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k Text:
웨이버는 잠을 좀 자야 한다는 걸 알았다. 달이 높은 밤, 더는 살갗에 밴 연기와 하수구 냄새, 그리고 혈향이 나지 않을 때까지 철저히 샤워한 뒤, 불을 끄고 파자마 차림으로 침대에 누워 눈을 감는데⋯ 한숨도 자지 못한 사람처럼 심장이 쿵쾅거리고 수많은 생각이 떠올랐다. 아무리 씻어도 캐스터의 공방에서 풍기는 악취가 목구멍 안을 거칠게 맴돌며 위산으로 예민해진 표면에 달라붙은 것 같았고, 그 기억에 사지가 떨리는 것을 멈출 수 없었다.
낙담한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눈을 세차게 비볐다. 따뜻한 차라도 좀⋯.
침대 옆으로 다리를 휘저어 부엌으로 내려가려고 하는데, 그의 서번트는 다른 생각인 듯 예고도 없이 방 중앙에 책상다리로 앉아 근엄한 표정으로 그를 노려보았다. 웨이버는 그가 망토를 제외하고는 여전히 전투용 갑주를 입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넌 좀 쉬어야 해, 꼬마야."
이스칸다르가 꾸짖듯이 말했다.
"마력을 회복하지 않으면 널 온전히 지켜줄 수 없다."
"나, 나도 알아."
웨이버가 얼굴을 붉히며 투덜거렸다.
"그치만 여기 누워만 있으면 잠이 안 올 것 같으니까, 더 좋은 생각 있으면—!"
이스칸다르가 어깨를 으쓱했는데, 웨이버는 그 몸짓이 어울리지 않게도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다. 이 서번트를 소환하기 전이었다면 어깨를 으쓱하는 게 어깨 근육만을 사용한다고 생각했을 테지만, 라이더가 입은 옷은 비교적 노출이 많아서 몸통의 근육이 움직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는 아무 말 없이 웨이버의 잠옷 뒤쪽을 잡아당겨 어린 사내를 제 무릎에 앉혔다. 강한 팔이 자신을 감싸자 웨이버는 얼굴이 더욱 붉어지고 버둥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따뜻하고 진한 가죽 냄새가 드디어 목 안에 달라붙어 있던 끔찍한 악취를 씻어내고, 서번트의 체온이 날씬한 몸에 스며들면서 긴장이 풀리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좀 나으냐?"
이스칸다르의 깊은 목소리가 머리 위에서 울렸다. 웨이버는 고개를 끄덕이는 수밖에 없었다.
"으, 응."
웨이버가 순순히 인정했다. 이런 식으로 어린애 취급을 받으니 좀 비참하긴 했지만⋯ 사실은 위로가 필요했다.
"⋯미안."
"사과할 것 없다. 말했다시피, 아까 봤던 장면을 보고도 아무렇지 않은 마스터라면 그게 누구든 흠씬 때려줄 테니까."
웨이버가 이스칸다르의 얼굴을 볼 순 없었으나, 다만 그를 감싸 안은 팔이 조금 더 죄었다.
"이 시대는 짐이 살던 때보다 평온한 시대다. 너는 그런 것에 익숙해질 까닭이 없어."
웨이버는 한동안 말없이 서번트의 숨소리를 들으며 마음속으로 생각을 되새겼다.
"⋯그랬지. 너는 전쟁에서 직접 싸우면서 죽음을 많이 봤겠지⋯."
잠시 멈췄다가, 그는 이스칸다르가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는 것을 넘어 느꼈다.
"전투가 끝난 전장은 그리 아름다운 광경이 아니다.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짓밟힌 시체들, 전사자들을 모아 기리기 무섭다고 도망간 비겁자들 때문에 썩어간 송장들, 곪아 터진 상처로 서서히 죽어가는 병사들을 보았지. 좇을 때마다 파멸의 위험을 감수하지 않았다면 영광은 존재하지 않았을 게다. ⋯그걸 포기하지는 않겠다만⋯ 네가 누리는 소박한 삶도 짐이 한때 믿었던 것처럼 그렇게 지루한 건 아니야."
"여긴 내 집이 아닌 거 알잖아."
웨이버가 무표정하게 말했다.
"두 분이 기억하진 못해도, 나도 너만큼이나 그 사람들의 생활을 침해하고 있어. ⋯그래도 네 말이 맞아, 여긴⋯ 좋은 곳이야."
