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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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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shed:
2026-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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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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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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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

나바니 출근시키는 팬픽

Summary:

전 술탄의 총신, 총비, 근위가 모여 잼얘를 합니다

Notes:

원래 쓰리썸 야설 쓸라 했는데 건전하게 끝나버렸어요
생각했던 거는 삽입방향 아르트→나바니→샤지 이렇게 해서 아첨꾼 샌드위치 만들어가지고 중간에 낀 놈 귀여워하는 거였는데
쓰다 보니 이 개놈새키 별로 귀엽지 않아가지고

Work Text:

사람이 잘 안 변한다.

이전 술탄 시기에 근무는 안 하고 주색이나 밝히던 근위병 나바니 경의 태만은 오로지 폭군 치하의 무력감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본인 포함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했다. 실제로 어느 정도는 그랬다. 새로운 태양이 떠오른 후 나바니도 일주일은 출근을 잘 했다. 그리고 여드레째에 생각했다. 아! 꽃의 향기를 알아버린 이가 어찌 전으로 돌아가겠는가! 그래서 휴가 신청서를 냈다. 새로운 태양이 아주 차갑기 짝이 없는 눈빛으로 나바니를 한 번 쳐다보고는 신청서를 반려했다. 나바니는 한 이, 삼일 정도 더 출근했고, 그러다 다시 휴가 신청서를 내며 드러누워 떼썼다. 술탄이 한숨을 쉬며 신청서를 수락했다. 이후로 새 술탄과 이 믿을 수 없는 근위 사이에서는 일종의 술래잡기 같은 것이 시작되었다. 나바니는, 도망간다. 아르트는, 잡는다. 그리고 이 술래잡기를 1년동안 한 지금, 수도 최고의 풍류검사는 이제 이전과 그다지 다를 바가 없는 생활을 보내게 된 것이다.

물론 마음가짐은 전혀 달랐다. 전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쾌락에 취하는 것 뿐이기에 그것에만 매달렸다. 하지만 지금 나바니는 새로운 시대의 개혁과 변혁에 맞춰 위대한 사업의 일부가 될 수 있었다. 술탄이 무언가 안 좋은 징조를 보이면 얼른 가서 말릴 수도 있었다. 심지어 근위병 일을 그만둘 수도 있었다. 쾌락에 취할 수도 있었고. 무엇을 해도 좋다. 선택할 수 있게 된 거다. 그렇게 갈망하던 자유라는 것이 생겼다. 그래서 나바니는 기쁘게…! 아주 기쁘게 쾌락을 선택했다. 결과적으로 하는 일이 같을지는 몰라도 과정이 전혀 다르단 말이다. 개혁과 통치는 형제가 알아서 잘 해주겠거니. 필요하면 부르겠지!

게다가 나바니가 정말로 근무를 안 하는 것도 아니었다. 휴가가 길어지면 궁으로 잡혀갔다. 한번만 더 머리카락 가지고 헛소리 하면 단발로 자르겠다느니 또 보검의 기분 운운하거든 그 검 용광로에 갖다 던지겠다느니 하는 흉흉한 협박을 하면서 나바니를 연행해갔다. 심지어 몇 번은 지고지순한 술탄께서 직접 나바니를 데려간 적도 있었다. 환락의 관에서 술과 여인에 취해 헤롱헤롱 누워있는데 성격 나쁜 술탄이 정문도 아니고 창문으로 기습하여 불량 근위를 퍽 치고는, 여인들이 모두 보는 앞에서 귀떼기를 잡아 끌었을 때는 얼마나 민망했던지. 그에게 형제의 체면도 지켜주지 않냐며 항의했는데 네 체면을 구긴 건 대낮에 만취한 너 자신이 아니냐는 대답에는 나바니도 딱히 반박할 말이 없었다. 말솜씨 하나만 가지고 태양을 떨어트린 남자다. 말로는 절대 못 이긴다.

그러니까 나바니는 부당하게 의무를 져버린 것이 아니라는 거다. 술탄에겐 나바니를 일주일에 칠 일 근무하게 만들 힘과 명분이 있다. 하지만 쓰지 않는다. 봐주고 있는 거다. 그 사실을 알았을 때 나바니가 얼마나 기뻤던지! 형제는 술탄이 되어도 권력에 취하지 않고 의리를 지키는구나! 하기사, 그런 인품을 가졌기에 나바니 또한 모든 것을 걸고 그를 따르기로 결심한거다. 나바니의 안목은, 이번에는, 틀리지 않았다. 그래서 신나게 놀러나가는 것 뿐이다. 그리고 다시 말하는데, 필요하면 부를 거라니까? 처음에는 한 삼, 사일 정도면은 슬슬 나오라는 칙령이 내려왔다. 그러다가 일주일 정도로 늘었다. 그러다가 또 슬금슬금 일, 이주 정도로 늘었다. 칙령의 내용에는 서서히 자비가 없어졌지만 실제로 휴가 기간은 점점 자비로워지고 있었다. 아마도 정세가 안정되면서 그다지 근위가 필요 없어진 모양이지! 놀랄 일도 아니었다. 그가 통치를 잘 할 거라 믿고 있었다. 옥좌에 오르기 위해 태어난 사람 같았다.

그래, 필요하면 부르겠지….

필요하면…….

필요…….

…….

나바니는 세 달 째 불리고 있지 않다.

어느 순간부터는 아예 휴가 신청서도 내지 않았건만, 아르트가 자신을 전혀 찾지 않고 있다.

전혀…… 찾지 않고 있다.

마치 나바니의 존재를 잊어버린 것처럼……….

에이, 설마, 슬슬 부르겠지, 싶은 마음으로 하루하루 세봤는데, 날짜가 길어질 수록 불안감은 커졌고, 불안할수록 도피하고 싶어졌고, 도피하느라 또 출근을 안 했고, 출근을 안 했는데 여전히 칙령이 없어서 더 불안해졌고, 불안할수록 더더욱 도피하고 싶어졌고… 그런 날이 오늘로 딱 77일째다.

이상하다. 매일매일 놀고 있는데 마음이 좋지 않다.

왜 잡으러 오지 않지?

