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k Text:
디스티가 사라진 뒤부터 열차의 개조된 군인들은 테슬러가 정비해주게 되었다.
원래 재능이 출중한 데다 디스티의 지식까지 일부 이어받은 그는 금방 빈 자리를 메우고 현 상태 유지를 넘어 업그레이드도 해주었다.
“코일, 오늘은 우리 의안에 새 기능을 추가할 거야.”
디스티 때와 달리 코일도 테슬러가 볼 때는 순순히 치료용 의자에 누웠다.
상태를 점검한 테슬러가 코일의 왼쪽 눈꺼풀을 의료용 테이프로 고정한 다음 자신의 의안을 작동시키며 코일과 눈을 마주했다.
“프로그램 내려받는 중이니까, 눈 깜박이면 안 돼. 좀 오래 걸려.”
테슬러 자신의 눈꺼풀은 손가락으로 누른 채 회색 눈이 반짝였다. 코일은 그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눈구멍이 간질간질해지고 따뜻해지는 감각이 이제는 꽤 익숙했다. 시술을 하는 사람이 디스티가 아닌 테슬러여서 그런 모양이었다.
“끝났어. 테이프 내가 떼어줄 테니 저번처럼 눈 비비지 마.”
“이젠 진짜 안 그런다니까.”
툴툴대면서도 코일은 얌전히 테슬러의 손이 테이프를 떼고 마지막으로 괜찮은지 살펴보다가 떨어져 나갈 때까지 기다렸다. 그리고 의안의 인터페이스를 활성화 시켜보았다.
“안전 모드를 추가했어.”
테슬러가 설명했다.
“의안으로 기계를 손 안 대고 조작하고 컴퓨터에도 접속하는 건 편리하지만 위험하기도 하다는 거 알지? 그래서 우리의 의안을 미리 알고 해킹을 시도하는 적에 대처하기 위한 모드야. 이걸 활성화 시키면 적이 의안을 해킹해 우리 두뇌에 접속하는 게 불가능해져.”
“와.”
어려운 이야기였지만 플루토에게 테슬러가 당했던 것 같은 일을 막아준다는 건 알아들었다. 코일은 감탄해서 안전 모드를 켜 보았다.
“대신 그걸 켜면 원격 기능은 최소한밖에 못 써. 밤에 침대에 누운 채로 불 끄는 정도밖에 못 할 걸?”
“아, 그건 된다니 다행......왜?”
“왜라니? 그 정도라도 기능을 살리려고 내가 얼마나 노력했는데?”
테슬러가 억울하다는 표정을 했다.
“접속이 없어야 역접속도 없는 거라고. 가장 확실하고 유일한 보안책이야. 지금은 우리의 의안에 대해 아는 사람이 거의 없지만 그렇다고 방심할 수는 없어. 제국에 뇌 개조 기술을 가진 게 디스티 한 명만도 아니었고.”
“윽.”
코일은 입을 삐죽였지만 대꾸할 말이 없었다.
이론적인 이야기는 여전히 약했다. 그리고 황제가 죽었다고 이들의 적이 다 사라진 것도 아니었다.
“평소엔 켜둘 필요 없어. 해킹이 걱정될 때만 켜도 돼.”
“알았어.”
“그럼 안전 모드가 제대로 기능하는지 시험해보자.”
플루토는 자신이 만든 꿈속의 화원에 누워있었다. 늘 하던 대로, 자신이 어찌할 수 없는 재난 앞에서 도피하는 중이었다.
차라리 그 열차의 대포에 맞아 죽는 편이 나았을 것이다. 또다시 디스티 손에 떨어지다니.
지금 현실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지 궁금해 하는 대신 연못을 바라보았다. 자신이 처음 완성했던 시를 읊으며.
동생 말대로 유치한 시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자신이 누구인지 기억할 만한 다른 것은 남아있지 않았다. 원래 존재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곧 지루해지겠지만 그것도 익숙하다. 그나마 요즘은 자신에게 남은 테슬러의 기억을 떠올리며 시간을 보낼 수도 있었다.
연못에 테슬러의 얼굴이 비쳤다.
“어?”
테슬러가 거울을 보는 순간이 아닌 한 그의 얼굴이 그의 기억에 등장할 일은 없다.
