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Text
놀랍게도 수술은 성공했다.
마취가 풀리고 눈을 뜬 플루토 곁에는 디스티와 케시우스 대신 테슬러와 코일이 있었다.
눈도 뻑뻑하고 머리도 어지러워서 테슬러의 표정은 보이지 않았다. 대신 코일의 표정이 착각할 수 없을 만큼 험악하다는 건 그 와중에도 잘 보였다.
“정신 들었구나.”
테슬러의 그렇게 안도한 목소리는 처음 듣는 것 같았다.
“내 목소리 들려? 지금 손가락 몇 개인지 보여?”
의식을 체크하는 절차는 디스티가 개조 수술을 마치고 깨웠을 때와 거의 똑같았다. 습관적으로 대답을 하자 테슬러의 목소리가 차분해졌다.
“좋아. 이대로 회복하면 되겠다. 식사는 내일부터 하고, 오늘은 심호흡하고 기침도 해. 그 두 가지에만 집중하면 돼. 필요한 거 있으면 여기 비상벨 누르면 내가 올 거야.”
“그래.”
코일의 기색이 워낙 사나워서 예전 일부터 추궁당할 줄 알았는데, 뜻밖에도 거기서 끝이었다. 이런저런 주의사항을 더 얹어주고 진찰을 마친 뒤 테슬러가 먼저 일어나자 코일도 조용히 따라나갔다.
‘저 둘은 여전하네.’
여전히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리고 재활이 시작되었다.
이전까지는 개조 후의 재활이 더 강해진 몸에 적응하는 일이었는데 이번엔 약해진 몸에 적응해야 했다. 처음 며칠 동안은 걷는 것도 힘들어 쌍지팡이를 짚고 열차 복도를 오가며 걷는 연습을 해야 했다.
그러다 보면 열차의 병사들을 마주칠 일도 있었다.
자기들이 대포로 날려버린 괴물이 몸도 똑바로 못 가누는 환자가 되었다고는 상상도 못 하는 모양이었다. 청소중이던 병사는 플루토가 비켜날 때까지 대걸레를 멈추고 기다려 주었고 모래주머니를 차고 달리던 연두색 옷의 병사는 플루토가 넘어지려고 하자 부축해주기까지 했다.
슬쩍 몇 마디 떠보니 정말로 이들은 아무 것도 모르고 있었다.
“총통님께서 황궁에서 구출해온 분이라고 들었어요. 아, 전 바솔트라고 해요.”
손을 떼도 상대가 넘어지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들자 조심스럽게 손을 떼고 물러나며 바솔트가 말했다.
잠깐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해 버벅거리는 사이 코일의 발소리가 들려왔다. 감각은 지금도 상당히 예민했다.
“바솔트, 뭐해? 꾸물대지 말고 따라오라고......아.”
코일의 표정이 굳었다가 바솔트를 보고 풀렸다.
“그래. 훈련중이라도 환자를 치고 지나가면 못쓰지. 얘 당분간 의무실 앞에서 이렇게 재활해야 하니까, 아예 훈련장소를 옮기자.”
“그럴까요?”
“그래. 그럼 지금 훈련 장소를 열차 지붕 위로 옮긴다. 열차 선단에서 후미까지 왕복 전력 질주 10회 실시!”
“실시!”
바솔트가 힘차게 외치고 사다리를 올라가 지붕 위로 사라지자 복도엔 둘만 남았다.
“......”
코일의 표정이 다시 딱딱해졌다. 그러나 깨어나서 처음 봤을 때만큼 험악해지지는 않았다.
“긴장할 필요 없어.”
그 기색 그대로 코일이 내뱉었다.
“테슬러가 이미 열차 전체에 명령해뒀어. 황궁에서 고생하다가 구출된 환자니까 잘 대해줘야 한다고. 네가 그때의 괴물이라고 제대로 아는 사람은 나랑 테슬러 빼면 패러데이하고 브리즈뿐이야.”
“브리즈?”
패러데이는 디스티와 구면이던 무투가 이야기란 걸 알겠는데 브리즈는 누군지 알 수 없었다. 자신에게 남은 테슬러의 기억을 뒤져보았다.
“......아, 그쪽도 눈을 개조했으니 내 모습을 똑똑히 봤겠구나.”
“자세히 아네.”
코일이 징그럽다는 표정을 했다.
“테슬러의 기억을 얼마나 들여다본 거야?”
