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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tegory:
Fandom:
Relationships:
Characters:
Language:
한국어
Stats:
Published:
2024-06-17
Words:
1,593
Chapters:
1/1
Kudos:
4
Hits:
63

사내연애

Summary:

작은 소동

Work Text:

엘리사 쿠슬랜드 공녀는 부유했고 덕분에 재능을 일찍이 찾았다. 그의 손은 함정 제작에 쓰는 철사에는 알맞아도 류트의 선에는 부적합했고 독액을 만들 수는 있어도 요리에는 영 소질이 없었다. 뭐, 하인 부리는 공녀가 요리할 일이 뭐가 있겠냐마는.

하지만 그런 평화롭고 속 편한 생활도 잠시 가문에 큰 비극이 닥치고 엘리사는 팔자에도 없다고 생각했던 회색 감시자가 되었다. 재미로 익힌 함정 제작은 생존 도구가 되었고 단련을 위해 익힌 검술은 자신을 보호하고 어둠의 피조물을 죽이는 생존 기술이 되었다. 편안한 베게 대신 딱딱하고 냄새나는 천 뭉치를 베고 냉기가 올라오는 바닥에서 자게 되었다. 사냥이 취미였던 엘리사여도 그런 갑작스러운 변화는 적응하기 힘든 일이었지만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 점점 적응해 나갔다. 알리스터와 모리간 그리고 엘리사 셋으로 시작했던 일행은 점점 불어났다.

찬 오트밀 뜨거운 오트밀 가릴 상황이 아니라 심지어 안티바에서 와 친히 자신을 죽이려던 엘프 암살자까지 받아들였고 야영지는 복작복작하게 느껴질 정도가 되었다.

이제 큰 문제는 없었다. 다른 엘프가, 골렘이, 인간이, 드워프가 그를 평범한 인간으로 취급하는 것도 익숙해졌고 냉기가 올라오는 모포는 마법으로 데우면 된다는 걸 깨달았고 유랑 중의 요리는 대단한 기술이 필요하지 않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유일한 문제라면, 그 암살자와 사랑의 빠졌다는 점?

 

 

“류트?”

모닥불 앞 렐리아나의 눈이 커졌다. 데너림의 노점상이 팔던 중고품이라 이곳저곳 흠집이 나 있었지만, 류트를 건네받은 렐리아나의 표정은 안드라스테의 은총을 선물했을 때만큼이나 상기해 있었다.

“매일 이야기만 들으려니 지루해서 말이야. 노래가 있어야 흥이 나지 않겠어?”

엘리사는 장난기 넘치는 표정으로 말했다.

“음유시인들이 다 노래를 잘 부르진 않을 텐데?”

건너편에 있던 모리건은 제발 노래를 부르지 말라는 듯 렐리아나를 보며 말했다. 류트의 등장으로 렐리아나에게 시선이 쏠렸다. 셰일은 ‘이녘의 연회에는 관심 없다.’더니 저 멀리 렐리아나의 류트를 신기한 눈으로 보고 있었고 윈은 기뻐하는 렐리아나를 보며 싱긋 웃었다. 엘리사의 발치에 엎드려있던 마바리마저 꼬리를 흔들며 렐리아나에게 향했다.

“음유시인들의 노래 실력은 대단하지요. 종종 협회 탑에 음유시인들을 초대해 노래와 이야기를 듣곤 했답니다. 어린 수습생들을 위해서요. 아이들이 참 좋아했지요.”

윈이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렐리아나의 공연을 볼 수 있는 건가? 한 곡조 뽑아보라고! 인간의 노래는 어떤지 궁금하군!”

오그렌이 몇 잔째인지 모를 맥주를 따르며 말했다.

“오 이런, 재앙이 일어나기 전에 난 그만 자러 가야겠어. 이 밤에 노래를 부르면 흉물들이 몰려올걸?”

모리건은 벌떡 일어서더니 일행들과 떨어진 자신의 공간으로 향했고. 엘리사는 낄낄거리며 웃었다.

“노래라고 하면. 음… 성기사들은 재미없는 노래만 불러서… 딱히 생각나는 게 없군.”

알리스터가 엘리사와 렐리아나를 번갈아 보며 말했다.

“저도 많은 노래를 아는 건 아니지만요. 특히 퍼렐던 노래는 잘 알지 못해요.”

하지만 말과 다르게 렐리아나는 조율을 위해 헤드의 튜닝머신을 돌리며 현을 튕기고 있었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왜, 그래도 아는 노래는 있을 거 아냐. 나도 궁금해.”

