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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nguage:
한국어
Stats:
Published:
2026-02-24
Words:
500
Chapters:
1/1
Kudos:
4
Hits:
33

키류유세 (京遊) 조각글

Work Text:

#1

 

별안간 앓는 소리가 들렸다.

유성은 눈을 떴다. 아직 한밤중이었고 달빛이 창문으로 엷게 비추고 있었다. 새벽도 채 되지 않은 시간에 유성은 잠에서 깨 몸을 일으켰다. 아까 그 소리는 바로 옆에서 나는 듯 했다.

"키류?"

작게 부르면 호응하는 것 처럼 다시 앓는 소리가 난다. 유성은 같은 이불을 덮고 있는 남자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어두운 탓에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다. 가까이 가 바라본 키류의 얼굴은 일그러져 있었다. 나쁜 꿈을 꾸는 것인지 끊임없이 앓는 소리를 내고 때때로 중얼거렸다. 유성은 깨워야하는지 잠시 고민했다. "윽... 아..." 심해진다. 유성은 지켜보다 말고 키류의 어깨를 잡아 흔들었다. "키류, 일어나." 키류의 호흡이 거칠어진다. "키류." 다시 한 번 부르자 그는 숨을 한껏 들이쉬고 몸을 크게 들썩거리며 깨어났다. "허억," 그가 튕기듯이 힘주어 몸을 일으켰다. 바닥에서 떨어진 등에는 땀이 흠뻑 베어있었다.

"키류, 악몽이라도 꾼거야?"

숨을 고르는데 여념이 없던 그는 곧 두리번거리며 무언가를 찾았다.

"키류?"

"잭이랑 크로우는?"

유성은 말문이 막혔다. 한참 대답이 없자 키류는 그제서야 정신을 차렸다. "아..." 조잡한 탄식이 흘러나왔다.

"아무것도 아냐."

키류는 그렇게 말하고 다시 잠에 들었다. 유성도 곧 다시 잠들었으나 꿈자리는 좋지 못했다.

 

#2

 

"손이 차갑네."

배를 만지작거리는 손을 자신의 손으로 덮었다.

"너는 따듯하고." 키류가 말했다. 겹친 손은 살색이 눈에 띄게 달라 썩 어울리진 않았다. 대화라고 하기도 뭣한 주고받기 이후로 잠시 정적이 흘렀다. 키류는 계속 자신의 배를 건드리고 있었다. 무기물을 만지는 것 같은 손놀림이다. 아까까지 차가웠던 손이 배에 닿아있다보니 열을 얻고 조금 미지근해졌다. "배에 뭐라도 있는건가." 물으면 키류는 으응, 하는 애매한 소리를 낸다. 검지 손가락으로 복근의 갈라진 부분을 그어 보기도 하고 옆구리를 찌르기도 했다. 옆구리를 찌르면 역시 몸이 조금 움찔거린다.

"있잖아. 여자가 되면 어떨 것 같아?" 키류가 물었다.

"갑자기?"

"응."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말한다. "별로 다르지 않을 것 같은데."

"뭐야. 좀 더 상상력을 발휘해 보라고."

"키류는? 어떻게 다를 것 같은데?"

"섹스가 엄청 기분좋다더라."

"섹스."

얼빠진 목소리로 되풀이하자 키류는 웃는다. "있잖아. 네가 여자였으면..."

"여자였으면?"

"..."

"..."

웃음이 가시고 무표정이다. 돌아올 대답을 기다리다가 별안간 오싹한 기분이 들어 누워있던 몸을 일으킨다. 키류의 손이 아랫배에서 흘러내린다. "어디가?" 조금 뜸들여 대답한다. "...화장실."

 

#3

 

"있잖아 키류."

"아아."

"죽음의 댄스라는거. 무슨 뜻이지?"

키류의 손에 들려있던 하모니카가 땅에 떨어졌다.

"죽음의 댄스?"

"죽음의 댄스."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는데."

"네가 다크시그너일때..."

키류는 유성의 말을 자르고 끼어든다.

"기억났어."

"그래."

"... ..."

"무슨 뜻이야?"

"그건...뭐...그냥..."

"그냥?"

"분위기를 타서 한 말이랄까."

"그런건가."

"실재로 죽은 상태였고."

"..."

"..."

 

#4

 

"후도 유세이, 맞나?"

목소리를 들은 남자가 자동차 밑에서 얼굴을 내밀었다. 얼굴에는 거뭇하게 기름기가 묻어있었고 머리카락은 삐죽삐죽했다. 마커 하나 없는 얼굴은 무척 앳되어보였다. 자신과 비슷한 또래거나 더 어렸을 것이다. "기계는 다 고쳐준다고 해서 왔는데." 그는 자동차 정비용 롤러에서 몸을 일으켜 차고 왼편의 작은 의자를 턱짓했다. 앉으라는 뜻인 것 같았다.

"듀얼디스크 문제인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가방에 넣어 온 것을 꺼내 보여주니 그는 능숙하게 접합부를 열고 기판을 살폈다. 그는 순식간에 수리에 집중했고 나는 달리 할 것도 없어 그것을 관찰하고 있었다. 그의 허리춤에 달린 카드 다발을 본 것은 그 즈음이었다.

"뭐야. 너도 듀얼리스트냐?"

"그래."

그는 시선은 디스크에 고정한채로 대충 대답했다. 수리는 생각보다 금방 끝났다. 간단한 접촉불량이다 뭐다 그가 설명했지만 나는 그것을 일축하고 곧바로 그에게 제안했다. "듀얼 한 판 하지."

 

나름 실력에는 자신이 있었는데 철저히 지고 말았다. 듀얼디스크 없이 간략하게 행한 듀얼이었지만 후도 유세이라는 인간을 엿보는 데에는 충분했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가 카드를 정리하고 나를 마중하려고 할때 나는 말했다. "나는 키류 쿄스케다. 너한테 제안할게 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