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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회

Summary:

역전재판 2 결말에서 역전재판 3 사이에 카미야 키리오와 카르마 메이가 만났다는 설정입니다. 역전재판 1, 2의 스포가 있습니다.

Notes:

(See the end of the work for notes.)

Work Text:

위증죄, 공무집행 방해죄, 시체손괴죄.
그 외에도 몇 가지 더 추가될 수 있지만 살인죄를 뒤집어 쓸 걱정은 완전히 사라졌다는 말을 듣고 구치소로 돌아올 때까지 카미야 키리오는 차분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수감된 자신 앞으로 날아온 편지 한 통, 그 봉투에 적힌 발신인의 이름을 보고 그는 다시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말았다.
카르마 메이.
그 검사였다. 오오토로를 유죄로 만들고 싶으면 증언을 거부하라던.
자신은 그때 어떻게 했던가.
미츠루기 검사의 페이스에 휘말려 결국 증언을 이어나갔고, 오오토로를 유죄로 만들지도 못했다. 오늘의 결과는 오로지 나루호도 씨와 미츠루기 씨의 활약 덕이었다. 자신은 그저 교훈을 얻은 관객에 지나지 않았다.
‘교훈...’
얻었다고 생각했는데, 자신은 또다시 ‘의존’하려 하고 있었다.
스스로도 알 수 있었다. 편지 한 통에 벌벌 떨고 있는 지금 모습은 과거 서투르던 신입 시절 잘못을 저지르고 유리에 선배님의 호출을 받았을 때와 똑같았다.
편지를 쥔 손이 덜덜 흔들렸다.
찢어버릴까, 던져버릴까, 그런 다음 카르마 검사의 질책 따위 무시했으니 의존에서 벗어난 거라고 가슴을 펼 수 있을까.
‘......하지만 고작 편지일 뿐이야. 편지를 버리면 그거야말로 나약한 짓이야.’
드라마에서 간혹 나오는 것처럼, 태연한 얼굴로 간단하게 찢어버리는 그런 모습은 어차피 이미 무리다.
그렇다면 일단 편지를 읽고 내용이라도 확인한 다음에......
어차피 그 다음에 편지에 적혀있는 그대로 할 생각 아니냐고 마음 한 구석에서 빈정대는 소리를 들으며 봉투를 뜯었다.
얇은 종이 한 장에는 정갈하면서도 힘찬 글씨가 적혀있었다.
그 사람다운 필체였다. 그러나 내용은 완전히 뜻밖이었다.
질책하는 말은 단 한 줄도 없었다. 도리어 그 사람치곤 꽤 부드러운 어조로, 법정에서 도움이 되지 못했으니 대신 출소 후 언제든 상담에 응해주겠다는 말과 연락처가 적혀있었다.
‘어쩌지, 어쩌지.’
매니저 일은 유리에 선배님께 배운 대로 완벽하게 해나갈 수 있었는데, 이런 편지에 어떻게 답해야 하는지는 누구에게도 배우지 못했다.
‘내가 결정해야 해.’

 

