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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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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shed:
2026-06-29
Words:
3,661
Chapters: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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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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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F 선상의 살인사건

Summary:

1927년, 라벨은 미국으로 가는 배에 탑승하게 됩니다. 골치아픈 일이 생기게 됩니다.

Notes:

이 작품은 픽션이며 등장인물은 거의 실제와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작중 배경은 겨울이며 등장인물들은 그에 맞는 복장을 입고 있습니다.
시대상 고증이 어긋날 수 있습니다. 큰일입니다.
26.6.30. 조금 업데이트 했습니다. 전체 줄거리 상 바뀐건 없습니다.

(See the end of the work for more notes.)

Work Text:

배는 잔잔한 수면을 가르며 나아갔고 차가운 북대서양의 바람은 폐를 한바퀴 휘돌며 코로 나왔다. 모리스 라벨은 숨을 깊게 내쉬며 바다를 향해 손을 휘저었다.

'하나 둘 셋, 하나 둘 셋...'

구름이 드리운 어느 무도회장... 그리고 춤추는 사람들...

'무슈 라벨, 바람을 즐기고 계신가요?'

라벨은 황급히 팔을 내린 채 뒤를 돌아봤다. 그곳엔 풍채 좋은 중년 남성이 미소를 지은채 서 있었다.

"제 소개가 늦었군요! 저는 모렐이라고 합니다. 당신을 실제 보게 될줄은 상상도 못했는데 말이죠."

그러고서는 웃음을 터트렸다. 라벨은 약간 경직된 상태로 말했다.

"안녕하십니까, 무슈 모렐. 저희가... 아는 사이인지요?"

모렐은 멋적은듯 모자를 만지며 말을 이었다.

"아닙니다. 제가 일방적으로 알 뿐이죠. 당신의 팬이에요. 하지만 그냥 팬은 아니랍니다. 저에게 아주 귀중한 악보가 있거든요. 그 악보에 꼭 싸인을 받으려고 여기까지 왔죠."

그제서야 살짝 긴장을 푼 라벨은 그를 훑어보며 말했다.

"어떤 악보인가요?"

"아! 직접 보시면 좋겠네요. 제 선실로 오시겠습니까?"

라벨은 조금 고민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모렐은 환하게 웃으며 이쪽입니다! 하고 소리쳤다.

 

🐿 🐿 🐿

 

모렐의 방은 B갑판에 위치하고 있었다. 방 내부는 약간 어수선했는데, 막 쓰기 시작한 편지와 타자기로 작성된 서류가 책상에 어지럽게 널려있었고, 방 내부는 나무상자, 서류가방과 트렁크가 굴러다니고 있었다.

"방이 좀 어수선 하죠? 그래도 악보가 어디있는지는 확실히 안답니다!"

모렐은 그렇게 말하며 검은 서류가방의 자물쇠를 풀었다. 달칵 하며 열린 가방 안엔 두꺼운 악보책이 들어있었다.

"이건..."

"라벨씨라면 알아보실거라 생각했습니다."

안에 들어있는건 다프니스와 클로에 총보였다. 들고 다녔다는걸 믿을수 없을정도로 깨끗한 상태였다.

"총보 초판이랍니다. 제 보물 1호죠! 제가 다프니스와 클로에를 몇번이나 봤는지 짐작도 못하실겁니다."

'확실히 짐작도 안가긴 하는군...'

모렐은 책상 위를 슥슥 치우더니 총보를 조심스럽게 올려놓았다. 그리고선 주머니에서 만년필을 꺼내 라벨에게 내밀었다.

라벨은 펜을 받아들고 끼적인뒤 말했다.

"성함을 써드릴까요? 무슈..."

"아, 에티엔 모렐입니다."

"에티엔. 모렐. 자, 됐습니다."

"좋아요, 정말 감사합니다."

모렐은 총보를 집어들더니 가방 내부에 세워서 기대어 놓았다. 그러더니 열린 가방을 그대로 책상위에 올려놓았다.

"제가 방에 있는 한은 방문자들이 볼 수 있게 전시할 예정입니다."

라벨은 곰곰이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모렐은 라벨에게 악수를 청하며 말했다.

"모레면 새해가 되죠. 신년파티를 하게 될텐데 그때 다시 만날 수 있으면 좋겠군요."

"알겠습니다. 그렇게 되겠지요."

라벨은 그 말을 마지막으로 모렐의 방을 나섰다. 코트자락을 멋지게 휘날리며 방을 나선 라벨...은 누군가와 정면으로 부딪힐뻔 했다.

"이런, 괜찮니?" 

부딪힐뻔한 사람은 아이이라기엔 나이가 많고 어른이라기엔 나이가 적은 사람이였다. 소년은 말했다.

"와, 무슈 라벨이잖아요! ...아. 여긴 모렐.... 모렐씨는 잘 계신가요?"

"응?"

소년은 흠칫 하더니 대답을 듣지 않고 뛰어가버렸다. 동시에 키가 크고 안경을 쓴 남자가 소년을 쫓아다가다 라벨을 보고 급하게 멈춰섰다.

"아! 헉, 헉, 무슈 라벨이시죠?! 이런, 줄리앙! 도망가봤자 헉, 여긴 바다 한가운데란다! 헉, 아, 안녕하세요, 라벨씨! 저는 앙리 들라투르라고 합니다. 앙리라고 불러주세요! 후, 후우."

당황한 라벨은 말했다.

"굉장히 바빠보이시는군요. 무슈 앙리."

"바빴죠! 하지만 라벨씨를 보는것보다 더 바쁜일이 있겠습니까?"

"사랑 고백이라도 하시는건가요?"

"하하! 그 정도는 아닙니다."

그러더니 앙리는 주변을 둘러본 뒤 눈썹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런데 얘기하기엔 별로 좋지 않은 곳이군요. 같이 갑판으로 가시겠습니까?"

