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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나.”
부드러운 목소리가 나를 불렀다. 이렇게 잠이 깨는 것으로 시작하는 꿈은 꽤 오래됐다. 나와 동갑으로 보이는 갈색 단발의 여자애는 내 앞머리를 가볍게 흐트러트렸다. 아마 나는 허벅지를 베고 누워있었겠지. 나를 내려다보는 시선이 따스하다. 내 얼굴 주위를 맴도는 손을 붙잡아 뺨에 대고 문질렀다. 차가운 손이 내 체온과 이어져 같은 온도가 되었다.
“심심했어?”
“괜찮아. 네 얼굴 보는 것도 재밌거든.”
“그래?”
놀리는 건지 아닌지 구분이 가질 않았다. 재밌는 얼굴이라는 말을 듣는 건 이 여자애한테서 뿐이었다. 칭찬을 받긴 하지만 별 느낌은 없었는데, 여자애한테서 듣는 재밌는 얼굴이라는 말은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어쨌든 내 얼굴을 보고 싶어진다는 소리였으니까.
“내가 보기에 넌 좀 더 잘 쉬는 게 좋아.”
“쉴 만큼은 쉬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하루에 서너시간 자는 게? 절대 아니야.”
그런 말을 하는 여자애는 잠을 안 자는 순간 성질이 급속도로 나빠진다고 한다. 이해는 잘 안 가지만 그런 체질인가 하고 매번 생각했다. 내 볼을 콕콕 주무르거나 콧대를 슥 쓸어보던 여자애는 몸을 꾹 숙여서 비틀린 각도로 키스를 해왔다. 떨어지는 순간 예상치 못하게 아쉬워서 턱을 들어도 따라잡지 못했다.
“이제 일어날 시간이야.”
“난 이미, 일어나…”
그 순간, 눈이 떠졌다. 어슴푸레 방 안이 비쳐보이는 새벽의 방이었다. 가을을 지나는 계절은 방을 냉골로 만들었다. 손가락은 전부 차갑게 식어있었고 손바닥마저 냉기를 느꼈다. 가슴 안쪽도 그런 것 같았다. 이럴 거라면, 아예 일어나지 않았으면 더 나았을지 몰라.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며 그렇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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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후유! 이쪽 좀 도와줄래?”
“응, 금방 갈게.”
무감각해진 것도 몇년째일까. 남을 도와도 별 보람도 느끼지 못하고 심지어는 권태감을 느끼는 것도 오래다. 오직 바라는 것은 밤. 꿈을 꾸는 그 시간이었다. 얼마 전까지는 바라는지 아닌지도 헷갈렸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하자마자 귀신같이 꿈을 꿀 수 없게 되어 방황하게 되자 깨달았다. 그러니 비로소 다시 꿈을 꿀 수 있게 되었다.
나는 꿈에서 갈색머리 단발 여자애와 데이트를 한다. 사귀는지 아닌지도 모른다. 그저 손장난을 치고 꼭 붙어있다가 키스를 하고 또 껴안았다가 손을 잡았다. 언젠가는 밤을 보내기도 했었다. 여자애는 항상 나를 걱정하고 다독여주었다.
제일 이상한 점은, 내가 마치 그 여자애를 그리워하는 것처럼 반응하는 것이다. 분명 스킨십을 하면서 정서적으로 의지하는 것으로 안정을 느끼는 건 단지 호르몬 반응일 텐데. 자는 사이에 분비되는 것일까. 이러한 생각을 꿈 속에서 여자애한테 말해보니 나를 보고 웃었다.
그냥 미소지은 것이 아니라 깔깔 웃으며 자지러졌다. 내 코를 꼬집으며 흔들기에 인상을 팍 찌푸렸더니 더욱 웃었다. 나와 시간을 보내는 게 행복이라는 것처럼.
그러더니 살며시 입술을 가져와 나에게 마주대었다. 입술을 오물거리며 연인끼리 하듯이 장난을 쳐왔다. 손 끝으로 강아지에게 하듯 턱을 간질이길래 허리를 감싸안고 뒤로 엎어져줬다.
