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Text
칼로 이쪽을 겨눈 여자가 벌벌 떨면서 눈물을 흘렸다.
“살리려면, 당신이 죽어야 해…!”
지긋지긋한 반복이 또 시작되었다. 샐러맨더의 불로불사 설화가 어디까지 퍼졌는지 알 수가 없다. 건국 신화랑 비슷하게 퍼졌는지도 모르겠다. 이럴 거라면 도와준 사람들에게 입단속을 했어야 했다고 짧게 후회했다. 에나는 눈 앞의 여자를 바라보았다.
끼니라고는 챙기지 않았고, 옷차림도 허름하다. 옷 자체는 고가로 보이는데 입은 모양새가 그것을 전부 허사로 만들었다. 산 자의 낯보다는 죽음이 더 가까워 보였다. 먼지와 모래, 그리고 죽은 지 얼마 안 된 시체의 냄새…
에나는 거기까지 깨닫자 여자에게 무언가 할 의욕이 나지 않았다. 주방으로 발걸음을 옮기자 여자가 화들짝 놀라는 기색이었다. 그조차 무시하고 식재를 꺼내 요리를 시작했다. 1시간 남짓 지나 요리가 완성되기까지 여자는 한발짝도 움직이지 않았다. 에나가 테이블에 접시를 옮겨 와 각각의 자리에 세팅했다.
“앉아. 밥 먹자.”
에나는 그쪽으로 시선을 두지 않은 채 먼저 자리에 앉았다. 지금 상황에서는 시선조차 칼날로 인식하는 것만 같았다. 끔찍하게 고민하던 여자는 요리 냄새에 하는 수 없이 따라 앉았다. 아니 미친. 나무 탁자에 칼을 거꾸로 꽂는 건 또 뭘까. 버르장머리 진짜. 에나는 이 여자를 본 기억조차 없는데 부모를 죽인 원수마냥 대해지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머리를 연신 짚었다가 에나는 먼저 수저를 들었다. 원목 식탁 비싼 걸 모르나. 불만을 속으로만 삭였다. 한숨을 푹 쉬었다. 지금 뭐라 해봤자 저 칼자국이 원래대로 돌아오는 것도 아니니. 조용히 식사를 이어갔다. 여자도 곧이어 식사를 시작했다.
삭막한 분위기 속, 계속해서 식기가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여자는 곧 다 먹지도 않고 손을 내려둔 채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에나는 식탁 앞에 죄인을 앉혀둔 마냥 구는 여자가 순식간에 불편해졌다.
“하아아, 너 말야. 대체 뭐가 문제야? 불법침입은 그렇다 쳐도. 밥을 차려줬으면 좀 먹어야 할 거 아니야?”
에나가 분노에 휩싸이자 꼬리가 바닥에 짜르륵 쓸리며 소리를 냈다. 여자는 여전히 고개를 들지 않았다. 그 아래 떨어지는 물방울이 상태를 보여줬다. 에나는 제 그릇만 들고 싱크대에 담가 뒀다. 치우지 않은 여자의 그릇 옆에 물컵을 하나 떠 갖다둔 뒤 거실 소파로 가 앉았다. 집안 어디에나 널러있는 스케치북을 집어와 가만히 그림을 그렸다. 여자는 그렇게 소리를 내면 혼날 것처럼 울었다.
.
“아.”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깨닫고 보니 스케치북은 몇장이나 다음장으로 넘어가 있었다. 얼마나 이마에 힘을 주고 있었는지 두통이 올 지경이었다. 삐그덕거리는 관절을 어떻게든 풀어서 일어섰다. 인간으로 치면 스무살 언저리일 텐데 실제 산 시간은 몇백년이라서 몸에서부터 티를 냈다.
꼬리도 손으로 집어 주물거리며 식탁을 바라봤다. 접시는 치워지고 여자는 물컵을 부여잡고 앉아있었다. 아니, 설거지 건조대를 보면 설거지도 했네? 에나는 별걸 다 한다 생각하면서 여자를 불렀다.
“있잖아.”
그러자 여자는 아까보다는 진정했는지 가만히 이쪽으로 뒤돌았다. 깊게 가라앉은 눈동자였다.
“너 이름이 뭐야?”
“…마후유.”
“흐음, 그래.”