카르마 메이의 주 활동무대는 외국이었으나 일단 국적은 아버지와 같았고 카르마 가의 본가도 국내에 있었다.
따라서 메이는 아버지 대신 당주 노릇을 하기 위해서라도 가끔 귀국해야 했다. 출소한 카미야 키리오의 연락을 받은 것도 때마침 귀국할 일정을 잡았을 때였다.
메이는 일부러 일정을 당겨서 일찍 귀국해 원래 예정을 다 소화하면서 키리오와도 만날 시간을 확보했다. 그리고 키리오를 본가 근처의 자기 사무실로 초대했다.
“자잘한 죄목이 많은 것치고는 일찍 나올 수 있었군.”
“위증죄와 시체손괴죄 등 모두 합쳐 집행유예로 끝났습니다. 여러 사정을 참작해준 거라더군요.”
키리오는 카르마 메이가 정말로 자기를 만나준 게 놀라운 눈치였다. 냉정함을 가장하는 일을 그만둬서인지 전보다 표정이 풍부해지고 속을 읽기 쉬워졌다.
“미츠루기 녀석이 손을 썼겠지. 검사가 먼저 낮은 형량을 구형하면 재판관이 그보다 높게 선고하기는 힘드니까.”
미츠루기를 입에 담자 메이의 이맛살이 절로 찌푸려졌다.
“그놈에게 큰 은혜라도 입었다는 표정은 할 필요 없어. 내가 빠진 사이 법정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다 전해들었다.”
메이는 키리오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증언을 뜯어내려고 협박한 일을 신경쓰고 있었겠지. 역시 카르마의 룰을 감당하기엔 물러터진 놈이라니까.”
“카르마 검사님이 하신 일이 아니었어요?”
“내가 맡은 건 오오토로의 살인까지였다. 그런 뒤처리는 다른 놈들이 했지.”
“하지만 카르마 검사님도 제게 친절한 편지를 보내주셨지요. 그리고 지금 이렇게 만나주셨고요.”
“미츠루기 녀석과는 사정이 달라. 그때 내가 한 일은...”
메이의 표정은 풀어질 줄 몰랐으나 손으로는 키리오 앞에 차를 따르고 있었다.
“네 성향이야 진작 눈치챘고, 그래서 다루기 쉽겠다고도 생각했지. 하지만 상황이 바뀌고 증언 거부만으로는 아무 것도 해결되지 않을 지경이 되어서까지 미련하게 입만 다물고 있는 건 계산에 들어있지 않았어.”
키리오가 고개를 숙였다. 역시 오랜 삶의 방식이 하루아침에 변할 수는 없는지 처음 메이 앞에서 의존 성향을 드러냈을 때와 별로 달라 보이지 않았다.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아 메이는 계속 퉁명스럽게 말을 이었다.
“내가 검사석에 있었다면 바로 대처할 수 있었겠다만, 그럴 수 없었지.”
“그건 킬러의 저격 때문이었고 검사님 잘못이 아니었어요.”
“이유 같은 건 결과 앞에서 아무 소용 없어. 게다가 나는 그때 네가 그 정도로 내 귀띔을 맹신할 거라고는 예상 못했다. 이건 내 실패야.”
메이의 눈에 힘이 들어갔다.
“네가 의존하던 상대는 유리에 선배였고, 그 복수를 준비하느라 의존이 더 심해진 상태 아니었나?”
“예. 그랬어요.”
“그렇게 심하게 얽매여 있던 상대를 놔두고 다른 사람에게 의존한다? 그렇게 아무한테나 쉽게 넘어가는 사람이라면 평소에 냉철한 척하는 위장이 가능했을 리도 없어. 스타의 매니저 노릇을 유능하게 해낼 수도 없지.”
키리오가 고개를 들었다. 뜻밖의 말을 들었다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그때 검사님은 ‘아무나’가 아니었는걸요. 모르셨어요?”
“내가?”
“분명 선배님을 잃은 후로도 그분께 의존하고 있던 건 맞아요. 선배님께 배운 대로만 일하고, 그래서 도리어 다른 사람이 하는 말은 무시할 수도 있었어요. 덕분에 냉철하고 유능한 매니저 행세를 할 수 있었죠. 하지만 그것도 사건이 일어난 날까지였습니다.”
