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k Text:
“내 머리를 찾아줘.”
지금 네 머리가 문제야? 내 머리가 맛이 간 것 같은데. 에나는 지금 이 상황이 꿈인 것만 같았다. 사람…? 같은 것의 머리가 있을 자리, 즉 허공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으니까.
“아… 아니, 너 누군… 뭐야?”
마구잡이로 흔들리는 시야를 기어코 붙잡아 올리는 이유는 목의 절단면이 있을 법한 곳을 보지 않기 위함이었다. 마침 셔츠를 입은 몸통이라서 다행이 보이지는 않았다.
사람들 시선이 신경쓰여서 제대로 눈을 가리지도 못하고 어정쩡하게 하관을 붙잡고 있었다. 평소 화장 때문에 얼굴에 손을 올리지 않는 에나가. 심지어는 벌벌 떠느라 힘이 들어간 손 때문에 살이 당겨져 눈 안쪽 점막이 드러날락 말락 했다.
“내가 머리가 없다는 걸 알고 있잖아.”
“무, 무슨 소리를. 말은 어떻게 하는, 데?”
머리가 없다면. 이라는 부연설명을 잊은 시점에서 설득은 무리라는 걸 에나는 알지 못했다. 당연하지. 이 광경을 보고 어떻게 평정을 유지하는데? 에나는 친구들 사이에서 유명한 겁쟁이였다.
“캠퍼스를 다니면서 나를 소름끼친다는 눈으로 본 건 너뿐이야. 몇 주 전부터 봤잖아.”
“힉!”
그건 그랬다. 근데 그냥 자기가 밤샘을 너무 했나 헛것을 보네, 하고 넘어갔었다. 이게 뭐야. 무슨 상황인데. 고개 들이밀듯이 허리 숙이지 마. 절단면 보인다고! 차마 입으로 내뱉지 못한 말이 속에서 비명같이 들끓었다.
“무흡. 무슨 말인지 모르겠고. 나는 일이 있어서 그만 가볼게.”
첫 단어부터 삑사리가 나버린 시점에서 얼버무리기는 글렀다. 에나는 그것도 알아차리지 못하고 마냥 이 순간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러다 낯선 목소리가 하나 끼어들었다.
“아, 마후유! 지금 공강이야?”
“응. 마침 다른과 친구 만나서 같이 먹으러 가려고.”
목소리가 귀신같이 뒤바뀌었다. 마후유라고 불린 목 없는 생명체가 에나에게 다가섰다. 에나는 소리없는 비명을 질렀다. 낯선 이는 에나보고 안색이 좋지 않아 보인다며 마후유에게 좀 챙겨주라며 쓸데없는 잔소리를 얹어주고는 사라졌다. 이게 누구 때문인데 누구한테 부탁하는 거야?
“봤지?”
뭐를!
“나는 누구에게도 그런 시선을 받지 않아. 내 머리가 없기는 커녕 멀쩡하게 보인대.”
“아, 알았으니까 좀 떨어져줄래!”
눈을 질끈 감은 에나가 외쳤다. 아무래도 내 인생이 꼬이기 시작한 게 아닐까. 에나는 속으로 한탄했다. 이녀석의 말을 들어주러 따라가야 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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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극도로 눈을 마주치기 싫어하는 사람 처음 봐.”
패밀리 레스토랑의 구석자리. 드문드문 사람이 있지만 그렇게 시끌벅적하지는 않았다. 에나는 제발 아무나 좋으니 여기서 날 꺼내줘, 하고 바랐다. 그런 일은 전혀 일어나지 않았다.
“네가 그런 말을 해? 눈도 없으면서 어딜 보라는 거야?”
에나는 이 지경까지 온 이상 시치미 떼는 것도 한계라는 걸 깨달았다. 상대방이 막무가내로 끌고 온 게 먼저였으니 자신도 까칠하게 대해도 할 말이 없겠다. 에나는 거의 동생을 대하는 것 만큼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냥 신선해서 해본 말이야.”