라벨 역시 주변을 둘러보자, 자신이 아직도 B12라고 적힌 문-모렐의 방문-앞에 서 있다는걸 알게됐다.

"일단 같이 가시죠."

라벨은 말했다.

 

🐿 🐿 🐿

 

"하, 대서양의 공기는 참 맑군요! 오늘은 바람도 따라주는군요."

"그렇군요."

"여기까지 왔으니 이제 부탁드릴게 있습니다."

그렇게 말한 앙리는 조심스럽게 손을 코트속에 넣더니.... 빳빳한 고급종이와 만년필을 꺼냈다.

"바로 싸인이죠! 이 순간을 얼마나 기대했는지!"

"아. 네네... 앙리씨에게.. 라고 싸인해드릴까요?

"네! 고맙습니다! 이런, 그런데 아마 에티엔... 모렐에게 먼저 싸인을 해주셨겠군요."

"음? 모렐씨와 아는 사이십니까?"

"네, 네. 친구였고 사업 파트너였죠! 이젠 아니지만."

먼 바다로 시선을 돌린 앙리는 그렇게 말하더니 라벨을 향해 고개를 홱 돌리고 말했다.

"그 녀석과 가까이 지내시면 안됩니다. 절대로요!"

'그럴 생각 없었는데.'

라벨은 생각하며 물었다.

"무슨일이 있었던 겁니까?"

"말하자면 복잡합니다. 그리고 줄리앙 문제도 있고요."

"아. 아까 쫒고 계시던 아이 이름이 줄리앙인가요?"

"네. 에휴..."

앙리는 푹 한숨을 쉬고 말을 이었다.

"어떻게 이 배에 탄건진 모르겠네요. 그렇다고 제가 참견하기엔 너무 선을 넘는것 같아서."

그러더니 시계를 보더니 화들짝 놀라 말했다.

"이런! 약속시간이 지나버렸네요!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싸인 감사합니다, 라벨씨!"

"아, 예."

라벨은 어색하게 손을 까딱거렸고 앙리는 바람처럼 사라졌다.

라벨은 수평선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내가 그렇게 유명한건가-여기 배에 탄 사람들은 전부 날 알고 있는건가?

 

🐿 🐿 🐿

 

저녁식사 시간이 되자 라벨은 자신이 생각했던게 어느정도는 사실이라는걸 알게되고 말았다-식당에 들어가자 마자, 자신에게 이목이 확 쏠리는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무슈 라벨, 싸인을 부탁드립니다."

"사진 찍어도 될까요?"

"라벨 거장님! 선물을 받아주세요!"

"네, 여기 있습니다. 사진 찍기엔 조금 혼란스럽군요. 선물. 네, 감사합니다,"

"무슈 라벨, 지내기 힘들어보이시는군요."

선물을 한아름 안은 라벨은 말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 드레스를 입은 아름다운 여인이 서 있었다.

"안녕하세요. 마들렌이라고 해요."

그녀는 향수의 궤적을 그리며 라벨에게 다가왔다. 닿을듯 말듯한 거리에서 마들렌은 팔을 내밀며 말한다.

"여기, 제 장갑에 싸인을 부탁드려요."

라벨은 예의바른 미소를 지으며 (짐을 땅에 내려놓은 다음에) 주머니에서 펜을 꺼내 장갑에 싸인을 했다. 마들렌은 팔을 거두며 말했다.

"고마워요."

"기쁘시다니 다행입니다. 마드모아젤."

마들렌은 라벨을 가만히 바라보더니 입을 열었다.

"모렐과 만나신것 같군요."

라벨은 슬슬 당황한 표정으로 말했다.

"당신도 모렐씨를 아시나요?"

"알죠. 그리고 알지 못했으면 좋았을거라고 생각하고 있답니다."

"오늘따라 그런 얘기를 자주 듣는 기분이군요..."

마들렌은 잠시 심호흡을 하더니 말했다.

"그 이는 적이 많죠 - 모렐과 너무 친해지지 마세요. 제가 라벨씨를 좋아해서 하는 말이랍니다."

'...이건 또 당혹스럽군.'

"모렐씨와는 완전히 그저 작곡가와 팬으로써 만난 관계일 뿐입니다."

라벨은 고민하다 덧붙였다.

"안심하시지요."

그 말을 들은 마들렌은 부드럽게 돌아서더니 말했다.

"또 만날 수 있으면 좋겠네요."

"음."

그 말을 남긴채 마들렌은 식당에서 사라졌고 라벨은 하릴없이 손을 까딱했다.

잠시 소강되었던 소란은 다시 돌아왔고, 라벨은 자리를 잡고 앉아 음식을 서빙받기 시작했다. 조용한 식사를 기대했으나...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반짝이는 눈빛으로 바라보는걸 느낄 수 있었다. 

'이러다간 소화가 전혀 안될 것같군.'

라벨은 마침 서빙된 식사를 무르고, 근처에 굴러다니던 선물들을 주워 챙겼다.

"거장 라벨...."

"고맙습니다만 여러분,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본 아페티!"

다시 접근하던 사람들을 물리친 라벨은 자기 키보다 높게 쌓인 선물을 들고 비틀비틀 식당을 나섰다.

 

🐿 🐿 🐿

 

"휴... 음. 마카롱. 넥타이. 허. 너무 길군. 보타이. 색깔이 마음에 안드는데. 또 마카롱. 이걸 다 먹었다간 살이 찌겠군. 다람쥐 인형? 이건 무슨 뜻이지?"

선물을 정리하던 라벨은 외출복 차림으로 침대에 털썩 누웠다.

"하아. 피곤한데 잠이 안오는군. 끼니를 걸러서 그런지."

'...주방에 부탁해서 비프 타르타르라도 만들어달라고 해볼까? 레어 스테이크나?'

"음..."

