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k Text:
이곳, 가방 내부 창문 너머에 사는 해와 달은 모두 제각각이라, 그들이 자신만의 빛을 내며 커튼 너머로 건네는 인사를 제대로 받아주지 못하는 점에 대해 로렐라이는 늘 아쉬워했다. 태양이 변덕스럽게 눈을 깨물려 기회를 노리고, 또 달빛이 로렐라이만이 볼 수 있는 영성의 조수潮水를 슬며시 끌어당기려 하는 것들 모두 로렐라이에게는 애정 어린 장난일 뿐이었다.
독특한 공간의 주인인 버틴에게 왜 저들은 마음대로 돌아다니느냐 물어봐도 명확한 대답이나 ‘모른다’라는 말로 로렐라이는 가방 속의 불규칙한 시간을 이해했다. 태양과 달도 여기에서 살아가는 주민이야, 로렐라이. 아, 그렇구나, 이해했어. 괜히 둘의 대화를 듣던 주변 인물의 머리 위로 물음표가 떠다닌다고 하여도, 로렐라이 또한 버틴의 가방 속에서 늘 환영받는 존재였다.
그런 이유로, 그가 잘 자던 도중, 자신의 침대에서 떨어져 창밖의 태양이 방 안에 남긴 밝은 조각을 보고 버틴을 떠올리는 일은 이상하지 않다. 더구나 침대와 구속복 연결의 조임 강도 또한 가방 안팎으로 달라졌기에, 로렐라이는 침대 밑에 깔린, 넓고 푹신한 쿠션에 그대로 기대어 커튼 사이의 햇빛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다시 눈을 감았다.
아이의 부모는 늘 건너편에서 아침과 밤에 더더욱 사랑을 담아, 구세주의 업을 짊어진 아이에게 인사를 보낸다. 안녕, 엄마. 안녕, 아빠. 그들이 따듯한 온기를 담아 로렐라이 이마에 가볍게 도장을 찍어주는 듯한 입맞춤, 그리고 그 뒤에 구속복의 가죽 벨트를 꽉 조이던 일상은 옛적에 이미 떠내려갔고, 그대로 끝나버렸다. 녹은 물감을 한데 섞었던 오스트리아 빈이 홍수에 떠내려가기도 전에 일어난 일이라 아쉽진 않았다.
로렐라이는 감던 눈을 뜨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신과 함께 바닥에서 굴러다니던 이불을 다시 침대에 곧게 펴둔다. 일상복으로 갈아입고 나가야 하지만, 오늘은 그사이에 누군가를 보러 가면 좋을 것이라는 즉흥적인 바람이 분다. 로렐라이는 잠옷 차림으로 자신의 소라를 챙기고 문밖을 나섰다.
그의 방은 누가 어떤 방에서 지내든, 언제나 찾아갈 수 있었다. 파랑과 노랑, 아주 약간의 빨강을 섞어 만든 색인 짙은 초록의 꼬리가 있는 긴 음표, 안조 날라는 종종 버틴의 문손잡이를 연신 돌려댄 적이 많았다. 로렐라이 자신도 그럴지 모른다. 아, 날라도 노래 부르는 걸 좋아하는데, 어떤 노래를 좋아할까? 다른 생각이 공기 방울처럼 떠오르다가도, 그 앞까지 다가가 손잡이를 돌려 본다.
매끄럽게 문은 방 안쪽으로 들어갔고, 아직 조용히 잠들어 있던 방은 로렐라이를 맞이했다. 다음에도 날라가 밖에서 쩔쩔매고 있을 때, 자신이 이렇게 도와주면 될 것이다. 좋은 해결 방안에 작게 웃은 로렐라이는 맨발이 내는 소리로 방의 주인을 깨우지 않게, 조심스럽게 버틴의 방에 들어가 문을 닫았다.
여기에도 황무지의 태양은 커튼 너머 방 안으로 기웃거리고 있었고, 그 밑에서 버틴은 고양이처럼 몸을 둥그렇게 말아 누워 있었다. 한 줌 크기의 숨이 오르락내리락하며 새벽의 해안가에 밀려드는 파도처럼 그의 몸을 오갔다. 버틴은 아직 자고 있구나. 그리고 그 위에 덮여야 할 이불은 바닥에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조금 전의 자신과 같았다.