어쩌라고. 라는 말이 튀어나올 뻔한 걸 막았다. 음료 정도는 사준 만큼은 대해줘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구체적으로 나한테 뭘 바라는데?”
“…어느날부터 내 머리가 사라졌어. 찾고 싶은데 방법도 모르고 실마리가 없어.”
“…”
“그런데 남들은 내 머리가 사라진 줄도 몰라.”
이녀석은 목소리가 고저가 없이 평탄하고 무감정했지만, 에나는 그 사이에서 미약한 절망감을 들여다보았다. 아, 진짜 어렵네. 얼굴이 없으니 목소리에서만 이녀석이 어떤 사람인지 파악해야 한다니.
“얼굴에 그렇게 미련은 없었지만, 아예 사라지길 바란 건 아니었어.”
“하, 알겠어. 알았다고. 도와줄게.”
“…정말?”
목소리가 약간 밝아지는데도 표정을 모르겠어서 감이 안 잡혔다. 음료를 한 모금 들이켰다.
“그보다 통성명이 먼저 아니야?”
“난 마후유. 아사히나 마후유야.”
“시노노메 에나. 도와줘도 되는데, 한 가지 조건이 있어.”
“뭔데?”
“나 만날 때는 야구모자 아무거나 쓰고 와. 눈을 맞추는 척이라도 해야 같이 다닐 텐데 허공만 보여서 초점이 안 잡혀.”
“알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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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휴. 곤란한 사람을 좀 모른 척 할 수 있는 매몰찬 사람이어야 세상 살기가 참 편한데. 내숭떠는 게 아니라 이런 성격 때문에 손해도 참 많이 보는 에나였다.
“와. 진짜 쓰고 왔네.”
“쓰고 오라고 했잖아.”
에나가 놀란 반응을 보인 건 행동 때문이 아니었다. 허공에 뜬 것처럼 보이는 현상 때문이었다.
에나는 허공에 뜬 모자와 그 아래 허공을 번갈아 보다가 부주의하게 허공에다 손을 뻗었다. 그러다가 무언가에 툭 닿는 것을 느꼈다.
“어?”
“아파. 눈 찔렸어.”
“있잖아 머리! 미안.”
눈가가 있을 곳을 손으로 가리며 몸을 움츠렸다. 아니, 눈물 찔끔하는 게 보이면 좀 죄책감이 느껴졌을 텐데 하나도 안 보이니 그럴 수도 없었다.
“그런 것 치고는 초점은 안 맞네.”
“아니 안 보여도 손에는 닿잖아.”
에나는 안 보이겠다 냅다 손을 갖다대서 마후유의 얼굴을 주물럭거렸다. 말캉말캉. 20대 초반, 만으로 따지면 20대도 안 된 얼굴답게 아직 덜 빠진 젖살이 만져졌다. 전혀 안 보이는데 만질 수 있다니. 투명 곤약을 만지면 이런 기분일까? 그건 빛의 굴절 때문에 인식이라도 되잖아. 이건 아예 허공을 주무르는 느낌이었다.
그 긴 시간을 만지작대고 난 뒤 내린 평가는, 마후유는 보이는 사람들의 기준에서는 꽤 미인에 들 것 같다는 생각이었다. 조형미가 있을 법한 형태였다.
마후유는 어느샌가 제 얼굴을 만끽하는 에나의 양손에 제 손을 올려놓은 채 말 없이 기다리고 있었다.
“아, 미안. 너무 만졌나?”
“상관은 없는데 과해.”
표정도 말투도 단서가 되지 못하니 에나는 정말 손으로 짚어가며 마후유를 파악할 수밖에 없었다. 더듬더듬 미간을 건드려봐도 주름은 느껴지지 않았다.
“화 안 났네.”
“왜 화를 내?”
“아니, 그냥.”