라벨은 시계를 들여다보았다. 새벽 1시였다.

"무린가...."

그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다... 허리를 짚으며 천천히 일어났다.

"윽. 이런. 갑판이라도 나가볼까."

라벨은 모자와 외투를 챙겨서 밖으로 나갔다.

방을 나서자 소금기 섞인 습한 바람이 훅 풍겨왔다. 라벨은 천천히 갑판을 향해 걸어가다가... 누군가가 헐떡이며 뛰어가는걸 간신히 피했다.

"...줄리앙?"

아까 부딪힐뻔 했던 소년을 알아본 라벨은 고개를 돌려 소년을 바라보았다.

줄리앙은 몸을 웅크린 채 무언가를 품에 꼭 안고 있었다. 그는 헐떡이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헉, 헉.... 무슈... 제가, 제가 아니에요!"

그렇게 말한 줄리앙은 아까처럼 휙 뛰어가 사라져버렸다.

"대체 무슨..."

'그나저나, 품에 안고 있던건... 아까 모렐씨의 방에서 봤던 총보같이 생겼는데. 설마...'

라벨은 두번이나 모렐에 대한 경고를 들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하지만 소중한 다프니스와 클로에 초판이 소실되는걸 원하지도 않았다.

'방금 그게 초판 총보가 맞다면 말이지.'

라벨은 빠른 걸음으로 모렐의 방을 찾아갔다.

'B12였던가... 문이 열려있군.'

라벨은 빛이 환하게 쏟아져 나오는 문을 열었다. 방 중간엔 모렐이 엎어진 채 미동도 없이 쓰러져 있었다.

"....모렐씨?"

숨을 죽인채 무서울 정도로 조용한 방 안으로 들어간 라벨은 잘그락 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유리조각인가?'

유리조각을 피해 모렐 곁에 앉은 라벨은 조심스럽게 모렐의 옷을 붙잡고 흔들었다.

"모렐씨, 모렐! 정신 차리세요!"

라벨은 불안하게 모렐의 손목에 손을 댔으나, 황급히 손을 떼고 말았다.

'차갑군...'

"이건 대체... 모렐씨가 죽었다고?"

 

🚢 🚢 🚢

 

라벨은 순찰중이던 선원에게 모렐씨가 사망했음을 알렸고, 선원은 황급히 사무장에게 보고했다. 자다 깬 사무장은 선장에게 보고했고, 선장은 황급히 모렐의 방으로 향했다.

"흔들어도 깨어나질 않고 몸도 차갑더군요."

"겨우 6일짜리 항해에 사망 사고가 일어나다니..."

경악한 선장은 손을 휘젓더니 시신을 바라봤다.

"외관엔 전혀 이상이 없어보이는군요..."

방 안으로 들어가려고 한 선장은 잘그락 소리에 과하게 움찔하고 말았다.

"아, 발밑을 조심하십시오. 유리조각들이 흩어져 있습니다."

라벨이 말했다.

"유리조각? 창문이 깨지진 않았는데 이상한 일이군요.... 일단 선의(船醫)를 불러야겠습니다."

"시간이 이런데 깨울수 있을지 모르겠군요..."

"그런데 라벨씨, 유감스럽습니다만 당분간 빈 선실에 머무셔야 겠습니다."

"...무슨 뜻이신지?"

선장은 근엄하게 말했다.

"저는 이 상황이 단순 사망이 아닐 가능성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는건... 잠깐. 제가 모렐씨를 죽였다는겁니까?"

라벨은 당혹스럽게 말을 이었다.

"하지만 저는 계속 방에 있었는데요."

"누구나 그렇게 주장할 수 있죠. 하지만 왜 새벽에 갑자기 모렐씨의 방에 간겁니까? 다른 증거가 발견되기 전까지 다른 방에 계셔야합니다."

"다른 증거라니.... 아!"

라벨은 퍼뜩 떠올라 외쳤다.

"줄리앙! 줄리앙이 악보를 가지고 간걸 봤었는데..."

라벨이 책상 위를 주목하자, 책상 위 서류가방 안엔 먼지만 앉아있었다.

"제가 산책 겸 밖에 나갔는데 방 앞에서 그녀석이랑 충돌할 뻔했죠. 그런데 모렐씨의 악보책을 들고있는것 처럼 보여서 확인차 이 방에 온겁니다. 그런데 악보가 없는걸 보면..."

"흠! 그럼 일단 그녀석을 찾아야겠군요."

그렇게 말한 선장은 라벨에게 이어 말했다.

"그래도 줄리앙을 찾을때 까진 갇혀계셔야 합니다."

 

🚢 🚢 🚢

 

줄리앙은 1시간 만에 주방에서 발견되었는데, 흉기와 함께 피투성이로....

"무슨 생각 하고 계신가요? 라벨씨?"

"음. 아닙니다."

'추리소설이라면 그렇게 됐겠지...'

자신이 잠시 갇혀있던 선실에 갇힌 줄리앙을 보며 라벨은 생각했다.

"제발요! 선장님! 라벨씨! 저는 모렐씨를 죽이지 않았어요!"

"그런 말은 누구나 할 수 있지."

"모렐씨가 어디 아파서 돌아가신걸수도 있잖아요!"

줄리앙이 조금 더 울먹이며 대답했다.

"그게 의사가 밝혀내야 하는거지. 새벽 3시니 이제 검시는 완료될때가 됐는데.... 아, 마침 선의가 오는군요."

선장이 마지막 문장을 라벨을 향해 말했다.

라벨이 돌아보자, 눈이 퀭한 선의가 뭐라 휘갈긴 서류를 들고 다가왔다. 선의가 말했다.

"일단 밝혀진것 위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선장님. 체온으로 유추할때 사망한지 대략 7~9시간 지난것으로 추정되고..."

"7시간?!"

