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k Text:
세간에서는 몸에 이름을 새기고 태어나는 사람이 드문드문 있다고 한다. 그 상대는 소울메이트로, 연인으로든 친구로든 깊게 이어진다고 한다. 그러나 사람수가 적은 탓인지 실제 사례를 연구하는 학자는 드물었고, 현대에 들어서야 겨우 증명된 참이었다. 문맹이 많았던 옛날 시대에서는 그 뜻도 모른 채로 몸에 얼룩을 지고 사는 사람도 있었다.
에나는 태어나서부터 오른손 중지 왼쪽면에 새겨진 이름을 반쯤 잊고 있었다. 펜을 쥐면 확실하게 가려지기도 하고, 중학생 무렵이 되자 어쩐지 감각이 무뎌져서 의식의 바깥으로 멀어졌기 때문이었다. 눈에 띄지 않는 위치인 탓에 친밀한 상대가 아니라면 언급은 커녕 발견조차 여의치 않았다.
아이리가 그 글자를 발견하자 잠시 기시감에 그 당사자를 떠올릴 뻔 했으나, 일이 바쁜 탓에 실패하고 말았다. 그렇게 무난하게 넘어간 뒤로, 니고가 결성되고도 2년이 지날 동안 아무런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다. 그야 서로의 본명을 알게 된 것도 고등학교 2학년 무렵이었으니까.
“아사히나 마후유.”
하필이면 이름이 히라가나인 탓에 읽는 법이 다르다고 시치미 뗄 수도 없었다. 무심코 히라가나냐고 물어본 에나에게 그렇다고 답한 마후유는 더 입을 열지는 않았다. 미각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할 때도, 여러가지에 무감각하다는 것들을 깨달아갈 때마저도 짐작이 가는 것들 뿐이었다.
한편,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마후유는 제 중지에서 얼얼한 작열감이 드는 것을 깨달았다. 중학교 시절에 느꼈던 손가락이 끊어질 듯한 고통보다는 아니었지만, 제법 시큰시큰한 통증이 친숙했다.
공부 따위를 하느라 펜에 가려지는 위치에 있는 그것은 마후유가 세상 속에서 미아가 되는 기분이 들 때마다 통각으로서 붙잡아주는 밧줄과도 같았다. 아무래도 신경이 쓰여 파스를 사다 잘라붙이는 등의 처치는 했다만. 궁도부를 병행해서 파스를 붙인 핑계를 댈 수 있는 것만큼은 편리했다.
인생을 살면서 엄마가 딸의 깨끗한 몸에 누군지도 모를 이름이 새겨진 것을 탐탁지 않게 본 것은 한두번이 아니었다. 함께 병원에 데려가서 제거수술을 받게 하려던 적도 몇 번이나 있었으나 의사의 추천하지 않는다는 말과 함께 돌려보내졌다.
“사람한테서 심장을 똑 떼어내고도 잘 살 수 있겠습니까? 네임을 지우는 것도 그것과 같아요.”
여자애들 중 일부가 점을 빼는 수술을 종종 받는다는 것을 알고 그와 비슷한 수준이겠거니 하고 데려왔던 엄마는 꽤 심하게 실망했었다. 마후유는 그때 이후로 엄마 앞에서는 손을 잘 드러내지 않았다. 오른손잡이면서도 불고하고 왼손으로 이것저것 집어들고 내려놓는 습관이 생길 지경이었다.
그야 글씨를 적는 정도가 아니라면 좌우가 신경쓰이지 않았고, 그정도로 정교함이 필요한 작업이더라도 천성적으로 재주가 좋은 마후유가 그걸 어려워할 리는 없었다.
마후유의 일부를 바꿔놓을 정도의 의미였던 그 이름을 이 자리에서 육성으로 듣게 된 감상은 의외로 동요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다만 자신의 이름을 들은 에나가 이쪽을 바라볼 때, 정확히는 오른손을 볼 때 뜨겁게 달아오르는 감각은 네임의 당사자임을 확신시켰다.
하지만 그것뿐이었다. 마후유는 네임의 의미를 모르고, 엄마가 가르쳐주지도 않았다. 다만 꺼리는 기색이었으므로 굳이 파헤치지 않았다. 지금 또한 그럴 뿐이었다. 극도로 나약해진 마후유가 여기서 더 행동하지는 못했다. 더욱이 경계하고 날카롭던 에나가 먼저 나설 리도 만무했다.
그렇게 네임으로 묶인 둘은 아무런 언급도 없이 잔잔한 공존을 택했다. 혹은 정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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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후유가 에나와 네임다운 깊은 얽힘도 없이 1년 가량. 있다고 한다면 비 오는 날 마후유를 주워다 집에 초대한 그 날이었다. 그림으로 자신을 그려준 에나를 바라보다가 어색하게 오른손을 꼼지락거리던 마후유였다.
“왜 그래?”
“오른손이…”
“응?”
“후끈후끈해.”
“그러고보니 나도.”
에나는 별 일도 아니라는 듯이 그리 말했다. 그렇게 웃는 에나의 얼굴이 너무나도 상냥했던 탓일까. 마후유는 머뭇거리다가 제 오른손으로 에나의 오른손을 약하게 쥐었다. 마주 잡아오는 에나의 얼굴을 어쩐지 보기 어려워져서 시선을 내리깔고 얌전히 조물거릴 뿐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에나는 마후유에게 한결같이 상냥했다. “대가를 바라고 잘해주는 건 아니야.” 라고 말하는 듯한 그 태도가 마후유는 어쩐지 불편했다. 싫다는 뜻은 아니었다. 따뜻해서 안절부절 못하게 되는 마후유였다. 차가운 자신의 삶에서 시노노메 에나라는 이름은 언젠가는 열화처럼 뜨거웠고, 이제는 한없이 따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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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나데의 집에 살게 된 지금에서도 그건 변함없는 사실이었다. 언제나 서슴없이 발을 들여놓다가도 결정적일 때는 물러나는 탓에 서로는 인생에서 첫번째가 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에나도 마후유도 그에 불만을 갖지 않았다. 욕심을 내기에는 마후유의 상황이 여의치 않았기 때문이었고, 또한 에나는 조금씩 호전되는 마후유의 상태에 만족하고 말 뿐이었다.
흐지부지. 어영부영. 두 사람의 관계를 정의하는 단어들이었다. 그것을 지켜보는 주변은 감히 말을 얹을 수가 없어 안달을 내는 실정이었다. 눈치가 빠른 미즈키와 애정을 갖고 주변을 살피는 카나데가 바로 그 장본인이었다. 하지만 문제가 벌어진 것도 아닌데 그들이 답답하다고 둘에게 간섭할 권리도 없었다. 둘이 좋다는데 뭐.
두사람의 행복은 이렇게 이어졌다. 아마도 오랫동안. 누구는 친구로만 남는다는 것을 의문으로 여겼겠지만, 이것이 좋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