아이의 부모는 타인의 방에 마음대로 들어가서는 안 되며, 또 수면을 방해하면 안 된다고 아이에게 일렀지만, 로렐라이의 기억 속에도 눈처럼 먼지가 쌓여갔다. 알고 있으나, 쉽게 털어두지 않고 웃기만 할 뿐이라 부모의 잔소리로 치우면 좋을 테다. 그러지 못해 이불은 자연스레 로렐라이의 품에 한가득 들리곤 커다란 공처럼 돌돌 말려, 곤히 잠들어 있던 소녀의 위로 얹어진다.
버틴은 동시에 꿈속에서 뭉게구름이 뭉쳐져 자신의 위로 떨어지는 꿈을 꿨다. 상황만으로는 사나웠으나, 구름은 보이는 것처럼 푹신했고, 그저 그것이 뭉쳐져 제게로 왔을 뿐이었다. 무겁나? 아무래도 무언가에 눌리긴 했다. 현실과 꿈 사이의 간격이 점차 넓어지자 버틴은 눈을 떴다.
옆으로 누워 자던 몸 위로, 잘 뭉개진 이불이 사방으로 퍼져 다시 자기 몸을 감싸는 상황을 눈만 굴려 멍하니 보다가, 누군가 그렇게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자 버틴은 몸을 돌려 자신의 침대 옆에 서 있는 이를 반쯤 뜬 눈으로 확인했다.
“로렐라이?”
“…바닥에 떨어진 이불을 주워 주려고 했어. 깨우려던 건 아니야, 버틴.”
“알아. 괜찮아.”
떠오르는 태양의 햇살과 다르게 흘러가는 시간 때문에 버틴은 로렐라이에게 잠긴 목소리로 물었다. 지금 몇 시야? 고개가 벽면으로 향한 금발의 소녀는 숫자와 바늘 몇 개를 보고 다시 버틴을 봤다. 5시 20분이야. 타임키퍼가 일어나기에는 이른 새벽이었다. 아마 로렐라이는 떠오르는 햇살만 보고, 시간을 간과한 채 찾아온 것으로 보였다.
버틴은 베개에 얼굴을 묻고 온기로 데워진 포근함에 숨을 크게 한두 번 내쉬었다. 로렐라이가 마저 펼쳐준 이불째로 꿈틀거렸다. 그렇게 침대 가장자리로 움직여 누군가 앉거나 누울 수 있게 공간을 만들고는 로렐라이에게 내어주듯 톡톡 두드렸다. 더 안 자도 돼? 이미 버틴의 눈은 닫힌 상태였다. 로렐라이는 대답 대신 바닥에 잠시 뒀던 자신의 소라를 들고 침대에 걸터앉았다.
“나는 이걸 들려주려고 왔어.”
갑작스러운 방문객을 향해 옆으로 누운 이의 한쪽 귀는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 못해 헝클어진 머리칼이나 포근히 다시 사람을 감싸주는 이불 때문에 온전히 보이지 않았다. 로렐라이는 그 위로 살며시 소라를 가져다 댔다. 이 안에 담긴 소리는 각양각색이고 또 다양했다. 때문에 로렐라이는 종종 누군가와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첫 번째 대상이 버틴인 이유란 특별한 게 아니라, 황무지의 태양에 대해 답해준 존재였기 때문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버틴은 몽롱하게 상대방의 말과, 그가 가져다 대주는 소리에 대해 집중했다. 그러나 잠결은, 소라 속에서 천천히 다가오던 ‘어떤 소리’와 달리 발길이 빨랐다.
“어때, 버틴? 잘 들려?”
“……응.”
그보다 큰 풍랑 같은 숨이 다시 버틴의 몸을 오가기 시작했고, 로렐라이는 그가 이미 잠에 빠져 들었음을 반 박자 늦게 알아차린다. 잘 자는 건 좋은 일이야. 버틴이 편안히 꿈속에 머물기를 바라며, 로렐라이는 소라를 거두었다. 협탁 위에 올려두고 자신도 버틴의 옆에 누웠다.
자자, 로렐라이, 버틴. 햇살도 저 밖에서 우리를 지나칠 거야…. 로렐라이의 의식이나 말도 버틴을 따라 덩달아 흐물흐물해져 함께 졸음 밑으로 가라앉았다. 파도 소리는 여전히 소라 속에서 작게 울려 둘의 꿈속으로 흘러갔다.
