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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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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shed:
2021-11-11
Words:
15,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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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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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

Sign and Note and Character(번역)

Summary:

네이트가 인스티튜트에 정기적으로 방문하기 시작한 후 어느 때, 그들이 닉에게 관심을 갖게 됩니다.

Notes:

Allekha의 Sign and Note and Character를 번역한 글입니다.

Work Text:

큰 천둥소리가 구름 한 점 보이지 않던 생츄어리의 하늘을 뒤흔들었다. 닉은 들고 있던 스크류드라이버를 곧 떨어뜨리고, 그가 일하던 지붕에서 내려와 아스팔트에 있는 것들을 향해 달려갔다. 그는 코즈워스보다도 앞서서 두 번째로 도착했지만, 스터지스가 이미 텔레포터에 도착해서 별다른 문제가 없다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에 사실 별로 의미가 없었다.

그 상태는 며칠동안 계속되었다. 거의 일주일동안이나. 닉은 생츄어리를 돌아다니며 도움을 주느라 열심이었던 것만큼이나 – 수리를 도와주고, 밤에 가비와 함께 외곽을 순찰하고,코즈워스가 오래된 집들을 청소하는 것을 돕고, 사람들이 저녁을 먹으러 모였을 때 그가 처리한 흥미로운 사건들에 대해 들려준다던가 – 항상 네이트를 걱정하느라 여분의 프로세서를 사용하고 있는 듯했다.

닉는 비록 인스티튜트가 그 자신에게 한 일이 무엇인지는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그들이 사람들에게 무슨 짓들을 해 왔는지는 보았다. 특히 그는 지난 며칠 동안 한 가지 사건을 머릿속에서 떨쳐내지 못하고 있었다. 한 절박한 상인 부부가 레이더들의 싸움에서 도망칠 때 놓쳐버린 그들의 말썽쟁이 아들을 찾아달라고 애원했던 것이다. 닉은 몇 주가 걸려서 결국 아이를 찾아내었다. 아이를 데리고 있던 작은 농장으로 그를 추적해갔고, 더이상 더러워질 수도 없는 옷과 통통한 뺨과 함께 그 어머니에게 돌려보냈다.

몇 년 후, 그 어머니는 닉의 사무소로 다시 찾아와 지친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인간과 신스를 구별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느냐고 물었다. 그 아이는 그 날로부터 하루도 늙지 않았고, 아이를 살펴본 의사들도 아무 문제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한다.

닉은 그 후 그 모자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전혀 몰랐다. 그들은 신스 아이를 다이아몬드 시티에 남겨두고 떠났고, 닉은 그들 중 누구에게서도 다시는 소식을 듣지 못했다. 원래의 아이에게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인스티튜트가 무엇을 목적으로 이런 속임수를 썼는지조차도 알 수 없었다.

그들은 네이트같은 사람을 교체함으로써 훨씬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닉은 이번 주 내내 그 생각에 빠져있었다.  네이트의 신체가 더이상 변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닉이 이미 겪었던 일만큼이나 힘들 것임이 분명했다.

번갯불의 밝은 섬광이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네이트는 서서 미친 듯이 눈을 깜박거리고 있었다. 닉은 그가 한 숨 돌리며 쉬도록 하면서도 그가 신스로 교체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떨치기 위해 애를 써야 했다. 네이트는 약간 멍한 표정이었는데, 어두운 일몰 속에서는 명확히 말하기 힘들었지만, 떠나기 전보다 조금 창백해진 듯했다. 잠시 후, 그는 균형을 잃은 것처럼 휘청이기 시작했다.

"이게 누구야."

닉이 철사 밑으로 몸을 숙이고 그의 어깨를 잡으며 말했다.

"자네 괜찮나?"

"나쁘지 않아요."

네이트가 고개를 약간 떨구며 말했다.

"그냥…. 윽, 이거 느낌이 정말 별로네."

그쯤 되자 생츄어리의 나머지 사람들이 텔레포터를 만들었던 낡은 뒤뜰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코즈워스의 고양된 목소리의 '주인님!'은 가비의 '대장님!'과 동시에 들려왔고, 거기에 다른 정착민들과 동료들이 도착해 내뱉은 탄성이 겹쳐졌다.

"잠깐, 잠깐만요."

가비가 소리치자 다른 사람들이 조용해졌다. 닉은 그 외침보다는 네이트가 내쉬는 한숨이 더 와닿았고, 네이트는 그의 얼굴을 문지르려고 손을 뻗었다. 가까이서 보자, 그는 특별히 다친 곳이 보이지 않음에도 상당히 지쳐있는 듯했다.

"우선 그에게 한숨 돌릴 시간을 좀 주도록 합시다, 인스티튜트의 비밀을 잔뜩 캐묻기 전에요. 아시겠습니까? 그러면 여러분, 하던 것들을 마저 하시죠."

정착민들이 투덜거리거나 그가 한 일이 잘 되었기를 바라며 떠나가는 동안, 코즈워스는 앞으로 돌진해왔다.

"주인님, 어딜 다치진 않으셨나요?"

네이트는 겨우 웃어보이며 말했다.

"그래, 괜찮아. 물어봐줘서 고마워."

"정말 다행이에요! 그러면… 혹시 꼬마 션은…?"

그의 웃음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닉은 네이트가 이제는 제대로 서 있을 수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그의 어깨를 놓아주었고, 뒤로 물러나기 전에 안쓰러움을 담아 한 번 토닥여주었다.

"션은…."

그의 한숨에는 약간의 떨림이 묻어났다.

"세상에, 도대체 어디서부터 이야기해야 하나."

"'처음'이 괜찮은 곳이라고 들어 알고있는데요."

가비가 말했다.

"지금 당장 할 생각이라면 말입니다. 하지만 급한 일이 아니라면, 오늘 저녁에는 우리가 신선한 야채를 좀 먹을 수 있을 것 같거든요."

네이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눈은 먼 곳을 향해 있는 채였다.

"그래요, 음. 저녁이 좋을 것 같네요."

저녁은 곡식이 잔뜩 들어간, 솥에 넣을 만한 것이라고는 몽땅 쓸어넣어서 만들어진 흐물흐물한 수프였다. 프레스턴이 말했던 야채들도 뭉텅이로 들어가 있었다. 특별한 것은 아니었지만 다이아몬드 시티와 같은 주 정착지가 아닌, 황무지에서 만든 음식치고는 훌륭한 냄새가 났다. 닉이 그의 부품에 엉겨붙지는 않지만 맛은 볼 수 있을 정도의 조그만 양을 얻어갈 정도였다.

네이트는 그릇을 받자 이내 조금 밝은 표정이 되었고, 연구소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까지 그릇의 반 정도는 간신히 먹어치울 수 있었다. 그는 그가 발견한 놀라운 장소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광택이 도는 하얀 바닥, 푸르른 풀과 나무, 첨단 의료 기술 그리고 눈 닿는 곳마다 있는 컴퓨터 등. 그는 설명하는 중간마다 불평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예를 들어, 농업 연구를 하는 걸 보면 그들이 음식에 열정을 가지고 있음이 분명함에도 정작 음식은 반죽 비슷한 것을 먹고 있었다던가 하는.

"하지만 저 아래가 그렇게 굉장하다면 말이야."

가장 최근에 합류한 정착민이 궁금해하며 물었다. 네이트를 제외하고는 누구보다도 더 많은 간호 경험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의사에게는 가장 중요한 존재가 된 여성이었다.

"왜 이 곳에서는 그 어떤 것도 거래하지 않는 건데? 보급품이라던가 뭐 다른거라도 필요할 게 아니야."

"바로 그거야."

네이트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들 중 누구라도 이 위로 올라온 적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어. 인스티튜트는 자기들이 통제하고 있는 신스들을 내보내니까…. 그런 경우가 대부분인 것 같아. 그들은 이 곳 전체가 살아서 겪을 수 있는 지옥이고, 그들이 그리는 인류의 미래에 위협이 될 뿐이라고만 생각하거든. 여기엔 어떤 가치도 남아있지 않다고 말이야."

그의 말에 사람들은 신음을 내뱉거나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거나 했다.

"그것은 그다지 과학적인 판단처럼 들리지 않는데."

여자가 불평했다.

"편파적이고 문제가 있는 데이터를 수집하고, 그 다음엔 아무 것도 하지 않겠다고? 그들은 지하에서 영원히 살고싶어하는건가?"

"글쎄, 상황이 점점 안좋아지고 있는 건 분명해. 그들이 영원히 지하에 머무를 수는 없을거야. 자원 문제로 꽤 애를 쓰고 있거든. 그들이 새 동력원으로 핵 원자로를 가동하려고 한다는 이야기도 들은 것 같은데. 모르겠어, 그런 건 전쟁 전 20년 동안에도 꿈만 꾸던 일인데. 어쨌든, 저 밑에 있는 자원은 바닥을 보이고 있어. 에너지 절약에 관한 기록이 단말기마다 있던데, 알고 보니 여기 위 정착촌에서 벌써 훔치고 있더라고"

가비는 큰 소리와 함께 그릇을 내려놓았다.

"훔치고 있다…. 우리 자원을 빼돌리고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네이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가장 많이 피해를 본 건 다이아몬드 시티와 같이 규모가 큰 곳들이겠지만, 모든 사람들이 그들의 통신이 도청되고 있지 않다는 것을 다시 확인할 수 있도록 미닛맨 대원들에게 알리고 싶군요."

"그러니까 그들은 우리를 경멸하면서, 사람들을 납치해가면서, 이제는 훔치기까지 하는군."

여자가 중얼거렸다.

"대단해. 네가 거기서 뭘 발견했더라도 이 짓거리들을 넘어서기는 쉽지 않을 것 같은데?"

"음, 그들이 의약품을 좀 주긴 했는데…."

네이트가 그의 가방 중 하나를 구석에서 가져와 그녀가 볼 수 있도록 건네주자 그녀의 눈이 밝아졌다. 닉은 그녀의 어깨너머로 살펴보다가 적어도 십여 개의 스팀팩, 약병, 새 것임이 분명한 빛나는 메스 한 갑, 그리고 그가 사용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용도를 전혀 짐작할 수 없는 의료용품들을 보았다. 그녀는 그것들을 작은 진료소를 보충하기 위해 가져갔다. 네이트가 가져온 선물은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퀴리가 열성적인 손으로 가져간 더 영양가 있는 음식을 위한 정원용 씨앗 몇 개, 정보가 가득한 스터지스를 위한 홀로테이프, 심지어 생츄어리의 작은 도서관을 위한 꽤 괜찮은 상태의 책 몇 권까지.

저녁 식사가 끝나고 네이트의 집에 모인 사람들은 꽤 적었다. 네이트는 땋은 양탄자(정착민 중 한 명이 생츄어리를 좀더 가정적으로 만들기 위해 해낸 생각이었다.)에 발을 두드리며 창가의 의자에 앉았다. 가비는 마주보는 쪽에 놓여진 소파에 무겁게 앉아 있었고, 퀴리는 바로 그의 옆에 자리를 잡았다. 그녀의 눈은 호기심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평상시 스타라이트 자동차 극장에서 내려가서 수리 작업을 하던 에이다는 며칠 전에 올라와 지금은 구석진 곳에 서 있었다. 닉은 의자의 팔을 반쯤 짚었고, 코즈워스는 모든 사람에게 뜨거운 음료를 갖다주느라 부산했다. (커피는 없었지만, 사람들은 커먼웰스의 다른 식물에서 차를 우려내는 것에 대해 꽤 창의적이었다.)

네이트는 목청을 가다듬었다.

"그래서. 션은."

목소리가 거칠어져 다시 기침을 했다.

"음, 우선 첫 번째로, 션은 살아있어."

"오, 정말 다행입니다!"

코즈워스가 외치자 퀴리는 손뼉을 쳤다. 하지만 닉은 네이트의 표정을 보고 안심이 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나쁜 소식은 뭔가?"

그는 겁에 질렸거나 정신 나간 고객들에게 주로 사용하는 부드러운 목소리를 내어 물었다.

"나쁜 소식이라. 맞아, 나쁜 소식이에요…. 닉, 우리가 션이 납치됐다고 생각했던거 기억나요? 10년 전 쯤에? 완전히 헛짚었던 거예요. 션은 지금 거의 예순에 가깝거든요."

그래서 그는 더 이상 아기가 아니었을 뿐만 아니라 더 이상 아이도 아니었던 것이다. 션은 자신의 아버지보다 두 배는 나이가 많았다.

"많은 시간이 흘러버렸군요."

가비가 말했다.

"한 가지 더."

네이트는 심호흡을 했다.

"그러니까, 음. 션은 납치되었을 때부터 쭉 인스티튜트에서 자라서인지 상태가 꽤 좋아 보였어. 그는 심지어 나를 보고 기뻐했던 것 같아. 또, 지금은 그들을 이끌고 있어."

닉은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퀴리는 오, 하고 부드럽게 내뱉었다.

"그들을 이끌고 있다고요?"

가비는 양쪽 눈썹을 치켜올리고 뒤로 물러나 앉았다.

"세상에. 당신이 왜 그렇게나 안 좋아 보였는지 이해가 가기 시작하는군요, 대장님."

"션은…. 오, 적어도 그 어머니만큼 똑똑하긴 하겠죠."

"그가 자네를 만나서 기꺼워했다라, 이런 물자들이 인스티튜트에서 내어준거라면 그들은 자네를 꽤나 반기고 있는 것 같은데. 혹시 자네의 생각이라면 그들이 좀 들어줄 용의가 있을 것 같은가? 커먼웰스에서 자원을 훔쳐가는게 아니라 지원을 해줄 수 있냐고말이야."

"잘 모르겠어요."

네이트는 얼굴을 문지르며 한숨을 내쉬었다.

"말을 좀 해보고 싶었는데, 시간이 충분치가 않더라고요. 션은 미팅을 하루 종일 했어요. 거의 불가능해 보이는, 뭐 그런 사안들을 가지고."

그들은 잠시 더 이야기를 나누었다. 네이트는 이전에 미처 이야기하지 못했던 것들을 자세히 들려주었고, 나머지 사람들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나 이제 시간은 꽤나 늦은 상태였고, 그들은 두 인간 모두가 지쳤음이 분명한 때쯤에 회의를 마치기로 했다. 퀴리는 가비가 자기 침대로 가려 일어났을 때 그녀가 설치해 둔 미니어처 연구실 방향으로 떠났다. 코즈워스는 방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에이다는 도움이 필요하면 알려달라고 말했다.

"고마워. 그러도록 할게."

그녀는 잠시 멈추고 고개를 약간 기울였다.

"부디 충분한 휴식을 취하십시오. 제 친구들은 늘 아침엔 뭐든 좀 나아지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네이트가 그렇게 말하며 미소지었다. 에이다가 방에서 사라지자마자 미소는 온데간데없었고, 그는 의자에 앉은 채로 몸을 조금 앞으로 숙였다. 닉은 그의 어깨를 쿡 찌르기 전에 2분 정도 시간을 주었다.

"그녀의 조언을 받아들이는 게 좋을 것 같네. 자넨 며칠동안 고생이 많았으니까."

그가 말했다.

"네, 뭐."

네이트가 몇 초간 어색한 침묵을 지킨 후 말했다.

"제가 잠들 수나 있을지 잘 모르겠어요."

"시도는 해봐야지 않겠나."

닉이 다시 그를 쿡 찌르며 말했다. 네이트는 지난 몇 시간 동안 완전히 지쳐있었던 것 같았다. 아마 침대에 눕고 나면 몇 분 안에 기절할 것이다.

"이만 일어나지."

네이트는 결국 몸을 일으켰다. 닉은 코즈워스가 전하는 좋은 밤 되라는 인사에 가볍게 손을 흔들어 주었고, 네이트가 복도 저편으로 사라지자 전등을 모두 껐다. 그는 네이트의 배낭이 문 옆에 있는 것을 발견했다. 네이트는 아마 들어오면서 거기에 둔 뒤 까맣게 잊어버렸을 것이다. 굳이 여기에 남겨둘 필요는 없겠지. 닉은 배낭을 집어들고 내려갔다.

네이트는 침대 위에 누워 있었지만, 여전히 착장을 풀지 않고 이불에 드러누운 채였다. 그는 천장을 바라보느라 닉이 배낭을 책상 옆에 내려놓는 것에도 눈길을 주지 않았다.

"그것들 중 하나를 써야 하는 건 오랜만이군. 지금처럼 추운 날에는 자네는 이불을 좀 덮는게 좋을 것 같은데."

네이트는 코웃음을 치며 한쪽 팔을 살짝 움직여 고개를 돌려 닉을 바라보았다.

"그걸 사무실에서 안 쓴다고요?"

"글쎄, 가끔은 쓰겠지."

좀 더 정밀한 검진이나 정비 루틴을 가져야 할 때, 혹은 조용한 밤에 시간을 좀 흘려보내고 싶을 때라던가, 그럴 때는 누워 있는 것이 좋았다. 잠을 자는 것과는 조금 다르겠지만, 그 동안에는 그의 높은 인지 기능을 잠시 동안 차단할 수도 있었다.

"구색맞추기라고 보면 될 것 같네."

네이트는 고개를 저으며 일어나 앉더니 팔다리에 묶어둔 갑옷을 벗기 시작했다.

"저기, 닉."

그가 끈 하나를 가지고 씨름하면서 말했다.

"뭐좀 부탁해도 돼요?"

"그럼, 필요한 거라면 뭐든지."

"내일. 내일, 당신이 좀 도와줄 일이 있을 것 같아요…."

네이트가 한숨을 내쉬었다.

"아이 방을 정리할 때가 된 것 같아서요."

"그것뿐인가? 어렵지 않네."

닉이 아는 한 네이트는 볼트에서 나온 후 그 근처에도 가지 않았었다. 거기서는 절대 잠들지 않을 아기를 기다리는 아기 침대, 션이 다시는 가지고 놀지 않을 장난감들. 갑옷이 바닥에 부딪치면서 조용히 쨍그랑거리는 소리가 났다. 네이트는 발로 그것을 떨쳐내고 다른 팔에 있는 것을 마저 풀기 시작했다.

"장난감을 줄 아이들이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아기 침대는 잘 모르겠지만. 다른 건 몰라도 땔감으로는 쓸모가 있겠지. 적어도. 예전엔, 그건 들여볼 때마다 션을 찾을 수 있겠다는 희망을 주는 물건이었어요. 지금은… 이럴수가, 인스티튜트의 지도자라니."

"그걸 알고 난 후로 상당히 당황했겠어."

닉이 침대 위에 앉아 말했다.

"누가 그걸 예상이나 했겠나."

"저는 그들이 제 아들에게 끔찍한 짓을 저지르고 가둬두었거나, 심지어 그보다 더 나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그는 꽤 행복하게 자란 것 같더군요. 다른 이름으로는, 인스티튜트의 디렉터라고 불리면서요. 당신한테 말했다시피 이야기를 좀 해 보고 싶었는데."

그의 목소리가 점점 높아지면서, 닉을 불편하게 만들 정도로 빨라졌다.

"션은, 제게 상냥하게 대해주기는 했지만 절 믿지는 못했던 것 같아요. 제가 커먼웰스의 상황이 그렇게까지 엉망이 아니라고, 그리고 저도 이곳의 사람이라고, 맞잖아요, 이야기했을 때. 좋은 사람들이 있다고 했을 때. 왜 모든 걸 감추려고 하냐고 물었을 때. 신스에 대해 물어봤을 때. 그들 사이에 이견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대부분은 이 주제로 이야기하는 것을 매우 불편해하더군요."

"이봐."

닉이 부드럽게 말했지만 네이트는 계속 쏟아내었다.

"그리고 그들이 단지 - 세상에, 닉, 그들은 합성 고릴라를 가지고 프로젝트를 진행했어요. 어떤 남자는 합성 돌고래에 대해 말하고 있었는데, 그들은 육지 로봇을 이미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에요. 왜 바다로 다니는 로봇은 못 만들겠어요? 거기서 썩 수확이 있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닉, 그들은 슈퍼 뮤턴트를 만들고, 무슨 일이 일어날지 보기 위해 그냥 내버려뒀어요. 그들은 그 프로젝트를 단지 중단시키기만 했어도 될 일이었는데, 모든 사람에게 해를 끼치면서."