그는 한숨을 쉬고 고개를 저으며 한참 동안 침묵했다.
"⋯성배전쟁에 대해 읽을 땐 단순한 개념인 것 같았어. 생사가 달린 싸움에서 다른 마술사들과 맞서야 하고, 아마 그들을 죽이려 하거나 그러다 죽을지도 모른다는—아니, 죽거나 죽여야 한다는 건 알았어. 난 그럴 준비가 됐다고 생각했는데, 그런데⋯."
"현실은 좀 다르지. 그렇지 않느냐, 꼬마?"
이스칸다르가 몸을 살짝 기울이자 웨이버는 고개를 들어 간신히 눈을 마주칠 수 있었다. 붉은색이 달빛을 받아 실제보다 더욱 선명해 보였다.
웨이버는 다시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것도 아니야. 그것도 준비됐다고 생각했어. 힘들 거란 것도,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일에 적응해야 한다는 것도 알았다고. 완전히 눈을 감고 여기에 뛰어든 것도 아니니까. 그치만⋯"
웨이버가 심호흡했다.
"아직⋯ 비즈니스일 뿐이었어. 마술사들의 세계에선 종종 그런 경우가 있어. 평생 고개 숙이고 살고 싶지 않다면, 머지않아 무슨 일이 있어도 내 목숨과 상대방의 목숨이 걸린 상황에 부닥치게 된다고. 그리고 만약 다른 마술사들을 죽이지 않고 전투에서 탈락시킬 수 있으면, 그것도 괜찮을 거라 생각했어. 난⋯ 난 절대 아무도 죽이고 싶지 않았어. ⋯오늘 밤까지는."
그리고 그 말을 소리 내어 말하면서, 웨이버는 그것이 자신을 잠들지 못하게 하는 혼란의 일부라는 걸 알았다. 아까의 메스꺼운 느낌이 여전히 가슴 깊이 남아있었지만, 이제 진정하고 나자 그 밑에 깔린 차가운 분노, 특히 무고한 아이들에게 그런 잔인한 짓을 할 수 있는 인간에게는 생명이나 자비를 허락하지 않고 싶다는 욕망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몸을 떨며 고개를 돌려 서번트의 품에 좀 더 완전히 안겼다.
"그놈들을 죽이고 싶어, 라이더. 그놈들이 저지른 짓 때문에 죽었으면 좋겠어. 성배전쟁의 경쟁자라서도, 위협적이어서도 아니라 그냥— 그런 짓을 저질렀으면 지옥불에 고통받아야 마땅하니까."
그는 재차 몸서리치며 깊은 숨을 몰아쉬었다.
"⋯그리고 이런 기분은 별로 좋은 것 같지 않아."
이스칸다르가 한참 동안 침묵했다. 웨이버는 그의 다음 말이 경멸이 될까 봐, 제가 느끼는 의분이 너무 격렬해서 겁먹고 도망치는 나약한 놈이라는 말을 들을까 봐 무서웠다. 그러나 마침내 이스칸다르가 입을 열었을 때, 그의 목소리에는 웨이버가 전에 들어보지 못했던 따뜻한 어조가 담겨있었다.
"너는 다정한 마음을 가졌구나, 꼬마."
이스칸다르가 말했다.
"내가 아는 병사들 중 그런 감정에 빠진 녀석이 많았다. 어떤 녀석들은 그걸 즐기는 법을 배운다. 사람들이 살 자격이 없는 이유를 찾아내서, 그들을 학살하는 데서만 자신을 느끼는 거지. ⋯불편함을 느낀다는 건 네가 그런 길로 들어서지 않을 거라는 뜻이고, 좋은 일이야."
그는 큰 손으로 머리를 쓰다듬으며 웨이버의 입을 다물렸다.
"자, 이제 더 말하지 마라. 조만간 놈들을 찾아내서 응당한 죗값을 치르게 할 테니까. 단, 네가 휴식을 취해야만 말이지."
웨이버는 동의의 한숨을 내쉬며 눈을 감았고, 서번트에게 이제 그만 놓고 잠자리로 돌아가라고 투정하지도 않았다. 오늘 밤만큼은⋯ 이대로 괜찮을 거야.
의식에서 멀어지면서 이마를 간지럽히는 무언가가 느껴졌다. 그건 아마 웨이버의 머리선을 따듯하게 누르는 입술이었을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