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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latea

Summary:

나루호도가 배지를 재취득하지 못한 미래에서, 미츠루기의 딸과 나루호도가 뒤늦게 만난다.

Notes:

※주의: 2세, TS, 둘 다 헤테로라 L 부족(망사랑), 날조 설정이 있습니다.
임출육은 없으나 혼외자, 비혼 출산이 나옵니다.
역재4로부터 나루호도가 배지를 재취득하지 않아 완전히 복권되지 못한 설정의 AU.

(See the end of the work for more notes.)

Work Text:

 

 “……닮았구나.”

 미츠루기를. 그 이후의 말을 잇지는 않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몇 번이고 그런 말을 주변으로부터 들었다. 하지만 이 남자는, 이상했다. 굉장히 그리운 듯한 목소리였다. 더듬는 것처럼 나의 머리칼을 만지려다가 이내 소스라치듯 손가락을 떨쳐냈다. 

허공에서 머물며 가늘게 떨리는 움직임이, 느리게 사라졌다. 슬로 모션처럼. 망설임과 경이로움이 거기에 잠시 머물러 있었다.

전설로 남은 그, 나루호도 류이치의 변호사 커리어를 알고 있었다. 불명예스러운 날조 증거 사건 후에도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천재 도박사로 부를 축적하여 이제는 눈가와 입가의 주름이 선명한 중년의, 정장이 잘 어울리는 자산가가 되었다. 

그에게 갓 변호사 배지를 단, 자신의 존재는 차려진 설탕 절임 체리를 입에 넣는 것보다 가볍게 여기는 것이 명백한 일일 텐데.

 “…나는 그 녀석에게 자식이 있다는 얘기는 못 들었는데.”

 으득, 하고 이를 가는 것 같은 소리가 났다. 포커페이스로 몇십 년을 살아온 사람에게 드물게 나타나는 격렬한 감정이었다. 본래 이렇게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는 사람인가, 하고 생각하며 옆을 보니 나를 데려온 키즈키 변호사도 놀란 표정이었다. 

나루호도 씨, 오늘 안 좋은 일 있어요? 하고 키즈키가 묻자 그의 얼굴이 바로 사람 좋은 중년 남성의 서글서글함을 되찾았다. 키즈키 변호사, 이 사람은 누구야? 하고 묻자 그녀가 바로 나를 소개했다.

 “시가라키 양이에요. 요번에 미츠루기 법률사무소 쪽에서, 연수를 부탁해서요.”

 “……시가라키?”

 “예전에 미츠루기 국장의 아버지의 조수로 있었던 분인데, 지금은 유명한 변호사세요. 이름을 바꾸지 않고 계속 그… 미츠루기 법률사무소를 운영하시고, 이 아이는 그 변호사님의… 여동생의 아이예요. 올해 배지를 취득했다고 해서 연수를 받고 있는데, 나루호도 씨를 존경한다고 해서… 소개를 시켜주려고 데려왔어요.”

 나는 그녀의 소개에 화답하여 허리를 깊숙이 접어 공손히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나루호도 선생님. 직접 만나 뵙게 되어 영광이에요.”

그는 나의 생물학적 아버지로부터 가장 가까웠던 친구였다. 아버지는 그의 이야기를 할 때마다 그리운 듯 머뭇거리기도 하고, 부끄러워하기도 하고, 보기 드물게 다정한 얼굴을 하기도 했다. 

그래서 변호사가 되면 당신을 만날 일이 있기를 바랐다. 당신이 나를 볼 때 어떤 표정을 할지 못내 궁금했었다. 나는 아버지의 젊은 시절과 완벽하게 닮아 있었으니까.

 

 

 

어머니는 나를 낳기로 결심한 날 이후로, 아버지를 딱 한 번 만났다.

어머니는 아버지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만난 날 ‘무리한 요구’를 하며, 처음부터 끝까지 아버지의 존재에 대해 함구하겠다고 각서에 썼다.

 양육비와 상속 유류분 등 아이가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나에게 쓰이는 비용에 대해서 당신에게 어떠한 청구도 하지 않을 것이며, 만일 매스컴 등에서 혼외자로 문제가 될 경우 미련 없이 아이와 함께 떠날 이민 플랜까지 갖춰 두었다. 

어머니는 그저 유전자가 필요할 뿐이라고 그에게 밝혔다. 당신으로부터 나온 한 스푼만큼만 저에게 주세요. 그저 오빠가 가엾을 뿐이에요.

