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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저택의 어스름

Summary:

MoShang Week 2020
DAY6 Modern AU(20,21세기가 아니라 19세기지만 모던은 모던!)

모던, 현대의 시작은 19세기 후반부터 잡을 수 있습니다. 신분제가 와해되고, 본격적인 도시화와 산업화로 자본주의의 모순이 심화되고 세계화가 진행되었습니다. 현대 모던 라이프의 시작이었죠.
그리고 메이드! 메이드 상청화가 뒷골목 해결사 심구의 의뢰로 수상한 저택의 미스터리를 파헤치고 그러던 와중 한 수상한 남자, 막북군과 얽히게 되는데!

Chapter 1

Summary:

MoShang Week 2020
DAY6 Modern AU(20,21세기가 아니라 19세기지만 모던은 모던!)
상청화는 심구의 부탁들 받고 메이드로 수상한 대저택에 취업합니다.
......막북군은 아직입니다;;

Notes:

(See the end of the chapter for notes.)

Chapter Text

작은 방, 부실한 잠금장치처럼 가구도 없는 것에 가깝고 벽지는 떨어지기 일보직전이고 그 위에 어지러이 붙어있는 종이메모, 착상을 구조화한 지도 같은 것은 도저히 알아 볼 수 없는 악필이었다. 창문은 아직 봄인 걸 믿고 너덜너덜한 깨진 유리로 버티고 있고 좁은 방바닥 구석 다 꺼진 침대는 주인 없이 쓸쓸했다. 바닥에 빈 술병이 굴러다니고 있었다. 술병을 비운 장본인이자 이 모든 것을 빌린 사람인-주인이 아니다- 상청화는 온몸을 둥글게 말고 작은 햄스터처럼 탁자 밑에 웅크려서 자고 있었다. 심구가 힘껏 술병을 걷어찼다. 쨍그랑! 요란한 소리와 함께 병이 산산조각났다. 상청화가 비명을 지르며 일어나다가 탁자 아랫면에 머리를 요란하게 부딪쳤다.

 

"공병 값 받아야 하는데!"

"그걸로 어느 세월에 갚을 수 있겠어?"

"......아야야....."

 

상청화가 턱을 문지르며 눈물을 글썽거렸다. 아직도 숙취가 심해 머리 중 정확히 어디가 아픈 건지 모르는 모양이었다. 상청화가 한탄했다. "내 그 경극 극본값만이라도 받았어도 이리 비참한 꼴은 아닐터인데......."

"더 비참해지겠지. 청루에 팔려나가서 손님도 없이 잔이나 닦고 있겠지." 안 팔리는 기생은 다른 기생들이 쓰는 금이나 잔을 닦는 일을 하게 된다. 남자들을 파는 청루도 마찬가지다. 심구가 아무렇지 않게 무서운 말을 하는데 상청화는 태평하게 웃어보였다. "네가 날 팔아버릴 생각이었다면 이미 끌고가는 중일터이니, 뭔가 원하는 게 있지? 그걸로 이번 위기는 넘길 수 있겠지."

"........."

 

심구의 갸름하고 청초해보이는 얼굴은 언제나 찌푸리고 다니는 눈초리와 미간으로 인해 싸해보였지만 상청화의 말에 지옥에서 올라온 귀신처럼 변했다. 정곡이었다. 심구가 가방을 열고 천을 상청화에게 던졌다. 상청화가 어어어, 하면서 얼굴을 덮은 검고 흰 천조각을 끌어내었다. 그가 눈을 크게 떴다.

 

"무슨 하녀복이야?"

 

편하게 개량된 검은 투피스 치파오로 천은 저질이었다. 거기에 흰 앞치마가 있었다. 민국학생복으로, 앞치마가 없으면 교복으로 통하겠지만 앞치마와 같이 입으면 따로 제복을 지급하지 않는 집의 하녀복이다. 즉 어느 중산층의 하녀가 되려면 사가야 하는 옷이다. 치사하다. 집사 같은 하남의 제복값은 주인이 내는데 하녀는 아니다. 심구가 비웃었다.

 

"구중군을 아나?"

"모를 수가 있나."

 

상청화가 가볍게 말했다. 경성 최고 풍파를 몰고 다니는 패관잡설작가, 향천타비기를 뭘로 보는 거야! 내 귀가 닿지 않는 곳이 없고 내 눈은-, 심구가 날카로운 눈을 홀기며 빠르게 말을 이었다. "이야기가 빠르겠군. 구중군의 하녀로 잠입해."

