 음영이 짙게 드리워지며 눈만이 새파랗게 불타올랐고, 이내 주인의 불편한 심기를 알아챈 개들이 이를 드러내고 몸을 낮췄다. 소리 없이 컹컹대던 게 언제였냐는 듯 그들이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천둥처럼 낮고 무겁게 숲을 울렸다.

안색이 더 나빠진 악마가 낮게 탐정의 이름을 불렀고, 시문은 그의 입이 떨어지기도 전에 뒷걸음질 쳐 나뭇가지가 드리워진 아래로 몸을 물렸다. 금방이라도 덤벼들 것만 같던 개들은 그 아래로 들어오지 못한 채 이빨을 딱딱 맞부딪치며 위협할 뿐이었다. 고덴은 개들이 나무 그늘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그 주위만 맴도는 모습을 의아하게 응시하다가 곧 표정을 바꾸어 나무 몸통에 바짝 다가선 악마를 보고 호쾌하게 웃었다.

"넌 누구냐?"

"악마의 이름은 동지의 주인이라도 함부로 알려드릴 수 없소."

"내 숲에서 보호자를 만들다니, 악마가 재주도 좋구나!"

"원래는 내 숲이요."

"그렇겠지, 나쁜 꿈의 짐승아. 하지만 지금은 동지 십이야 첫 밤이고 마땅히 나의 시간이다. 고로 인간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나의 땅이지."

제법 흥미로운 것을 보는 표정이 된 고덴은 악마와 탐정을 번갈아 보다가, 그에게서 건네받은 포도주를 들여다보고 빙그레 웃었다.

"뭐, 좋다. 네 귀여운 성의를 보아 내 제안을 하나 하마."

창백하게 질려가던 탐정의 얼굴에 엷게나마 안도의 빛이 돌아왔다.

"무엇이든지요, 부인."

탐정이 그리 내뱉은 순간 악마의 얼굴에 낭패의 빛이 스쳤다. 고덴은 그러거나 말거나 여전히 재미있어 죽겟다는 얼굴로 말을 이었다.

"오랜만의 사냥인데도 여태 사냥감이 보이지 않아 무료하던 참이니라. 마침 새 개들도 얻었겠다, 내 딸들도 본격적인 사냥이 시작되기 전에 몸을 풀어 두는 게 좋을 테니, 너희가 그 사냥감 역을 맡거라."

"사냥감…말씀입니까?"

탐정은 얼이 빠져 한참을 말을 잇지 못했다. 하마터면 혀가 굳어 되묻지도 못 할 뻔했다. 고덴 부인의 사냥감이라니.

고덴이 소리높여 웃었다.

"그래. 걱정하지 말아라, 데려가지는 않을 테니. 그저 여흥이니라. 만일 우리가 새벽녘 동틀 때까지 너희를 붙잡지 못한다면 내 기꺼이 네가 찾는 개를 내어 주겠다."

"우리가 그 전에 붙잡히면?"

나무 옆에 서 있던 악마가 물었다. 그의 목소리는 불신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럼 개를 못 데려가는 것이지."

"우리의 안전을 보장하지 못하면 이 제안은 받아들일 수 없다."

잠자코 듣고만 있던 악마가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고덴이 상아 조각 같은 얼굴로 웃었다.

"왜, 겁이 나느냐, 밤의 짐승아?"

"그대는 망자를 사냥해 바다 깊은 곳으로 던져 넣는 자요. 그런 이와 사냥놀이를, 그것도 사냥감 역할을 하는 정신나간 자가 있을 것 같소?"

"전성야가 지났음에도 분수도 모르고 바다 이쪽에 남아 있는 망자들을 쫓아낼 뿐이지."

고덴의 눈매가 매서워졌다.

악마는 바싹바싹 마르는 입술을 혀로 핥으며 일부러 허리를 더 꼿꼿이 세웠다. 나무를 짚은 손에 더 힘이 들어갔다. 그들을 에워싼 사냥 행렬을 더이상 다가오지 못하게 해야 했다.

"부인께서는 우리에게 해를 입히지 않으실지도 모르지. 하지만 부인의 사냥개들이 사냥놀이와 진짜 사냥을 구분할 수 있겠소? 죽었다고 하나 짐승은 그런 경계를 이해하지 못하오. 나야 밤의 피가 흐르니 그렇다 쳐도 이 자는 인간인데, 고덴의 사냥개에게 물린 인간이 대체 무슨 수로 살아남는다는 것이오?"

그의 말에 고덴은 마치 신기한 짐승을 보는 듯 눈을 가늘게 좁히고 그를 응시했다. 기수의 입이 빙그레 웃었다.

"악마야, 지금 네가 저 자를 걱정하는 게냐?"

"내 마을에 사는 사람이니 저 자의 안녕은 마땅히 내 소관입니다."

그는 악마를 희한하게 응시하다가, 마침내 종처럼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

"싫으면 말거라. 우리는 손해 볼 것이 없으니. 볼일이 끝났으면 빨리 난롯가로 돌아가는 편이 좋을 게다. 가자."

고덴이 턱짓으로 개를 불렀고, 탐정 곁에 붙어 서서 꼬리를 치던 개는 낑낑거리며 꼬리를 축 늘어뜨리고 하는 수 없다는 듯 고덴의 전차를 따라 몸을 돌렸다.

"잠깐!"

다시 정신을 차린 탐정이 전차를 돌려 사라지려는 고덴을 붙잡았다. 아직 옷에 동지 장작을 태운 연기 냄새가 짙게 배어 있었다. 주목 열매와 호랑가시나무 잎, 계피의 향을 맡으며 탐정이 힘주어 말했다.

"제안 감사히 받아들이겠습니다, 부인."

악마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

전차를 돌리던 고덴이 탐정을 돌아보며 크게 웃었다. 탑 높이 걸린 무쇠 종이 울리는 듯한 소리였다. 그는 허리춤에서 뿔 나팔을 꺼내 하늘을 향해 불었고, 그 소리가 온 숲을 쩌렁쩌렁 울리며 상록수 잎사귀를 흔들자 그 위에 쌓인 눈이 후드득 떨어졌다. 그와 동시에 멀찍이 둘러선 사냥 행렬의 기수들이 말을 몰고 하늘로 박차고 올랐다. 나무 사이를 스쳐지나 허공으로 떠오른 사냥꾼들이 회오리바람처럼 탐정과 악마가 선 나무를 에워싸고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고, 고덴은 전차를 끄는 말고삐를 고쳐 잡으며 즐거운 목소리로 외쳤다.

"사냥의 시작이다! 달이 완전히 떨어질 때까지 말미를 주마. 그때까지 멀리멀리 달아나야 할 것이다!"

그의 외침이 끝나기도 전에 나무를 짚고 서 있던 악마가 자리를 박차고 뛰어나와 탐정의 팔뚝을 움켜쥐었다. 그는 그대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탐정을 끌고 그 자리를 뛰쳐나갔다. 나무와 고덴과 사냥 행렬을 뒤로하고 그들은 정신없이 숲을 내달렸다. 나팔 소리와 기수들이 말을 재촉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달아나거라, 달아나! 이제 밤의 시작이다!"

언제 고요함이 있었냐는 듯 바람이 세차게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돌풍에 숲 바닥에 깔린 나뭇잎과 마른 눈이 금싸라기처럼 휘날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