그 날의 꿈에서 나는 정상적인 사람처럼 키득키득 웃으며 여자애와 장난을 치며 시간을 보냈다. 그래서 깨어날 때면 절벽에서 떨어지듯 박탈감을 느꼈다. 현실의 나는 여자애를 마주친 적도 없고 사랑을 한 적도 없으며 나 자신도 갖지 못한 사람이었으니까.
어느 날은 꿈속이 아니라 현실에서도 만나고 싶다고 말하려고 했었다. 하지만 꿈이라는 단어를 말하려고 하자 잠에서 깨어나고 말았다. 후회했다. 말하지 말고 꿈이나 오래 꿀 것을. 하지만 그 다음날에도 입을 막지 못하고 꿈이라고 말을 꺼내고 말았다. 그러더니 꿈에서 깼다. 그 다음부터는 억지로라도 말을 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꿈 속에서 꿈이라는 사실을 꺼내는 건 금기인 것 같았다.
덕분에 나는 교복을 입고 다니던 나이 이후로 처음으로 잠이 많아졌다. 렘수면으로 인한 피로 때문이 아니라 순수하게 꿈으로 도피하기 위함이었다. 일상을 유지할 수 있을 정도는 깨어있었지만 사적으로 약속을 잡는 일은 없었다. 그 시간에는 자야 했으니까.
그러나 그 생활이 오래 이어지기 시작하자 여자애가 꿈에서 날 깨우기 시작했다. 일어나. 나는 그 말에 꿈에서 내쫓겼다. 여자애는 날 잠깐 만나주고는 도망갔다. 오늘도 그랬다.
“아사히나씨, 괜찮아? 요새 계속 피곤해보이네.”
“아, 아니야. 그냥 꿈에서 자주 깨거든.”
“그래? 내 친구도 그렇다던데. 환절기라 그런가.”
“친구?”
“응. 내 친구의 오랜 친구이기도 하는데, 꿈을 위해서 엄청 노력하는 아이야.”
내가 약간의 관심을 보이자 히노모리씨는 그 사람을 칭찬하기 시작했다. 그렇게까지 말해달란 소리는 아니었는데. 히노모리씨가 기뻐하고 있으니 말릴 필요는 느끼지 못했다.
“그러고보니 몇 달동안 집에서 안 나온다던데, 걱정이네.”
“그렇게나? 무슨 일일까.”
어떻게 사람이 일주일도 아니고 몇 달이나 집에서 안 나올 수가 있을까. 고독사라고 봐도 크게 다름이 없었다. 히노모리씨가 걱정만 하고 슬퍼하지는 않는 걸 보면 연락은 닿는 것 같았다.
그 와중에 갑작스레 전화가 걸려왔다. 내 것이 아니라 히노모리씨의 전화로. 서성서성 손가락으로 받는 버튼을 터치하려다가 화면을 두번 누르는 게 보였다.
“여보세요? 아이리쨩? …안 들린다고? 어? 어째서일까…”
“히노모리씨. 마이크 음소거 눌렀어.”
“아! 그렇구나. 어…”
“이거야.”
수화기 너머로 이제야 들린다는 모모이씨의 목소리가 들리고서는 나는 의식을 먼 곳으로 돌렸다. 꿈에서 만날 여자애만 생각났다. 오늘 일찍 자러간다고 해도 또 깨워서 내쫓기면 소용이 없었다. 나는 저절로 그 여자애랑 어떻게 하면 긴 시간을 보낼 수 있을지만 궁리하고 있었다. 그러자 공상의 틈새로 히노모리씨가 어느새 전화를 마친 건지 말을 걸어왔다.
“아사히나씨! 이건 그냥 권유인데, 싫으면 거절해도 되지만 꼭 같이 가줬으면 좋겠어.”
“어? 무슨 일인데?”
“피곤한 것도 물론 알지만… 아까 말한 그 친구를 불러서 놀러 나가려고 하는데 아사히나씨도 가면 정말 좋을 것 같아.”