그 말에 상청화가 눈을 빛냈다. 눈초리가 날카로워졌다. 이러면 보통 위험한 상황이지만 심구는 까딱도 안했다.

 

"이유는 알겠어. 네가 알고 지내는 사람 중 키가 170대이고 화장하면 이럭저럭 아가씨로 통할 미모와 그 화장을 자력으로 해낼 솜씨와 담력과 연기력이 있는 사람은 몇 없으니까. 하지만 왜."

"네 알 바 아냐."

"워워, 그럼 곤란하지."

 

상청화가 눈을 가늘게 휘었다. "내가 영리하고 내 한 몸 잘 챙기는 건 사실이지만 최고효율을 내고 내 몸 챙기는 것 이상의 일을 기대한다면 허심탄회하게 정보를 말해줘야 해."

"........"

 

심구가 털 세운 고양이처럼 상청화를 노려보며 말했다. "구중군은 딸에게 회사를 뺐긴 뒤 경성서 취미생활에 몰두하고 있지."

"일단 학회에 등록된 학자이긴 해."

"돈을 냈으니. 사화령도 애비의 면을 위해 그 정도 투자는 하는데 망설임은 없겠지."

물론 아버지를 사랑해서는 아니다. 체면이 상해 모든 걸 잃은 아비가 날뛰는 것보단 그게 싸게 먹힐 거라고 생각한 것일 거다. "그래서 학문의 세계에 푹 빠져 여생을 고아하게 보내는 선비 흉내를 내고 있어. 그 흉내를 위해 하녀도 많이 두지 않고."

땅값이 비싸고 16년 전 혁명 이후로 많은 대저택-이것도 좀 아이러니한 호칭이지만-이 전소되었고 그 이후로 도시가 많이 개발되면서 가용한 땅 자체가 적어 현재의 대저택은 과거에 비하면 규모가 많이 줄었다. 자연히 필요한 하인 수도 많이 줄었다. 그러나 대저택은 궁이고 구중군은 마족 귀족이기에 가장 고위 마족 귀족가 중 하나인 막북씨가 아니더라도 그의 소박한 사용인이란 기준은 좀 다르다. 고용인이 총 50명 가량이고 가장 싼 잡일꾼인 하녀는 10명도 넘는다. "너무 자주 바뀐다."

"하녀들은 자주 직장을 옮겨 박봉에 대우가 개판이고, 이젠 공장 외에 백화점 점원이란 선택지가 생겼으니."

 

상청화가 태연하게 말했다. 하지만 등골 위로 소름이 오르기 시작했다. 심구는 그가 생각할 수 있는 문제를 노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그가 이리 첩자를 집어넣어야 겠다고 달려나올 정도면 뭔가 의심스러운 일이 있는 것이다.

 

"하녀들은 대부분 교육받지 못하고 다른 직무능력도 못 쌓은 사람들이야. 백화점? 농담하지마. 백화점 아가씨들은 예뻐야 해! 화장도 해야하고! 하녀들 대부분은 기생들 접대를 하는 너보다도 화장을 못해! 하녀들이 철새처럼 직장을 옮기는 것 맞지만 대부분은 다른 하녀일이야. 여자들은 안정적인 주거가 중요하기 때문에 쉬이 멀리 옮기지도 못해. 이렇게 추적해봐도 어떤 실마리도 잡히지 않는 건 말도 안 돼는 일이라고. 거긴 뭐가 있어."

 

심구가 이를 빠득 갈았다. "그리고 대부분 사라진 하녀들은 동료들도 관심이 없고 집에도 관심이 없고 외로운 사람들이야. 아무도 신고해주지 않고 공안은 이런 하층민들은 전혀 수사하지 않아."

"그리고 명탐정 장공은 소설이지. 심구. 너는 절대 영웅이 아냐. 심지어 다크히어로도 아니지. 네가 갑자기 왜 이런 일에 관심이 많아?"

 

상청화가 앞치마를 손가락으로 휘휘 돌렸다.