여기서 예상 밖의 일이 벌어지는 건 언제나 재난의 전조였다. 공포와 긴장으로 얼어붙는 순간 연못에 비친 테슬러가 입을 열었다.
[오랜만이야, 플루토.]
“테슬러? ......진짜 테슬러야?”
[그래.]
플루토가 연못에서 한 걸음 물러났다.
[오해하지 마. 이번에 난 너와 이야기가 하고 싶을 뿐이야.]
“그렇다고 해도 지금 넌 또 내 무의식에 접속해 있는 거잖아?”
플루토가 연못에 손을 뻗자 테슬러의 표정이 굳었다.
개의치 않고 수면 아래로 손을 담가 그를 움켜쥐고 끌어내려 했다. 그러나 아무리 손을 휘젓고 움켜도 연못물밖에 잡히지 않았다.
[난 지금 의안을 안전 모드로 돌리고 테슬러 패드를 통해 접속했어. 패드의 방화벽 너머로 대화중이니까 내게 역접속을 시도해도 소용 없어.]
“......”
[날 보고 싶지 않은 거면 이만 접속을 끝낼게. 하지만 네가 알아야 할 사실 몇 가지가 있어.]
어쩔 수 없는 호기심이 두려움을 이겼다. 플루토는 손을 거두고 연못가에 앉았다.
“......현실의 나는 지금 어쩌고 있어?”
[아무 것도 안 하고 있어. 디스티가 만든 생명유지장치 안에 잠들어 있거든. 그건 열차에 실려 있고.]
그때 이후 자신에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말이었다. 약간의 안도감을 맛보는 순간 테슬러가 말을 이었다.
[너한테 좋은 소식. 디스티는 확실하게 죽었어. 다시는 살아나지도 못할 거야.]
“정말로?”
너무 좋은 소식이라 믿기 힘들 정도였다. 연못에 비친 테슬러의 표정이 씁쓸하게 변하는 것도 눈치채지 못하고 한숨을 토했다.
“하......그거 정말 좋은 소식이네.”
[클라프로트도 죽었어. 황궁을 무너뜨리고 스스로 묵사발이 됐지. 그러면 내가 뭐 안타까워하기라도 할 줄 알았나.]
“그때 그냥 내 손으로 끝장을 볼 걸 그랬군.”
잠시 망설이던 플루토가 테슬러에게 물었다.
“나는 일부러 살려둔 거야? 생명유지장치의 전원만 내리면 넌 드디어 모든 적들에게서 해방되는 건데?”
테슬러의 표정이 다시 씁쓸하게 변했다.
[난 너와 적이 되고 싶지 않았어.]
“나도 그랬어.”
[네가 세뇌가 풀린 뒤에까지 날 해치지 않았다면 친구가 될 수 있었을 거야.]
“......”
[그리고 조금 전에도 넌 내게 역접속을 시도했지. 성공하면 이번엔 또 어쩔 작정이었어?]
“네가 날 이번에야말로 포맷하러 온 줄 알았어.”
테슬러는 잠시 말이 없었다.
구차한 변명 따위를 했다가 더 화나게 한 것 같아 플루토는 후회했다. 역접속이 봉쇄된 이상 어떻게 해야 테슬러를 막을 수 있을지 아는 바가 없었다.
전자기학과 컴퓨터 공학의 천재인 건 테슬러고 자신은 몇 가지를 베낀 가짜일 뿐이니까.
[포맷하러 온 게 아니야.]
테슬러는 화를 내지 않았다.
[네 동의를 구할 일이 있어.]
“뭐라고?”
황궁에 끌려온 뒤 처음으로 듣는 말에 플루토는 잠시 멍해졌다.
[네 몸엔 여전히 온갖 무기들이 연결되어 있어. 그게 생명유지장치에 부담을 주고 있어서 가능한 한 전부 제거해야 해. 그리고 평범한 의료용 보조장구를 삽입할 거야. 아예 아무 것도 안 넣고 싶지만 네 상태가 너무 나빠서 그건 불가능해.]
“그래. 놀랍지 않네.”
그렇게 해서라도 자신을 살려두겠다고 생각하는 테슬러 쪽이 훨씬 놀라웠다. 이유가 뭐냐고 물어볼 말을 고르고 있는데, 테슬러 역시 뭔가를 기다리는 눈치였다.
