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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앞에 놓인 길은

Summary:

크리스티아누와 리오넬이 마침내 만나서 같이 저녁을 먹는다.

Notes:

Jimmy Burns의 ‘Cristiano and Leo: The Race to Become the Greatest Football Player of All Time’을 읽고 썼습니다.

Work Text:

옷이 저게 뭐지.

‘신경 좀 써서 와.’ 크리스티아누는 분명 리오넬에게 그렇게 말했었다. 아무래도 그렇게만 이야기해서는 안 됐나보다. 축구에 관한 게 아닌 한 리오넬은 모든 걸 하나하나 다 알려줘야만 하는 인간인게 분명했다.

아니면 애초에 격식 따위는 그냥 신경쓰지 않고 다니는 걸지도 몰랐다. 놀랍지도 않았다. 둘 중 잘 꾸미고 멋지게 다니는 쪽은 항상 크리스티아누였다. 더 잘생긴 건 말할 필요도 없었다.

아무리 그래도 저런 옷을 입고 오는 건 용납할 수 없었다. 헤어스타일부터 옷까지 모든게 끔찍했다. 평소 하고다니는 모습을 감안하고서도 그랬다.

크리스티아누는 오늘 준비하는 데만 장장 네 시간이 걸렸다. 그 결과- 머리는 자신이 봐도 완벽했다. 피부도 흠잡을 데가 없었다. 새로 산 다이아몬드 귀걸이가 반짝거렸고, 청바지는 다리에 보기 좋게 달라붙었다.

리오넬은 반대로 침대에서 막 일어난지 5분도 안 된 모습이었다. 저녁 식사 자리에 티셔츠 차림이라니.

그래. 티셔츠. 밋밋한 흰색 티셔츠가 작은 몸에 볼품없이 늘어져 있었다. 원래 입어야하는 것보다 두 사이즈는 더 커보였다. 바지는 또 어떻고. 워싱된 청바지 밑단이 발목께에서 아무렇게나 접혀있었다. 최악이었다.

심지어 신발도 못생기기 짝이 없었다. 당연했다. 아디다스였으니까.

리오넬의 취향에 새삼스레 놀란 건 아니었다. (스타일이라는게 존재하는지도 의문이었다.) 리오넬은 항상 지독할 만큼 옷을 못입었다. 팬들은 리오넬의 그런 모습까지 소박하다며 열광하곤 했다. 크리스티아누를 사치스럽다며 경멸하는 건 덤이었다. 망할 뉴스 기사들은 항상 그랬다. 리오넬 메시가 하는 건 모두 훌륭하고,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하는 건 죄다 형편없다고 했다.

입술이 비틀렸다. 익숙한 분노가 치밀었다. 하지만 크리스티아누는 화를 꾹 눌러 삼켰다.

이런 생각이나 하면서 혼자 열을 낼 수는 없었다. 어쨌거나 같이 저녁을 먹자고 먼저 연락한 사람은 자신이었다. 리오넬이 아직 쓰고 있는지 아닌지도 모르는 번호로, 잘 하지도 않는 문자를 보냈더랬다.

그리고 놀랍게도 리오넬은 알겠다고 했다.

몇 년 동안이나 크리스티아누는 시상식에서 수많은 카메라와 마이크를 앞에 두고 넌지시 말하곤 했다. 언젠가 그와 같이 저녁을 먹으면 좋겠어요. 하지만 정말로 이런 날이 올 줄은 생각지도 못한 것 역시 사실이었다….

서로 알게 된 지 거의 20년이 지난 지금, 둘은 같이 저녁을 먹는다. 곧 ESPN이 달려들고 기자들과 옛 동료 선수들이 앞다투어 말을 보탤 게 눈에 보였다.

“크리스티아누.” 리오넬이 말했다. 기억하던 그대로, 조용한 목소리였다.

리오넬은 하나도 변한 게 없었다. 저 알 수 없는 까만 눈동자도, 작은 키도. 모두 예전과 같았다.

크리스티아누가 지금까지 달려오는 동안 늘 그의 옆에 있던 유일한 존재는 다름 아닌 리오넬이었다. 동료들은 계속해서 바뀐다. 때로는 이적을 하기도 한다. 사람들은 자신을 사랑하다가도 곧 증오한다. 하지만 리오넬은 항상 그대로였다. 십수년 전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랬다. 작고, 짜증날 만큼 천재같고, 바보 같은 헤어스타일을 하고선 존재만으로도 매일 크리스티아누의 삶을 힘들게 만들었다.

“여기 좋다,” 리오넬이 실없이 말했다. 그리고 크리스티아누의 맞은편에 앉았다. 세련된 식당에서 티셔츠에 청바지만 입은 모습이 꼭 혼자 딴 세상에서 온 사람 같았다.

그러고보니 리오넬과 단둘이 같은 공간에 있는 것도 처음이었다. 경기장의 불빛도, 카메라도, 집요하게 따라붙는 시선도 없었다.

볼만한 광경일 것이다. 세상에서 제일 유명한 두 사람이 촛불까지 켜놓고 마주앉아서 같이 저녁을 먹는 모습이라니. 레반도프스키부터 네이마르, 반다이크… 누구라도 눈에 불을 키고 구경하려 들 게 선했다. 하필 자신과 레오와 함께 같은 시대에 태어나 발롱도르 후보자에 그치기만 한 이들 역시 마찬가지일테지.