닉은 다시 한 번, 더욱 단호하게 그를 불렀다.

"이봐, 네이트."

"그러나 동시에 그들은 제게 아주 친절했어요, 제가 모든 곳을 들쑤시고 다녀도 내버려두더군요. 심지어 신스를 아내로 데리고 있는 남자도 있었어요. 그 아이는 분명히 그녀를 사랑했지만, 그 외의 다른 신스들은 노예나 다름없어요. 이해가 안 돼요. 닉. 그리고 그들은 황무지를 거의 혐오해요. 그러면서도 이 위를 어지럽히는걸 그만두진 않겠죠. 다이아몬드 시티의 시장이 신스라는 건 아시나요. 그 사람에 대한 단말기 기록을 입수했어요."

"네이트."

닉은 네이트가 지난 몇 분 동안 갑옷끈을 풀려고 애쓰던 손을 감싸쥐었다.

"네이트. 에이다의 말이 맞네. 자넨 좀 쉬어야 해. 그런 후에, 이 모든 것들은 아침에 걱정해도 되잖나. 우리 모두는 쉴 필요가 있어. 그런 다음에 뭘 알아내야 하는지 생각해보도록 하게."

"맞아요."

네이트가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다시 조용해져 있었다. 닉은 천천히 손을 놓고, 잠시 후 다시 갑옷을 풀려 했다. 이번에는 소득이 있었다.

"아침에."

네이트는 마침내 갑옷을 벗고 이불 속으로 기어 들어갔다.

"다른 건 더 필요 없겠나?"

닉이 물었다.

"아니면 이제 자네를 좀 자게 내버려 둘 차례인가?"

"그래주시겠, 음. 괜찮으시다면 몇 분만 더 남아 있어줄래요? 제가 잠들 때까지만? 제 뇌가 다시 쉬지않고 떠들게 될까봐요."

"물론이네."

닉은 네이트가 빨리 잠들기를 바랐지만, 그는 5분이 지나기도 전에 담요 아래서 뒤척이기 시작했다.

"그 밖에 가슴에서 더 털어내버리고 싶은 것이 있는 모양인데?"

"음."

네이트는 뒤로 돌아누웠다가, 다시 그의 옆으로 몸을 돌렸다.

"그러니까… 거기로 돌아갈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요? 션이랑 계속 이야기해보면서 그 생각을 바꿀 수 있다고? 그들이 완전히 변할 수 있다고?"

"쉽지 않겠어."

닉은 네이트를 좀 더 잘 바라보기 위해 몸을 움직였고 그의 무릎에 손을 얹었다.

"자네가 나보다야 그를 잘 알겠지만, 한 번 보자… 60년이 지났다고? 한 방향을 고집하며 살기엔 너무나 긴 시간이네. 자네가 그 삼촌이라고 해도, 전혀 들을 생각이 없을지도 모르지. 해볼 만한가? 그것은 자네한테 달렸네. 꼭 해야만 하겠다면, 저 아래에서 그들의 좋지 못한 생각을 멈추게 하는 데 도움이 될 자료를 얻을 수도 있겠지."

네이트는 닉이 그가 정말로 잠들기 시작했다고 생각하기 시작할 정도로 오랫동안 침묵하다가, 그 후 작은 소리로 말했다.

"고마워요, 닉"

"언제든."

"그리고 – 정말,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그리고 자러갈게요. 미안해요."

"뭔가?"

"당신에 대한 건 아무것도 찾을 수가 없었어요. 그들의 컴퓨터를 살펴봤어요. 전부 찾아본 건 아니지만 그 중에 당신 이야기는 아무것도 없더군요. 여기저기 물어보고 다니는 건 너무 위험할 것 같아서 그만뒀어요."

"차라리 다행일지도 모르지. 그런 일로 자책하는 건 그만두게. 내가 얼마나 스스로도 특별한 사람인지에 대해 말하던 건 자네 아니었나?"

"그렇죠."

이런 어두운 방에선 빛이 부족한 시야의 한계로, 닉은 희미하게 호선을 그리는 입꼬리를 볼 수 있을 뿐이었다.

"밤이 늦었네요."

그리고 그것으로 마지막으로 네이트는 편안히 누웠고, 곧 깊고 느린 숨을 내뱉었다. 닉은 특별히 그래야하는 이유는 없었지만, 네이트의 책상에 앉아 한참이나 그의 숨소리를 듣고 있었다. 그가 이야기한 것들은 남은 사람들 중 누구라도 받아들이기에 벅찬 일이었고, 닉은 그것들을 곰곰이 생각해보기 위해 완전히 잠 못 이루는 밤을 보냈다.

 

-

 

닉은 아침에 네이트가 아이 방을 정리하는 것을 도와주었다. 그들은 결국 아기 침대를 이제는 창고가 되어버린 다른 집으로 끌고갔고, 바닥 깔개를 다른 정착민의 헛간으로 옮겨두었으며, 닉이 기억하기에 집에 아이들을 데리고 있는, 마을에 들른 상인에게 장난감들을 건네주었다.

밝은 색과 큰 글씨로 써진 책도 있었지만, 그것들은 어느새 사라져 있었다. 닉은 그것이 어디로 갔는지 묻지 않았다. 일을 모두 마쳤을 때 네이트는 침묵했고, 이제는 비어버린 방에 몇 분간 서 있었다.

"여기 책상이나 뭐 그런 것들을 가져다 놓으면 되겠네요."

그가 말했다.

"제가 계속 가져오는 홀로테이프들을 보관할 찬장을 만들죠. 아니면 정착지 지도를 붙이던가. 프레스턴은 둘 중에 뭐라도 쓸 거예요."

그의 목소리는 고르고 침착했지만, 그의 어깨에는 어젯밤의 긴장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괜찮나?"

네이트는 고개를 끄덕이며 닉의 시선을 맞추지 못했다.

"션에게 최선을 다해 보기로 했어요."

그가 말했다.

"션에게 여기에도 좋은 것들이 있다고 설득할 수 있다면, 아주 멋지겠죠. 뭐 그게 아니더라도, 다음에 노라에게 꽃을 들고 찾아갈 때 적어도 시도는 해 봤다고 말할 수 있을테니까요. 어쩌면 좀 도울 수 있을지도 모르죠. 신스를 거기서 빼돌려오는게 아니더라도, 좀 더 사소한 것들은. 레일로드와 미닛맨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모든 걸 찾아보려고요. 저는-아마 잘 되지만은 않겠지만, 저는 노력할 거예요."

"그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전부겠지. 잘 되길 바라네."

 

-

 

네이트는 그날 이후로 닉이 따라다닐 때 이따금씩 인스티튜트에서 주워온 것들에 대한 얘기를 꺼내곤 하면서도 션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았다. 어느 날 그는 반짝이는 새 플라즈마 소총을 들고 사무실에 나타났다. 네이트는 늪의 가장자리를 지날 때 닉이 그것을 한 번 들어보도록 했다. 닉은 길을 따라가면서 지나친 화력으로 거대 모기들을 쓰러뜨렸다.

"어때요?"

네이트가 히죽히죽 웃으며 물었다. 그는 처음에 닉에게 맡겨두었던 그의 오래된 레이저 소총을 들고 있었지만, 총구를 아래로 내려둔 상태였다. 순수하게 닉에게 즐거움을 주려는 의도에서였다.

"굉장하군. 이게 인스티튜트에서 만들어진 것이 확실한가? 보통 그들이 쓰는 무기는 이렇게 강력하지는 않았는데. 너무 많은 사람들이 서로를 죽일 방법을 찾으려 애쓰는군."

"실험용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요? 어쨌든, 제가 좀 손을 보긴 했어요. 반동을 좀 줄이고, 탄약을 좀 더 넣을 수 있게, 그리고 괜찮은 저격용 조준경도 달아놨죠."

닉은 근처에서 다른 어떤 것도 감지하지 못했기 때문에 잠시 그 무기를 훑어보았다. 총기를 검사하면서 그는 인스티튜트의 깔끔한 선이 끊어진 곳, 반짝이는 하얀 페인트가 조금 벗겨진 곳을 보고 네이트가 어느 부분을 개조했는지 알 수 있었다.

"조만간 자네가 신스를 수리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해도 놀라지 말아야겠어."

"하. 아마 신스 연구실에 오랫동안 달라붙어있으면 가능할지도요. 그래도 아마리 박사를 붙여주셔야 할 걸요."

"자네한테 아무것도 쥐여주지 않는 게 낫겠네."

그는 희미하게 귓가에 어른거리던, 약한 징징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그는 다시 소총을 들어올려 소리의 근원을 찾은 다음, 아주 먼 곳에서 날아다니는 벌레를 없애버렸다.

"인스티튜트 이야기가 나와서 그런데, 그들과의 일은 어떻게 되어가나?"

네이트가 입을 열기 바로 전이었다.

"좋아요. 거긴…그 과학자들중에 몇몇은 제가 앞으로 어떻게 해야하는지에 관심을 가지더군요. 나머지는 대부분 나를 실험 대상이나 뭐 비슷한 것으로 보는 것 같아요. 아, 저기, 저 아래쪽에 보이는 남자가 미닛맨에 대해 꽤 귀여운 말을 했으니 보게 되면 꼭 한 번 웃어주고 지나가도록 해요. 그리고 션은… 모르겠어요. 그와 뭔가 통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지."

그들은 늪에서 나와 갈라져 있는 전쟁 전 도로 중 하나로 지나가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다시 무기를 바꾸어 들었다.

"지난 번에."

네이트가 갑자기 말하더니 멈췄다. 닉은 그에게 생각을 정리할 시간을 좀 주었다.

"지난 번에?"

그는 네이트가 아무것도 말하지 않자 결국 입을 열었다.

"저한테 부모에 대해 묻더군요. 잔디밭에 앉아서 그의 이야기를,  제 동생이 어떻게 노라를 만났는지 들려줬어요. 크리스마스 파티쯤에 그 녀석이 그녀의 멋진 드레스에 에그노그를 엎어버렸어요. 다행히도 드라이클리닝을 맡겨서 얼추 해결이 되었고, 물론 그가 모든 비용을 치렀고, 우리 여동생이 옷을 좀 빌려줬고, 그녀가 화내는 일도 없었죠. 그리고 노라가 어떻게 늘 그에게 보낼 홀로테이프를 녹음했는지랑, 제가 코즈워스를 조립하게 도와줬는지도, 비록 그녀는 기계를 잘 알지는 못했지만. 뭐 그런 말들을 나눴어요. 션은 꽤 관심있어하는 것 같았어요. 잠깐만요, 생각 좀… 그리고 제가 떠나기 전에, 그는 신스가 탈출했으니까 혹시 살렘 근처의 지리를 잘 알고있다면 좀 확인해달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제 기자 친구를 도와주러 가야겠다고 했죠."

거짓말은 아니었다. 파이퍼는 네이트에게 조사를 부탁하기 위해서 다이아몬드 시티 라디오의 광고 채널 중 하나를 가로챘다. 그들 둘은 그녀를 자극하고 한 주 동안 사라졌고, 그들이 돌아오고 나서도 며칠동안이나 신문에 눈에 띄는 기사가 나지 않았다. 어떤 흥미로운 것들도 보이지 않았고, 어쩌면 그들을 기다리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건 유감이네, 네이트."

"네, 뭐. 돌아오는 길에 레일로드에 전달해뒀어요. 하지만 그것뿐만이 아니에요. 닉, 전 정말 그 곳의 아무한테도 당신 이야기를 한 적이 없어요. 그런데 신스를 지각있는 존재라고 생각하지는 않는 것 같은 과학자 한 명이 저한테 와서 '당신이랑 같이 다니는 탐정인 척 하고 다니는 프로토타입'-미안해요.-에 대해 들었다고 말하면서, 당신을 거기로 데려와서 좀 들여다봐도 되겠냐고 물어보더라고요. 안 된다고 했죠. 제 이야기는, 당연히 그럴 수 없다고는 했지만, 하지만 조심해야 해요, 알았죠? 어느날 일어나서 당신이 사라졌다는 말을 듣고 싶지는 않으니까요."

"물론 그럴 것이네. 난 지금까지도 꽤 잘 해왔으니까, 그렇지 않나?"

그의 말에 설득력을 더해주려는 것처럼, 야오과이 한 마리가 흐릿한 안개 속에서 도로 위를 배회하고 있었다. 그것을 향해 첫 발을 날린 것은 닉이었지만, 과충전 된 플라즈마 소총으로 마무리한 것은 네이트였다. 닉이 생각하기에도 그의 정확도는 나아지고 있었다. 닉이 그가 싸우는 것을 처음 봤을때는 거의 처참한 수준이었다. 상대편이 그를 찾다가 지쳐 나가떨어질때까지 근처에 처박혀 있는 것이 나을 정도로.(슬프게도 황무지인들은 그리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

"어쨌든 그들이 나한테서 뭘 얻어가려는지는 잘 모르겠네. 그들의 조상이 날 좀 더 쓸모있게 만들 뭔가를 깜빡했다고 생각하는 건가? 아니면 부품 여분을 좀 갖고싶어하는 것 같기도."

"그게 뭔지는 생각하고싶지도 않아요."

네이트가 말했다.

"뭐든 좋은 일일 리가 없죠. 추적자한테 걸리지만 마세요, 알겠죠?"

"그들은 나보다 더 중요한 목표가 많이 있을텐데."

닉은 그렇게 말했지만. 네이트의 표정이 여전히 풀리지 않자 부드러운 목소리로 한 마디 덧붙였다.

"주의하도록 하지. 그들이 날 그렇게 쉽게 다시 데려갈 수는 없을 걸세."

"좋아요."

네이트가 조용히 말했다.

"물론이죠."

그의 목소리에 깔린 무언가가 닉을 걱정스럽게 만들었다.

"진심으로 이야기한 것이네."

그가 더욱 힘주어 말했다.

"난 그들이 자네가 그러는 것보다 더 여길 어지럽히는 것을 원치도 않을 뿐더러, 이 바깥에서 지내본 경험도 만만치 않으니까."

"당신을 믿어요."

그 후 그들은 말이 없었다. 그들은 몇 주 전에 라디오 신호가 끊긴 정착지를 찾기 위해 커먼웰스에서 우호적이지만은 않은 지역인 남서부로 향하고 있었다. 다행하게도 날씨는 나쁘지 않았고 야생동물들도 오늘은 다른 곳에서 먹이를 찾고 있는 것 같았다. 그들은 구세계의 도로에서 아주 좋은 시간을 보냈고 이른 오후까지 목적지에 도착했다.

닉은 네이트가 여기 사는 듯한 두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 낯선 사람 둘을 굳이 놀래킬 이유는 없었기에 - 그리고 그가 한가하게 위험 요소를 점검하는 동안, 아까 네이트가 한 말을 계속 곱씹지 않을 수 없었다. 왜 인스티튜트가 그를 갑자기 돌려받기를 원하는가? 오래된 실험을 다시 확인해보고 싶어하는 것일까? 닉이 이전에 가정했던 것처럼 것처럼, 어쩌면 그가 내던져진 것 자체가 실험의 일부일 수도 있었다. 혼란에 빠진 신스가 어떻게 황무지를 헤쳐나가는지 보려고. 하나는 샘플로 사용하기에 너무 적었지만 그가 알고 있는 것에 비추어볼 때, 실험을 다 완수하지 못한 개체들이 있을 것이다.

"이봐요, 닉. 라디오가 다운돼서 어떻게 고쳐야 할지 모르겠대요. 좀 도와주시겠어요?"

"그럼, 물론이네."

그것은 대부분의 경우 네이트가 물건을 분해하고, 결함이 있는 부품을 발견하여 교체하고, 다시 조립하는 것을 의미했다. 30분도 채 걸리지 않았고, 이 중 몇 분은 우연히 테이블에서 떨어진 나사를 찾는 데 쓰였다. 그것을 유리그릇에 놔둘 만큼 센스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였다. 네이트의 손가락이 라디오 안쪽을 돌아다니면서 눈을 빛내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정말 경이로운 일이었다.

정착민들은 그들에게 하룻밤을 보내고 떠날 것을 권했지만, 시간은 아직 이른 낮이었다. 네이트에게 특별히 급한 일은 없었지만, 정착지와 생츄어리 중간에서 하고 싶은 일이 두어 가지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북쪽으로 돌아서서 다시 길을 나섰다. 오래 걸릴 만한 거리는 아니었다.

그러나 네이트였기 때문에, 당연하게도 다른 사람이 같은 거리를 여행하는 것에 비해 네 배의 시간이 걸렸다. 그는 온갖 문젯거리나 가슴아픈 이야기에 엮이는데 뭔가가 있었고, 후자의 경우 그는 닉 만큼이나 따뜻한 마음으로 임했다. 그들은 생츄어리로 향하는 길에서 두 무리의 레이더와 거너의 기지를 정리하고, 방황하는 프로텍트론을 다시 도서관으로 돌려놓고, 양치류 잎 한 다발을 따고(퀴리는 그 안의 화합물이 의학적 약효가 있는지 연구를 하고 있었다), 미스터 핸디들에게 안부를 전하기 위해 그레이가든에 들르고, 나무에 올라간 어린 소년의 고양이 한 마리를 구출했다.

(마지막 것은 정말로 닉의 냉각수를 돌아가게 할 만한 일이었다. 네이트가 나무에 먼저 올라가겠다고 한데다 그 나무는 많은 방사능 폭풍을 겪으며 자란 가늘고 상태가 안 좋은 것들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약한 바람은 가지를 흔들고 지나갈 때마다 네이트와 아기 고양이가 떨어지지 않도록 애쓰며 생명줄을 붙잡고 있도록 했다. 닉은 아래에서 네이트가 올라가 있는 내내 그가 떨어져서 목이 부러질까 걱정하며 눈으로 쫒고 있었다.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남자와 새끼 고양이 모두 무사히 내려왔다.)

그들은 스타라이트 자동차 극장에서 잠깐 쉬었고, 오후에 마침내 생츄어리에 도착했다. 네이트는 낡은 스크린 옆에서 에이다와 수다를 떨며 시간을 보냈고, 닉은 중요하거나 흥미로운 사건이 소문으로 떠돌고 있지는 않은지 조사했다. 이번 주에 특별한 것은 없었다. 납치도, 심상찮은 장소와 인스티튜트에 대한 것들도. 희망적으로 보자면, 모든 것들이 잘 흘러가는 것 같았다.

그들이 레드 로켓 주유소를 지나 다리 위에 다다르자, 네이트의 발걸음에는 스프링이 달려있는 것만 같았다. 그는 망루 근무 중인 남자에게 응원하는 의미로 손을 흔들었고, 코즈워스는 그들이 정착촌에 다섯 걸음을 채 내딛기도 전에 벌써 맞이하러 나오던 차였다.

그 둘이 마주치는 동안 닉은 양치류 견본을 그나마 멀쩡한 집에 차려진 퀴리의 연구실로 가져다주었다.

"아, 정말 고마워요."

퀴리는 그에게 견본을 건네받고 말했다.

"우리는 이것들로부터 화합물들을 추출하고 나서, 곧 분자 분석과 이중 블라인드 테스트를 위한 준비를 시작할 수 있을 거예요, 그렇죠?"

"으음…. 그렇겠지?"

퀴리의 씨앗들은 싹을 틔우고 잘 자라고 있었다. 그녀는 그 식물들에 대한 광대한 기록을 남기고 있었고, 그 기록들을 네이트와 함께 만들어 둔 터미널에 빨리 옮기지 못해 안달난 유일한 사람이었다. 닉은 퀴리가 비밀번호를 입력하면서 키보드를 하나하나 보고 누르는 광경을 보고 충격을 받았고, 그의 조언 몇 마디는 곧 즉석에서 그녀를 가르치는 수업으로 바뀌었다.

"이건 제어하기가 너무 어려운 것 같아요."

퀴리는 닉이 새 파일을 만들면서 아무거나 입력하기 시작하자, 자신의 손가락을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

"인간은 계속해서 지켜봐야 하는 부분이 너무 많다고요."

"처음에는 좀 까다롭긴 하지, 그래. 하지만 엘리는 2주 만에 금방 익숙해졌네. 이제는 나보다 빠르지."

"엘리?"

