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k Text:
우리는 해가 넘어가기 직전에 쫓겨났다. 우리는 트로츠키로 향하는 산골짜기를 지나고 있었고, 하늘은 점점 어두워져 갔으며 깊은 산속 어딘가에서는 늑대 울음소리가 가득 울려 퍼졌다. 고귀하신 한스 케이폰 경은 다리가 퉁퉁 부은 데다가 나를 구하기 위해 도적놈이 쑤셔놓은 자리가 욱씬거리기 시작했다며 십 초에 한 번씩 투덜거리는 중이었고, 이제는 몸에서 천한 것들의 냄새가 나기 시작했으며 이것을 구제해 줄 유일한 방법은 가히 영혼까지 씻길 수 있는 부드러운 손길로 받는 목욕과 시원한 에일 한 모금 - 유일한이 아니지 않나? - 뿐이라고 했다.
어쨌든 내 손은 부드럽지도 않았고 당장 돈이라고는 여관에서 몇년을 끓인 수프의 눌어붙은 건더기만 간신히 얻을 만큼 있기도 했고, 애초에 험한 산 속에는 사람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으므로. 나는 언제나 그랬듯이 나름대로 최선을 다 할 수밖에 없었다. 두터운 수풀 속에서 그나마 발길이 드나든 곳을 찾아 약초채집꾼의 별장으로 보이는 곳을 발견했고, 집 안에 난 구멍이란 모든 구멍에 머리를 집어넣으며 안으로 어떻게 들어갈 수 없을까 궁리했고, 마침내 문을 열어 거친 여행에 지친 도련님께서 당당하게 행차하신 뒤에 평민의 침대에 몸을 뉘시며 드디어 그 거룩하신 주둥이를 닫는가 싶었던 때에, 집주인으로 보이는 한 남성이 귀족보다 더 상쾌한 풀과 꽃향기를 풍기며 등장하셨고…
“그래도 넌 이런 게 익숙해서 좋겠다. 천민아.”
“저라고 뭐 짚단이 편한 줄 알아요?”
“오, 그래? 그럼 자네의- 웅장하신 대장장이 저택에 침대는 당연히 있었겠지? 베개는 아름다운 처녀의 무릎만큼이나 푹신하고?”
“아, 예. 그럼요, 그럼요. 저희 아버지는 저를 위해 금속 세공품까지 달아주셨답니다. 한스. 참고로 평민인 아버지 쪽이에요. 그러니까 그만 징징대고 이리 와요. 당신이 만나본 그 많은 여자들 중에 마구간 지기 딸도 있었을 것 아닙니까?”
한스는 투덜거리며 사다리를 타고 올라왔다. 나는 올라오는 그의 금발 머리통을 보고 몸을 돌려 그가 누울 자리를 최대한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저 도련님은 남의 집에 침입한 괴한을 멀쩡히 돌려보낸다는 행동이 얼마나 자비로운지 상상조차 하지 못할 것이다. 게다가 그는 당장 하룻밤을 보낼 공간을 마련해 주기까지 했다! 그게 아무리 몇 달 전 역병으로 키우던 동물을 싹 다 떠나보낸 뒤 덩그러니 남은 텅 빈 마구간이라고 해도 말이다. 얼마나 성자 같은지. 물론 내 생각을 한스 경이 알았다면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자비롭기는 무슨. 그렇다면 내 삼촌은 성모 마리아라네. 친구여.” 그러나 나의 머릿속을 알 턱이 없는 그는 거만하게 고개를 꼿꼿이 쳐들며 성서를 읊는 것처럼 거룩하게도 외쳤다.
“헨-리.”
“예.”
“네 주인이 배고프시다.”
“아이고, 예, 예. 당장 만찬을 대령합죠. 나으리.”
나는 보제나가 준 보따리를 풀어 안을 살펴보았다. 마른 사과 몇 조각이 빵 부스러기와 함께 거친 천 위를 굴러다니고 있었다. 끝내주는군. 한스는 그것을 흘낏 보더니 재빨리 사과를 전부 가져가 하나씩 자신의 입에 넣었다. 나는 무어라 항의하려고 했으나 - 곧 입을 다물었다. 어쨌든 그가…. 마침내 입을 다물었기 때문이다. 지금 당장 내가 한스에게 원하는 것은 그것뿐이었다. 제발, 입을, 다무는, 것.
그랬으므로 나는 채 삼키지 못한 불평을 중얼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마저 짚 더미를 옮겼다. 한스는 가만히 앉아서 내가 일하는 것을 바라보았다. 사과 한 조각을 입에 넣고, 우물거리고, 사과 한 조각을 입에 넣고, 우물거리고, 마지막 조각을 입에 넣고, 우물거리고… 입을 열었다. 또다시.
“보제나의 집에서… 아니, 가던 도중이었나? 그때 했던 이야기 기억나나?”
“도련님 말이 하도 많아서 잘 모르겠군요. 뭔가요?”
“넌 나를 실망시킨 적이 없다는 이야기 말이야.”
“예. 도련님. 그건 정말 감사히 생각하고 있-”
“그 말을 취소할까 하는 생각이 들어! 잠자리는 형편없고, 식사는 말라비틀어진 사과 몇 쪼가리가 전부고, 게다가 이것도 보제나가 준 거잖아!”