정말로 77일 내내 궁에 발을 들이지 않았다는 뜻은 아니다. 나바니는 중간에 몇 번 출근을 했다. 처음에는 그의 조정 업무가 끝나는 시간을 노려 불쑥 나타나 술 마시자고 꼬셔보았다. 그는 나바니를 아니꼽게 꼬아보며, 일도 안 하는데 놀 생각만 하냐고 타박을 주고는, 정말로 바빠서 안 된다고 거절했다. 그러면서 내가 집무실에 틀어박혀 있는 동안 바깥에서 호위 설 거면 사양하지 않겠다고 했다. 말하면서 슬쩍 사악하게 웃는 걸 보니 그도 나바니가 도망칠거라 예상했던 것 같다. 실제로 나바니는 도망쳤다. 그렇게 지루한 일을 하고싶을 리가. 그리고 한 일주일인가 이주일인가를 더 놀았다. 그동안 환락의 관에서는 무언가 격변이 일어나고 있었다. 여인들이 무언가 들뜬 듯 술렁이며, 자기들끼리 심각하게 무언가를 계속 토론하고 있었다. 그런 분위기를 감지하자마자 모든 창녀들의 친구인 나바니 경이 바로 나섰다. 무언가 문제가 있다면 귀족이자 근위병이자 술탄의 형제로서 자신이 해결해 줄 수 있다고 여자들의 구원자답게 자신했다. 그런데 그녀들이 머뭇거리며 무슨 말을 했는지 아는가. 창녀들에게 바느질이나 기초 셈법 등을 가르치는 교육원에서 이번 입학 지원자를 받는데, 거기 지원할까 말까 고민중이라는 것이다.

그것도 지금 3기를 받고 있다고.

……3기?

전혀, 들은 바가, 없었다.

나바니는 멘탈에 살짝 금이 간 채, 그 교육원은 언제부터 생긴건지 물어보았다.

여인들은 근위가 그걸 모르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며, 4달 전부터 생겼다고 전해주었다.

음~ 4달.

4달동안, 전혀! 들은 바가, 없었다.

전혀!

나바니는 다음날 바로 칼같이 출근했다. 술탄 아르트는 아침일찍 출근한 나바니를 보고 의외라는 듯이 이렇게 말했다.

"여긴 왜 왔어?"

궁에서 마주친 근위에게 건넬 인삿말이 절대 아니었다. 나바니는 폭발했다.

"형제!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가 있어!"

"으음? 내가 뭔가 너한테 덜 잘해준 게 있었나?"

아르트가 정말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그렇게 대답해서 나바니는 말문이 막혔다. 제국 전체에서 나바니보다 팔자가 좋은 사람이 있나? 듣고보니 정말로 덜 잘해준 부분은 없었다. 시작부터 전의가 깎였다. 그래도 따질 것은 따져야 했다.

"교육원이 뭐야? 4달이나 진행된 일에 대해 내가 왜 여인들을 통해 들어야 해?"

그러자 아르트도 이상해하며 대답했다.

"전에 말했잖아. 샤지를 보러가지 않겠냐고. 네가 싫다며."

"…………."

그랬다….

왕좌의 주인이 바뀌자마자 샤지가 냅다 매춘업에 뛰어들더니, 고작 2달만에 모든 매춘업소의 주인이 되어버렸다.

창녀들에게 두번째 기회를 주는 일이니, 당연히 그녀를 만나 논의해야 했던 것이다.

그리고 나바니는 그녀의 이름을 듣자마자 내뺐고!

아르트는 추가타를 날렸다.

"그런데 4달동안 그 어느 여자도 교육원에 들어갈지말지 너한테 상담을 안 했던거야?"

엑………….

어, 어, 어, 어라…………….

어라? 그러게??

나바니의 표정을 보고 아르트가 웃었다.

"오늘 휴가 낼거면 그냥 가도 좋아."

"아니, 아니! 아니죠! 오늘 일합니다, 폐하. 저는 근위인걸요."

"그랬나?"

"……."

"농담이야. 너도 알고는 있었구나."

"……."

나바니는 일단 궁전에 붙었다. 그리고 한동안 정말 성실하게 근무했다. 근무하면서, 어떤… 전수조사 같은 걸 했다.

외교관 샤마 경,

"그럼요. 나바니 경께서는 믿음직한 여인들의 친구인걸요. 아…… 교육원 상담은 왜 못 받았냐고요, 음……. 폭력적인 남자 때문에 눈물짓는 여자들에게는 경이 영웅이나 다름없답니다. ……아, 그래서 교육원? 음……."

황후 메기 전하,

"누구에게나 잘 하는 일이 있는걸요. 경께서 여인들을 염려한다는 그 마음이 중요한 게 아닐까요. 자신을 가져요. 누구보다도 멋진걸요. ……아, 교육원 상담을 못 받은건, 그건…… 음…… 으음……."

재상 네페르 경,

"교육원은 실험이야. 그녀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준다면 어떤 변화가 생길지 장기적으로 지켜보자는 거지. 그 변화가 긍정적일지 부정적일지도 세심한 분석을 해봐야 할 테고. ……상담 왜 못 받았냐고? 그건 자네 행실을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비서 파라디 경,

"음, 상담에 대한 건 잘 모르겠습니다. 저는 폐하와 관련된 문제만 고민해봐서…. 휴가요? 폐하께서 경에게 자비롭게 휴가를 내려주시는 것도 모두 뜻이 있겠지요. 폐하의 결정이예요. 그냥 누리세요!"

근위 쟈발 경,

"그거 아나? 술탄의 명령을 받고 하는 모험은 이상하리만치 탐색이 쉽단 말이지. 그분의 명령과 권위에 무언가 신비한 힘이 있는 것 같아. ……응? 모험만 떠나는 건 아니야. 모험은 자주 못 가. 폐하께선 내가 필요할 일이 많거든. 노병의 처우 개선이나 군대 규율같은 문제로 당장 어제도 나와 함께 본부대에 들렀지. 그 점에 늘 미안해 하는 걸 보면 우리의 새로운 태양은 역시 좋은 분이지 싶어! 그보다 모험 말인데…."