선장은 외쳤지만 선의는 손짓하더니 계속 이어 말했다.

"사후 경직이나 시반 상태를 봐도 6~10시간정도로 추정됩니다. 자세한 사항은 부검을 해봐야 알겠지만..."

"것 봐요!"

줄리앙이 외쳤다.

"저는 그때 주방에 있었어요! 주방장님이랑 다른 요리보조사들이 제가 있었다는걸 알거에요!"

"그만! 일단 계속 들어보고 얘기하지."

선장이 말했다.

"...에. 이게 끝이긴 합니다만... 한 가지 이상한 부분이 있긴 합니다. 목에 이상한 자국이 있더군요. 거칠게 뚫린 구멍같은게 2개나. 피가 흐른 자국이 있더군요. 마치...."

"마치?"

선장이 조급해하며 물었다.

"마치 뱀의 잇자국 같아서.... 말도 안되긴 하지만요."

"예?"

"허."

'흠.'

"다른 상처가 없으니 이게 사인으로 추정됩니다. 이상입니다."

"저는 뱀같은거 키워본 적 없어요! 진짜에요!"

"이런, 계속 울부짖어도 지금으로썬 널 풀어줄수가 없단다!"

선장이 말했다.

"왜요!"

"아무튼 너는 악보를 훔쳤잖니. 모렐씨를 죽이지 않았더라도 충분히 범죄는 범죄야."

"아..."

그렇게 중얼거린 줄리앙은 웅크려서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음. 그럼 저는 가봐도 되겠군요. 그때 제가 식당에 있었다는걸 이 배에 탄 모든 사람들이 알겁니다."

"흠. 그렇습니까. 알겠습니다. 아. 악보는... 당분간 라벨씨가 보관해 주시겠습니까? 바닷바람에 상할까 걱정되는군요."

"음... 어쩔수 없죠."

라벨은 악보책을 받아들며 조용히 말했다.

"그럼 이제 여기서 해산하도록 하죠. 밀린 잠도 자야 하고요."

"네. 저도 슬슬 자야하니..."

잠은 안오겠지만, 이라고 생각한 라벨은 마지막으로 줄리앙을 돌아봤다. 방금까지 웅크리고 있었던 줄리앙은 문틈에 붙어 라벨을 바라보고 있었다.

"헉."

"저기, 무슈 라벨... 제 얘기좀 들어주시면 안될까요."

선장과 선의는 이미 저만치 멀어진 상태였고 라벨은 보초를 서고있는 선원의 눈치를 보며(그리고 악보책을 등뒤로 숨기며) 줄리앙에게 다가가서 몸을 굽혔다.

"뭐지?"

"사실 저를 절도죄로 처벌할 순 없어요. 왜냐면... 제가 모렐의 유일한 상속자거든요. 모렐씨는 제 아버지에요."

라벨은 경악하며 되물었다.

"뭐? 아니, 왜 이런걸? 잠깐, 그럼 네가 정말 모렐씨를 죽인거냐? 상속문제로?"

"아뇨! 아니에요... 저는 사생아라서 상속권이 없었어요. 뭐 그랬었는데, 모렐씨가 돌아가시면서 복잡해지게 됐네요."

그렇게 말한 줄리앙은 이어 말했다.

"사실 제가 이 배에 탄 이유도 모렐씨 때문이였어요. 제가 어릴땐 잘 대해줬었는데... 같이 다프니스와 클로에도 봤죠. 옛날 이야기지만. 그 때의 추억이 아쉬워서 소중하신 악보를 제가 가져가려고 했죠."

"이 이야기를 왜 나에게 하는거니?"

"라벨씨 때문에 제가 감금됐잖아요. 하지만 이젠 그 이유가 없어졌으니 선장님에게 저를 풀어달라고 하실수 있잖아요. 부탁드려요!"

줄리앙은 문틈으로 애절한 눈빚을 보냈다. 라벨은 말했다.

"그렇다고 해도 이게 살인 사건일수도 있다보니, 진짜 범인이 밝혀지기 전까진 어떻게 해 줄수가 없구나."

"제가 범인을 지목하면요?"

"응?"

"분명 마들렌 보트랭 그사람일거에요."

'마들렌...? 그 사람도 모렐씨와 악연이 있던것 같은데.'

라벨은 생각했다.

"그 사람도 라벨씨를 좋아할거에요. 콘서트에서 모렐이랑 만났거든요. 흥..."

"그래, 넌 마들렌씨랑 무슨 악연이 있니?"

"음... 이건 말하기 좀 그런데. 아버지도 돌아가셨고."

그러고선 줄리앙은 희미하게 웃었다.

"이젠 아버지라고 마음대로 불러도 누가 뭐라고 안하겠죠. 보트랭씨는 간호사였는데, 콘서트에서 만나 아버지 지병을 관리하는 간호사가 됐다던가. 그렇게 시작한 사이였지만 결국 그렇고 그런 사이가 됐어요. 아이도 생겼었죠. 아이가 생기자 마자 아버지는 저를 다 쓴 장부마냥 내팽겨쳐버렸어요."

줄리앙은 숨을 들이쉰 다음에 이어말했다.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죽어서 모든게 엉망이 됐지만. 아버지는 보트랭씨도 몸이 잘못됐다며 내쫒아버렸어요. 결혼했던것도 아니라서 한푼도 받지 못했을거에요."

'모렐씨, 생각보다 쓰레기였군...'

"어때요. 그정도면 충분히 죽일만 하지 않겠어요?"

"얘야, 얘기는 고맙다만, 많은게 이해가 됐거든."

라벨은 몸을 펴며 근엄하게 말했다.

"하지만 말이야, 나는 탐정이 아니란다."

그렇게 말한 라벨은 모자를 고쳐쓰고, 바람처럼 독방 앞을 떠났다.

 

🚢 🚢 🚢

 

"...."'

