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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ive Warning:
Category:
Fandom:
Characters:
Additional Tags:
Language:
한국어
Stats:
Published:
2026-01-15
Completed:
2026-01-17
Words:
3,197
Chapters:
3/3
Kudos:
3
Hits:
25

아무 의미도 없는 날

Summary:

2월 17일은 클라프로트의 생일입니다. 그날 테슬러, 클라프로트, 플루토가 각자의 추억을 만듭니다.

Chapter 1

Notes:

(See the end of the chapter for notes.)

Chapter Text

클라프로트는 자신의 생일을 좋아하지 않았다.
선황 텔룰르는 자식들의 생일에 무관심했다. 어릴 때는 제대로 된 생일상을 받기도 어려울 정도였다.
어머니는 직접 수놓은 손수건, 직접 그린 카드 등을 주셨지만 황궁의 장인들이 만든 것에 비하면 형편없었다. 그런 걸 갖고 있다 황제 눈에 띄면 비웃음 사는 것으로는 끝나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래서 그 잡동사니들은 서랍 구석에 아무도 모르게 숨겨두었다. 어머니 앞에서도 쓰지 않았다.
앞의 황자들이 죽고 황제의 인정을 받으면서 비로소 생일상이 격식을 갖추기 시작했다. 황제가 하사하는 선물들은 하나같이 가치를 매기기도 어려운 보물들이었다.
그것들은 태자의 방에서도 눈에 잘 띄는 자리에 전시했다. 어머니의 선물들 중 남들 앞에 내놓을 만한 유일한 물건이었던 파랑새 박제와 함께.
태자의 방을 비울 때 그것들도 다 창고로 옮겼다. 다시 꺼내볼 일도 없었다.
지금 자신의 탄신연을 전통에 따라 성대히 치르는 것도, 뭐 즐거운 날이어서가 아니라 황제의 위엄을 세우기 위해서일 뿐이었다.
공식 행사는 오전 10시부터였다. 그때까지는 수선피우지 말고 평소대로 해야 한다고 지침을 내려두었다. 아침도 유리 정원에서 테슬러와 단둘이 먹기로 했다.
“형님!”
오늘은 테슬러가 먼저 정원에 와 기다리고 있었다. 활짝 웃으며 달려와 폭 안기는 걸 보니 언제나처럼 기분이 풀렸다.
“생일 축하드려요, 형님!”
“생일?”
“여기 선물이에요!”
뛰어들 때처럼 품에서 쏙 빠져나간 테슬러가, 테이블에서 길쭉한 상자를 집어 힘차게 내밀었다. 황궁의 기준에 맞는 화려한 장식의 선물상자였다.
‘나는 말한 적 없거늘, 시녀들이 귀띔해줬나보군.’
주제넘은 참견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손은 바쁘게 포장을 벗겼다.
“급히 만들었지만 성능은 확인했어요.”
상자에서 나온 건 공업용 스프레이 캔이었다. 라벨도 없었다.
“이게 뭐냐?”
“지금 보여드릴게요.”
테슬러가 손가락을 튕기자 시종들이 정원 한쪽에 과녁을 세우고 리볼버를 가져왔다. 귀마개를 하고 총을 받아든 아이가 과녁에 두 발을 쏘았다.
“과녁에 총알 자국 보이시죠?”
테슬러는 스프레이를 들고 과녁에 다가가 뿌렸다. 무색 래커처럼 보이는 걸 고르고 두껍게 뿌린 다음, 제자리로 돌아와 다시 총을 쏘았다.
이번에 총알은 과녁 깊이 박히지 못했다. 둘은 튕겨나갔고 하나는 탄두 끝만 살짝 박혔다.