근위 페리스 경,

"교육원? 알다만. 그야 승마 수업을 위해 말을 보냈으니까. 폐하께서 이런 일은 전문가에게 맡겨야 한다고 날 찾았지. …표정이 왜 그래? 아… 그래, 너는 여인들의 전문가지. ……여인의 전문가인데 왜 들은 게 없냐니, 어…… 그건…… 음…… 으음…… 음…… 헉, 급한 일이 생각났어! 미안, 가보지!"

사다르니 경,

"안 그래도 남편이 안부를 궁금해 하더군요. …고민? 좋아요, 말해봐요. ……음, ……아하, 음… 아무도 경을 찾지 않는다는 말이죠? 쓸모가 없는 것 같다? …표현이 심하다니, 그게 사실인걸요. 큭… 아하하! 그 심정 제가 잘 알죠. 더 자세히 말해봐요. 세상에서 버림 받은 심정이 어떤지 말예요…. 쓸모 없는 나바니 경, 어디 가시죠? 그래봤자 자기자신한테서는 도망칠 수 없을 텐데요!"

청금궁 연구소장 마히르 경,

"교육원, 알죠. 거기 기초수학 커리큘럼을 제가 짰는데요. ……평범한 여인의 마음 같은 걸 제가 어떻게 알아요? ……실패작이라, 폐하께선 제가 실패작을 만들어도 어딘가엔 쓸모가 있을 거라며 저와 함께 대작해주시기는 합니다. 지금도요. 그리고 정말로 쓸모를 찾아내시는 분이니, 폐하 기준에 쓸모가 없다면 아마 진짜로 쓸모가 없는 거겠지요. …본인 얘기였나요? 뭐, 경께서 쓸모가 없나보죠. 더 용건 없으면 시간 그만 뺏고 가세요. 저 바쁩니다."

자키 경,

"와, 오랜만이예요! 못 알아볼 뻔 했어요. 요즘 무슨 일 하시나요? …헉, 아직 근위라고요? 잘린 줄 알았는데요!"

근위 시르사나 경,

"몰라, 새끼야. 그만 쳐울어. 휴가 많이 받으면 좋은거지 술맛 떨어지게 질질 짜지 말라고. …어? 뭔 개소리야, 난 휴가 못 받아. 지금 너만 무제한으로 휴가 받고 있는 거야. 몰랐냐? 나는 사나흘 빼먹거나 밖에서 쌈박질 한 번만 하면 아르트가 잔소리를 얼마나 귀찮게 해대는데. …아니, 왜 쳐우냐고!"

나바니는 휴가를 신청했다.

며칠간 술병을 껴안고 눈물로 지새우다보니 역시 문제를 직면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제 직면이라, 최소 8년 정도를 안 하던 짓이라 결심하기까지도 힘들었다. 가장 최근에 했던 '문제 직면'에는 형제가 함께 했었기에 그리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혼자서 해야했다. 같이 있어줄 형제가 바로 문제의 원인이었기 때문이다. 괜찮다. 이번에는 할 수 있다. 나바니에게는 일어설 수 있는 힘이 있다. 하지만… 우선, 좀, 작은 문제부터 직면하는 게 어떨까? 아르트를 만나러 가는 건 뒤로 미루자. 지금은… 좀… 힘들다. 그보다는, 여인들은 대체 왜 자신에게 삶과 관련된 중요한 상담을 하지 않았을지가 신경쓰인다. 그리고 어떻게 자신은 4달이나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 하고 놀 수 있었을까? 형제는 왜 그동안 자신을 방치했을까? 왜 누구도 자신을 찾지 않을까? 자신이 이대로 사라진다 하더라도 세상에 아무 영향도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건 왜일까? 이 모든 문제에 대한 해답이 하나를 가리키고 있는 것 같지만은, 누군가는 다른 대답을 해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녀를 만나야 할 때가 되었다.

현, 모든 환락관의 주인이자 제국 모든 창녀들의 정점인,

그리고 한때 제국 모든 여자들의 정점이었던,

전 총비,

샤지를…….

"이것 참, 나바니 경께서 저를 다 찾으시고요!"

오랜만에 만난 샤지는 이전과 다르지 않게 사치스러웠고 아름다웠다. 향로를 잔뜩 피운 몽환적인 방 안에서, 푹신한 벨벳 방석들을 옆구리 아래에 끼우고 요염하게 누운 모습을 보면 총비니 창녀니 그런 세속의 지위 따위는 그녀의 영혼에 조금의 영향도 줄 수 없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다만 변한 게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녀는 자유로워 보였다. 지금이 되어서야 그녀가 이전에는 그다지 자유롭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야 이전에는 그 누구도 자유롭지 않았을 테고, 하렘의 여인이란 신분 또한 자유롭지 않은 게 당연한 것이지만은, 그녀는 어쩐지 늘 자유롭고 당당해 보였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녀조차 실은 그러지 못 했던 것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바니를 맞이하는 그녀의 얼굴에는 즐거움과 호기심이 잔뜩 피어나있어서, 그 표정을 보자마자 무심코 기분이 좋아질 정도였다. 처음에 그녀가 매춘업에 뛰어들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엔 경악했는데 다행히 잘 지내는 것 같았다…. 아니, 그녀는 어디서든 잘 지내는 사람이지만.

닮았다.

아르트와…

그리고 '그 사람'과….

나바니는 벌써부터 정신적인 부상을 입고 공손히 앉았다.

"오랜만에 뵈어도 샤지 전하… 샤지 님께서는 여전히 달처럼 아름다우십니다."

여인의 환심을 사기 위한 사랑시가 아니었다. 거의 척수반사에 가까운, 공포에 기반한 아첨이었다. 나바니는 그것을 분명히 자각했다. 샤지가 꺄르르 웃음을 터트렸다.

"왜 예의를 차리실까요? 경께서 저와의 시간을 사셨으니, 이제 하고싶은대로 하셔도 됩니다."

"제가 어떻게 샤지 님에게 말을 놓겠나요."

반말이 안 나온다… 그냥 안 나온다. 내려다 보는 듯한 포식자의 압도적인 시선에 자동으로 몸이 떨린다. 같은 귀족이지만 지금은 신분이고 뭐고 없다. 나바니는 원래부터 샤지를 좀 무서워했다. 인간 대 인간으로서.