"내 비서네. 한번은 그 녀석이 타이핑을 너무 빨리 해서 그녀가 쓰던 것보다 더 좋은 타자기를 찾아다녀야 했지."

닉이 퀴리에게 터치 타이핑의 기본을 가르친 후 한 시간 쯤 지났을 때에, 네이트가 머리를 쑥 내밀었다.

"재미좀 보고 계신가요, 두 분?"

그는 손에 천을 들고 무엇인가를 문지르면서, 만면에 미소를 띠며 물었다.

"맞아요! 무슈 발렌타인이 제 기록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옮겨적는지 알려주고 있었어요. 오, 그건 뭔가요?"

퀴리는 그녀의 자리에서 거의 고통스러워 보일 정도의 각도로 몸을 틀어 물었다. 네이트가 그것을 들어올려 보였다. 닉은 그 기계 부품이 뭔지 곧바로 알아차릴 수 없었다.

"코즈워스를 좀 정비하고 있었어. 제너럴 아토믹스가 얼마나 기술력이 좋았든 200년쯤 점검을 받지 않고 보내고 나면 뭐든 문제 한두 개는 생기기 마련이지. 이것만 넣고 나면 금방 움직여도 좋을 상태가 될 거야."

"어려운 부분이 있으면 말씀해주세요. 제가 분명 도움이 될 테니까."

퀴리는 그렇게 말하고 다시 타이핑을 연습하기 시작했다. (사실 그녀는 알파벳의 모든 글자를 사용한 여러 문장들을 생각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그녀의 문장은 타이핑 속도가 고통스러울 정도로 느린 와중에도 '빠른 갈색 여우는 게으른 개를 뛰어넘는다.' 이상의 것이었다.)

"고마워, 지금은 나 혼자서도 괜찮아."

"자네 아직도 스스로 신스가 아니라고 확신하나?"

네이트는 고개를 젓고, 입술을 삐죽거리며 미소를 지었다.

"아니에요. 손에 있는 나사가 느슨해지기라도 했어요? 그런 거라면 정비공한테 이야기하는게 나을 거예요."

"이토록 환자를 홀대하다니?"

"뭐, 어쨌든."

그는 손에 든 부품을 힐끗 내려다보았다.

"이걸 다시 꽃고 올게요. 타이핑은 열심히 해 보고, 퀴리. 벌써 나아지고 있는 것 같아."

"제 현재 속도는 분당 약 5단어로 정확도는 97%예요. 개선의 여지는 아직 많아요."

마침내 퀴리가 타이핑 연습에 싫증을 느끼고 나서(그녀는 이미 엘리가 타이핑을 시작한 첫날보다 훨씬 빨랐다) 닉은 그녀를 식물을 관측하도록 놔두고 네이트의 집으로 돌아왔다. 코즈워스는 그 곳을 날아다니며 먼지를 털고 있었고, 그의 기계장치는 이전보다 조금 덜 시끄러웠다. 그는 청소하면서도 볼트-텍 도시락으로 덮인 부엌의 섬을 조심스럽게 피해다녔다. 네이트도 카펫 위에 아무렇게나 앉아 있었는데, 온갖 도구에 둘러싸인 채 몇 집 아래쪽에 있는 바-슬래시-카페테리아에서 있던 라디오처럼 보이는 것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음악을 내보내고 있는 다이아몬드 시티 라디오가 조금 탁한 음질로 틀어지고 있었지만, 그것은 네이트가 카펫 한 쪽에 벗어둔 핍보이에서 나오고 있었다. 닉은 한 곡이 끝나고 우라늄 피버가 시작하는 것을 들었다.

"누가 여기서 음악도 뭣도 아무것도 안 나온다고 불평하더군요."

네이트는 고개도 들지 않고 설명했다.

"뭐 필요해요?"

"글쎄, 의사 양반, 가끔 손목이 분리될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 이걸 어쩌나?"

네이트는 웃으며 라디오를 옆으로 밀치고 나서 카펫을 툭툭 두드렸다.

"좋아, 좋아, 제가 한 번 봐 보죠. 하지만 정말로, 저보단 스터지스에게 맡기는 게 낫다는 것만 알아 두세요."

"그래, 하지만 내가 스터지스를 얼마나 안다고 그에게 내 목숨을 맡기겠나? 아니면 – 음, 더 말할 필요는 없겠지."

닉은 다리를 꼬고 검사를 위해 금속 손을 내밀어보였다. 나사는 일단 붙어 있기는 했지만 그를 점점 곤란하게 하고 있었다. 최근에는 점점 더 자주 조여 두어야만 했고, 그렇지 않으면 손가락의 뼈들이 제대로 붙어있지 않았다.

네이트는 웃었다.

"그럼 최선을 다해보죠."

그는 손을 붙잡고 좀 더 잘 보려 불빛 아래에 두었다. 물론 닉은 이렇다 할 감각이 느껴지지 않았지만 네이트가 손가락에 아주 약한 힘만을 주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냥 거기에 원더글루를 바르면 안 되는 거예요?"

"자네가 말하고 보니 그렇군…. 내가 시도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게. 직접 하기엔 좀 각도가 좋지 못하니까."

"여기에."

네이트는 가장 가까운 유리병(그 주위에서 닉이 볼 수 있는 것만 해도 적어도 네 개는 흩어져 있었다)을 집어들고 잘 흔들어 준 다음 다시 내려놓았다.

"잠깐만 빼도 될까요?"

"그렇게 하게."

네이트는 재빨리 나사를 푼 다음 딱 한 방울이 나올 때까지만 원더글루를 쥐어짜서 그가 원하는 곳으로 가져갔다. 스크류 드라이버를 몇 바퀴 돌리자 곧 다 마무리된 것처럼 보였다.

"저걸 말려야 하니까 잠깐만 놔두세요."

네이트가 말하며 마지막으로 손을 훑어보았다. 그는 닉의 손목을 잡은 채로 웃으며 고개를 들었다.

"그 밖에 더 도와줄 건 없어요?"

닉의 금속 심장은 돌연 정지할 이유가 없는데, 갑자기 마치 그렇게 된 것처럼 느껴졌다. 그 순간 밝은 조명 아래서 그가 마치-

너무나 검은 나머지 거의 푸른 빛으로 보이던 검은 머리칼은 웃는 얼굴 위에서 뒤로 사라졌다. 푸른 눈이다, 흐리지만, 시인이 뭐라도 써낼 수 있을 것만 같은 밝고 맑은 회색 눈동자가 아니라. 더 도와줄 건 없어요? 그의 긴 하루가 막바지게 다다랐을 때, 제니퍼의 집에 찾아가자 그녀가 그렇게 물었다.

그녀는 그에게 커피를 가져다주고, 그가 무용한 단서들에 대해 불평하는 것을 들어주고, 의자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아서 그의 손을 그녀의 손으로 감싸쥐었다. 그에게 웃어보이면서. 더 도와줄 건 없어요?

"닉?닉, 괜찮아요? 닉? 제 말 들려요?"

닉은 눈을 깜빡였지만 눈 앞의 기억들을 내쫒지는 못했다. 그는 눈을 감고 모두 지워 버리려는 것처럼 머리를 살짝 흔들었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떴을 때 제니는 사라졌고 그 자리에는 네이트가 그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난 괜찮네."

그가 반사적으로 말했다.

"하지만 반응이 없었는데, 그리고, 음. 당신 눈동자가 풀려있었어요. 그건 '괜찮은' 게 아니라고요."

"옛 닉 발렌타인의 섬광일 뿐이야."

그는 손을 끌어당겨서 손가락을 움직여 보았다. 모두 완벽하게 작동했다.

"예전에 말하지 않았나, 이따금씩 이런 일들이 일어난다네. 인스티튜트가 그를 나에게 되는대로 집어넣은 부작용이야. 손을 고쳐줘서 고맙네."

"좋아요."

네이트가 여전히 표정을 풀지 않으며 말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그것은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와 제니는 그렇게 닮은 편은 아니었으나, 그들이 힘든 하루를 보내고 만남을 가졌을 때 제니는 그에게 정확히 똑같은 표정을 지어보이곤 했다. 네이트의 얼굴을 마주하는 것은 다섯 개나 전혀 상관없는 기억들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에, 닉은 그런 이야기들을 꺼내고 싶지 않았다. 불안한 마음에 닉은 황급히 시선을 뿌리쳤다.

닉은 그 자리에서 도망치기 위해 핑계를 댄 후, 강변을 걸으며 담배를 좀 태우기 위해 낡은 집들이 늘어선 곳 아래로 내려갔다. 그는 깊게 숨을 들이마시면서 나무에 기대어 꺼져가는 빛에 희미하게 비추어 보이는 강물을 바라보았다. 멀리, 저녁식사가 시작되면서 커져가는 목소리들이 들려왔다. 그가 청력을 조금–멍청한 레이더들이 공격하는 것을 들을 수는 있을 정도로–차단시킬때까지만이었다. 그리고 닉은 그의 주의를 끌려고 애쓰는 옛 환영의 잔재들이 아니라, 지금 그가 어디에 있는지에 집중하려고 노력했다.

당황스러웠다. 이곳의 그는, 형사 닉 발렌타인이었다, 추운 밤 비에 젖은 그의 신발을 보고 걱정하는 약혼자를 안심시키던, 그는, 형사 닉 발렌타인이었다, 약혼자에게 경찰이 보호해줄 것이기 때문에 윈터가 그들 중 누구라도 해칠 수 없을 거라고 말하던, 그리고 동시에 그는, 탐정 닉 발렌타인이었다, 그의 기계 손을 다시 확인하면서 네이트가 너무 걱정하지 않았으면 하고 바라는, 네이트는 그것이 아니라도 이미 걱정할 것이 충분히 많았기 때문에.

고맙게도 잠깐의 반짝임은 이미 사라져 가고 있었다, 지금 이 순간의 지나치게 조용한 나무들과 동쪽, 그의 앞에서 떠오르는 창백한 달빛을 희미하게 만들면서. 닉은 다 피운 담배의 불을 꺼트리고 나중에 버리기 위해서 주머니의 다른 담배들 사이에 처박아두었다. 그리고 나서 몇 분 더 여유를 가지기로 했다. 이 곳은 황야보다 안전하고 다이아몬드 시티보다도 더 평화로운 좋은 곳이었다.

"이봐요?"

누군가 그의 왼쪽에서 말했다–가비였다.

"나일세."

그가 대답하며 가비가 더 잘 볼 수 있도록 나무에서 몸을 일으켜 돌아보았다.

"그렇군요. 저녁 먹기 전에 그냥 한 번 돌아보고 있었습니다. 같이 가시겠습니까? 당신이 괜찮다면 당신 이야기를 좀 더 들어보고 싶은데요."

"그럼, 물론이네."

그는 가비를 따라 다리까지 내려간 뒤, 모두가 저녁을 먹기 위해 모인 곳에 도착했다. 퀴리가 그에게 손을 흔들었다.

"무슈 발렌타인! 제가 89%의 정확도로 분당 10단어까지 칠 수 있게 됐어요!"

"세상에, 벌써 그렇게 됐나?"

그는 네이트와 맞은편에 있던 그녀의 옆에 착석하곤 말했다.

"자네 글을 전부 옮기는 것도 머지않겠어."

네이트는 잠시 그를 빤히 바라보다가 기침을 하며 고개를 돌렸다. 그랬다. 네이트는, 전쟁 전이나 후의 인구 절반과 달리 담배 냄새를 견딜 수 없어했다. 닉은 수십 년간 축적된 타르를 처리해주는 시스템 덕에 한 번도 그러한 노력을 기울인 적 없었음에도 그를 위해서 습관을 덜 들이려 애썼다. 어쨌든간에 그것은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그는 신스였고, 그 의례적인 행동에 관한 모든 것은 심리적 영향을 받은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습관을 늦추려 시도하고 결국 완전히 그만둔다는 것은 생각 이상으로 어려운 일이었다. 그가 바가지를 씌운 어딕툴이라도 사용하거나, 혹은 다른 대체할만한 습관을 찾을 수 없는 것이 애석할 뿐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옮길 만한 자리가 없었고, 게다가 한 미소짓는 구울이 – 그 볼-텍 사원 이름이 뭐더라?  – 첫 번째 그릇을 비운 사람들에게 스튜를 나누어주기 시작함에 따라 뭔가 이야기를 풀어놓아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빨리, 괜찮은 이야기좀 꺼내 봐요!"

"밀실 미스터리 같은 건 없나?"

생츄어리의 기본적인 욕구는, 최근 들어 항상 오락거리인 것 같았다.

"알겠네, 알겠어. 생각할 시간을 좀 줘야지 않겠나."

닉은 그렇게 말하고 최근에 네이트와 있었던 일을 하나 떠올렸다.

"그럼, 여기 계신 분들 중에 – 잠깐, 이렇게 말해야겠군 – 실이이일버 슈라아우드?"

네이트는 숟가락을 그릇에 떨어뜨리고는 웃음을 참느라 허리를 숙였다. 닉은 그의 안에서 무언가 따뜻한 것이 퍼지기 시작하자 한 번 웃어보이고는 이미 정신을 빼앗긴 청중들에게 고개를 돌렸다.

 

-

 

네이트가 인스티튜드를 다시 방문하고 별다른 일이 없은 지도 한 달이 넘어서, 닉은 그들이 자신을 데려가는 것을 정말로 진지하게 고려해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궁금했다. 그는 네이트와의 약속때문에 충분히 조심하고 있었지만, 그것 외에도 신경써야 할 것들은 적잖이 있었다. 엘리와 함께 굿네이버를 방문할 때마다 거리에 무차별적으로 포진해 있는 지뢰들, 총을 든 깡패들, 닉이 그들의 명령을 듣도록 프로그래밍 된 것처럼 일말의 거리낌도 없이 지껄여대는 브라더후드의 순찰대원들.

여전히, 인스티튜트는 아무도 모르게 물자를 훔쳐가는 일에 능했다. (닉이 마지막으로 들었던 것은, 다이아몬드 시티의 전력 관리자들이 마을에 공급되는 전력을 뭐가 빼돌리고 있는지 아직도 알아내지 못하고 있다는 말이었다.) 닉은 한두 명의 추적자를 본 적이 있었고, 그 유니폼이 나타날 낌세만 보여도 달아날 준비가 되어 있었다.

화창한 날, 평소보다도 더 활기차 보이는 네이트가 에이전시에 들이닥쳤다.

“이봐요, 일은 좀 잘 돼가요?”

“잘 왔네요.”

엘리가 말했다.

“닉은 막 사건에 착수하려던 참이었어요. 동행하실 건가요?”

“그렇고 말고요.”

네이트가 대답했다. 닉이 막 계단을 내려와 그의 뒤편에 선 후였다. 네이트는 그에게 한 번 웃어주기 위해 몸을 돌렸다.

“어떤 사건인데요?”

“또 사라진 애인을 찾아달라는 건수네.”

닉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도시 밖에 살던 어린 청년이네, 몇 달간 동거하던 여인을 두고 떠났다고 하는데. 밤중에, 더군다나 친구들한테는 한 마디 기별도 없이. 그 아가씨한테서도 마땅한 정보가 나오질 않으니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누가 알겠나.”

“여기 오기도 전에 겁에 질렸거나 어디서 문젯거리를 떠안았거나 둘 중 하나겠죠.”

엘리가 말했다.

“단정하기엔 너무 일러. 쓸 만한 소식을 듣게 되면 우리에게 알려주게, 엘리.”

“당연하죠. 뭐라도 찾아내시길 바랄게요. 밖에선 조심하시고요, 두 분.”

“우린 그래도 늘 사지 멀쩡하게 돌아오지 않던가?”

그가 물었고, 그녀는 삐뚜름한 미소를 지으며 그들에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네이트는 이번에는 미적거리며 일을 떠넘겼고, 윗동네로 올라가 도시 경비대 몇몇에게 그 남자에 대해 묻는 것은 닉의 몫이 되었다. 그들 중 하나가 남자가 어디로 사라졌는지 알려주었고, 몇 분 지나지 않아 둘은 마을을 떠났다. 하지만, 여전히 그 남자가 왜 마을을 떠났는지에 대해선 이렇다 할 단서가 없었다. 엘리가 말했듯이, 범죄를 저지르고 겁을 먹은 나머지 발을 빼려고 하거나, 또다른 골치아픈 문제에 휘말렸을지도 모른다. 혹은 최악의 경우라면, 닉은 갑자기 공황 상태에 빠져서 자신이 누구인지, 어디에 있었는지조차도 상기해내지 못하는 사람들을 본 적이 있었다.

그 남자는 흔적도 별로 남기지 않았다. 그들은 몇 블록을 뒤지고 다녔고, 닉은 계속해서 그가 무엇에 접근했는지, 그들이 아는 장소 중 하나로 향하지는 않았는지 알아내려고 애썼다. 그들이 운좋게도 한 때 주차장이었던, 그리고 요즘들어서는 가끔씩 레이더들의 기지로 쓰였던 2층의 테이블 위에 떨어져 있던 모자를 발견하기 전까지는. 모자는 여자가 그가 늘 착용하고 다닌다고 말했던 것과 생김새가 일치했다.

“그래서 그가 여길 지나갔다는 소리군요.”

네이트는 의뭉스러운 표정을 하고 말했다.

“뭘 하려고? 그리고 모자는 왜 또 두고 간 거지?”

“여기 괜찮은 감시대가 있네.”

닉이 네이트에게 손을 흔들며 말했다.

“누군가를 만나고 있었을지도 모르네. 아니면 피하려 했거나. 잠깐 휴식을 취했거나 아무 문제도 생기지 않도록 확실히 하고 싶었을수도 있지. 모자는…. 누가 알겠나. 자신이 여기 왔다는 것을 알리려고? 급하게 뛰쳐나가느라 잊은 건가?”

그는 주차장을 다시 한 번 스캔했지만 더 쓸모있는 것―발자국, 핏자국, 이상한 물건, 치명적으로 보안이 낮은 컴퓨터 단말기…. 그런 것들이 있다면 얼마나 일이 쉬워지겠는가?―을 찾기는 어려웠다.

그는 다시 힐끗 밖을 내다보고는 여기서 누군가가 훔쳐볼 수 있는 위치에 있는 골목을 발견했다. 비밀스러운 대화가 목적이라면 괜찮은 곳이었다. 네이트는 그를 따라 차고에서 나와 골목으로 갔다. 그곳을 찾아가는 것은 보기보다 쉽지 않았다―지금은 잔해 더미, 부서진 벽돌, 나무 파편들과 뒤틀린 금속 조각들로 가득 차 있었기에.

“조심하세요, 닉”

네이트가 뒤를 따르며 말했다.

“자네나 조심하게. 파상풍 주사같은건 이제 아무데서도 만들지 않으니까.”

“2차 예방접종을 한게 200년 전쯤이긴 하지만 항체는 아직 멀쩡할걸요.”

그들은 가능한 조용하게 움직였지만, 발밑에 가득한 쓰레기 덕에 썩 조용하지만은 않았다. 두 번째로 엎어져 있던 쓰레기통 위로 기어올라가고 나자, 닉이 서 있던 잔해더미가 갑자기 무너져 내렸다. 그의 시스템은 갑자기 흐트러진 균형에 제때 대응할 수 없었다. 네이트가 남는 손으로 그를 붙잡지 않았더라면 그는 아마 벽돌 벽에 머리를 제대로 들이박았을 것이다.

닉은 손을 마주잡으며 발을 좀 더 잘 디디기 위해 올라왔다.

“고맙네.”

닉은 네이트의 어깨를 놓아주기 전에 이미 바닥을 주의깊게 둘러보고 있었지만, 마침내 그럴 만한 장소를 발견했을 때에야 작게 중얼거렸다.

“괜찮아요?”

네이트가 속삭이듯 물었다. 그는 닉이 끄덕이고 나서야 천천히 손을 놓았다. 그리고는 골목의 나머지 부분을 보며 얼굴을 찌푸렸다.

여기서부턴 앞으로 헤쳐나가기가 더더욱 쉽지 않을 듯했고, 또다른 누군가가 이 지경인 길을 지나쳤을지조차도 쉬이 확신할 수 없었다. 그들이 만들어내고있는 소음을 차치하더라도 네이트는 온 사방을 돌아다니느라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닉은 그가 뭔가 들었다고 생각했을 때, 그는 막 돌아가는게 좋겠다고 제안하려던 차였다.

