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k Text:
나루호도는 출근하자마자 사무소에 늘어졌다. 어제 야하리와의 술자리가 꽤 길어졌고 과음을 했던 탓이었다. 차가운 책상에 볼을 딱 붙이고 살 것 같다며 엎드린 나루호도의 옆에서 마요이가 잔소리를 했다. 곧이어 찾아온 하루미마저 얼굴을 굳힌 채로 그에게 조금, 험한 말을 했지만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멀리 보이는 찰리 선배의 굳건한 모습을 보니 광합성과 호흡 외엔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식물의 처지가 새삼스레 부러워졌다.
해장엔 미소라멘이 최고라는 말에 혹해 셋이서 함께 라멘을 우걱우걱 먹어 치웠다. 나루호도는 어제의 술기운이 조금 달아나는 것 같다고 느꼈지만, 머리 한 구석을 희뿌옇게 덮은 안개는 사라지지 않았다. 시시때때로 찾아오는 둔한 두통을 이겨내려 고개를 양옆으로 저어보았지만 차도가 없었다. 라멘집에서 나오는 길에 편의점에서 산 숙취해소제도 전혀 도움이 되질 않았다.
오늘은 정말, 퇴근 시간에 딱 맞춰서 집에 가야지.
그렇게 다짐했을 때쯤 전화가 걸려 왔다.
나루호도는 미츠루기를 거절하는 법을 몰랐다. 정말 아무리 생각해도 오늘만큼은 거절해야 하는 것이었다. 상태가 정말 좋지 않았다. 술잔만 봐도 속에서 신맛이 올라오는 것 같았다. 하지만 미츠루기의 전화 너머 목소리는, 너에게까지 거절을 당한다면 나는 정말 방법이 없다는 속내가 들리는 것처럼 침울했다.
그는 망설였다. 미츠루기가 아니었다면 거절했을 것이다. 그는 검사의 좁고 깊은 인간관계 풀을 잘 알고 있었다. 정말 신뢰할 수 없는 사람 외에는 빗장을 굳게 걸고 속을 터놓지 않는 성격 또한 잘 알고 있었다. 야하리도 어제 자신과 함께 과음을 했기 때문에 미츠루기를 거절할 것이다. 자택에서 폭음을 하는 미츠루기를 상상하니 두려워졌다. 절제는 하고 마시겠지만, 그래도, 하는 마음이 있었다.
“…그러면, 장소는 내가 정하면 안 될까?’
적어도 먹는 것이라도 편안하게 먹고 싶었다. 나루호도는 그래서 미츠루기에게 자신의 집 인근의 작고 소박하지만 맛은 뛰어난 술집을 제안했고, 미츠루기는 시원스럽게 승낙했다.
미츠루기는 차를 집 근처에 두고, 택시를 타고 왔다고 했다. 씩 웃는 모습이 아무래도 불안해 나루호도는 이실직고했다. 어제 야하리와 술을 많이 마시는 바람에 오늘은 아무래도 술은 함께 마시기 어려울 것 같다고 털어놓았다. 막 자리에 앉아 메뉴판을 진지하게 들여다보는 미츠루기의 미간에 주름이 깊이 새겨졌다.
“그러면 오늘은 어쩔 텐가.”
“차 마시지 뭐. 안주는 먹을 거야.”
“……그러지.”
미츠루기는 자신은 일본주나 소주를 마시면 된다며 잠시 화장실에 다녀오겠다고 말했고, 나루호도는 그 참에 좋아하는 안주와 우롱차를 주문했다. 기본으로 깔리는 타코 와사비를 깨작거리고 있을 때쯤 미츠루기가 돌아왔다.
“몸이 안 좋으면 거절하면 되지 않나.”
“…너 친구 없잖아.”
그 말에 미츠루기가 발끈했다.
“……야하리를 부르면 된다.”
“어제 내가 누구랑 마셨게? 걔 오늘 데이트 있댔어. 너 오늘 혼자 마실 운명이었다고.”
콧방귀를 뀌며 실실 웃는 나루호도를 보고 미츠루기가 다시 발끈했다.