나바니가 스르륵 눈을 까는데, 샤지가 돌연 그의 턱을 잡고 치켜올렸다. 호랑이와도 같은 시선과 정면으로 마주치자 나바니는 몸이 뻣뻣하게 굳었다.

"어디, 전 주인의 여자는 무슨 맛인가 궁금해서 오셨나요?"

"아닙니다!"

말도 안 되게 불경한 소리에 나바니의 심장이 철렁였다. 아니, 불경하진 않은가? '그'는 이제 노예다. 제국에서 가장 천한 신분이다. '그'의 여자들도 모두 제각각 자신의 삶을 찾았고. 샤지의 경우는 아무리 생각해도 비상식적이고 특수하다고 생각하지만은….

어쨌든, 나바니는 그녀에게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다.

"그런 게 아닙니다. 저는…."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

"저는…."

…말이 안 나와….

"그게…!"

답답한 남자를 한두번 상대해 본 게 아닌지, 샤지는 나바니의 손을 부드럽게 잡고 상냥하게 달래주었다.

"저런, 마음에 응어리가 있나봐요. 경의 마음 속 그림자가 느껴져요. 자, 괜찮아요. 우선은 드시지요. 저를 찾으셨는데 본론부터 꺼내려는 것도 속상하답니다. 모든 여인들의 우상인 나바니 경의 근사한 모습을 기대하고 있어요."

"그렇, 그렇지요…."

나바니는 우선 샤지가 따라주는 술을 마셨다. 그녀가 이렇게 마음을 사르르 녹여주는데 왜 자꾸 머리 한구석에서 북소리가 미친 듯이 울리는 걸까. 목숨이 아깝다면 빨리 퇴각하라는 신호를 보낼 때 쓰는 그 전장의 북소리가….

샤지는 계속 술을 권했고, 나바니는 계속 마셨고, 살짝 취했다. 그래서 용기가 났다.

"샤지 님께 상담하고 싶은 일이 있어요."

"네, 말해봐요."

"샤지 님께서는…… 그러니까, 예를 들어…… 이전 술탄의… 환심을 살 때 어떻게 하셨나요?"

"으응?"

정말 의외였는지 샤지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굉장히 사랑스러웠다. 샤지가 흥미를 숨기지 않고 킥킥 웃으며 캐물었다.

"나바니 경께서는 지금의 폐하를 몸으로 유혹하고 싶으실까요?"

"그런 얘기가 아니예요! 그렇게 들릴 수 있다는 건 알지만, 그런 얘기는 아닙니다…."

"폐하의 총애를 받고 싶다?"

"네, 맞아요! 하지만, 그보다는…!"

"쫓겨나기 직전이군요?"

"!"

정말 그러했다…. 나바니가 느끼기로는 정말 쫓겨나기 직전이었다. 그리고 샤지는 정말 좋은 말상대였다. 사교계의 주인공인 나바니가 모든 사교능력을 잃고 말을 더듬거리는데도 샤지는 그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잡아냈다. 대화하기 편했다. 이래서 '그'가 그녀를 편애했구나 실감이 났다.

쫓겨나기 직전이라 생각하니까 눈물이 핑 돌았다.

"폐하께서 저를 찾지 않아요……."

"저런."

샤지는 나바니의 어깨를 감싸안아 품에 넣고 그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 머리를 쓰다듬어지자 나바니는 진짜로 눈물이 왈칵 흘렀다. 본래는 그가 여인을 품에 안고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는 역할이지 않던가. 그런데 왜 이렇게 됐지… 이런 상황까지 포함하여 다 서러웠다. 샤지는 확실히 어느 여인과도 달랐다.

"흡, 형제라고 해놓고, 끄흡, 중요한 국정 돌보는 동안 저는 방치하고, 흡, 제일 서러운 게 뭔지 아세요? 폐하께서 겉으로는 정말로 저의 편의를 봐주고 있단 거예요! 저는 불평할 자격도 없다고요! 그런데 왠지 정신차려보니 소외되어 있고, 흑."

"경, 그건 아주 우아한 정치 수법이랍니다. 불평을 할 수 없게 하면서도 원하는 일을 진행시키는 것이지요."

"그런가요? 그렇지요! 역시 폐하께선 저를, 흑, 일부러… 흐윽… 내치려고, 어떻게 형제애가 변해……!!"

"여기서는 마음껏 울어도 돼요."

"흐아앙……!!"

방에 들어가서 대성통곡하기까지 15분 걸렸다. 나바니는 술에 취해 펑펑 울면서 서러웠던 걸 마구 쏟아냈다.

"아무도 위로를 안 해줬어요. 사다르니 경께서는 심지어 저한테, 쓸모없어진 기분이 어떻냐고, 흐윽, 캐묻기까지 하셨고요!"

"어머, 사다르니가 그랬다고요?"

"네! 아주 재미있어 하셨다고요!"

"크흑… 그랬군요. 음, 사다르니가."

"웃지 마세요! 웃을 일이 아니예요. 폐하와 어깨동무하던 시절이 그리워요. 그때는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았고, 흐윽… 위대한 과업의 일부가 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야 제가 조금 놀기는 했지만요! 아무리 그래도… 흐으윽…… 제가 그렇게 믿음직하지 못 하나요?"

"나바니 경…. 걱정 마세요. 경의 낭만적인 면은 보통 사람들이 이해하기에는 너무 섬세해서 오해가 생기기 쉬워요."

"흐아앙…… 저를 이해해 주는 건 샤지 님 밖에…!"

"그래요, 그래요. 저 밖에 없어요."

샤지가 이런 식으로 지금껏 만나온 모든 남자들을 녹였다는건 생각하지 못 하고 나바니는 그녀의 품에서 울음을 터트렸다. 샤지는 누구보다도 자애로운 손길로 그의 등을 쓰다듬어주었다. 하지만 표정은 썩 자애롭지 않았다. 남의 불행이 재미있어 죽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바니는 보지 못 했다.

"샤지 님, 저는 어떻게 해야할까요?"

