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k Text:
모든 엑소는 공통적으로 하나의 꿈을 꾼다. 어쩌면 한물간 이야기일지도 모르지만 이 수호자는 그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그는 눈밭에서 어딘가를 향하고 있었다. 어디지? 그런 건 알 수 없었지만 걸음은 느려지지도 흐려지지도 않았다. 눈발이 빗발쳤는지, 혹은 그저 반사된 태양 빛이 눈을 흐렸던 것인지. 그와 목적지 사이에 사람들이 막아서고 있다는 걸 그는 뒤늦게 알아챘다. 불쑥불쑥 안개 속에서 튀어나와 석상처럼 서 있는 인영은 거의 다 아는 사람들이었다. 모르는 사람이더라도 어딘가 지나가면서 본 적 있는 것 같은 익숙함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리고 그는 그 사람들을 전부 죽이기 시작했다. 목적지에 다다라야 해서? 아니면 단지 살육을 위해? 이 사람들에게 원한이라도 있었나? 꿈에서 깨면 그 모든 것들은 흐려지고 오로지 그 죽음의 감촉만이. 손에 남는 잔향만이 그를 잠식했다.
그리고 여기에서 케이드-6가 등장한다. 대대적인 추모가 이뤄졌으며 모두가 그리워 마지않아 그가 죽고 나서야 태어난 어린 수호자들을 혼란스럽게까지 하는 그 헌터 전 선봉대장이. 수호자와 케이드-6는 후자의 죽음이 발생하기 전부터 아는 사이였고 서로를 의식하고 있었다. 둘 사이에 미묘한 기류가 흘렀을지도 모른다.
혹은 아닐지도 몰랐다. 헌터들과 케이드는... 케이드-6는 가벼우면서도 제 마음을 쉬이 내주지 않는 이였으나 그 아래 있었던 헌터라면 모두 그에게 모종의 친분과 유대를 느꼈으니까. 그래도... 수호자는 자신이 케이드에게 특별하다는 생각을 종종 하곤 했다. 탑을 떠날지, 머무를지. 머물러야 하는 족쇄를 차고 내기에서 졌던 자신의 대장을 내버릴지, 아닐지. 그도 헌터이니만큼- 황무지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분명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장소를 그리워하는 이상한 끌림이.
그리고 케이드가 먼저 떠나버렸다.
수호자는 리부트를 결정했고.
리부트한 수호자는 갓 태어난 어린 빛들이 그렇듯이 자발라가 서 있는 곳 바닥의 총 문양과 농장의 기념비와 탑의 추모비. 라면 가게의 사진, 기한이 지난 쿠폰으로 케이드-6라는 인물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희생자들을 절대 잊지 않겠다던 밴시-44에게서 케이드가 연락이 없다는 말을 들은 날 밤에 수호자는 꿈을 꿨다. 엑소의 꿈을.
눈밭에는 자신의 손으로 죽인 시신이 널브러져 있고, 피가 튄 손을 늘어트리고 총도 칼도 놓친 수호자 앞에 마지막으로 선 사람은 라면 가게 사진 속 그 사람. 추모비에 적혀있듯이 헌터의 선봉대장이라던 케이드-6.
그를 죽여야 할까, 죽이지 못할까. 그는 평소처럼-잠깐, 내가 그의 평소를 어떻게 알지?-실실 웃고나 있었고, 자신의 피 묻은 손이 그에게로 향해도 그는 상관 없다는 듯 미소를 지어서, 수호자는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왜 이러고 있을까. 눈물을 흘릴 수조차 없는 눈은 뜨거워지지도 않았고 다행스럽게도 거기에서 고스트가 수호자를 깨웠다.
그저, 덧없는... 덧없는 꿈이라서. 깨어나면 없어질 거품 방울 같은 생이라서.
금속으로 된, 인류 중 가장 강한 육신을 가진 종족은 터트려진 거품 방울을 잡지 못하고 그것이 손아귀 사이로 흘러내리는 것을 관망할 수밖에 없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