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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ive Warning:
Category:
Fandom:
Relationships:
Characters:
Additional Tags:
Language:
한국어
Stats:
Published:
2025-11-14
Completed:
2025-11-22
Words:
11,152
Chapters:
9/9
Kudos:
6
Hits:
75

변덕

Summary:

트친 생일 축하용으로 썼던 단문이 또 길어져서 이번엔 장편이 되었습니다.
반란군과 제국군이 우연히 마주쳐서 일이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Chapter Text

-사막에서 가장 귀한 게 뭘까요? 전기와 동력? 부동산? 돈? 예. 다 아니죠. 바로 물입니다. 앞의 것들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게 다 물을 얻기 위한 수단이에요. 사막에서 물이란 그런 의미입니다.
......알았어요. 본론 들어가면 되잖아요. 총통님이 그걸 모르실까봐 말했겠나요. 원래 중요한 이야기일수록 서론부터 잘 다듬어 차근차근 말해야......아얏! 알았다니까요. 코일 대위는 너무 폭력적이야. 치.
흠흠, 아무튼 그 물을 얻기 위해 연구도시에서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답니다. 도시 바깥 먼 곳에 물 생산 연구소를 세우고 성공하면 위성도시로 삼았지만 실패하면 연구소를 폭파하고 모래로 덮어 없던 일로 만들었지요.
연구도시 멸망 후 그 위성도시들도 하나 둘 멸망했습니다.
하지만 물 생산 설비가 완전히 망가지지 않고 남은 곳도 있어요. 무한동력 발전기와 인공지능 시스템으로 유지되는 곳들이 있거든요. 총통님이라면 그곳의 설비를 뜯어다 열차에 적용할 수 있을 만큼 개조하거나 아예 새로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요?
열차의 식수를 빗물 정화와 오아시스에 의존하는 지금은 너무 위태롭다고요. 군의관으로서 전 이런 불안한 상태를 개선할 의무가 있습니다.

 