로렐라이가 다시 잠에서 깨어났을 때, 버틴은 이미 일과를 시작하러 가서 옆에 보이지 않았다. 끔뻑거리며 잠에서 겨우 빠져나왔지만, 로렐라이는 그 과정 중에 또다시 침대 위에서 떨어졌다. 짧은 꿈에서 부모는 아이에게 조심해야 한다며 다정히 나무랐던 것만 같았고, 일상적인 낙상 덕분에 아직 어지러운 생각과 졸음이 단칼에 잘린다.
통증이 신체의 어딘가를 움켜잡든, 상처가 생기고 피가 흐르는지 확인하는 습관 덕분에 로렐라이는 금세 바닥에서 일어났다. 다행히 자기 몸에는 피 한 방울 보이지 않았다. 덕분에 저녁에 돌아올 제멜바이스에게 얹힐 걱정이 한 스푼 사라진다. 조심하지 않으면 잘 때 널 묶는 수밖에 없어, 로렐라이. 그렇게 말하며 삐죽하게 바깥으로 뻗친 대각선이 된 제멜바이스의 눈썹을 쉽게 상상한다. 난 괜찮아, 제멜바이스. 그렇게 말해줘야겠다며, 로렐라이는 조금 빌려 쓴 버틴의 침대 자리를 정리하고 방에서 나온다.
작은악절이 한 차례 지나, 뒤늦게 아침 식사를 하는 이들이 주방에 삼삼오오 모였다. 로렐라이도 그 사이에서 식기와 접시를 수에 맞춰 꺼내 두고 음식을 먹을 만큼 담았다. 먹을 때는 먹을 수 있을 만큼만. 바니바니의 간단한 식사 규칙에 따랐다. 그렇게 끼니를 채우기 전, 두 손을 모아 드리는 기도는 늘 신이 아니라 무엇 하나 구분 없이 모든 사람을 향해야 한다는 부모의 가르침도 기억해 낸다.
모든 작은 음표가 싸우지 않고, 서로 하나 되어 사랑하는 날이 오기를 바라. 로렐라이가 눈을 감고 작게 흥얼거리며 그들을 위한 노래를 부르고 있을 때,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로렐라이 씨, 그…팔꿈치 괜찮으세요?”
“응?”
어린 교인의 집중이 흐트러지고, 로렐라이는 식탁 건너편에 앉아 있는 이를 향해 고개 들었다. 마커스는 로렐라이가 확인할 수 있도록 이어서 말했다. 오른쪽, 오른쪽 팔꿈치요. 네, 거기에 멍들어 있어서…. 마커스는 늘 무언가를 읽고, 읽은 글자를 상자에 차곡차곡 잘 쌓아두는 음표였다. 그가 가리키는 부분을, 팔을 이리저리 돌려 본다. 푸릇하게 퍼진 동그라미와 눈이 마주치자, 로렐라이는 고개를 끄덕인다.
“아, 이거 말이구나. 괜찮아, 피가 나오진 않아서.”
“어쩌다가 다치셨어요?”
“자다가 침대에서 떨어졌어. 두 번.”
횟수에 조금 더 놀라 상대방의 낯빛에 걱정과 곤란함이 묻는다. 마커스는 종종 로렐라이를 읽을 때, 잔상처나 흉터가 많아 그사이에 하나가 더 늘어나지 않기를 바랐다. 아침을 먹으러 온 또 다른 누군가가 둘의 대화를 듣고 가까이 다가왔다. 쟁반을 잠시 내려두고, 다친 소녀의 팔을 조심스레 잡고 말한다.
“다쳤어요? 어디 한번 봐봐요, 로렐라이 동지.”
빌라의 말에 순순히 멍든 팔을 보이고, 큰 걱정은 하지 말라는 듯 빌라도 마커스와 로렐라이에게 웃어 보였다. 멍에 잘 듣는 연고가 있으니, 식사 후에 투스 페어리를 찾아가라는 말을 하곤 다시 로렐라이의 접시 옆에 팔을 내려 둔다. 그보다도, 연장자의 눈에 들어온 소녀의 식사량이 나이에 비해 현저히 적었다. 물론 빌라도 로렐라이가 어떤 마도학자인지 알고 있다. 나눔과 인내, 겸손이 몸에 밴 건 공동체 일원으로서 좋은 가짐이라지만, 한참 자라나는 시기의 그런 무조건적인 태도는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었다. 안 그래도 건강 검진 결과가 ‘영양 부족’ 판정을 아슬아슬하게 피해 갔다는 사실을 알기에, 빌라는 다른 말을 꺼내며 제 몫의 일부를 로렐라이의 접시 위로 덜어냈다.