“시녀들한테 들었어요. 형님을 노리는 괘씸한 반역자가 많다고. 병기 열차도 그래서 필요한 거라고.”
어린애답지 않게 결연한 목소리로 테슬러가 말했다.
“이제 그런 놈들이 형님한테 총을 쏴도 다치지 않으실 거예요.”
“테슬러.”
클라프로트는 손짓으로 동생이 가까이 다가오게 했다. 그리고 꼭 끌어안았다.
자신에게 직접 총이 겨눠질까 걱정할 만큼 위태로운 시기는 아니었다. 그래도 동생의 마음씀이 기특했다.
‘가족이란 역시 이런 거지.’
“생일이 다가오는 걸 너무 늦게 알아서, 더 좋은 거 못 해드려서 죄송해요. 다음 생일엔 더 대단한 걸 만들어드릴게요.”
“부담 가질 필요 없다. 열차가 완성될 때까지는 거기에만 집중하면 돼.”
생일 아침이 이렇게 행복할 수 있다니.
오늘은 이대로 하루 종일 테슬러와 보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졌다. 그러나 황제의 탄신연은 정치적으로 중요한 행사였다.
“그래, 오늘은 짐의 생일이라고 황궁에서 이것저것 귀찮은 행사가 많이 열릴 예정이다만 네가 즐거울 만한 일은 없을 거다. 그러니 넌 오늘 밖에 나오지 말고 차량기지에서 열차 제작에 집중하는 편이 좋겠다.”
“그럴게요.”
불평 한 마디 없이 냉큼 바른 대답을 하는 테슬러가 새삼 사랑스러웠다. 가족이란 모름지기 이래야 하는 것이다.
“말은 생일 축하라고 하면서 온통 정치와 격식뿐인 자리지. 그런 피곤하기만 한 자리에 널 데려가고 싶지 않구나.”
“괜찮아요.”
이번에도 아무렇지 않게 끄덕이던 테슬러가 문득 고개를 들었다.
“형님은 그런 거 귀찮지 않으세요? 힘들지 않으세요?”
“이런 것도 다 황제의 의무니까 해야지. 네가 이렇게 아침에 축하해준 것으로 나는 충분히 기쁘단다.”
“형님......”
볼을 붉히며 쑥스러워 하는 테슬러를 보니, 이 아이를 탄신연에 참석시켜 다른 귀족들 앞에 내보일 순 없다는 결심이 더욱 굳어졌다.
측근들은 아이를 데려온 지도 벌써 일 년 가까이 되어가는데 언제까지 숨길 작정이냐고 재촉했다.
이런 조치가 자칫 테슬러에게 황족으로 인정받지 못했다는 인상을 주어 아이를 상처입힐 수 있다고도 경고했으나 듣지 않았다.
이 순진한 미소, 바다빛 눈동자는 자신만을 위한 것이다. 다른 귀족 나부랭이들에게 보여주기엔 너무 아깝다.
황제의 탄신연이라고 해봐야 입으로만 충성을 외치며 자기들 잇속 차리기 바쁜 쓰레기들이 모이는 자리 아닌가. 그런 놈들에겐 황제의 동생을 볼 자격도 없다.
이렇게 착하고 순진한 아이는 보는 즉시 피라니아 떼처럼 물어뜯으려 들 놈들이니 이건 동생을 위한 일이기도 했다.
실제로 테슬러에겐 그런 놈들이 노릴 만한 약점도 있었다. 부계로 이어져 내려온 황가인데 그와 황실의 연결고리는 도망친 평민 어머니뿐이니까. 이건 테슬러뿐만 아니라 황실과 황제의 체면까지 깎아내리기에 아주 좋은 구실이었다.
자식의 장래도 황실의 체면도 팽개친 이기적인 어머니에게 새삼 분노가 솟구쳤다가, 그와 똑같은 얼굴로 자신만 바라보는 동생의 눈빛을 보자 순식간에 진정했다.
이제 어머니는 죽었고 다시는 자식을 버리지 못하게 되었다. 어머니에게 마땅히 받았어야 할 것들은 동생이 대신 넘치게 주고 있다.
‘이게 제자리지. 모든 것이 완벽해.’
테슬러와 함께 아침을 먹고 후식으로 얼 그레이 케이크를 즐기는 이 시간이 무엇보다 흡족한 최고의 생일 선물이었다.