“자켓 예쁘다,” 리오넬이 말했다. 저 특유의 웅얼거리는 발음. 문득 처음 만났을 때가 생각났다. 크리스티아누는 리오넬이 하는 스페인어를 거의 알아들을 수 없었다. 하기야 자신이 딱히 스페인어를 잘하던 때도 아니긴 했다. “괜찮은데.”

말을 길게 하면 안 된다는 법이라도 있는건가?

“그게 다야?”

“멋있어.”

“좀 낫네,” 크리스티아누가 짐짓 거만한 투로 대꾸했다. “더 해봐.”

“보기 좋아,” 리오넬이 받아주려는 듯 덧붙였다. “마음에 들어. 잘생겼어. 눈부셔.”

크리스티아누는 만족스럽게 흥얼거렸다. “네 옷은 영 아니다.”

리오넬은 딱히 기분나빠하지 않았다. “모든 사람이 슈퍼모델같을 수는 없잖아.”

크리스티아누가 맞받아치려고 입을 연 찰나였다. 둘이 앉아있는 룸의 문이 열리고 웨이터가 걸어들어왔다.

그는 평범한 미국인이었다. 별 특징 따위 없는 일반인이었는데, 아마 리오넬이 축구를 하지 않았다면 딱 저랬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직원은 점잖았다. 둘이 누군지 모르거나, 알아도 관심이 없는 모양이었다.

미국은 이런게 좋았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들에게 신경도 쓰지 않았다. 리오넬의 제정신 아닌 잘난 팬들도 여기서는 딱히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

크리스티아누는 사람들의 관심을 즐기는 편이었다. 자신때문에 주변이 시끄러워지는 건 늘 환영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사적인 자리였다. 조명도 관중도 없이 조용하게 저녁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마실 것부터 준비해드리겠습니다.” 웨이터가 말했다. “와인을 추천해드릴까요?”

“저는 됐습니다.” 크리스티아누가 말했다. 술은 지금은 물론 앞으로도 절대 입에 댈 생각이 없었다. “그냥 물만 주십시오.”

웨이터는 고개를 끄덕이고 리오넬에게 물었다. “선생님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미국에 산지 벌써 몇 달인데도 리오넬은 스페인어만 고집하는 사람답게 방금 들은 말을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눈치였다. 웨이터를 보며 눈만 깜빡이는 모습이 당황스러워 보였다.

리오넬이 곤란해하는 건 재밌었지만 크리스티아누는 이쯤에서 그냥 도와줄 생각으로 입을 뗐다. “콜라로 주시면 됩니다.” 건강에 좋진 않아도 크리스티아누는 레오가 좋아할 걸 알았다.

웨이터는 고개를 끄덕이며 곧 돌아오겠다고 하고는 룸을 나갔다.

둘만 남았다. 방 안에는 침묵만이 흘렀다.

리오넬은, 그를 만나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다시피, 대화를 이끌어나가는 데는 처참할 만큼 재주가 없었다.

뭐 괜찮았다. 크리스티아누가 두 사람분 만큼 말하면 됐다.

가늘고 긴 손가락이 메뉴판을 넘겼다. 솔직히 크리스티아누는 별로 배가 고프지 않았다. “뭐 먹을건데?”

“글쎄.” 리오넬이 메뉴판을 보면서 말했다. “염소 고기도 있다.”

크리스티아누는 부러 헉 소리를 내고 말했다. “날 먹는 건 사양이야.”

바보 같은 말장난이었지만 리오넬은 쿡쿡 웃었다. 크리스티아누도 따라 웃었다. 리오넬은 웃을 때 눈가에 주름이 생겼다. 괜히 눈길이 갔다.

“스테이크 먹어야겠다.”

그럼 그렇지. 소스에 절여진 데다 감자까지 곁들여 나오는 음식이라니. 조금만 관리에 느슨해졌다간 곧 같이 뛰는 미국인들처럼 살이 찔게 뻔했다. “직접 시킬 수 있어? 대신 주문해줄까?”

“나도 영어 조금은 해.” 크리스티아누가 미심쩍은듯 바라보자 리오넬은 고쳐 말했다. “알아는 들어.”

크리스티아누는 피식 웃었다. “아까는 별로 안 그래보이던데.”

“중요한 건 다 알아.” 리오넬이 대답했다. 음식을 주문하는 건 중요하지 않다는 건가? “심판들이 뭐라고 하는지 정도는 이해할 수 있어.”

“항의도 하고?” 크리스티아누는 눈썹을 들어올리며 물었다. “아, 그럴 일이 없겠구나. 어차피 다 매수하지 참?”

크리스티아누는 이제 곧 마흔이 다 되어갔지만 여전히 애새끼 같은 면모가 있었다. 조지나가 늘 하는 말이기도 했다.

리오넬은 얼굴을 찡그렸다. 수염이 움찔거렸다. 수염은 길고 부스스했지만 나름대로 리오넬에게 잘 어울렸다. 턱이 한층 다부져보였다. “우리는 그런 적 없어.”

