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k Text:
베르메르 위작 사건이 해결된 후 문제의 범죄자로부터 더는 연락이 오지 않았다. 다행이라면 다행이었지만 정말 이걸로 끝인 건지 윗선의 닦달까지 받아가며 숨죽이고 기다려야 했던 경찰들에겐 그리 해피엔딩도 아니었다.
희생자도 여러 명 나온 터라 경위와 민간인 탐정 간의 공조를 두고 높으신 분들이 문제삼으려 한다는 이야기가 돌았지만 천만 다행하게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저 아니꼬운 그렉슨 경위가 ‘의외로 자네도 연줄이 든든했군.’ 따위로 비아냥거리긴 했지만 장관에게도 연줄이 있는 셜록 홈즈이니 그런 쪽에서 알아서 압력을 넣은 모양이라고 믿고 레스트레이드 경위는 더 신경도 쓰지 않았다. 덕분에 셜록을 현장에 불러 속 긁는 소릴 듣는 데는 앞으로도 별 지장 없게 되었다.
‘결국 건진 건 내 모가지가 아직 무사하다는 것뿐이잖아.’
그런 엄청난 사건의 결과가 ‘그래서 아무 변화 없음’이었다.
사건 후 한 달 까지만 해도 레스트레이드는 그런 행복한 착각에 빠질 수 있었다.
[항구에서 강도 사건이 있었는데 왜 나는 안 부른 겁니까?]
모처럼 평범하고 간단한 사건-다행히도 실제 경찰들이 훨씬 자주 접하는 사건을 해결하고 한창 조서작성 중인데 그런 문자가 왔다.
“이놈은 경찰 무전이라도 도청하나.”
[네놈이 흥미 가질 일은 아무 것도 없는 단순 강도였으니까]
전화 걸었다가 중요한 실험을 방해했네 어쩌네 하는 생트집부터 잡힌 경험이 있는지라 그렇게만 문자하고 다시 조서 쓰는데 매달렸다.
[확실해요?]
[배후 같은 거 없었어! 범인도 잡고 다 끝나서 지금 마지막 보고서 쓴다]
한 1분쯤 조용한 틈을 타 조서에 난 오자를 고쳤다.
[그럼 폴리스라인 빨리 걷어요 현장 좀 보게]
니가 걷어! 라고 소리칠 뻔하고 숨을 고른 다음 조서에 눈을 돌렸다. 그냥 씹자. 그게 최고다.
금방 초딩 악플 수준의 문자들이 따라붙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조서 작성이 거의 끝나도록 신호가 없었다. 도리어 마음이 불안해져 이놈이 진짜 멋대로 들어가서 사고치면 어쩌지 하는 생각에 시달리며 마지막 줄을 시작했을 때 비로소 문자가 왔다.
[이번은 됐고 그냥 다음부터 아무리 사소해보이는 사건이라도 꼭 불러주세요. 지난번 같이 배후에 모리어티가 있을지도 모르잖아요 방해해서 죄송합니다]
레스트레이드는 멍한 얼굴로 핸드폰 화면을 바라보았다.
이 친구가 드디어 미쳤나? 아니면 내가 피곤한 나머지 헛걸 보고 있나?
셜록이 한 발짝 양보 비스무리한 말을 한 걸로 모자라 자기 심정을 설명하고 이해를 구해? 게다가...............방해해서 죄송하다고라고라????
셜록의 머리와 핸드폰 중 어느 쪽이 고장난 건지에 대한 고민은 다행히 오래 끌지 않아도 되었다. 발신번호를 확인한다는 소박한 해결책 덕분이었다.
[Dr. Watson]
“플랫메이트 한 번 잘못 만나서 닥터도 고생 많군.”
레스트레이드는 조서나 마무리짓기로 했다. 고생하는 닥터는 불쌍하지만 덕분에 앞으로는 셜록과 일하기가 약간이나마 쉬워질 것 같았다.
“역시 그가 나타나 줘서 다행이야.”
단순 치정 살인이나 독창적이지만 규모 작은 사기 배후에 두뇌를 빌려준 자가 있을지도 모르니 간단한 사건도 샅샅이 뒤져야 한다는 주장 자체는 일리 있었다. 문제의 폭탄 사건 때 얽혀 있었던 사건들부터가 그랬으니까. 도리어 모리어티가 그렇게 셜록에게 들이대고 해결을 강요하지 않았던들 설령 표면상의 범죄를 규명했다 하더라도 배후의 모리어티는 끝내 파악하지 못했을 일이었다.