'라고 말은 했지만 얘기까지 다 들어놓고 아무것도 안하기엔 너무 부담스럽군.'

한숨을 내쉬던 라벨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침에 일하는 사람들이 벌써 분주하게 돌아다니는 모습이 보였다. 어디서 새나갔는지 살인사건이 어쩌구 하며 속삭이는 소리도 들렸다.

'무엇보다도, 진범이 누군지 궁금하군. 설마 정말 마들렌씨?'

고민하던 라벨은 일단 함교로 가서 선장을 찾았다. 꽤 심란한 표정을 짓고 있던 선장은 라벨을 보자 애매하게 반기는 손짓을 했다.

"무슨일이십니까?"

"선장님. 아무래도 모렐씨의 방을 제가 둘러봐야 할 것 같습니다."

"예? 무슨일이시죠?"

"저 똑똑한 소년이 저때문에 자기가 누명을 썼으니 제가 누명을 풀어줘야 한다고 우기더군요."

"누명이라뇨, 악보를 훔친건 사실이지 않습니까?"

"그것도 자기가 상속받을 예정이 되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주장하더군요."

"흠, 뭔가 복잡한 사정이 있는것 같군요. 하지만 라벨씨, 당신이 범인이고 은폐하려는 의도가 아닌지 어떻게 압니까?"

"범행시간에 전 식당에 있었습니다. 그 다음엔 제 방에서 선물을 뜯고 있었고요. 사망추정시간과 일치하는 시간이니 문제 없다고 봅니다."

그리고선 뜸을 들이고 말을 이었다.

"개인이 수사하는게 문제라 그러시는 거라면 그만 두겠습니다. 제가 봐도 이상한 상황이긴 해서..."

"아니, 아닙니다. 시신도 이미 치운 상태라서요. 아무것도 가져가지만 않으시면 괜찮습니다."

"아, 그러면 괜찮겠습니까?"

"이건 라벨씨, 당신의 명성 때문이기도 하지만, 사건때문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기도 해서 그렇습니다. 길지도 않은 항해에 이런일이..."

한숨을 푹푹 쉰 선장은 이어 말했다.

"그렇지만 사건을 해결하시게 되면 꼭 싸인해주셔야 합니다. '탐정 라벨'이라고요."

"...하...하... 너무 기대하진 마십시오. 저는 탐정이 아니니까요..."

'...일단 하나 해결한것 같군.'

함교를 나오며 라벨은 생각했다.

라벨은 모렐의 방으로 향했다. 앞에선 선원 둘이 지키고 있었는데, 한명은 심드렁하게 경비를 섰고 한명은 눈을 반짝이며 라벨에게 물었다.

"아! 라벨씨! 듣기로는 후계자가 재산을 얻기위해 뱀을 부려 모렐씨를 독살했다고 하더라고요! 맞나요?"

"전혀 아닙니다. 뱀이 나왔으니 다음엔 용이 나올지 궁금하군요."

그렇게 말한 라벨은 선장에게서 받은 위임장을 보여줬다.

"지금은 방을 좀 조사... 에잇. 조사하러 왔습니다. 어쩌다 보니."

"아! 그러신가요? 뭔가 탐정같고 멋지네요! 선장님이 쓰신게 맞는것 같군요... 뭐, 천천히 둘러보세요!"

'마치 집이라도 보러 온것 같군...'

라벨은 선원에게 까딱 손짓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다행히 시신이 있던 자리만 빼고 거의 비슷해 보이는 상태로 보존되고 있었다. 라벨은 이때까지 품에 안고있던 악보책을 책상위 가방 속에 올려놓았다.

'결국 이 자리로 돌아오게 되었나...'

라벨은 책상 위를 살펴보았다. 책상위엔 쓰다만 편지(연애편지로 보였다), 각설탕 병, 타자기로 쓴 서류(소송 관련? 영어로 써져있어 추측만 가능했다), 잉크병, 흘려쓴 메모가 있었다.

'오후 6시 반...인가? 판별하기 힘들군.'

라벨은 뒤를 돌아봤다. 뒷쪽엔 나무상자가 있었는데, 처음 싸인해주러 방에 들어왔을땐 분명히 닫혀있었지만 지금은 열려있었다. 라벨은 가까이 다가가 관찰했다.

상자 내부는 코르크와 금속으로 덧대어져 있었는데, 안 쪽에 물이 고여 있었다. 아래쪽은 여닫이 서랍으로 되어있었는데, 오른쪽 칸은 텅 빈 채 열려있었다.

라벨은 왼쪽 칸의 문을 열어보았다.

'이건....'

그 안에 유리병 몇 개와 금속과 유리로 만들어진 주사기가 2개 들어있었다.

'유리!'

라벨은 바닥을 보았다. 작은 유리파편이 점점이 흩어져 있었는데, 구석지엔 금속 조각이 보였다. 가까이서 살펴보자 주사기의 밀대(plunger)와 바늘이라는걸 알아볼 수 있었다.

'...안경이 있었으면 좋았을텐데.'

라벨은 파편을 집어들지 않은채 웅크리고 앉아 가까이서 관찰했다.

'바늘이 두껍고 무디군. 이 정도의 두께라면...'

그 순간, 갑자기 밖이 소란스러워졌다.

"라벨씨! 수상한 사람이 나타나서 붙잡았습니다!"

"앗! 저, 저는 수상한 사람이 아니랍니다! 진짜에요!"

'이건 또 무슨일이지.'

밖으로 시선을 돌린 라벨은 선원에게 붙잡힌 앙리를 발견하게 되었다.

"아! 라벨씨! 여긴 어쩐일로 오셨나요!"

앙리가 묻자, 라벨이 되물었다.

"저야말로 그걸 묻고 싶습니다."

"아! 전 그냥 무슨일 있나... 하고, 윽. 놔주시죠!"