꼬리를 좌우로 휙휙 털어내고는 식탁에 가 앉았다. 마후유는 꽂아두었던 칼을 빼어 식탁 저 멀리에 치워둔 채였다. 에나는 그걸 보고 눈썹만 쓱 들어올렸다가 내려놨다.
“나는 에나. 알고서 온 건지 모르고 온 건지는 모르겠지만.”
“몰랐어. …이름은.”
“그러면 여기 왜 왔는지나 물어볼게. 답할 수 있는 곳까지만 말해봐.”
마후유는 그 즉시 이를 악 물었다. 자칫하면 금세 울어버릴 것만 같았다. 내가 뭐라고 이걸 캐묻고 있는지. 에나는 껄끄럽기만 했다.
“샐러맨더의, 뿔이나 비늘을 이용하면 죽은 사람도 살릴 수 있다고 하니까…”
“아아, 또 그거구나.”
에나는 가볍게 자리에서 일어나 침실로 들어갔다. 이내 유리병과 공구상자로 보이는 것을 들고 와 마후유 앞에 내려놓았다. 마후유는 당황한 기색이었다. 유리병 안에 든 것이 비늘 무더기라는 것을 알고는 더욱 동요하기 시작했다.
달칵, 열자 공구상자 안에는 적지 않은 샐러맨더의 뿔이 있었다. 샐러맨더의 존재를 잘 모르는 마후유에게도 이 뿔은 에나가 아닌 다른 존재의 뿔이라고 생각되지는 않았다. 상자를 조잡하게 뒤적이던 에나는 적당히 묵직한 것을 꺼내 마후유 앞에 툭 내려놓았다. 유리병을 열고는 비늘 3장 정도를 손바닥에 털어준 뒤 모두 다시 닫았다.
“어째서…?”
“뭐가?”
“뿔은, 두개골 안에도 연결되어 있어서 뽑거나 자르면 큰일 난다고…”
“아, 그래서 죽인다 뭐다 한 거였구나? 그런 거 없어. 사슴처럼 뿔갈이 시기가 되면 약하게 건드려도 툭 떨어지거든.”
참 별 걸 다 해. 인간한테나 특별하지 내 입장에서는 그냥 손톱 자른 거 모아두는 거나 다름 없는데. 에나가 투덜거렸다. 마후유처럼 찾아오는 사람은 한둘이 아니었고, 잘 구슬려 돌려보내기에는 그냥 줘버리는 것이 제일이었다. 그렇게 받아간 인간들은 그 뒤로 영원히 찾아오지 않았다. 정말로 살려냈는지, 아니면 그렇지 못해서… 그런 건 에나가 상관할 바가 아니었다. 영롱하게 빛나는 뿔과 비늘은 고작 싱싱한 정도가 다르다고 해서 다른 효과를 낼 것 같다는 인상은 주지 않았다.
“종이 쇼핑백 필요해?”
마후유는 대답을 하지 않았으나 에나는 알아서 챙겨온 뒤 뿔과 비늘을 담아주었다. 제 눈 앞에 놓인 전설 속의 보물이 단지 저가 쇼핑 매장의 종이 쇼핑백에 담겼다. 마후유는 그 이질감에 뭐라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런 마후유를 보고 에나는 말했다.
“어디 한번 가서 진짜 살릴 수 있는지 확인해봐.”
마후유는 홀린 듯 일어나 쇼핑백을 들고 나갔다. 아니, 잠깐. 칼을 갖고 가야… 에나의 말은 듣지도 않은 채 문 뒤로 모습을 감췄다. 에나는 공구상자와 유리병을 제자리에 갖다 놓고 오늘의 일을 하나의 해프닝으로 기억의 저편에 묻어두었다. 마후유가 두고 간 식칼은 그대로 에나의 주방도구로 흡수되었고, 자주 갈지 않아도 날이 무뎌지지 않아서 에나가 애용하게 되었다.
에나는 어쩌면 죽을 위기까지 겪을 수 있었던 사건이었지만, 식칼 하나로 운이 좋았던 날로 기억에 남았다. 마후유가 다시 찾아온 그 날까지는.
“너… 할 말은 진짜 많은데 어떻게 들어온 거야?”
분명 문단속 한 것 같은데. 에나는 찝찝하게 중얼거렸다. 마후유는 지난번과는 다르게 칼을 들고 서있진 않았다. 그래서 에나는 이게 꿈이 아니라고 인식할 수 있었다. 칼을 들었다면 분명 지난날의 광경이 인상에 강하게 남은 탓이라고 치부할 수 있었는데.
