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k Text:
프라우는 약간 늦은 점심을 먹으러 식당으로 가고 있었다. 열린 창문으로 후텁지근한 바람이 불어들었다.
"아이고, 기왕 한국도 아닌 거 여름이 된다고 꼭 이렇게 더워야 하나."
자기는 그나마 시원하게 입은 편이지만 로드 같은 경우는 긴 옷에 색도 까매서 보기만 해도 더웠다. 여름 코스츔이나 하다못해 각성별 옷이라도 있는 기사들과는 달리 사시사철 그 옷 그대로이기도 했다.
로드도 코스츔 줘라~ 기왕이면 수영복도 줘라~...안 주겠지만... 하고 혼자만 들리게 중얼거리며 프라우가 복도를 걸었다.
"으아악-!!!"
프라우가 반사적으로 몸을 긴장시키며 이오케이라를 소환했다.
'아니, 이건 놀라서 지른 비명... 싸움은 아닌 것 같은데.'
"까아악!"
그러나 프라우가 생각을 끝마치기도 전에 비명소리가 더 울렸다. 심지어 이번엔 샬롯 목소리였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건가 어리둥절한 프라우에게 이번엔 프람의 비명소리가 들렷다.
"로드!! 그렇게 벌거벗고 다니면 어떡해!!!"
대경실색한 프라우가 식당 앞으로 날아왔을 땐 이미 로드는 프람의 망토로 도롱이처럼 말린 다음이었다.
"에, 뭐야. 벌써 감쌌어?"
프라우는 실망했다.
"당연한 것 아닙니까!"
요한이 소리쳤다.
"그럼 로드의 맨살을 남들이 다 보도록 방치해야 합니까?"
"그건 아니지만. 근데 너 눈은 왜 아직 감고 있는 건데? 로드 지금 머리밖에 안 보이는데?"
"....감히 로드의 속살을 보는 불경을 저지를 수 없어 제 눈을 찌르느라...."
"요한... 그렇게 말하면 내가 정말 벗고 다닌 것 같잖아."
로드가 소심하게 항의했다.
"고작 장갑 벗고 소매 약간 걷은 거라고."
"에, 고작?"
프라우가 좀 더 실망했다.
"로드가 벌거벗었대서 기대하며 달려왔는데..."
"프라우!"
"하긴 우리 로드가 그럴 리 없지. 그럼 맨손이라도 보여주라, 기왕 왔는데."
말로 그치지 않고 프라우가 로드를 감싼 망토를 풀려고 했다. 프람이 기겁해서 그를 밀쳐냈다.
"야 넌 걱정도 안 되냐, 로드가 갑자기 이상해졌는데."
"이상해졌다고 할 것 까지는."
"이상해요."
샬롯이 로드의 말에 반박했다.
"저 아발론 와서 지금까지 로드께서 장갑을 벗은 모습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고요. 명색 힐러인데! 건강검진을 할 때도 손목 살짝 드러난 틈새만 잡아봤고, 뭐 로드가 옷 벗기고 상처 치료할 일이 없었던 건 다행이지만 그래도요. 장갑 꼭 끼고 있어야 하는 것 아니었어요? 잘 때도 끼고 있어서 맨살 보이면 결혼해야 하는 건줄 알았는데."
"아니 결혼을 왜 해!"
어이없다 못해 부끄러워져서 로드가 고개를 푹 숙였다.
"분명 그러한 풍습을 지키는 부족도 있긴 하오. 주군께서는 해당되지 않겠지만."
메이링이 말을 보탰다. 로드는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싶었지만 프람이 망토로 야무지게 말아둬서 손을 빼 들 수가 없었다.
"프람, 이거 좀 풀어줘."
로드가 애처롭게 말했다.
"안 돼. 미하일이 장갑이람 겉옷 가져올 테니까 그 때."
"야, 프람이 이렇게 보수적.... 아니 엘펜하임 기준에선 개방적인가? 암튼 노출에 엄격할 줄은 몰랐네. 너도 다리 맨살 보이잖냐."
프라우가 말했다.
"그치만 난 원래 이랬고. 로드는 안 그랬단 말이야. 팔이 보이다니, 너무 벗은 것 같다고."
"그렇다고 벌거벗었다고 말할 것 까지야."
"로드 기준에선 지나친 노출이니 벌거벗은 거나 다름 없죠."
샬롯이 주장했다.
"원래 옷차림이 적절한지 여부는 장소나 상황에 따라 상대적인 거잖아요? 해수욕장이라면 노출이 심한 수영복도 벗은 게 아니겠지만 광장에서 그렇게 입으면 벌거벗은 게 되니까요. 그러니 누구도 벗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한 로드가 장갑을 벗은 건 분명 벌거벗는 거나 다름없는 게 맞다고요."
"그러네."
프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샬롯이 말을 잘해."
"오, 그럴듯하다."
프라우도 손뼉을 짝짝 쳤다.
"너까지 설득되지 말아줘."
"로드."
미하일이 로드의 겉옷과 장갑을 갖고 달려왔다. 얼마나 서둘렀는지 그가 가볍게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여기 옷을 가져왔습니다."
"하아...."
