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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만으로 알 수 없는 것

Summary:

역전의 백귀야행 직후 시점. 부하 직원들의 재판에 수감자 검사가 등장한 걸 보고, 나루호도가 미츠루기와 나누는 대화. 역재 5 스포일러

Work Text:

배지를 다시 달자마자 나루호도가 찾아간 곳은 법정 기록 보관소였다.
목적했던 재판 기록을 뽑아 한창 뒤적이고 있을 때 예상했던 인기척이 다가왔다.
“여기서 보는 것은 오랜만이군.”
미츠루기의 목소리를 듣고 나루호도는 활짝 웃으며 돌아섰다.
“그래. 그렇게 오랜만인데 좀 더 기뻐하는 티를 내 주면 안 돼?”
다시 친구가 되고 쌓였던 오해를 풀고 서로 신뢰하는 협력자가 된 지도 오래인데 하여간 발전이 없다. 그 미간 좀 펴라고 잔소리를 하려는데 미츠루기가 먼저 나루호도의 손에 들린 서류를 눈짓했다.
“축하 인사나 하기엔 지금 너무 심각한 안건을 보고 있지 않나.”
“역시 너도 이걸 봤구나.”
나루호도는 UR-1 사건이라고 새겨진 부분을 짚었다.
“안 그래도 신경 쓰였어. 7년 전 사건인데 옆의 다른 파일들과 달리 먼지 하나 없이 깨끗하더라.”
“그래. 내가 꺼내봤다.”
미츠루기가 선뜻 인정하는 걸 보고 나루호도는 눈을 가늘게 떴다.
“그럼 이야기가 빠르겠네. 유가미 검사를 일부러 지명해서 검사석에 다시 세운 게 너라고 들었어. 사실이야?”
“그래.”
미츠루기가 고개를 돌렸다.
“여기서 설명하기는 긴 이야기군. 내 방에서 이야기하지.”

 

“짐작했겠지만, 다른 윗선의 회유나 강압 같은 건 없었어. 내 독단이었다.”
사실은 짐작 못 했다. 그래도 나루호도는 습관적으로 놀라지 않은 척 하며 소파에 마주보고 앉았다.
“검사가 부족해져서, 개혁에 믿을 만한 사람이 없어서만은 아니야.”
“그럼?”
UR-1 사건에 대해 나루호도가 아는 바는 많지 않았다. 법조계가 발칵 뒤집힌 사건이었지만, 그가 나서서 조사하기엔 시기가 너무 나빴다.
전도유망하던 젊은 검사가 스승을 난도질한 사건은 무고한 피해자들의 마지막 방패라 불리던 유명 변호사의 몰락과 나란히 다루기 아주 좋은 소재가 되었다. 신문이건 잡지건, 그 당시 나루호도는 제대로 손대기도 힘들었다. 그럴 시간에 갑자기 입양한 딸과의 관계를 다지는 편이 훨씬 중요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결국 나루호도가 아는 것은 방금 기록보관소에서 한 번 훑어본 게 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알지 모르겠는데, 7년 전 유가미 진이 쓴 혐의는 키즈키 마리 살해만이 아니었다.”
“그래. 월석 절도 혐의도 있더라.”
내친김이었다. 나루호도는 기록만으로 알 수 없었던 것들을 미츠루기에게 묻기로 했다.
“살인은 확실하게 유죄 판결이 났는데, 월석 건은 증거불충분으로 흐지부지 된 거야? 기소 이후로는 아예 기록이 없더라?”
“단순 절도가 아니었으니까. 월석은 그 전부터 국제 스파이가 노린다는 첩보가 있었거든.”
“그럼......”
유가미 검사가 스파이였냐고 묻기도 전에 미츠루기가 말을 이었다.
“증거불충분으로 미결이란 표현도 틀리지는 않아. 월석은 끝내 어디서도 발견되지 않았으니까. 유가미 검사가 곧바로 다른 장소에 숨겼거나 배후에게 넘겼을 가능성, 유가미 카구야가 공범일 가능성까지 전부 철저히 수사했지만 성과가 없었어.”