“어떻게 해야 살릴 수 있는지 모르겠어.”
“그런 건 내 알 바가 아니야. 내 뿔과 비늘이 부활의 재료라고 떠드는 건 너네고, 난 주술사같은 게 아니라고. 뿔 있고 꼬리 있고. 수명 좀 긴 거 빼고는 다를 것도 없다고.”
“같이 와줘.”
“내가 왜?”
“…”
마후유가 삽시간에 시무룩해졌다. 에나는 기분나쁜 예감이 들었다. 계속 이렇게 끌려다닐 것 같은 예감이. 에나한테는 억압적으로 강요하는 것보다 이런 식으로 동정심에 호소하는 게 훨씬 효과적이었다. 에나의 옛적 지인들은 이런 성향 때문에 언젠가 크게 손해보겠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나한테 진짜 왜 이러는데…’
현대라는 시대에 들어와 에나를 찾아오는 인간들은 적었다. 그 긴 공백기를 거쳐 찾아 온 것도 마후유가 처음이었다. 뿔과 비늘을 받아놓고도 다시 찾아온 것도 마후유가 처음이었다. 아마도 앞으로도 얘가 처음인 게 산더미만큼 많아질 것 같은 직감도 들었다. 하지만 여기서 피한다면. 도망치는 것이 되지 않나?
“하아.”
도망치지 않기로 했잖아.
“앞장 서.”
“…?”
“가자며.”
마후유는 그 말을 듣자 서둘러 문을 나섰다. 적어도 남의 집이어도 신발은 벗고 들어오니 양반이라고 해야 하나… 에나는 마후유가 과하게 서두른 데 비해 지갑도 챙기고 집열쇠도 집어들고 문 밖을 나섰다. 에나가 늦게 나오니 마후유는 설마 내쫓을 핑계로 그런 말을 꺼낸 게 아닌가 의심하다가 문이 열리자 안심한 얼굴을 했다.
칼을 겨눴던 사람한테 이렇게 의지하다니. 에나는 마후유를 잘 모르지만 얘가 누구한테 사기당하고 있는 게 아닌가 걱정도 됐다. 샐러맨더의 뿔은 밀렵꾼들에게도 잘 노려졌으니 그들이 잘 구슬려 가로챈 게 아닌가 하고.
에나는 자가용에 올라탔다. 마후유는 미심쩍은 표정으로 옆자리에 앉았다.
“왜?”
“…면허는?”
“너 자동차의 역사보다 내가 나이 많은 거 모르지?”
“…”
마후유는 그 말이 아니라고 하고 싶었지만, 얌전히 휴대폰 내비에 목적지를 찍었다. 그 뒤로는 안내하는 합성 음성만 흘러나왔다. 마후유는 뒤늦게 불안감에 휩싸였다. 그 사고 이후로 자신의 행동을 제어할 수가 없었다. 주변인을 계속해서 휘말리게 하는 자신이 옳은지 잘못되었는지 구분조차 가지 않았다. 마후유는 손톱을 뜯거나 입술을 깨무는 불안증세도 내보이지 않은 채 속만 태웠다.
이윽고 마후유의 집에 도착하자 에나는 주변을 살피며 마후유를 따라 집에 들어갔다. 교육받은 대로 실례합니다, 하는 인사치례를 잊지 않았다. 마후유도 다녀… 까지는 말하다가 입을 다물었다. 그렇게 긴 복도를 지나 거실로 들어가자, 두 명의 산 사람과 두 명의 죽은 사람이 보였다.
“앗, 정말로 데려왔구나.”
“어서와. 상황이 상황이겠지만.”
인간은 주름이 난 나이대가 아니면 나이 구별이 쉽지 않았다. 아마 친구인가? 에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특이한 점은 둘 다 뿔이나 꼬리를 향한 조심성 없는 시선을 향하지 않았다는 것. 신기하네. 그것 뿐이었다.
나머지는… 외부와의 기온차이로 성에가 낀 커다란 유리 냉동고에 든 두 사람이 있었다. 잘 안 보이네. 예의상 짧은 묵념을 했다. 이곳은 장례식장은 아니지만, 영원한 장례를 치루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