 

"늘 생각하던 건데......넌 하녀나 기생, 백화점 누이들에게 관심이 많았어. 그건 뭐 그렇다치자. 취약한 여성들을 노리는 변태들은 흔한 작자니까. 이런이런, 던지지마. 네가 그러니 어른이 못 되는 거야. 넌 자신이 아무것도 아니란 걸 받아들이는 연습을 언제 할 거야......이런 이런. 그 값도 받을 거다."

"할 건가?"

 

심구가 자신도 모르게 약간 반색을 했다. 상청화는 머릿속 장부에 셈을 더 올렸다. 급하군. 심구도 굉장히 교활하지만 급하면 약점을 내줄 수 밖에 없고 불리한 계약을 맺는 수 밖에 없다. 심구는 어딘가 간절했다. 사실 둘이 어쩌다 백화루에서 마주친 그 날부터 그는 언제나 약간 간절했다. "하지만 얼마 전에 본 그 추한 전단지는 너도 봤지? 먹고 사는게 뭔지......그걸 인쇄하고 사흘은 밥을 먹을 수 없었어. 여권론자들을 추악하고 못난 노처녀들로 묘사한 인쇄물 말이야. 대부분의 남자들은 여권론자들을 싫어해. 그런데 너는 그 쪽에도 관심이 많아. 음, 네가 여성 투표권에 관심이 있을리는 없어. 너도 무적자로 투표권이 없는데. 그리고 사회정의만큼 네가 우습게 여기는 것도 없지. 내 추측은 이런데......"

"........."

"네가 찾는 사람은 처한 상황으로는 하녀나 기생, 백화점 누이처럼 취약한 입장이야. 백화점 누이가 들어가는 걸 보니 낮게쳐도 예쁜 편일 거야. 네가 기생집에 십대초반부터 드나든 걸 생각하면 꾸미는 법을 아는 건 집안이 유복해서 어릴 때 꾸밀 여유가 있었던 거야. 그러나 성미는 있고 대담하지. 기골이 있어. 순진하고 낙관적이면서도 의지가 강해. 우연히 입장이 좋았다면 아마-"

"닥쳐!"

 

심구가 화를 냈다. 그가 드디어 상청화의 멱살을 잡고 접칼을 들이댔다. 잘 손질된 칼날에 상청화의 턱이, 분노로 번들거리는 심구의 파리한 눈동자가 비쳤다. 살기는 눈빛을 기이하게 파리하게 만든다. 색이 변하는 건 아닌데 기이하게 파리하다. 심구는 언제나 그렇다. 살기와 독기로 악이 바득바득 올라있었다. "상청화, 너 같은 인간쓰레기 한량이 아직도 목 붙이고 사는 이유는 죽일 가치도 없는 자식이기 때문이야. 언제든 죽일 수 있기 때문이고. 당장 널 죽여도 아무도 널 찾지 않아. 네가 글을 보내지 않아도 출판사는 드디어 네가 변덕스러운 보헤미안 답게 튀어버렸다고 간주하고 다른 쓰레기 패관잡설 작가를 찾아 네 필명을 쓰게 할 거야. 집주인? 지금은 봄이라지만 아직도 춥지. 네 시체가 푹푹 썩어 냄새가 나려면 오래 걸릴 거야. 그 동안 너는 절대 발견되지 않을 거고. 네 고객들 중 네가 안 나타난다고 걱정하거나 신경 쓸 사람은 없어. 진짜 철새는 너 같은 작자니까. 넌 언제든 대체될 수 있는 도시의 흔한 용역대필가이니까. 넌 아무것도 아냐! 쓰는 글은 족족 패관잡설이라 글밥 정값 챙겨주는 출판사가 있으면 양심 대단한 거고, 언제든 한탕하고 튀는 업계니 한번 거래했다고 다음에도 거래할 수 있는 업계도 아니고, 네 대필을 사는 기생들은 널 신경쓰기엔 자신들 인생도 고달프고, 불법잡지는 당연히 너가 없어지면 드디어 이 위험한 일 하기 싫어진 줄 알고 없어지는 대로 어쩔 수 없는거고, 패관잡설을 쓰는 과거가 발목 잡을 까봐 경극 대본 같은 정필을 해도 뺐길 수 밖에 없어! 벌이가 한심한데 매일 똥은 만들고 치워야 하니 빚만 생길 수 밖에 없고! 그런 주제에 감히 내가 주는 의뢰를 거절해? 네가 뭔데?!"