로드가 한숨을 내쉬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서야 프람이 망토를 풀어주었다.
망토를 풀고 보니 로드의 그 '노출'은 장갑과 재킷을 벗고 셔츠 소매를 두 번 걷은 정도였다.
"역시 뭐 엄청 벗은 것도 아니네."
프라우가 말하자 소매를 내리던 로드가 반색했다.
"그렇지. 이 정도는 그냥 일하다 더워서 조금 걷을 수도 있는 거잖아."
"그치그치."
맞장구치며 프라우가 자연스럽게 로드의 왼손을 잡았다.
"그리고 그렇다고 자극적이 아니라는 건 아니지."
프라우가 로드의 맨 손등에 기습적으로 입을 맞췄다.
로드의 얼굴이 새빨개지더니 화다닥 손을 빼낸 그가 서둘러 장갑을 끼었다.
"무슨 짓입니까 프라우경!"
아직 시력이 덜 돌아온 요한이 뒤늦게 상황을 알아채곤 소리질렀다.
"아니 어떻게 그렇게 파렴치한.... 감히 로드의 맨살에...."
"다들 너무 과격한 것 아니오?"
메이링이 중재에 나섰다.
"확실히 지금껏 보지 못한 모습이었긴 하오만 그렇다고 풍기문란할 정도의 노출도 아니지 않소. 소인이 보기에는 정말로 풍기문란한 건 프라우경의 머릿속 뿐인 것 같소이다."
"아닌데. 요한 머릿속도 풍기문란한데."
"부탁이니 누구도 풍기문란하지 않으면 안 될까?"
로드가 지친 목소리로 부탁했다.
"그런데 왜 장갑을 벗으신 건가요?"
다들 난리치는 동안 당황해서 눈만 굴리고 있던 슈나이더가 가장 중요한 것을 물었다.
"로드께서 하시는 일에는 뭔가,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만."
"어, 그러게요."
샬롯이 정신을 차렸다.
"원인을 알아야 고치든 말든 하는 건데."
"병 같은 거 아니야."
로드가 잠시 망설였다.
"그게, 다들 봤지. 그, 카멜롯의 로드."
로드가 아직 장갑을 끼지 않은 오른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손등에 빛나는 문양이 떠올랐다.
"옮은 거예요?"
샬롯의 말에 로드가 고개를 저었다.
"원래 이랬어. 뮤와 계약했을 때 새겨진 건데, 이걸로 마력의 흐름을 보거나 뒤틀 수 있고 뭐 이런저런 역할을 하는 거거든. 그런데 어릴 때는 힘을 제대로 제어를 못 해서 이게 멋대로 떠오르거나 했어."
문양이 다시 사라졌다. 로드가 그 위에 장갑을 씌웠다.
"위험한 건 아니야. 아니지만, 이상해보일 수 있으니까 가리고 다녔어. 일단은 비밀이고, 또 자칫하면 약점이 될 수도 있어서.... 조절 가능해진 후에도, 가리는 게 익숙해져서 계속 장갑을 꼈고."
"그런데 지금은 왜?"
프라우가 물었다.
"이젠 더 이상 비밀이 아니게 되었으니까."
로드가 말했다.
"기왕 다 보여 버린 거 감출 의미도 없으니까, 이제는 나와 가까운 사람들에게는 맨팔을 드러내도 괜찮지 않을까 했거든. ......다들 그렇게까지 놀랄 줄은 몰랐어."
"그랬구나."
프람이 뒤통수를 긁적였다.
"호들갑 떨어서 미안."
"아냐. 나도 들어보니 놀랄 만 했다 싶고."
로드가 웃어보였다.
"그래도, 조금씩이라도 드러내 보이시는 건 좋을 것 같습니다."
미하일이 말했다.
"저희도 보다보면 익숙해지겠지요. 또... 손재주에는 손끝의 감각도 한몫하니까요. 장갑을 벗고 지내시다보면 어쩌면...."
"로드의 곰손이 나아질지 모른다고?"
프라우가 미하일이 차마 말하지 못한 말을 끝맺었다.
"그건 로드의 모에포인트니까 나아질리 없다고 보는데."
"모에포인트가 뭡니까?"
요한이 물었다.
"있어, 그런 게."
"치, 프라우경은 맨날 그 소리."
샬롯이 타박했다.
"뭐 로드께서 그런 결심을 하셨다면 기사인 저희들이 도와야죠. 우선은 장갑 한 짝 씩만 벗어보고, 팔은 여름휴가 가서 걷으면 어때요? 바닷가라면 맨살이 좀 보여도 덜 놀랄 거니까요."
"그래. 그럼 천천히..."
로드가 고개를 갸웃했다.
"여름에 바닷가 가는 거 확정이야?"
"기사단의 휴식과 로드의 맨팔 적응을 위해서! 기사단 단체 여행으로 다녀오는 거에요!"
"찬성!"
프람도 환호했다.
"...어쩔 수 없네."
로드도 웃어버렸다.
"그래. 시간을 내 볼게."
"로드도 놀아야 해요. 저번처럼 우리는 놀라고 하고 혼자 일하기 없기."
"알았어 알았어. 그럼 이제 밥 먹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