“......”
[......]
“......”
[......생각할 시간이 필요해?]
“......뭘?”
[??? 무기들을 전부 제거해도 되냐고 물어봤잖아?]
“내 동의를 구한다는 게 그거였어? 그게 내 동의가 필요한 일이야?”
[그래, 너한테는 익숙하지 않겠구나.]
테슬러의 표정이 다시 슬프게 변했다.
[네 생명과 건강을 위해 무기 제거 시술을 추천해. 하지만 싫다면 억지로 하지 않겠어. 네 의사에 어긋나게 억지로 치료하는 게 너한테 무슨 소용이겠어.]
“하......이제 와서.”
플루토는 테슬러에게서 눈을 떼고 웅크렸다.
다시 침묵이 흘렀다. 테슬러는 대답을 재촉하지 않고 기다렸다.
“왜......”
플루토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왜 날 살려두려는 거야?”
[너한테 기회를 주고 싶으니까. 너 자신으로 살 기회를.]
대답은 금방 돌아왔다.
[코일과 도망치지 않았으면 내가 황궁에 갇힌 채 서서히 말라죽었을 거야. 지금도 도망친 일을 후회할 수는 없어. 하지만 너와 수많은 내 또래 아이들에게 일어난 일을 외면할 수도 없어. 그러니 너 하나만이라도 살리고 싶어.]
“난 널 죽이려고 했어.”
[지금도 죽이고 싶어?]
대답하지 못했다. 지금 자신을 어떻게 할지 온전히 테슬러의 손에 달려 있어서만은 아니었다.
죽이고 싶었다. 부러웠고 원망했다.
‘진짜’를 향한 원망과 질시만이 가득 차 있었다.
꿈속에 숨어서도 오랫동안 그 상태였다.
“......지금 내가 아니라고 하면 믿을 수는 있어?”
[믿을 거야.]
이번에도 테슬러는 대답을 주저하지 않았다.
[그래야 널 구할 수 있을 테니까.]
“그렇게까지......”
입에 발린 소리라고 믿고 싶었다. 위선이라고 매도하고 싶었다.
기억 속에서 테슬러는 자신을 포맷할 기회가 있었음에도 하지 않았다.
폭주해서 위태로운 상태의 자신을 데려가려 한 적도 있었다. 자칫 그 자리에서 갈기갈기 찢길 수도 있었다는 건 플루토가 더 잘 알았다.
“무기 제거해.”
그토록 떨어지지 않던 입술이 떨어지자 말은 생각보다 쉽게 나왔다.
“그 편이 너한테도 낫겠지. 무기를 다 없애면 난 그냥 힘없는 어린애일 뿐이고 널 해치고 싶어도 해칠 수도 없으니까.”
[원래 네가 갖고 싶어했던 힘도 아니었어.]
“그래.”
사관학교도 원해서 간 것이 아니었다. 황궁에 잡혀가기 전에도 그의 인생에 간섭하며 그의 의사를 묻는 사람은 없었다.
“내가 다시 시를 쓸 수 있을까?”
대답을 바라지 않고 한 혼잣말인데도 테슬러는 대답을 했다.
[그건 너한테 달렸다고 생각해. 돕고 싶어도 나는 시 같은 건 잘 모르겠고, 열차에도 시집은 없고. 공학 책이나 전자기학 책밖에 없을걸.]
“날 깨우기까지 하려고?”
[당장은 아니야.]
테슬러의 목소리가 차가워졌다. ‘절대 그럴 일은 없어’에 비하면 비상식적일 정도로 관대한 말을 하면서도.
[지금은 황궁에서 그 일이 벌어진 지 일 년이 지났고, 디스티가 무슨 생각이었든 네가 완전히 무력해졌다는 확신이 섰으니까 이만큼이라도 하는 거야. 무기를 제거한 뒤의 네가 생명유지장치 없이 살 수 있을지도 사실은 장담할 수 없어. 이번에 수술할 사람은 제국 최고의 천재 의사가 아니라 독학으로 급히 배운 나니까.]
“아, 디스티는 죽었다고 했지. ......그래서 네가 한다고?”
[달리 믿고 맡길 사람이 없어. 집도의가 미덥지 못해서 마음이 바뀌었다면 그렇게 말해.]