마후유는 평온해보였다. 실제로 보이는 건 아니고, 그냥 그런 기색이었다. 에나는 뜻없이 주물거리면서 생각했다. 이정도도 괜찮은 거구나.
“앞으로도 좀 만질게?”
“…?”
“얼굴만.”
“아아.”
“표정을 알 수가 있어야지.”
겸사겸사 모자를 쓴 정수리도 좀 쓰다듬었다. 폭 고정된 모자는 적당한 손길에도 그리 움직이지 않았다. 마후유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에나는 몰랐다. 그냥 싫지는 않다는 것만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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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후유와 지내는 시간은 썩 지루하지 않았다. 에나의 단짝들은 주로 감정에 솔직하고 분위기를 끌어올리는 걸 즐기는 편이었다. 막장드라마를 보면서 시원스럽게 욕을 하거나 분노하는 타입. 그 정반대인 마후유인데도 왜 어색하고 껄끄럽지 않은지 드문드문 생각해봤다. 결론은 나지 않았지만.
미대생인 에나는 오늘도 강의실 중 하나에 처박혀 과제를 헤쳐나갔다. 동기들도 다크서클을 잔뜩 달고서 죽어나가는 소리를 냈다. 이런 일정이니 마후유를 만날 수 있을 리가 만무했다.
도와줘야 하는데. 아니 물론. 에나가 하는 일이라고는 마후유의 사연을 듣고 같이 고민해주는 것밖에 없었다. 이게 정말 마후유에게 도움이 되나.
커다란 캔버스를 채우느라 까치발까지 서면서도 섬세한 붓놀림을 발휘했다. 에나의 얼굴은 피로에 절어 푸석푸석해졌는데도 눈은 기어코 반짝거림을 간직했다.
미친 미대생들이 가득 찬 방, 성실하게도 노크 소리가 울렸다. 이윽고 들어온 것은 허공에 떠있는 모자였다. 아니, 이게 아니지. 에나에게 그렇게 보일 뿐이지 마후유라는 어엿한 사람이었다.
“실례할게요. 에나, 잠깐 괜찮아?”
“…아, 응.”
그리고 물론 에나는 며칠동안 밤을 새서 제정신이 아니었다. 눈빛이 살아있기는 했지만 거의 안광이 번뜩이는 것이었다. 마후유가 에나를 걱정해서 찾아온 것은 좋은 일이었지만, 앞으로 벌어질 일을 생각하면 좋은 선택은 아니었다.
마후유가 다가가자 에나는 그동안 하던 것처럼 마후유의 얼굴에 손을 갖다 붙였다.
“…?”
마후유는 내심 당황했다. 아는 사람들이 근처에 있으면 안 하던 손버릇인데. 난리쳐도 상황만 이상해질 뿐이니 마후유는 그저 할 말을 하기로 했다.
“잠시 나갈까? 과제 바쁜 건 알겠지만 햇빛도 안 보고 계속하면 체력에 안 좋아.”
“그럴까? 잠깐만 기다려봐.”
에나는 익숙하게 정리한 뒤 마후유와 방을 나섰다. 에나는 넋이 나간 채 마후유를 따라 인적이 드문 곳으로 향했다. 건물 뒤 자판기와 벤치 사이에 도착하자 멈췄다.
“…너, 사람들 앞이면 말투 뿐만 아니라 표정도 바뀌는구나?”
“…그래?”
마후유의 내숭은 스스로 인식한 채 행하는 것이 아니었다. 이 기회가 찾아와서야 마후유도 에나도 이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냥, 표정도 말투도 그렇게 의식하고 하는 건 아니야.”
에나는 양손에 마후유의 얼굴을 끼워놓고 그 사이를 둘러보았다. 어째선지 난처한 기색이었다. 내가 화내는 거라고 생각하나. 아닌데. 에나는 이 순간, 마후유의 표정을 보고 싶은 극심한 욕구가 들었다.