나바니가 고개를 들자 샤지의 자애로운 표정이 보였다. 샤지는 곤란해하는… 듯한, 표정을 연출하며 그의 등을 계속 쓸었다.

"나바니 경, 저로서는 몸으로 환심을 사는 방법밖에는 모르는걸요."

그리고 또 큭큭 웃었다.

"저잣거리에는 이미 경께서 그 아름다운 얼굴과 몸으로 폐하의 총애를 받고 있다는 소문이 도는데요."

"웃… 웃지 마시라고요! 저는 웃음이 안 나와요. 그 소문은, 저도, 저도 들었습니다. 차라리 진짜 총애를 받고 있기라도 하면 모를까…!"

"큽… 미인계 정말 쓰시나요?"

"안 써요! 안 쓴다고요. 저는 명실상부 이성애자예요. 물론 폐하께서 저를 아끼는 이유 중에 저의 이 보기드문 얼굴이 없다고는 못 하겠지만요."

"그럼 생각도 안 해봤나요?"

"그건… 그건…."

나바니는 선의의 거짓말을 잘 한다. 상대방의 기분을 좋게 띄워주려는 목적이라면 거침없다. 게다가 그게 심지어 상대방의 목숨을 위한 거짓말이라면 나바니 또한 필사적으로 해낼 수 있다.

하지만 자기자신의 체면을 위한 거짓말은? 그것도 심지어 포식자 앞에서?

나바니는 늘 저런 지배적인 시선 앞에서는 순한 양이 되었다….

"새, 생각을… 안 해본 건… 아니지만…."

나바니의 얼굴이 타들어갔다. 나바니는 신분이 높다. 그래서 자신보다 높은 지위의 여자를 만날 일이 거의 없었다. 있다 하더라도 모두 상식적인 수준의 욕망과 결핍을 가진 사람들이기에 공손히 모시면 다들 만족해했다. 끝없는 욕망을 가졌어도 그 방식은 충분히 납득할만한 것이었다.

그러나 샤지는 상식으로 잴 수 있는 여자가 아니다.

그녀는 근본부터가 어딘가 다르다.

인간의 욕망 앞에서 샤지가 노골적인 흥미를 보였다.

"더 말해봐요."

나바니는 최면에 걸린 것처럼, 가라앉은 목소리로 속에 있는 것들을 끄집어냈다.

"혹여 형제가 돌이킬 수 없는 길을 걸으려 한다면, 제 목숨도 아깝지 않은데 몸 정도야 당연히 바칠 수 있습니다. 그걸로 효과가 있다면요. 그치만, 그치만…… 형제는 멀쩡하고, 나라는 부강하고, 모든 사람들이 행복하고, 저 또한 명목상으로는 쾌적하게 지내고 있는데 대뜸 갑자기 밤에 모시고 싶다 그러면 좀 이상하잖아요! 하지만…… 솔직히…… 안 통할 것 같지는…… 않고……! 왜냐면 폐하께서는,"

나바니의 얼굴에서 돌연 서러움이 사라지고, 거의 공포와도 같은 공허가 순간 스쳐지나갔다.

"……남자도… 좋아하시지 않습니까."

단순히 아르트가 남자도 애인으로써 아끼는 정도였으면 나바니도 이렇게까지 겁에 질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바니의 표정을 보고 샤지는 그가 무엇을 떠올리고 있는지를 짐작했다. 아, 그 날. 그 날을 어떻게 잊을까! 그 날은 모든 이들에게 특별한 날이었다. 하늘과 땅이 뒤집히던 날. 태양이 왕좌에 박제되던 날. 나바니는 마치 트라우마를 토해내듯 홀린 것처럼 중얼대기 시작했다.

"폐하께서, 형제가…… '그 사람'을 단순히 두려워만 하는 게 아니라는 건 조금 짐작하고 있었어요. '그 사람'도…… 형제를 조금…… 재미있어 하기만 하는 것도 아니라고 짐작하고 있었어요. 서로를 보는 시선이 조금…… 좀…… 어둡게…… 질척이긴 했었어요! 둘 사이에는 끼어들 수 없는 운명적인 세계가 있다는 걸 알고 있었어요. 제가 어떻게 모르겠어요. 저 말고도 눈치 빠른 사람들은 다 알고 있었잖아요. 샤지 님도 알고 계셨지요? 그래서 '그렇'게 될 지도 모른다고 각오하고 있었어요. 전리품을 어떻게 하든 그거야 승리자의 권한이니까요. 다만 진짜로 막상 닥치니까 속에서 막, 뭐가 올라오려고 해서, 일단은 도망을 치긴 했는데…… 그게 뭐죠? 삼단 회전에 전기에 진동에 무지개색 불빛에 노래까지 나오는 그거 뭐죠?? 그게 뭔데요! 그게 뭔데요!! 제 사랑이! 그러니까 제가 '그 분'을 연애감정으로 좋아했다는 말이 아니라, 뭐랄까, 제 충성과 낭만과 삶과 청춘과 맹세, 희망, 모험, 미래, 즐거움, 그 모든 것들이!! 제 사랑이! 황금 회전 지팡이에 무참하게 뚫려서! 어떻게 그 사람도 그렇게 쉽게 기분 좋은 소리를 내버린건데요!! 이건 배신이야, 그보다는 더 버텼어야 하는 거잖아요. 고통스러운 비명소리가 죄송합니다 저는 천박한 제국 공용 길바닥 변기예요 소리로 순식간에 바뀌고, 아악! 형제는 왜 또 그렇게 신나게 그런 소리를 부추긴건데, 흐윽, 흐아앙, 소리는 왜 또 그렇게 잘 들렸던건데, 너무 싫어, 너무 싫어, 너무 싫어! 차라리 목을 베었어야지요. 감옥에 가두고 추방을 했어야지요. 왜 제 사랑과 배신의 결말이 전립선 결장 타락인데요. 아악! 내가 왜 이딴 더러운 단어를 외우고 있는거지! 그 사람이 이걸 너무 크게 외쳤단 말이예요, 당시에!! 흐아아앙………!!"