“그에게 인상 깊게 남은 몇 가지일 뿐이야. 신입인 데다 디스티가 손댔으니 신경쓰였나보지.”
“적당히 잊어버릴 수는 없어?”
“시간이 지나면 다른 기억처럼 천천히 흐려지겠지만 내가 노력해서 잊을 수는 없어.”
화가 난 코일이 잊어버릴 때까지 머리를 열차 벽에 처박아 주겠다고 할까 겁이 났다. 그러나 코일은 인상을 쓰면서도 손을 들지 않았다.
“내가 무섭냐?”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코일이 말을 이었다.
“너무 무서워할 필요 없어. 내가 한 대 치면 죽을 환자한테 난폭하게 굴 쓰레기로 보이냐.”
“그래도 여전히 내가 미울 거잖아.”
“당연하지.”
코일이 두 눈 험악하게 뜨고 을렀다.
“테슬러가 네 머리에 방화벽인가 하는 거 둘렀다고는 했지만 난 그런 거 갖고 방심 안 해. 또 테슬러한테 이상한 수작 부리려고 하면 그때는 달리는 열차 뒤에 매달아 끌어 주겠어.”
과장된 위협이 아니라 진심이라고 알 수 있었지만 왜인지 이번엔 딱히 무섭지 않았다. 남의 이야기 들은 표정으로 코일의 도끼눈을 마주보았다.
“어라, 코일. 여기서 뭐해?”
휴게실에서 나온 패러데이가 두 사람을 보고 다가왔다.
“테슬러한테 할 말이 있는데 너도 갈래?”
“응, 그래.”
패러데이는 플루토 쪽을 한 번 쳐다보고 코일과 함께 열차 옆 칸으로 사라졌다.
자신의 상태를 보러 올 때마다 테슬러가 그쪽 방향에서 나타났기 때문에 그의 방이 그쪽에 있다는 사실은 짐작하고 있었다. 걷는 게 익숙해지면 먼저 찾아가볼까 하며 다시 움직이는 연습에 집중했다.
저 세 사람이 무슨 중대한 일을 의논할지 궁금하기는 했다. 하지만 자신이 끼어들 자리는 아닐 게 분명했다. 지금 자신이 잘 봐줘야 포로 신분이라는 건 코일이 상기시켜주지 않아도 알고 있었다.
다음날에는 지팡이 하나만 짚고도 걸을 만 해졌다.
매일 아침저녁으로 진찰하러 오는 테슬러가 안심한 듯 웃었다.
“이 정도면 내일 외출도 할 수 있겠네. 다행이다.”
“외출?”
“응. 패러데이가 여기까지 왔는데 바닷가에서 한 번 놀지도 않을 거냐고 조르더라고. 병사들 중에도 바다 본 적 없는 녀석들이 많아서 이참에 하루 놀기로 했어.”
“바다?”
“응. 실은 나랑 코일도 바다를 직접 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야.”
플루토는 바다를 본 적이 있었다. 뒤죽박죽으로 흐려진 옛 기억이지만 공작저 앞에 바다가 있어 언제나 창밖으로 볼 수 있었던 것만은 분명했다.
문득 테슬러의 남아있는 왼쪽 눈에 시선이 갔다. 클라프로트와 디스티가 바다색 눈동자라 부르며 집착하던 맑은 파란색 눈.
클라프로트가 자신의 어두운 보라색 눈을 들여다보며 못마땅한 표정을 지을 때면 얼마나 무섭고도 비참했는지.
“그래서, 너도 같이 나갈래?”
“바다 구경을 나도 같이 나가라고?”
“싫어?”
황궁에 있는 동안 눈치 보는 법만 늘어서, 테슬러가 진심으로 아쉬워 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럼에도 싫다고 버티면 억지로 끌고 나가지 않으리란 것도. 테슬러도 코일 못지않게 속이 훤히 보이는 사람이었다.
“아니, 나갈게.”
테슬러의 얼굴이 밝아졌다.
“좋아. 그럼 밖에 입고 나갈 만한 거 챙겨줄게. 음......지금 따로 사둔 옷이 없어서 우리 병사들 옷 중에 한 벌 빌려올 건데 괜찮지?”
엉성한 환자복 대신 다음날 입게 된 것은 흰 셔츠에 모래색 멜빵바지였다.
“다음에 시가지 나가서 제대로 네 옷을 사줄게.”
지독하게 안 어울릴 옷이라는 건 본 순간 각오했다. 갈아입은 모습을 보자 테슬러도 그 말부터 했다.