 

거창한 잔치 같은 거 테슬러는 원래도 아무 흥미 없었다.
형님의 생일이 곧이라고 귀띔해주며 시녀도 강조했다. 탄신연은 어른들을 위한 자리라 아직 어린 전하께선 참석할 필요 없다고. 가봐야 재미도 없을 거라고.
그렇다면 당연히 차량기지에서 열차 제작에나 몰두하는 편이 더 기꺼운 일이었다. 산책, 티타임 같은 것도 생략하고 하루 종일 기계만 만질 수 있다니, 만세!
오늘따라 작업도 더 순조로웠다. 희희낙락해서 회로판에 납땜을 시작했다.
평소 자기가 이런 걸 직접 하려 들면 시종들이나 보조 엔지니어, 군인들까지 일치단결해 뜯어말렸다. 이런 위험한 일은 아랫것들에게 시켜야지, 귀하신 몸으로 직접 하다 다치기라도 하면 큰일이라고. 그런데 오늘은 왠지 다들 눈치를 보며 하고 싶은 대로 하도록 놔두었다.
“쉬었다가 하시죠, 전하.”
보조 엔지니어가 간식 쟁반을 들고 다가왔다. 달콤한 냄새를 맡고 고개를 번쩍 들어보니 초콜릿 케이크와 우유였다.
“와!”
“오늘은 큰 행사를 치르느라 디저트도 다양하게 준비되었습니다.”
엔지니어는 조심스럽게 달래는 어조로 묻지도 않은 말까지 늘어놓았다.
“탄신연에 참석하지 못하셔도 저희들 모두 테슬러 전하를 진심으로 공경하고 있습니다. 열차를 완성하고 전하의 명성이 널리 퍼지면 제국민 모두가 폐하를 모시듯 전하도 알아 모시게 될 겁니다. 행사 같은 건 그 뒤에 참석하셔도 늦지 않습니다.”
“알았어.”
오랜만에 맛보는 달콤한 초코 케이크가 황홀했다. 기분이 좋아진 나머지 테슬러도 약속했다.
“그래, 열차가 성공하면 너희들 공도 크니까 형님한테 잘 말씀드려서 모두 골고루 상을 받게 해줄게.”
“감사합니다. 전하께서는 정말......착하고 관대하시군요.”
테슬러의 목소리가 닿는 곳에 있던 모두가 공손하게 절했다.
“전하께서 오신 뒤로 황궁이 얼마나 크게 변했는지 모르실 겁니다. 저희 모두 전하께서 행복하게, 만수무강......하시길 빌고 있습니다.”
“응, 고마워. 나도 너희들 다 행복하게 해줄게.”
보조 엔지니어의 목소리가 왜 떨렸는지 테슬러는 궁금해 하지 않았다.
자신의 일정 관리를 하며 수업 시간, 휴식 시간, 치료 시간(으!) 등등을 알려주는 시녀가 찔리는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는 것도 눈치채지 못했다. 그저 접시를 깨끗이 비우고 새 설계도를 펼칠 뿐이었다.
“그래, 오늘 새로 추가할 장치가 있어. 다들 와봐.”
“예. 새 무기인가요?”
“아니, 레일 생성기. 열차가 레일 없는 사막도 달릴 수 있게 해주는 거야.”
‘폐하의 승인은 받으셨습니까?’ 같은 질문이 날아오면 거짓말로 넘어갈 각오도 하고 있었으나 다들 군소리 없이 따라주었다. 과연 전하의 설계는 대단하다고 감탄할 뿐이었다.
역시 오늘 시작하기를 잘했다. 형님도 하루 종일 바빠 오시지 못할 이런 날에 중요한 지시를 다 마쳐 두면, 나중에 또 예고 없이 형님이 오시더라도 조용히 조립만 하며 뭘 만드는지는 감출 수 있다.
‘형님께는 깜짝 선물로 하는 거야. 막상 어디든 달릴 수 있는 열차가 진짜로 나오면, 제국 통치에도 이게 훨씬 더 유리하다고 알아주실 테니까.’

Notes:

작년 클라프로트의 생일 때 구상했던 글인데 이제야 공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