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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nguage:
한국어
Stats:
Published:
2021-11-30
Words:
640
Chapters:
1/1
Hits:
35

사랑은 크립톤 다방에서

Summary:

WIP

Work Text:

유달리도 쌀쌀한 날이었다. 밖에 있던 시간이 잠깐이라고 해도 차가운 바람을 한 번 맞으면 순식간에 아늑한 실내가 그리워지는 그런 날씨였다. 어제 길거리에 소담스레 쌓였다가 밤새 꽝꽝 굳은 눈 위를 아늑하게 비추는 주홍빛 조명은 색깔만으로도 유혹적이었다. 그래서 레나 루터는 평소라면 지나쳤을 카페 문을 열었다. 머리 위로 작은 종 서너 개가 부딪히며 맑은 소리를 냈다.

"어서 오세요. 날이 춥죠?"

직원 한 명이 레나의 등 뒤에서 불쑥 말했다. 레나는 자신에게 말했을 것이라고 생각 못하고 실내를 둘러보다가, 등 뒤에 있던 직원이 불쑥 눈앞에 얼굴을 내밀고는 방긋 웃는 것을 보고 화들짝 놀랐다. 물론 표정으로 티는 내지 않았지만 한 걸음 뒷걸음질 친 것은 누구도 알아서는 안 될 사실이었다.

"아, 네."

레나가 뒤늦게 대꾸했을 때 직원은 이미 금발 포니테일을 찰랑거리며 멀어진 후였다. 대답도 안 들을 거면 왜 굳이 얼굴을 들이밀면서까지 물어보고 간 거지?

레나는 괜히 장갑을 꼈음에도 얼어붙은 손을 마주 비비며 어디에 앉을지 둘러보았다. 이곳의 조명에 이끌린 사람이 자신만이 아닌지 카페 안에는 제법 손님이 많았다. 1인석은 일찌감치 만석이었고 자리에 앉으려면 테이블을 나눠 써야 했다. 레나 루터가 즐기는 일은 아니었다. 나갈까 싶었지만 유리창 너머로 코트를 꽁꽁 여미고 가는 행인을 보니 그냥 테이블을 나눠 쓰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레나 루터는 눈으로 자리를 찜해 두고 카운터로 갔다. 키가 큰 흑인 남성이 커피콩을 나르다 레나를 발견하고는 대뜸 외쳤다.

"카라! 카운터!"

그러자 어딘가에서 불쑥 금발 포니테일이 나타났다. 아까 레나를 스쳐지나갔던 그 직원이었다. 포니테일이 통통통 뛰어서 카운터 앞에 섰다. 흘러내린 안경을 추어올리며 고개를 들자 파란 눈이 반짝거리며 휘었다. 예쁘네.

"뭐 주문하시겠어요?"

"아, 네?"

"뭐 드시겠어요?"

"아, 아."

레나가 헛기침을 했다. "저, 그게."

"저희 겨울 스페셜 메뉴가 있거든요, 펌킨 라떼라고. 못 고르시겠으면 추천드려요."

포니테일이 활짝 웃었다. 레나의 시선이 그의 가슴께에 달린 명찰로 향했다. 직접 손으로 쓴 것 같은 글씨체로 '카라'라고 적혀 있었다. 방긋방긋 웃는 얼굴과 잘 어울리는 이름이었다.

"그걸로 드릴까요?"

"네?" 레나는 당황해서 되물어놓고 민망해 재빨리 말을 덧붙였다. "아뇨, 아메리카노."

말도 짧았다. 싸가지 없는 손님의 표본이나 다름 없는 말투였다. 다시 말해야 하나 레나가 주저하는 사이 포니테일, 카라가 말했다.

"네, 알겠습니다."

흔들림 없는 표정이었다. 레나는 상대가 계속 생글생글 웃자 오히려 머쓱해져서 괜히 손으로 머리카락을 쓸었다. 원두가 윙- 갈리는 소리가 났다. 레나는 눈앞에 있는 포니테일, 카라를 제외한 모든 곳에 눈길을 주었다. 카페 메뉴를 하도 봤더니 역순으로 메뉴를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냥 자리에 앉아서 기다릴까 고민하던 차에 포니테일, 카라가 말을 걸었다.

"밖에 많이 춥나요?"

그렇게 재수없는 말투로 주문했는데 말을 걸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포니테일의 놀라운 친화력에 레나는 당황해서 툭 대답했다.

"네? 겨울이니까요."

자기 귀로 듣기에도 짜증이 가득한 목소리였다. 레나는 더 이상 상황을 꼬이게 만들지 말고 얌전히 자리에나 가서 앉아 있자는 생각에 대충 눈인사를 보내고 홱 돌아서 빠르게 맡아두었던 자리로 가서 앉았다. 다행히 그새 앉은 사람이 없었다. 레나는 코트를 벗어 옆에 가방과 함께 내려놓고는 부츠 코로 바닥을 콱콱 찼다. 예뻤다. 딱 레나의 취향이었다. 레나의 취향이고 자시고 취향의 범위를 넘어선 예쁨이었다.

레나는 손가락을 만지작거렸다. 아무런 반지도 끼지 않은 맨손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레나가 전 남자친구를 잊지 못해서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레나는 단지 그 이후 취향에 맞는 사람을 만나지 못했을 뿐이었다. 그런 사람을 찾아 다닐 정도로 한가한 것도 아니었고. 회사에서 레나의 입지가 높아지는 만큼 그가 부담해야 할 책임과 일도 비례해서 늘어나고 있었다. 연애를 할 시간도, 굳이 하고 싶은 마음도 딱히 없었다. 주위 사람들의 오해야 말해봤자 자기들 입맛대로 해석하겠지. 그래서 그냥 내버려뒀더니 요새는 맞선을 봐라, 소개팅을 해주겠다 주위에서 아우성이었다. 굳이 만나보지 않아도 전해 듣는 설명만으로도 어떤 부류의 인간들인지 짐작이 갔다. 대부분 레나를 이용해 회사를 집어삼키려는 꿍꿍이를 가진 놈들이리라.

금발 포니테일이 잔 두 개를 들고 다가왔다. 똑같은 컵에 담긴 음료였는데, 옆자리에 앉은 사람에게 준 것은 뽀얀 거품 위에 무슨 그림이 그려져 있었고 레나의 앞에 놓인 잔에는 아무것도 안 그려져 있었다.

"맛있게 드세요."

포니테일이 레나에게 불쑥 말하고는 대답도 듣지 않은 채 후다닥 뛰어갔다. 그러고는 커피콩을 나르던 남자에게 가서 우는 얼굴을 했다. 레나는 커피를 한 모금 삼키며 잔 너머로 그의 입 모양을 관찰했다. 어떡...하면 좋...아? 아무래도 겁을 먹은 것 같았다. 딱히 다시 올 생각이 있다는 건 아니지만 레나가 다시 온다고 해도 저 직원이 자신을 생글생글 웃으며 상대해줄 것 같진 않았다. 레나 루터, 잘하는 짓이야. 뜨거운 커피를 꿀떡 삼켰다. 자기 커피에만 그림이 안 그려져 있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옆 사람 커피는 하트던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