디스티가 안내한 좌표는 사막 한가운데였다. 수도에서 가까운데도 모래지옥이 여기저기 도사리고 폭풍도 심해서 제국도 방치해둔 땅이었다.
“이 모래폭풍을 뚫고 지나가라고? 모래지옥도 피해서? 장난해?”
코일이 으르렁거렸다.
“너 역시 제국의 첩자여서 열차를 모래 속에 처박을 음모를 꾸민 거지?”
“진정해요.”
기관총 총구 앞에서도 디스티는 뻔뻔했다.
“이 모래폭풍은 인위적인 거예요. 생각해 봐요. 연구도시 사람들은 모래폭풍이 좋아서 그런 걸 뚫고 접근해야 하는 곳에 일부러 연구소를 지었겠나요? 이건 보호와 위장을 위한 거라고요. 증거를 보여드리죠.”
그리고 곧장 혼자서 내렸다. 거창한 채비도 없이 몸만 나가는 걸 보고 병사들은 물론 코일마저도 약간 걱정스러운 표정이 되었다.
“놔둬. 다 생각이 있으니까 그러는 거겠지.”
테슬러 혼자 그렇게 말하고는 기관실로 가서 계기판을 살폈다.
사람 한 명이 모래폭풍 속에 들어가 뭘 하는지는 열차의 탐지 장비로도 다 알아내기 어려웠다. 디스티로 추정되는 움직임이 모래폭풍이 일으키는 노이즈에 섞여 금방 사라졌다.
그리고 시간이 흘렀다.
“이놈 진짜 생각이 있던 거 맞아? 그냥 폭풍에 휩쓸린 거 아냐?”
코일이 그렇게 투덜거릴 때였다.
“그건 아니야.”
테슬러가 계기판을 가리켰다.
“풍속이 10분 전부터 눈에 띄게 느려졌어. 이젠 시야도 좋아지기 시작했어.”
“어?”
그 말 대로였다. 유리창 깰 기세로 열차를 두들겨 대던 모래폭풍이 누그러지고 창 밖에 푸른 하늘이 보이기 시작했다.
“어떻게 된 거야?”
-어떻습니까, 이제 열차도 진입할 수 있겠지요?
계기판의 통신용 스피커에서 디스티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래, 훌륭해.”
테슬러가 끄덕이고 물었다.
“역시 이곳의 모래폭풍은 인위적인 것이었지? 넌 그걸 해제할 줄 아는 거고?”
-바로 그렇습니다. 모래폭풍을 이용해 사람들의 접근을 막은 거지요. 진입하시면 다시 합류해서 자세히 설명하겠습니다.
“그래. 진입한다.”
테슬러의 명령에 따라 열차가 사막 안쪽으로 들어갔다.
곧 흰 가운이 누렇게 된 디스티도 다시 열차에 올라탔다. 표정은 좋지 못했다.
“음, 역시 연구도시의 설비도 노후는 어쩔 수 없군요.”
“무슨 뜻이지?”
디스티답지 않게 난처한 목소리에 테슬러도 심각해져서 물었다.
“저는 원래 열차만 들여보내주고 모래폭풍을 다시 일으킬 생각이었어요. 그런데 폭풍 생성기가 낡아서 망가지기 일보 직전이더라고요? 수리하지 않으면 이대로 폭풍이 완전히 사라지고 사람들이 접근하는 걸 막을 수 없겠다 싶어 수리하려고 했는데......”
“했는데?”
“손쓸 새도 없이 폭삭 망가져 버렸어요. 터빈의 축이 뚝! 그걸 수리하려면 테이프 칭칭 감는 거 갖고는 안 돼요. 새 축으로 교체할 수 없으면 용접이라도 해야 하는데......”
“한 마디로 못 고친다는 거군.”
테슬러가 손을 내저었다.
“됐어. 네가 말한 물 생산 시설을 감추기 위해 그 모래폭풍이 필요했던 거잖아? 이제 연구도시도 없는데 굳이 그렇게 감출 필요 있나?”
“그치만 그게 아무나 발견해도 되는 게 아닌데요.”
“어째서?”
테슬러가 되물었다.
“거기서 나오는 건 물이잖아? 방사능 같은 게 아니라? 그럼 사람들이 아무렇게나 접근한다고 해로울 건 없지?”
“모르는 사람이 함부로 건드리다가 부숴 먹으면요? 주변 생태계를 망치면요?”
비로소 테슬러의 표정도 심각해졌다.
“인공 강우 같은 원리였어? 한 번에 대량의 물을 얻는 원리가 주변 수증기를 끌어모으는 거였나?”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합니다. 총통님 열차와 비슷하다고나 할까요. 열차의 엔진도 최초 가동에는 충전이 필요했지요? 이 물 생성 공장도 마중물 격이 될 약간의 물은 필요합니다. 하지만 그 후론 주변의 습기를 위험할 정도로 끌어모으는 일은 없어요. 제 걱정은, 이미 그 기계는 그곳에서 샘이나 오아시스처럼 생태계를 형성했다는 겁니다. 총통님께도 기계를 뜯어가는 게 아니라 설계도를 복제해가는 쪽을 권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함부로 뜯어가면 주변 생태계는 끝장이겠군.”
심각한 표정 그대로 테슬러가 끄덕였다.
“아무튼 가 보자고. 어차피 인공적인 모래폭풍도 생태계 교란은 실컷 해왔을 거 아냐? 물 생성 공장도 이미 부서졌을 수도 있고, 일반인은 함부로 건드리지 못하게 조치를 취할 수도 있겠지. 보고 판단하자고.”

 

디스티가 말한 장소를 찾기는 쉬웠다. 평범한 사암 언덕 두어 개를 지나니 그 뒤에 숨어있던 산이 드러났다.
높지는 않아도 모두의 시선을 사로잡을 만했다. 온통 누런 모래뿐인 사막 한가운데에 선명한 녹색 숲으로 뒤덮인 산은 신기루처럼 아름다웠다.
“저희도 내려서 같이 갈래요!”
병사들이 한목소리로 졸라대니 총통도 무조건 안 된다고만 할 수는 없었다.
“좋다. 열차에서 내리는 것까지는 허가하지. 하지만 낯선 장소이니 단독 행동은 금물이다. 3인 1조 원칙으로, 열차 주변을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만 움직여라. 그것도 나와 코일, 디스티 세 명이 먼저 내려서 안전을 확인한 다음이다.”
“옛!”

 