이러고 쏟아냈다. 눈물도 쏟아냈다. 애초에 뭣때문에 샤지를 찾아왔는지도 잊어버렸다. 하지만 어쩌면 이게 문제의 근원일지도 모른다. 지금 나바니가 직면한 문제의 근원은 아닐지라도, 아무튼…… 문제의 근원일지도 몰랐다. 문제가 아니라고 할 수는 없었으니까.

나바니는 우느라 정신이 없었고, 그래서 누가 오는지도 몰랐다.

"크흠."

제국 지존의 민망한 헛기침 소리가 들리자 나바니는 거의 자리에서 튀어올랐다.

"폐하!?"

"미안하다, 그 정도로 트라우마가 됐을 줄은 몰랐어…."

아르트는 엄청나게 머쓱해하며 일단은 비단 커튼을 걷으며 방 안으로 들어왔다. 샤지가 그를 반겼다.

"폐하, 용건이 있을 때만 찾아오시고, 서운해요."

"그건 네 얘기잖아, 샤지. 나야말로 서운하거든?"

왜인지 만나자마자 서운함 배틀부터 떴다. 이게 뭔 대화야? 나바니는 영문을 몰라 눈물 범벅인 얼굴로 아르트를 쳐다봤다. 아르트가 변명하듯 말했다.

"잡으러 왔지."

77일 만이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반갑지 않다.

"어, 어떻게 아셨죠? 비밀로 했는데."

"뭐가 비밀로 해. 넌 아무것도 비밀로 안 했어. 궁 내 모든 사람들한테 고민상담 하다가 이리로 뛰쳐들어왔잖아."

그렇긴 했다.

서서히 사태 파악이 되자 나바니의 얼굴이 믿을 수 없으리만치 벌겋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어, 어, 어디서부터 들으셨나요."

"대충 길바닥 변기 전후로……."

"아…… 아아악………!!"

그리고 샤지가 내내 뒤집어지게 웃고 있었다. 그녀는 박장대소를 해도 어여뻤다.

"폐하께서는 태양이 되어서도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시는군요!"

"하… 이제 광대 노릇은 그만하고 싶은데 자꾸 이렇게 되네. 이번엔 정말 내가 의도한 게 아니었어."

아르트는 자연스럽게 자리에 앉아 샤지가 따라주는 술을 받았다.

"무슨 얘기 하다가 '그 날' 얘기까지 하게 된 거야?"

"나바니 경이 폐하께 몸으로 환심을 사겠다는 얘기를 하고 있었네요."

"컥-"

아르트는 첫 잔부터 사레 들렀다. 나바니가 버럭 소리질렀다.

"아닙니다!! 오해예요, 그런 얘기 안 했어요."

"들어봐요, 폐하. 나바니 경께서 뭐라고 하셨냐면요."

"뭔데, 뭔데?"

아르트가 히죽거리며 샤지의 귓속말에 귀를 기울였다. 무슨 사춘기 소녀들끼리 자기 전에 비밀얘기 하는 것 같았다. 사실 귓속말도 아니었다. 샤지가 그냥 대놓고 다 들리게 말했다.

"폐하의 총애를 얻기 위해 밤에 모셔볼 생각까지 했다는 거예요."

"허어억……! 진짜?"

아르트가 소녀처럼 손으로 입을 가리며 나바니를 쳐다봤다. 누가봐도 놀리고 있었다. 하지만 나바니로서는 놀아날 수밖에 없었다. 나바니는 일단 냅다 부정했다.

"아니예요, 폐하. 생각만 했어요!"

아르트는 이번에는 진짜로 놀랐다.

"생각은 했다고!?"

나바니의 서운함이 폭발했다.

"그래요! 생각은 했어!! 형제가 먼저 나를 홀대했잖아!!"

하지만 아르트는 황당해했다.

"뭔 소리야…. 너는 거의 베키 부인 수준으로 특혜를 받고 있어."

"고양이잖아!"

"어허, 말 조심해. 베키 부인은 엄연히 작위를 가진 귀족이야. 술탄인 나조차도 베키 부인이 어느 무릎에 올라갈지 고를 권리를 침해할 순 없어. 요즘 내 무릎에 안 올라와준다고."

"왜 근위인 내가 애완동물이랑 비교가 되어야 해?"

"그야 너는 실제로 좀…."

"……실제로 좀 뭐?"

샤지가 웃으며 끼어들었다.

"나바니 경, 문제가 해결되었네요! 폐하의 무릎에 올라가시면 되겠어요."

나바니가 울음을 터트렸다.

"저는 그런 취급을 바라는 게 아니라고요……!"

"저라면 냉큼 올라탔을텐데, 바라는 것도 많네요."

이렇게 말하면서 샤지는 정말로 아르트의 무릎 위에 올라탔다.

"야옹."

아르트가 무척 기뻐하면서 샤지의 턱 밑을 간지럽혔다.

"아이, 귀여워. 네가 내 애완 고양이가 되어주면 좋을 텐데."

"언제든 절 그렇게 만드실 수 있으시면서요."

"내가 네 속셈을 모를 줄 알아? 제발 궁에 나와서 내 지지세력이 되어달라고. 자꾸 내 적으로 돌아설거야?"

"하렘에 들이는 편한 방법을 놔두고 폐하께서 왜 그렇게 고민하는지 모르겠어요."

"그리고 궁에 밀정도 그만 심어. 내 순진한 근위 탈탈 털어먹고 밀정으로 삼을 생각도 하지 말고."

"제가 왜 그런 생각을 하겠나요."

"샤지, 같은 거짓말쟁이 출신끼리 거짓말 안 통한다. 이러지 말자."

"흥, 폐하께 접근도 못 하는 무능한 밀정은 저도 필요 없어요. 밤시중 드는 법이라도 가르치면 뭔가 쓸모가 생기지 않을까 했네요."

얘기 듣고 있던 누군가가 술잔을 떨어트렸다.

"하지만 됐어요. 폐하께서 직접 오셨으니, 제가 직접 하죠. 어디 제 몸만 취하고 마음은 안 줄 수 있는지 한 번 자신을 시험해봐요."

"아, 잠, 잠만, 자신 없으니까 좀…."

"얌전히 누워, 아르트."