그래서, 예의바른 문자를 보내준 왓슨 박사의 낯도 봐서 레스트레이드는 어느 회사 중역이 자택에서 피살된 사건에 셜록을 불렀다. 연극처럼 엉엉 우는 부인 말고 용의자가 있기는 한지 의심스러운 사건이었지만.
그리고 셜록이 존과 함께 저택에 발을 들여놓기 직전 사건은 어이없이 종료되었다.
“시시하군.”
막 부인의 시신을 옮기던 경찰이 셜록을 뜨악하니 쳐다봤다가 고개만 흔들고 일로 돌아갔다. 중앙으로 승진한지 얼마 안 된 그는 이제 막 소문의 detective frick에게 적응하려는 참이었다.
“흔하디흔한 치정 살인이야. 게다가 경찰 좀 드나들었다고 지레 자살해버리다니 요샌 법정에서 눈물만 잘 짜도 이 정도 얼굴이면 정당방위 나온다는 거 모르나? 택시비가 아깝군.”
“어디 가나?”
레스트레이드가 물었다.
“집에. 나 부를 필요도 없었잖아요.”
“사소한 거라도 무조건 불러달라고 할 때는 언제고.”
사소한 까지 말했을 때 이미 셜록은 1층 거실까지 내려와 있었다.
충동적이고 뻔한 수법. 이 정도의 정신적 압박도 견디지 못하고 자살한 건 블로그와 집안 인테리어에서 드러나는 범인의 성격으로 볼 때 양심의 가책에서가 아니라 체포와 그에 따를 일들에 대한 두려움. 심약해서라고 볼 수도 있지만 아무튼 조금이라도 믿는 구석이 있었다면 하지 않았을 행동. 즉.......
존은 부엌에서 도노반 경사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중이었다. 또 ‘괴물한테 끌려다닐 시간에 할 수 있는 건전한 취미생활들’을 역설하는 모양이었다.
“존!”
셜록은 거의 덤벼들 듯한 기세로 도노반 곁에 서 있는 존에게 다가갔다.
“나 간다.”
그리고는 존이 도노반에게 제대로 작별인사를 하기도 전에 아예 팔을 잡아채 끌고 현관을 향했다. 물론 자신도 인사 따위 귀찮은 짓은 생략했다.
“이번엔 또 뭐 하래, 우표 수집? 카레이스? 스카이다이빙?”
“왜 점점 내 능력 밖으로 나가는 거야?”
택시를 찾아 고개를 돌리다 말고 셜록이 존을 쳐다보았다. ‘와, 스카이다이빙을 못하셨어요? 처음 알았네요. 그거 참 뜻밖인데요?’라고 말할 듯한 표정이었다.
“셜록, 내가 따라오는 게 싫었으면 처음에 그렇게 말했으면 됐잖아.”
“따라오는 거 안 싫어.”
전쟁터에 적의 수장과 함께 출전하는 꼴이지만 존을 감시하기 위해서라도 함께 다니는 건 중요했다.
그렇지만, 아무 말도 않고 그저 등 뒤로 문을 닫지 않고 나왔을 뿐인데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평소처럼-수영장 사건 이전처럼 따라나오니 기분이 좋을 수가 없었다.
적어도 ‘나 같이 가도 돼?’ 정도는 기대했는데.
택시는 금방 나타났다.
“베이커 가 221B번지.”
그리고 택시 안에는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사거리에서 신호대기중일 때 존의 시선이 테이크아웃 커피숍에 머물렀다.
“요새도 장사 잘 돼?”
존의 미간이 본래 너비의 4/5 정도로 좁아지는 걸 보고 그가 생각하고 있을 만한 일을 두 개까지 좁혔을 때 그렇게 물었다.
두 개. 지난달 같이 들렀을 때의 끔찍했던 커피맛과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에 대한 셜록의 논증을 떠올리고 있거나 혹은 저기가 그의 ‘작품’에 관련이 있거나. 그 이상은 이제 도저히 좁힐 수 없었다.
“말했다시피 별로 장사라고 생각하진 않아.”
“그러시겠지. 그래서 잘 되냐고.”
존은 어깨를 흔들었다. 평소나 다름없이 피곤해보이지만 다정한 미소를 띤 채로.
“가끔은 불황도 좀 겪어봤으면 싶을 정도?”
