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k Text:
처음 그 버스에 오른 날, 나는 이제는 기억나지 않는 생각들로 머리가 가득 차 있었다.
희끄무레하고 모호한 생각들. 굳이 떠올리려 노력하지 않아도 짚히는 바가 있는 뻔한 생각들. 나 자신을 해치고 깎아내리고 비난하는 그런 생각들….
이런 것들로 머리가 복잡해질 때면, 내 이는 습관적으로 물어뜯을 무언가를 찾으며 움찔거린다. 주된 대상은 손끝이였다.
손톱이 뜯어지고나면 톱니처럼 거칠고 보기싫은 모양이 된다. 주변의 거스러미를 뜯어내면 싸한 감각이 살에 맴돌더니 송골송골 피가 맺히기 시작한다.
기다렸다는 듯이 찾아오는 당연한 고통들. 손을 씻을 때마다 따갑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욱신거리는 통증이 손의 말미에서 전해져온다.
나는 이 감각에 익숙하다. 되려 반갑기까지 하다. 이 불필요한 고통이 내 양손의 저 끝에서 타고 올라올 때면 어쩐지 정신이 맑아지는 것 같아서….
그 날도 그랬다. 은발의 여성이 안내하는 대로 불길한 소음을 내는 차체에 오른 그 날도.
나는 끔찍한 집 안의 살풍경을 보고 의식을 잃었다. 집이 아닌 다른 곳에서 눈을 뜨고 얼마지나지 않아 한 회사에서 나를 찾아왔다. 그들은 나를 필요로했고 나도 그들이 필요했다. 아니, 나는 몸을 뉘일 곳이 필요했다. 지금까지 있던 보금자리가 한 순간에 재가 되었으니까.
그동안 내 손 끝은 항상 굳은 피와 저릿한 통증으로 뒤덮여있었다.
차에 오른 날, 파우스트 씨의 설명에서 들었던 다른 수감자들은 보이지 않았다. 내부에 있는 건 단 한 명 뿐이었다. 미색 셔츠에 서스팬더를 착용한 남자였는데, 그는 몹시 피곤해보였다. 그는 나에게 아무런 관심이 없어보였다. 어쩌면 내가 들어온 걸 아예 눈치채지 못한 것 같기도 했다.
내부는 침묵으로 가득했고, 아무도 없는 것처럼 차분했다. 나는 오히려 이런 침묵이 기꺼웠다. 더이상 사람을 마주치는 것이 왠지 지쳤다. 남자의 무관심에 감사하면서, 나는 그와 조금 떨어진 자리에 앉았다.
내가 할 일은 파우스트 씨가 서류 수리를 마치고 유니폼을 지급하러 돌아오길 기다리는 것 뿐이었다.
주변은 무척이나 조용하고, 하나 뿐인 동승객은 나를 주변의 의자나 창문과 비슷한 존재로 취급하고 있었다. 내게 말을 거는 사람도, 나를 의식하는 사람도 없이 혼자가 되자 또 주체할 수 없는 생각들이 홍수터럼 불어나기 시작했다.
나의 집. 가족. 아버지와 어머니. 누나. 학교. 친구들. 사람들… 기계. 의체, 팔, 다리, 사지, 머리와 눈알, 기계, 기름, 충전, 식사? 기계, 피, 살점, 파손과 고장? 기계. 의체, 몸, 내 몸, 내 가족의 몸, 의체. 기계? 작동? 파손된, 흐뜨러진 피? 사지─ 사지절단? 박제! 고정, 효수, 부수고깨뜨리고산채로짓밟아터뜨려버려그목잘라서위에올려놔꼬챙이에꽂아놓는거야마땅한거야죄를지었으니까당연한거야의식이있을때매달아놔더비명지르게더더귀가뜯어질때까지피한방울안남게으깨버려끼익끼익대는소리내지마듣기싫으니까너희는스스로비명지르는것조차포기한거야그럴자격이없는몸인거야왜우는데이상하네이것들은아프지않아이것들은사람이아니야기계니까아프지않아그러니까의체로고친거잖아의체는고통을못느끼잖아원래그래그게맞아싫었으면몸을바꾸지말았어야지이건벌이야감히신성한살과피를모욕하고기계따위를온몸에꽂아대서 그러니까, 그 사람들은, 벌을 받은거야….
정신을 차렸을 때 내 손은 누군가에게 붙들려있었다.
“아….”