아사히나씨도 그 친구도 잠 때문에 시달리고 있으니까 고민을 나눌 수 있지 않을까. 히노모리씨는 그렇게 덧붙였다. 이렇게까지 말하는데 거절할 생각은 들지 않았다. 웃으며 수락하자 히노모리씨는 무척이나 기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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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쪽은 아사히나 마후유씨. 내 친구야. 에나쨩하고는 처음 보지?”
시즈쿠가 소개하는 말에도 내 입을 열릴 기색이 없었다. 아이리가 힐끔거리면서 자기소개를 하라는 눈치를 줘도 나는 바라보기만 했다.
“…이쪽은 시노노메 에나. 나는 모모이 아이리야. 얘기는 많이 들었어.”
내 시선 끝의 보라색 머리의 여자, 마후유는 나와 마찬가지로 놀랐는지 아닌지 이쪽을 잡아먹을 것처럼 보고 있었다. 그 시간이 길어지자 시즈쿠도 아이리도 이상한 기류를 느꼈는지 정적 속에 나와 마후유를 번갈아 바라보고 있었다.
“뭐야, 에나. 아는 사이야?”
아이리가 속닥거리면서 다그쳤지만 나는 그 분위기에 타줄 생각이 들지 않았다. 나를 생각해준 아이리에게는 정말 미안하지만, 나를 위해서 이 자리를 만들어준 것도 알지만 더는 있을 수 없겠다.
“정말로 미안. 오늘은 이만 돌아갈게. 다음에 보자.”
빠르게 자리에서 벗어나 멀어졌다. 아이리, 시즈쿠한테는 정말 미안하게 됐다. 그 생각을 하는 찰나에 멀리서 자기가 따라가보겠다는 마후유의 목소리가 귀에 꽂혔다. 이 상황에서도 귀에 바로 꽂히네, 저 목소리는. 들리자마자 땅을 박찼다.
아니나 다를까 쫓아오는 발소리도 뒤따랐다. 안 그래도 밖을 안 나간 지 몇 달이라 체력 달리는데. 큰일났다. 아니, 이 정도로 거절 의사를 드러냈으면 안 쫓아오는 게 상식 아니야? 상체를 비틀어 뒤를 돌아보니 마후유가 흔들림도 없이 여유롭게 따라잡았다. 이럴 수가.
심리적 쇼크인지 아니면 단순히 운동감각 부진인지. 나는 이윽고 비틀거리며 직선경로를 벗어나다가 이내 비틀거렸다. 이러면 분명 팔꿈치를 갈아버릴 게 분명했다. 희게 관리하는 편이었는데 당분간은 어렵게 되었다. 예쁜 반창고나 구해볼까. 그런 지루한 생각에 빠진 찰나였다.
마후유가 쌩 달려와 나를 부축해 품에 넣었다. 이 상황까지 오자 그저 허탈했다. 볼품없는 나를 이렇게 근사하게 구하다니. 이래서는 정말 말 그대로 ‘꿈에 그린 연인’이었다. 나는 그대로 마후유의 가슴께에 얼굴을 묻고 있었다.
“…괜찮아?”
“…”
“에나.”
“시끄러워. 친한 척 이름 부르지 마.”
“…시노노메씨?”
그게 아니잖아. 부정의 의미를 담아 어깨를 콰악 주먹으로 쳐주었다. 소리로 보나 내 의도로 보나 꽤나 아팠을 것이다. 얘 어깨가 캔버스였으면 이미 구멍이 났을 텐데. 그 정도로 진심으로 쳤으니까. 하지만 얘는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다시 에나, 하고 내 이름을 불렀다.
“요즘 잠 잘 못잔다고 들었어.”
“그게 너랑 무슨 상관인데.”
내 부루퉁한 목소리에도 마후유는 나를 놔줄 생각은 하나도 없는 것 같았다. 그렇다고 나도 굳이 빠져나가려고 발버둥까지는 치지 않았다.
“별로 상관도 없고, 핑계기도 해.”
“…뭐가?”
“우리집 가서 같이 한숨 자자.”
이건 또 무슨 소리야.
“나도 에나 자는 얼굴 보고 싶어.”
“뭔. …하?”