“혀, 형사라든가.”
“……이토노코 씨? 오늘 마코 씨랑 데이트 있댔어.”
“…자네는 왜 그런 걸 알고 있는 건가?”
“얼마 전에 우연히 들었어. 오늘 금요일이잖아. 금요일 밤엔… 소중한 사람이랑 함께 있고 싶은 법이지.”
나루호도는 점원에게 감사를 표하며 서빙된 우롱차와 일본주를 받아들였다. 차가운 유리잔에 담겨 나온 차를 들어 올려 눈짓하자, 미츠루기도 어색한 듯 눈을 깔며 잔을 들어 부딪혔다.
“……소중한 사람이라.”
그렇게 중얼거리며 먼 쪽을 향하는 미츠루기의 눈이 어딘가 그리운 것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나루호도는 아무래도 오늘 그를 만나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츠루기가 말을 하는 것을 나루호도는 그저 들어주기만 했다. 그러는 동안 일본주가 소주가 되고, 다시 맥주가 되었다. 미츠루기는 꽤 기분이 좋아졌는지 책상까지 두드리며 열변을 토하다가, 술을 마시다가, 안주를 먹고, 또 이야기를 털어 놓았다. 그동안 꽤 많은 고충이 쌓여 있었던 모양이었다. 나루호도 그저 우롱차를 쭉쭉 들이켜며 그의 이야기에 맞장구 정도만 쳐주었다. 그 소소한 반응에도 미츠루기는 울컥함이 솟아오르는지,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이었다.
평범한 컨디션이었다면 아마 이쯤 되어서 미츠루기의 입을 막았을 것이다. 법정에서도 일방적으로 공세를 당하는 것은 취향이 아니었다. 어느 정도는 자신의 고충도 말하기 시작해야 했다. 하지만 어제 이미 야하리와 대화하며 나루호도는 진이 쏙 빠진 상태였다. 미츠루기가 친한 사람들 앞에서 수다스러워지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제정신일 때는 자제하는 편이므로 이렇게까지 떠드는 경우는 드물었다. 나루호도는 실실 웃으며 보기 드문 광경을 관람하기로 했다.
어느 순간 미츠루기가 입을 꾹 다물었다.
“어?”
나루호도가 의아해져서 얼빠진 반응을 보내자, 미츠루기가 입을 삐죽거리며 말했다.
“자네는 할 말이 없나?”
얼굴 빨개져서 귀엽네. 나루호도는 속으로 생각하며 우롱차 석 잔째를 쭉 마셨다.
“없진 않은데.”
“그럼 자네도 뭔가 말해.”
“…나 오늘 피곤해서. 듣는 쪽이 재밌어.”
그 말에 미츠루기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아, 저것도 귀엽네. 나루호도는 또 생각하며 우롱차를 한 잔 더 주문했다.
“…싫진 않은가.”
고개를 돌리고 한쪽 팔을 방어적으로 감싼 모습에 나루호도는 움찔했다. 나왔다. 미츠루기가 자학 모드로 들어가고 있는 전조 증상. 아마 계속 혼자서 이야기하다가 인지해버린 것이다. 나루호도가 맞장구 외에 반응을 보이지 않고, 이야기를 가로채지도 않고, 반박도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심지어 일을 할 때도 공방을 주고받는데, 사적인 자리에서 이렇게 얌전하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고로 무언가 자신이 잘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렇게 받아들인 것이 뻔했다. 나루호도는 황급히 대답했다.
“아니야! 오늘 네 이야기가 재밌어서…”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을.”
“아까도 말했지만, 오늘 피곤해서…”
“그러면 지금이라도 돌아갈까?”
“아니아니!”
나루호도는 일어나려고 하는 미츠루기의 두 어깨를 잡아 눌렀다. 술을 먹어서인지 손쉽게 눌러 앉힐 수 있었다. 제정신 같았으면 꼿꼿이 버텼을 텐데. 나루호도는 자신의 순발력에 속으로 감탄하며 다시 미츠루기를 진정시켰다.