“나에게 그렇게 나눠주지 않아도 돼. 난 이 양으로도 충분한걸.”
“그러고 보니, 저번에 아브구스트나 다른 아이들에게 어떤 노래를 좋아하는지 물어봤었죠? 그때 저는 재단에 가 있어서, 나중에 듣게 됐거든요. 제가 좋아하는 노래를 알려드릴 테니, 더 드세요. 그래야 노래 배울 힘이 나지 않겠어요?”
“오…그렇구나. 이해했어.”
나눔이 오가는 아침 식사 자리에 화제는 노래 수집으로 흘러갔고, 마커스 자신도 그것을 로렐라이에게 건네주려 했다. 퍼뜩이며 손에 금방 잡히는 것은 제목이 붙여진 음률 대신 활자가 대다수였고, 마커스는 자신의 머릿속 더 안쪽에 있는 ‘가장 좋아하는 노래’를 찾으려 더 깊게 팔을 뻗었다. 본능에 가까운 의문이 무의식을 따랐다. 그런데 로렐라이 씨가 말하는 노래의 범위나 기준이 뭐지? 급히 읽었던 책이나 신문, 잡지 등 종이 인쇄물에서 접했던 음악을 손에 잡히는 대로 머릿속으로 끄집어냈다. 그중에서 로렐라이라는 인물까지 함께 뒤섞여 마커스가 파둔 생각의 구덩이 너머 입 밖으로 튀어나온다.
“그, 옛날에는 민요나 행진곡 등을 개사해서 찬송가로도 쓰이기도 했대요. 그리고 민요도 멜로디나 가사가 지역마다 조금씩 달라지기도 하고, 또….”
빵을 먹던 도중에 세세한 지식을 늘어놓는 마커스의 말에 빌라도 흥미롭다는 듯 천천히 식사하며 귀를 기울이다가 말했다. 자신이 태어났던 곳에서는 땅 위와 물 밑에 퍼진 멜로디가 비슷하다면서도 달랐고, 또 고향 같은 어떤 마을에서는 각자 알던 노래가 모여 새로운 노래를 만들었다는 추억이 독자 의견이 담긴 엽서처럼 마커스에게 되돌아갔다.
“그래서, 제가 제일 좋아하는 노래는요….”
마커스는 고민을 끝내고 짧게 답했다. 좀 더 생각해 보고, 알려드릴게요. 로렐라이는 짧은 시간을 두고 길을 잘못 들은 사람처럼 부끄러워하는 마커스에게 빙그레 웃었다. 맞은편 자리에 앉은 마커스에게도, 자신의 옆에 앉은 빌라한테서도 겹치지 않는 음이 들리지만, 어우러져 화음을 이뤘다.
이들이 뿜어내는 소리도 소라껍데기에 잘 담겼는지 확인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로렐라이가 자신의 옷에 매단 소라에게 정신을 빼앗기자, 빌라는 가볍게 기침으로 누군가를 다시 제정신으로 내려놓고 말했다. 우선 아침 식사를 마저 하세요, 로렐라이 동지. 마커스도 다시 먹던 빵에 열중하기 시작했다.
종종 로렐라이는 버틴의 가방 밖으로 안내되어 하얗고 각진 건물 안에서, 가방에서 지내기 위해 반드시 알아야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곳에서 교육의 연장선으로 숙제를 냈고, 로렐라이가 보기에는 기준과 형식이 명확한 나머지 악보에서 벗어나 그 속에서는 어떤 소리나 노래를 듣기 어려웠다. 이해하기 어려운 설명보다도, 글자가 한 줄로 서서 만들어진 문장에는, 가장 중요한 ‘사랑’이 보이지 않았다. 나눔이나 믿음, 희망과도 거리가 멀었다.