“바르셀로나 이야기를 할 때 아직도 ‘우리’라고 하는데.”

“그럼,” 리오넬이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나는 언제까지나 바르샤를 사랑할 거야.”

크리스티아누는 리오넬의 다리에 있는 문신을 떠올렸다. 몸 곳곳에 있는 뜻모를 못생긴 그림들에 새로 더해진 문양이었다.

“그럼 돌아가지 그랬어?” 크리스티아누가 물었다. 바르셀로나가 재정난을 겪고 있긴 해도, 클럽 레전드를 위해서라면 그들은 어떻게해서든 분명 힘을 썼을 터였다. “다들 두 팔 벌려 환영했을텐데.”

리오넬은 앉은 자리에서 몸을 뒤척였다. 키도 그렇고 아주 애가 따로 없었다. “돌아가고 싶었지만, 예전 같은 상황에 다시 놓이긴 싫었어.”

“어떤 상황?”

“무슨 일이 일어날 지도 모르는 채로 마냥 기다리면서 내 미래를 다른 사람 손에 내맡기는 거,” 리오넬이 말했다. 입꼬리가 아래로 내려갔다. “그리고 나를 다시 데려오려면 바르샤는 다른 사람들을 팔고 주급을 깎아야 했을 거야. 그런건 싫어.”

아마 그게 둘의 본질적인 차이일지도 몰랐다. 크리스티아누는 이기적이었으니까. 어쨌든 그는 자기자신을 위해서라면 다른 사람들 따위는 기꺼이 상처입힐 수 있었던 것이다.

리오넬은 목을 가다듬고 물었다. “네가 나라면 어떻게 했을 것 같아?”

“내가 너라면? 몰입이 영 안 되는데.” 크리스티아누가 꼬집었다. “너만큼 작아본 적이 없어서. 발이 240은 돼?”

“270이야,” 리오넬이 대답했다. “물어본 말에나 대답해. 마드리드로 돌아갈 수 있었으면 갔을 거야?”

“아니.” 크리스티아누는 이미 옛 클럽에 한 번 돌아가본 바 있었다. 그런 실수는 다시 하고싶지 않았다. “그리고 난 이제 너무 늙었어. 라리가는 애들보고 알아서 하라고 해.”

“늙기는 무슨,” 리오넬이 말했다. “나보다 겨우 두 살 많잖아. 우리 안 늙었어.”

“우리 거의 마흔살이야.” 크리스티아누는 리오넬을 바라보았다. 리오넬은 오래전 길게 머리를 늘어뜨리고 다니던 어린 소년 같다가도 어떤 때는 자신만큼이나 나이들어 보이곤 했다. “선수로서는 시체 소리 들을 나이지.”

리오넬은 테이블 맞은편에서 씩 웃어보였다. 성숙해진 얼굴이 보기 좋았다. “그렇게 안 보이는걸. 기분이 나아질 지는 모르겠지만.”

크리스티아누는 어깨를 으쓱했다. “스물 다섯살처럼 보이지는 않잖아.” 곧 보톡스를 한 번 더 맞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마에 생긴 주름들이 보기 흉했다.

“스물 다섯살처럼 안 보이면 어때,” 리오넬이 대답했다. “그래도 멋진데.”

“그야 당연하지,” 크리스티아누가 받아쳤다. 애초에 제가 못생겨보인다는 뜻으로 한 말도 아니었다. 크리스티아누는 평생 못생겨질 일 따위 없는 사람이었다. “예전같지는 않다는 거야. 너도 계속 봐왔으니까 알잖아.”

“우리 20대 때 만났는데.”

“벌써 15년 전이야,” 크리스티아누가 꼬집었다. “지긋지긋하지.”

리오넬의 대답은 들을 수 없었다. 웨이터가 아까 주문한 음료를 가지고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웨이터가 잔을 채워주는 동안 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크리스티아누는 샹들리에 불빛이 리오넬의 얼굴 위로 일렁이는 모양을 즐겁게 바라보았다. 톡 나온 코 아래로 그림자가 졌다.

“주문하시겠습니까?” 웨이터가 크리스티아누에게 물었다.

“그냥 샐러드만요,” 크리스티아누가 말했다. 배가 별로 고프지 않았다.

리오넬은 메뉴판에서 손가락으로 스테이크를 가리키는 식으로 주문을 해냈다. 다행이었다.

웨이터가 이어서 후식을 권했지만 둘 다 사양했다. 아마 리오넬은 크리스티아누 앞이라 거절한 것 같긴 했지만, 어쨌든 그랬다.

웨이터가 나가고 무거운 침묵이 찾아왔다. 꼭 영원같았다.

의외로 먼저 입을 연 사람은 리오넬이었다. “조지나는 잘 지내?”

“응. 버킨백 새로 샀더라.” 도대체 비슷한 가방이 몇 개인지 이제 셀 수도 없었다.

크리스티아누는 굳이 안토넬라에 대해 묻지 않았다. 리오넬의 아내는 관심 없었다. “애들은 어때?”

리오넬은 우승컵이라도 든 것처럼 얼굴이 환해졌다. “요즘에는 애들이랑 시간을 많이 보내려고 하고 있어. 매일 밤마다 같이 마블 영화도 봐.”