그는 네이트에게 잠시 기다려보라는 뜻으로 손을 들어보이고, 청각 민감도를 한껏 높였다. 아득하게 들려오는 총성과 바람소리, 그리고 네이트의 숨소리를 그로부터 떨어트려 놓는 것은 힘들었지만, 위쪽에서 분명히 어떤 대화가 오가고 있었다.

“가보세.”

한 블록쯤을 더 지나치자 골목길이 좀 걸어다닐만해졌고, 목소리가 어디서 들려오는 것인지 더 쉽게 탐색할 수 있게 되었다. 남자 한 명, 여자 한 명―그들이 찾던 실종된 남자일지도 몰랐다. 그들은 엿듣기에 충분할 정도로 가까이 살금살금 다가갔다.

“…시장한테서.”

“보고해야 하는…무엇이라도?”

“…지금 당장.”

“그리고….”

“아직 그의…그가 사람들과 계속 이야기하는 것을 지켜봐야….”

다른 대화상대인 여자는 대답으로 어떤 단어를 듣고―닉은 이해할 수 없었다―멈추었다. 옆에서 네이트는 갑작스레 숨을 죽였다.

레이저 라이플이 켜지며 나는 특징적인 웅웅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야? 당장 모습을 보여!”

네이트의 눈썹이 찌푸려졌다.

“기다려요. 저 여자 목소리는 알 것 같네요.”

그리고 그는 닉이 미처 붙잡기도 전에 그들이 숨어있던 벽에서 뛰쳐나갔다.

“이봐, 나야.”

닉은 날선 한 마디―지금은 때가 아니야―를 속으로만 삼키고는 그를 따라 나갔다.

“선생님!”

거기에는 실종되었던 남자가 추적자의 뒤에서 벽에 기대어 있었다. 그 여자는 키가 크고 완벽한 손길이 깃든, 짧은 금발머리를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한 전쟁 전의 여성 한 명은 살해당했을 것이다.

“당신께서도 이 임무를 맡고 계신지 미처 알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눈길이 네이트에게서 닉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 프로토타입도 가져오셨군요. 감사드립니다. 질문을 몇 가지 할 시간을 주신다면 그 이후에 저희는 인스티튜트로 복귀하겠습니다.”

찰나의 시간에―겉보기에는 그렇게 보이지 않겠지만, 닉의 뇌는 필요하다면 무수히 많은 것들을 아주 짧은 시간에 생각해낼 수 있었다―닉은 의심했다. 그는 몇 달 전으로 거슬러올라가서, 네이트가 처음 인스티튜트에 방문한 그 끔찍한 한 주 동안 떠올렸던 모든 걱정들이 아마도 맞았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이것은 그의 파트너 네이트가 아니라 그들이 원하는대로 혼란과 파괴공작을 일으키고자 하는 인스티튜트가 보낸 개체라고.

아니야, 그 모든 생각 끝에 닉은 스스로에게 되뇌었다. 그는 단지 네이트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다른 사람들에게 지나치게 선량하게 굴었고, 닉을 친근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그래서 닉은 믿었다.

“아니,”

닉은 잠시 후에, 네이트가 한 걸음 물러서고 옆으로 발걸음을 옴길 때가 되어서야 그의 말을 들었다. 그 발걸음은 바로 닉과 추적자 사이로 향했다.

“선생님?”

“아니, 그는 가지 않아. 너희들한테 내가 필요한 일이 있다면 내가 동행하지. 하지만 그는 아니야.”

추적자는 얼굴을 찌푸렸다.

“실례하겠습니다, 확인해야하는 사항이 있습니다.”

그녀는 귓가의 통신장치를 누르곤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마주친 시선을 피하지도 않은 채였다.

네이트는 한 걸음 뒤로 물러났기 때문에 닉의 바로 앞에 서 있었지만, 그는 전혀 위협을 대비하는 자세가 아니었고, 총도 내려두고 있었다. 다른 신스 하나는 곤란해하며 무기를 들지도 않고, 싸울 준비도 되지 않은 상태였다.

“네이트.”

“기다려봐요, 잠깐만.”

네이트가 중얼거렸다. 추적자는 손을 내렸다.

“당신께 인스티튜트에 귀환할 때 그 프로토타입을 회수해오라는 명령이 내려졌습니다.”

네이트는 숨을 깊이 들이쉬고 천천히 내뱉었다.

“알겠어.”

닉은 그 목소리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냥, 시간이 좀 필요해, 알겠어? 곧 준비하지.”

그가 몸을 돌렸을 때 닉은 더욱 착잡해졌다. 그는 입술을 굳게 다물고 결연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가 바로 그래야만 하기 때문에, 자신의 안전에 개의치도 않고 적대적인 곳이나 전투 한가운데로 뛰어들 때 보이던 바로 그 표정이었다.

“네이트.”

닉은 추적자가 다른 신스에게 소리치는 것들이 여전히 들려왔음에도 가능한 작게 속삭였다.

“대체 무슨 빌어먹을 계획을 갖고 있는지 말좀 해주지 않겠나?”

“미안해요.”

네이트가 속삭였다. 그는 자연스럽게 비어있는 손을 잔뜩 달려있는 주머니들 중 하나로 집어넣었다.

“이런 식으로 걱정하게 해서 미안해요. 그냥, 그들은 당신보다는 저한테 좀 낫게 대해줄테니까, 그렇잖아요. 전 션의 삼촌인걸요. 그들이 뭘 원하는지 알아요. 절 너무 험하게 다루지는 않을 거예요. 저한테라면 새 프로그램을 심어줄 수도 없을 거고.”

손이 미끄러져 나왔고, 작은 무언가가 날카로운 기계부품들로 인해 거칠었지만, 여전히 꽤 능란하게 움직이는 손가락 사이로 사라졌다.

“그들 사이에 자네를 혼자 내버려둘 순 없네.”

“그럼 다른 사람들에겐 누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전해주는데요?”

“젠장, 네이트—.”

“미안, 미안해요.”

그는 얼굴에 완전한 웃음이라기엔 미묘한 표정을 띄우고 있었다. 그의 푸른색 눈이 약간 크게 뜨였다.

“부탁할게요. 제가 영원히 여기 눌러붙어있진 않을 거라니까요, 제발요.”

그는 그 물체를 닉의 코트에 밀어주었다. 닉은 그것을 가까스로―손까지 몇 번을 더듬으면서, 그들 사이에는 단치 몇 인치의 거리가 있을 뿐이었는데도―붙잡았다. 네이트가 마치 하나의 동작인 것처럼 느껴지지까지 하는 유려한 동작으로 몸을 돌리고, 그의 소총을 들어 추적자에게 발포했을 때였다.

그녀는 첫 발을 맞고서 잠시 비틀거렸고, 녹색 플라즈마가 그녀의 코트 위로 선연하게 흩뿌려졌다. 그녀는 두 발을 허용하지 않으려 재빨리 몸을 틀어 움직였고, 스텔스 보이를 작동시켰다. 닉은 그녀의 움직임을 어느 정도는―그의 시각 처리 알고리즘은 스텔스 보이가 발생시키는 왜곡을 흩어놓을 수 있었다―추적할 수 있었고, 그녀가 네이트가 아닌 자신을 노리고 있다는 것 또한 알 수 있었다. (게다가 그녀는 귓가에 가볍게 손을 얹고 있었다. 엿같게도 그녀는 지원을 요청하고 있었다.)

물론 네이트는 그녀가 미처 알지 못하는 부분에서도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 핍보이는 전투상황에서 아주 신속하게, 장거리에 있는 적까지도 사격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내장되어 있었고, 스텔스 보이도 그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네이트는 뒤로 물러나며 일렁이는 스텔스 필드를 바라보고 두 발을 더 날렸다.

부탁해요, 네이트는 얼굴 위로 가감 없이 떠오른 표현으로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의 머리칼이 뺨에 달라붙어 있었고 그의 눈은—

그 순간 닉은 파트너를 믿을 수밖에 없었다.

그는 결코 원치 않았던 것을 행동에 옮기며 속으로 욕을 짓씹었다. 그는 뒤로 돌아 네이트가 건넨 선물을 붙잡은 채 뛰기 시작했다. 그것은 펄스 수류탄이었다. 닉은 아무 방향으로나 내달리면서 손가락을 핀으로 미끄러트렸다. 레이저 소총이 발포되었고, 그는 뒤에서 뭔가 타는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빌어먹을, 네이트는 멀쩡하게 여기서 빠져나가는 편이 좋을 것이다. 그렇잖으면 닉이 인스티튜트로 뛰쳐들어가 그를 붙잡아 끌고 나올 테니까.

돌연 공기중에 파직거리는 소리가 울려퍼졌다. 닉은 수류탄의 핀을 잡아당겨 그 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던졌고, 계속해서 달리며 다른 골목으로 꺾었다. 그을린 나무와 오존 냄새가 강하게 났고, 엄청난 굉음과 함께 가득한 빛이 골목을 메웠다. 수류탄은 잠시 후 폭발했고, 반경에 든 신스가 비명을 내질렀다. 다행하게도 닉은그 폭발에 휘말리지는 않았고, 단지 그들이 남기고 간, 물밀듯 밀려드는 묘한 냄새를 느끼고 있을 뿐이었다.

닉은 발길을 돌려 또다른 골목으로 접어들면서 욕설을 몇 마디 더 중얼거렸다. 이번 것에는 온갖 자질구레한 단어가 섞여들어가 있어서 적절한 시간동안 모두 내뱉을 수도 없었다.

닉은 그가 타격을 준 신스가 온전히 복구되기  전에 방향을 바꿔 다른 길로 달려갔다, 비록 거기에 소중한 몇 초를 할애해야 했음에도. 그가 택한 방향은 여차하면 숨을 수 있는 나무 상자들 쓰레기통들이 즐비했지만, 이전에 비해선 조금 더 깨끗했다.

그는 아직도 플라즈마가 적중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괜찮았다. 그들은 아직 네이트를 붙잡지 못했다. 누군가 그에게 명령을 외치고 있었고, 닉은 무시했다. 냉각 시스템의 경고 또한 무시했다.

또 다른 모퉁이가 나왔다—이쯤 되면 그는 적어도 이 작은 뒷골목 미로의 외곽에는 도달했어야 했다. 그러나 그 전에, 닉은 그들이 골목 안을 휘젓고 다닐 것을 우려해 등에 있던 레이저 소총을 꺼내들었다. 그는 바로 지나쳐온 방향으로 총구를 겨냥했고, 다른 신스가 나타나자마자—그리고 추적자도—세 발을 날렸다. 머리만 제대로 맞추면 된다. 적어도 몇 초간은 정신을 빼놓을 것이다.

몇 번의 우여곡절과, 그가 가까스로 피한 총알 몇 발과, 팔꿈치를 스치고 지나간 공격과, 그 보답으로 날려보낸 몇 발이 거리에 혼재했다. 닉은 그 앞에 놓인 길이 어느 길인지도 몰랐다. 그는 방향을 잡으려 주의를 기울이고자 했고, 맞지 않으려 애썼다. 그랬다면 유용했겠으나, 그의 몸 어딘가에 나침반이 내장되어있지는 않을 듯했다. 그는 아무 방향으로나 질주하기 시작했다. 이상하게도 한동안 어떤 신스도 보이지 않았다.

닉는 잠시 후, 추적자가 다른 골목에서 튀어나와 그를 들이받고, 총으로 가격할 때가 되어서야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들은 함께 아스팔트 바닥으로 나동그라졌고, 추적자는 몸추림치며 발길질을 하는 닉을 바닥에 고정시키려 했다.  그는 본능적으로 금속 손으로 추적자의 눈을 할퀴었는데, 그것이 고통에 차 몸을 움찔거리며 내뱉는 비명도 전혀 불쾌하게 느끼지 않았고, 다만 벗어나려 더 강하게 발버둥칠 뿐이었다.

“N1-65!”

추적자는 눈을 엉망인 채 감고있음에도 닉을 두 손으로 제압하려고 애쓰며 외쳤다.

오, 안돼. 오, 안돼. 닉은 고개를 틀어 그의 어깨를 잡고 있던 남자의 손가락을 깨물었다. 쉽지 않아. 다시 그를 할퀴었다. 추적자는 잠깐 멈칫했지만, 곧 닉의 팔을 명백히 가능하지 않은 각도로 꺾었다. 팔의 모든 합성 신경이 닉을 아찔한 상태로 몰아갈 만큼이나 고통에 불타올랐다.

(그들은 대체 왜 우리를 고통을 느낄 수 있도록 프로그래밍 한걸까? 네이트는 그 말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는 고통은 곧 살아가는 존재가 됨으로서 갖게 된 결과라고, 그들에게 위험과 부상에 대해 경고해주기 위해 존재한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닉이 괜찮은지 물어보고, 혹시라도 있을 어떤 부상이라도 놓칠까 염려하며 걱정이 가득한 눈으로 그를 살펴보고는 했다.)

“N1-65, 리콜 코드.”

추적자는 그렇게 말하고 있었고, 닉의 저항은 너무 약해서 더이상 방해가 되지 않았다.

“BETA 4 1 EDDY.”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모든 것이 어두워졌다.

 

-

 

“…굉장한 구조야. 기록을 찾아보는 일은 어떻게 되어가나?”

“확인해야 할 데이터베이스가 조금 더 있지만, 기껏해야 하루 이틀이면 확보될 겁니다.”

“좋아. 우리에게 남은 과제는 하나뿐이군.”

“저희가 알아낸 바로는 한 개체가 더 있어야 하는데, 어디로 간 건지 모르겠습니다. 아마 폐기되었을지도요.”

닉은 움직일 수 없었다. 눈을 깜빡이거나, 합성 근육을 움찔거릴 수조차 없었다. 그의 청각 센서도 꺼져 있었고, 모든 것들이 소란스럽고 비틀려 있는 듯했다. 그는 이 모든 것들이 어디서 들려오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잠시만요, 이것 좀 보세요… 그가 깨어났습니다.”

“뭐? 어째서지? 다시 꺼 버려.”

열쇠가 어딘가에 끼워지는 소리가 났고, 그는 다시 정신을 잃었다.

 

-

 

“기가 막히는군, 자네 이 코드 더미들 아직 안 봤나?”

“네, 당신이 말씀하시기 전엔 서류도 확인 안 한 걸요. 그런데 그런 구식 언어로 짜였다는 점을 고려해도 프로그래밍이 굉장히 잘 되어있다고 하더군요.”

“이걸 달고도 그 긴 세월 돌아다닌 걸 보면 잘 작동하는 모양이지. 분명 손상된 부분도 있을 테지만… 우리가 고칠 수나 있을지 모르겠군.

“차라리 그를 3세대 몸체에 집어넣는 게 나을 거예요.”

“말이야 쉽지. 그 과정에서 저 희소한 표본을 망가뜨리거나, 손상이라도 주게 되면 어쩔 셈인가.”

“아, 박사님, 이게 또 켜지는데요.”

“다시? 왜?”

“잘 모르겠습니다. 코드에 뭔가가 있나 봐요, 아마 자가 보호 시스템 같은. 다시 비활성화하겠습니다.”

 

-

 

이번에 깨어났을 때는, 닉은 좀 정신이 덜 혼미한 듯했고 아무도 그를 두고 이야기하고 있지 않았다. 둘 다 큰 발전이었다. 조금 전에 비하면…조금 전? 그는 확신할 수 없었다.

그는 여전히 목 아래로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고, 손가락 하나 까닥할 수도 없었다. 그의 머리는 시험대의 어느 부분엔가 뉘어져 있었고, 그것은 잠시 후 움직였다. 이상하군. 누군가의 다리인가? 그것이 가장 가능성 있는 생각 같았다.

 

-

 

닉은 몸을 약간 움직여보았다. 그의 머리가 약간 기울었다. 한숨.

“이런 일을 겪게 해서 미안하군요.”

누군가 중얼거렸다. 네이트였다. 대체 네이트가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지? 머리는 왜 그의 무릎에 놓여 있는거고?

철컥이는 소리를 내며 금속으로 만들어진 무언가가 시야에서 사라졌고, 닉은 스크류드라이버가 자신의 목 안으로 들이 밀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불현듯 낭패감이 엄습해왔고, 그동안에도 그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다―저항하거나, 소리치거나, 심지어 눈을 뜨는 것조차도. 그가 임시방편으로 수리를 하려고 하거나 꼬인 철사를 풀려고 하는 때가 아닌데도 그것이 있으면 안 될 곳에 들어와 있는 것은 납득이 되지 않았다.

그냥 네이트야, 그는 잠시 후에 스스로에게 말했고, 완전히는 아니었지만 어느 정도는 공황 상태가 가라앉았다.

“이게 당신을 아프게 하지는 않길 바랄게요.”

네이트가 말했다.

“혹시라도 깨어 있다면 좀 들어봐요. 과학자 중 하나가 당신이 계속 재부팅된다고 불평하던데요, 왜 그런지 도저히 모르겠다면서. 그들이 당신을 여기 데려오느라 꽤나 애썼을걸요. 그리고 당신을 고치는 일에 관해서라면, 제가 또 전문가 아니겠어요.”

그는 소리 내 웃었지만 거기에 즐거움이라고는 하나도 묻어나지 않았다.

“제가 직접 해야만 하는 게 아니었으면 그들한테 여기를 좀 보라고 했을지도 모르겠네요. 제가 제대로 하고 있는 거라면 좋겠어요. 당신은, 음, 라디오를 고치는 것보다 어렵다고요, 닉. 코즈워스보다도. 적어도 그들은 당신을 마음에 들어 해요. 다행이죠, 그렇잖아요? AI가 굉장히 발전된 상태라 연구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끊이지 않고 하던데. 아, 미안해요. 적어도 그들은 당신을 온전히 놔두고 싶어 하니까.”

네이트는 크게 침을 삼켰다.

“미안해요.” 

그가 다시 말했다.

“이런 일만은 일어나지 않기를 바랐는데. 유감이네요.”

자네 잘못이 아니야, 라고 그는 말하고 싶었지만, 인스티튜트는 그에게 텔레파시 기능 같은 것을 내장시켜두지는 않았고, 어떤 말도 소용이 없었다. 조심하라고 말했잖나. 우리가 추적자 앞까지 제 발로 걸어 들어간 것이 자네 잘못은 아니야. 세상에, 네이트가 사건을 조사하러 함께 오지 않았더라면 상황은 결국에 더 최악으로 치달았을 것이다. 적어도 그는 노력했다.

“빛을 이렇게 비추고 있는데도 뭐가 뭔지 모르겠네. 그들이 줬던게... 아, 여기 있네.” 

부드러운 찰칵 소리.

“오, 세상에. 당신 여기에 부품이 정말 많네요, 닉.” 

그의 찢어진 피부 끄트머리에 부드럽고 조심스러운 손길이 닿았다.

“미안해요.” 

스크류드라이버가 여기저기를 들쑤시고 다니는 것은 꽤 이상한 느낌이었고(지금은, 다행히도 꺼내지고 있었지만) 목 안에서 자신의 것이 아닌 손가락이 돌아다니는 것은 그보다 더했다. 그것이 아무리 네이트처럼 조심스럽더라도.

손가락들이 문이 휙 열리는 소리와 함께 멈췄다. 닉은 밀려드는 공기를 느끼며 크게 울려 퍼지는 발소리를 들었다. 방 크기가 작았나? 들리는 것으로는 그랬다.

발걸음이 멈췄다. 닉이 느끼기에, 네이트는 새로운 사람을 전혀 인지하지 못한 것처럼 행동했다. 잠시 후, 그는 손가락을 척추를 따라 미끄러트리기 전에 닉의 음성 장치 부품 중 하나를 어루만졌다. 그것은 당연하게도 닉을 불안에 떨게 만들었고, 심지어 이를 소리 내 불평할 수 없다는 것도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몇 분 후, 누군가―무엇일지도 모른다―가 목을 가다듬었다.

“삼촌.”

그가 말했고, 그의 목소리는 높낮이 없이 부드러웠으나 닉은 그를 훑고 지나가는 오싹함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분명 션일 것이다.