“제기랄! 한스. 그럼 제가 어떻게 했야 할까요. 정직하게 일해서 이 거처를 마련한 저 약초상을 죽이고, 이 집을 빼앗아 명예로운 케이폰 가의 또 다른 성으로 명명하고, 피 묻은 손으로 요리를 해서 당신한테 승전을 기념하는 음식을 바쳤어야 했나요? 그게 정말 당신이 원하는 겁니까, 예?”
한스는 곧바로 입을 다물었다. 예상외의 반응이었다. 감히, 어떻게 그런 말을, 나는 네 주인이고 너는 네 호위 - 같은 말 따위로 쏘아붙일 줄 알았는데. 나도 계속되는 징징거림에 짜증이 나서 내지른 말이긴 했지만 어쩐지 평소와 같지 않은 그 모습이 풀이 죽은 것도 같아 죄책감이 들어 정리한 짚단 위에 몸을 눕히고 팔을 쭉 뻗어 옆의 빈자리를 손바닥으로 팡팡 쳤다.
“자. 그러지 말고 이리 오세요. 곧 트로츠키지 않습니까. 도착하면 다 괜찮아질 거에요. 그럼 우리는 임무를 완수하고, 당신은 귀족 연회에 참여하고. 언젠가 나에게 부스러기 몇 점을 던져주는 거죠. 어때요?”
한스는 대답하지 않고 여전히 무언가가 반신반의한 듯 입술을 비죽 내밀며 나에게로 다가왔다. 그리고는 - 전능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시여. 그는 내 바로 옆에 자리를 잡고 누워 내 팔뚝에 머리를 베고 누웠다. 마치 개가 주인을 따르듯, 아이가 부모를 따르듯. 한 치의 의심도 없는 채로.
“뭐… 뭐 하시는 거예요?”
“네가 이리로 오라며? 네가 하는 행동에는 다 이유가 있는 거 아닌가? 내가 아무리 이해하기 힘들어도 말이야.”
“아니… 뭐…. 그게… 됐어요.”
내가 무언가 말하기를 포기하자 한스는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는 내게 등을 돌린 그 자세 그대로 눈을 감아버렸다. 우리의 몸은 완전히 밀착되진 않았지만, 그의 동그란 머리의 무게가 내 팔에 고스란히 전해져 왔고, 품 안의 심장은 규칙적으로 박동했다. 나는 어째서인지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방법을 잊어버려 가만히 굳어 있을 수밖에 없었고, 한스는 지쳤다는 말이 거짓은 아니었는지 곧 잠에 빠져들었다.
그는 내 팔꿈치 안쪽에 코를 박고 완전히 이완된 자세로 누워 있었다. 나는 평소에 그가 나에게서 농부의 냄새가 난다며 불평했던 것이 떠올랐고, 문득 지금 그의 냄새가 궁금했다. 나는 그가 깨지 않도록 아주 신중히, 조심스럽게, 얼굴을 그의 뒤통수에 묻었다. 우선 그의 체온은 따듯했고, 흘렀던 땀이 식으면서 살갗에 스며든 독특한 향취가… 흐리게 풍겼다. 나는 그 향기가 가장 짙은 곳을 찾기 위해 본능적으로 그의 목덜미로 얼굴을 향했고, 마침내 나의 코는 그의 어깻죽지 바로 위에 자리를 잡았다.
피와 비, 땀과 바람. 그 모든 것을 같이 지나쳤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체향은 어쨌거나 향기라고 부를 수 있을 법한 것이었다. 나는 그것이 어째선지 심통이 나 슬슬 저려오기 시작하는 팔을 빼내고 싶었다. 그러나 그럴 수 없었다. 나는 그를 모시는 입장이었고, 그는, 위대하신 퍼크슈타인의 영주니까.
생각이 거기까지 다다르자 나는 그의 다른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그의 말마따나, 몸에서는 나와 같은 냄새가 나고 나와 같은 퍼석한 빵을 씹거나 아예 배를 곯을 때가 있는 그를. 그를 뒷받침해 줄 수 있는 것은 고향의 이름이 전부이며 그것마저도 파괴되어 사라져 버린 그를. 아무것도 아닌 그를 - 그럼에도 그의 곁에 있는 나를.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는 모르겠다. 그냥 테레사를 지켰던 것처럼, 매튜와 프릿츠를 모른 채 하지 않았던 것처럼 그와 같이 아무것도 남지 않은 사람들에게 베푸는 동정일 수도 있고, 아직은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기사도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고, 그것도 아니라면…
순간 거센 바람이 사방이 뚫린 마구간에 불어왔고, 그는 잠결에도 한기에 몸을 떨었다. 나는 하는 수 없이 반대쪽 팔을 어색하게나마 그의 위에 덮고 몸을 가까이 붙여 우리가 체온을 나눌 수 있게 했다. 그는 여전히 귀족이었고 따뜻했고 좋은 냄새가 났다. 그리고 나에게는 그를 지켜야 할 의무가 있었다. 이름을 모르는 감정에서 비롯된 두루뭉슬한 것 따위가 아닌, 신분과 명예의 이름으로 나에게 지워진 의무가.
곧 비가 쏟아지려고 하는지 우리를 둘러싼 공기에선 무거운 비 냄새가 났다. 나는 그것이 그의 향기로 가득 찬 머릿속을 조금 환기시켜 준다고 생각했고, 잠에 든 이의 규칙적인 심장 소리를 좇으며 눈을 감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