어머니의 오빠는 어린 시절 우연히 만난 변호사에게 매료되어 그 사무소에 조수로 취직했다. 그는 변호사가 불의의 사고로 명을 달리할 때까지 그곳을 지켰다. 그리고 변호사가 죽고 난 후에도 새로운 변호사로서 그 사무소의 이름을 고수했다. 사무소의 이름은 미츠루기 법률사무소였지만, 그곳의 대표 변호사는 시가라키 타테유키였다.

 어머니는 오빠인 시가라키 타테유키를 오랫동안 옆에서 도왔다. 그는 여자를 좋아했지만 가벼운 관계만 즐길 뿐 결국 정착하지 못하고 떠돌았는데, 어머니가 이유를 물으면 말을 돌리며 회피했다. 그러던 어느 날 잔뜩 취해 돌아와서 그는 결국 그 이유를 털어놓았다.

 그날 역시, 신 씨와 레이지와 함께 법원에 돌아갔어야 했어. 
    ……이제 그 얘기는 그만 듣고 싶어. 
    이게 네가 물어봤던 것의 답이야. 나는 평생 결혼할 수 없을 거야. 
    그게 무슨 말이야? 

그는 한참을 망설이다, 길게 말을 이어 나갔다.

내가 여자였으면 좋았을 걸. 레이지는 여기로 돌아오지 않을 거야. 나는, 여기에서 이 사무소의 망령이 되는 거고. 내가 신 씨를 지키지 못했으니까. 
   오빠에게 그럴 의무는 없었어. 
   알아. 그래도 나는, 내가 죽을 때까지, 여기를 지킬 거야.

 그때 어머니는 결심했다. 바보 같은 오빠를 위해 사무소를 지킬 사람을 만들자고. 기왕이면 똑똑한 유전자를 받아, 타테유키가 죽어도 한 사람의 몫을 할 수 있는 아이를 기르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녀도 결혼할 생각은 없었다. 다만, 아이를 원하는 마음이 간절할 뿐이었다.

 그래서 어머니는 그를 찾아갔다. 미츠루기 레이지는 결혼에도 후손을 남기는 일에도 관심이 없었다. 삶의 목표와 여정에 그러한 것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리하여 어머니는 확신을 얻었다. 그녀만 입을 다물면 이 일은 성공할 수 있다. 

자신은 그저 죽은 사람 따위에 연연하는 오빠가 안쓰러울 뿐이며, 단란한 가정을 만들 생각도 당신과 마찬가지로 없고, 단지 그 사무소의 뒤를 이을 사람은 나의 아이였으면 한다고. 대신, 이름에 맞게 미츠루기의 명석함을 조금 빌리고 싶을 뿐이라며.

 그러자 미츠루기 레이지는 난감한 듯 시선을 피했다. 그래서 뭘 해드리면 될까요? 그 말에 어머니는 그저 한 스푼의 체액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저도 딱히 당신과 자고 싶진 않아요. 재미없을 것 같아서요. 그 말에 남자는 웃음을 터뜨리고는 뒤이어 말했다.

당신이 써온 것에 두 가지 조건을 붙입니다. 첫째로, 수사기관 쪽, 특히 검찰이나 경찰 쪽의 진로로 아이를 접근시키지 말 것. 만일 오더라도 막을 겁니다. 둘째로, 일체 비용 청구를 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필요할 때에는 의료비나 교육비를 요청하기 바랍니다. 정말로 괜찮으니까.

 그 뒤로 그들은 만나지 않았다.

내가 태어나고, 나는 가끔 아버지와, 시가라키 삼촌과 함께 식사를 했다. 그들은 오래 전 이야기로 종종 즐거워했으며, 나는 항상 삼촌으로부터 어린 시절 레이지와 똑 닮았다는 말을 들었다. 

아버지는 자라나는 나를 볼 때마다 그리운 듯, 끔찍한 듯, 깨어질 것 같은 애처로운 얼굴을 했다. 유년 시절 가두어 놓았던 기억들이 나를 볼 때마다 비디오로 되감기 재생되는 것처럼 웃는 듯 우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리하여 다시 지금,

나루호도 류이치는 나의 색소가 옅은 머리칼을 본다. 길게 뻗은 눈매를 본다. 똑바른 시선을 본다. 질리도록 선명한 핏빛 정장 투피스를 본다. 무릎을 가리는 치마 아래 얇은 스타킹 너머 비치는 살갗을 본다. 거기에서 보이는 것은 내가 아니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나는 항상 미츠루기 레이지를 만날 때마다 그의 뒤로 어른거리는 나루호도 류이치의 그림자를 보았다. 거기에서 그는 믿음직스러운 친구였고 동료였다.