재단의 교사는 로렐라이의 그런 의문에 대답 대신 문제를 더 강조했다. 정해진 기간 내로 과제를 풀어오고, 또 그 범위에 해당하는 시험을 치셔야 합니다. 그렇게 받아 온 종이 뭉치를 보고 고개를 갸웃거리는 존재가 로렐라이뿐만 있는 건 아니었다.
파투투도 제1 방어선 학교에서 내어준 마도학자 표준 과제를 읽고, 로렐라이처럼 옆으로 고개를 까딱였다. 바다 밑으로 가라앉은 섬 출신의 소녀도 낯설기는 매한가지였다. 누쿠타이오의 바깥, 악의로 가득 찬 곳이라고 생각했던 과거의 자신이라면, 문장 하나 하나를 의심했을 것이다. 프리브리즈 호에 승선한 이후 일어난 일들을 겪고, 또 가방 안에서 선박 무역 축제를 무사히 개최한 자신은 이제 ‘바깥’을 조금 더 이해할 수 있게 됐다.
더더욱 자신이 몸담은 이 ‘바깥’의 가르침을 이해하기 위해, 파투투는 그 종이 뭉치를 분주히 읽어 나갔다. 그러나 그들의 가르침 속의 주체는 자연이 아니었고, 또 찾아오는 손님과도 연관이 없어 더더욱 글자와 자신만 멀뚱히 종이 위에 남겨진 것만 같았다.
파투투의 한숨 소리가 자연스럽게 로렐라이에게도 들려오고, 재단 기준에서 무지한 마도학자로 분류된 두 소녀는 서로를 바라봤다. 숙제 모임은 오늘도 정해진 분량을 채우기 어려워 보였다.
“역시 재단 사람들이 내준 숙제는 어렵네요…차라리 카누 타기나, 나침반 등불 만들기 같은 거였으면 좋겠어요.”
누쿠타이오의 방식대로라면, 그 모든 활동에 점수나 기준 같은 건 일절 없이, 모두가 함께 즐기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로렐라이도 재단이 내주는 과제 대신, 함께 배우면 좋을 것들을 떠올렸다.
“난 모두가 서로에 대해 더 알아가고, 사랑할 수 있도록 이야기를 나누고, 기도했으면 해.”
“노래는요?”
저는 로렐라이 씨가 노래를 같이 부르자고 할 줄 알았어요. 당연히 재단의 학습을 다른 것으로 바꾼다면, 파투투는 로렐라이가 ‘각자 좋아하는 노래를 배우자’라고 생각했다. 로렐라이는 파투투의 또 다른 질문에 싱긋 웃었다.
“노래는 내가 모두에게 불러주고 싶어.”
“만약 그때가 온다면, 같이 불러도 될까요? 누쿠타이오에서는 늘 같이 불렀거든요. 아, 물론, 로렐라이 씨가 괜찮으시다면….”
그럼! 구름 하나 없는 듯한 대답에 파투투도 그처럼 환히 웃었다. 어느새 과제와 펜은 두 마도학자의 손에서 멀찍이 떨어졌고, 이야기의 주제는 파도에 흔들리는 서프보드처럼 이리저리 옮겨 다녔다. 그러고 보니, 저번에 제가 알려드린 누쿠타이오 노래는 어떠셨어요? 한 번만 듣고 기억하거나 따라 하기엔 낯선 문화의 노래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파투투는 시작 곡조 몇 마디를 흥얼거렸다. 그러자 로렐라이도 어떤 노래인지 곧바로 알아듣고 파투투의 선창을 따라했다. 낯선 곳의 노래는 자신이 부르기에 어설프더라도, 노래 속에 담긴 흥겨움은 다른 노래와 다르지 않았다.
“정말 파도 소리가 무척 선명한 노래야. 돛에 부딪히는 바람 소리도 들려서 좋아. 혹시 다른 노래도 알려줄 수 있어?”
“되고 말고요! 저번에 알려드린 노래는 누쿠타이오 사람들이 배를 타고 항해할 때 부르는 노래예요. 어디로 가고 또 어떻게 가야 하는지 알려주는 노래죠. 그것 말고도 손님을 환영하는 노래라든가, 선상 무역 축제에서 부르는 노래도 있고….”