그러는 마후유는 초조했다. 자기가 무엇을 잘못한 걸까. 매번 엄마를 슬프게 하는 것처럼 에나한테도 똑같이 상처를 주었다면, 자신을 도와주려는 에나가 실망하고 돌아선다면 정말로 버티기 어려울 것 같았다. 심지어는 울 것 같은 기색이었다.
그러자 에나는 눈썹을 약간 들어올렸다. 왜 울려고 하지. 달래줘야 하나. 양손으로 얼굴을 쓰다듬던 손은 어느샌가 마후유의 입술로 향해 있었다. 힘이 가득 들어가서 바들바들 떨렸다, 입술이.
에나는 가만히 다가가 입술을 붙였다.
아, 키스해버렸다. 눈을 감으면 자신이 키스한 사람이 평범한, 그러니까 머리가 제대로 보이는 사람인 것 같은 착각도 들었다. 말캉한 감촉이 입술에 남았다. 어떤 반응인지 알 수가 없네. 적어도 놀란 척은 했을까?
성급하게 혀를 집어넣는 것도 아니고, 단지 오랫동안 붙이고 있었다. 불규칙적으로 작은 힘에 의해 형태를 바꾸는 입술의 느낌을 끊이지 않게 느꼈다. 짧지 않은 시간이 지나고, 마후유는 급히 숨을 쉬면서 에나의 어깨를 잡고 떼어냈다. 그 시간 내내 숨을 참았던 것이다.
“…”
에나와 마후유 사이에서 적막이 흘렀다. 에나는 그 많은 나날동안 마후유의 얼굴이 보이지 않아 불만이었던 적이 여럿 있었지만, 오늘만큼 마음에 들지 않았던 건 처음이었다.
“네 머리를 되찾았을 때 했다면 지금 어떤 표정을 하는지도 보였을 텐데.”
에나는 미련스레 마후유의 얼굴을 지분거렸다. 이내 마후유의 머리를 양손으로 잡아당겨 제 어깨에 묻게 했다. 에휴. 왜 하필 마후유가 이런 일을 겪는대. 대체 뭘 위해서. 아이를 달래는 것처럼 등을 토닥였다.
마후유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평소에도 마후유를 휘두르던 게 에나긴 했다. 하지만 이렇게나 갖고 노는 건 처음이었다. 물론 둘이 만난 기간이 짧았던 탓에 보지 못한 면모이기도 했다.
당황스러웠다. 상황도 그랬지만 이 모든 게 싫지 않았다는 것이. 내내 어정쩡하게 허공에 떠있던 손을 에나에게 둘렀다. 에나의 이마에 콕콕 건드려져 한껏 벗겨지려던 모자도 다시 눌러 썼다.
마후유는 에나와 만날 때면 모자를 꼭꼭 눈썹까지 가릴 정도로 깊이 눌러 썼는데, 에나는 항상 챙의 뿌리부분을 눈 대신으로 삼아 시선을 보냈다. 아마 그래서 마후유는 모자를 깊이 썼다. 눈을 마주치는 일 따위는 일상 중에 널려있는 행위였는데, 왜 그걸 바랐을까. 바랐다는 것 자체도 지금 깨달았다.
에나는 아까부터 계속 말이 없었다. 점점 이쪽으로 체중을 맡기는 걸 보면 서서히 잠에 빠지는 것 같기도 했다. 마후유는 에나를 이대로 서서 재울 수도 없어서 자세를 약간 낮춘 뒤 에나의 엉덩이 밑을 받쳐 들어 근처 벤치로 옮겼다. 가벼웠다. 설마 철야를 한다고 끼니도 거른 걸까?
