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Text
사막에 많은 도시들이 흩어져 있지만, 대개는 그저 오아시스나 운좋게 살 만한 자연이 남아있는 장소에 꾸역꾸역 인간들이 모여 사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연구도시만 예외였다. 환경오염과 기상이변, 그에 따른 모든 재난에도 연구도시는 여전히 기술을 발전시키고 식량을 생산하고 인구를 유지했다. 그 기술 발전의 혜택을 주변 도시에 나눠주기까지 했다.
물론 그 대가는 비쌌지만.
“연구도시의 기술이 우릴 먹여살린다고? 웃기지 말라고 해라!”
니켈 쿠페르의 할머니는 연구도시 말도 꺼내지 못하게 하셨다.
“그놈들 때문에 우리 도시는 도시가 아니라 농장이 되어버렸어. 연구도시에 식량 공급하는 노예 농장 말이다!”
할머니 말씀에도 일리는 있었다. 여기서 농부 이외의 다른 직업을 가지려면 축복받은 부잣집에 태어나거나 연구도시로 일찍 떠나는 수밖에 없으니까.
식량 증산을 위해 도시의 지배층들은 연구도시의 선진 농업기술자들을 초빙했고, 그 빚을 갚기 위해 가용면적의 대부분을 농지로 만들어야 했다. 학교에서도 충분한 농업 인구를 키워야 한다는 이유로 다른 학문은 기초 이상 가르치지도 않았다.
그래서 니켈은 연구도시행을 결심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자 곧바로 단칸방과 거기 있던 모든 살림살이를 정리했다. 장례 비용을 대고 남은 돈을 전부 털어 연구도시행 열차표를 샀다. 연구도시행 표는 다른 도시행 표 열 장보다도 더 비싸서 그렇게라도 구한 건 엄청난 행운이었다.
미어터질 듯 사람이 들어찬 열차에 몸을 싣고, 소매치기와 불량배, 악덕 차장에게 시달리며 그렇게 연구도시에 도착했다.
처음엔 천국에 온 기분이었다. 거리는 깨끗하고 치안도 좋았다. 수도와 전기가 너무 싸서 공짜나 다름없었다. 이민 정책도 관대해서 니켈처럼 무작정 몸만 온 청소년도 금방 학교에 다닐 수 있었다.
하지만 학교는 따분했다. 기초적인 학문은 이미 충분히 배웠는데 여기서도 똑같이 가르쳤다. 농업, 기술 비중이 크게 줄고 대신 자연과학을 많이 배울 수 있는 건 좋았지만 그것도 오래지 않아 이상하게 느껴졌다.
“어떤 점이 그렇게 이상했는데?”
교수님의 목소리는 부드러웠지만 니켈은 아차 싶었다.
‘시시했다고 말했어야 했는데.’
자연과학만 들이파고 싶은데, 그럴 만한 성적도 되는데 인성 함양이니 뭐니 하면서 윤리나 철학까지 가르치는 게 시시했다고 말해왔다. 아니면 그냥 대학 등록금 낼 돈이 없었다고.
이상했다고 말해버리면 이렇게 어디가 이상했는지 설명해야 하고, 그러면 이상한 건 너라는 소리만 들었다.
“솔직하게 말해 줘.”
페터 헤르츠 교수님은 인격자로 소문난 분이지만 그러니까 더욱 이분께는 싫은 소리 듣고 싶지 않았다.
적당히, 당돌한 자퇴생의 오기 정도로 얼버무릴 수 있는 대답을 지금이라도 만들어내려는 순간 교수님과 다시 눈이 마주쳤다.
그 아름다운 파란 눈과 마주하는 순간 모든 핑계, 변명이 다 뇌리에서 사라졌다.
“이상했어요.”
바짝 말라버린 입술을 축이지도 못하고 대답했다.
“연구도시의 과학기술은 제 고향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발전해 있어요. 저처럼 평범한 민간인도 접할 수 있는 상용화된 기술만 봐도 그 정도이니 최신 기술은 어느 정도일까요.”
“그래.”
“그런데 학교에서 가르치는 건 고향에서 배웠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아요. 고등학교에서까지 그런 건 역시 이상하다고 생각합니다.”
헤르츠 교수님은 네가 과민한 거라고 하지 않았다. 고교 중퇴 주제에 교육이 뭔지는 아냐고 비웃지도 않았다.
진중한 얼굴로 니켈을 살펴보다가 떠보는 듯한 질문 하나를 던질 뿐이었다.
“수준 차이는 대학에서부터 벌어질 거라는 가설은 세워보지 않았어?”
“제가 대학 등록금을 낼 수 있는 형편이었다면 그 가설을 검증할 여유도 있었을 거예요.”
모든 것이 풍족한 연구도시지만 부동산만은 말도 안 되게 비쌌다. 셋방살이라도 유지하려면 돈을 벌어야 했다.
“그래. 내가 무신경한 질문을 했구나.”