“어련하실까. 그래서 내박치고 군으로 튀었겠지. 파트너가 그새 배신하거나 말아먹을 걱정은 안 들었어?”
“그런 일이라면 대충은 대비했어. 참전해서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으리란 얘기도 아무한테도 안했고. 다른 핑계를 생각해내기는 힘들었지만 부상 때문에 일찍 제대해서 계산보다 공백이 짧아진 것도 변수가 됐지.”
“나쁜 쪽으로.”
셜록이 말을 받았다.
“뭐라고 핑계를 댔는지는 몰라도 몇 년이나 연락도 끊을 정도의 구실이라면 그만큼 중간에 앞당겨진 것을 설명하기 어려웠겠지. 손 떨고 다리 절면서 귀환한 것도 별로 도움은 못 되었을 테고. 그런데 애초 원했던 건 그런 핸디캡이었지? 자리 비운 새 여기저기 균열이 나서 돌아오자마자 땜질에 전념해야 할 그런 상태. 게다가 그런 얘기를 감추기는커녕 과시하고 있군. 테트리스 할 때 핸디캡 너무 깔았다가 1단계에서 깨진 적 있지?”
“자네가 먼저 물었잖아.”
“사실대로 말할지 말지는 자네 맘이지.”
“거짓말이면?”
“아니, 진담이야.”
필요 이상으로 단언하고 셜록은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 정도는 지금도 구별해.”
“다행이군.”
존도 반대쪽 창으로 시선을 돌렸다.
두 번째 사거리에서 빨간불에 걸렸을 때 존이 불쑥 입을 열었다.
“한 가지 잘못 알고 있는 것 같은데, 그는 내 파트너가 아니야. 고용인이지.”
셜록은 대답하지 않았다.
횡단보도 앞의 저 남자는 여기서 한 블럭 떨어진 곳에 있는 고용안정 센터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양복이 10년은 된 것인데 그 당시에 유행한 스타일이고 재단도 잘 된 것으로 보아 잘 나가던 시절이 있었고 가방 손잡이의 상태를 보면 본래는 조심성 많고 신중한 성격인데.......
택시가 출발했다.
집에 돌아오자 셜록은 여느 때처럼 소파에 누워 뒹굴었다. 여느 때처럼 존이 거실 정리라는 소모적인 짓을 하는 것도 보였다.
못하게 할까도 했지만 그만두었다. 존이 봐서 안 될 물건이 없는 건 자신도 마찬가지였다.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들었다.
“어이, 냉장고에 마요네즈 남았나 한 번 확인해봐.”
“그래.”
그리고 정확히 셜록이 예상한 타이밍에 존의 비명이 울렸다.
“왜 피를 이런 데다 담아두는 거야, 이건 또 무슨 실험인데?”
“그거 흔들지 마. 용혈되면 망치는 거라고.”
사실은 상관없었지만 그렇게 말했다.
존의 숨소리, 발소리, 비명의 높낮이를 정확히 새기면서.
존은 흡혈귀를 위한 마요네즈 병을 조심스럽게 냉장고에 돌려놓고 인간용 마요네즈도 있는지 찾아보았다. 없었다.
셜록과 존의 단조로운 식생활에 마요네즈는 쓰일 때보다 안 쓰일 때가 월등히 많았다.
“우유가 없군. 사러 갔다 올게.”
타박타박타박, 탁탁탁탁탁........딸랑, 끼이익.
발소리도 템포도 이상 없음.
정확히 이전 냉장고에서 사람 머리를 발견하고도 놀래 자빠지거나 셜록에게 소리지르는 대신 정상적인 먹을 것을 사러 나가던 때와 일치했다.
수영장에서 돌아올 때 셜록은 그 모든 행동이 과장된 연극이었다는 가설을 세웠다. 물론 전부는 아니었을 수도 있지만 그건 첫 번째 가설이 부정된 뒤에 생각하기로 했다.
이제 부정되었다.
그럼 전부 연극이 아니라면, 어디까지 연극인가?
중국 밀수 조직에 쫓기던 큐레이터를 걱정하던 건 확실히 연극이었을 거다. 혼자 두지 말았어야 했다고 자책하던 말은 이제 새빨간 거짓말로 판명되었다.
그때 녹음이라도 해뒀어야 하는데.
그럼, 맹인 할머니와 폭발에 말려든 11명은?
정말 시각장애인인 줄 모르고 실수로 납치한 걸까? 그 끄나풀의 실수였을까?