키리오의 표정이 차분해졌다.
“그 두 남자 중 한 명은 살해당하고 한 명은 잡혀가고, 호텔엔 경찰이 가득 차고, 어떻게든 오오토로를 살인범으로 만들어야 하는데 무대는 더 이상 제게 익숙한 연예계가 아니었어요. 경찰의 탐문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법정에선 어떻게 해야 하는지, 유리에 선배님은 그런 건 가르쳐준 적이 없어요.”
“그랬군.”
“그때 깨달았어요. 선배님은 더 이상 내 곁에 없다는 걸. 엄마나 교수님이 더 이상 내 곁에 없는 것처럼. 내가 의존하던 사람이 사라졌고 나 혼자라는 걸. 그런데... 바로 그 순간 눈앞에 나타난 거예요. 법정에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 내가 항상 동경하고 흉내내던 완벽한 여성이.”
“내가 그렇게 보였다고.”
목소리에 섞인 씁쓸함을 느꼈는지 키리오가 다시 어깨를 움츠렸다.
“죄송합니다. 이런 이야기 역시 불쾌하시겠죠.”
“불쾌할 걸 알고 있었나?”
“교수님이 그래서 저와 연을 끊으셨는걸요. 그런 못난이인 줄 몰랐다면서, 다시는 연락하지 말라고 하셨어요.”
“어머님은?”
“그 전에 돌아가셨습니다.”
“그래. 역시 그렇게 된 일이었군.”
메이가 다시 담담한 태도로 돌아왔다.
“짐작은 하고 있었다. 그래도 네가 직접 하는 말을 들어봐야 한다고 생각했지. 더 이상의 빈틈은 용납할 수 없으니.”
“예.”
“그리고 내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네가 새 의존 상대를 찾자마자 교도소에 홀로 남겨지고도 살아남을 수 있는 여자인지.”
키리오가 놀란 표정이 되었다.
“교도소란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던 사람이 쉽게 적응할 만큼 편한 곳이 아니지. 그런데 집행유예로 일찍 나왔다고는 해도 예상했던 것만큼 불쌍한 몰골은 아닌걸.”
“그런가요?”
키리오의 얼굴이 눈에 띄게 환해졌다.
“그래서였다. ‘의존’의 뒷감당을 해주지 못한 배상만이라면 당연히 출소 전에 해줄 수 있는 게 훨씬 많은데도 편지 한 통만 주고 손 떼 버린 건. 아까는 다르게 말했다만 원래 담당 검사는 나였으니 마음만 먹었으면 미츠루기를 밀어내고 내가 형량을 정할 수 있었어. 교도관들도 검사가 봐주는 수감자 앞에선 태도가 달라지지.”
“그랬군요.”
“난 그 교수가 널 떼어낸 심정도 이해한다. 그렇게 나약한 인간 뒤치다꺼리나 하며 살 생각은 없어. 너도 그게 널 위한 일이 아니라는 사실쯤은 이제 알겠지? 게다가...”
자랑스럽지 않은 사실을 털어놓기 위해 메이는 잠시 목을 축여야 했다.
“난 네가 생각하는 만큼 완벽한 사람이 아냐.”
“예?”
“나도 동경하고 닮고 싶어한 사람이 있었다. 한 치의 의문도 품지 않고 복종하며 살아왔지. 내 인생도 그가 정해준 그대로였어.”
키리오는 충격받은 얼굴이었다.
“그 사람은 바로 얼마 전에 형편없이 추락했지. 누구보다 완벽한 척 하던 주제에, 범죄를 저지르고 거짓으로 얼기설기 덮어놓은 ‘완벽’이 무너지자 자멸했어......내 우상은 고작 그런 인간이었어.”
메이가 다시 차를 한 모금 입에 머금었다.
“그러니 원수를 갚을 일이 아니었어. 나루호도나 미츠루기가 원수라고 생각해본 적도 없어. 그보다 훨씬 중요하고 절박한 문제가 생겼으니까. 내가 그동안 목표로 삼았던 ‘완벽한 검사’가 범죄와 협잡으로 꾸며진 허상에 불과했다면, ‘완벽’이란 뭐지?”
상대가 알아들을 수 없는 이야기를 늘어놓고 있지만 어차피 알아들어야 할 건 카르마 고우에 얽힌 옛이야기가 아니었다. 키리오도 미츠루기가 왜 원수냐고 묻지 않았다.