“사실 어제, 야하리랑 술 마시면서 진이 다 빠져서 그래.”
“…그런가.”
“그리고 진짜 오늘, 너 재밌어. 이렇게 많이 얘기하는 거 처음 봤어.”
“빈말이라도 기쁜 말이군.”
빈말 아니야. 나루호도가 덧붙인 말에 미츠루기는 고개를 끄덕였다. 납득한 듯 보였지만 스스로가 재미없다는 것을 지나치게 잘 알고 있는 남자기에 쉽게 먹혀들 것이라곤 나루호도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이 자리를 끝내고 싶지 않았다.
손님이 가득 차 들뜬 술집의 분위기, 취기가 아련히 섞인 공기, 얼굴을 여전히 빨갛게 한 채로 신이 나서 무언가 떠들고 있는 미츠루기, 그리고 어느새 또 다 마셔버린 우롱차 네 잔째. 화장실을 몇 번을 다녀왔는지 모르겠지만 여기를 떠나고 싶지 않았다.
소중한 사람과의 금요일 밤, 즐거운 한때.
딱 그런 느낌이었다.
비틀거리며 계산하는 미츠루기 뒤에서 나루호도는 그를 지켜보았다. 나루호도도 처음엔 계산하는 척을 했지만 미츠루기가 만류했다. 오늘 자네는 우롱차와 안주 말고는 마신 게 없으니 이 정도는 내가 내겠네. 괜히 불러내서 미안하기도 하고. 그렇게까지 말하는데 별 도리가 없었다. 여기서는 못 이긴 척을 하고 물러나 줘야 할 것 같았다. 지갑 사정도 그리 좋지 않기도 했으니 다행이었다.
미츠루기는 택시를 부르려 도롯가에 섰다. 이상하게 택시가 잘 오지 않았다. 10분을 넘게 서 있었는데도 차는 쌩쌩 그를 지나쳐가기만 했다. 전화를 해서 부를까, 하고 휴대폰을 꺼내 드는 그를 보니 괜히 짠해졌다. 나루호도는 줄곧 입에서 맴돌던 말을 꺼냈다.
“자전거 타고 갈래?”
“뭐?”
미츠루기의 당황한 듯한 대답에 나루호도는 뒤통수를 긁적이며 웃었다.
“나 술 안 마셨잖아. 너 하나 정도 데려다 줄 힘은 있는데.”
“……에스코트를 받을 정도로 취하진 않았어.”
“그래도 내가 불안해서. 얼마 전에 새로 뽑은 것 시험 운행도 할 겸. 타 볼래?”
그리고 미츠루기도 나루호도의 말을 거절하는 방법을 잘 몰랐다.
나루호도는 당당하게 자전거 앞에 올라타, 뒷좌석에 미츠루기를 태웠다. 두 사람의 무게에 자전거가 삐걱거렸지만, 이내 곧 중심을 잡았다. 차를 타고 가면 10분 정도지만, 자전거라면 20분은 훌쩍 넘기려나. 미츠루기는 속으로 가늠했다. 나루호도는 힘차게 페달을 밟기 시작했다. 처음엔 무게를 이기지 못하는 것처럼 끼익 거리더니, 속도를 내기 시작하자 조용하고 빠르게 굴러갔다.
처음에 미츠루기는 나루호도의 허리를 잡지 않고 손가락만 대려고 했지만, 나루호도가 그러면 다친다고 혼을 내는 통에 어쩔 수 없이 두 팔로 그의 허리를 감쌌다. 조금 물렁물렁한 피부의 감각 아래 단단히 다져진 복부가 꿈틀거리는 것에 기묘한 안정감을 느꼈다. 페달을 밟는 것에 맞추어 움직이는 것을 감싸 안았다.