네이트는 다시 한번 침을 삼켰다. 이번에는 그렇게 큰 소리는 아니었다.

“션.”

그가 말했다.

“너한테 말했을 텐데. 지금 당장은 할 이야기가 없다고. 지금은 말이야. 여러 번 말하게 하지 마.”

“당신이 이 모델을 매우 마음에 들어 하신다는 것, 알고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다루게 된 점에 대해서는 사과드리겠습니다. 믿으셔도 좋습니다. 책임자들과 이야기를―.”

“션. 말했잖아. 너와는 지금 말하고 싶지 않다. 이 상황에 대해서도.”

“삼촌.”

션이 말했고, 네이트는 닉의 목에서 손을 내려놓았다.

“당신께서 제게 노여워하고 계신다는 것은 모르지 않습니다만 우리 사이의 관계에 어떤 악의가 존재하기를 바라지는 않습니다. 제게는 시간도 별로 없―.”

네이트가 뭔가를―아마 공구상자?―집어 들자 금속끼리 부딪치는 소리가 났고, 그가 그것을 쾅 하고 닫는 큰 소리가 뒤따랐다. 닉은 몸을 움직일 수만 있었다면 그의 피부 밖으로 뛰쳐나왔을 것이다.

그 웅성거림마저 사라진 후, 방은 다시 조용해졌다. 기계가 돌아가는 소리만 은은하게 들려올 뿐이었다.

“방금 건,”

네이트가 말했다.

“그게 지금 너를 향한 내 감정이라고 생각하면 되겠구나. 전에는 이런 행동이 좋지 못하다고 생각했는데, 그런데, 음. 션, 션. 난 네 엄마나 아빠가 아니라는 걸 안다. 그들 중 누구만큼이라도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도. 아니면 여기서 너를 길러준 사람들 만큼만이라도. 하지만. 단지 한 사람으로서 보아도, 넌 내 말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고 있어. 그리고 몇 시간 전 언쟁에서 보여줬던 행태를 지금 내게 고스란히 내보이고 있잖아. 이걸 정리해 낼 감정적인 여유가 없구나, 알겠니? 특히 네 과학자들이 닉을 이 모양으로 만든 후에는. 그들은 필시 내가 이걸 고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너도 알다시피 난 이렇게까지 망가진 걸 고쳐본 적도 없다. 그러니 플래시라이트를 좀 들어주던가, 도와주던가, 그것도 아니라면 나가봐라.”

다시 긴 침묵이 이어졌고, 발소리가 몇 번 더 들렸다; 부드러운 찰칵, 하는 소리가 가까운 곳에서 들려왔다.

“어느 쪽으로 비출까요.”

“여기 - 아니, 좀 옆에서 들어봐. 손이 부딪치겠어.”

션은 손을 약간 움직였다.

“그 정도면 되겠네.”

한 손이 닉의 머리를 좀 더 뒤로 젖혔고, 그는 네이트의 무게중심이 이동하면서 머리 아래의 다리가 움직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더 잘 볼 수 있도록 하는 건가?

“아, 이런. 좋아, 이걸 고쳐볼 수 있을 것 같네. 하지만 좀 아플 지도 모르겠어. 미안해요, 닉. 아직 여기저기 건드려야 할 구석이 많아요. 그래도 이게 끝나면 적어도 당신 다리를 다시 움직일 수 있을 거예요.”

“이 개체는 꺼져있습니다.”

션이 말했다.

“그는 분명 스스로 작동을 시작하는 시스템을 갖고 있어. 그러니 그렇지 않을지도 모르지. 봐, 누가 네 목을 이렇게 쑤셔대고 있으면 너도 아마 그 사람이 좀 친절했으면 하고 바랄 수밖에 없을 걸. 그런 표정 짓지 마라. 그늘은 고통을 느껴. 괴로워할 수도 있지. 네가 바로 그렇게 만들지 않았니. 그러니 그만둬.”

네이트가 닉의 척수를 고치면서 혼잣말로 중얼거리는 것을 제외하고는 한동안 조용해졌다. 그 와중에,  마침내 닉의 기초 자가 진단 프로그램이 실행되면서 수많은 오류 메시지를 토해냈다. 만약 그가 메시지를 차근차근 살펴보았다면 그것이 그의 척추가 분리되어 있다는 오류를 나타내고 있음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닉은 ‘우발적인 사고’가 도대체 어떤 식으로 이루어져야 그것을 분리해 낼 수 있는지 궁금했다. 그는 전에 한 번 꽤 심각하게 굴러서 부품 연결부가 꼬이고 잡동사니들이 떨어져 나간 적이 있었지만, 어쨌든 몸이 마비될 지경에 이르지는 않았다.

네이트는 이미 몇몇 ‘인증되지 않은 사용자 접속 시도’경고를 보긴 했지만 그가 닉을 완전히 되돌려놓기 전까지는 어떤 다른 문제가 벌어지고 있는지 확인하기 어려울 듯했다. 그런 메시지들은 한 번에 잇달아 뜨기 시작하다가, 잠깐 멈추었다가, 다시 차례로 나타났다. 마지막 것은 닉의 내부의 시간 감각으로는 거의 며칠 전에 발생했던 것이었다. 이쯤 되었으면 그들은 어떻게 그의 뇌에 접근할 수 있는지도 알아냈을지 몰랐다. 그는 그 부분이 걱정스러웠다.

주의를 환기시킬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기에―네이트와 션은 여전히 서로 어떤 말도 나누지 않았고, 네이트가 그의 목을 가지고 정확히 무엇을 하고 싶어 하는 건지 추측해 보는 것은 아무런 소득도 없었다―그는 그런 생각을 떨쳐내기가 어려웠다.

어쨌든 인스티튜트가 그의 기억과 그의 인격, 그리고 그의 다른 모든 것에 이미 접근했을 가능성은 꽤 높았다. 그들이 그것들로 할 수 있는 끔찍한 짓은 너무 많아서 세기도 어려울 정도였다. 기억을 지우거나, 인격을 덮어쓰거나, 다른 개체로 옮겨버리거나, 그를 복제하거나….

닉의 목에서 뭔가가 빠져나왔고 네이트가 욕을 했다.

“미안해요, 닉.”

그는 지난 한 시간 동안 말한 것까지 친다면 50번째가 될 말을 했다. 그들은 나중에 이것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 보아야 할 것이다. 물론 그럴 기회가 된다면.

“다시 이쪽으로 들어가… 좋아, 됐군. 걱정 마세요, 다 됐어요. 우리가 당신을 다시 움직일 수 있게 해 줄 테니 믿어보세요."

하늘에 감사하게도 2차 진단은 약 70%쯤 실행되고 있었고, 그다음에는 그가 눈을 뜨지 못하게 하고 있던 안전장치가 꺼진 듯했다. 별다른 이상이 없다면 그는 적어도 네이트를 보고, 그가 괜찮은지를 좀 살핀 다음, 고맙다는 말을 전할 수 있을 것이다. 혹시 모르니 엘리에게 말 몇 마디도 전해달라고 하는 것도 잊지 않고.

“당신은 그에게… 상당한 애착을 갖고 계시는군요, 그렇잖습니까.”

“함께 많은 것들을 헤쳐나온 후에는 그럴 수밖에 없지. 그가 날 구해줬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야. 닉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그를 무서워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그런 것에는 신경 쓰지 않고 도움을 주고 싶어 하지. 몇 가지 말해주자면, 가끔 순찰도 돌아주고, 아이들을 돌봐주고, 내 친구 퀴리에게 키보드를 어떻게 쓰는지도 알려줬지. 그리고 그는 뭐든, 사람이나 잃어버린 것들을 잘 찾아내. 그가 없었다면 널 찾을 수도 없었을 거다.”

“그렇습니까?”

“닉은 커먼웰스를 돕기 위해 너희들 중 누구보다도 많은 일을 하고 있어.”

닉의 심장이 그런 방식으로 설계되었다면, 네이트가 해주는 좋은 말들을 듣는 동안 두근거렸을지도 모른다. (사실, 그러고 보니, 그는 제니가 그의 청혼을 승낙하고 열정적으로 키스했을 때조차도 인간 닉의 심장이 은유적 표현이 아닌, 실제로 두근거렸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인간의 심장은 정말 그런 식으로 움직이는가?)

한숨 소리.

“삼촌….”

낙담한 한숨이 그의 위로 내뱉어졌다. 아마도 집안 내력인 듯했다.

“뭐야, 너희가 내 로봇 친구를 공격해서 이 모양을 만들어 놨는데도, 내 말은 한시도 못 듣고 있겠다? 이 아래에 너한테 공정한 거래가 뭔지에 대해 알려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던 거냐?”

이것은 숀의 웃음을 자아냈고, 몇 초 후 네이트는 기쁜 소리를 냈다.

“좋아, 이걸 다시 조립하고―.”

시야가 하얗게 질릴 정도의 어마어마한 고통이 닉을 강타했다. 그는 몸부림치고, 헐떡이고, 비명을 지르고, 어떤 것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몸은 말을 듣지 않았다. 고통이 점차 사그라들기 시작하고, 귓가에 낮은 소리가 희미하게 울리고 있을 때 두 가지 일이 거의 동시에 일어났다.

첫 번째는 2차 진단이 다 끝났다는 것이었다. 무사히 실행됐던 것들은 별다른 문제 없이 완료되었지만, 척추 때문에 실행하지 못한 검사에서는 어마어마한 경고 메시지가 떠 있었다. 두 번째로는, 첫 번째 것보다 더한 충격이 찾아왔다. 이번에는, 닉은 시험대 위에서 마치 그렇게 하면 고통이 좀 덜어질 것처럼 몸을 웅크리고 금속 표면을 손으로 긁어대었다. 그의 다리가 움찔거렸고, 음성 장치는 그가 원하는 대로 비명을 내뱉는 대신 헉헉거리는 작은 소리만 낼 뿐이었다.

이번 것은 더 갑작스럽게 사라졌고, 그는 숨을 헐떡이며 쓰러졌다. 그의 얼굴 위에는 손이 놓여 있었다. 귀에서 들리는 음색 사이로 닉은 누군가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닉은 눈을 떴다. 바로 위에 눈을 크게 뜨고 있는 네이트가 있었다. 정말 예쁜 파란 눈이군, 닉은 여전히 혼란한 와중에도 그렇게 생각했다. 네이트의 머리카락이 얼굴에 닿아 있었지만, 그 각도에서 보기에 다친 곳은 없어 보였다.

그는 한 번, 두 번 눈을 깜박였다.

“네이트?”

닉의 목소리는 이번에는 의도한 대로, 거슬리는 것 없이 나왔다. 그의 위에 있는 눈들은 갑자기 약간 젖은 것처럼 보였다.

“닉, 당신―당신 괜찮아요?”

“척추를 다시 붙이는 건 정말 끔찍하게 아프군. 추천하지는 않겠네. 자네 것은 좀 멀쩡하게 잘 보존하도록. 이봐, 그런 눈으로 보지 말게. 난 지금 괜찮으니까.”

“어쨌든 그가 일어났군요. 환상적입니다.”

닉은 고개를 돌려―약간의 거부감이 일었지만, 그래도 이런 간단한 동작을 해낼 수 있게 된 것이 기뻤기에 오래가지는 않았다―션을 바라보았다. 그는 네이트와 많이 닮아 있었다. 그가 한 번 보러 간 적이 있었던 노라와도. 나이는 더 많았고, 머리는 좀 더 세어 있었으며, 그렇게 어둡지는 않았다. 사실 그는 꽤 쾌활해 보였고, 상사로서는 훌륭할지도 모르는 합리적인 남자처럼 보였다. 그는 여전히 켜진 손전등을 들고 있었다.

“완전한 감각과 이동성을 되찾았나?”

“나도 만나서 반갑네, 션.”

닉이 투덜거렸다. 션은 잠깐 당황한 듯했다. 닉은 그것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몰라 주의를 돌리고 사지를 모두 움직이는 데 집중했다.

네이트는 그가 일어나 앉는 것을 도왔다. 닉은 더 이상 트렌치코트와 정장을 입고 있지 않았다. 그들은 그를 깨끗한 인스티튜트의 점프수트로 갈아입혔다. 그 소재는 그가 익숙하게 느끼던 부드럽게 마모되어 있던 면에 비해 불편했다. 그는 손가락과 발가락을 움직였고, 무릎을 구부리고, 어깨를 돌려보았다. 모든 것이 괜찮은 것 같았다.

“어때요?”

네이트가 한 손은 여전히 그의 팔 주위에 느슨하게 잡은 채 물었다.

“자네 솜씨는 기가 막히는군, 의사 선생. 확실히 하려면 진단을 더 돌려봐야 하겠지만, 일단은 다 괜찮은 것 같네.”

그는 네이트의 어깨에 있던 긴장이 풀어지는 것을 보았고, 손을 들어 그의 머리칼을 흐트러트렸다. 그가 닉에게 보여준 미소는 피곤해 보였지만 밝았고,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닉은 그에게 미소짓지 않을 수 없었다.

“이봐,”

그가 막 말하려고 하던 차였다.

“음, 그가 고쳐졌다면, 볼일은 여기까지군요.”

찰칵 하는 소리가 났다.

“N1-65, 리콜 코드.”

숀이 뒤에서 말했다. 네이트가 휙 돌아봤고, 그 얼굴에서 웃음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션, 멈춰!”

닉도 몸을 돌렸지만 션은 몇 발짝을 뒤로 물러난 후였고, 그에게 제때 달려들어 붙잡을 시간 따위는 없었다. 젠장, 두 번은 안돼.

“BETA 4 1 EDDY.”

그는 자신의 머리가 시험대에 부딪치는 것도 느끼지 못했다.

 

-

 

닉은 깨어났다. 또 다시. 초기 진단 시스템이 작동하기 시작했다. 또 다시. 그는 아주 신물이 났다.

"이게 지금 뭘 하는 거죠? 당신이 켠 것 같은데."

"이 버전은 코드로 리셋시킨 후 작동시키면 진단이 시행되도록 설계된 모양입니다. 초기 진단이 끝나기 전까지는 움직일 수 없을 거예요. 필요하시다면 생략시키는 방법을 알 것도 같은데 진단이 돌아가게 두는 게 안전할 것 같군요. 별 이상 없이 돌아가게 둬 보죠."

"물론이죠. 서두를 것도 없고. 저 코드 좀 보세요. 언어 자체를 그동안 크게 발전시켜왔다지만 프로그래머를 좀 불러야겠는걸요. 눈에 정말 쏙 들어와요. 그리고 이 헤더! 우리 프로그래머들이 이렇게 기능 설명을 잘 써놨으면 내가 잠을 몇 시간 더 잤을 거예요."

"정말 빈틈없는 사람들이었군요. 그가 버려진 이유는 밝혀냈나요?"

"아, 버려진 게 아닙니다. 무슨 얘길 하시는 거죠?"

"디렉터의 삼촌은 분명 그렇게 말했는걸요."

"아닙니다. 그와 다른 시험 개체가 탈출한 거예요. 기록에 있어요. 그런데 다른 하나는 도대체 어디로…."

탈출했다고?

닉은 그의 머리 위에서 오가는 대화에 관심을 거두었다. 탈출? 정말로? 그는 이 수많은 시간이 흐른 후까지도 황무지에서 깨어났던 첫 순간을 여전히 생생하게 기억할 수 있었다. 그의 아래에는 움직이지 못하는 1세대 신스들의 파편이 더미로 쌓여 있었다. 그 위에는 맑고 파란 하늘이었다. 이전엔 거의 겪어본 일이 없는 고요함이었다. 보스턴 같은 도시에서는 아주 이른 아침에조차 이토록 적막하지 않았다. 그는 혼란스러워하며 앉았다. 인스티튜트의 검사실에서의 기억이 뇌 스캐너 안으로 들어가는 예전 닉의 마지막 기억과 뒤섞였다. 비교적 평화로운 지역에서 깨어난 것이 다행이었다. 노을이 질 즈음에 오래된 빌딩에서 쉴 만한 곳을 찾았고, 생전 처음 보는 방사능 폭풍의 기이한 빛에 홀려 창문에서 떨어질 수 없었다.

그는 그 시간에 대해 오랫동안 갈피조차 잡을 수 없었다. 버려졌다는 가설만이 그럴듯해 보였다. 혹시 정말로 다른 신스와 탈출했던 것이라면, 인스티튜트가 저 위까지 손을 뻗쳐 추적자를 보내기도 전이었다는 뜻이니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그렇다면 다른 신스에게는 무슨 일이 생긴 것인가? 왜 함께 있지 않았던 것일까? 혹시 서로 다른 안전장치가 내장되어 있어서 각자 떨어진 채 방황하게 된 것일까? 그들이 이 구역에 있었다면 닉과 마주쳤어야만 했다. 커먼웰스는 땅만 넓은 곳이니까.

그의 주요 부품들에 별 문제는 없었고 이번 초기 진단은 무척 빠르게 끝났다. 그들은 사소한 오류 몇 가지를 보고했다. 몇 개는 그가 근 몇 십년 동안 무시했던 오류였다. 그러고 그들은 제어권을 그에게 넘겼다. 그러고서 그들은 닉이 마음대로 움직이게 두었다. 닉은 바로 눈을 떴고 몸을 휙 일으켜 시험대에 앉아서 다리를 까닥거렸다. 

"오!"

방에 있는 두 명의 과학자 중 컴퓨터 앞에 있는 이가 아닌, 더 나이 든 여자가 벌떡 일어나더니 활짝 웃었다.

"완벽해! 작동하는 것 같네요."

"좀 치우시지."

닉이 쏘아붙였다.

"어, 그래."

컴퓨터 앞에 있던 젊은 남자 기술자가 닉과 여자 사이를 훑어보았다.

"그는, 음, 당신 상태가 괜찮아 보이네. 디렉터의 삼촌이 수리를 잘 해줬나봐."

여자는 서류들을 들추며 바쁘게 움직였다. 남자는 다시 터미널로 몸을 돌리고는 화면을 읽으며 느릿하게 방향키를 누르고 있었다. 그들은 어떤 설명도 하지 않았기에, 닉은 주변을 살펴볼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방은 마지막으로 왔던 곳처럼 평범했다. 책상에는 터미널 한 대, 시험대 하나, 파이프에서 약하게 쉭쉭거리는 소리, 문밖에서 울리는 더 작은 대화 소리. 반짝거리는 금속 부분을 제외한 모든 것들이 반짝거리는 하얀색이었다. 그에게서 뻗어 나온 와이어가 있었고, 닉은 툭툭 건드려보았다. 그것은 그의 두개골 아랫부분에 작은 판을 들어낸 곳에서부터, 으, 컴퓨터로 연결되어 있었다. 잡고 뽑아버리려 하자 여자가 갑자기 다가와서 그의 손목을 잡아챘다.

그녀는 옛날의 방문판매원처럼 웃고 있었다. 지금 시대에 와서도 그런 표정은 그에게 똑같이 경계심을 불러일으켰다.

"그러지 않는 게 좋겠는데."

그녀는 밝은 톤으로 말하며 손을 놓아주고는 책상에서 다른 의자를 꺼내서 그의 앞으로 가져왔다. 거기에 앉아서 종이와 함께 무릎에 쌓여있는 서류더미를 정리하고는 펜을 딸깍거렸다. 여전히 그를 향해 웃고 있었고 때문에 그는 소름이 끼쳤다.

"물어볼게 좀 있는데."

"좋네."

과학자의 미소가 불가능하리만치 더 커졌다.

"간단한 것부터 하지. 스스로에게 부여된 명칭을 알고 있나?"

"내 이름은 닉 발렌타인일세."

그는 다시 한번 방을 둘러보았다. 벗어나고 싶어서 몸이 근질거렸다. 컴퓨터 앞의 남자는 초조한 눈으로 그를 보고 있었다. 닉은 똑같이 마주 보며, 남자가 시선을 돌릴 때까지 눈 한번 깜박이지 않았다.

"그래, 그래."

여자는 글씨를 날려쓰면서 말했다.

"여기 오기 전까지 기억나는 것은?"

