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k Text:
단순한 동경과 사랑만으로는 온지란이 스물 몇 해까지 쌓아 온 가면을 깨기 어려웠고, 연왕수는 그 가면에 상처받았음에도 가면의 틈을 파고들었다. '완벽'이라는 단어는 온지란이라는 인물의 대명사였지만, 이제 연왕수는 흠 하나 없는 거짓된 구슬보다 생채기투성인 구슬을 더 사랑했다. 온지란은 연왕수가 자신의 결점을 자신이 느끼고 있는 것처럼 그대로 버리고 싶어 하지 않을지, 늘 전전긍긍하며 미묘한 웃음을 지으면 연왕수는 단박에 알아차리고 홀로 짊어지기만 하는 선배를, 1초라도 애쓰지 않았던 때가 없었던 맏언니인 온지란을 끌어안았다. 그리고 늘 그랬듯이, 불안을 녹여주었다.
그렇게 둘이서 함께 동거하며 또 업무로 바쁜 나날을 보냈다. 늘 쥐고 있는 탓에 끈끈하게 달라붙어 있었던 '가족의 책임'까지 내려두고 나서야, 온지란은 연왕수의 손을 더 꼭 잡고 가늠할 수 없을 행복을 더는 고민하지 않고 느낄 수 있었다.
이제 온지란은 '사회생활에 필요한 최소한의 수준' 말고는 연왕수 앞에서 가면을 쓰지 않았다. 익숙한 통화는 이제 드문드문해질 정도로 빈도수가 줄어들었지만, 그 뒤로는 과거의 습관이 튀어나왔다.
돈을 덜 보내서, 내가 걔네 인생을 망친 거라면 어떡해? 줄어들긴 했어도 한때 온지란을 짓눌렀던 불안은 그의 마음속이 아니라, 씁쓸한 웃음과 함께 입을 통해 연왕수에게 전해진다.
언니, 인생은 그 정도로 망하지 않아요! 알아서들 잘할 것이라는 말로 퉁치곤 연왕수는 사랑스러운 연인의 품에 안겨 그 걱정이 연기처럼 흩어지게끔 쪽쪽거리며 입맞춤을 퍼부었다.
온지란이 친족에게 보낸 돈의 액수는 점점 줄었지만, 그들은 늘 그렇듯이 '그럭저럭' 살아갈 것이다. 언제까지나 어릴 것 같은 동생들도 대학 생활을 하며 장학금을 받고 또 아르바이트하며 어엿한 성인이 되었고, 이제 그들이 온지란의 짐이 아니라 힘이 되어주기도 했다.
두 동생 모두 온지란을 빼닮은 노력을 한 끝에, 번듯한 기업에 취직하는 데 성공했다는 소식이 온지란에게 전해졌을 때, 동생들은 어떤 제안을 조심스럽게 건넸다. 절대로 부담 갖지 말고, 편하게 생각해 달라는 부탁을 끝으로 허둥지둥 끊은 전화 뒤에, 연왕수가 볼 때 오랜만에 온지란은 자신만의 생각에 빠진 듯했다. 소파에 멍하니 앉아 있는 온지란의 옆에 앉은 연왕수가 자기 무릎을 두드리기도 전에 온지란은 그 위에 눕고 연왕수의 품에 얼굴을 묻었다. 무슨 고민이 생긴 게 틀림없었다.
"...수야, 혹시 내 동생들 만나볼 생각 있어? 취직한 기념으로 우리한테 크게 밥 사주고 싶어 하나 봐."
묻기도 전에 툭 나오는 날것의 생각이나 감정, 고민 덩어리 그 자체에 연왕수는 빙그레 웃고 온지란의 머리칼을 손으로 잘 빗겨주며 연왕수는 음, 소리를 내며 온지란의 고민에 같이 빠져들었다.
"언니는 어쩌고 싶어요?"
"내 동생들한테 널 보여주고 싶진 않지만...."
즉각적으로 나온 답에 물씬 느껴지는 무뚝뚝함은 곧 망설임으로 변해갔다. 왕수 네가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궁금해서. 선택할 수 없었던 가족과 자신이 선택한 가족, 두 부류의 만남인 셈이라 온지란은 더더욱 생각하게 됐다. 물론 자신의 혈육이 잘 사는 것은 좋은 일이었다. 좋은 일을 함께 나누면 더 좋다는 말도 있었지만, 온지란은 사랑하면서도 동시에 상처를 주었던 이들이 '만난다'는 생각 자체를 하지 않았다. 조금 더 솔직해지자면, 연왕수보다 더 어린 자신들의 동생이 연왕수를 혹시나 나쁘게 생각하지 않을지, 그런 최악의 가정을 견디기 어려웠다.
"...밥 한 번밖에 안 된대요? 언니 고생한 거 생각하면, 더 받아야 할 것 같은데."
장난스럽게 얄미운 말이 연왕수의 입에서 나오는 것도 자신 때문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는 온지란은 상체를 일으켜 연왕수의 평온한 입술을 자신으로 덮었다. 이런 갑작스러운 스킨쉽에 놀라지 않고 부드럽게 이으며 받은 연왕수는 가볍게 혀를 섞고는 떨어졌다. 나누던 대화는 마저 끝내야 했다.
"저는 언니 동생들 보는 거 좋아요. 왜냐하면 다름 아닌 언니의 소중한 가족이니까.... 물론 저도 언니처럼 그 사람들이 마냥 좋지 않죠. 그래서 왜 언니가 고민하는지도 알아요."
마주하는 푸른 눈빛이 무언가가 빠진 호수의 수면처럼 일렁거렸다. 연왕수는 자신이 사랑하는 꽃이 늘 행복하길 바랐다. 그러니까, 언니 하고 싶은 대로 해요. 연인의 대답에 온지란은 도중에 멈춰진 입맞춤을 말없이 이어갔다. 무언의 대답에도 연왕수도 그 침묵을 받아들였는데, 그 이유는 온지란이 웃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온지란은 연왕수를 소파에 눕히고 그 위에 올라타 속삭였다. 사실 질투 나서, 내 동생들한테 널 보여주고 싶지 않아, 수야. 핏줄에 이어지는 공통적인 감각이 실제로 존재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연왕수는 자신의 목에 입을 대는 온지란을 껴안고 웃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