그리고 잠시 망설이는 듯 뜸을 들이다가 덧붙였다.
“지금 보기에는, 처음부터 유가미 검사 주변만 주목한 것이 진범의 함정에 빠져서 한 실수 같아. 당시 스페이스 센터에 가해졌던 테러 중 가장 위험한 건들이 그가 체포된 이후에 발생한 것들이기도 하고, 유가미 검사도 월석과 스파이 활동에 대해선 끝까지 잡아뗐어. 자기는 모르는 일이라고.”
나루호도는 조금 전 기록 보관소에서 읽은 유가미 검사의 진술서를 떠올렸다. 결정적인 증거가 나왔다고는 해도, 그는 살인 혐의는 쉽게 인정했고 자백을 철회하려는 시도도 하지 않았다.
“스파이 혐의에 대한 기록은 다른 곳에 있어. 너는 직접 열람할 수 없는 곳이지.”
“그렇겠지.”
나루호도는 다시 자신이 기억하는 7년 전을 떠올렸다.
살인사건과 별개로 우주선 발사는 성공했으나 곧 온갖 문제가 터졌다. 관제센터 테러, 우주선 고장, 반복되는 궤도 이탈 위기...... 평범하게 우주선을 좋아하는 소녀 미누키는 뉴스 시간마다 TV 앞을 떠나지 못했다.
살인과 방화와 함께 시작된 우주 계획이 결국 실패하는 것도 당연하다는 비관론이 들끓었다. 그러나 조종사의 투혼과 센터 직원들의 헌신으로 모든 임무를 완수한 다음 무사 귀환하는 것까지 성공했다.
영화 같은 반전에 여론이 뒤집히는 것은 순식간이었고, 진짜 영화까지 나왔다. 그 영화를 미누키와 함께 보러 가면서 나루호도도 딸에게 적응하고 아이를 기쁘게 해주는 보람을 느낄 수 있었다.
“스파이 문제가 전혀 해결되지 않았는데 그런 식으로 덮었군. 사람들이 성공적인 결과에만 주목하게 해서.”
“스파이 수사는 원래 공개적으로 하는 게 아니야.”
미츠루기가 건조하게 받아쳤다.
“지금은 당시 관련자들도 현실을 받아들였다. 월석을 훔치고 테러를 가한 스파이는 따로 있고 여전히 정체를 감춘 채 활동중이라고. 그런 일이 있었는데도 유가미 카구야가 계속 센터에서 일할 수 있는 것도 그 덕분이지.”
수사기록에 따르면 키즈키 마리 피살 당시 유가미 카구야는 다른 직원들과 작업중이었다는 완벽한 알리바이가 있었다. 키즈키 팀장과 무척 사이가 좋았다는 주변의 증언도 있었다.
동생이 살인범에 스파이 혐의까지 쓰지만 않았어도 피해자 대우를 받았어야 마땅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유가미 진의 사형집행일이 확정되었다.”
“......뭐라고?”
나루호도는 잠시 두 눈만 껌벅거렸다.
“왜 결론이 그렇게 되는 거야?”
“그가 스파이였다면, 월석을 찾기도 전에 그 행방을 아는 유일한 인물을 죽여버릴 수는 없어. 하지만 진범이 따로 있고 스파이 활동과는 아무 연관도 없었으니, 명백히 밝혀진 죄의 대가를 치르게 하는 이상 국가는 그에게 더 볼일이 없는 거지. 올해 안에 집행될 거다.”
지은 죄가 처음 예상보다 더 적다는 이유로 죽음이 앞당겨지다니 아이러니했다. 물론 살인은 그것만으로 충분히 중범죄지만......
“스페이스 센터에서 다음 우주선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 아나?”
“몰랐어.”
나루호도가 되물었다.
“지난 테러를 저지른 스파이가 잡히지도 않았는데 또? 너무 위험하잖아?”