어처구니가 없어서 그 낯짝을 봐주고 싶어 얼굴을 들었다. 마후유는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태평한 기색이었다. 한 대 떄려주고 싶네. 아키토 녀석이 날 짜증나게 만들었다면 얼굴에 바로 한 방이었을 텐데. 마후유한테는 그럴 수 없는 게 얄미웠다.
“안 된다고 하면 길바닥에서 키스할 거야.”
“뭐…?”
아니, 진짜로. 얘 왜 이래? 원래 이렇게 막무가내였나? 아니 사실상 오늘 만난 게 처음인데 원래고 뭐고 없지. 하지만, 꿈이 만약 정말이라면(이렇게까지 쫓아와서 같이 자자니 키스한다느니 말한 시점에서 정말일 수밖에 없지만.) 얘가 그동안 꿈에서 보인 모습은 뭐였단 말인가. 물론 나도 꿈에서는 초조감이 사라져 훨씬 다정하게 대할 수 있었다고 해도 이녀석의 안달복달은 명백히 이상했다. 왜 이런대.
“갈 거야? 말 거야.”
그건 이미 질문이 아니었다. 가자. 그 의지가 깃든 눈으로 서서히 입술을 가까이 가져다 대려고 했다. 고개를 돌리며 손으로 막지 않았다면 정말로 길바닥에서 키스할 뻔했다.
“알았어! 알았다고!”
그러자 마후유는 꿈 속에서 애교부리다가 흘리던 웃음과 똑같이 웃었다. 입술을 양옆으로 살짝 늘이고, 눈만 살짝 가늘어지도록. 내가 누구 한 명이 깊게 웃는다 해서 행복감을 느낄 일은 없었다. 그럴 일은 결단코 없었다. 속에서 참지 못할 것이 솟구쳐 나올 것 같아서 이를 악물었다. 정말 말도 안 됐다. 이래서 만나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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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후유가 데려 온 집은 물건이 적고 삭막했다. 좋게 말하면 미니멀하고 깔끔한 집이었다.
“혼자 살아?”
“응. 고등학교 졸업할 땐 이미 독립했어.”
“그래.”
거실과 방 하나가 딸린 혼자 살기 좋은 집이었다. 아닌가. 딱히 집을 보러 돌아다니는 취미는 없어서 판단에는 자신이 없었다. 누군가는 하찮은 일로 자신을 잃는다니 이해가 안 된다고 할 것 같았다. 아직 그런 말을 한 사람은 없을 텐데 습관적으로 이렇게 된다.
“편한 옷 꺼내줄까?”
“아, 응…”
마후유의 목소리가 들려온 탓에 생각의 연결고리가 끊겼다. 그리고 다시 새로운 생각이 꼬리를 이었다. 얘는 왜 나를. 쪽.
“생각 그만 해. 안 좋아.”
“뭐, 아니.”
사람의 첫키스를 가져가놓고 그게 할 말이야? 연애라고는 해본 적도 없고 했다 쳐도 꿈에서 한 걸 세진 않았다. 그러니 방금 어이없이 뺏긴 것이 나의 기념할 첫키스가 되시겠다. 머리에 열이 올라 미간을 구기자 오히려 기분이 좋은 기색이었다.
“시무룩한 것보다…”
“하?”
“머리맡에 놓을 물 가지러 갔다올게. 옷 갈아입고 누워있어.”
그러더니 나는 덩그러니 방에 남겨졌다. 진짜 뭐하는 애야? 부정적인 발상이야 끊겼다만, 그 자리를 화가 차지하면 무용지물 아닌가? 일부런가? 나는 화를 혼자 삭히며 옷을 갈아입었다. 내가 평소 입는 사이즈보다는 하나 컸다. 내 어깨보다 약간 큰 어깨 봉제선을 힐끔거리거나 소매 길이를 재보며 조바심이 들었다.
별 수가 없어 침대에 걸터앉아 기다리고 있으니 마후유가 돌아왔다. 침대 옆 협탁에 물을 내려놓더니 별 말 없이 옷을 벗었다. 어?
“뭣, 아니 어떻게 그렇게 사람 앞에서 서슴없이 벗어?!”