“아니, 괜찮아. 디스티보다 네가 훨씬 나아.”
웃음이 나왔다. 그걸 보고 테슬러가 미간을 좁혔다.
[내가 제대로 못하면 넌 그대로 죽을 수도 있어.]
“어차피 황궁에서 죽었을 목숨이야.”
기분이 이상했다. 테슬러가 도망치는 바람에 자신이 어떤 꼴을 당해야 했는지, 그 일부만이라도 테슬러가 깨닫기를 원했다. 그래서 괴로워하기를 원했다.
실수로 자신이 죽을까봐 안달하는 테슬러를 보니 꼭 그 소원이 이루어진 기분이었다.
그제야 지금의 테슬러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아까 디스티도 클라프로트도 죽었다고 했지. 황궁도 무너졌고.”
[맞아.]
“그런데 여전히 열차의 총통인 거야? 반란에 성공했는데?”
[음, 설마 너도 내가 차기 황제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그렇게 생각했다. 대대로 의심 많고 포악한 황제들이 제위에 오른 탓에 클라프로트 즉위 전에 이미 다른 황족들은 전멸한 뒤였다. 공국의 장남이었다가 가짜 왕제가 되는 동안 방계 혈족 정도라도 남아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클라프로트가 죽었다면 그와 혈연을 주장할 수 있는 사람은 테슬러뿐이었다.
그런데 테슬러의 표정을 보니 그렇게 말할 때가 아닌 것 같았다.
[황제가 되고 싶어서 반란군이 된 게 아니야.]
테슬러가 단언했다.
[무엇보다 그렇게 해서 내가 황제가 된다면 자기 아버지를 죽이고 찬탈한 클라프로트와 다를 게 뭐지? 난 그와 어머니가 같을 뿐이고 텔룰르나 이전의 황제들과는 아무 연관도 없어. 언제나 그게 다행스러웠어. 그런데 이제 와서 버리고 떠났던 지위를 뒤집어쓰고 놈의 동생임을 내세우라고? 지옥에서 클라프로트가 기뻐할 것 같아 소름이 끼쳐.]
그건 나도 싫다고 대답할 뻔하고 플루토가 생각을 가다듬었다.
“그럼 지금 황제는 누구야? ......아니, 황제가 없다면 제국은 어떻게 되어 있는 거야?”
[혼란스러워. 각지의 힘 있는 귀족들이 야심을 드러내는 중이고, 이 기회에 독립해서 자치령을 선언하는 곳들도 있고. 클라프로트가 살아서 자기네랑 있다고 뻥을 치는 놈들도 있어서 지난달에 울트라 토네이도 디젤 포스트 아포칼립스 디스토피아 네오 익스플로전 샷을 먹여줬지.]
“......뭘 먹여줬다고?”
[울트라 토네이도 디젤 포스트 아포칼립스 디스토피아 네오 익스플로전 샷.]
지금 그게 뭔지 구구히 설명할 때가 아니라는 걸 다행히 테슬러도 아는 것 같았다.
[처음 열차를 탔을 때 결심한 게 있어. 우리 마을이 당한 것 같은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저지르는 제국은 없어져야 한다고. 그러니 클라프로트가 죽었다고 끝난 게 아니야. 제국을 복구하려 드는 놈들, 새 황제가 되려는 놈들 모두 내 적이야.]
“하지만 다스릴 사람이 전혀 없으면 사람들은 더 혼란에 빠지는 거 아냐?”
[그래서 사람들이 스스로 세운 자치령이나, 귀족이라도 나쁜 짓 안 하고 약자들을 건드리지 않는 사람은 나도 건드리지 않고 있어. 대놓고 나쁜 놈들 잡기에도 바쁘고.]
집에서나 사관학교에서나 제국의 통치는 정당한 것이고 천민들에게 자유를 주어봐야 자기들끼리 아귀다툼할 뿐이라고 배웠다. 그러나 테슬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이 분명했다.
“나는......”
스스로 생각해볼 겨를이 없었다. 눈앞의 고통도 감당하기 버거웠으니까.
그 고통의 근원이 무엇이었나.
“......그래. 네 말이 맞는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해주면 다행이고.]