“계속 브리즈한테 신세질 수야 없지.”
코일도 투덜대는 것 비슷하게 중얼거렸다. 패러데이도 실소를 지으며 눈길을 피했다.
“옷이 안 어울려서만이 아니라, 꼬마 도령 지금 바짝 말라서 거의 해골 수준이야.”
패러데이가 실소를 지우며 중얼거렸다.
“밥 많이 먹고, 오늘 같은 날 햇볕도 좀 쐬어야 사람 꼴로 돌아오겠어.”
“식사량은 당장 늘릴 수 없어.”
테슬러가 말을 받았다.
“소화 기능이 다 돌아오기도 전에 퍼먹이면 배탈 정도로 안 끝날 거야. 그래도 꾸준히 양이 늘고 있으니까 너무 걱정 마.”
힘들게 뻣뻣한 양말과 군화까지 신고 지팡이에 의지해 몸을 일으켰다. 코일이 가져온 큰 거울이 곁에 있었다.
과연 패러데이의 말이 이해될 정도로 비참한 몰골의 환자가 비쳤다.
황궁에서 지낼 때도 거울은 부담스러운 물건이었다. 테슬러를 충분히 닮지 않은 자신, 괴물이 되어버린 자신을 여과 없이 비춰주는 게 싫어 필요 최소한으로만 보았다. 플루토는 거울에서 몸을 돌렸다.
그리고 자신과는 달리 건강하고 멀쩡한 테슬러를 마주했다.
“준비 다 됐으면 나갈까?”
테슬러는 웃고 있었다.
“우와아~ 진짜 바다다~”
바솔트와 페비, 브리즈, 그 외 모두들 끝없이 펼쳐진 파란 물과 백사장을 보고 입이 딱 벌어졌다.
“수영복을 챙겼어야 했는데.”
아쉬운 듯 중얼거리던 패러데이가 결국 신발 벗고 셔츠와 바지를 한계까지 걷어올린 다음 바닷물에 걸어들어갔다. 그걸 본 다른 병사들도 똑같이 따라했다.
“테슬러 넌 안 들어가?”
기관총 내려놓고 신발과 양말을 벗던 코일이 물었다. 테슬러는 장갑 벗은 손으로 모래만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모래성이라도 쌓게?”
“그것도 재미있겠지만 지금 유체역학에 대해 생각하고 있어. 모래알 하나하나는 분명 고체인데 모래밭 위에서 움직일 때는 유체역학을 적용해야 하는 거......”
“어려운 얘기 그만 하고!”
코일이 테슬러의 팔을 잡아당겼다.
“모래는 사막에도 잔뜩 있잖아. 바닷물이 진짜 짠가 궁금하지 않아?”
“어, 알았어. 알았어. 내 발로 간다.”
코일에게 끌려가던 테슬러가 문득 플루토를 보고 말했다.
“참, 너는 물에 들어가면 안 돼. 상처는 다 아물었지만......”
바다에서 들려온 비명 소리가 그의 말을 끊었다. 바솔트의 비명이었다.
“총통님! 대위님! 페비 좀 구해주세요!”
“대위님이 제트 날개를 가지고 나오셔서 살았어요......”
울먹이는 바솔트 옆에는 깊은 곳까지 들어갔다가 빠져버린 페비, 그를 구하려다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같이 빠졌던 브리즈가 뻗어 있었다.
“죄송합니다. 발 닿는 데까지만 들어가려고 했는데 갑자기 깊어지니까......”
“전장의 사신 브리즈, 물속에서 사신을 보고 왔습니다아......”
“내가 바다 위를 날아 보고 싶다고 생각 안 했으면 어쩔 뻔했어.”
한숨 푹 내쉬고 가슴을 쓸어내리는 코일 곁에서 테슬러가 상어이빨을 바드득 갈았다.
“제군들......제군들이 왜 이 몸의 개들인지 아나?”
“예? 그야...... 열차에 탔으니까요?”
페비가 부르르 떨며 대답했다.
“열차에 탄 이상 총통님 명령을 들어야 해서?”
“어제까지는 그게 정답이었는데 오늘부로 바뀌었어. 정답은, 제군들의 지성과 두뇌가 개만도 못해서다! 그렇게 커다란 쇳덩이를 몸에 달고서 물에 기어들어가? 그것도 바닷물에?”
“히익!”
페비가 쪼그라들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