할 일이 그렇게 없나? “그래서 그 말도 안 되는 셀레브레이션을 하는군.”

“내 경기 보나보네.” 짙은 수염 사이로 미소가 새나왔다. “내 팬인 줄 몰랐어.”

크리스티아누가 팬이라고 할만한 선수는 본인이 유일했다. “친구를 가까이하되 적은 더 가까이하자는 주의라.”

“적?” 리오넬이 따라 말했다. “내가 네 적이야?”

“그냥 하는 말이야.” 크리스티아누는 눈을 굴렸다. “무슨 뜻인지 알잖아.”

리오넬은 입술을 다문 채로 작게 음, 하고 대답했다. 시상식 중 둘이 후보에 오르지 않은 부문 순서가 와서 따분해지면 크리스티아누는 대충 집중하려는 척을 하려고 리오넬에게 종종 말을 걸곤 했었다. 둘 다 그다지 잘하지는 못했지만- 그 때도 리오넬은 이렇게 맞장구를 쳤더랬다.

리오넬이 갑자기 물었다. “왜 같이 저녁 먹자고 한거야?”

“말했을텐데. 나는 친구를 가까이하는만큼 적은 더 가까이한다고.”

“크리스티아누,” 흘러가는 발음 속에서도 왠지 모르게 그 단어만큼은 또렷하게 귀에 박혀들었다. “왜 같이 저녁 먹자고 했어?”

“넌 왜 알겠다고 했는데?”

“너랑 만나고 싶어서.”

“그 말대로야.” 크리스티아누는 그렇게 말하고 목을 축였다. 물을 마시는 동안에도 리오넬의 시선은 끈질겼다. 크리스티아누는 컵을 다시 내려놓았다. “우리가 마지막으로 만났던게 언제지? 2월이었나?”

“1월이야.”

“아, 그래, 1월.” 크리스티아누가 수없이 무너졌던 작년 한 해를 뒤로하고 다시 막 일어서던 시기이기도 했다. “우리가 마지막으로 경기장에 같이 선 때가 되겠군.”

“다음에 또 친선경기가 열리면 또 같이 뛸걸,” 리오넬이 말했다. “자선 경기일 수도 있겠다.”

친선이나 이벤트성 경기라. 이제 둘에게 남은 건 고작 그런것들뿐인 걸까? 함께 우승컵과 트로피를 두고 경쟁하던 게 꼭 어제처럼 생생했다. “아니면 아예 같은 팀에서 뛸지도 모르지.”

“나랑 같은 팀에서 뛰고 싶어?”

“그럴 리가.” 자신과 메시가 같은 스쿼드에서 뛴다라.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열광할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물론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을 터였다. “다른 팀들은 어쩌라고.”

리오넬이 또 킥킥거렸다. 리오넬은 참 잘 웃었다.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어지간히 지루한 인간들뿐인 모양이었다. 안토넬라 역시 딱히 재밌는 사람은 아니어보였고.

“상상이 안되긴 해,” 리오넬이 말했다. 다듬지 않은 눈썹이 이마 위에서 찌푸려졌다. “우리는 항상 라이벌로 마주했으니까.”

“사우디로 올 수도 있었잖아,” 크리스티아누가 말했다. 알힐랄은 이미 크리스티아누가 알나스르에서 받는 것보다 더 큰 오퍼를 리오넬에게 한 바 있었다. 무슨 의도인지 알 만했다. “요즘 대세인데.”

“나는 여기 마이애미가 좋아.”

“그래보여. NBA나 할리우드 스타들이랑 만나고 다니느라 바쁘더라.” 그런데도 사람들에게 있어 화제성에 목말라있는 쪽은 늘 크리스티아누였다. “날 보러 올 시간이 있다는게 놀라울 정도야.”

“아무 때나 보면 되는데 뭐,” 리오넬이 말했다. “나 그렇게 안 바빠.”

겸손도 해라. 사람들은 리오넬의 저런 모습도 사랑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에게 미치도록 열광하는데도 불구하고 정작 본인은 이유를 모르겠다는 듯 무심한 저 태도. 수 년이 넘도록 크리스티아누는 그게 너무 화가 났었다. “그래. 2월까지는 경기도 없으니까.”

“MLS에 대해 많이 알고 있네,” 리오넬이 응수했다. “아니면 그냥 나에 대해 잘 아는 건가?”

“글쎄. 너는 워낙 다 알 것 같다가도 아무것도 모르겠는 느낌이라.” 크리스티아누가 선선히 말했다. 리오넬과 달리 크리스티아누는 생각나는 대로 말하는 데 서슴이 없었다. 어떤 이들은 그게 너무 과하다고도 했다. “아까 물어봤지? 꼭 알고 싶다면야 말해줄게. 다른 사람들이 없는 곳에서 같이 저녁을 먹으면서 너랑 이야기를 하고싶었어.”

리오넬은 크리스티아누를 빤히 바라보며 물었다. “나에 대해 뭘 알고 싶은데?”

크리스티아누는 어깨를 으쓱했다. “제일 좋아하는 색이 뭐야?”

“빨간색.”

“파란색일 줄 알았는데,” 크리스티아누가 지적했다. “널 세 단어로 표현하면 첫번째랑 두번째는 아르헨티나랑 바르셀로나일 테니까.”