엘리사가 거들었다. 그때 화답하듯 마바리가 짖었다. 오그렌 마저 술잔을 멈추고 기다리고 있었다.

“노래라면 안티바도 지지 않지.”

제브란이 끼어들었다. 엘리사의 시선이 그에게 향했다.

“넌 어떤데?”

“난-. 일단 암살자라서 말이야. 노래를 부르면 들키겠지.”

“못 부른다는 거네?”

제브란은 어깨만 으쓱해 보였다. 부정도 긍정도 아님을 가장해서.

“생각해보니, 저도 올레이 출신 음유시인은 렐리아나가 처음이군요.”

윈이 말했다.

“오 이런, 제가 올레이 대표가 되는 건가요?”

“나에게는 인간 대표인데?! 임무가 막중해졌군!”

오그렌이 크게 웃으며 말하자 모두가 따라 웃었다.

“음… 그리핀에 관한 노래인데, 올레이에도 비슷한 노래가 있어서 제일 먼저 외운 노래예요.”

렐리아나는 마지막 음을 맞춰 현을 손으로 튕기며 말했다. 그리고 몇 번 음을 확인하곤 자세를 고쳐 앉아 목을 가다듬었다. “혹시 알면 같이 불러주세요. 처음 불러보거든요.” 렐리아나가 덧붙였다.

이윽고 노래를 시작했다.

“사자 한 마리가 있네,

그의 이름은 멜린,

멜린은 모험을 떠나네.

저 먼 방황하는 언덕으로-.”

명랑한 목소리가 고요한 야영지에 퍼졌다. 마바리는 귀를 쫑긋하며 들었고 윈은 아는 곡조인지 소리 내지 않고 따라 부르고 있었다.

“길은 걷던 멜린에게 독수리가 물었네.”

“사자는 미련하게 걷는구나!

난 창공을 가르는 날개가 있는데.”

한 소절이 끝나자마자 엘리사가 누구인지 모를 목소리를 흉내를 내며 독수리가 하는 말을 노래하기 시작했다.

“방황하는 언덕을 알고 있니?

그곳에는 날개가 필요 없어.”

화가 난 독수리는

사자에게 다가갔네.

날카로운 발톱이 독수리를 낚아챘네.

사자에게 날개가 돋았네.”

“이것은 그리핀의 이야기

이것은 꾀쟁이 멜린의 이야기-.”

이어 후렴구가 되자 엘리사와 렐리아나가 함께 부르기 시작했다. 노래는 몇 절 더 이어졌다. 엘리사는 정말이지 오랜만에 신나게 노래했다. 오그렌과 알리스터가 적절하게 추임새를 넣었다. 엘리사는 자신 주변에 앉아있는 동료를 보다 제브란과 눈이 마주쳤다. 그는 미소 짓고 있었지만 엘리사의 눈에는 다르게 보였다.

 

 

술도 모자라 노래까지. 소박하지만 왁자지껄한 잔치가 끝나자 야영지에는 오그렌의 코 고는 소리만 들렸다. 엘리사는 잠시 침낭에 누웠다가 다시 일어나 앉았다 대재앙이니, 케일런이니 하는 것들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던 순간이었는데 제브란의 표정이 마음에 걸렸다.

혹시 이런 잔치 자리를 싫어하는 걸까? 아니면 모리건처럼-.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말도 안 된다는 결론을 내렸다. 제브란은 제 입으로 현재의 쾌락을 좇는다고 한걸. 안티바에 먹고 마시고 노래하는 잔치가 없을 리 없었다.

너무 깊이 생각하는 걸까. 엘리사는 턱 끝으로 손끝을 매만졌다. 그가 사랑하는 엘프는 현재의 쾌락이니, 어쩌고저쩌고 말은 많지만, 이상하리만치 자신의 기분이 어떠한지는 잘 ‘말’ 해주지 않았다. 귀 간지러운 말들은 해도 진지한 이야기는 요리조리 그림자마저 피해 갔다.

엘리사는 불침번을 서느라 아직도 모닥불을 지키고 있을 제브란을 떠올렸다. 그리고 가방을 뒤져 제브란 몰래 숨겨 두었던 안티바 산 브랜디와 나무 잔을 꺼내 들었다. 제브란 몫의 잔은 본인이 가지고 있을 테니까.

엘리사는 조용히 천막을 나갔다. 제브란은 바로 기척을 눈치채고 그를 보았다. 엘프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내 사랑.”