오랜지 잠깐인지, 에나는 잠에서 깨어난 뒤 별 말을 하지 않았다. 아니, 아예 꿈인지 생시인지도 모르는 것 같았다. 꿈인 줄 아는 걸까? 아니면 아예 기억을 못하나? 어느쪽이든 마후유의 속만 타게 생겼다. 하지만 에나가 슬슬 기색만으로도 마후유의 감정을 눈치채기 시작해서 겉으로 드러낼 수도 없었다. 다만 속으로 생각할 뿐이었다.
‘…나빴어.’
마후유는 간식거리를 챙겨준 뒤 에나를 과제로 돌려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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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나는 그 뒤로 마후유를 피하거나 하지 않았다. 단지 그 내용을 다시 꺼내지 않았다. 마후유는 괜히 묻어두려는 것을 파헤치는 성격이 아니란 걸 알았기 때문이었다.
에나는 오랜만에 아이리와 만나 기분전환을 하고 있었다. 사실 그동안의 모든 사건은 모두 마후유의 잘못이었다. 사람을 묘한 기분을 들게 만드는 그 이상한 녀석이 자신을 미치게 만드는 거였다. 그러니 이렇게 오랜 인연을 만나면 예전처럼 멀쩡해질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그런 오랜 인연을 만나놓고 고민을 들키지 않으리라 생각하는 에나의 안일함은 어째서일까.
“에나, 역시 고민 있지?”
아니, 이 얼굴은 뭔가를 저지른 얼굴인 것 같기도 하고. 아이리는 그렇게 정곡을 찔렀다.
“하아아아아.”
에나는 별다른 변명을 하지 않고 테이블에 엎드렸다. 에나와 아이리는 이제 서로 숨기는 일은 한톨도 없었다. 걱정시킬까봐, 혹은 괜히 신경쓰일까봐 말 안 하는 것 외에는.
“나 어쩌지…”
죽상을 한 에나는 조금 전과는 사뭇 다르게 줄인 목소리로 아이리에게 사실대로 고했다. 마후유의 머리가 어쩌고하는 믿지 못할 일들은 빼고.
“헤에, 그 에나가. 그림 말고는 열정을 바칠 생각도 없던 에나가…”
“할 말이 그것밖에 없어? 게다가 여자앤데?”
“내가 그런 거 신경 쓸 사람으로 보여?”
“하긴, 그런 거 신경 쓰기에는 아이리는 대장부인걸.”
“아이돌한테 대장부가 뭐야, 대장부가.”
좀 더 귀여운 비유로 해줄래? 에나의 고민을 덜도록 일부러 농담을 하기에 웃었다. 아이리도 그 모습에 따라 웃었다.
“아무튼, 너무 걱정은 말고. 에나가 잘 생각해서 자기 마음이 이끌리는 방향으로 가면 될 거야.”
에나에게 그리 말참견을 하지 않는 것은 아이리가 그만큼 신뢰를 하기 때문이었다. 아이리는 오랫동안 그림에 인생을 바친 에나가 청춘이 만끽해도 될 설렘이 찾아왔으니 말리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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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리에게 응원을 받은 에나는 용기를 내어 마후유를 불러냈다. 하지만 마후유는 웬일로 약속시간에 늦어 서둘러 에나에게 향했다. 분명 투덜거리는 것이 식사 전까지 쭉 이어질 것이었다. 어서 가야지.
인파 속에서 사람에게 치이지 않을 정도로 가볍게 뛰어 약속 장소에 도달했다. 저 멀리 에나가 보였다. 지루하다는 듯 혼자 서서 휴대폰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마후유의 휴대폰에 드문드문 알림이 도착하는 것으로 보아 연락을 보내는 상대는 명백했다.
마후유는 이유없이 들뜨는 기분으로 거리를 좁혀갔다. 하지만 에나는 다가오는 마후유를 시선에 담고도 가볍게 다른쪽으로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왜 그러지. 평소에는 조금 멀리 있어도 곧바로 알아봐주는데. 에나를 만날 때면 쓰는 게 버릇이 된 야구모자를 만지작거렸다.