“나머지 하나는 뭔데?”

“재수없는 놈.”

리오넬이 키득였다. 그야 웃음이 절로 나오겠지 싶었다. 축구에서 이룰 수 있는 걸 모두 이루고 마이애미로 떠난데다가 부스케츠와 알바까지 함께인 지금, 인생이 얼마나 찬란하고 즐겁겠는가? “빨간색이 좋은데, 요즘은 분홍색도 좋아지고 있어.”

“네 새로운 팀컬러말이지.”

“맞아.”

크리스티아누는 고개를 끄덕였다. “분홍색 좋지.”

딱히 놀랐다는 반응 같은 건 없었다. “잘 어울려.”

만약 리오넬을 잘 몰랐더라면, 크리스티아누는 그 말을 듣고 리오넬이 자신에게 추파라도 던지는 걸까 진지하게 고민했을 터였다. 하지만 그는 리오넬이 안토넬라의 얼굴을 거의 잡아먹을 듯이 키스하는 영상을 이미 본 바 있었다. 그 낯뜨거운 모습을 본 이들이라면 누구든 알았다. 리오넬은 크리스티아누는 물론 아내가 아닌 다른 어떤 인간에게도 눈길을 주지 않을 사람이었다.

리오넬이 또 당황스러운 소리를 하기 전에 크리스티아누는 얼른 주제를 바꿨다. “새 시즌 시작하기 전까지는 뭐 하게?”

“가족들이랑 있어야지,” 리오넬이 대답했다. “딱히 할 것도 없고.”

별로 그럴 것 같진 않았다. “요즘 어린 애들이랑 경쟁하려면 바쁠텐데.”

리오넬이 눈을 깜빡였다. “킬리안?”

“홀란드도.” 올해 발롱도르 포디움 명단이었다. 발롱도르와 관련해 사람들이 분석이랍시고 해놓은 글들을 보고 크리스티아누가 얼마나 헛웃음을 지었는지 모른다. 홀란드가 월드컵이 없다고 예전 크리스티아누의 위치를 꿰찬 것부터 해서 아주 아무렇게나 갖다대는 꼴이 우스웠다. “난 이제 안중에도 없겠군.”

“너랑 다르지. 그 애들은 네가 아닌걸.”

리오넬은 항상 크리스티아누를 놀라게 했다. “오늘따라 띄워주는 게 과한데.”

“사람들이 표현을 잘 안해주나봐.”

“그럼 네가 꽃다발이라도 가져와서 주지 그랬어.”

리오넬은 또 웃음을 터뜨렸다. “그럴걸 그랬다,” 리오넬이 수긍했다. “무슨 꽃 좋아해?”

들고 있어도 구설수에 오르지 않는 거라면 뭐든지. 크리스티아누가 생각했다. 꽃이나 프릴처럼 아기자기한 걸 좋아하기에는 대중들이 그에게 가진 이미지가 너무 확고했다.

결국 무슨 꽃을 좋아하는 지는 말할 수 없었다. 웨이터가 요리를 가지고 들어왔기 때문이다. 이곳이 유난히 서비스가 신속한 건지, 리오넬 메시가 있어서 시간이 빨리 흐르는 건지는 알 수 없었다.

리오넬의 스테이크는 두껍고 피가 흥건했다. 이런 파인 다이닝에서도 저런 양이 나올 줄이야. 크리스티아누는 리오넬이 그 작은 몸으로 이 콜레스테롤을 다 감당할 수 있을지 진심으로 고민에 잠겼다.

리오넬이 여기 자신과 함께 있는 동안에는 부디 아구에로처럼 심장마비로 쓰러지지 않기를 바랄 수밖에 없었다. 온갖 언론에서 크리스티아누가 결국 메시를 죽였다느니 떠들게 뻔했다.

크리스티아누는 못마땅한 눈으로 스테이크를 내려다보았다. 보는 것만으로도 먹고나서 런닝머신을 얼마나 뛰어야할지 아찔해져왔다.

크리스티아누가 스테이크를 보고 있는 걸 눈치챘는지 리오넬이 물었다. “좀 먹을래?”

“아니.” 크리스티아누는 식단에 엄격했다. 어릴 때 가난해서 먹을게 없었을 때를 빼면 하루라도 식단을 지키지 않은 날이 없을 정도였다. “나는 샐러드면 됐어.”

리오넬이 스테이크를 자르기 시작했다. 칼날이 고기를 썰면서 나는 소리가 거슬렸다.

크리스티아누는 얼굴을 찡그렸다. “그 소리 별로야.”

리오넬은 멈칫하더니 고개를 들어 크리스티아누를 바라보았다. 찌푸린 입이 삐뚜름했다.

“싫어하는 게 그거뿐이야?”

크리스티아누가 싫어하는 거야 차고 넘치긴 했다. 하지만 지금은 레오가 뭘 묻는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뭐?”

“내가 싫어?”

대체 저건 갑자기 어디서 나온거람? 흐름을 예상할 수가 없었다. “아니.”

“싫었던 적은?”