드리운 그림자의 어느 구석에는 한때 우정의 경계선 근처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들었던 흔적이 남아 있었으나 희미할 뿐이었다. 감정의 찌꺼기는 음료를 다 마시고 남은 자국처럼 컵 아래에 자글자글 말라붙어 있었다. 

어떤 날조 증거 사건의 결과 때문에 일찍이 소멸하였을, 그러나 그의 내면, 어느 도로에 영구히 흡착되어 남은 최대 감속의 흔적들. 절망처럼 검은 스키드 마크들.

미츠루기 레이지는 과거의 이야기를 할 때마다 나루호도 류이치의 이야기를 했다. 내가 변호사를 꿈꾸는 것까지 들었을 때 그는 더더욱 힘을 실어 말했다. 한때는 나도 그렇게 되고 싶었어. 나의 꿈은 그 녀석으로 인해 실현되었으니. 물론 오래가지 못했지만. 

나는 아무쪼록 네가 그런 변호사가 되기를 바라. 당당하게 이의를 제기해. 그리고 함정을 조심하거라. 수상한 증거가 있다면 나에게 가져오고. 조급히 그것을 검증 없이 활용하는 오판을 범하지 않도록. ……제발.

그것은 간절한 기도 혹은, 한숨과 닮은 말이었다. 항상 여유롭고 절도 있고 타의 모범이 되는 나의 생물학적인 아버지. 그러나 나루호도 류이치의 이야기를 할 때마다 이상하도록 감정을 드러내며 당부하고 애원하고 충고하는. 그를 언급할 때마다 하늘에서 지상으로 내려와 인간이 되는, 떨리는 목소리를 가진 사람.

“…어떤 이야기를 들었어?”

내가 종종 그와 식사를 하며 예전의 ‘당신’의 이야기를 주고받는다고 말했을 때, 나루호도 류이치는 긴장한 것처럼 눈썹을 좁히며 물었다. 그는 나의 앞에서는 전혀 포커페이스를 유지하지 못했다. 치기 어린 시절로 되돌아간 것처럼 잔뜩 긴장했다. 불리한 증언과 증거와 평생의 난적을 두고 평정심을 유지하지 못하는 신인 변호사와 같이.

“선생님과 법정에서 함께 찢어진 종이를 맞추어 진실을 찾았던 일이나, 떨어진 총기를 잘못 집어 들어 피고인이 되었을 때 선생님이 구해줬던 일이나… 그런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나는 일부러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는 듯 말하며 웃었다. 하지만 그 이야기 하나하나는 전혀 그렇게 넘길 일들이 아니었다. 나는 알고 있었다. 시간이 몇 십년이 흘러 뱃속의 태아가 어른이 되어 변호사 배지를 취득하게 되는 만큼의 긴 세월이 흐르는 동안, 당신들의 추억에는 이미 켜켜이 먼지가 쌓였다. 

한때 찬란하게 빛났던 에피소드들 뒤로 지금은 당신도, 아버지도 눈가와 입가의 주름 사이로 그 무렵의 미숙함을 자연스레 숨길 수 있는 어른이 되었다. 다만,

당신도 아버지와 같이 나의 얼굴로부터 아버지를 보는구나. 
   아버지도, 내가 ‘변호사 배지’를 취득한 날, 환하게 웃으며 나로부터 당신을 보았는데.

나는 바보 같은 남자들의 추억 놀음의 희생양이었다. 그 처지가 그렇게 안쓰럽거나 불쌍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존재만으로도 누군가를 기쁘고 슬프고 안타깝고 좌절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이 신선했다. 

나루호도 류이치가 시가라키라는 성을 들었을 때 순간 일그러진 얼굴을 했던 것을 기억한다. 그것은 일종의 회한이었다. 어째서 그 얼굴을 미츠루기라고, 혹은 나루호도라고 부를 수 없는 걸까, 하는 의문과 뒤이어 따라오는 후회였다.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스스로에 대한.

그리하여 그들이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음을 알았다. 그들을 만나게 해주고 싶었다.