"음, 네이트가 내 목구멍에 드라이버를 꽂아 넣었던 게 기억이 나는군. 그의 조카가 도와주겠다고 떼를 썼고. 그전에는 납치당하느라 바빴고, 원래는 꽤 괜찮은 나날들을 보내고 있었네. 바깥 날씨를 본 적 있나? 파란 하늘이 가없이 펼쳐져 있고, 부드러운 산들바람 하며, 갈매기들은 바다로 부르고 있지."

여자는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닉은 그녀가 뭘 쓰고 있는지 보려 했으나 각도 때문에 잘 보이지 않았다.

네이트, 그래 네이트 그는 어디에 있었지? 닉은 갑작스런 걱정에 마음 한 구석이 찔리는 듯했다. 물론 네이트는 디렉터의 가족이지만 친절함을 가장하며 누군가에게 끔찍한 일을 벌이는 방법은 많았다. 닉은 그런 일들을 아주 많이 보았다.

"흠,"

컴퓨터 앞의 남자가 말했다.

"왜 이게 이렇게…. 오, 이건…."

"네이트는 어디에 있지?"

여자가 다른 질문을 꺼내기 전에 닉이 물었다.

"그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쉬거나 누굴 만나는 중이겠지―그가 잘 지내고 있을 거라는 것만은 보장하지. 사실 그는 널 여기 데려오고 나서 우리가 나아가는 방향을 그 어느 때보다 잘 조정하고 있어. 저 위로는 한 번도 돌아가지 않고 말이지. 이제 우리가 개발 중인 실험에 관해 물을 것들이 있는데, 조금 이상해 보일 수도 있겠지만…."

아마도 네이트는 자기 자신보다 다른 낡은 로봇을 지나치게 걱정하기 때문일 것이다. 네이트가 그랬던 것처럼. 만약 그들이 그를 보내줄 의향이 있다면. 그는 어쨌건 추적자를 향해 발포했다. 그리고 '널 여기로 데려'왔다고?  그녀가 거짓말을 하지는 않는 듯한데, 단순히 모르고 있는 걸까?

"…만약 거북이가 뒤집혀 있는 게 보이면, 어떻게 할 거지?"

"재밌군. 나도 그거 영화에서 봤네. 영화관이 아직 있을 때 말일세. 거북이를 원래대로 뒤집어 주고 길가에서 꽤 떨어진 곳에 놓아주겠지."

여자가 입을 열기도 전에 그는 덧붙였다.

"이제 끝났나?"

"이 부분은 이제 넘어가지."

그녀는 혼자 중얼거리면서 넘겼던 서류 몇 장을 다시 앞으로 넘겼다. 그녀가 시험해보고 싶었던 훌륭한 신 실험에 그가 협조해주지 않아서 실망한 듯했다.

"네가 신스란 것을 어떻게 자각하게 되었지? 그런 설계는 없었는데."

오, 이럴 수가.

"금속 부품들이 큰 단서였지."

닉은 다시 한번 주위를 둘러보았고, 실험대에서 뛰어내려 네이트를 찾을 수 없는지를 살피려는 참이었다. 타이밍도 나쁘고 정보도 부족했지만.

"신호음도 들렸지."

"신호음?"

여자는 당황한 듯했다.

"그렇네."

그녀는 분명 자세한 설명을 기다리고 있었다. 닉은 그가 그럴 생각 따위는 없다는 것을 그녀가 언제쯤 깨달을지 궁금해졌다.

그의 내장 시계는 이토록 오랜 세월이 흐르고 나서도 마이크로초까지 세며 잘만 똑딱거렸고 덕분에 아주 어색하게 22초가 흘러갔다는걸 알 수 있었다. 보기 드문 인내심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의 의뢰인들은 그가 필요한 서류를 찾기 위해 모든 서랍을 뒤져야 할 때 일지라도 5초 이상 지연되는 꼴을 두고 보질 못했다.

"신호음."

그녀가 따라 말했고 무언가를 메모했다.

고맙게도 그 순간 문이 열리면서 닉이 무엇보다 가장 보고 싶었으면서 동시에 보고 싶지 않았던 한 사람이 걸어들어왔고 신스로 추정되는 그림자가 그를 뒤따랐다.

"닉!"

네이트의 눈이 반짝거리며 그의 입술이 안도의 미소를 지었다. 그 모습에 잠깐동안 차분해 있던 닉의 맥박이 다시 빨라졌다.

"깨어났군요. 괜찮은가요?"

"대부분은. 지금 한창 스무고개 하던 중이었는데. 같이 할 텐가?"

"네이트 님,"

신스는 입을 열었으나 네이트가 손을 흔들어 보이자 조용해졌다.

"그래요. 안 될 것 없죠. 저 두사람이 괜찮다면요. 당신들 일 하는걸 방해하고 싶진 않으니까."

네이트는 여자가 처음 보여주는 신이 난 표정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괜찮고말고요."

여자가 종이를 더 넘기며 말했다.

"사실 괜찮으시다면, 마침 필요했던 일상적인 대화 데이터도 지금 수집해볼 수 있을 것 같군요."

"음, 그러세요."

네이트는 여자에게 작게 웃어주고 시험대에 있는 닉의 옆으로 가볍게 뛰어갔다.

"저기, 이건 뭐죠?"

네이트는 닉의 두개골에서 뻗어있는 와이어를 건드렸다. 기이한 느낌에 몸이 저절로 떨렸다.

"실시간 데이터를 수집 중이라서요."

단말기 앞의 남자가 돌아보지도 않고 말했다.

"기본적으로는 그의 센서에 들어온 1차 데이터와 다른 프로세서에서 나온 출력물 덩어리입니다. 기존에 설계해 두었던 것들을 찾는 데 애를 먹고 있습니다. 수리 후에 디스크가 무더기로 끼워 맞춰지는 바람에 다량의 자료가 유실되었습니다. 가능한 만큼 복구하려 합니다."

"그렇군요."

네이트는 손가락으로 와이어를 훑더니 당겨서 뽑아버렸다. 컴퓨터에서 삐삐거리는 소리가 갑자기 멈췄다. 닉은 고개를 시원하게 털었다. 살 것 같았다. 뇌에서 뻗어 나온 선이 필요한 사람이 그 어디 있겠는가.

"어쨌든."

네이트는 밝게, 과도하게 밝게 말했다. 이제 그들은 너무 가까웠다.

"우리가 온 지 얼마나 됐는지 알아요?"

"자네의 그 초대형 시계가 말해주지 않던가?"

닉은 내장된 초정밀시계를 다시 확인했다. 그로부터 거의 2주나 지나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충격을 받았다. 이렇게 오래 나와 있었던가? 그 시간 동안 그들이 그에게 저질렀을 만한 짓거리들이 머릿속을 스쳤다.

"이건 날짜만 알려줘요, 우리가 여기 언제 왔는지는 알 수 없죠. 그리고 요새 전 바쁘기도 했고 최소 며칠 쯤 지났다는걸 알지만…."

"12일 지났네."

"와, 정말요?"

"음."

컴퓨터 앞의 남자가 말했다.

"네이트 님? 왜 선을…."

그는 말을 아주 느리게 했다. 닉은 그 남자가 사람들에게 말하는 일에 익숙하지 않다는 느낌을 받았다.

"불편해 보여서요. 이런 것 없이도 잘 움직여요. 제가 보증하죠. 그를 오래 봐 알고 있거든요."

"불편했네."

닉이 투덜거리며 와이어가 꽂혔던 부분을 문질렀다. 그 자리는 여전히 열린 채 외부에 노출되어 있었고 닉은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자네는 컴퓨터가 자네의 뇌에서 1초에도 수십번 씩이나 정보를 빼갔던 적이 있나?"

"음,"

남자가 다시 말했다.

"아니?"

"그럼, 다음에는 허락을 먼저 구해보는 게 어떻겠나?"

펜을 다시 열정적으로 움직이던 여자가 눈썹을 치켜올리더니 무언갈 받아적었다. 서류는 그녀의 무릎으로 미끄러졌고, 닉이 힐끔거릴 수 있게 되었다. 그 글씨를 보아하니 박사들 중에서도 손에 꼽히는 악필 같기도 했고 속기한 무언가 같기도 했다. 그가 필기하는 방식은 아닌 듯했고, 파이퍼가 고안한 방식과도 달라 보였다. 뭐, 어쨌든.

네이트는 그에게 입꼬리를 한쪽만 올리면서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닉이 기억하기로는 그는 지금과 꼭 똑같은 걱정하는 얼굴을 해 보인 적이 있었다. 그들이 총격전이 이는 동안 떨어지게 됐을 때, 붕괴된 빌딩을 헤쳐나가다 긴 시간 서로를 찾지 못했을 때, 그는 말없이 걱정하며 닉에게 꽉 붙어있으려고 했다.

"네이트 님."

네이트와 동행했던 신스가 그를 불렀으나 여자 과학자가 말꼬리를 잘랐다.

"네이트 님, 이 개체를 어떻게 발견하셨는지 말씀해주실 수 있나요?"

"음. 그러죠."

그의 다리가 느긋하게 흔들렸다.

"그가 사람을 그렇게 잘 찾는다고 들었는데, 바로 전에 맡은 일을 해결하다가 사라졌다고 했거든요. 그래서 마지막으로 향했다는 곳으로 갔는데 어떤 깡패들이 점거한 곳에 갇혀있었어요. 그래서 탈출시켰죠."

"디테일이 조금 부족한 듯한데요, 네이트."

"미안하네요, 이젠 잘 기억이 안 나서."

"그래서 이 개체를 특정해 찾던 건 아니지요?"

"맞아요. 그때 인스티튜트가 뭔지도 몰랐던 것 같은데. 제가 쫓던 사람을 찾으려면 그를 찾아야 했을 뿐이었죠."

"네이트 님."

신스가 다시 입을 열었다.

"파더가 할 말씀이 있으시다는데요."

"션보고 기다리라고 해."

네이트는 입을 삐죽였다.

"아,"

여자가 잠시 말을 멈췄다.

"음, 그럼 우리가 수집해야 하는 다른 데이터도 많으니까요. 디렉터께서 기다리고 계시는 거라면 가 보시는 게 좋겠네요."

네이트는 비틀린 표정으로 닉을 쳐다봤다.

"디렉터를 기다리게 하기는 싫은가 보죠."

네이트가 인상을 더 찌푸리는 게 마음이 아팠다. 닉은 네이트가 원하지 않으면 그에게 조카를 보라고 강요하는 일 같은 건 절대 하지 않을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에게 뭐, 걱정 말라고 달랠 방법이 있기나 하나?

"가게나, 네이트. 난 버텨보겠네."

네이트는 몸을 기울이며 천천히 말했다.

그들이 보내줄 때까지 적당히 장단 맞춰주고 있어요. (네이트가 아직도 위쪽에 나간 적이 없다면, 그들이 네이트를 이곳에 붙잡아뒀을 수밖에 없다) 그는 이해해보려고 노력했다.

"그래요."

네이트는 시험대에서 미끄러져 내려와 뛰쳐나갔다. 신스가 그 뒤를 쫓았다.

여자는 생각이 많아 보이는 모습으로 문이 닫히고 몇 초 동안 문을 빤히 보다가 닉에게 시선을 옮기고는 빈 페이지 가장 위에 새로운 메모를 천천히 추가했다. 이번에는 속기가 아니었다. V. 강한 집착? 닉은 읽었다.

컴퓨터 앞의 남자는 여전히 미간을 찌푸리고 있다가 와이어를 주우려 손을 뻗었다. 닉은 그를 보다가 시험대에서 내려와 재빨리 멀찍이 떨어졌다.

"만약 그걸 내 두개골에 다시 쑤셔 넣을 생각이라면…."

남자는 한숨을 짓고는 손에 와이어를 감기 시작했다.

"나중에 시도해보지."

그가 약속했다. 지옥같군, 닉은 생각했다.

 

-

 

과학자들이 그에게 하려는 실험들은 지루한 것부터 순전히 불쾌하기만 한 것까지 끝이 없었다. (그들이 그에게 팬시 라드 스낵 케이크를 먹이고는 그의 반응에 대해 갖은 질문을 하던 시간만이 예외였다. 그건 단지 이상할 뿐이었다) 몇몇은 닉이 협조하지 않자 거의 즐기는 것처럼 보였고 상냥하게 요청하기까지 했다. 다른 이들은 무언가 요구하는 것들을 그가 순순히 따르지 않을 때 짜증을 냈다. 그들이 닉을 이름 대신 끔찍한 문자와 숫자의 조합으로 부르는 것을 그가 무시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닉은 어쨌든 몇몇 사실을 알아내서 기뻤다. 첫째로 가장 완고하게 '신스는 인간이 아닌 기계'라고 주장하는 연구원들조차 그를 물건이나 '그것'이라고 지칭하는걸 잊지 않으려 노력했으나, 어느 날 지칭어가 '그'로 바뀌어 있었다는 점. 네이트가 말해주길, 누군가가 그가 실제 인물을 본떴기 때문에 그가 가진 인격과 기억은 모두 실재하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지적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적어도 인스티튜트의 몇몇은 그렇게 받아들였다. 그런다고 뭐가 크게 달라지진 않았겠지만.

그들이 닉을 자신과 같은 사람 이하로 취급하는 일이 멈추지는 않았다. 그 정도 했으면 닉도 익숙해 질 법도 했으나, 결국엔 그럴 수 없었다. 그는 엘리와 네이트, 그리고 그들 같은 사람들과 그들이 그의 인간성에 대해 그보다 더 완고하게 구는 방식에 익숙해져 있었다. 그가 얼마나 훌륭하게 프로그래밍되어 있는지에 대한 감탄을 끊임없이 듣는 건 별로 기쁘지 않았다.

네이트는 실제로 자주 방문했고 일부 과학자들은 기꺼이 눌러 앉아서 닉과 네이트가 소통하는걸 관찰했다. 처음에 닉은 네이트가 낡은 신스는 그대로 살도록 내버려 두고 저 윗 세계에 두고 온 그의 삶으로 돌아가길 바랐다. 그를 볼 때마다 기뻐하는 이기적인 감정이 일었음에도 그랬다. 네이트는 그의 고운 눈 아래에 무거운 그늘을 달며 몹시 피곤해 보였는데 그 이유를 설명해 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네이트의 방문 횟수가 다섯 번째가 될 즈음에, 그들은 수경재배 정원에 대한 기상천외한 소식에 대해 이야기했고 닉은 네이트가 뭘 계획하고 있는지 알아내려고 노력했다. 무언가가 있는 게 확실했다. 그의 눈에는 단순히 과로로부터 인한 것이 아닌, 더 한 무언가가 있었다.

"자넨 잠을 좀 자야 해, 네이트."

닉은 그가 방문한 차에 말했다.

네이트는 신음하며 이마에 손을 짚었다가, 이내 떨어트리고 닉의 어깨에 기대었다. 이번엔 그들이 앉아 있는 구석의 책상에 아무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어떤 회의가 진행 중이었다. 모두가 모여야만 할 정도로 중요할 것임이 틀림없는. 닉이 엿듣기로는 전력이 차단된 일에 관한 것이었다. 희망적으로 보자면, 다이아몬드 시티의 관리자들이 뭐가 전력을 빼가고 있는지 밝혀냈다는 소리다.

"너무 조용해요."

그가 중얼거렸다.

"너무 외롭기도 하고요. 잠든 동안 누군가 뒤를 봐주는 데에 익숙해져서. 하다못해 전쟁 전에도 노라가 션이랑 놀아주거나 집안일을 하거나 했는데."

"라디오가 도움이 되지 않나?"

"다이아몬드 시티 라디오는 너무 시끄러워요. 클래식 라디오를 좀 들어봐야겠네요. 윽. 라디오 채널이 50개쯤 있었는데도 듣고 싶은 채널을 찾을 수 없었던 때가 기억나시나요?"

"자넨 종국엔 늘 클래식 음악만 들었을 것 같은데. 그것들은 모조리 토크 쇼나, 주구장창 흘러나오는 광고, 과열된 애국심 아니면 음악이라고 부르기조차 힘든 쓰레기들로 점철되어 있었으니까. "

"빨간 불일 때 잠깐 멈춰서 테이프를 넣던가요."

"고속도로 위였다면 합승할 사람을 찾아보라고 했겠지만, 그런 게 아니라면 그냥 자네 스스로의 상념에 빠져 조용히 고통받는 방법밖엔 없겠네."

"전 고속도로가 싫었어요. 생각해보세요, 노라는 아기를 데리고 있으니까 그럼 운전은 온종일 누가 해야 했겠어요?"

네이트는 고개를 닉의 어깨로 돌리고, 한숨을 내쉰 뒤 축 늘어졌다.

"당신 말이 맞아요. 전 좀 자야겠어요."

"바로 여기서 곯아떨어지기 전에 자리를 옮기는 게 좋겠군."

"음. 여기도 꽤 괜찮은데요."

"침대보다 낡은 로봇의 어깨에서 잠드는 게 낫겠다고? 자네 상태가 멀쩡한 것 맞나?"

"저라고 아무 로봇이나 괜찮은 건 아니거든요."

그 말은 조금 뭉개져 있었지만 네이트는 그가 밀어내지 않고 있다고 확신했다. 머리가 누르는 무게나, 닉의 팔에 기대져 전해지는 몸의 온기는 기꺼웠다. 그리고 그들이 어딘가 다른 곳―오래도록 버려져 있던 건물이나, 무너진 다리 아래, 혹은 언덕에 기대 쉬고 있던 때였다면 닉은 그가 얼마든 이러한 인간적인 접촉을 즐기도록 놔두었을 것이다.

그는 방 안을 둘러보다가 그들을 바라보고 있던―온종일 청소를 하고 있거나 추적자의 옷을 입고 있지는 않았지만, 훔쳐보고 싶은 본능을 억누르지는 못했던―신스를 발견했다. 닉은 조심스럽게 눈동자를 굴려 다른 누군가를 바라보았다.

"네이트."

그가 중얼거렸다.

"그래요, 알겠어요."

네이트는 똑바로 일어서며 신음했고, 그가 목을 돌리자 끔찍한 소리가 났다.

"그럼, 잠자리에 들 시간이군."

그는 핍보이를 쳐다보았다.

"내일 또 보러 올게요, 알겠죠? 오후 두 시 즈음에라도."

 

-

 

닉은 다음날 결국 그를 보지 못했다. 누군가가 옛 닉의 평가지를 꺼내와서 둘을 비교하고 싶어 했기 때문에, 그는 종일 온갖 종류의 지능 및 성격 검사에 시달리며 시간을 보내야 했다.

"굉장하네."

테스트를 감독했던 여자가―20살도 채 안 되어 보였다―결과지 하나를 훑어보며 말했다.

"무엇이?"

그녀는 닉을 한 번 쳐다보고는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겼다.

"당신이 사용하는 어휘들은 오차범위를 고려하더라도 전쟁 전 사람들의 것과도 거의 비슷하군요. 그것들을 모두 사용할 일이 거의 없었을 텐데도. 기억력이 정말 좋은가 보네요."

"무슨 말인가, 그걸 사용할 일이라고?"

"음, 그러니까, 당신은 저 위에서 살아오지 않았나요? 그래서 전처럼 책을 읽거나 교육을 받은 사람, 혹은 과학자들이랑 이야기 할 기회는 별로 없었을 것 같아서."

"전쟁 전부터 문화 수준이 기울기 시작했다는 건 인정하네만, 그렇게까지 처참하지는 않네. 커먼웰스에도 적어도 학교 두 군데와 네 개의 도서관이 남아 있거든."

그녀는 좀 더 열성적이 되었다.

"와, 정말요?"

"내 주위에도 아직 이야기해볼만한 과학자들이 있네. 다이아몬드 시티에서 연구실을 차린 두 여성분이 있는데, 만나보는게 좋을 거야. 셰익스피어가 언젠가 사회를 바꾸어놓을 것이라고 주장하던 괴짜도 있었지…."

그녀는 닉이 그렇게 말하자 펜을 내려놓고 몸을 점점 테이블 쪽으로 기댔다.

"그리고 농부가 고급스러운 단어라고는 한 마디도 말하지 못한다고 해도, 그게 그들이 멍청하다는 의미는 아닐세. 해를 지내면서 야채를 재배하거나 브라민, 그러니까 소를 관리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야. 특히 요즘 같은 때에는."

닉은 그녀의 혼란한 듯한 모습에 설명을 덧붙였다.