헤르츠 교수님은 어두운 표정이 되어 자신의 책상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이 책들만으론 정말 연구도시의 대학교들이 그 수준에 맞는 고급 교육을 시켜준다고 믿기도 어려웠겠지?”
니켈은 어깨를 움츠리면서도 꿋꿋하게 입을 열었다.
“솔직히, 그렇습니다. 연구실의 책들을 허락 없이 손댄 건 정말 죄송합니다만 교수님 같은 분께 저런 책들이 필요하긴 한가요?”
이러니 자신이 어딜 가서든 건방지다는 소릴 듣는 것이다. 후회하는 한편으로도 니켈은 헤르츠가 어떤 대답을 할지 내심 기대했다.
“과연, 거기까지 생각이 미쳤단 말이지?”
헤르츠 교수님은 어쩐지 재미있어 하는 듯 밝은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책 한 권을 끌어당겨 펼쳤다.
“그렇다면 너도 이 책들의 수준을 파악할 만큼의 실력은 된다는 거겠지? 질문 몇 가지 해볼게. 네가 가르쳐주는 사람 없이 무작정 읽기만 했다는 점은 고려할 테니 너무 걱정 말고 아는 대로 답해봐.”
그리고 곧장 질문이 시작되었다. 책에서 다룬 이론이나 개념을 설명하게 시키기도 하고 즉석에서 계산 문제를 내주며 풀어보게 시키기도 했다.
처음엔 자신 있었는데, 세 번째 질문쯤부터 모르는 부분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계산도 틀린 것 같은데 검산할 기회도 주지 않고 다음 문제로 넘어갔다.
“......그래. 대충 네 수준은 알겠다.”
헤르츠 교수님의 표정을 확인하기 무서워 고개를 들지 못했다. 목소리는 여전히 온화하지만......
“공부 계속 하고 싶어?”
“예?”
놀라서 고개를 들자 평소대로 웃고 있는 아름다운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아니, 어딘가 다르다. 어떻게 다른지 생각해볼 틈도 없이 그의 파란 눈동자만 빨려든 듯 바라보았다.
스크린으로만 본 바다가 저런 선명한 파란 빛이었다.
“계속 공부하고 싶으니까 내 책을 읽은 거겠지. 혹시 내 조수로 일할 생각 없어?”
“예? 조수요?”
“그래. 내 재량으로 고용하는 거니까 자격 같은 건 필요 없어. 월급도 청소 알바보단 많이 나올 거야.”
그런데 일도 청소 쪽이 차라리 더 편할지도......라는 뒷말은 제대로 들리지도 않았다.
“진심이세요?”
농담이 아니었다. 헤르츠 교수는 정말로 니켈의 명찰을 연구실 관계자용으로 바꾸어 주고 새 노동계약서도 작성해 주었다.
“제대로 조수 일을 할 수 있으려면 일단 배워야 할 게 많아.”
연구실 한쪽에 니켈의 책상을 마련해주며 교수님이 생긋 웃었다.
“필요한 기초 지식은 내가 틈틈이 가르쳐 줄게. 그동안은 네 공부에 집중하고, 조수 일은 그냥 잔심부름만 해주면 돼.”
“그래도 돼요? 수습기간이라고 월급 더 적게 받는 것도 아닌데.”
믿어지지 않는 특혜에 니켈이 손사래를 쳤으나 교수님은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니켈, 넌 충분히 재능이 있어. 너 같은 인재가 공부를 계속하지 못하고 고등학교를 중퇴한 건 연구도시의 손실이자 실패야.”
기대를 넘어서는 칭찬을 아무렇지도 않게 했다.
“그러니 네 재능을 꽃피울 수 있게 내가 도와줄게. 훌륭한 연구자가 되어서 연구도시의 앞날에 기여하게 된다면 나는 그것으로 충분해.”
“교수님......”
이건 꿈이 아닐까.
“헤르츠 교수님~”
벌컥 문 열리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 들어왔다.
목소리만 들어도 누가 들어온 건지 알 수 있었다. 니켈은 마른침을 삼키고 몸을 돌렸다.
불로불사인지 뭔지, 별 허황된 연구를 한다는 대학의 괴짜. 아니 연구도시의 괴짜.
더스티 고드윈은 겉보기엔 그렇게까지 이상한 놈이 아니었다. 털털하고 패션 감각 없는 연구원 정도는 대학에 얼마든지 있으니까. 타고난 절세미인이면서 언제나 깔끔하고 옷도 어울리게 입을 줄 아는 헤르츠 쪽이 특이한 거였다.
그러나 가운에 때가 절도록 매진하는 연구가 질병 치료나 뭐 그런 건설적인 게 아니고 불로불사라고 하면 아무리 멋모르는 알바생이라고 해도 뒷걸음질 치는 게 당연했다.
“안녕, 디스티. 오늘은 소개할 사람이 있어.”
헤르츠 교수님은 그에게도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다가갔다.