어릴 적 이랬던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포근한 감각이었다. 아버지였나, 아니면 카루마의 사용인이었나… 기억이 나지 않았다. 누군가를 의지하여 온전히 기대는 것. 사건 이전 같았으면 질색을 하며 거절했겠지만, 시원한 밤바람이 귓가를 스쳐 가는 것과 동시에 손에 닿는 따뜻한 온도가 썩 어울렸다. 차보다 느리게 달리는 풍경조차도 아름답게 느껴졌다. 나루호도의 숨이 가빠지고, 감싸 안은 복부가 들썩이는 것도 좋았다. 모든 게 좋았다. 느릿하게 흘러가는 순간. 술을 마셔서 그렇겠지. 스쳐 지나가는 가로등들이 유독 반짝거렸다. 흐린 눈에 난반사되어 육각형으로 아름답게 맺히는 노란 불빛의 상들.
순간 자전거가 덜컹, 하자 미츠루기는 반사적으로 그를 꼭 껴안고 등에 기댔다.
“아… 미안.”
나루호도가 속력을 줄이지 못했다며 사과를 하는 것에 놀라 미츠루기는 그 등으로부터 멀어졌다. 흰 셔츠로부터 배어 나온 땀에 젖어 축축해진 파란 재킷에 기대고 말았다. 그것에 나루호도도 놀란 것 같았다. 기분 나빴지? 하고 건네는 말에 미츠루기는 한 마디도 할 수 없었다. 술기운에 여전히 볼이 뜨끈했다.
“괜찮다. 힘든 건 자네이지 않나…”
하고 위로의 말을 하니, 나루호도는 기쁘다는 것처럼 킥킥 웃었다.
“가끔 태워주는 거 고마워서. 이 정도는 해주고 싶었어.”
네 스포츠카보단 영 느리겠지만. 그래도 얼마 전에 뽑았다고. 신형이야. 짐짓 자랑하는 말에 미츠루기도 웃음이 나왔다. 익숙한 나루호도의 허세였지만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그 마음을 짐작할 수 있어 고마웠다.
미츠루기는 자신도 모르게 부여잡은 팔을 더 꼭 안았다. 나루호도는 그것에 당황했지만, 티는 내지 않았다. 그 반응이 대답임을 모르지 않았다. 미츠루기는 법정의 언어에는 익숙했지만 관계의 언어에는 미숙한 편이었다. 그래서인지 이렇게 몸으로, 표정으로, 기색으로 표현해주는 것이 오히려 고마웠다. 그 편이 오히려 솔직하게 여겨졌다. 마치 과거 미츠루기와 함께 학교를 다니던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 같아 가슴이 뿌듯해졌다.
점점 미츠루기의 자택이 있는 동네로 접어들고 있었다. 나루호도는 서행하며 핸들을 꽉 잡았다. 땀은 뻘뻘 흐르고 다리는 무거워지고 나루호도를 꽉 잡은 미츠루기의 두 팔은 갑갑했지만, 어쩐지 아쉬운 느낌이 들었다. 이 순간이 오래도록 지속되기를 바라고 있었다.
미츠루기는 멀리 맨션이 보이자 안도했다. 나루호도가 열심히 와준 덕인지 예상한 시간 내 도착할 수 있었다. 다행이었다. 마시지 않은 나루호도 때문인지 그는 주량을 조금 넘어서는 수준으로 과음을 했다. 빨리 씻고 바로 잠자리에 들어야겠다, 하고 무심히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나루호도는 자전거 주차장을 찾다가 조금 비틀거렸다. 이윽고 브레이크를 밟는데, 무언가 실수한 듯 휘청거렸다.
미츠루기는 놀라서 그 자리에서 멈추었다. 자전거가 멈춘 것을 확인하고 뒷좌석에서 내렸다. 나루호도는 저질렀다는 표정을 지으며 미츠루기를 뒤돌아보았다.
“…무슨 일인가?”
“스친 것 같아.”
무엇을… 하고 대꾸하려는데, 옆 자동차에 난 기스 자국이 보였다. 아무래도 방심했나 봐. 라고 말하면서 나루호도는 난감해했다. 먼 길을 달려와서인지 이미 땀이 흥건한 이마에 더욱 땀이 흐르고 있었다.