"머리가 두 개 달린 소 말이네. 잘 관리하지 않으면 온갖 곳을 싸돌아다니지."

그녀는 한동안 그의 말을 들으며 질문을 던졌다. 그들이 얼마나 딴길로 빠졌는지 깨닫고는 아쉬운 표정으로 종이 몇 장을 다시 집어들 때까지였다.

"이것들로 돌아가 봐야 할 것 같네요."

그녀는 패턴 일치 질문이 가득 실린 인쇄물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러지."

닉은 그녀를 배려해 말했다.

"또 한숨 돌리고 싶어지면 말해주게."

그녀는 그를 향해 눈을 깜빡이다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첫 번째 장을 넘겼다.

그녀는 후에 그에게 결과지를 보여주었다. 옛 닉 발렌타인은 꽤 똑똑했지만, 이미지의 그리드에서 패턴을 발견하는 검사에서는 닉이 좀 더 나았다.

"사실 당신은, 음, 인간 닉 발렌타인 씨보다 더 잘했을 뿐만 아니라 우리 3세대들 평균보다도 훨씬 우수하네요. 추적자들까지 포함한 결과예요."

그녀는 펜을 굴리며 말했다.

"솔직히 대단하다는 말밖에 안 나와요. 당신이 특별하게 높은 인지력을 가지고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는데. 당신 자신의 신경 구조에 대해선 얼마나 알고 계실지 모르겠네요…."

그녀가 그런 질문을 하는 것을 엿듣거나 닉에게 그토록 희망찬 표정을 지어 보이는 것을 발견할 감독자가 없다는 것은 다행한 일이었다.

"이전에 비해 크게 달라졌는지는 잘 모르겠네. 그리고 옛 닉의 검사 결과가 얼마나 정확하겠나? 그는 그들이 내―그의―음, 그의 약혼자를 죽였을 때 그렇게 좋은 상태가 아니었을 텐데. 난 전문가는 아니지만, 그러한 상실감이 한 남자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는 보았네."

"세상에,"

그녀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했다.

"그런 생각은 전혀 해본 적 없는데. 좋은 지적이에요."

그녀는 그것을 적어둔 다음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면 그 사건이 일어난 것을 기억하시나요? 그러니까, 마치 당신이 겪은 것처럼?"

"바로 그렇네, 아주 똑같지."

고통스럽게도 그랬다. 닉이 그 모든 사람들이 자신이 아닌 전혀 다른 누군가와 관련 있다는 것을 얼마나 긴 시간 동안 되뇌었든 간에.

"와."

그녀가 말했다.

닉은 며칠 후 그녀가 그 프로젝트를 관두었을 때도 놀라지 않았다. 그녀는 그를 사람이 아닌 신스처럼 대하는 것을 '잊은' 첫 번째 사람은 아니었다. 그녀를 대신해 들어온 사람은 더 젊어 보였고, 그에게 어떤 추가적인 질문도 하지 않았다.

 

-

 

닉은 또 다른 실험을 거친 후 검사실 옆에 하릴없이 서 있었다. 그들은 닉이 얼마나 표적을 잘 맞힐 수 있는지 보고 싶어 했다. (물론 치명적이지 않은 무기를 가지고) 그는 담배를 한 대 태울 수 있기만을 바랐다. 뭐라도 하고 싶어서 손이 근질근질하던 차였기에. 그는 낙담한 채 그들이 준 레이저 총을 계속해서 분해했다가 다시 조립하기만을 반복했다. 크리스탈의 중심을 좀 더 흥미로운 방향으로 수정한 후에.

그때 갑작스레 불이 꺼졌다.

문밖에서 나던 소리가 희미한 비상등이 깜빡거리며 켜지자 잦아들었다. 닉은 문에서 전자 잠금장치가 달칵거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흠.

그들의 감독관이 단 1분쯤 지났을 때에 네이트를 데리고 왔다.

"정확히 어떤 문제가 발생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이곳 전반에 이르는 수준의 전력 차단이 발생했습니다."

그녀가 말했다.

"사람들이 원인을 찾는 중이지만, 아마 시간이 좀 걸릴 겁니다. 절대 동작을 중지하면 안 되는 것들이 있어서 비상전력을 남겨두어야 해요. 그래서 문제가 밝혀질 때까지 모두에게 층을 비워달라고 요청드리고 있습니다. 조금 이른 점심을 드시러 가는 게 어떻겠습니까?"

한숨과 신음소리가 중첩되어 들려왔다.

"예, 알고 있습니다. 작업 중 방해받는 건 아무도 원치 않는다는 걸요. 장담하건대 유지보수 작업이 진행되고 있으니까 어서, 파일들 챙겨서 동료들이랑 몇 시간 동안 이야기 좀 하고 오세요."

그녀는 과학자들이 투덜거리면서 챙길 수 있는 것들을 챙기게 놔두고 떠났다. 네이트는 돌아다니며 서류들을 챙기는 것들 도와주며 나가 달라고 부탁했다. 조용하고도 간결한 요청이었다. 닉은 다른 사람들이 네이트의 그런 행동에 보내는 신경질적인 시선을 의식하고는 그를 지켜봤지만, 네이트는 웃는 듯한 침착한 표정만을 되돌려줬을 뿐이었다.

"그를 데려가도 상관 없겠죠?"

그가 프로그래머에게 물었다.

"아, 물론이에요. 그런데 그 문들은 아마 그렇게…."

닉이 레이저 총을 팔 아래에 놔두고, 금속 손가락을 문틈의 얕은 홈에 끼워 넣은 후 멀쩡한 손으로 문을 잡고 열기 시작하자 그는 조용해졌다.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이봐요."

네이트가 빠져나가며 조용히 말했다. 그는 프로그래머가 마지막으로 백업 파일이 든 홀로테이프들을 가방에 넣는 것을 도와주었고, 그래서 나갈 때쯤 그들은 불평하는 과학자들의 뒤에 있게 되었다.

"당신 괜찮아요?"

"나쁘지 않지, 그래. 자네는?"

"좋아요."

대답으로 들려온 목소리는 부드러웠고, 네이트는 닉이나 문이 아니라 벽 너머의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은 과학자들을 따라 중앙홀로 나갔다. 그곳에서는 프로그래머의 가방이 찢겨서인지, 어쩌다 열린 것인지 홀로테이프들이 바닥에 쏟아져 작은 소요가 발생해 있었다. 몇몇 사람들이 그것들을 같이 주워주기 위해 모였지만, 닉은 그것이 어떠한 신호라는 것을 읽어낼 수 있었고, 네이트를 따라 다른 복도로 내려갔다.

"이쪽이에요. 오래된 출입 터널이 있어요. 그 쪽을 이용할 거예요. 음, 그리고 설사 나가지 못한다고 해도 잘못되지는 않을 거예요."

"뭐? 설명이 좀 부족한 것 같은데, 네이트. 다시 한번 말해주게."

"미안해요. 이 일 전에 전혀 잠을 못 자서. 우리는—"

그는 코너를 지나 청소와 유지보수 작업에 노예처럼 부려지는 옛 버전의 신스를 마주치자 입을 닫았다. 신스가 그들을 바라보고는 딱딱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 구역에서 대피해주십시오. 곧 전력이 복구될 것입니다."

네이트가 대답을 지나치게 끌어서, 닉이 그를 대신해 말했다.

"아래에서 뭘 좀 빨리 가져와야 해서 말이네. 디렉터로부터 지시받은 사항이야. 그렇지, 네이트?"

"아, 그래. 금방이면 돼."

"알겠습니다."

그 신스는 돌아서서 천천히 중앙홀로 걸어 내려갔다. 네이트는 그의 팔을 꽉 쥐고 반대편으로 끌어당겼다. 그리고 그들이 몇 개나 되는 복도를 지나치고, 더 많은 신스들을—다른 1세대 하나와 3세대 하나—만나기 전까지 놓아주지 않았다.

"네이트 님?"

3세대 개체가 고개를 약간 기울이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1세대 신스는 동작을 멈췄다.

"이 아래에는 무슨 볼일이신가요? 저희가 전력 문제의 원인을 찾아낼 동안 대피해 계셔야 합니다."

"오래 있을 생각은 없어,"

네이트가 말했다. 그는 미소 짓고 있었지만 그것은 거의 찡그리는 것처럼 보였다. 복도가 어두운 것이 다행이었다.

"뭘 좀 가져올 게 있어서."

그 신스의 시선은 둘에게 번갈아 머물렀고, 마침내 그가 입을 열었을 때, 목소리에는 망설임이 묻어나왔다.

"무엇입니까? 제가 가져다드릴 수 있습니다."

"뭘 자네까지 귀찮게 하겠나."

닉이 말했다.

"자넨 해야 할 일이 따로 있을 텐데?"

"권한 승인을 요청합니다."

1세대 신스는 그렇게 요구했다. 그 음성 장치는 너무 손상되어서 닉이 그 음절들의 조합을 알아듣는 데 시간이 조금 걸렸지만.

"음."

네이트가 말했다.

"이 두 분께 특별히 허락이 필요하지는 않을 것 같은데,"

다른 신스가 말했다.

"파더의 삼촌이시고… 사실, 여기서 뭘 하려고 하시는지 잘 모르겠어."

"그를 도와주려는 중이네만."

1세대 신스가 재차 승인을 요구하자 닉이 말했다. 네이트는 어쩔 줄을 모르는 것 같았다. 3세대 신스는 그들을 다시 한번 바라보고는 한 걸음, 두 걸음 뒤로 물러났다.

"요청이 인가되지 않았습니다. 적대 대상으로 간주합니다."

"이게 대체—."

닉은 네이트를 장전 중인 신스에게서 밀쳐내고 휙 돌았다. 그는 레이저를 여러 발 쏘아 보냈고, 위력이 충분히 나지는 않았지만 네 발을 맞추자 신스의 다리가 부수어졌다. 그때까지도, 그 신스는 아직 작동하는 다리와 손으로 그들에게 접근하려 애쓰고 있었다. 안쓰러운 광경이었지만 둘에겐 그 프로그램이 손상된 1세대를 동정할 시간 따위 없었다. 닉은 그 머리를 겨냥하고 불빛이 깜박이는 것을 지켜보았다.

3세대 신스가 남아 있었다. 닉은 다시 네이트를 향해 몸을 돌렸다. 그는 무기를 꺼냈지만 겨누고 있지는 않았다. 그는 구석에 몰려 머리를 손으로 가리고 있던 신스를 보고는 얼굴을 찌푸리고 있었다.

"이봐, 음."

네이트는 플라즈마 권총을 내리고 한 걸음 다가갔다. 아, 그 자애로운 마음이란. 그 광경이 얼마나 보기 좋은 것이었던 간에, 그들에게는 그렇게 시간이 많지 않을 터였다.

"네이트."

"금방이면 돼요. 믿어주세요. 이봐, 우리가 널 다치게 하지는 않을 거야, 알겠어?"

그는 움츠러들어 있는 신스로부터 몇 걸음 떨어진 곳에 웅크리고 앉았다.

"봐, 우린 이제 떠나려고 해. 하지만 만약 네가 여길 좋아하지 않는다면, 레일로드나 미닛맨 둘 다 괜찮은 사람들이거든. 그들이 아마 널 도와줄 거야. 어떻게 생각해?"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네이트는 일어서서 한숨을 쉬었다.

"어느 쪽이지?"

"이쪽이에요. 그리 멀진 않아요."

그들이 더 깊숙이 들어가자 비상등이 모두 꺼졌다. 네이트는 핍보이 조명을 키고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좁은 복도와 온갖 쓸모있는 것들이라곤 하나도 남아있지 않은 방들을 지날 때까지도.

"거의 다 왔어요. 여기만 통과하면 된 거예요."

"이 모든 것들을 자네 혼자 한 건가? 왜 그렇게 잠이 부족했는지 알만하군."

"도와준 사람이 있었어요."

네이트는 인정했다.

"이 아래에도 공감해주는 사람들이 있다고 말씀드렸잖아요. 션이 그중 하나는 아니지만서도. 기억하시죠, 그 신스를 아내로 데리고 있는 남자요. 다른 사람들도 있어요. 정착지에서 머물 수 있도록 하거나 다이아몬드 시티에 가는 것을 도와주면 여기서 나가고 싶다던 여자아이도 있었어요. 그녀는 표면에 대해 더 알고 싶어 하더군요. 질문을 끊임없이 했어요. 당신이 이런 사람들을 봤을 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은 아마 당신에게서 떨어져 있으려 했을 걸요. 그들이 당신에게 하던 짓은 저만 괴롭게 한 게 아니에요. 다른 사람들도 불편하게 생각했죠. 제가 너무 많은 걸 부탁하기 전까지는…."

"적어도 이 아래에 괜찮은 사람들이 몇 명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기쁘군."

"제 생각엔."

네이트는 잠시 말을 멈추고 입술을 깨물었다.

"몇 명도 채 안 될 것 같네요. 하지만 그들은… 어떤 책임도 져야 할 필요가 없을 때보단 그 반대일 경우에 좋은 사람이 되는 게 더 어렵죠. 전쟁 전에 중국인 친구를 사귀어 본 적 있나요?"

"그래. 기억나네."

중국인 고객들은 정상적인 시간에 방문하는 것을 두려워하며 이상한 시간에 그의 사무실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가 학교에서 만나고 있던 괜찮은 여자는 어떤 캠프로 보내지더니 곧 편지에 답장을 보내지 않게 되었다. 그가 좋아했던 윈난 음식점은 운 좋게도 계속 운영하기는 했지만 창문이 세 번이나 박살 났고, 곧 그 곳에서 중국인이 아닌 사람을 보는 것은 드문 일이 되었다.

"그게 좋은 변명이 되어주지는 않을 것 같네만."

"그런 이야기가 아니에요."

네이트는 한숨을 내쉬고 문 앞에 멈춰서서  그것을 열었고, 터미널이 설치되어 있는 창고의 모습이 드러났다.

"이 문제는 나중에 이야기해볼 수 있을까요?"

"서두를 필요 없지. 내가 단말기를 푸는 게 낫겠나?"

"제가 할 수 있어요."

그는 버튼을 눌러 전원을 켰고, 그들이 그 고대적 물건이 부팅되기를 기다리는 동안, 그의 가방을 이리저리 뒤적이기 시작했다.

"봐요, 당신한테 줄 선물이 있어요. 터미널 해킹하는 건 제가 할 테니까 당신은 이걸 좀 입고 있으세요."

네이트는 어떤 물건을―아니, 어떤 물건들을―꺼내 닉에게 안겨주고, 터미널 쪽으로 가서 작업을 시작했다.

첫 번째 것은 매우 익숙한 모자였다. 닉은 그것을 꺼내어 쓰고, 다른 것을 바닥에 펼쳐보았다.

"자넨 정말 이러지 말았어야 했어."

닉이 그의 코트를 바라보며 말했다. 거기에는 군데군데 기운 자국과 그가 기억조차 할 수 없는 이유로 생긴 얼룩이 있었다. 그런 바보 같은 짓을….

"탐정이 트렌치코트가 없으면 뭐가 되겠어요?"

네이트가 물었다.

"이런, 젠장할. 세상에―진짜로? 요즘 같은 시대에 대체 어느 누가 비밀번호를 'password' 같은 걸로 한단 말이야?"

닉은 인스티튜트 점프슈트 위로 코트를 껴입으면서 코웃음을 쳤다. 그는 몇 주간의 시간 중 그 어느 때보다 더 자기 자신에 가까워진 느낌을 받았다. 냉각제는 보통 수준으로 돌고 있었지만, 평상시에 비해 온도가 조금 높아졌음이 분명했다. 그와 네이트는 네이트의 바람 잘 날 없는 팔자에 감겨 또 다른 정신 나간 모험에 발을 올리려던 차였다.

"해결했나?"

"네."

문이 쉭하고 열렸다. 그들은 반대편에서 문을 잠그기 위해 다시 잠깐 멈췄다가, 핍보이의 불빛에만 의지해서 서둘러 통로를 따라 내려갔다.

"우리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는 아나?"

"대략적으로만요. 우리는 북쪽으로 가야 해요. 그 쪽이…."

북쪽 방향으로는 길이 끊긴 채 벽으로 가로막혀 있었다. 그들이 갈 수 있는 통로는 북동쪽과 서쪽으로 난 것뿐이었다.

"알겠네, 그래서?"

그들은 막다른 길목에 있는 방이나 완공되지 않아 돌바닥만 남겨져 있는 복도를 마주쳤기 때문에, 왔던 길을 한 번 이상 되짚어가야 했다. 이 아래는 닉이 청각 센서를 그의 관절이 삐걱거리는 소리와 네이트의 숨소리, 심장박동 소리, 침 삼키는 소리까지 들릴 정도로 최대한 민감하게 만든 후에도 쥐죽은 듯 조용하기만 했다. 다른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는 사실이 그를 두렵게 했다. 이 정도의 고요함은 괴이하게까지 느껴졌다.

지나치게 조용한 나머지, 닉은 부드러운 긁는 듯한 소리가 뒤편 어딘가에서 들려왔을 때 자신이 상상한 결과물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그 소리는 점점 커졌다.

"네이트."

그가 속삭였다.

"길동무가 생겼네."

그는 핍보이를 만지작거렸고, 둘은 완전히 어둠 속으로 내던져졌다.

"얼마나 떨어져 있나?"

"말하기 어렵군요."

그들은 방이 하나도 없는 길고 좁은 복도를 걷고 있었다. 앞으로 걸어 나가는 것 외에는 갈 수 있는 곳도 없었다. 앞을 보기 힘든 때에는 그것마저도 어려운 일이었다. 네이트는 울퉁불퉁한 길에 발이 걸려 넘어지면서 작게 욕을 내뱉었다. 닉은 그를 제때 붙잡은 것은 순전히 실낱같은 운에 의지해서였다.

"…앞쪽에,"

닉이 들었다.

"네이트."

"알아요."

네이트가 불을 다시 켰고, 그들은 숨죽여 이동하려던 모든 노력을 포기하고서 달리기 시작했다. 뒤에서 따라오던 자들이 듣지 못했을 리 없었다. 네이트에게 그들이 고함치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그들은 ㄷ자형 복도를 돌다가 거의 서로를 들이받을 뻔했다. 단단한 암석 뿐이었다, 이 곳을 잘 아는 자들에게로 곧장 이어지는 터널을 제외하고는. 암벽을 기어 올라갈 방법도, 여기서 벗어날 방법도 없었다. 되돌아가는 것 외에는.

네이트는 추격자들이 시시각각 가까워져 오는데도 헐떡이며 위쪽만 응시하고 있었다.

"네이트,"

그는 다음에 무엇을 말해야 할지도 확신하지 못한 채 첫 마디를 꺼냈다. 동료로서 함께하는 건 꽤 좋았네, 엘리에게 사무실은 가져도 된다고 말해주게, 퀴리가 타이핑 수업했던 것을 잘 받아들였으면 좋겠어, 늘 감사했던 건….

"좋아, 좋아."

네이트가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는 닉을 향해 고개를 돌렸고, 그의 눈은 믿기 힘들 정도로 크게 뜨여 있었지만, 그럼에도 두려워하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다 괜찮을 거예요, 닉."

"자넨 그 말을 쉬지도 않고 하는군."

닉은 레이저 총을 들고 네이트와 방 입구 사이에 섰다. 몇 초 후에, 첫 번째 신스가 길목에 나타났다. 하지만 그것은 플라즈마 가진 소총을 들어 올리지도, 발포하지도 않았다. 두 번째, 세 번째 신스가 들이닥쳤고, 그 다음에 나타난 것은―

"삼촌, 설명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만."

"난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데, 션."

"저희는 당신이 필요로 하던 모든 것들을 제공해드렸고, 당신이 매우 애착을 가지고 있던 이 개체에 어떤 해도 끼치지 않았습니다. 저는 마침내 당신이 인스티튜트의 방식이 무엇인지 이해하는 데 몇 걸음을 내디딘 참이라고 생각했는데요."

"충분히 이해했어, 당연히—."

"그리고 당신은 이제, 인스티튜트의 귀중한 소유물을 훔치고, 우리의 실험을 망가뜨리고, 전력을 강탈해 가시는군요—."

"닉은 인스티튜트의 소유물이 아니야!"

