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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nguage:
한국어
Stats:
Published:
2024-06-13
Words:
596
Chapters:
1/1
Kudos:
17
Hits:
386

무릎베개

Summary:

온달이 여행자에게 무릎베개를 해줍니다.

Work Text:

 

 

희귀한 약초가 군락으로 자라는 곳을 발견했다며 라르곤이 브랜든과 산등성이 위로 올라가 버려, 남은 일행들은 잠시 산중에서 기다리게 되었다.

다람쥐처럼 바위틈을 기어올라 사라지는 라르곤의 뒷모습을 보고 있는 여행자를 온달이 뒤에서 잡았다.

"설마 도우러 가겠다고 하는 건 아니겠지? 네 재주론 저기 못 올라간다."

"그 정돈 저도 알아요. 온달님은 절 무슨 사고치는 애 취급을 하나요."

온달을 흘겨보곤 여행자가 풀밭을 둘러보았다.

"안 그래도 요 며칠 계속 산행이라 힘들었는데 잘됐어요. 좀 쉬어야지."

그리곤 적당히 판판한 곳을 골라 벌렁 드러누웠다.

"낮잠 잘 거니까 방해하지 말아요."

"허."

남자 앞에서 무방비하게 누워버리는 여행자를 보고 온달은 잠시 기가 막혔다.

"애 아니라면서 풀밭에 그냥 드러눕긴."

"그냥 안 드러누우면, 이불이라도 깔아요?"

"그편이 낫겠군."

생각한 걸 그대로 말하자니 이미 야영하면 나란히 누워서 잠도 자 본 사이에 새삼 말하기 좀 쑥스러운 잔소리라, 온달은 그냥 여행자 옆에 털썩 주저앉았다.

"적어도 뭘 베고 눕던가, 이러면 머리카락에 다 흙이 묻잖나."

말하며 온달이 여행자의 머리를 잡아 자기 쪽으로 당겼다. 여행자가 놀란 표정으로 그를 따라 굼실굼실 움직였다.

"어, 무릎베게해주시게요?"

"못할 이유라도 있나?"

"그건 아니지만..."

여행자의 머리를 들고 머리카락을 조심스럽게 정리해준 온달이 자기 허벅지에 여행자의 머리를 얹었다.

"자, 어떠냐. 편하지?"

"잠시만요, 좀..."

편한 자세를 찾아 머리를 이리저리 움직이던 여행자가 손으로 온달의 허벅지를 더듬었다.

"아니 무슨 무릎베개가 이렇게 딱딱해요. 무슨 돌 갖다 괴어놓은 줄 알았네."

여행자가 눈을 가늘게 뜨고 온달을 올려다보았다. 온달은 뻔뻔하게 당당한 표정을 했다.

"그러냐? 이거 미안하게 됐군. 알다시피 내가 좀 근육이 딴딴해서 말이다. 그래도 다 너 들고 다니느라 이렇게 된 거니 그냥 베고 있는 게 어때. 가우리 속설로는 돌베개가 건강에 좋다고도."

"그럴 리가 없잖아요."

여행자가 온달의 허벅지를 꼬집으려다 손가락이 안 들어가자 주먹으로 때렸다.

"이거 힘 줘서 딱딱한 거 다 알거든요? 근육단련해도 힘 안 주면 부드럽고 누르면 들어가는데, 일부러 날 놀리려고 이러는 거 모를 줄 알아요?"

"이런. 들켰나."

온달이 웃음을 터트렸다.

"아 진짜."

웃는 온달을 노려보며 여행자가 아직도 돌처럼 딱딱한 허벅지에서 일어나려고 몸을 틀었다. 그러나 그가 머리를 다 들기도 전에 온달이 그의 어깨를 가볍게 눌렀다.

"그래그래. 힘 빼 줄테니 화 풀어라."

그리고 온달이 몸에서 힘을 빼자 진짜로 다리가 머리 대기 편할 만큼 물렁해졌다. 골이 난 듯 입이 댓발 나온 여행자가 확인하듯 손으로 온달의 다리를 꾹꾹 눌러보곤 다시 머리를 뉘였다.

"어휴 진짜 이게 대장군인지 동네 장난꾸러기인지."

"농 좀 쳤기로서니 대장군직을 빼앗겠다고? 아이고, 이 주인은 가혹하시구려."

여행자가 뜨악한 얼굴로 온달을 올려다보았다.

"주인은 또 뭐에요!"

"그야 나는 짐말 신세니 응당 주인이 있어야지."

"저는 짐덩이고요, 말 주인이 아니라. 그렇게 생각하면 짐 주인이 따로."

"거 장난 한 마디 갖고 너무 물고 늘어지지 말고 낮잠이나 자라. 피곤하다며."

온달이 여행자의 눈 위로 손을 덮어 햇빛을 가려주었다.

"여유 있을 때 쉬어둬야지."

"쉴 생각이었어요, 온달님 장난에 잠이 다 달아나서 그렇지."

그렇게 말하면서도 여행자는 일어나지는 않았다. 온달의 허벅지를 베고 누운 채, 그가 다시 장난을 치나 감시하듯이 이따금 그의 다리 근육을 만지작거렸다.

"그렇게 경계 안 해도 또 장난치지는 않을 거다."

다리 너무 만지지 말라고 말하는 대신 온달이 그런 말을 했다.

"그러니 마음 놓고 자라."

가볍게 머리를 쓸어주며 온달이 여행자를 지켜보았다.

온달이 더 장난치지 않으리라 믿는 건지 여행자의 얼굴 표정이 서서히 풀어졌다. 숨소리가 느려지며 끔벅거리던 눈이 스르르 감긴다. 허벅지를 누르던 손에서 힘이 빠져나가 미끄러지는 걸 온달이 붙잡아 자는데 불편하지 않도록 바닥에 내려놓았다.

"산길이 고되긴 했나보구나, 이렇게 빠르게 잠들다니."

온달은 착잡한 기분으로 여행자의 잠든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이 녀석은 어떻게 남자 다리 촉감 같은 걸 알고 있는 거지.'

쓸데없는 확대해석일지도 모른다. 단련한 여자 기사의 몸을 만져도 근육의 촉감 정도는 알 수 있을 터였다.

그렇지만 어쩐지 온달은 그게 남자였을 거라는 생각을 버릴 수가 없었다.

'역시 어딘가의 귀인이라, 강한 기사가 호위나 친구로 붙어있었겠지... 아니면.'

온달이 고개를 저었다.

자기는 이 여정이 끝나면 가우리로 돌아가야 했다. 어디의 누군지는 몰라도 가우리인이 아닌 것만은 분명한 여행자를 데리고 돌아갈 수는 없었다.

'두고 떠나야 할 사람이 어찌 분수에 안 맞는 욕심을 낼까.'

그래도 지금 여행자가 베고 잠든 다리는 그의 것이었다.

머리카락에 붙은 짚검불을 떼어주는 척 머리 한 줌을 손에 쥔 온달이 살며시 그 머리카락에 입술을 눌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