미츠루기는 들고 있던 가방을 열었다. 거기서 메모 용지와 펜을 꺼냈다. 쓱쓱 자신의 연락처와 이름을 썼다. 그리고는 자전거 탓에 기스가 난 차의 와이퍼에 끼웠다.
“이제 됐지.”
“미츠루기…?”
“나 때문에 여기까지 온 것 아닌가. 그럼 이 정도는, 내가 처리할 수 있어.”
“……”
당황해 사색이 되었던 얼굴에 점점 생기가 돌아왔다. 감동을 한 것처럼 눈을 반짝거렸다. 나루호도의 시선에 미츠루기는 부끄러운 듯 눈을 피했다. 자신의 맨션을 바라보았다. 쑥스러웠다.
나루호도는 미츠루기의 그 행동에 처음에는 진지하게 메모를 뽑아버릴까 고민했다. 자신의 잘못으로 인한 것인데 어째서 미츠루기가 그 값을 치러야 하는 것인지 반발심이 들었다. 하지만 그의 호의를 정색하고 거절하기가 어려웠다. 게다가 미츠루기도 꽤 기분 좋아 보이는 미소를 지으며 기꺼이 처리해주겠다는 얼굴을 하고 있어, 나루호도는 순수하게 그 호의를 받아들이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눈을 반짝거릴 수 있었다.
그리고 꽤 멋있기도 했고.
그동안 속으로 귀여워만 하고 있었는데, 사실 미츠루기는 멋있는 녀석이었지. 나루호도는 새삼스레 친구의 책임감과 재력과 유능함을 깨달았다. 지금이야 술을 마시고 자신의 등에 기대어 집에 온 친구였지만, 바깥에서는 소문이 자자한 귀신 검사였다. 몇 개의 사건을 무죄로 해결해냈지만, 그래도 아직 미츠루기에 비하면 나루호도가 부족한 점이 있는 것은 사실이었다.
이 정도는 의지해도 되겠지. 나루호도는 미츠루기가 맨션으로 팔랑팔랑 손을 흔들며 들어가는 것을 끝까지 지켜보다, 다시 자전거에 올라탔다. 올라타기 전 와이퍼에 미츠루기가 끼워 둔 메모를 다시 보았다.
정갈한 글씨체로 아라비아 숫자와 이름을 써 두었다. 서체만 보아도 믿음이 갔다. 정당한 보상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나루호도는 다시 한번 그 메모를 뽑을까 말까 고민하다가 그대로 두었다.
그리고 다음 주가 되었고, 나루호도는 미츠루기에게 연락했다. 차주로부터 연락은 오지 않았다고 했다. 그리고 아마 앞으로도 연락이 오지 않을 것 같다고 미츠루기가 말하는 것에 나루호도는 되물었다.
“왜?”
“…만일 자네의 연락처를 꽂아두었다면, 연락이 왔겠지만.”
“어째서?”
“글쎄. 왜일까?”
미츠루기는 바쁘다며 전화를 끊었다. 나루호도는 귀신에 홀린 것 같은 기분이 되어 자리에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미츠루기는 그 차의 주인을 알고 있었다. 옆집의 주민이었다. 늦은 퇴근길에 몇 번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흔치 않은 빨간 스포츠카를 소유하고 있는 것에 궁금증이 생겼는지 말을 걸어왔던 것이다. 그는 그 물음에 몇 번 대답해주었다. 나중에는 통성명을 했다. 이름을 듣고 나서 미츠루기는 떠올렸다. 그는 경찰 관계자였다. 그도 미츠루기가 검사인 것을 눈치챈 듯 어색하게 웃었다.
그러니 당연히 연락하지 않겠지.
미츠루기는 서류를 넘기며 생각했다. 나루호도에게 빚을 지운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그가 자신을 위해 한 일에 대해서는 몇 번을 감사해도 갚기 어려운 일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물론 해외에서 돌아오는 길에 코로시야의 일을 함께 해결해내기도 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여겼다.
이 정도로는 아직 멀었다.