닉은 기겁했다. 그는 이제껏 네이트가 그런 식으로 소리 지를 수 있는지 몰랐다. 그는 몸을 떨며 힘겹게 숨을 내쉬고 있었다. 닉은 그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그리고 물론, 이제 너희들에 대해선 알 만큼 알았어."

그는 멈추지 않았고, 말이 막힘없이 흘러나왔다.

"난 너희들이 많은 것들을 이루어내고 있다는 것을 알지만―더 나은 식량을 생산해내고, 훨씬 더 나은 정수 장치를 개발하는 것과 같은―아직 짓지도 않은 원자력 발전기는 내버려 두고서라도, 너흰 전력을 훔쳐내지 않고는 이 체계를 존속시키는 것조차 할 수 없잖아. 세상에, 너희들은 우리의 과오로부터 아무것도 배운 게 없는 거냐? 아니면 전쟁 전 수없이 많은 과학자들이 붙들고 있었음에도 해결하지 못했던 기술을 바로 네가 구현해낼 수 있다고 믿는 거야? 너희는 그만큼이나 필요하지 않을 때조차 신스를 찍어내고 또 찍어내―."

"삼촌, 진정하세요."

션이 다가오면서 손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닉은 정말로 그에게 동의하는 것이 달갑지 않았지만, 그렇지만…네이트의 호흡이 이 정도로 불안정해져서는 안됐다. 그가 그런 식으로 말을 쏟아내는 것이 결코 좋은 신호는 아니었다.

"그리고 너희들은 과학자로서조차도 자격 미달이야."

네이트가 그렇게 쏘아붙였고, 션의 얼굴에서 평정이 조금 사라졌다. 닉은 눈을 깜박였다. 그는 예상치 못한 말에 당황한 듯했다.

네이트가 설명하지 않자, 닉이 말했다.

"도표 같은 거라도 좀 덧붙여 다시 설명해주길 바라는가 보네, 네이트."

"과학자들은 그들의 이론에 들어맞지 않는다고 해서 모든 것들을 무시해버려서는 안돼. 이 곳 사람들은 하나도 빼놓지 않고 '신스가 지각력이 없다'라거나 '신스는 실재하는 사람이 아니다'는 것과 같은 것을 전제로 두고서 그들이 실제로 그렇다는 어떤 증거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아. 션, 너도 마찬가지야. 넌 '황무지는 손도 쓸 수 없는 상태'이며 '무가치하다고' 생각하고 있잖아. 그게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네가 가진 것들을 과시하려는 목적에서가 아니라면, 정말 그렇다면, 넌 지나치게 많은 것들을 외면하고 있을 뿐이야."

숀의 입 모양이 비틀렸다.

"삼촌."

그는 마치 '지극히 당연한 사실을 너에게 납득시키려 끈기 있게 설명하고 있다'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는 노력했―."

"뭐, 한번? 딱 한 번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를 좀 해 봤는데, 잘 안 돼서 포기했었나 보지? 미 정부조차도 중국에 그것보단 많은 기회를 줬어. 우린 그들을 증오했지. 넌 상상도 할 수 없을 거다. 처음 볼트에서 나왔을 때 세상 돌아가는 꼴이 참혹하다고까지 생각했어. 사람들은 그냥 지나가고 있었을 뿐임에도 내게 총질을 해댔고. 난―그건 좋지 않아. 너희가 누군가를 정말로 도와주었다면 세상은 분명히 좀 더 나은 곳이 되었겠지. 하지만 대신 새하얀 우리 안으로 걸어 들어가 스스로를 가두는 쪽을 택했어. 세상엔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있어. 아주 많은 사람들 말이야."

"삼촌, 우린 이 문제에 대해서 수없이 이야기했잖습니까. 저는 우리의 이유에 대해서 열 번도 더 설명드렸는데요. 아마 말씀하신 대로 우리가 당신의 말을 듣고 있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당신이 우리의 이야기를 하나도 듣고 있지 않았던 것 또한 이토록 분명하군요."

션은 계속해서 이야기했지만 닉은 그가 감지할 수 있는 다른 것들을 확인하기 위해 점차 소리를 높여가는 언쟁을 더는 듣고 있지 않았다. 그가 자신의 주파수를 정확히 기억한 것이 맞다면, 그것은 인간이 들을 수 없을 정도로 희미하고, 아주 높은 음역대의 소리였다. 션과 함께 나타났던 신스 하나가 그 소리가 어디서 오는지 가늠해보려는 듯 고개를 젖혔다. 그것은 너무 작은 소리였기에 닉은 더이상 운을 시험해볼 수 없었다.

그때, 삽시간에 희미한 윙윙거리는 소리는 거대한 파열음이 되어 터져 나왔고, 하얀 빛이 비산해 온 세상을 뒤덮었다.

그것은 마치 통증이 수반되지 않는 전기 충격과도 같게 느껴졌다. 잠시 후 그것은 닉에게 존재하지도 않는 잔상을 눈 저편으로 쫓아내기 위해 깜빡이고 싶은 충동이 일도록 만들고는 사라졌다. 네이트가 그의 옆에 다가와 섰다. 닉은 그의 팔을 붙들었으나 네이트가 거의 그에게 넘어질 뻔하자 투덜거렸다. 그들은 더이상 인스티튜트에 있지 않았다. 그들은 바깥에 서 있었고, 익숙한 목소리들이 그들 주위를 둘러싼 소란으로부터 들려오고 있었다.

"오 세상에,","젠장할, 이건―.", "이런, 이러려던 건 아니었―", "무슈 발렌타인! 바라건대 괜찮으시죠? 그리고 이건 도대체…오, 세상에나.", "주인님! 발렌타인 씨! 그리고―이럴 수가, 혹시…션?"

"좋습니다, 여러분, 좀 조용히 해보세요."

가비가 소리쳤다.

"대장님께 시간을 드리자고요."

닉은 네이트를 더욱 꽉 잡고 몇 발자국 뒤로 물러났고,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있던 네이트와 션 사이로 가서 섰다.

그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장전된 소총을 들고 있었고, 그 시선은 닉과 네이트로부터 1미터정도 떨어져 있는 세 번째 사람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가비가 다가가기 시작했지만, 첫 번째로 튀어 나간 것은 코즈워스였다.

"션, 정말 너니?"

그가 매우 가까이 접근하며 물었다.

션이 빤히 바라보았다.

"뭐라고?"

"오, 절 더이상 기억하지 못하는 모양이네요, 하긴 그땐 너무 어렸으니까요…. 하지만 세상에, 이렇게 훌륭하게 커 주다니! 어머니가 살아계셨더라면 보고 정말 기뻐하셨을 텐데…. 어쨌든, 혹시 삼촌을 보러 오신 건가요? 두 분 사이가 잘 풀리지만은 않았다고 들어 알고 있습니다―정말로 유감스럽기 그지없는 일이죠. 그 분은 당신을 찾으려고 굉장히 노력하셨거든요, 물론 아시겠지만요. 하지만 가족끼리 화목한 시간을 보내며 풀지 못하는 문제가 또 어디에 있겠습니까!"

션이 입을 열었다가 다시 닫았다. 그리고는 가비 쪽으로 돌아섰다

"이게 대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거지? 나를 여기로 납치한 이유가 뭔가?"

닉은 가비가 뭐라고 말하는지 듣지 못했다. 네이트가 갑자기 그에게로 쓰러져서는 더이상 아무 소리도 내지 못할 지경까지 웃느라 그의 주의를 온통 돌려놓았기 때문에.

 

-

 

그 텔레포터는 다시 되돌아가는 용으로 고안되지는 않았다는 것으로 밝혀졌다. 션은 어딘가에 수금되었고, 경비병이 배치되었다. 아무도 인스티튜트가 언제 그들의 디렉터를 구출하러 올지 몰랐다. 가비는 그들이 붙잡히기 직전에 나타났던 것이다.

"아스키 코드 표를 외우고 있었거든."

네이트는 그들이 어떻게 빠져나갔는지 씩 웃어 보이며 설명해주었다.

"아니면 적어도 철자랑 숫자들, 그리고 쓸모있는 글자들 몇 가지라고 말해도 되겠지. 왜인지는 묻지 마, 어렸을 때 이상한 프로젝트들에 끼게 돼서 그래. 어쨌든. 그들이 클래식 라디오를 어디서 방송하고 있는지 알아냈어. 장비는 갖춰져 있는데 마이크는 없더군. 그래서 미닛맨 채널로 맞추고 모스 부호를 보내기 시작했지. 난 SOS말고는 아무것도 모르지만 퀴리가 잘 해낼 거라고 믿었어."

그녀는 미소를 지었다.

"패턴을 알아내고 나서부터는 그다지 어렵지 않았어요. 그리 효율적인 방법은 아니지만…전해져오는 메시지를 알 수 있었죠."

"맞아, 그렇지. 난 한 번에 몇 글자씩 메시지를 보내기 시작했어. 가장 처음으로는 '인스티튜트에 억류됨, 도와줘.'였지. 좀 더 자세한 것들도 있었지. 우린 성공했고. 직접 만나러 갈까도 했지만, 그들은 나를 '보호할' 추적자를 붙여놓고 싶어 한 데다가 그 스파이들하고는… 세상에, 칼라가 인스티튜트 내통자라는 것 알고 있었어? 커먼웰스의 모든 행상인들도 마찬가지야. 어찌됐든 간에. 난 닉이 걱정됐어."

"누가 그렇지 않겠습니까?"

가비는 그의 어깨를 툭 밀었다.

"그들이 별 건 안 했죠?"

"내가 알기로는 그렇네. 이리저리 들쑤셔대긴 했지만. 자네가 그들이 내 프로그램이 얼마나 훌륭하고 효율적인지에 대해 떠들어 대던 것을 들었어야 하는데."

"어휴."

"저는 발렌타인 씨와 주인님 모두 무사히 귀환하셔서 기쁠 뿐입니다."

코즈워스가 유리잔들을 집어가고 새 음료들을 내오기 위해 돌아다니며 말했다.

"그런데 불쌍한 션을 도대체 어떻게 하실 생각인지 여쭤봐도 될까요?"

"우린 스터지스가 그 텔레포터를 고치기 전까진 그를 되돌려보낼 수 없어."

가비가 말했다.

"그의 말마따나 일이 꽤나 복잡해졌으니 하루나 이틀 정도가 걸리겠지."

"퀴리하고 내가 도와줄 게 있는지 봐 볼게요."

네이트가 말했다. 그는 이마를 문지르기 위해 잠시 걸음을 멈추고 덧붙였다.

"눈 좀 붙이고 나면요. 인스티튜트는 좋은 방을 내주긴 했지만 거기서 불을 끄는 방법만은 절대 알아낼 수 없었어요. 그리고 거긴 모든 게 다 새하얀 색이었다고요."

"지금 당장 스터지스 씨를 도우러 가 볼게요."

퀴리가 자원했고, 행복한 작은 흥얼거림과 함께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문으로 나갔다.

닉은 다른 사람들처럼 그만의 변명거리를 가지고 있었다―이 곳의 여느 사람처럼 담배를 피울 시간을 가져야 한다던가, 코트 아래에 입은 인스티튜트 수트보다 더 편안한 옷으로 갈아입어야 한다던가―하지만 네이트가 그의 손목을 붙잡았다.

"뭔가?"

그가 다른 사람들이 뒤섞여 집 밖으로 나가는 동안 물었다.

"혹시, 음. 잠들기 전에 다시 이야기를 좀 나눌 수 있을까요? 제 뇌가 종일 시끄러워요. 정말 피곤하긴 하지만 그래도요. 부담 갖지 말고 대답해주세요. 당신도 생각할 것들이 많을 것 같은데."

"그러지, 그 정도쯤은 별것 아니네, 네이트."

"좋아요. 고마워요."

닉은 네이트가 잘 준비를 하는 동안 불을 껐고, 문의 빗장을 수리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문은 활짝 열려 있었다. 그는 네이트가 그 문제를 해결할 때까지 일단 부수어진 시멘트 조각 하나를 괴어 놓았다. 닉이 침실로 돌아왔을 때 네이트는 예상했던 대로 이불 아래로 들어가 있었다. 늘 옆으로 돌아 자던 것과는 달리 똑바르게 누운 채 천장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바깥에 볼 일이 있나?"

닉은 침대 가장자리에 앉으며 부드럽게 물었다.

"어마어마하게 많죠, 제가 어떻게…."

그는 손을 눈에 대고 누르며,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내쉬었다.

"그들이 정말 당신에게 아무 짓도 안 했어요?"

"그건 분명히 이 세상에서 가장 즐거운 경험은 아니었지, 그리고 그런 일을 다시 겪게 되는 건 사양하고 싶네. 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깨닫기 전에는 손댈 생각조차 하지 못하더군. 그들이 내 코드를 얼마나 이해했는지도 잘 모르겠네."

"아, 그거요, 신경망, 하. 꽤 복잡하죠."

"그러니 날 걱정하는 일은 그만두게. 난 아무 데도 가지 않으니까, 자네를 도울 수 있기만 하다면."

"맞는 말씀이에요."

네이트는 눈을 비비고 나서 손을 늘어뜨리고, 한숨을 길게 쉬며 담요 아래 어딘가에 웅크렸다. 그는 닉의 눈을 다시 마주 보고는 미소를 지었다.

"이상한 말 좀 할게요."

"뭐?"

"당신 눈이 정말 예쁘네요."

닉은 눈을 깜박이며 손을 들어 올려 눈가를 만져보려다 멈추었다.

"이것들이? 예쁘다고? 자네가 먹던 그 영양 반죽들 안에 뭐라도 들어있던 게 아니라고 확신하나?"

"진심인데."

네이트가 말했다.

"우리가 그 어둠 속에 서 있었을 때, 그리고 그 어떤 것도 볼 수 없었을 때, 저는…그건 안정되는 느낌이었어요. 어떤 말로써 표현할 수 있을 지 모르겠네요. 그건 그냥, 다른 누구도 아닌 닉이 여기 있다고, 그런 생각을 떠올리게 했거든요. 그게 저한테는 꽤 반가웠죠."

사람들은 어둠 속에서 닉의 눈을 마주치면 지레 겁을 먹고 뒤로 물러나거나, 총을 쏴댔다. 심지어 엘리조차 그를 보며 화들짝 놀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여기 예쁜 눈을 가진 사람이 있다면 그건 자네의 그 청명한 파란 눈을 두고 말한 것이 아닌가 싶은데."

"아, 닉."

네이트는 갑작스레 웃음을 터트렸지만, 아까 발작하듯 굴러다녔던 때보단 훨씬 활기차 보였다.

"칭찬을 들었다고 해서 꼭 돌려줄 필요는 없다고요."

"무슨 소린가? 생각나는 대로 말했을 뿐인데. 그 여자애가 자네가 그렇게 키도 크고 잘생겼다고 그러던데. 자네가 아름다운 눈을 가졌다며 칭찬해준 뒤 그녀가 머리를 어떻게 하고 나왔는지…."

새로운 스타일로 해 봤어. 제니가 말했다. 한 시간이나 걸렸지만, 우리가 이렇게 오랫동안이나 보지 못했는데 근사한 모습을 보여줘야 하지 않겠어, 닉은 머리를 흔들어 기억을 쫓아내려 애썼다.

"닉?"

"아무것도 아닐세. 잘 준비는 다 했나?"

"또 다른 기억인가요? 당신 눈이 그래 보였는데."

네이트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몇 분 후에, 그는 손을 뻗어 닉의 손목을 쥐었다. 더 가까이 있던 금속 손을.

"내일도 션이랑 이야기해 보려고요. 더 기대할 것도 없지만. 조금만 더… 하다못해 그것이 작별 인사일지라도. 저는… 당신한테 강요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괜찮으시다면 같이 가주세요."

"이게 정말 좋은 생각 같나?"

"당신이 괜찮을 경우에만 그렇죠."

네이트가 말했다.

"전 코즈워스도 데리고 갈 거예요. 전… 당신은 제게 있어 중요한 사람이니까, 비록 이런 사실들을 납득시킬 수는 없을지라도 다시 한번 만나게 해 주고 싶어요. 그리고 션을 다시는 볼 수 없게 된다면…."

손목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렇다면야, 알겠네. 노력해보지."

닉은 그의 말을 마음속으로 되풀이했다. 자네도 나한테 있어서는 중요한 사람이야. 그의 금속 심장은 전혀 빠르게 뛰거나 하지 않았겠지만, 마치 그런 것처럼 느껴졌다.

"닉?"

손가락이 그의 턱선을 매만졌다.

"당신 이런 표정도 지을 줄 아는군요."

그는 네이트의 손을 끌어내기 위해 잡히지 않은 손을 뻗었다.

"이런 늙은이에게 못 하는 말이 없군."

네이트는 눈살을 찌푸리며 일어나 앉았고, 손을 움직여 이제는 닉의 두 손 전부를 잡고 있었다.

"이번에도 꼭 그 소리군요. 왜 늘 그런 식으로 말하는 거예요? 물론 당신이 그 좋았던 시절만큼이나 오래된 기억을 갖고 있다는 건 알지만, 그건 커먼웰스 절반도 마찬가지라고요. 엘리와 저, 그리고 다른 모든 사람들이 우리는 그런 것쯤은 개의치도 않는다는 걸 당신 머릿속에 심어주지 않았던가요? 세상에, 닉. 전 저한테 남은 가족이라고는 코즈워스 뿐이라 여겨요. 션은 더이상 가족으로 쳐 주지도 않죠. 어쨌든. 당신이 얼마나 특별한 사람인지에 대한 연설을 또 하게 만들 셈이에요?"

닉은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자넨 정말 그 생각을 포기할 줄을 모르는군?"

"뭐, 그렇죠. 그걸 꼭 확인시켜드려야겠어요?"

그는 네이트가 단단히 잡고 있던 그의 손을 흘끗 내려다보았고, 잠깐 또 다른 기억이 그에게 엄습해왔다. 제니, 그녀의 머리카락이 그녀의 얼굴 주위로 느슨하게 흘러내렸다, 그를 걱정스럽게 바라보며 몸을 가까이 기울이던.

네이트도 같은 행동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고, 겹쳐진 시야를 구분하기 힘들어졌다.

"자넨 정말 구제불능이군. 알고 있었나?"

그 말은 아마도 그가 의도했을 것보다 더 부드럽고 애정이 가득했다.

"그래요? 그건 분명히 거절은 아닌 것 같은데. 해도 될까요, 닉?"

그들의 입술은 차라리 스치는 것에 가까울 정도로 맞닿았고, 네이트는 자기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잘 모르는 듯했다. 그리고 닉은―음,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것처럼 느꼈다. 꽤 특별했다, 이 몸에서 느끼기로는. 나쁘진 않았지만.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자네 가족 전체에 인간이라고는 하나도 남지 않겠어."

네이트는 코웃음을 친 뒤 이마를 맞대고, 그의 손을 부드럽게 그러쥐었다.

"그 정도면 양호하죠. 저랑 가까운 사람들 중 반절은 기계인걸요."

그는 스스로 한 말에 웃었다. 따뜻한 숨결이 닉의 뺨에 가 닿았다.

"알겠네, 그리고 분명한 사실 하나는 자네가 자야 할 시간이 한참이나 지났다는 거지. 어서 눕게나."

네이트는 얼굴을 찌푸렸지만, 이내 옆으로 돌아 웅크렸다.

"그래서 내일은 어떻게 하실 거죠?"

"내가 함께 가지. 그다지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지만, 자네가 그러기를 원한다면 말이야. 이렇게 해서라도 거기서 나를 꺼내준 보답을 해야지 않겠나."

"그러고 나서, 뭔가 다른 것도 좀 하죠. 뭐든 좋아요. 노라에게 꽃을 좀 꺾어가도 좋겠고. 먹을 걸 찾으러 다녀도 되겠고. 아니면 그냥 책이나 읽을까요? 당신이 골라 주세요."

"그건 그냥 데이트 같은데. 이제 정말로 자게."

"알겠어요, 그럼."

그는 눈을 감고 이불 아래서 편안하게 누웠다. 닉은 침대 머리맡에 기대었고 네이트의 손은 여전히 그의 손목에 감겨 있었다. 닉은 그가 천천히 잠에 빠져드는 것을 지켜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