“변호사를 완전히 그만두신 후, 미츠루기 씨를 만난 적이 있으세요?”

“내 쪽에서 만나지 않았어. 나도 일이 있었으니까.”

“……지금은, 만나실 생각이 있으세요?”

 나의 말에 그는 망설였다. 없다고 해야 정답이겠지. 하지만, 나를 보면 그러한 대답을 입에 올릴 마음이 사라지는 것이다. 안절부절못하는 태도를 보면 알 수 있었다. 

그는 나와의 게임에서 완벽하게 실패하고 있었다. 눈도 마주치지 못했다. 눈을 마주치면, 그때로 되돌아가는 자신을 붙잡지 못할 테니.

 

 

그들의 약속일을 잡는 데는 그로부터 약간의 시일이 걸렸다.

일찍이 전조 증상은 있었다고 한다. 갑자기 힘이 빠지는 팔이나 다리. 저릿저릿하게 아파지는 신체. 빙글빙글 도는 시야. 어지럼증. 가기 싫다고 뻐기는 것을 억지로 병원에 데려갔을 때, 진단은 초기 뇌경색이었다고 한다. 

소식을 들은 것은 그 만남으로부터 불과 몇 주 뒤였다. 네, 네, 부디 몸조리 잘 하세요. 급하지 않아요. 미츠루기 씨는 건강하시겠죠. 아마도.

확신하지 않았던 것은 나도 미츠루기 레이지를 잘 모르기 때문이었다. 그는 어떤 의무를 처리하듯 나를 만났고 그때마다 최소한의 예의를 지켜 나와 나의 주변인에 관심을 보이고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었으나 정말로 속 깊은 대화로 들어가려고 할 때는 단호히 선을 그었다. 

여기서부터는 접근 금지라고 말하는 것처럼. 혈연관계라고 해서 모든 것을 털어 놓을 필요는 없다는 것처럼.

그러므로 내가 그와 규칙적인 어느 날의 식사 중 우연히 그의 이야기를 꺼냈을 때, 나는 기대하지 않았다. 예의 그 선을 그어 감정을 깊숙이 숨기는 무덤덤한 표정이 나올 것임을 예상했었다. 그런데도,

처음이었다. 당신이 그렇게 동요하는 것은.

나루호도 류이치의 병명을 말했을 때, 당신의 입가가 바들거리며 떨리는 것을 보았다. 나이프를 잡은 손이 갈피를 못 잡고 고깃덩어리를 자르는 것을 주저했다. 그것을 자르면, 무언가 툭 하고 떨어져 나갈 것 같았다. 

그는 순간 테이블 매너를 잃은 사람처럼 멍하니 메인 디쉬를 바라보았다. 언제나 우아하고 깔끔한 동작으로 끝을 맺었던 일상들을 모두 새까맣게 잊고, 석상이라도 된 것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사실은 이런 곳에서 밥이나 먹으면서 만나는 게 좋을 것 같았지만, 이렇게 된 거, 한번 방문하시는 게 어떨까 생각해요. 그래도 선생님과 아버지는, 친구였으니까.”

친구, 라는 말에 그제야 심장이 뛰기 시작한 듯 그는 혈색을 되찾았다. 딱딱하게 굳어졌던 팔과 다리에 다시 피가 도는 사람처럼 정신을 차렸다. 멈춰 있던 손으로 나이프를 움직였다. 일순간 고였던 모든 시간이 거짓말처럼 다시 흘렀다. 석상이 인간으로 화하는 순간 같았다. 

피그말리온을 떠올렸다. 심혈을 기울여 직접 만든 조각 속 여인에게 이름을 붙이고 사랑해주었던 조각가. 신이 그를 가엾게 여겨 조각상 여자에게 숨을 불어넣어 주었다든가. 나를 낳은 것은 조각가가 아니라 어머니였지만.

“바쁘시겠지만 여유가 있는 날을 말해주시면, 그쪽과도 맞춰 볼게요. 괜찮겠지요?”

미츠루기 레이지는 고개를 끄덕였다. 산전수전 다 겪어 어지간한 일에는 눈썹도 흔들리지 않는 고위 공직자의 가면이 일순간 산산이 깨어졌던 몇 분 전. 그 순간을 아득히 망각한 듯 태연한 얼굴이었다.