미츠루기는 전날의 여파로 몰려오는 피로감에 잠시 눈을 감았다. 떠오르는 것은 어제의 밤이었다. 가빠지던 숨소리와 조용히 굴러가는 두 바퀴, 조금씩 들썩거리는 몸, 어쩐지 뜨거움이 가라앉지 않던 두 볼.
축축하게 젖어 있던 푸른 재킷에 기댔을 때, 기묘한 리듬으로 뛰던 심장. 마치 처음 듣는 악곡을 연주하는 것처럼 삐걱삐걱, 하고. 셔츠가 바스락거리는 소리마저 음악 같았다. 덜커덩, 방지 턱을 넘었을 때 쿵, 하고 가라앉았던 것.
무엇이었을까?
미츠루기는 더 생각하지 않았다. 다만 그 가로등의 불빛을 기억했다. 주황빛으로 느릿하게 반짝거리며 밤 풍경에 금을 긋듯이 스쳐 갔다. 가빠지는 친구의 숨소리와 함께, 그 빛이 선명하게 눈언저리에 새겨졌다.
나루호도는 귀신에라도 홀린 듯 자리에 앉아 있었다. 마지막 미츠루기의 말이 여전히 귓바퀴를 맴돌고 있었다. 천천히 그날을 되짚어보면 답은 나왔다. 그 곳은 미츠루기의 맨션이었다. 주차장에 있는 차는 그 맨션의 입주민의 차였을 것이다. 그러므로 어쩌면 그 차의 주인은 미츠루기를 알고 있는 사람일 수도 있었다. 그러니 굳이 연락을 하지 않았을 수도 있고, 양심 있게 쪽지를 남기고 간 것에 감동한 것일 수도 있었다.
어느 쪽이든 미츠루기는 사실대로 대답해주지 않겠지만, 짐작은 갔다.
그는 기지개를 쭉 켰다. 그날 미츠루기를 그렇게 데려다주고 나서도 한참을 뒤척거리다 잠이 들었다. 처음엔 그에게 괜한 일을 시켰다는 불안감인가 하고 여겼다. 제멋대로 자전거를 태워주겠다고 허세를 부렸다가 옆 차에 흠집이나 냈던 스스로에 대한 자괴감인가 싶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게 아니었다.
허리에 들러붙은 온도와 압박감이 사라지지 않았다.
마치 그때 딱 달라붙었던 미츠루기가 그대로 집에 따라온 것처럼. 괴이한 상상이었지만 사실이었다. 혹시나 해 자신의 허리를 더듬고 등 뒤를 탁탁 쳐보아도 역시 아무것도 없었다. 자다가 등 뒤를 긁는 사람이 되어 기분이 머쓱해졌다.
나루호도는 한숨을 쉬었다.
덜커덩 자전거가 흔들렸을 때 꼭 안겼던 미츠루기가 축축한 재킷에 기댔을 때 화들짝 놀랐다. 심장이 멈추는 것 같았다. 부끄럽기도 했다. 평소 청결함에 심혈을 기울이는 것을 알고 있는 탓에 더더욱 미안했다. 불쾌해할 것 같았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지.
미츠루기는 그런 기색이 아니었다. 그래서 웃을 수 있었다. 자전거 자랑도 할 수 있었다. 태워준 것에 대해 답례라고 말할 수 있었다.
나루호도는 점점 확신이 들었지만, 눈을 깜빡거려 그것을 몰아냈다.
섣불리 판단하고 싶지 않았다. 사람의 마음 분야에는 그리 자신이 없었다. 그는 과거 실패했던 연애의 기억을 떠올렸다. 그때는 너무 빨리 자신의 마음을 정했다. 상대도 자신과 마찬가지일 것이라 혼자 자신했다. 그리고 결국 파국을 맞았다.
나루호도는 자리에서 일어나, 커피를 한 잔 만들었다. 조용히 손을 움직이자 시끄러웠던 마음이 가라앉았다. 오늘은 기필코 집에 일찍 돌아가 푹 쉬면서, 그동안 이어졌던 저녁 약속에 보지 못했던 예능 프로라도 보며 생각 없이 웃을 것이라 결심했다.
생각 없이.
그 정도면 충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