그가 제브란에게 다가가자 제브란은 불쏘시개를 내려놓았다. 엘리사는 등 뒤로 숨겨놓았던 브랜디 병을 들어 보였다.

“오, 대체 어디서 구한 거야?”

그가 반색하며 병을 받곤 병 라벨을 보았다.

“꽤, 아니 정말 좋은 브랜디야.”

“저번에 주점에 갔을 때 내가 쿠슬랜드 가문 사람인 걸 알고 슬쩍 권유하더라고. 아직 거기까지 우리 가문 상황이 닿진 않았는지…. 저번 거랑 다른 거더라. 좀 비싸긴 했지만, 흥정했지.”

반쯤 협박이었지만. 웃는 얼굴을 보니 역시 옳은 선택이었다. 제브란이 그를 보았고, 엘리사가 고개를 끄덕이자 제브란은 망설임 없이 병을 열었다.

“지난번보다 과일 향이 좋아.”

그가 간단하게 감상을 덧붙였다. 제브란은 독을 감별하는 데 뛰어나다는 게 사실 술인가 싶어질 정도로 잘 알았다. 일하며 익히게 됐다고 하지만 엘리사는 이런 고급술에 별다른 관심이 없어 그때와 다른 점을 느끼지 못했다. 그의 어머니도 엘리사에게 이런 술을 즐기는 방법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했다. 그만큼 둔했기 때문이다.

제브란은 앉은 자리 아래 바로 두었던 자신의 잔에 얕게 깔릴 만큼만 따르고 엘리사에게 건넸다.

“아니, 내 선물인데 내가 먼저 마실 수는 없지.”

엘리사가 완곡히 거절하자 제브란은 거절하지 않고 마셨다.

“음. 좋아. 아주 좋아. 안티바에서 봤던 넓은 포도밭이 기억나. 거기서 목표를 달성하고 지하창고에 있던 포도주 몇 병을 슬쩍 했었어. 전부 최상품이었는데, 이 브랜디가 더 멋져.”

엘리사가 그 말을 듣고 작게 웃었다.

“하지만, 감시자님. 이 시간에 이걸 가져온 건 이유가 있을 것 같은데? 여길 비워 둘 수는 없어. 야외에서 해보는 것도 묘미이긴 하겠지만….”

제브란이 다시 병을 닫으며 말했다. 엘리사의 눈이 가늘어졌다.

“아니, 아니. 그런 게 아니야. 그건 아닌데-.” 엘리사가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말이 이어질 듯 입술이 벌어졌지만, 단어가 만들어지진 않았다. 막상 말하려니 무언가 어색했다. 왜 내가 노래하는데 웃지 않았어? 좋아하지 않았어? 이건 아닌데.

이런 말을 하는 데에는 엘리사도 그리 능숙하진 않았다. 그는 설득을 가장한 협박에 더 능했다. 게다가 제브란같은 상대도 처음이고. 그는 항상 다 알고 있다는 듯이 말했다. 전혀 모를 때마저. 그런 태도는 엘리사를 교묘하게 충족시켰다. 말하지 않아도, 엘리사의 모든 걸 알아주는 상대. 항상 사랑의 밀어를 속삭이고, 내 것이라고 말해주며 가벼운 안정감을 주는 태도.

“아까 말이야.”

엘리사는 망설이다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아까?”

“렐리아나가 노래를 부를 때.”

“네가 렐리아나랑 노래를 부를 때?”

흠. 제브란이 고쳐 말하자 엘리사가 알쏭달쏭한 표정을 지었다.

“그게 싫었어?”

“싫었다니?”

“내가 노래 부른 거 말이야.”

“내 사랑, 카나리아의 지저귐을 싫어하는 존재는 없어. 흉물마저 귀 기울일 거야.”

그래. 고마워. 내가 좀 하지.

엘리사는 그 말로 끝마치고 싶었다. 하지만 제브란은 또 귀에 듣기 좋은 말을 하며 뱀이 울타리 넘듯 아무 일도 아닌 양 넘어가려 하고 있었다.

“아니, 내가 렐리아나랑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니까 영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단 말이야. 내 실력이 문제인 거야, 아니면 질투라도 한 거야?”

“잠깐, 잠깐, 잠깐. 감시자님. 그 단어를 입에 담지 말아. 그런 건 ‘너그의 똥구멍’ 같은 거야. 아무도 보고 싶어 하지 않아.”