"아는 사이십니까?"

선원이 의아하게 말했다.

"보증할만큼 아는 사이는 아닙니다만, 모르는 사이라고 하기도 어렵군요."

"네! 라벨씨, 저 좀 구해주십시오!"

"아이고, 일단 나갑시다."

라벨은 앙리를 데리고 갑판으로 나갔다.

"휴! 큰일날 뻔 했네요!"

"방엔 왜 오신겁니까? 사건 현장인데요."

"아... 모렐이 죽었다는 얘기를 듣고... 어. 진짜인지 확인해보고 싶었습니다."

"진짭니다. 모렐씨는 사망했고 시신은 의무실로 옮겨진 상태입니다."

"그...그렇군요."

앙리는 심호흡 하더니 말을 이었다.

"사실 나쁜놈이긴 했지만 그래도... 안타깝네요."

"음. 그런데 혹시 모르니 물어봐야겠습니다. 혹시 저녁 식사 시간에 어디에 계셨습니까?"

"아? 에? 헉! 지금 절 의심하시는건가요!!"

앙리는 펄쩍 뛸 기세로 물었다.

"모렐씨와 관련 있는 사람은 전부 확인해야 해서 어쩔 수 없네요. 말해주셔야 합니다."

"저는... 제 방에서 식사중이였습니다."

앙리는 어깨를 으쓱하고 말을 이었다.

"식당에 사람이 너무 많다더라고요."

"음. 그렇습니까."

'알리바이가 없군...'

라벨은 생각했다.

"저는 잘못한게 전혀 없답니다! 엄. 라벨씨. 그럼 저는 이만 가봐도 되겠습니까?"

"음. 일단 그러시지요."

"넵! 라벨씨, 봉 쿠라주!"

그러고선 앙리는 종종 걸음으로 사라졌다.

라벨은 모렐의 방으로 돌아가 지키고 있던 선원에게 물었다.

"혹시 보초를 서는 동안 다른 사람이 오진 않았습니까?"

"어, 아뇨! 솔직히 방 근처에 독사가 있을지도 모르는데 다들 굳이 근처에서 돌아다니진 않겠죠."

'흠. 그럼 앙리씨는 왜 방 근처에서 어슬렁 거리고 있었는가. 수상하군....'

라벨은 방 안을 한번 더 둘러보았다.

'트렁크 안에는 옷 밖에 없고... 침대는 사용한 흔적이 없고...'

순간 라벨은 누군가가 죽었고 그 때문에 침대가 사용하지 않은 채로 남았다는 사실에 현기증을 느꼈다.

'이런...'

라벨은 심호흡했다.

'사람이 죽었다는걸... 왠지 무시하고 있었어.'

"후..."

라벨은 자세를 바르게 한 뒤 옷 매무새를 정리했다.

'정신차리자. 내 일은 아니더라도... 왠지 책임이 생겨버렸으니.' 

 

🚢 🚢 🚢

 

마들렌을 찾던 라벨은 운 좋게도 식당으로 이어지는 길에서 그녀를 발견하게 되었다. 

"아, 마들렌씨. 찾고 있었습니다."

"찾고 계셨다니 기쁘군요."

마들렌이 살짝 웃으며 말했다.

"혹시 저와..."

"아니, 그냥 조사중일 뿐입니다. 어쩌다보니요."

라벨이 단호하게 말했다.

"허. 무엇을 조사하고 계신가요."

"못들으셨습니까? 모렐씨가 사망했습니다."

마들렌은 눈썹을 올리더니, 고개를 돌렸다.

"이상한 소문이 돌더니 그 이 얘기였던건가요."

"모르셨던겁니까?"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고 짐작은 하고 있었어요."

"흠... 뭔가 아는게 있다면 좀 얘기해주실수 있겠습니까."

"글쎄요. 결국 저완 관계 없는 일이긴 하죠."

'회피적으로 구는군.'

라벨은 눈을 가늘게 뜨려고 했지만, 곧 포기하고 힘을 풀었다.

"어제 오후 6시에서 8시 사이에 뭘 하고 계셨습니까?"

"이런, 저를 의심하는건가요?"

라벨을 똑바로 바라보며 마들렌이 말했다.

"지금으로썬 모두가 의심스럽습니다."

"이 배에 탄 사람이 천 명이 넘을텐데 하필 저를요?"

'...만만치 않군.'

"모렐씨를 피하라고 언급한건 당신이잖습니까. 그리고 당신을 범인으로 지목한 사람도 있습니다."

마들렌은 잠시 당혹스러워하더니 평정을 되찾았다.

"누가 저를 범인으로 지목했나요?"

"그건 알려드릴수 없습니다. 혹시라도 보복이 돌아가면 큰일이니까요."

"흥. 의심가는데가 있긴해요. 줄리앙이죠?"

라벨은 놀란 표정을 빠르게 감췄으나 마들렌은 표정변화를 쉽게 포착 해냈다.

"그럴 것 같았어요."

"아니, 어떻게 아신겁니까?"

"줄리앙만큼 저를 싫어하는 사람도 없을걸요. 제가 자기 아버지를 뺏어갔다고 생각하고 있거든요."

"음. 예전에 모렐씨와 어떤 관계인지 약간 듣긴 했습니다만..."

"그래요. 그 인간은 날 버렸어요. 아이도 밸줄 모르는 여자라고요."

마들렌이 내뱉었다.

"그럼 당신이 모렐을..."

"그건 아니에요. 그 사람은 죽일 가치도 없는 인간인걸요. 게다가..."

마들렌은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

"저는 그때... 선장님하고 식사하고 있었어요."

"선장님 하고요?"

"네, '식사'요. 아주 달콤했답니다."

"...."

'나중에 선장과 얘기를 맞춰봐야겠군.'