“이기지 못하는 게 싫은 거야,” 크리스티아누가 말했다. 솔직하게 말하지 않을 이유는 뭐란 말인가? 어차피 잃을 것도 없었다. 상대방을 읽을 수 없으면 가진 패를 드러내게끔 하는 것도 방법이었다. 서로 그렇다할 대화를 나눠본 적도 몇 번 없었지만- 그동안 꺼내지 못했던 말들을 리오넬이 해주었으면 했다. “그리고 내가 못 이긴 경기는 보통 너 때문이었고.”

“그래도 재밌었지?”

“물론이지,” 크리스티아누가 말했다. 리오넬이 없는 축구는 상상할 수 없었다. “오래도 같이 뛰었네. 좋은 경쟁이었어.”

“경쟁’이었다’고?”

“이제 끝났지,” 크리스티아누가 대답했다. “모든건 끝이 있는 법이잖아.”

리오넬의 얼굴이 한층 더 찌푸려졌다. “곧 은퇴할 것처럼 말하네.”

“너보다 먼저 할 일은 없어,” 크리스티아누가 말했다. 진심이었다. 다리가 더 이상 버티지 못할 때까지는 쭉 뛸 생각이었다. “통산 1,000골은 달성해야지.”

리오넬이 순간 멈칫했다. 손에 쥔 나이프가 스테이크 위를 맴돌았다. “그럼 다음 유로도 뛸 거야?”

“포르투갈이 날 부르는 한은 계속 나갈 거야.” 그 시간이 얼마나 더 남았을지는 모르겠지만. 크리스티아누는 새삼 생각했다. 클럽은 얼마든지 바뀐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새로운 팀을 찾으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조국은 그럴 수 없는 법이다.

“다음 월드컵도 출전하고?”

아. 언젠가는 나올 말인걸 알고 있었는데도 속이 쓰렸다. 리오넬이 지금 쥐고 있는 나이프로 자신을 찔러버리는게 차라리 나을 것만 같았다.

운동선수의 삶은 두 번 끝난다고 했다. 은퇴할 때 한 번, 죽을 때 또 한 번. 그 날 밤 카타르에서 크리스티아누는 자신의 일부가 무너진 듯한 느낌을 받았다. 고개를 숙인 채로 숨이 쉬어지지 않을 만큼 울었던 기억이 생생했다.

아마 다른 사람이었다면 그대로 포기하고 물러났을 것이다. 물론 크리스티아누는 그러지 않았다. 축구에서의 마지막 순간을 눈물로 마무리할 수는 없었다.

월드컵 이야기를 했다고 리오넬을 원망하지는 않았다. 레오가 잔인해서가 아니다. 그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마냥 친절하지도 않을 뿐이다. 어쩔 수 없었다. 착하기만 해서는 이렇게까지 커리어를 쌓을 수 없는 법이다.

“내가 바보도 아니고.” 많이들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긴 하지만 말이지. “저번 일을 또 겪기는 힘들어. 끝도 없이 떠들어댈게 뻔한걸.”

“누가?”

“모두가,” 크리스티아누가 말했다. 그 말을 하는데 목이 메는 느낌이 싫었다. “다들 내가 우는 꼴을 보고 싶어서 안달이잖아. 너도 마찬가지고.”

“나는 네가 우는 모습 보고싶지 않아.”

크리스티아누는 피식 웃었다. “아, 그래.”

“정말이야,” 리오넬이 말했다. 크리스티아누가 자신을 그렇게 생각한다는 데 충격이라도 받은 듯한 표정이었다. “네가 불행하길 바란 적 없어.”

“웃기고 있네. 다들 똑같아. 너라고 특별히 다를 거 없어.” 당연히, 거짓말이었다. 리오넬은 정말로 특별했으니까. 전세계가 매일 말하는 사실이었다. 한 순간도 잊을 수 없었다.

하지만 크리스티아누 역시 특별하긴 마찬가지였다. 레오만큼의 재능을 가지진 않았어도 축구계에서 살아남고, 성공했으며, 경기장에 설 때마다 리오넬과 함께 관중들에게 끝내주는 경기를 선사해주었다.

선수 생활 동안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다가 펀딧이 된 이들은 말했다. 크리스티아누는 리오넬과 비슷한 수준에 미치지도 않는다고, 뭘 해도 리오넬 메시와는 감히 비교조차 되지 않을 거라고 말이다.

아마 피케도 그런 말을 했었다. 크리스티아누는 인간 중에서 최고지만, 리오넬은 사람이 아닌 것 같다나. 마치 신을 대하는 식이었다.

하지만 크리스티아누는 신을 믿지 않았다. 그가 믿는 건 자기 자신뿐이었다. 자신이 아니면 누구도 없었다.

“있잖아,” 리오넬이 입을 열었다. 스페인에서 그렇게 오랜 시간을 살았음에도 아르헨티나 발음이 확연했다. “너랑 말하는 게 그리웠어.”

“말도 거의 안하면서.” 이 대화가 이만큼 이어진 것도 기적이었다. “이야기는 다 내가 하잖아. 알 나스르에서 혼자 뛰는 거랑 거의 다를 바가 없을 정도야.”

리오넬이 미소지었다. 눈가에 주름이 잡혔다. 다른 사람이라면 당장 성형외과를 추천해주었겠지만, 리오넬은 아니었다. 눈가가 접히면서 생기는 주름들은 오히려 꽤나 매력적으로 보였다. “안 믿을 지는 몰라도, 나 네 경기 보는 거 좋아해.”