 

자신이 토해내는 대로 정말 비참한 신세는 상청화이다. 사실 어떤 의미론 경성의 지하세계서 입자를 굳힌 심구가 더 여유로운 상황일지도 모른다. 심구의 고객들은 그를 죽여 입을 막을 일을 늘 꿈꿀지는 모르지만 심구 이상의 실력자가 없고 다음에 또 부탁할 일이 생길 것이 분명하기에, 심구의 장사는 그렇게 나쁜 상황은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늘 이리 초조해하고 말이 길어지는 것에서 보이듯 쫒기듯-이건 진짜긴 하다-이 불안해하고 악이 올라있다. 상청화는 숨이 막혀서 헐떡였다. 손을 살짝 두드렸다. 심구가 이를 갈며 더러워 하며 손을 치웠다. 음, 안찔렀다. 역시 내가 엄청 필요하군.

거기서 뭘 봤기에? 뭐가 그리 간절하기에? 심구는 평온한 상청화의 눈동자에 이를 갈았다. 상청화가 머리를 긁었다.

 

"뭐, 돈이 있으면 좋지. 내가 언제 심형 의뢰 거절하는 거 봤어? 그렇지만 심형. 말했잖아. 나도 최고효율로 해주고 싶어서 묻는 거라고. 너무 그러지 말고 차라리 가짜 미끼라도 던져서 엉뚱한 곳이라도 쑤시도록 해봐."

"..........네 입이 하늘 위 구름보다 가벼운 걸 누가 모르지?"

"어쩔 수 없어. 내 이몸은 연약해서 고문이라도 당하면 바로 죽을 거라고. 그리고 내가 뭐든 순순히 분다는 게 상식이 되어야 다들 날 고문할 필요를 못 느끼지."

".........."

 

심구가 콧방귀를 뀌었다. 상청화는 배실배실 웃었다. 심구는 이렇듯 다르게 살 수 있다는 걸 모르니까 늘 이리 악여 받쳐 있는 것일 거다. 뭐, 그건 상청화가 알바는 아니다. 이리 알려주기 싫어한다면 상청화 혼자 생각해보는 수 밖에. 그리고 심구의 생각과 달리 상청화는 진정한 비밀주의자이다. 진짜는 비밀이 있다는 것도 비밀로 한다. 누구도 캐낼 상상도 못 하도록.

 

구중군의대저택의 담장은 그리 높지 않았다. 그게 공안이 신고를 받지도 않았지만 신고를 받더라도 별 거 아닌 사적인 도주라고 생각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담장 위에 창살이나 철조망도 없었다. 둘 다 비싼 거긴하다. 그리고 효과는 확실해도 볼썽사나워 귀족들은 반기지 않기도 한다. 아예 방법효과와 미적기능을 둘 다 잡는 장식을 덧댄 쇠창살을 한다면 모를까. 대신 정문은 철로 육중했고 문고리도 무거웠다. 문지기도 있었다. 아직은 이럭저럭 평범했다. 보안이 엄중하지 않다. 구중군은 종종 사들이는 생물학 샘플을 다른 곳에 보관하는 것 같다. 학자들은 다들 자신의 연구자료의 안위에 예민하고 생물학도들은 더더욱 예민하다. 요새 최고 유행이니까 경쟁자나 도둑이 심하기 때문이다.

 

하녀복을 얌전히 갖춰입고 화장을 옅게, 그러나 솜씨를 발휘해 완전히 다른 인상, 야무진 시골 약간은 혼기를 놓친 아가씨로 변신한 상청화가 자신이 위조한-친절하게도 심원이 이름을 자신도 모르는 새 빌려주었다. 정말 좋은 친구다-소개장을 문지기에게 보여줬다. 목소리는 약간 노숙했지만 남자치고는 가늘고 가벼워 그리 꾸미지 않았다. 상청화는 목소리를 꾸미는 건 부러 잘 하지 않았다. 언젠가는 반드시 본래 목소리가 들키기에. 대신 어조는 신경썼다. 애교를 섞은, 잘 보이고 싶어하는 어조였다.

 

"얼마전에 하녀장님에게 면접을 오늘 보러오라고 전달받았어요. 이건 제 전 직장 어르신이 써주신 소개장이에요."

 

소개장을 뒤집어 내밀었다. 문맹은 전반적으로 하급 하녀의 미덕이다.

Notes:

상청화가 입은 메이드복은 대충 이런 느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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