태연한 자신에게 화를 내던 모습은?
택시기사를 쏜 것은, 아니 급소를 노려 단숨에 사살하지 않은 건?
확실한 게 대체 뭐지?
뭐가 남아있지?
“Damn it!”
셜록은 소파에서 벌떡 일어나 방으로 달려갔다.
자원 마약단속반이라는 얼간이들이 골백번은 쳐다봤을 서랍에서 코카인 7% 용액을 찾아들고 팔을 걷었다. 지금 이 기분이 무엇인지, 무엇이 원인인지 따위 알고 싶지도 않았다. 평상시 용량의 두 배를 단숨에 주사하고 침대에 누웠다.
마요네즈가 세일중인 걸 보고 존은 소스류 코너를 멀리 돌기로 했다. 당분간 마요네즈도 케첩도 못 먹을 것 같았다.
“아니, 왓슨 선생님 아니세요!”
맨 아래 선반에 진열된 우유를 카트에 담고 몸을 일으키자 거구의 중년 부인이 시야를 가득 메웠다.
“지난번에 무릎 때문에 갔었죠. 그래도 선생님만큼 친절하신 분 찾기 힘들어요. 이게 한동안 살 것 같더니 요새 또 쿡쿡 쑤셔서 말이죠......아참, 우유 그거 드세요? 에그. 신문도 안 보셨나봐. 이게 저번에........”
존이 대꾸할 틈도 주지 않고 우유 제조공정의 비리에 대해 수다를 떨어대며 부인은 존의 카트에 담겼던 우유를 꺼내 매대 아무 데나 집어넣고 대신 그 옆의 신제품을 꺼내 넣어주었다.
“어머나, 시간이 다 됐네. 문화센터에서 강좌를 듣고 있거든요. 저 이만 가볼게요. 쇼핑 잘 하세요. 병원에서 뵐게요.”
존은 카트를 밀고 앞서서 가버리는 부인에게 예의바르게 인사하고 자기 카트를 내려다보았다. 신제품 우유와 함께 오래된 영수증 뭉치가 떨어져 있었다.
‘셜록에게 라자냐라도 해줄까. 좋아하던데.’
그러자면 마요네즈가 세일중인 소스류 코너로 가야 했지만 꾹 참고 카트를 밀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영수증 뭉치는 주머니에 넣었다.
병원에서 환자로 가장한 부하와 접선하는 건 편리하지만 너무 뻔한 방식이기에 가끔은 이런 막간극도 필요했다. 영수증 뒷면엔 새 일거리에 대한 개요와 기타 보고사항, 다음번 접선방식 등이 적혀있을 것이다. 물론 전부 암호지만 집에 가기 전에 내용을 외우고 버릴 작정이었다. 셜록을 상대로 그 정도는 해야 했다.
그러나 살 것을 전부 고르고 났을 때 존은 뜻밖의 난관에 봉착했다.
카드를 다시 확인해주시기 바랍니다
“Damn it!”
존이 빈손으로 돌아왔을 때 셜록은 코카인의 고양감에서 막 벗어나 베개에 머리를 비벼대고 있었다.
“또 카드 정지야?”
이불을 꽈배기로 만들어 걷어차고 버둥거리는 주제에 존이 말도 꺼낼 새 없이 상황을 파악했다.
“응. 다음 주 연금 나올 때까진 먹통일 거야.”
셜록은 베개를 움켜쥐고 한 바퀴 굴렀다.
“명품 폭탄 코트를 네 벌이나 살 돈은 있으면서 카드 정지로 우유 한 병을 못 샀다고? 아리랑치기범 파커가 아르마니 입는다는 거 알고 있어?”
“그야 잘 입어야 의심 안 받으니까 중고로 산 거지. 알고 있어. 아무튼 연금 나올 때까진 자네가 장 봐야겠군.”
한창 베개를 괴롭히던 셜록의 동작이 멎었다.
“내 카드 벽난로 위에 있어.”
셜록은 재빠르게 얼굴을 베개에 파묻고 그대로 존의 반대편까지 굴러갔다.
“나 잘 거야. 방해하지 마.”
“......셜록?”
저러다 질식할까 염려될 정도로 베개에 처박힌 채 셜록은 움직이지 않았다.
존은 바닥에 떨어져버린 이불 덩어리를 한 차례 털어서 그 위에 덮어주었다.
“고마워. 다시 다녀올게.”