순식간에 새로운 노래를 배우는 현장으로 변한다. 누군가가 그들이 놓친 학업의 시간을 바로 잡고, 또 버틴의 부탁에 도와주러 걸음을 내디뎠다. 흠흠. 여러분… 정중한 표현과 인기척에 파투투와 로렐라이는 자신들 뒤에 서 있던 소네트를 향해 돌아봤다.
“말씀 나누시는데 끼어들어서 죄송해요. 타임키퍼께서 여러분들이 제1 방어선 학교의 과제에 어려움이 있어 보이면 도우라고 하셨거든요. 다 하셨을까요?”
“음….”
하나도 못 했어. 주눅임 하나 없는 가뿐한 로렐라이의 말에 소네트는 고개를 끄덕이고, 다른 책상의 의자를 끌어와 그들 앞에 앉았다. 노래는 잠시 미뤄둬도 될까요? 피할 수 없는 순간이 왔음을 받아들인 파투투는 다시 펜을 집어 들었지만, 로렐라이는 소네트에게 질문으로 대답했다.
“소네트는 어떤 노래를 제일 좋아해?”
“네? 저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노래…. 어….”
순간 당황하여 생각에 빠진 소네트를, 두 사람은 가만히 바라보며 대답을 기다렸다. 소네트는 멋쩍게 웃고 고개를 저었다. 죄송해요, 저한테는 아직 제일 좋아하는 노래가 없는 것 같아요. 당장 생각나는 노래란, 제1 방어선 학교의 교가와 그 교가의 가사를 비틀어 불렀던 어떤 노래뿐이었고, 그 둘 다 가장 좋아하는 것이 되지 못했다.
마커스처럼 대답을 유예한 것과 달리, 확실히 ‘없다’라는 대답에 로렐라이는 ‘오’하고 가볍게 놀라며 양손으로 턱을 괴곤 웃었다.
“괜찮아. 제일 좋아하는 노래는 지금부터 알아가면 돼.”
“맞아요! 음…레굴루스가 가진 록 노래를 들어보면 또 생각이 달라질 거예요.”
“…지금요?”
과제보다도 더 중요한 상황이라는 듯이 로렐라이와 파투투가 고개를 끄덕였다. 발랄한 음으로 이뤄진 급류에 소네트도 함께 출렁거렸다.
혼혈 루살카 교사가 사랑하는 어느 북쪽 마을의 노래를 배우고, 또 그 과정에서 못다 한 과제를 하거나 처음 보는 거주민을 만나 인사를 나누다 보면, 해와 달은 번갈아 가면서 한 번씩 창문 밖에서 로렐라이와 그의 친구들을 들여다봤다.
오후 4시 정각을 알리는 종소리가 뎅뎅 울리자 레굴루스는 창문 밖에서 떠오르는 태양에 질린다는 듯 한숨을 푹 내쉬었다. 원래도 반쯤 눕듯이 앉아 있던 소파에 더더욱 녹은 치즈처럼 늘어져 중얼거린다. 언젠가 저 뒤죽박죽인 햇빛 때문에 불면증 생길 거야….
선글라스가 붉게 타오르는 햇빛에 반사되었고, 로렐라이는 레굴루스처럼 조금 더 등받이에서 내려와 눕듯이 앉았다. 소파 앞의 티 테이블 위에 꽃 한 송이가 어울리는 라디오에서 ‘미래의 록’이라 볼 수 있는 퀸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레굴루스의 ‘가장 좋아하는 노래’는 번복과 선정을 거듭하여 고착 상태에 이르렀고, 결국 ‘모든 록은 제일 좋다’는 답을 로렐라이에게 건넨 것이었다.
이것이 현실인지, 아니면 단순한 환상인지 물으며 시작되는 노래에 레굴루스는 고개를 까딱거렸다.
“하, 이 곡 진짜 최고야. 록 ‘여왕’의 영혼을 입혀둔 게 분명하다니까. 어때 로렐라이, 너도 좀 록을 이해했으려나?”
대화에 알맞게 미스 라디오는 음량을 1단계 낮췄다. 스피커에서 흐르는 노래는 여러 번 다른 분위기로 전환되고 총 6분에 가까운 노래였고, 음에 맞춰 작게 흔들거렸다. 조금 풀어진 붕대의 끝도 함께 리듬을 탔다. 1910년대 출신인 그가 ‘록’이라는 노래를 이해하는데 시간이 걸릴 줄 알았으나 로렐라이는 음악, 노래라면 아무런 편견 없이 받아들이고 즐길 줄 아는 마도학자였다.