마치 플루토의 의견이 중요하다는 듯한 반응이 생소하기 이를 데 없었으나 이제까지 테슬러의 태도가 다 그런 느낌이었기 때문에 굳이 따지지 않고 넘어갔다.
[그럼 이만 접속을 끝내자. 수술 준비를 해야 하니까.]
“알았어. 그리고......”
머뭇거리던 플루토가 입을 열었다.
수술이 실패할 수도 있다고 했으니 할 말은 지금 해야 했다.
“......생각해줘서 고마워. 그리고...... 황궁에서의 일은 미안해.”
테슬러의 눈이 동그래졌다.
“진심이야. 할 수 있는 건 말뿐이긴 하지만 네가 죽지 않아서 다행이야.”
[그, 그래. 그럼, 수술 성공하면 코일한테도 사과해.]
“그럴게.”
그 도끼눈 꼬마가 사과를 받아줄지는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순순히 대답했다. 그 성질머리라면 네놈의 목숨으로 사과받겠다고 할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럼 가볼게. 네 쪽에서 준비할 일은......그래. 힘들더라도 꼭 살아남겠다는 마음가짐이 필요하겠네.]
하필 제일 어려운 걸 시키다니.
[다음에 보자. 이만.]
접속을 끊고 테슬러가 의자 등받이에 기대자 곁에서 내내 도끼눈 뜨고 지켜보던 코일이 패드를 받아들었다. 그리고 유리관 속 플루토를 다시 힘주어 노려보았다.
“정말 이놈을 살려낼 거구나.”
“나도 이전 상태 그대로였다면 포기했을 거야.”
테슬러가 의안의 안전 모드를 해제하고 연구실을 둘러보았다.
수술도구와 약품들, 플루토의 체격에 맞춘 보장구까지 이미 전부 준비해놓은 상태였다. 연구실 밖엔 대원들이 분리해낸 무기를 담을 폐기물 통도 가지고 대기중이었다.
“확실해? 그놈 정말 마음 고쳐먹었어?”
“막상 꺼내놨더니 돌변하면 네가 바로 패줄 거잖아.”
태평하게 웃는 테슬러를 보고 코일이 입을 댓발 내밀었다.
“그야 무기 다 떼면 한주먹거리도 안 될 녀석이니까. 아니었으면 네가 뭐라고 말해도 끝까지 반대했어.”
“고마워. 그날 일은 너한테도 힘든 기억인데.”
승리로 끝났지만 둘 다 오랫동안 그날의 악몽에 시달렸다. 테슬러가 처음 플루토를 깨우고 싶다 말한 날에도 코일은 악몽을 꾸었다.
“언젠가 네가 플루토를 깨우려고 할 건 예상했어.”
코일의 표정이 차분해졌다.
“이렇게 빠를 줄 몰랐을 뿐이지. 좀 서두르는 것처럼 보일 정도야.”
“서두르는 거 맞아.”
테슬러가 겉옷과 장갑을 벗고 머리를 묶었다.
“이번에 우리가 새로 공격하기로 한 제국 잔당 세력 있잖아. 그쪽과 본격적으로 싸우기 전에 깨워주고 싶어.”
“그 족보에 몇십 대인가 몇백 대인가 올라가면 황가의 피도 섞였다고 주장하는 공작 말이지?”
코일이 투덜거렸다.
“전부터 군대만 키우고 민생은 뒷전이었다던데. 하여간 황족이니 귀족이니 하는 것들은 다 마음에 안 들어. ......어, 그런데 그놈이랑 플루토가 무슨 상관이야?”
“깨우고 나면 본인에게 들어.”
소독약으로 손을 씻으며 테슬러는 지금 열차 밖에 펼쳐져 있는 풍경을 생각했다.
책에서나 봤던 넓은 바다와 아름다운 언덕, 그 위에 과시하듯 우뚝 솟은 훌륭한 저택.
자신은 그 풍경을 본 적이 있었다. 아니, 그 풍경을 기억하는 사람을 알고 있었다.
“또 원망하는 소릴 듣고 싶진 않으니까. 이번엔 직접 판단하고 의견을 낼 기회를 주고 싶어.”
테슬러가 수술 장갑을 끼고 플루토에게 다가갔다. 코일은 생명유지장치의 계기판을 조작했다.
수술이 시작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