“미츠루기를 뛰어넘으면 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봤어. 하지만 그러지 못했지. 미츠루기를 이긴 변호사를 내가 이기면 되는 문제라고 생각했는데, 이기지 못했을 뿐 아니라 그놈이 패소하고서도 웃는 얼굴까지 봐야 했어. 심지어 미츠루기는 그놈과 함께 웃고 있었지!”
부드득 이를 갈다가 메이가 진정했다.
“그리고 아직도 난 나루호도를 이기지 못했어. 어때, 실망스럽지 않아?”
“아니요.”
키리오는 잠시 망설이는 기색도 없이 대답했다.
“포기하지 않으셨잖아요. 나루호도 씨를 이기는 것이든 완벽한 검사든.”
“그래 보여?”
“예. 저는 물론 ‘완벽한 검사’ 같은 거 모르겠고 생각해본 적도 없지만, 이미 실패하고 끝난 일이라면 절 만나주시지 않았을 것 같아요. 아닌가요?”
메이는 잠시 표정을 가다듬고서야 다시 입을 열 수 있었다.
“...그래, 맞아. 나는 카르마의 ‘완벽’을 다시 정의하기로 했어. 카르마의 룰은 이제 카르마 고우가 아니라 카르마 메이가 정하는 거야.”
그를 바라보는 키리오의 눈빛을 보고 메이가 당황했다.
“이봐, 분명히 말하지만 내게 의존해도 난 아무 지침도 내려주지 않을 거야!”
“그거 다행이네요.”
여전히 뺨을 붉히고 눈을 빛내며 키리오가 대답했다.
“오오토로에게 유죄가 선고되었을 때 저는 구원 받았다고 느꼈어요. 드디어 선배님에게서 벗어난 기분이었죠. 그리고 그때 전 카르마 검사님께 의지하지 않고도 증인석에서 도망치지 않을 수 있었어요. 보통 사람에겐 당연한 일이겠지만 저 같은 사람에겐 처음 있는 일이었어요. 그렇게 위험하고 힘든 순간에 누구에게도 의존하지 않고 내 두 발로만 서 있는 건.”
“그래. 잘 했어.”
“그런데도 검사님의 편지를 본 순간 무서웠어요. 다시 검사님께 의존하게 될 것 같아서. 그 봉투를 뜯는 데 얼마만한 용기가 필요했는지 검사님처럼 강한 분은 모르실 거예요.”
비웃음 당할까 무서워하는 기색이 역력했으나 메이는 그를 비웃지 않았다.
“출소 후에 찾아오라고 해주셔서 고마워요. 덕분에 저는 검사님께 의존하지 않고도 교도소 생활을 버틸 수 있었어요. 그리고......”
키리오의 미소가 자랑스럽게 변했다.
“유리에 선배님의 다른 친구분이 제게 새 일자리를 소개해 주셨어요. 선배님의 죽음이 자기도 안타까웠다면서, 법을 어겨가면서까지 선배님을 위해준 보답을 하고 싶었대요.”
“그래?”
“예. 대형 백화점에서 이벤트 기획 같은 걸 하게 됐어요. 일단은 계약직이지만 실적이 좋으면 정규직도 노려볼 수 있어요.”
“다행이군.”
비로소 메이도 다시 웃었다.
“흥미로운 이벤트라면 나도 보러 가지.”
“감사합니다.”
“당장은 어렵겠지만. 이번에 귀국한 건 집안 재산 문제 때문에 잠깐 들른 거고 금방 다시 출국해야 하거든.”
“아...”
“그러니까.”
메이가 키리오에게 손을 내밀었다.
“훌륭한 기획자가 되라고. 스스로의 힘으로. 나도 새로운 룰을 완성해서 돌아올 테니까.”
“돌아오신다고요.”
키리오의 얼굴이 다시 붉어졌다. 메이도 이번에는 당황하지 않았다.
“그래. 그때는 특별히 채찍 다루는 법을 가르쳐주지. 아무한테나 가르쳐주는 거 아니니까 팔 힘 길러두라고. 보기만큼 쉽지 않거든.”
“감사합니다. 열심히 운동할게요!”
키리오가 메이의 손을 꽉 맞잡았다.

Notes:

이런 장르에선 본편에 실제 국명이 나와도 그걸 쓰기가 꺼려지더군요. 대놓고 현실이 아닌데 현실 국명이 나오면 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