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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리아는 제 손발을 묶은 사슬을 강하게 당겼다. 군주에게 휘둘리던 붉은 검을 묶은 사슬이 끼기긱거렸고, 거대한 하얀 탑이 몸을 기울이고 꺾이는 듯한 불온한 소리와 함께 돌가루가 떨어졌지만 사슬은 끊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 기이한 마력의 움직임에서 빅토리아는 사슬을 타고 흐르는 힘의 정체를 깨달았다. 그녀는 입이 찢어져라 웃었다. 악마의 힘이로구나.
"작은 새-."
"나는 브리즈다." 군주가 빅토리아의 말을 끊고 선언했다. 사슬이 빅토리아의 입을 감았다. 그의 가면은 견고하게 그 너머 잠긴 인간성을 세상에서 유리시켰다.
"나에게 칼을 휘두른 자를 기사로 들이는 것도 우습지. 허나 그대가 내 것이 되지 않을 것이라면 누구의 것도 되게 두지 않으리라."
빅토리아는 어렴풋이 가면 속의 눈이 아주 아름다운 핏빛 붉은색 임을 보았다.
"기디언, 베어라."
군주가 부르자 얼어붙어 있던 그의 기사가 퍼뜩 군주를 바라보았다.
"...이, 이것은... 이것은 명예롭지 못합니다, 폐하. 그녀는 묶여 있기도 하고, 차라리, 제대로 된 결투를,"
"네가 나의 대리인이 될 터이냐?"
기디언은 대답하지 않았다. 빅토리아는 그러든 말든 계속 시선을 군주에게 고정한 채 한시도 눈을 떼놓지 않았다.
"더이상 나를 죽이려 한 암살자를 세상에 풀어둘 생각은 없다." 이전의 암살자가 탑의 감옥을 벗어난 것을 꼬집는 말에 경비병들이 몸을 움찔거렸다.
군주는 기디언의 몸에 손을 뻗었다. 그리고 그의 허리춤에서 기사의 칼날을 뽑아들었다.
"폐하-!"
상황을 오들오들 떨며 보던 군주의 가신이 불렀으나, 이미 군주는 은색 검신을 빅토리아의 목을 향해 휘두르고 있었다. 피가 튀었다. 가만히 있는 상대의 목을 깔끔하게 자르지도 못해, 살과 근육만이 일부 갈라지고 날이 목뼈에 막혀 움직이지 않았다. 군주는 숨을 헐떡이며 다시 칼을 뽑아내 휘둘렀다. 비명들이 울린다. 바닥에 제 핏자국이 번져나갈 수록 빅토리아는 끊임 없이 웃으며 군주의 모든 몸짓을 자신의 눈에 제대로 담아냈다. 창백한 가면과 옷이 저의 머리칼과 같은 붉은 색으로 물드는 군주를.
그리고 보았다. 군주의 오만한 말투 너머, 잔인한 손속 너머, 그 붉은 눈에 서려 있는 거대한 두려움을. 그녀에 대한 공포를. 그 사실이 더 없이 짜릿했다.
...
빅토리아는 군주를 다시금 내려본다. 군주는 왕좌에 앉아 팔걸이를 꽉 쥔 채 그에게 지나치게 가까이 다가온 그녀를 올려보고 있었다.
"잘 들리지 않았나? 그 용병은 여기 없다."
다시 말해야한다는 사실이 진절머리 난다는 투이지만, 그 아래 숨은 두려움을 이제는 안다. 빅토리아는 제 눈이 보여준 군주의 진가에 만족감을 느끼며 입술을 찢어져라 올렸다.
"그저 시험해 본 거야, 작은 새. 그 용병은 아무래도 좋아."
빅토리아는 오랜만에 찾은 재밌는 놀잇감에 기분이 좋아져, 이 귀여운 군주에게 충성이란걸 맹세해보기로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