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k Text:
달리 갈 곳이 없었으므로, 카멜롯의 프라우는 아발론의 로드를 따라 그의 나라로 왔다.
어쩔 수 없었다. 자신에겐 '걔'가 자기 로드였지만 세상의 주인공은 아발론의 군주 쪽이었으므로.
아발론의 군주는 너무나 쉽게 그를 기사로 받아주었다. 카멜롯이 했던 짓은 모두 카멜롯의 군주가 짊어지고 갔다고 생각해서 그러는지, 죗값만큼 부려먹어 갚게 해주겠다는 의도인지, 그래도 프라우라서 내칠 수가 없는지, 아니면 개쩌는 빛속 슈터가 필요해서 그러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느 쪽이든 프라우에게는 상관 없었다.
있었다 한들, 그가 할 수 있는 일도 없었다.
그래서 프라우는 그냥 운명이려니 하고 받아들였다. 이대로 아발론의 기사 목록에 한 자리 차지하고 살다가 나중에 더 성능이 뛰어난 캐릭터가 나오면 점차 잊혀질거라고.
체념은 했어도 서임식을 내일로 앞두니 절로 마음이 심란했다. 별로 감시당하고 있는 것도 아니니 밤산책이나 하자고 생각하고 프라우는 자기 방을 빠져나왔다.
"아, 너한테 프라우는 나 하나였는데. 이제는 다섯명 중 다섯번째 신세로구나."
혼자 처량한 말을 중얼거리며 왕성 안 복도를 발 닿는 대로 걸었다. 그러다 주위를 둘러보고 그가 문득 발을 멈췄다.
달빛이 내려쬐는 테라스가 눈앞에 있었다.
"테라스라기보단 만남의 광장에 더 가깝지만 말이지? 왕성 내 조우 이벤트 전담 배경이니까. 어, 그럼 나도 누구 만나게 되나? 로드랑 만나서 영입 이벤스 찍나? 시간도 마침 적당하고?"
프라우는 잠시 망설였다.
영입스가 싫은 건 아니지만 지금 아발론의 군주를 보고 싶지는 않았다. 안 그래도 내일부터 그 녀석 거가 될 텐데, 지금 이런 심란한 마음으로 미리 만나봤자...
"프라우."
프라우가 고개를 들었다.
하얀 맨팔이 그 어느때보다 눈에 박혔다. 프라우는 자기가 꿈을 꾸고 있다고 생각햇다.
'아, 글쿠나. 이거 꿈이구나.'
"왜 거기서 가만히 서 있어, 이리 와."
꿈이지만, 꿈이라서 프라우는 자신의 로드가 부르는 대로 그에게 다가갔다.
"로드."
"작별 인사를 하러 왔어."
카멜롯의 로드가 웃었다.
"그렇게 죽어버려서... 그야 내 기사였던 모두에게 미안하지만 특히 너에게 미안해서."
"알긴 아냐."
프라우가 로드의 팔을 잡았다.
"알긴 아냐고."
그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내가... 얼마나..."
프라우 자신도 미처 인지하지 못했던 서러움이 북받쳐 쏟아졌다.
"왜 이렇게 되어버린 거지? 원인을 묻는 게 아냐. 그저.. 우리가 해왔던 모두가, 그저 이렇게 전부 무의미한 실패가 되어서."
"자, 울지 말고."
로드가 프라우의 눈물을 손으로 훔쳣다.
"내가 빌려온 건 한 세계에서 다른 세계로 넘어가는 틈새의 한순간 뿐이야. 눈물로 낭비하기엔 너무 아깝잖아?"
그건 로드의 말이 맞았다. 프라우는 억지로 눈물을 삼켰다.
"마지막으로 좋은 기억을 만들어주고 싶어."
로드가 프라우의 손을 마주 잡고 한 팔은 그의 허리에 둘렀다.
"네가 슬퍼하지 않고 회상할 수 있을 만한 순간을. 그러니까."
들리지 않는 음악에 맞춰 로드가 프라우를 이끌었다.
"로드."
"내일은 네가 이 세계의 나에게 가게 되겠지."
로드가 속삭였다.
"하지만 아직은 넌 나의 프라우야."
"....그래."
프라우가 로드를 끌어안았다. 춤의 스텝이 흐트러졌으나 상관 없었다. 형식을 칼같이 지키는 건 프라우의 캐릭터성이 아니었으니까.
그가 자기의 로드를 끌어안고 빙글 돌았다.
'그래. 내일 일 같은 건 잊자. 우리 이야기는 끝나 버렸지만 그래도 지금 이 순간 만은.'
"너 처음 만났을 때 생각나네."
프라우가 키득키득 웃었다.
"어두운 왕성에서 우리 둘만 이러고 있어서인가."
"그땐 춤은 안 췄지만 말이지. 성도 무너져 있었고."
로드가 말을 받았다.
"너는 정말로 나의 구원자였어. 네가 아니었으면..."
그러나 둘이 해 온 일은 실패로 끝났다. 그렇게 노력했건만. 처음부터 실패가 정해진 계획이나 다름없었다. 이제 와선 누굴 원망해도 소용 없지만.
"너야말로."
프라우가 로드의 정신을 잡아채었다.
"우리의 마지막 순간에 더 집중해주지 않겠어?"
"미안."
쓴웃음을 지으며 로드가 프라우를 끌어안았다.
"널 두고 떠나게 되어 미안해."
"그렇지만 어쩔 수 없었던 거지. 첫 단추부터 잘못 꿰었으니까. 이제와서 바로잡을 방법 같은 건 없고."
"..."
"웃어줘. 마지막에 보는 건 웃는 얼굴이었으면 좋겠어."
"그래."
로드가 힘써 웃었다. 당장이라도 스러질 것 같은 덧없는 미소를 보며 프라우는 다시 눈물을 삼켰다.
"나 너를 잊지 못할거야."
"알아."
"내게 남은 시간 동안, 계속."
"나도 그래."
로드가 프라우에게 고개를 숙였다.
두 사람의 입술이 닿았을 때 프라우는 직감했다. 들리지 않던 노래, 이들이 빌려온 찰나의 시간이 이제 끝났다는 걸.
조금이라도 더 붙들어 보려고 팔을 뻗었지만 품에는 아무 것도 안기지 않았다. 눈을 뜬 프라우에게는 차가운 달빛만이 내려쬐였다.
"아, 눈 감지 말걸."
눈을 뜨고 있었다 한들, 그가 사라지지 않았을 리는 없지만.
그래도 웃고 있는 걔를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볼 수 있었다.
웃으며 떠난 사람을 울며 회상하는 건 맞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