“이 작은 음표들은 독특해, 레굴루스. 통통 튀다가도 갑자기 걷고, 또 달리다가 멈추지. 정말 바람처럼 여기저기 날아다니는구나!”
“하하! 제법이야, 로렐라이. 너 은근히 로커에도 재질 있다니까? 나랑 밴드 할 생각 없어?”
레굴루스는 손가락을 튕기며 키득거리며 즉석에서 밴드를 결성하고 바로 멤버를 영입하려 손을 내밀었지만, 누군가가 그림자처럼 불쑥 나타나 미스 라디오의 음량을 확 내리며 막았다.
“악덕 음반사 같은 짓 하지 마세요.”
“아―야.”
“안녕하세요, 제멜바이스 씨. 좋은 오후입니다. 원하시는 채널로 바꿔 드릴까요?”
아뇨, 괜찮습니다. 제멜바이스는 미스 라디오의 권유를 거절하곤 로렐라이의 옆에 앉았다. 이제 똑바로 앉는 게 어때, 로렐라이. 걱정인지 잔소리인지 분간할 수 없는 말에 레굴루스는 재미없다는 듯 미스 라디오를 옆구리에 끼고 다른 곳으로 뭉그적거리며 걸어갔다. 제멜바이스가 로렐라이 옆에 앉는다는 뜻은 그 외의 인물들에게 볼일 없으니 적당히 다른 데로 가라는 뜻이기도 했다.
생각 있으면 연락해~ 레굴루스가 둘을 향해 뒤를 돌아, 손 전화기 제스처로 귀에 갖다 대는 것을 끝으로 오늘의 ‘록 듣기’가 끝나자, 로렐라이는 자신을 찾아온 이를 향해 물었다.
“그래서, 이제 알려줄 수 있어?”
“여러 번 말했지만, 앞뒤 다 잘라낸 채로 말하면 바로 알 수가 없어, 로렐라이.”
“너하고 벨라가 제일 좋아하는 노래 말이야.”
“….”
아, 그거? 벨라는 자연스럽게 로렐라이의 남은 한쪽에 앉아, 달처럼 하얀 머리칼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제멜바이스는 벨라를 흘겨보고 다시 로렐라이에게 집중하며 말했다. 그게 그렇게나 중요해, 로렐라이? 벨라는 바로 끼어들었다. 당연히 중요하고말고. 네가 겁쟁이라서 말을 못 할 뿐이지.
로렐라이는 자신의 옆을 정확히 노려보는 제멜바이스의 손등을 말없이 잡고 고개를 저었다. 자기 자신과 싸우지 말라는 다그침과 자신이 던지는 비웃음이 합쳐져 결국 솔직한 대답이 튀어나온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노래는…하나가 아니야.”
“여러 곡일 수도 있지. 레굴루스도 그랬던걸?”
“………네가 부르는 노래면 다 돼. 그거면 다 좋다고. 됐어?”
황무지의 거주민 중에서 제일 먼저 로렐라이의 질문을 듣고 또 여태껏 대답 못 한 존재는 곧바로 한숨을 내쉬고 고개를 홱 돌려 급히 딴 곳을 바라봤다. 꼭 고백처럼 화끈하네, 제멜바이스. 벨라는 한 번 더 제멜바이스를 말로 쿡 찔렀지만, 그 대답 하나만큼은 진실했으므로 만족했다는 듯 바람처럼 잠시 사라진다.
“그럼 내가 늘 너에게 새로운 노래를 불러줄게, 제멜바이스.”
부르는 이름 때문에 더더욱 붉어진 상대방의 뺨 따위는 신경 쓰지 않고, 로렐라이는 그저 제멜바이스에게 따뜻하게 웃어주었다. 그럴 필요 없다는 대답은 우물쭈물하며 제멜바이스의 입안에서 나오지 못했다. 그저 고맙다는 말이 다른 불필요한 감정을 대신했다.