 

 

 

그의 자택은 의외로 도심으로부터 가까웠다. 고급 주택가가 즐비한 상급지는 아니었으나, 여기에 이런 곳이 있나 싶을 정도로 조용하고 호젓한 동네였다. 무대 뒤편의 고요한 분장실 같았다. 모든 것이 갖춰져 있지만, 동시에 아무것도 없는 곳.

미츠루기 레이지는 아끼는 차를 기꺼이 운전하여 나를 데리고 왔다. 이 차라면 초인종을 누를 필요도 없을 것이라며 단언했다. 과거에는 자주 타고 다녔다던 붉은 스포츠카였다. 

날렵하게 빠진 차체를 보니 한때의 그는 차를 제법 좋아했고 화려했던 이미지에 맞게 자신을 꾸밀 줄 아는 사람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불과 어제까지만 해도 지루한 국산 고급 세단의 뒷좌석에 앉아 안경 가운데를 올리며 조간신문이나 넘기며 출근하고 있었겠지만.

역시나 문은 호출할 필요도 없이 그대로 열렸다. CCTV가 붉게 반짝거리는 것을 보니 집주인이 그 차를 알아본 것이 분명했다.

차고에 도착하자 속을 알 수 없는 인상의 여성이 맞이했다. 미누키입니다. 오랜만에 뵙네요. 그 말에 다시 한번 그는 웃는 듯 우는 듯한 애매한 표정을 지으며 열쇠를 넘겨주었다. 

파파는 계속 기다렸어요. 어젯밤부터. 최근에는 상태가 조금 좋아졌는데, 갑자기 그 사건의 증거를 한 번 더 보고 싶다고 말하더군요. 의사는 일종의 퇴행 증상이라고 말했는데, 어느 정도는 더 지켜보자고 해서. 그래서, 오늘로 정했어요. 미츠루기 씨는 파파가 조금 과거의 인간인 편이 대하기 훨씬, 나으실 것 같아서.

그녀는 주차를 끝낸 후 그렇게 말했다. 한 마디 한 마디에 알 수 없는 힘이 실려 있었다. 꼿꼿한 그녀의 허리와 시선을 피하지 않는 총명한 눈빛을 보았다. 심지가 곧고 강한 사람이었다.

나는 그녀의 안내를 따라 그와 함께 집으로 들어갔다.

 

그, 나루호도 류이치는 격식 없는 차림으로 소파에 앉아 TV를 보고 있었다.

미츠루기는 그를 보자마자 우뚝 멈추어 섰다. 몇십 년 만의 만남이니 어색할 만도 할 것이라고 생각했을 때였다. 

나루호도는 빙긋 웃었다. 마치 어제도 그를 보았다는 것처럼 친숙한 태도였다. 자연스레 일어나 부엌에 있던 찬장을 열어 고급스러워 보이는 찻잔과 받침을 가지고 와 그에게 내밀었다. 그는 놀란 것 같았지만, 아무렇지 않게 그것을 받아들였다.

“우리 집엔 티백뿐인데 괜찮을까.”

“음.”

“오랜만에 오는 것 같네. 사무소엔 자주 왔었는데.”

지금은 그 사무소에 네가 없으니까, 라고 입술이 벙긋거리는 것을 본다. 그는 그것을 성대를 울려 말하지 못한다. 시간이 흐르며, 고통에 무디어지며 그는 배웠을 것이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속으로 삭일 수 있는 방법을. 인내하는 사람의 미덕을.

포트로부터 익숙한 동작으로 뜨거운 물이 찻잔으로 떨어진다. 그는 그것을 멍하니 바라보다 내민 티백을 뜯어 넣었다. 누군가 만들어주지 않고 직접 만들어야 하는 오랜만의 티타임이었다. 그와 함께였을 무렵에는 밥을 먹듯 이루어졌던 일상이었다.

“……몇 번이나, 배지를 다시 취득하라고 말했었지.”

“응.”

“나는, 계속… 너를…”

“기다려줘서 고마워.”

그렇게 말하며 나루호도 류이치는 활짝 웃었다. 해바라기 같은 웃음이었다. 얼굴에 서린 시간의 흔적들이 햇볕에 깨끗하게 말라 있었다. 어떠한 후회도 없어 보이는, 오랫동안 그 집행을 미루어 온 대답이었다.

“나는 너를 만나기 위해 변호사가 되었어.”

“…음.”

“내 과오로 인해 네가 더 나아가지 못하게 되면 어떡하나 하고 계속 생각했어.”

“……누명은 벗겨졌지 않은가.”