아는 척하기 적당한 거리에서 에나는 겨우 이쪽을 바라봐 주었다. 마후유는 눈과 눈이 마주치는 시선을 에나에게서 처음 받았다. 어, 설마.
“너… 마후유야?”
“…보여?”
에나가 홱 마후유의 모자를 잡아챘다.
“…예쁘게 생겼네.”
첫 할 말이 그거야? 라고 말하는 듯한 표정으로 에나를 노려봤다.
“미안, 미안하다니까.”
평소에도 이렇게 노려봤는지 궁금해졌다.
에나는 마냥 마후유의 얼굴을 양손에 끼고 바라보다가 키스를 했다. 눈을 동그랗게 뜨는 마후유였다. 여기 사람들 한가득인데 에나가 이런 행동을 하다니.
“아하하, 해봤는데도 그렇게 놀라?”
“아무렇지도 않은 에나가 더 이상해.”
삐친 말투였다. 에나는 달래듯 살살 쓰다듬어 줬다. 다행이게도 마후유는 금세 기분을 풀었다. 좀 애같네. 미인이라는 감상과 반대되는 인상이었다. 하지만 그런 태평한 생각도 들면서 동시에 위기감이 닥쳐왔다.
그러면 나는 이제 필요 없어?
“마후유. 머리 되찾은 거 맞아?”
“거울은 아직 안 봤는데.”
“얼른 봐.”
에나는 서둘러서 파우치 속에서 거울을 꺼내 마후유 얼굴 앞에 들이밀었다. 마후유는 거울을 든 에나의 손을 양손으로 부여잡고 거울을 봤다. 낯익으면서 전혀 낯익지 않은 얼굴이었다.
“응. 되찾은 것 같아.”
“잘 됐네. … 그러면 이제 나랑 찾으러 만날 이유가 없어졌네.”
“에나는 이유가 없으면 나랑 안 만날 거야?”
“어? 그게 아니라.”
“먹고 버리는 거야?”
“너 그런 말은 어디서…!”
에나는 기겁을 했다. 보면 볼수록 아기, 아니면 온실 속 화초라고 생각한 애가 저런 말을 입에 담다니. 다만 한숨을 푹 쉬고 마후유를 달랬다.
“안 만난다는 소리는 안 했잖아?”
머리가 안 보일 땐 수수께끼의 감촉이던 곱슬머리가 이토록 길었다는 것도 이제 처음 알았는데 여기서 끝이라니. 그건 아깝잖아.
“그래.”
무덤덤한 목소리는 왠지 흡족한 기색을 보였다. 표정으로 볼 수 없는 감정을 필사적으로 더듬어 찾아내던 중 터득한 감각이었다. 아, 하지만 표정으로도 기쁜 듯이 보이는데. 그런데… 하. 사람은 정말로 좆되면 오히려 차분해진다고 했다. 내 인생, 누가 이렇게 크게 비집고 들어올 줄은 꿈에도 몰랐는데. 에나는 담담하게 생각했다. 가만히, 가만히 마후유를 바라보다가 이내 생각을 멈췄다.
뭐 어때. 나쁘지 않잖아. 근데 왜 이렇게 적신호가 울리는지. 에나는 기묘하게 느긋한 감각을 느끼면서 마후유의 어깨에 기댔다. 마후유가 그런 에나를 감싸안으니까 에나는 편안함을 느꼈다. 음, 나도 뭐. 인생에 이렇게 기댈 사람 정도는 있어도 되잖아. 에나는 누구한테 변명을 하는지도 몰랐다. 가지고 싶은 것, 원하는 것은 뭐든 주저없이 가져야 하는 성격인데 이런 기분이 되는 게 처음이었으니까.
“아, 모르겠다.”
“뭐가?”
“전부. 그러니까 너랑 좀 오래 같이 있어보려고. 불만 없지?”
“응.”
“그래.”
에나는 실없는 웃음을 흘리며 눈을 감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