제브란은 엘리사의 말이 끝나자마자 질색하며 말했다. 엘리사는 ‘너그의 똥구멍’이라는 말에 웃을 뻔했지만 웃지 않고 얼굴을 굳혔다. 구겨졌던 제브란의 얼굴은 서서히 펴졌지만 엘리사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그러면 어물쩍 넘기려 하지 말고. 그 노래에 슬픈 사연이라도 있어?”

“그런 건 아니야.”

엘프는 인간에게 백기를 들며 말했다. 제브란의 입에서 한숨이 나왔다.

“음, 이런 얘긴 하고 싶지 않은데. 그냥 넘어가는 건 어때?”

제브란이 말했지만, 오히려 엘리사의 호기심은 더 커졌고, 그 답으로 고개를 저었다.

“역시 이 술에 자백제를 탄 거지?”

“맞아. 가문 대대로 내려오는 쿠슬랜드 제 자백제지. 안티바의 까마귀가 자백제도 구별 못 한다니 어떻게 된 거야?”

제브란은 하하, 하고 인위적으로 웃었다. 그는 답답한 듯 다시 브랜디 병을 땄다.

“으음. 내 잘생긴 외모와 다르게 지금부터 나올 말은 잘생기지 못해.”

“그건 내가 결정할게.”

엘리사는 무릎 위에 팔꿈치를 올려놓고 턱을 괬다. 제브란은 한번 그를 보더니 브랜디를 처음 따랐던 양의 배를 따르고 한 번에 들이켰다.

“가끔 널 알고 지낸 지 얼마 안 됐다는 걸 깨달아. 네가 노래를 그렇게 부를 줄 안다는 것도, 내가 모르는 노래를 알고 있다는 것도.”

“그리고?”

“류트를 배워 둘걸. 하는 생각을 했지.”

쪼르르. 모닥불이 타들어 가는 소리를 배경으로 액체가 흐르는 소리가 났다. 엘리사는 잠깐 제브란이 한 말을 소화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러니까.

“‘너그의 똥구멍.’”

엘리사는 기침하듯 토해냈다. 제브란은 브랜디를 마셨다. 안티바산 브랜디는 웬만한 술보다 도수가 낮았고 제브란에게는 음료수 수준일 수도 있었다. 고로 그는 상황을 회피하기 위해 취하려야 취할 수도 없었다. 그저 은신 기술을 이용해 도망가고 싶은 기분이었다.

모닥불 때문에 더운 건지, 아니면 술 때문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역시 이 감시자는 맨입으로 선물을 주는 법이 없었다. 이번에는 자백제 대신이다. 뇌물조차도 아니었다. 하지만 금세 표정이 변해서 재밌다고 웃고 있는 얼굴을 보니 썩 나쁘진 않았다.

“맙소사.”

제브란이 중얼거렸다. 큰일이 터진 것처럼. 눈앞의 암살 대상을 더 이상 죽일 수 없게 된 것처럼. 손으로 얼굴을 쓸었다.

“나도 너에 대해 많은 걸 모르는걸. ‘너그의 똥구멍’ 같은 것도 말이야.” 엘리사가 허리를 펴 앉으며 말했다. “그러니까 굳이 숨기지 않아도 돼.”

엘리사가 그의 옆에 바짝 다가앉으며 말했다. 하지만 제브란에게는 별달리 위로되진 않았다. 무엇보다도 그런 감정에 휘둘리고 싶지 않았다.

“난 성에서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았고, 넌 더 이상 까마귀가 아니지. 앞으로 할 건 많아.”

엘리사가 웃으며 말했다.

제브란은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누군가 자신을 속이려는 간계같이 느껴졌다. 그런 좋은 게 있을 리 만무하다.

계속.

제브란의 머릿속에서 이 단어만이 빙빙 돌았다. 까마귀 단은 자신을 쫓을 테고, 빌어먹을 대재앙은 어떻게 되는지도 몰랐지만 어쨌거나 지금까지 이 회색 감시자의 말은 믿을만했다.

“슬슬 교대 시간일 텐데? 이제 자러 가. 다음은 나잖아.”

제브란은 말없이 미소 짓곤 엘리사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 잘자. 내 사랑. 그리고 속삭였다.

제브란이 자신의 천막으로 향하고 엘리사는 덩그러니 놓여있는 제브란의 잔을 보았다. 잔 안에는 브랜디가 조금 남아있었다. 엘리사는 남은 브랜디를 마셨다. 여전히 잘 모르겠지만 그가 말하는 포도밭 같은 게 그려지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