“지난 탐사의 연장선인 데다, 센터의 존립 여부와 그보다 더한 사정들이 걸린 문제라 미룰 수 없다더군. 우주 개발은 정부 여러 부처와 엮여 있으니까. 그래서 차라리 스파이를 도발해 꾀어내기로 한 거다.”
미츠루기의 미간 주름은 펴지지 않았다.
“집중적으로 공격했음에도 성공한 우주 계획의 후속 계획. 거기에 첫 사건으로 체포되었던 검사가 다시 법정에 서기까지 하면 스파이도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건가 궁금해서라도 움직일 수밖에 없지.”
“미츠루기.”
이제는 나루호도의 미간에도 주름이 패였다.
“그 말은, 유가미 검사가 미끼라는 뜻이야?”
“본인은 동의했어. 죽기 전에 스파이를 꼭 잡고 싶다더군. 반 형사에게도, 그의 임무엔 유가미 진을 감시하는 것뿐만 아니라 보호하는 것까지 포함된다고 말해뒀고.”
반 형사라면 대상이 사형수라는 이유로 보호 임무를 소홀히 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그래도 나루호도는 어딘가 석연치 않은 기분을 누를 수 없었다.
보관소의 기록을 읽으면서 생긴 의문점 몇 가지는 해소되었고, 대신 다른 몇 가지가 생겨났다.
그가 침묵하는 동안 이번엔 미츠루기가 질문했다.
“왜, 부하 직원들이 그에 대해 네게 묻던가? 알아봐 달라고?”
“아니.”
거짓말이 아니었다. 나루호도 자신 키즈키 코코네가 아무 것도 묻지 않아서 의아하고 서운했다.
외국에서 처음 만났을 때 키즈키의 청력과 심리학적 재능이 법정에서도 유용할 거라고 조언한 건 그리 깊이 생각해서 한 말이 아니었다. 만약 법정 공포증이 있는 줄 알았다면 하지 않았을, 그 정도의 말이었다.
그런데 키즈키는 정말로 법 공부를 시작하더니 월반을 거듭해 초고속으로 배지를 따냈다.
법정 공포증으로 모의법정 실습을 망쳤을 때도 포기하지 않는 걸 보고 왜 그렇게까지 변호사가 되고 싶으냐고 물었다.
‘구해야 할 사람이 있어요. 저 아니면 구할 사람이 없어요.’
그 자리에서 좀 더 자세히 물어봤어야 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절박한 만큼 함부로 건드려선 안 된다는 느낌이 들었다.
법정 공포증이 있는 풋내기 변호사. 나루호도 만능 사무소가 아닌 다른 일자리를 찾을 수는 없을 것이다. 나루호도가 당장 할 수 있는 최선의 조력은 키즈키를 고용해 데려오는 것뿐이었다.
“그냥 사건이 힘들었다는 불평만 들었어. 더 이것저것 물어봐 줬으면 했는데...... 그래서 이건, 그애들이 아니라 내가 궁금해서 하는 질문이야.”
마침내 나루호도는 유가미 진의 판결문에서 가장 마음에 걸렸던 것을 물었다.
“그의 동기가 무엇인지는 끝내 밝혀내지 못한 거야? 본인이 입을 다물었다는 이유만으로?”
“그게 중요한가?”
“살인사건인데 당연히 중요하지? 원한이나 이해관계 충돌이었다면 후속 수사에서 다 밝혀졌을 거야. 월석 찾겠다고 가족까지 전부 뒤집어 엎고 털었다면서? 국제 스파이가 아닌지 검증했으니 숨겨진 과거 같은 게 있어도 다 드러났겠지. 신문에서 떠들었던 것처럼 사이코패스 냉혈 살인마였다고 해도, 그런 성향을 드러내는 다른 징후 같은 건 있었을 거야. 동물학대나, 폭력성이나......”
“냉혈 살인마라 해도 동물이나 무해한 존재 상대로 일시적인 애착을 보이는 경우는 있어. 멸시의 다른 형태지.”