“…법정이 아니더라도 언제든 만날 수 있는데, 굳이 변호사를 계속할 이유가 있을까.”

언제든 만날 수 있었다. 그런데도, 오래도록 그들은 만나지 않았다.

침묵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나루호도 류이치는 미츠루기 레이지를 의도적으로 피했다. 날조 증거 사건이 원점에서 재검토되고 그 증거가 고의로 그의 변호사 자격을 빼앗기 위해 만들어진 정황이 백일하에 드러났지만 그는 법조계로 돌아오지 않았다. 몇 번이나 미츠루기가 그에게 재취득을 권유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면 왜,”

“너를 오래도록… 보고 싶었으니까.”

친구로서.

그 뒤의 말은 입술 사이로 발음이 뭉개져 불분명했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어떤 걷잡을 수 없는 감정이 일으킬 수 있는 파국에 대한 두려움. 떨리고 주저하는 손. 경련하는 입가. 서로의 이름을 입에 담았을 때 두 사람이 보였던 공통적인 반응이었다.

욕심을 부려 한 걸음만 더 가면, 관계성이 변화할 텐데. 그러면 오래도록 영원할 우정은 찰나의 애정과 욕정 따위로 변하여 천박하게 추락하겠지. 신성하고 드높은 구름 위의 세계로부터 곤두박질쳐 인세의 불길 속으로, 한없이 떨어지고 말 것이다. 

아름답지 않은 부분까지 뒤얽히고 싶지 않다. 추잡한 것들까지 속속들이 알고 싶지 않다. 산산이 깨어질 결말을 굳이 보고 싶지 않다.

그리하여 지금에 이르렀다.

“…그런 것치고는, 나를 너무 방치했는데.”

“그러게. 그동안, 많이 바빴으니까. 너도 그렇겠지만."

우리는 한때… 서로를 구했고, 좋은 친구였고, 그 순간들을 박제하고 싶었을 뿐이라고. 그것이 변질하여 흘러내리기 전에. 상처를 받고 상처를 다시 입히는 일을 하지 않고, 그저, 서로를 가만히 멀리 응시하기 위해서. 그리하여 아름다웠던 찰나를 영원히 붙잡기 위해서.

서서히 오래도록 묵혀 놓았던 기억이 펼쳐지고 있었다. 많은 일들이 둘의 머릿속을 동시에 스쳐 지나갔다. 나는 그 감정의 밀도에 숨이 막혀, 그들을 뒤로 하고 물러섰다. 

 

 

나루호도 류이치는 그녀를 만났을 때, 머리를 맞은 것처럼 광폭한 충동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던 것을 기억한다.

만일 자신이 그 선을 넘었다면 어땠을까? 그런 것을 몇 십번이고 상상했었다. 이루어지지 못할 욕망에 혼자 신음하며 괴로워했던 날도 여러 번이었다.

 그날, 타고나길 색소가 연한 머리칼과 날카로운 눈매와 총기가 번뜩이는 두 눈, 길게 그림자를 드리우는 옅은 속눈썹을 보며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신체의 곡선이 아름답게 드러나 선명하게 도드라질 부분들을 최대한 응시하지 않으려 애썼다. 참을 수 없게 되기 전에.

후회하지는 않았다. 그가 남자였든 여자였든 같은 선택을 했을 것이다. 몇 년 만에 종결을 맞을 뜨거운 관계보다, 꾸준히 오래 갈 거리감을 유지하겠지. 감정에 불타올라 사라질 이카로스가 되고 싶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너를,

 

 

언젠가는, 독점하고 싶었던 적도 있었지만.

 

 

그는 테이블 아래로 손을 늘어뜨렸다. 한쪽 손에 힘을 주어 주먹을 세게 쥐었다.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어 통증이 일었다. 아랑곳 않고 계속해서 손을 움켜쥐었다. 잡히지 않는 것을 잡으려는 것처럼. 상처로부터 피가 배어 나와 이윽고 카펫에 떨어졌다. 

가장자리가 흐트러진, 

새빨간 원형의 자국을 남기며.

 

 

끝.

Notes:

*갈라테이아: 조각사 피그말리온이 만든 조각상의 이름. 거품의 여신이라는 뜻.

앨런 홀링허스트의 “스파숄트 어페어”에 일부 영향을 받았습니다.
망한 사랑 헤테로 쌍방삽질 못혼 노부부... 이딴 건 니가 써야 돼(...)의 결과물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