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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nguage:
한국어
Stats:
Published:
2022-11-08
Words:
992
Chapters:
1/1
Kudos:
3
Hits:
70

Nightcap

Summary:

미스 피셔의 살인 미스터리 : 프라이니 피셔/잭 로빈슨 단문. 1시즌 초반 배경. 스포 없음.

Notes:

(See the end of the work for notes.)

Work Text:

*나이트캡 : 잠자리에 들기 전 가볍게 즐기는 술.

 

 "한 잔 하고 가시겠어요?"

 가볍게 던진 질문에 잭의 표정이 흔들렸다. 당연히 거절하리라 생각한 프라이니의 눈빛이 이채를 띄었다. 머뭇거리다 시계를 체크한 잭 로빈슨이 예의 바른 미소와 함께 대답했다.

 "글쎄요...한 잔 정도라면."

 그렇게 시작되었다. 때로는 그의 사무실에서 - 경찰서 관내에 술병을 두는 그의 버릇이 결코 바람직하다 할 수는 없겠지만, 멜버른에서는 일종의 신사의 미덕으로 받아들여졌다 - 보통은 늦은 밤, 그녀의 응접실에서. 핑계는 다양했다. 도둑 맞았던 그림을 돌려주기 위해서. 범인의 처분에 대해 알려주기 위해서. 중요한 서류를 놓고 가는 바람에. 혹은 '어쩌다보니' 프라이니의 스카프가 잭의 책상 위에 남아 있는 바람에. 잭 로빈슨이 사무적인 태도로 문을 열고 들어서 이유를 밝히면, 프라이니의 유능한 집사는 눈썹 하나 까딱 하는 일 없이 능숙하게 그의 코트와 모자를 받아들고 그를 응접실로 안내했다. 보통은 위스키, 때로는 질 좋은 와인일 때도 있었고, 지나치게 피곤한 날에는 얼음을 담아 보드카를 곁들이기도 했다.

 잭 로빈슨으로 말할 것 같으면, 좋은 술을 즐기는 타입이긴 했지만 막상 집에서 혼자 술을 마시는 일은 드문 사람이었다.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면 그날의 피로에 취해 잠드는 것만으로도 충분했고, 잠이 오지 않을 때는 맑은 정신으로 한두 시간 책을 읽다 자는 쪽을 선호하는 편이었다.

 물론 프라이니 피셔는 그에 비해 경우가 달랐다. 그녀 자체도 애주가일뿐더러 취향과 훌륭한 안목을 둔 집사 덕에 언제나 엄선된 양질의 술이 창고에 갖춰진 생활을 영유하고 있었고, 잠자리에 들기 전 미스터 비가 그날그날 분위기에 맞춰 준비해둔 나이트캡을 즐기는 것은 프라이니에겐 자연스런 일상이었다. 보통 그녀의 다양한 남성편력 덕에 그 시간을 혼자 보내는 일은 드문 편이었다지만, 최근 들어 유달리 고정된 한 손님이 테이블 맞은 편을 차지하고 있다는 건 그녀를 비롯한 식솔들 모두 주지하고 있었다.

 

 그 날 그들은 남부경찰서의 오랜 골칫거리였던 2인조 야바위 사기꾼 무리를 함께 잡아냈다. 프라이니가 굳이 신경쓸만큼 대단한 사건은 아니었지만 세스와 버트가 곧잘 어울리는 '동지'들 사이에 피해자가 속출하는 바람에 그녀는 손수 친구들의 애로사항을 해결해주러 나서기로 한 바였다. 그리고 잭 로빈슨은 고작 야바위꾼 소탕에 동원될만한 지위의 사람은 아니었지만 프라이니 피셔가 엮인 일에서 그가 벗어나기란 불가능하다는 것 쯤은 그도 알고 있었고, 마침 치안을 위해 관광객들 대상으로 한 범죄를 각별히 신경쓰라는 지령도 내려온 참에 핑계 삼아 함께 얽히고 말았다.