조각상처럼 가만히 있던 남자가 내 손목을 부드럽게 쥐고있었다. 쥐었다기보다도, 들고 있었다. 그의 손에서는 힘이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내 손끝은 피투성이였다. 남자는 걱정도 경악도 없는 텅 빈 눈으로 말없이 나를 응시했다.
침을 삼키자 비린 철 맛이 났다.
“…감사합니다.”
그 때 나는, 그 짧은 말을 내뱉고 잡힌 손을 내렸다. 손끝에서 느껴지는 친숙한 고통. 나는 벌을 받고 있는걸까?
“…손을 소중히.”
남자는 집중해야 들을 수 있을만큼 작고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피곤이 잔뜩 서린 미성에 어울리지 않는 걱정이였다. 나는 어색하게 살짝 웃었다. 곧 파우스트 씨가 들어왔고 나는 유니폼을 받았다. 셔츠 위에 가지런히 놓인 서스펜더가 특히 마음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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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시간이 지나서 여쭤보는 거지만… 그 때 무슨 생각으로 제 손목을 잡으셨어요?”
돈키호테 씨를 포함해 셋이 체스를 두던 밤, 이상 씨의 개입으로 나는 역전패를 당했다. 벌칙으로 나는 체스판과 이불을 정리해야만 했다. 이상 씨는 내 표정을 살피며 눈치를 보다가, 내 패배에 자신이 영향을 끼쳤다며 나를 돕겠다고 말했다.
이렇듯 그는 첫인상과 달리 친절한 사람이다. 처음 봤을 때는 인형처럼 텅 비고 조용했는데. 함께 여행하며 본 그의 과거를 고려해보면, 나는 그의 가장 비참한 시기를 본 것일 지도 모른다. 아마 나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 버스에 탄 모두는 각자 최악의 순간에 운명처럼 차에 오른 것 같다.
내 질문에 이상은 잠깐 고민하더니, 내 손끝을 바라보며 조심스레 말했다.
“나는 손을 많이 쓰는 업을 가졌던 사람이오. 아직 어린 학생으로 보이는 그대가… 손을 두고 자해하는 것이 안타까워서.”
그럼 그게 안타까워하는 표정이었다고? 이상의 무표정은 가끔 놀랍다.
“하지만 요즘은, 손을 못살게 굴지 않는 것 같아 다행이오. 솔직히 말하자면… 그대가 받은 유니폼에 장갑이 포함되어있어 안심했었소.”
이상은 비밀을 밝히듯 약간 수줍게 덧붙였다. 나는 나도모르게 풋 웃음이 나왔다. 그 이후로도 내 손을 신경쓰고 있었을 그를 상상해보니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저, 아직 버릇 못 고쳤어요. 치료하는 거… 도와주실 수 있을까요?”
나는 피가 나지는 않았지만 살이 깊게 뜯어져 붉은 피부가 보이는 엄지를 내밀었다. 오른손이기는 해도 한 손 뿐이므로 나 혼자서도 충분히 처치할 수 있지만, 오늘은 어쩐지 어리광을 부리고 싶었다. 나보다 더 내 손을 걱정해주는 사람이 앞에 있으니까.
“…! 물론이오.”
이상 씨는 구급상자를 찾아 내 방 곳곳을 살핀다. 이리저리 움직이는 동그란 뒤통수가 어린아이같다. 어쩐지 웃음이 나왔다. 이상은 나보다 나이가 많은데, 내가 그를 귀여워해도 되는걸까? 이상하게도 그를 보고 있으면 작은 미소든 큰 웃음이든 함께하지 않는 때가 드물다. 나는 계속 킥킥대며 옷장 옆의 서랍에서 밴드와 연고를 꺼냈다.
“여기있어요.”
나는 여전히 불안감을 느낀다. 주체할 수 없는 생각들이 파도처럼 몰려들면, 나는 다시 그 저택으로 돌아가 피비린내 한 가운데 서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손톱을 물어뜯고, 주변의 살을 뜯어 피를 볼 게 분명하다.
하지만 그 빈도는 착실히 줄어가고 있다. 상처가 아물어 저릿하던 손끝의 통증이 느껴지지 않는 날마다 나는 새삼스레 시간의 흐름을 느낀다.
그리고 많든적든 가끔씩 피를 보는 날에는, 주저없이 그 사람을 찾아가는 것이다. 나보다도 나를 더 걱정해주는 더없이 다정한 사람에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