"………!! 아, 이 요물 진짜! 가, 가, 같은 아첨꾼 출신끼리 아첨도 안 통한다, 이러지 말자!"

"별로예요? 흑… 저는 폐하의 환심을 사고 싶을 뿐인데."

"나야말로 네 환심이 사고 싶다! 샤지, 좀 봐줘. 뭐 갖고 싶은 거 있어? 궁 지하에 내가 쓰던 성노가 있는데, 너라면 그걸로 금화를 상당히 벌어들일 수 있지 싶어. 가질래?"

"그 노예는 그 방면으로는 그다지 쓸모가 없어 보이는걸요."

"으흐흐흑…… 나, 크흡, 나 웃기려고 일부러 그런 말 하지, 크흡, 말라고."

하지만 아르트는 웃느라 정신을 못 차렸다. 어떻게 해야 아르트가 좋아하는지를 귀신같이 잡아내는 아첨 솜씨에 권력자인 그는 이미 손 쓸 도리가 없었다. 결국 아르트는 항복했다.

"전 술탄의 총신, 총비, 근위가 모였는데, 우리 솔직히 얘기해보자. 나 이거 너무 궁금했어. 샤지 전하, 저는 폐하의 신하로서 우리 지고지순하신 술탄의 아랫도리 사정이 너무나 걱정이 됩니다. 비록 지금은 제가 폐하의 밤시중을 들고 있지만, 누구보다도 고귀하실 변기의 성능이 너무도 형편이 없어요. 폐하께서 하렘의 여인들 그 어느 누구도 만족시켜본 적이 없을 거란 생각이 멈추지 않습니다. 샤지 전하, 정말 그런가요? 같은 술탄을 모시는 이로서 전하의 의견이 궁금합니다."

샤지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역할극에 장단을 맞췄다.

"아르트 경, 저는 남자를 모시기만 했지 그들이 저를 만족시킬거라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어요. 평가해보려는 생각도 안 해봤고요. 저는 그 어떤 상대가 들어와도 기분이 좋아질 수 있어요. 그들의 권력이 곧 저의 기쁨이니까요. 하지만 폐하의 태도를 감히 말씀드리자면… 정신연령이 10살 정도나 될까요. 어린아이를 다루는 요령이 필요했답니다."

"저런! 구체적으로 어떤 식이였나요?"

"폐하께서는 멋대로 휘두르고, 자신만의 최고이고, 그 사실에 의심이 없으며, 그 점을 칭찬하고 숭배해야지 만족하셨지요. 경의 의심은 타당하답니다. 그 불쌍한 여자들은 쾌락을 누리지 못 해 자기들끼리 위로하고, 그러다 근위랑 눈도 맞고 그랬던거죠."

"커헉."

얘기 듣고 있던 누군가가 사레 들렀다. 아르트가 그에게 신경쓰지 않았으므로, 샤지도 그에게 신경쓰지 않았다. 아르트는 심각하게 대답했다.

"그 고추 크기로 그러는 것도 재능입니다."

"컥…!"

얘기 듣고 있던 누군가의 기침이 멈추지 않았다. 아르트가 여전히 그에게 신경쓰지 않았으므로, 샤지도 그에게 신경쓰지 않았다. 아르트는 진지한 톤으로 이어 말했다.

"총비분들께 비할 바는 못 되지만, 저도 한 번은 여관에서 입으로 그를 모신 적이 있습니다."

"콜록, 콜록!"

"기도까지 꽉 막히는 게 이대로 질식해 죽나 싶었어요. 하지만 그 정도라니, 솔직히 남자로서 부럽기도 했는데요."

"어머나, 들은 적이 없어요."

"아마 그럴 거라 생각해요. 남자에게 시중을 받았다는 게 폐하께 그리 자랑스러운 건 아닐 테니까요. 저는 당시에 드디어 오늘 폐하께서 저를 취하시겠구나 싶었는데, 그거 아십니까? 술탄께선 무서워 하셨어요! 남자에게 마음을 준다는 걸요! 그래서 입으로만 끝났던 것이겠지요."

"아하하, 경께서는 폐하를 입으로 잘 모셨나요?"

"솔직히 기술 면에서의 자신은 없습니다만, 폐하께서 그렇게 흥분하신 모습은 그때 처음 봤네요. 지금이야 채찍만 들어도 그때만큼 흥분하지만서도요."

"커헉, 컥, 콜록… 헙, 끄으윽………!"

"아르트 경께서 여자였으면 얼마나 재미있었을까요! 같은 하렘에서 만났어야 했어요. 저는 경쟁을 좋아한답니다."

"저도 샤지 전하께서 남자였으면 어디까지 올라갔을까 몇 번 상상해 보았지요. 전하께선 여인의 몸으로도 왕관을 쓸 기회가 분명히 있었으니까요. 역사 최초의 여성 술탄이라니!"

"엑!?"

"하, 돌이켜보면 정말 아까워요. 조금 더 열심히 해볼 걸 그랬어요."

"하하, 안타깝네요. 제가 이겼어요. 하지만 전하께서 왕관을 썼더라면 당신과 제가 친구가 될 수 있었을까요?"

"어찌 남녀가 친구를?"

"됐습니다, 흥. 전하께선 친구가 없지요."

"경, 기분 풀어요. 경께서 여자였으면 제가 가장 아끼는 경쟁자가 되셨을 거예요."

"그런 말로 기분이 풀릴 게 아니거든요. '아끼는 경쟁자'라는 건 또 무슨 개념입니까? 그렇게 경쟁 좋아하시는 면을 보면 왜 술탄께서 전하를 총애하시는지 알 것도 같습니다. 막상 그 분 본인은 경쟁을 그다지 즐기는 것 같진 않지만요."

"으응? 굉장히 즐기시잖아요. 왜 그렇게 생각하시나요?"

"이기는 걸 좋아하는 거지, 싸움을 좋아하는 게 아니예요. 조금이라도 밀리면 바로 불쾌해하세요. 그럴 일이 별로 없어서 눈에 띄지 않는 것 뿐이지요. 예를 들어, 왜 나바니 경께서 하렘에 접근조차 못 하게 된 줄 아십니까? 계기가 있어요…."