“내가 실수라도 하면 보고 웃으려고?”

리오넬의 표정이 굳고 예쁜 얼굴에 그늘이 졌다. 실망한 눈치였다. “그럴 리가 없잖아.”

어린 시절 크리스티아누는 친구들이 자신을 괴롭힐 때면 늘 울곤 했었다. 어머니는 꼭 그럴 때마다 네가 너무 잘하는 게 싫어서 다른 아이들이 괜히 샘을 내고 화풀이하는 거라며 크리스티아누를 달래주었다.

아마 그래서 크리스티아누가 리오넬을 좋아하는 걸지도 몰랐다. 모든 걸 누렸고 크리스티아누를 비웃을 자격이 있는 유일한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리오넬은 여전히 크리스티아누가 훌륭한 선수라고 말하고 다녔으므로. 같은 팀에서 뛰면 정말 좋을 거라는 말도 함께였다.

크리스티아누는 물론 훌륭한 선수였지만, 그와 별개로 자신과 리오넬이 한 팀에 있는 건 아마 끔찍한 일이 될 터였다.

어떤 선수도 팀 위에는 있을 수 없다고 했던가. 하지만 크리스티아누와 레오는 달랐다. 둘이라면 모든 걸 뛰어넘고, 모두를 초월할 수 있었다.

이런 라이벌 구도가 또 존재한 적이 있던가? 펠레는 경쟁 상대가 없었다. 마라도나 역시 그와 동시대 사람이 아니었다. 하지만 크리스티아누에게는 리오넬이, 리오넬에게는 크리스티아누가 있었다. 오랜 시간 동안 둘은 서로의 빛과 그림자 아래를 번갈아가며 뛰어왔다.

세상은 둘을 항상 반대편에 놓고 싶어했다. 요란하고 당당한 쇼맨과, 조용하고 수줍은 내향인. 크고 늘씬한 구릿빛 피부와 작고 왜소한 창백한 피부. 노력형과 재능형까지. 그런 식의 비교는 끝도 없었다.

크리스티아누는 이 경쟁 관계를 즐겼지만, 자신과 레오를 지나치게 단순화하는 건 결코 좋아하지 않았다. 둘은 다른 만큼이나 겹치는 부분이 너무 많았다.

가끔 크리스티아누는 무대 반대편에 리오넬이 없었더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그러다가 또 다른 때는, 리오넬이 있어 비로소 자신이 완성된다는 생각도 했다.

젠장. 지독히도 감상적이었다. 정말 나이가 들어가는 모양이었다.

“하고 싶은대로 해,” 크리스티아누가 짚었다. “어차피 이제 여덟번째 발롱도르도 타잖아.”

“그건 모르지,” 리오넬이 말했다. “확실한 것도 아닌데.”

크리스티아누는 눈을 굴렸다. “전세계가 다 알아. 로마노가 직접 말했잖아.” 크리스티아누는 현대 스포츠 언론이 싫었다. 시상식에만 있는 재미를 다 망치는 꼴이란. “홀란드가 안됐지.”

“잘하더라. 앞으로 상 많이 타겠던데.” 리오넬이 대답했다.

“킬리안도 만만치 않고.”

“PSG를 떠나면 더 그렇겠지.”

“벨링엄도 정말 잘해,” 크리스티아누가 덧붙였다.

“바르셀로나에 있는 아이들도 마찬가지야,” 리오넬이 대답했다. 그 앞에 놓인 스테이크는 어느새 잊힌 채로 차갑게 식어가고 있었다. “다들 정말 어려, 크리스.”

눈이 마주치고 시선이 오갔다. 둘이 남긴 족적을 좇아서 기대에 부응해야할 어린 선수들에 대한 유감이 담겨있었다.

“말했잖아, 레오. 우린 늙었다니까.”

대답하는 리오넬의 표정은 아련했다. “우리 또래는 이제 다들 은퇴하더라. 대부분은 이미 떠났고.”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았다. 올해만 해도 얼마나 많은 옛 동료들과 라이벌 선수들이 은퇴했는지 모른다. 베일, 외질, 부폰, 이브라히모비치, 그리고 다른 이들까지. 셀 수도 없었다.

“난 아직 은퇴할 생각 없어.” 시간이 흘러가지만 크리스티아누는 멈추지 않았다. 항상 움직이고, 변화하며, 앞으로 나아가야 했다.

그러고나면 항상 리오넬이 있었다. 어디를 가도 마찬가지였다. 파란색을 보면 리오넬이 떠오르고, 낯선 경기장에 서면 늘 그 이름이 들린다. 가지고 있는 모든 트로피에도 리오넬의 기억이 있다.

크리스티아누와 레오는 10년이 넘는 시간동안 서로의 주위를 맴돌았다. 그곳에 다른 사람들이 끼어들 자리는 없었다. 좋든 싫든 둘은 앞으로도 평생 함께 묶일 터였다.

리오넬이 음, 하고 대답했다. “우리 참 잘 했어, 그렇지?”

최고였다마다. 스포츠 역사상 가장 위대한 라이벌 관계였는걸. “그래, 맞아,” 크리스티아누가 말했다. “그동안 즐거웠어.”