산기슭에 열차를 세우고 세 사람이 내렸다.
“역시 일종의 오아시스가 되어 있군요.”
가장 먼저 내린 디스티가 진단하는 투로 중얼거렸다.
“물 생성 공장은 산꼭대기에 숨어 있습니다. 산에 형성된 숲이 그 너머로는 뻗어나가지 못하고 있어요. 이곳의 물 생성 공장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겁니다. 나무의 크기나 무성한 정도, 산의 면적을 종합해 볼 때 대형 포유류나 맹수는 없겠군요. 사막 독수리라면 가끔 찾아올 것 같습니다만.”
“사람이 다녀간 흔적도 없군.”
테슬러도 주변을 관찰하고 있었다.
“코일, 제트 날개 가져왔지? 전자 망원경으로 산 전체를 스캔해봐.”
“좋아.”
코일이 제트 날개를 펼치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역시 숲이 우거져서 그냥은 숨겨진 문 같은 거 안 보여. 자동 스캔을 시작할게.
“그래. 물 생성 공장 입구를 찾아봐. 수원 근처에 숨겨져 있을 거야.”
코일과 무전을 주고받는 테슬러를 디스티는 곧 올라야 할 산보다 더 흥미롭게 바라보았다.
테슬러는 무전기를 쓰지 않고 의안의 통신 기능을 이용하고 있었다. 처음에만 해도 그냥 눈 대용으로만 쓸 줄 알았는데, 어느새 별별 기능을 멋대로 넣어서 쓰고 있었다.
‘이 디스티가 만든 생체 부품에 마음대로 손댈 수 있는 과학자는 처음이란 말이죠.’
남의 작품을 멋대로 개조하는데 화도 나지 않는다. 도리어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기대하게 된다.
“......그래. 수고했어. 돌아와.”
통신을 마친 테슬러가 디스티에게 시선을 돌렸다.
“코일이 숨겨진 입구로 추정되는 곳을 찾았어. 돌아오면 셋이 같이 올라가자.”

 

산에 사람이 다닌 흔적은 전혀 없어서 자연적인 오솔길 같은 것도 없었다. 그래도 워낙 낮고 완만한 산이라 반란군 세 사람에게 어려울 것은 없었다. 부하들을 너무 엄격하게 단속해놓고 왔나 싶을 정도였다.
“역시 이곳의 시설을 뜯어가지는 않는 게 좋겠다.”
푸른 나뭇잎 그늘 아래를 지나며 새 소리 벌레 소리에 귀 기울이던 테슬러가 중얼거렸다.
“설계만 베껴가고, 출발 전에 병사들 데리고 여기서 등산 훈련 하자. 이런 지형을 직접 체험할 일은 드무니까.”
“그러자. 다들 좋아할 거야.”
“그거 훈련이 아니라 소풍 같은데요?”
“훈련이야.”
“싫으면 넌 빠져도 돼. 테슬러가 싸준 도시락이 얼마나 맛있는데.”
디스티가 항의하기도 전에 산꼭대기에 도착했다. 시냇물도 보였다.
“저 시냇물이 바로 물 생성 공장에서 시작한 겁니다.”
설명하던 디스티가 눈살을 찌푸렸다.
“그런데 물살이 지나치게 빠르네요. 보통 수원 근처는 진짜 자연적으로 보이기 위해 느리고 얕은 시냇물을 연출하는데......”
그러는 사이 코일이 아까 찾은 입구로 다가갔다. 단순히 기반암이 갈라진 틈처럼 보이는 곳에 총검을 쑤셔넣고 비틀자 바위틈이 벌어지고 숨겨진 입구가 드러났다.
“오랫동안 아무도 드나들지 않았군.”
진흙과 풀뿌리가 엉겨 단단히 굳어진 녹슨 문을 보고 테슬러가 중얼거렸다.
“전자 망원경의 자동 탐지기능이 아니었다면 이렇게 쉽게는 못 찾았겠어.”
이럴 때에 대비해 가져온 야전삽으로 한참 흙을 파내고 녹슨 문을 떼어내자 비로소 그 안쪽 진짜 문이 모습을 드러냈다. 키패드가 달린 금속제 문인데 바깥쪽 문과는 달리 멀쩡했다.
“이것도 겉만 멀쩡하지, 너무 오래돼서 고장났어요.”
키패드를 대충 건드려본 디스티가 미련 없이 물러났다.
“이것도 힘으로 부숴야 해요.”
“그럴 거 같았지. 둘 다 물러나.”
테슬러가 키패드 근처와 문의 사방 모서리에 소형 폭탄을 설치했다. 그리고 본인도 충분히 물러나서 폭탄을 터뜨렸다.
폭음과 함께 문짝이 떨어져 나가고 드러난 복도는 의외로 깨끗하고 멀쩡했다. 테슬러가 그 안으로 먼저 들어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문이 망가질 정도로 방치된 공간치고는 공기가 맑아. 먼지도 별로 쌓이지 않았고.”
“이런, 내부 관리 체계가 다 망가지진 않았군요.”
디스티의 목소리는 밝지 않았다. 서둘러 따라들어가서는 아예 테슬러 대신 앞장섰다.
“조심하세요. 우린 문 부수고 들어온 침입자예요. 내부 관리가 되고 있다는 건, 침입자 격퇴 기능도 남아있을 거란 얘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