“우리 연구실에 새로 들어온 조수 니켈 쿠페르야. 친하게 지내.”
“조수?”
니켈은 일단 더스티에게 얌전히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고드윈 조교님. 니켈이라고 합니다.”
더스티 고드윈 조교가 헤르츠 교수님을 짝사랑한다는 건 교수님만 빼고 대학의 모두가 아는 사실이었다. 다른 사람이 교수님 근처만 가도 견제한다는 소문도 있었다.
“그래, 니켈.”
덩치 큰 조교가 미소지었다.
“그렇게 부르니까 너무 딱딱하다. 너도 그냥 디스티라고 불러.”
그 미소는 소문과 다르게 밝고 자상했다.
니켈을 보내고 더스티는 미소가 사라진 얼굴로 헤르츠를 마주했다.
“갑자기 청소 알바를 조수로 삼다니 무슨 생각이야? 설마 너도......”
“그럴 리 있겠어!”
헤르츠가 정색했다.
“네가 불로불사를, 금기를 연구하고 있지만 인신공양은 손대지 않았지. 그런 점에서 난 네가 학회의 다른 누구보다 윤리적이라고 생각해. 그렇게 생각해온 내가 제물로 쓰려고 조수를 들였겠어?”
“아니, 아니겠지. 미안......”
더스티가 큼큼 헛기침을 하고 표정을 폈다.
“죄송합니다, 교수님. 그런 심한 오해를 해버려서요. 하지만 저 나이에 이민 온 고아라니, 어느 날 소리소문 없이 사라져도 아무도......아, 그래서군요. 다른 연구자 놈들이 손대지 못하게 보호하려고.”
“그 말도 맞아.”
헤르츠가 담담하게 긍정했다.
“하지만 니켈에게 재능이 있는 것도 사실이야. 영리하고 학구열도 대단해. 일반적인 고등 학문을 다 가르치고 나면 ‘진짜 연구’에 참여시키는 것도 생각해보고 있어.”
“벌써 거기까지......”
더스티의 눈이 다시 커졌다.
연구도시의 독보적인 번영을 떠받치는 진짜 연구.
평범한 자연과학 수준은 다른 도시들이나 비슷한 이 곳에서 기적과도 같은 풍요를 생산해내는 진짜 학문.
“알잖아, 디스티. 연구도시도 이제 나태해지고 구태의연하게 정체해 가는 걸.”
헤르츠가 착잡한 얼굴을 했다.
“대륙 전체가 사막화 될 때 연구도시가 금지된 비술에 손을 댄 건 사람들을 살리고 문명을 수호하기 위해서였어. 그래서 그런 괴이한 술수를 쓰면서도 인간을 직접 해치는 방식은 최대한 배제하고 정 안 되면 연구자들 스스로가 희생했지. 그렇게 시작한 도시가, 이젠 다른 도시들을 착취하고 사리사욕을 위해 약자들을 희생하고 있어. 그러면서 겉으로는 여전히 인명 희생이 금기라고 하지. 그저 새로운 기술을 개발해내지 않을 핑계가 필요해서.”
더스티는 침묵으로 동의했다.
자신이 불로불사를 연구하지만, 어디까지나 DNA 변이와 정교한 주문을 통해 시도하고 있을 뿐 다른 생명을 희생시키는 방식은 고려하지도 않았다.
다른 생명 - 그것이 인간이든 동물이든 - 을 죽여야만 얻을 수 있는 생명 연장이라면, 그것이 고기를 먹어 생명을 유지하는 보통의 식사와 뭐가 다른가.
자신이 헤르츠에게 선사하고 싶은 것은 그런 평범한 것이 아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진짜 기적이지.
학회의 위선자들은 그저 착한 척이 하고 싶어서 불로불사는 금기라고 떠들고 있지만, 그렇다면 학회장은 어떻게 70세가 넘어서도 갓 서른 같은 외모를 유지하고 있는가? 부회장이 회장의 은퇴를 기다리는 대신 뒤에서 온갖 술수를 부리는 것도 이쯤되면 응원하고 싶어질 정도다. 비록 부회장이 제 나이만큼 늙은 것은 그가 회장의 드레인 주문을 훔치는 데 실패해서일 뿐이기는 하지만.
“연구도시엔 혁신이 필요해. 그래서 난 너 같은 진짜 천재에게 기대를 거는 거야.”
헤르츠가 힘주어 말했다.
“그리고 우리의 연구를 뒷받침해주고, 나아가 계승해줄 젊은 인재도 필요하고. 학회의 위선에 물들지 않은. 니켈이 그런 인재이길 기대하고 있어.”
“헤르츠.”
미묘한 예감이 드는 걸 떨쳐버리려고 더스티가 웃었다.
“니켈을 젊은 인재라고 하니까 꼭 우리는 폭삭 늙은 것 같잖아. 우리도 아직 이십대라고.”
“하하, 그런가?”
헤르츠도 따라 웃었다. 힘없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