 물정 모르는 프랑스 유학생 연기를 감쪽같이 해낸 프라이니의 활약에 원래 노리던 두 명 뿐 아니라 그들과 얽힌 불법 도박장 소굴까지 한꺼번에 엮어낸 건 잭 로빈슨도 기대하지 않았던 큰 성과였다. 덕분에 예상보다 일이 커져 콜린스를 비롯한 수하 경관들을 총동원해 난장판이 벌어졌지만 어찌 됐건 그날도 그들은 '조금이라도 덜 위험한 멜버른'을 이룩해냈다. 경찰서까지 함께 차를 몰아 자질구레한 서류작성에 도움을 주고 나서 세스와 버트가 술집에서 '거하게' 한 턱 쏘는 파티까지 마치고 돌아온 프라이니는 분장을 위해 걸쳤던 싸구려 원피스와 모직코트를 벗어 던지고 나이트가운으로 갈아입은 뒤 응접실에 자리 잡았다. 푹신한 소파에 몸을 기대자 바로 잠들 수 있을 것 같은 피로감이 밀려들었지만 그녀는 눈을 감고 나른한 기분에 취해 있을 뿐 아직 잘 생각은 없었다. 기다리는 게 있었기에.

 "미스 피셔, 로빈슨 경사님이 오셨습니다."

 정적을 깨고 들려온 집사의 목소리에 프라이니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그녀는 모자와 코트를 자연스럽게 집사에게 넘기고 들어서는 잭 로빈슨에게 시선을 던졌다.

 "어서와요, 잭."

 "미스 피셔."

 사건 마무리를 하고 퇴근하고 오는 길인지 잭 역시 제법 피곤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프라이니의 눈길이 아무 것도 들고 있지 않은 그의 두 손에 잠깐 멈추었다. 그녀는 버틀러가 미리 준비해둔 두 개의 술잔에 위스키를 따랐다. 잔을 내밀기 전, 프라이니의 눈이 그를 다시 한번 위아래로 훑었다. 수상한 눈길에 잭 로빈슨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왜 그렇게 보십니까?"

 "그냥, 피곤하실 텐데, 어쩐 일로 오셨나 해서요."

 잭은 그녀의 질문에 아, 하고 입을 열었으나, 이내 말문이 막힌 듯 멈추었다. 그는 분명 이유가 있어서 왔다. 분명한 이유가-.

 "덕분에 사건 해결에 도움이 됐다는 인사를-."

 "인사라면 아까도 하셨잖아요. 서 앞에서 헤어지기 전에."

 프라이니는 특유의 의뭉스런 미소를 유지한 채 잭을 똑바로 바라봤다. 잭은 헛기침과 함께 시선을 피했다.

 "자세한 사건 진술은 내일 아침에 가기로 했고 말이죠."

 프라이니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두 개의 잔을 집어들었다. 잭을 똑바로 바라보며 잔 하나를 내미는 프라이니의 얼굴에는 재밌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제가 서에 뭘 두고 온 것 같지는 않고, 오늘 내로 꼭 저에게 전달해야 할만한 소식이 있지는 않을 거고, 과연 어떤 이유로 이 야심한 시각에 찾아오셨을까요?"

 잭은 꿀 먹은 벙어리처럼 말이 없었지만, 프라이니가 내민 잔은 곱게 받아 들었다. 프라이니는 자신의 잔을 그의 잔에 가볍게 부딪혔고, 입술로 가져간 잔을 살짝 들이키는 와중에도 여전히 잭을 관찰하는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잭은 잔을 든 채로 마실지 말지 고민하는 것처럼 잠시 망설이는 것 같더니 단숨에 바닥을 채우고 있던 위스키를 목구멍으로 넘겼다. 이어 그는 프라이니의 맞은 편 의자에 털썩 몸을 던졌다. 프라이니는 조금 놀란 눈으로, 여전히 웃음을 띤 채 마주 앉았다.