버틴은 때마침 시계 속의 숫자와 황무지의 조도가 알맞게 돌아가는 늦은 밤에 자신의 가방 속으로 돌아왔다. 자명종과 함께 시작되는 일과 전에, 머릿속이 좀 더 가물가물한 새벽에 로렐라이를 마주한 날이었다. 그 뒤로는 침대 자리 일부를 나눠준 걸 끝으로 서둘러 타임키퍼의 하루를 보냈기 때문에, 다시 한번 자신의 방으로 찾아온 로렐라이가 낯설지 않다. 노크 없이 문을 바로 열었던 처음과 달리, 정확히 두 번 두드려진 뒤에 문이 열린다.
“안녕, 버틴. 들어가도 될까?”
엄마 아빠가 확실히 허락받으라고 했거든. 부모가 아이에게 강조한 덕분이었다. 그래, 괜찮아. 들어와. 방의 주인이 직접 맞이하지 않아도 가볍고 차분한 말이 로렐라이에게 돌아갔고, 새벽의 같은 차림새의 두 사람이 나란히 침대에 걸터앉았다.
로렐라이는 버틴에게 고개를 불쑥 내밀었다. 버틴, 넌 정말 바쁜 하루를 보내는구나! 재방문의 이유는 이전 방문과 연관이 있으면서도 달랐다. 이번에도 소라 껍데기의 소리를 들려주러 온 거야? 버틴의 추측으로 그제야 존재를 인식했다는 듯, 로렐라이는 자신의 잠옷에 소라 껍데기를 단단히 잡고 있던 물빛 리본을 풀었다. 잠시 자신의 귀에다 대다가, 금방 떼곤 상대방에게 건넸다.
가볍고 단단한 누군가의 소중한 물건이 상대방 손에 들린다. 버틴은 곧바로 밀려온 새벽의 졸음 때문에 로렐라이가 들려준 것을 정확히 듣지 못했고, 들었다고 한들 꿈속으로 희미하게 흩어져버렸음을 말해야 했다.
“로렐라이, 사실 오늘 네 소라에서 어떤 소리가 났는지 제대로 기억나지 않아. 미안해.”
“아, 그랬구나. 괜찮아. 오늘도 다양한 노래와 소리를 들었거든. 그것들이 이 안에 있어. 이걸 들어 봐…들어 볼래?”
이해심 넓은 권유에 버틴은 조금 더 집중하며 소라에 귀를 기울였다. 새벽에 들려온 것. 분명히 들었으리라고 생각되는 것과 그런 추측에 기반한 망상에 가까워 정확히 말하지는 못해도, 버틴은 잠들면서 파도 소리를 떠올렸다. 그 뒤에 좀 더 잠들었을 때는 꿈을 꾸지 않았지만, 하루의 시작을 말끔하게 시작한 단잠이었다.
이제 로렐라이가 다시 들려준 것에는 다양한 소리가 작게, 부드럽게 겹쳐 귓가에 닿았다. 웃음소리가 제일 먼저 작게 들려와 누구의 목소리인지 고민하고, 또 바람 소리가 횅하고 버틴의 옆을 지나친다. 힘차게 모두가 뛰노는 발소리나 가사 없이 허밍 하는 어떤 노랫소리 등등이 이어진다. 버틴은 정확히 누구의 것인지 식별하지 않아도, 가방 속 일상이 담겨 있다는 걸 알아채곤 웃었다.
“…마음이 즐거워지는 소리야. 들려줘서 고마워.”
“버틴, 네가 좋아하는 노래는 뭐야?”
“….”
파편으로 쪼개진 진실, 기억으로만 남은 어머니가 자신에게 불러준 자장가도 그것들처럼 일부에 불과했다. 나는 어머니가 불러주신 자장가가 제일 좋아. 아직 그 노래는 부족함 투성이였다. 그 노래의 처음과 끝을 알아내기까지 몇 번의 폭풍우를 지나쳐야 하는지, 또 어디서 자신의 어머니를 찾아야 하는지 알 수 없다. 모르는 일에 버틴은 자연히 말을 아꼈고, 로렐라이는 그 침묵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언젠가…완전히 알게 된다면, 그때가 오면 알려줄게.”
“하하, 좋아, 버틴.”
눈앞의 소녀는 아주 오래전부터 자신의 소라 속에서 그 이름이 불려진 존재였다. 그가 좋아하는 노래도 그 안에서 조용히 밝혀지기를, 버틴이 찾기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넌 찾을 수 있을 거야. 로렐라이는 버틴에게 기대곤 하루 동안 배운 새로운 노래를 흥얼거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