"뭔데요, 뭔데요?"

샤지가 히죽거리며 아르트의 귓속말에 귀를 기울였다. 옆에서 누군가가 한참 전부터 온 몸의 핏기가 다 빠진 채로 벌벌 떨며 간신히 술만 마시고 있다는 사실은 무시되었다. 그리고 이번에도 귓속말이 아니었다. 아르트가 그냥 대놓고 다 들리게 말했다.

"언젠가 폐하께서 나바니 경과 함께 여자들을 모아 즐긴 적이 있다고 해요. 그런데 여자들이 모두 나바니 경에게만 관심을 보였던거죠! 그야 폐하께선 아프게 하지만 나바니 경은 그러지 않으니까요. 폐하께서는 크게 상심하셔서, 그 후로 다시는 나바니 경과 함께 즐기지도 않으셨고, 하렘에도 영원히 접근 금지 처분을 내리셨다나요."

"과연, 폐하께서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 할 이야기네요! 경께선 그 얘기를 누구에게서 들으셨나요?"

"물론 그 여자들 중 한 명에게 우연히 들었지요. 게다가 그 얘기를 들을 당시에는 제가 나바니 경을 믿을 수 없었어요. 그래서 진위여부를 확인하지 못 했죠. 뭐, 검증할 필요도 없는 얘기지만요. 저도 당시에 이야기를 듣자마자 탄식부터 나오고… 하렘의 여인들도 고생이 많겠구나 싶었고… 하지만 이제 검증해 볼 수 있겠네요! 나바니 경, 이 이야기가 사실인가요?"

아르트와 샤지의 시선이 나바니에게로 쏠렸다. 나바니는 호출되자 침착하게 마시던 술잔을 내려놓고, 자세를 고쳐 공손히 무릎을 꿇고, 두 손을 예의바르게 모아, 벌벌 떨며, 울음기 섞인 목소리로 간청했다.

"살려주세요."

"뭘 죽는다고 그러십니까, 이제 폭군은 없는걸요!"

아르트가 경쾌하게 받아치자 나바니의 눈에서 주르륵 눈물이 흘렀다. 이상하다. 술, 비싼 걸로 마시고 있다. 여자, 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가 눈 앞에 있다. 형제, 근위에게 무한한 휴가를 주는 술탄으로서 눈 앞에 있다. 나바니가 힘들 때마다 찾는 그 모든 것이 여기 있었다. 그런데 왜일까? 왜 이렇게 마음이 힘들고 죽고 싶을까? 나바니로서는 더 이상 어디로 도망쳐야 할 지 알 수 없었다. 이딴 부자유는 살면서 처음 겪어보았다. 형제 앞에서, 여인 앞에서, 나바니는 꼴사납게 눈물을 주륵주륵 흘리면서 간신히 입을 열었다.

"그건 폐, 폐하께서 즉위하시기 전 일이었습니다…."

"그럴 거라 생각은 했지만, 역시 진짜였네요."

"당사자의 입으로 듣는다니 정말 재밌겠어요."

재밌는 얘기에 미친 두 인간이 히죽대며 이야기를 재촉했다. 막상 나바니는 '그'를 다시 '폐하'라고 불러야 하는 그 자체로도 크나큰 데미지를 입어 정신적 빈사상태에 빠졌는데 저 악마들은 그딴 건 아랑곳 않는 것 같았다. 나바니는 어쩐지 저 두 사람이 자신이 풀 이야기보다는 자신의 지금 상태에 더 흥미를 가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운하게 가시방석에 오른 근위 이야기. 나바니 스스로가 이야기가 되어버린 것이다.

도망치고 싶다. 탈출하고 싶다. 이 방 안에서. 재밌는 얘기 안 하면 못 나가는 방에서.

나바니는 최대한 간략하게 이야기를 풀었다.

"저는 다만 동경하는 친구와 함께 꽃향기를 즐기는 유희를 함께 하고자 했던 겁니다. 그런데 폐하, 당시는 왕자 전하였으니까, 전하께서 조금 너무… 꽃을 다루는 법을 모르셨어요. 그래서 말렸는데… 그 이후로 왜인지 다시는 함께할 수 없었어요. 말리지 말았어야 했나 가끔 후회하기도 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말리지 않을 수는 없었으니까요."

아르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앞뒤가 맞네요. 그래서 저도 그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던 거예요. 폐하께서 당시 술탄이 아니었으니 그 여인들을 모두 처형하지 못 했던 것이었군요."

나바니의 어깨가 움찔 떨렸다. 진짜… 진짜 이제 그만하면 안 될까? 과거를 너무 자세히 돌이키고 싶지 않아… '그'의 하반신 사정도 그렇게 자세히 듣고 싶지 않아…. 아니, 그냥 불미스럽다고, 그거. 왜 들어야 하는데. 이제 다 끝난 일 아니었어? 내가 뭘 잘못했다고 괴롭히는데! 나는 아무것도 잘못한 게 없잖아! 라고 소리치고 싶었다. 그런데 아르트가 슥 가까이 오더니, 다정하게 눈물을 닦아주었던 것이다.

"나바니, 힘들어?"

나바니가 생각지도 못 한 다정함에 화들짝 놀라 허겁지겁 고개를 끄덕였다.

"응, 응. 힘들어."

아르트가 그의 머리를 상냥하게 쓰다듬어주었다.

"그러게 출근을 잘 했어야지…."

"……………………."

"한번만 더 마음대로 휴가 쓰면 지하 성노 사용해보라고 할거야. 알았지? 자, 궁으로 돌아가자."

이렇게 술탄은 도망친 근위를 붙잡았다. 샤지는 배웅하며, 나바니에게 다음에 또 오면 밤시중 드는 방법을 가르쳐 주겠다고 했다. 나바니는 통곡했다. 아르트는 샤지에게 충분한 금화를 하사했다. 샤지는 만족했다. 아르트도 만족했다. 나바니는 만족 안 하면 술탄의 침실이든 왕성 지하든 샤지의 방이든 끌려갈테니 만족해야만 했다.

나바니는 한동안 성실하게 출근했다고 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