 "별 이유는 없습니다.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며 왔는데, 말씀하신대로 별로 중요하진 않은 일이군요."

 그는 시선을 어디 둬야하는지 모르는 것처럼 눈을 굴리다가 결국, 흥미로 반짝이는 프라이니의 눈을 마주 봤다.

 "아무래도 사건이 끝나고 여기에 오는 게 습관이 된 것 같습니다."

 이번에 말문이 막힌 건 프라이니 쪽이었다. 그가 이렇게 솔직하게 나올 줄 몰랐던 탓이었다.

 "제법 로맨틱하게 들리는 건 제 착각인가요, 잭?"

 다소 유혹적인 톤이었지만 장난스런 목소리였다. 그는 이런 유치한 도발에 넘어갈만한 사람은 아니었다. 예상 대로, 잭은 피식 웃으며 가볍게 응수했다.

 "로맨스를 논하기엔 이미 지나간 기회가 너무 많았던 것 같습니다만. 당신의 '남성' 친구분들을 떠올려보면 말이죠."

 천연덕스러운 대답에 프라이니는 기어코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의 말대로, 그들이 좀 더 내밀한 관계가 될 기회는 이미 수 차례 있었다. 그녀 자신도 놀랄 정도로. 프라이니는 새삼스럽게 잭 로빈슨을 다시 관찰했다. 외모도 충분히 잘생겼고, 유부남이긴 하지만 별거중인 사이라 했고, 그녀를 대하는 태도도 더할 나위 없이 신사적이고, 교양있는 대화를 나눌만큼 지성도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가 잭에게서 가장 크게 매력을 느끼는 부분은 바로 이 점이었다. 두 사람 사이의 딱 적당한 거리.

 "그렇긴 하죠. 한 잔 더 하실래요?"

 그 날은 잭이 찾아올만한 아무런 핑계거리도 남아있지 않았다. 프라이니가 소지품을 '깜빡' 잊지도 않았고, 사건에 미심쩍거나 지지부진한 부분 같은 것도 없었다. 여느 때처럼 위험을 무릅쓰다 프라이니가 다치는 일도 없었고, 그녀는 모든 걸 매듭짓고 다음 날 사건진술을 위해 방문하겠다는 말과 함께 상쾌한 마음으로 집에 돌아온 참이었다. 그리고 프라이니는 잭이 오길 기다렸다.

 "딱 한 잔만 더 마시도록 하죠."

 그리고 잭 로빈슨이 여기 있었다. 그는 편안한 미소와 함께 비어있는 자신의 잔을 내밀었다. 결국 별다른 이유는 필요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필요했던 건 그저 마주 앉아 이야기 나눌 상대였을 뿐. 프라이니는 마주 미소지으며 비어 있는 잭의 잔을 얕게 채웠다. 자신의 잔까지 마주 채우고 협탁 위에 잔을 내려놓은 프라이니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술집에서 버트가 어떤 농담을 했는지나, 그의 '동지'들이 그녀를 헹가레 하려는 걸 도티가 필사적으로 말리던 이야기 따위에 대해. 잭이 신입 경관 때 위장수사를 하다가 유치장 안에서 밤을 지새운 기억이나 낡은 구두끈 때문에 멜버른 시내 한복판을 달리다가 바닥을 굴렀던 이야기 따위에 대해.

Notes:

드라마 보다가 어느 순간 '아니, 왜 이렇게 자연스럽게 맨날 둘이 집에서 술 마시고 있어?' 하고 보니까 아주 초반에는 이유라도 있더라구요...하지만...이유...없죠...이유가 없다는 게 좋네요, 참. 그래서 써봤습니다. 한번쯤 이렇게 짚고 넘어간 다음에는 둘 다 진짜 자연스럽게 찾아와서 술마시고 그랬을 것 같아요. 피셔잭 짱...최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