미츠루기가 딱 잘라 대답했다.
“방청석에서 유가미 검사가 어떤 성미인지 다 봤잖아? 궁지에 몰렸다고 짓지도 않은 죄를 덥석 자백해버릴 만큼 심지 약한 사람 같던가?”
이번엔 나루호도도 대답하지 못했다.
“불리한 증거나 수사관의 강압 때문에 기가 꺾여서 거짓 자백을 하는 용의자라면 나도 자주 봤어. 그런 사람들은 대개 진술이 일관적이지 않고 자백을 철회하려 들거나 겁에 질린 태도를 보이지. UR-1 사건 수사과정에 그런 강압이 없었다는 건 내가 직접 확인했어. 유가미 검사는 어떠한 강압이나 조작 없이 자신의 의지로 자백했고, 재판 내내 일관되고 차분한 태도를 유지했어. 이번에 검사석에 다시 서라는 제안을 했을 때도, 스파이를 잡겠다는 의욕은 보이면서도 그걸 자신의 구명 수단으로 삼으려는 낌새는 조금도 보이지 않더군. 감형이나 재심 같은 걸 조건으로 걸 수도 있었는데. 그의 살인죄에 의문이 들어서 이러는 거라면, 이번만큼은 너라고 해도 그를 무죄로 만들 수는 없다고 말해주지.”
마침내 나루호도는 이 석연치 않은 기분의 정체를 알아냈다. 얼핏 냉담하게 들리는 저 말들은, 유죄 뒤집기의 명수인 친구 이전에 미츠루기 자신을 납득시키려는 말들이었다.
자신의 확대해석만은 아닐 것이다. 만약 유가미 검사가 정말 키즈키 마리 살해범이라면, 이번에 키즈키 코코네 변호사는 어머니의 원수를 마주했다는 뜻이 된다.
‘키즈키 변호사의 태도가 그랬었나?’
마침내 나루호도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 너도 다 생각이 있어서 한 일이니, 사형수가 검사 직무를 수행하는 것쯤은 이해해 달라는 거지? 그러는 김에 스파이 색출도 돕고?”
“내 일까지 도와달라는 말은 아니었는데.”
“우리 사이에 조금은 솔직해지자. 그런 생각이 전혀 없어서 스파이 수사 같은 기밀을 여기까지 털어놔 줬다고?”
“키즈키 코코네의 사무소 소장으로서 알아둬야 하는 이야기라고 생각했을 뿐이다.”
“그래, 덕분에 키즈키 변호사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감을 좀 잡았어.”
미츠루기는 여전히 냉정해 보이려고 애쓰는 표정이었다. 그래도 나루호도는 생긋 웃었다.
“일단 키즈키 변호사는 유가미 검사를 지금 처음 만난 것처럼 행동하더라고. 그러니 나도 모르는 척 해줄 거야. 키즈키 변호사가 먼저 솔직하게 말해줄 때까지.”
“아마 쉽게 털어놓지 않을 거다. 아까 재판 기록은 전부 열람했나?”
“아니, 아직. 길어서 나중에 읽으려고 했는데 네가 먼저 와서 말 걸었어.”
미츠루기의 미간 주름이 다시 깊어졌다.
“키즈키 코코네는 당시 열한 살의 나이로 증언대에 서서, 유가미 검사의 무죄를 주장했다. 착란을 일으켜 실려나가는 와중에도 끝까지. 덕분에 가련한 소녀의 마음까지 짓밟은 괴물이라는 이미지가 굳어졌지.”
이번에는 나루호도도 미간 펴라고 잔소리할 수 없었다.
“그래, 정말 다시는 남에게 말하고 싶지 않겠구나.”
잠시 심호흡을 하고 그는 다시 뻔뻔한 변호사의 미소를 지었다.
“내가 할 일은 똑같아. 끝까지 믿어주는 것. 나는 키즈키 변호사를 믿기로 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