“다시는 안 볼 것처럼 말하네.”

“또 만나게 될까?”

“은퇴만 안한다면, 응.”

크리스티아누에게 좋은 이별이란 없었다. 집으로 삼았던 곳들과는 이미 등을 진 지 오래였다. 마드리드가 그랬고, 맨체스터가 그랬다. 그리고 이제─

─항상 알아왔던 집이 맞은편에 앉아있다. 수염에 으깬 감자가 묻어있는 채로, 티셔츠에 못생긴 청바지를 입고, 바보처럼 짧게 친 머리를 하고 있었다.

안된다. 이 집으로 이어진 길은 망가뜨릴 수 없었다.

“같이 은퇴하는 건 어때. 다들 난리가 날텐데.” 크리스티아누가 운을 띄웠다. 떠나는 날이 오면 세상은 떠들썩하다가 이내 자신을 그리워하겠지.

시간이 지나면 사우디와 마이애미에서의 날들은 모두 잊혀갈 것이다. 결국 기억에 남을 시간은 크고 화려했던 경기장에서의 전성기뿐이기 마련이니까. 치열했던 날들과, 수많은 트로피들, 열성적인 관중과 함성소리 따위로.

“생각해볼게,” 레오가 말했다. 그러고보니 비슷한 시기에 등장해서 함께 전성기를 보냈지. 이렇게까지 서로의 삶이 얽혀있는 마당에 같이 떠나는 것도 낭만적일 것 같았다. “그래도 우리가 은퇴하는 날은 가능하면 나중이면 좋겠어.”

“나는 당분간은 떠날 생각 없어, 리오넬,” 크리스티아누가 말했다. “즐라탄 기록은 깨고 가야지.”

“은퇴하면 뭐할 거야?”

“뭐든 마음 가는대로 다.”

“감독하게?”

다른 사람들을 휘두르는 건 재밌겠지만 일요일마다 터치라인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면서 살고싶지는 않았다. 정말, 남은 인생은 뭘 하면 좋을까. 잘 모르겠다.

돈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마당에 뭔가를 꼭 해야하는 건 아니긴 했다. “글쎄, 감독하면 50살쯤에는 머리가 다 벗겨질 것 같아.”

“다른 스포츠를 해보는 것도 좋지.”

크리스티아누가 알고 살아온 건 축구뿐이었다. 다른 운동을 하는 모습은 상상이 되지 않았다. “복싱도 좋아하긴 해.”

리오넬이 크리스티아누를 바라보았다. 눈이 반짝였다. “복싱? 그 트렁크도 입고?”

크리스티아누는 씩 웃었다. 리오넬 메시는 의외로 장난기가 많았다.

 

해가 저문지 오래였지만 마이애미는 여전히 더웠다.

주차 요원들이 이제 막 들어오는 차들 사이에서 분주하게 움직이는 동안 자동차와 가로등은 거리에 가늘게 빛줄기를 드리웠다. 한껏 옷을 빼입은 사람들이 짙은 밤하늘 아래에서 옹기종기 모여있었다. 레오도 저런 옷들을 계속 보다보면 좀 배우는 게 있을 지도 모르지, 아마.

따뜻한 바람이 얼굴을 간질였다. 바다 특유의 모래와 소금 냄새가 났다.

“호텔은 근처야?” 식당 입구를 크리스티아누와 나란히 걸어내려가며 리오넬이 물었다. 헐렁한 흰 티셔츠가 밤이 되자 더 눈에 띄었다.

“어, 운전해서 왔어.” 크리스티아누가 말했다. 발이 무거웠다. “너는?”

“나도야,” 레오가 어색하게 몸을 움직였다. “우리─ 우리 다음에 또 이렇게 만나자.”

“그래야지,” 크리스티아누가 끄덕였다. 리오넬이 뒷머리를 긁적였다. 크리스티아누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미소지었다. “그래도 여기까지 다시 오진 않을 거야. 다음엔 네가 사우디로 와.”

“나 사우디 홍보대사인데.”

“나는 거기 사니까,” 크리스티아누는 씩 웃었다. “오면 우리 홈 경기장 구경시켜줄게.”

“좋다.” 리오넬의 목소리는 부드러웠다. 이전에는 이렇게 들리지 않았던 목소리였다. 새로웠다. 이런 다정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문득 경기장을, 축구를 뒤로 한 채 어떤 경쟁도 긴장도 없이 리오넬을 바라보는 게 이번이 처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크리스티아누는 지금이 꽤 마음에 들었다.

“고마워,” 크리스티아누가 말했다. 오늘 밤에 대해서만 하는 말은 아니었다.

충동적으로, 크리스티아누는 허리를 숙여 리오넬의 왼쪽 볼에 입을 맞췄다.

입맞춤은 다정했다. 입술이 어쩐지 지나치게 오래 뺨 위에 머물러있었던 것 같기도 했다. 아무도 알 필요는 없었다.

“또 봐.”

크리스티아누는 순간 그를 잡을 뻔했다. 정말로. 하지만 조급해할 필요는 없었다. 앞으로 남은 시간 동안 서로를 볼 날은 수없이 많다는 걸 알았다. “또 만나, 레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