"일단 알겠습니다만.... 다시한번, 뭔가 알고 계신게 있다면 얘기해주십시오. 범인이 아니라면 말해주실수 있잖습니까."

마들렌은 고개를 숙이고 고민하더니, 이내 말했다.

"좋아요... 나쁜 사람이긴 했어도 라벨씨가 도와달라고 하신다면야. 그 이는 지병이 있었어요... 예전엔 제가 그걸 관리하고 있었죠."

"어떤 지병이였죠?"

"당뇨였죠.... 항상 각설탕과 인슐린을 들고다녀야 했어요."

"인슐린?"

"새로 발명된지 얼마 안 된 약이에요... 복부나 다리에 주사를 놔주곤 했죠."

'주사... 모렐의 방에 각설탕과 주사기가 있었지.'

"각설탕은 왜 필요하죠?"

"인슐린으로 혈당이 과도하게 떨어지면 쇼크로 쓰러질수 있어요. 그 때를 위해 필요해요."

'의학 시간인가. 복잡하군. 요점으로 들어갈까.'

"혹시 인슐린이라는걸 과다하게 몸에 주사하면 무슨일이 생깁니까?"

라벨은 불안하게 물었다.

"죽어요. 제가 알기론 쇼크가 오고, 빨리 각설탕을 먹지 않으면 죽습니다."

마들렌은 단호하게 말했다.

'목의 자국... 2개... 인슐린 주사... 배에 놓는 주사를 목에 놓은건가...? 2번이나? 왜 눈에 띄는 목에?'

머리가 어지러워지기 시작한 라벨은 마들렌에게 말했다.

"알겠습니다. 도와주셔서 고맙습니다."

'이게 정말 살인일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군...'

 

🚢 🚢 🚢

 

'다시 한번 선의를 만나봐야겠어. 시신을 살펴보면 뭔가 더 알아낼 수 있을지도.'

그렇게 생각하던 라벨은 발걸음을 옮겼으나, 누군가가 모퉁이에서 고개를 슬쩍 내밀고 자신을 보고 있는걸 발견했다.

'저건... 앙리인가?'

앙리는 라벨이 자신을 보고있다는걸 눈치채자 황급히 사라졌다. 라벨은 속도를 내며 앙리를 쫒아갔다.

"앙리씨! 앙리! 잠깐만요!"

"저는 잘못한게 없어요! 쫒아오지 마세요!"

그러나 수영과 산책으로 단련된 라벨의 지구력에 패배한 앙리는 이내 벽에 기대 멈췄다.

"헉, 헉... 왜 쫒아오시는거에요..."

"헉, 휴, 도망가시니까 쫒아왔죠! 수상하잖습니까."

"저는 잘못 한게 없다니까요! 왜 자꾸 절 의심하는겁니까!"

앙리는 화를 내며 발을 구르기 시작했다. 신발에서 틱틱 하는 소음이 발생했다.

'틱틱 소리... 신발 밑창에 뭔가 있나? 신발!'

라벨은 자신의 신발을 뒤집어봤다. 신발에 유리조각이 끼어서 햇살에 반짝였다.

"앙리씨. 신발 밑창좀 보여주시겠습니까?"

"예? 저... 아뇨! 제 신발 밑창에 유리가 끼어있더라도 언제 낀건진 알 수 없을거 아닙니까!"'

'그건 그렇긴 하다.'

곰곰이 생각하던 라벨은 말했다.

"유리가 끼어있을 거라고는 안했는데요."

"어.... 그야 라벨씨 신발 밑창을 보고 알아낸거죠!"

슬슬 앙리의 얼굴이 붉어지기 시작했다.

"라벨씨야 말로 수상하지 않습니까! 자기 일도 아닌데 돌아다니면서 조사하고! 뭐 증거인멸 같은거 하는거 아니에요?"

"아닙니다. 부탁을 받아서 이러고 있을 뿐이에요. 줄리앙이...."

"아? 줄리앙이요? 생각해보니 줄리앙이 안보이긴 하는데..."

"줄리앙은 지금 범인으로 의심받아 독방에 갇혀있습니다."

앙리의 붉은 얼굴이 순식간에 창백해졌다.

"줄리앙이라뇨. 소문 때문에 그런건가요? 그 착한 애가 모렐을 죽일리가 없잖아요. "

'착한가? 흥미롭군.'

"모렐이 줄리앙을 방치한 후로 계속 신경이 쓰이더라고요. 걘 요리사가 되고 싶을 뿐인 아이에요."

"앙리씨, 줄리앙을 위해서라도 뭔가 더 아는게 있다면 말해주셔야 합니다."

"저... 저는 진짜 더 아는게 없어요... 그냥 선내에 떠도는 소문 정도만 알고 있다고요... "

"혹시 인슐린..."

라벨은 그렇게 말하고 입을 가렸다.

'이런, 이 정보를 이렇게 발설하면 안됐었는데.'

"네, 네, 인슐린, 알죠. 그게 발명됐을때 에티엔... 모렐이 얼마나 기뻐했는지. 그걸로 사람이 죽을수도 있다니, 정말 무섭습니다."

"네, 잘못 주사하면 큰일난다고... 잠깐. 모렐이 죽은 이유가 인슐린 때문이라고요?" 

"아? 어...."

앙리는 당혹스러워 하더니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소문이 돌고 있지 않았나요...?"

"아니요. 오히려 뱀 독살 이야기가 돌고 있었죠. 아시잖습니까."

앙리는 얘기를 들을수록 더욱 창백해지더니, 순간 양 주먹을 움켜쥐고 싸울듯한 자세를 취했다.

'이런, 지팡이라도 있었으면 좋았으려만.'

그러다가 곧, 힘을 풀고 축 처졌다.

"하아. 그래요. 애초에 줄리앙이 갇혔다는 사실을 알았을때 오래 못 버틸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럼 당신이..."