존의 발소리가 다시 멀어지자 셜록은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존의 계좌번호 같은 건 진작 꿰고 있었다. 그의 조심성과 완벽주의, 범죄동기로 보아 범죄 관련 통장에서 퇴역 군인 존 왓슨의 연금통장으로 돈이 이동하는 일은 좀처럼 없을 테지만 단 한 번도 안 갔을 리는 없었다. 뿐이랴, 수영장에서 존이 한 말에 따르면 초기엔 그 역으로도 돈이 흘러갔을 터였다.
물론 존이 대학생이던 시절까지 거슬러올라가 계좌추적을 하는 건 셜록이라 해도 엄두가 안 나는 일이었지만 최근 것이라면 부탁해볼 만한 사람이 몇 있었다.
스마트폰을 집어들고 전화번호목록을 내리던 셜록의 손이 한순간 멎었다.
Mycroft.
셜록은 망설였다. 마이크로프트라면, 어느 누구보다도 쉽게-어쩌면 정말로 대학생 때까지 추적이 가능할지도 몰랐다. 존이 돈세탁 과정에서 뭔가 흔적을 남겼을 확률도 지금보단 그때가 더 높았다.
셜록은 스마트폰 액정이 어두워질 때까지 형의 이름을 노려보았다.
어려서부터 마이크로프트는 셜록의 부탁을 거절한 법이 거의 없었다. 그것이 아무 법적 근거도 없이 무혐의의 시민을 과거부터 낱낱이 터는 일이라 해도 들어줄 게 분명했다.
당연하지. 셜록의 입에서 ‘제발 형, 도와줘.’나 뭐 그딴 비슷한 말을 듣는 건 드문 일이기는 하지만 마이크로프트의 인생의 즐거움 중 하나니까.
일곱 살 때, 학교에서 생활의 발견이라는 시간에 선생님 구두의 얼룩에 대해 발표했다가 반성문 열 장을 떠안았었다. 선생님이 체육 창고에서 끈끈한 걸 밟곤 한다는 내용이 뭐가 문제인지 몰라 반성문을 못 써갈 위기에 처했을 때 중학생이던 마이크로프트가 일단 한바탕 웃어 구른 뒤 전부 자기에게 맡기고 다른 숙제나 하라고 했다.
그리고 정말로 반성문은 없던 일이 되었고 이후 그 선생은 셜록이 눈앞에서 화단에 들어갔을 때조차 못 본 척하고 도망가 버렸다. 덤으로 교장의 취미이자 작은 야심이던 생활의 발견 시간은 셜록이 졸업할 때까지 다시 열리지 않았다.
‘형, 시킨 대로 주변을 관찰하고 발견한 사실을 발표했을 뿐인데 반성문 열 장 써오래. 뭐라고 써야 하는 거야?........응? 그러니까 우리 담임 선생님이 일주일에 두세 번씩 체육 창고에서 뭔가 더러운 걸 구두에 묻혀오거든. 그래서.....’
‘형, 존의 대학시절부터 지금까지 은행 계좌와 거래내역을 전부 조사해야 할 일이 생겼어.......응. 사실은 존이 바로 모리어티였어. 그가 내게 그렇게 말했는데 증거가 없어.’
“!!#^@$%걓썋ㄹ!%#!?!!!”
괴수가 나타난 줄 알고 아래층에서 허드슨 부인이 뛰어올라왔을 때 셜록은 다행히 변신의 위기에서 벗어나 침대에 머릴 박고 있었을 뿐이었다.
“아무 일도 아니에요.”
또 질식이 염려될 정도로 얼굴을 파묻은 채 셜록이 중얼거렸다.
“존이 또 카드 정지 먹었대요.”
“저런.”
허드슨 부인이 고개를 저었다.
“의사 선생이 참 운도 없지. 셜록이 존 몫까지 챙겨주자니 어렵겠어. 하지만 반려가 생긴다는 게 원래 그래. 아무리 든든해보이는 상대라도 의지하고 싶으면 결국 내 것도 나누어야 하거든.”
처음부터 한 귀로 흘려버릴 준비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셜록은 그냥 구우우우 하고 끝낼 수 있었다.
허드슨 부인은 말썽쟁이 손자를 보는 눈으로 빙긋이 웃어보이고서 1층으로 돌아갔다.
‘셜록이 남의 돈 문제 갖고 저렇게 고민할 줄 누가 알았겠어. 역시 존이 나타나 줘서 다행이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