“…? 에나한테는 보여도 좋으니까.”
꺼낸 옷에 가볍게 목을 끼운 마후유는 아직 해가 지지 않은 창문에 커튼을 쳤다. 그 등이 눈에 새겨졌다. 아마 잊으려면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았다.
“게다가 이미 보여준 적 있지 않았나.”
꿈에서랑 이거랑 같냐고. 지끈지끈. 요새 계속 따라다니던 두통이 더욱 심해졌다. 그러자 마후유가 날 놀리는 걸 그만뒀다. 걱정하는 기색이 가득했다. 꿈에서는 내가 부진을 티낸 적이 없어서 그런가, 이런 얼굴은 신선했다.
“미안. 얼른 자자.”
“너… 아까부터 물어보고 싶었는데 왜 이리 잠에 집착해?”
마후유는 나한테 천천히 뒤덮이면서 살살 눕히고 대답했다. 그 몸짓은 꽤나 손에 익었고 나에게도 익숙했다. 그 과정 속에서 나는 불필요하게 들어갔던 힘이 모조리 빠졌다. 동시에 두통도 기분탓인지 좀 가라앉은 것도 같았다.
“나도 졸리고, 에나도 분명 잠을 못잔다고 들었으니까.”
“…설마 너도 잠을 잘 못 자는 거야?”
“…잠을 자도 계속 내쫓기니까.”
내 탓인가. 아니, 내 탓은 아니지. 애초에 마후유가 점점 잠을 늘리려고 하길래 막은 건데. 꿈 속 세상(세카이)으로의 도피. 무슨 심정인지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었으나 그래서는 좋게 끝나는 건 없다. 마후유는 내 옆에 자리잡고 누웠다. 따스했다. 체온이 높은 편이었다, 마후유는. 그래서 나는 마후유의 품에서 떨어지고 싶지 않았다. 다른 이유는 없었다. 그냥, 추워서 그랬다.
“알잖아. 잠만 자면서 삶을 허비할 수는 없어.”
“그곳에만 에나가 있었으니까.”
“…마후유.”
처음으로 목소리를 내어 이름을 부르자 마후유는 혼나는 아이처럼 슬쩍 눈꺼풀을 들어 내 눈을 바라봤다. 강아지? 어린애? 몇가지 예시를 들어봐도 딱히 이렇다하게 와닿은 건 없었다. 내가 받은 인상을 그대로 비유할 대상은 없었다.
“깨어있을 때가 분명 더 중요하잖아.”
“모르겠어. 난 이미 한참 전부터 아무것도 몰라. 무엇이 중요하고 하찮은지. 좋고 싫은지도.”
내게 두른 팔에 힘이 들어갔다. 깊은 슬픔이 밴 목소리. 적어도 난 꿈에서조차 이런 마후유의 목소리를 들은 적이 없다. 꿈은 꿈일 뿐인지, 절대로 슬픈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마후유의 뒷통수, 등허리를 살살 쓰다듬었다. 차갑던 마후유의 피부표면이 그나마 열이 돌아오는 것처럼 느껴졌다.
“꿈으로 계속해서 갔던 이유도 에나가 거기에 있어서야. 이제는 여기서도 볼 수 있으니까 안 그럴 거야.”
아프다. 나같은 걸 사랑하고 말았다니. 마후유도 참 딱하지. 차라리 질나쁜 사람한테 걸려서 이용만 당해도 거짓된 사랑이라도 받았으면 좋았을걸. 나는 결코 마후유를 사랑해주지 않을 것이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었다.
나는 마후유의 차갑게 식은 눈꺼풀을 살살 쓰다듬어 데워줬다.
“…자자.”
오늘은 꿈을 꿀까. 아니면 안 꿀지도 모른다.
나는 결코 마후유를 사랑하지 않을 것이다. 마후유의 진심으로 행복하다는 얼굴로 웃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상상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도 멋진데 밝아진 뒤엔 얼마나 사랑스러울지 가늠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유일하게 사랑하는 사람을 시기와 질투로 더럽히고 싶지 않으니까.
“잘 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