"모렐을 죽이려고 한게 아닙니다. 그것만큼은 진짜에요."

앙리는 깡마른 몸에 어울리지 않게 눈을 형형하게 빛내며 말했다.

"그녀석이 제 회사도 뺏어갔고 명예도 뺏어갔죠. 영어는 한마디도 못하는 주제에 미국에서 뭘 하겠다는건지... 하지만, 죽일만큼 나쁜놈은 아니였어요. 애초에 소송중이기도 했고. 법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앙리는 손을 힘없이 휘저었다.

"이제 다 의미없어졌네요."

"무슨일이 있었는지 정확히 알려주시겠습니까?"

"에휴. 네. 저는 모렐이랑 식사시간 전에 약속이 있었어요. 소송 이야기를 하려고 했죠."

'책상위에 6시 반 이라고 적혀있던건 앙리와의 약속 시간이였던건가?'

"얘기하다가 점점 불이 붙으면서 언성을 높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모렐이 갑자기 쓰러졌어요. 놀라서 다가가니 식은땀으로 옷이 흥건하더군요.

"의사를 불러야 하나 생각했는데, 생각해보니 모렐이 이대로 죽어버리면 제가 의심받을것 같았어요. 이미 모렐이랑 사이가 나빠진걸 주변에서 다 알고 있었거든요.

"모렐을 아무리 깨워도 정신을 못차려서, 방 안을 뒤지다보니 아이스박스에 주사기와 약이 들어있었습니다. 모렐이 신약으로 치료하고 있다는 사실이 기억났습니다. 그래서 어설프지만 주사를 놓아봤습니다. 한 번으론 안돼서 두 번 주사했는데도 깨어나질 않더라고요. 그래서 주사기를 내팽겨쳤더니 깨져버렸습니다."

앙리는 힘없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리곤 도망쳤죠."

라벨은 조금 고민하다 말했다.

"사실 그 약은 목이 아니라 배에 주사하는 용도입니다. 그리고 사실 쇼크로 쓰러졌을땐... 주사가 아니라 각설탕을 먹여야 한다는군요."

"아..."

앙리는 눈을 내리깔았다.

"결국 그럼 제가 죽인거나 마찬가지군요..."

"...그래도 의도적으로 죽인건 아니잖습니까. 무슨말인지 아시겠습니까?"

"네?"

"선장님께 가서 자수합시다. 그게 처벌을 완화시켜주지 않을까요."

라벨은 이어서 말했다.

"그리고 줄리앙도 풀어줘야 하고요."

 

🐿 🐿 🐿

 

선장과 라벨은 줄리앙이 구금된 방 앞에 섰다.

"줄리앙. 진짜 범인이 밝혀졌다."

줄리앙의 얼굴이 확 밝아졌다.

"것 봐요! 저는 범인이 아니라니까요? 누가 아버지를 죽였죠?"

"그건 말 할 수 없어. 하지만 중요한건 네가 밀항했다는점이야."

"어..."

줄리앙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하지만 전... 주방에서 일도 도와줬고.... 아버지 따라서 탄거기도 한데..."

"그래그래, 그 점을 감안해서, 너를 다음 배편으로 돌려보내기로 했다. 애초에 미국에서 뭘 할지 계획이 있긴 했니?"

"사실 없었어요..."

"그래. 차라리 이게 나을거야. 대신! 돌아가는 배에서도 주방일을 도와줘야한다."

"정말요? 그것만으로 괜찮아요?"

"그래. 내가 선장이니 그렇게 해주마."

"와! 감사합니다!"

줄리앙은 펄쩍 뛰며 좋아했다.

"역시 라벨씨에게 맡기길 잘했어요! 모든게 이렇게 잘 해결 되다니!"

'대체 날 뭐라고 생각했던거야...'

"이걸 들라투르씨에게도 알려야겠어요! 제가 밀항한걸 신경쓰시더라고요."

"들라투르씨?"

"네. 앙리 들라투르씨요."

"음..."

선장과 라벨은 침묵하고, 서로 곁눈질 하다, 결국 라벨이 먼저 침묵을 깼다.

"사실... 들라투르씨는 구금되어 프랑스로 돌아갈거야.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렴."

"네? 왜죠? 설마..."

줄리앙의 얼굴에 핏기가 가셨다.

"하지만... 그분이 그럴리가 없는데... 그렇게 친절하신 분이..."

"의도적으로 죽인건 아니야. 그걸로 법정의 생각을 돌릴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어쩔수 없단다."

"그렇군요..."

선장은 문간에 서 있었던걸 비켜줬다.

"자, 당분간은 자유의 몸이란다."

"네..."

그렇게 터덜터덜 나온 줄리앙은 살짝 희망이 어린 표정으로 물었다.

"혹시 들라투르씨가 어디계시는지..."

"안알려줄거란다."

라벨과 선장이 동시에 말했다.

 

🐿 🐿 🐿

 

뉴욕의 하늘은 맑고 수면은 잔잔했다. 선박은 천천히 부두로 다가가 정박했고, 선원들이 밧줄을 당겨 배를 붙들어 맸다.

"무슈 라벨!"

로버트 슈미츠는 부두에 내려온 라벨과 악수를 했다.

"뱃멀미는 안하시나보군요. 여행은 즐거우셨습니까?"

라벨은 눈을 굴리며 말했다.

"음. 즐겁다기보다 마치 셜록 홈즈가 된 기분이였다고 할 수 있겠네요."

슈미츠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셜록 홈즈... 그게 누구죠?"

라벨은 경악하며 말했다.

"아니, 셜록 홈즈를 모르신다고요! 이거 설명해야할게 많아지겠네요."

 

-끗-

Notes:

덤: "선장님. 마들렌씨와 달콤한 식사를 했다는게 사실인가요?"
"아! 맞아요. 마카롱을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먹었죠. 달아서 혀가 녹을정도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