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ions

Work Header

Rating:
Archive Warning:
Fandom:
Characters:
Additional Tags:
Language:
한국어
Series:
Part 1 of 가족이 아님
Stats:
Published:
2024-04-17
Completed:
2024-04-19
Words:
3,239
Chapters:
3/3
Kudos:
3
Hits:
62

형제들

Summary:

백목련 외전의 스포일러 캐릭터 생존 if입니다.

Chapter 1

Notes:

(See the end of the chapter for notes.)

Chapter Text

열차가 다음에 도착한 곳은 원래 변방이라 제국군도 거의 없는 시골 마을이었다.
그런데 최근 또다시 식민지가 늘어나면서 중간 기착지로 적당한 장소가 되어버렸고, 새 역이 생긴다 관청이 생긴다 한창 시끌벅적해졌다. 물론 거리에 제국군도 늘어났다.
이런 곳에서도 항상 먼저 튀어나가 버리는 테슬러를 놓치지 않기 위해, 이번에 코일은 아예 테슬러의 손을 잡은 채 열차에서 내렸다.
호젓하던 시골에 갑자기 공사판이 여기저기 벌어지니 외지인이 많이 몰려들어 두 사람의 존재감은 완전히 묻혀버렸다. 그래도 두 반란군에게는 입맛 쓴 변화였다.
“그놈은 하루라도 전쟁을 안 하면 입에 가시가 돋나.”
시장을 구경하며 코일이 투덜거렸다.
“우리랑 싸우기도 바쁜 줄 알았는데 말이야.”
“그렇게 한가하다면 우리가 더 바쁘게 만들어 줘야지.”
테슬러가 코일을 다독였다.
“새 식민지에서 끌려오는 포로들, 약탈한 전리품들이 이곳의 새 기차역을 지나게 될 거야. 이번에 정보를 최대한 모아야 해.”
갓 번화해진 특색 없는 시골 장터는 토박이들이 파는 농산물과 외지에서 흘러들어온 잡다한 물건들이 뒤섞여 있었다. 물론 음식 노점들도 길게 늘어섰다.
혹시 진디캔디 파는 곳이 있을까 둘러보던 코일의 눈에 요란한 간판 하나가 들어왔다.
[도전 메뉴! 울트라 매운맛 꼬치 하나를 이 자리에서 다 먹으면 꼬치 두 개가 공짜!]
“울트라 매운맛......”
코일이 멈춰서자 테슬러도 코일이 뭘 보고 있는지 눈치챘다.
“해보게? 엄청나게 매울 것 같은데?”
“성공하면 두 개 공짜라잖아.”
커다란 간판 아래 좀 더 작은 크기로 메뉴판이 있었다. [*울트라 매운맛!*], [매운맛], [중간맛], [달콤한 맛]이라고 적혀있고 가격은 다 같았다.
“달콤한 맛 둘을 따내고 싶은 거야?”
“응.”
“하지만 저 아래 ‘물이나 우유를 마시면 반칙!’, ‘도중에 울면 탈락!’이라고 적혀있는데 정말 할 수 있겠어?”
“안 울어! 내가 겨우 매워서 우는 애 같아?”
말리려고 했는데 도리어 부추겨 버렸다. 코일은 씩씩하게 꼬치 노점으로 갔다.
“울트라 매운맛 하나 주세요!”
“오, 용감한 꼬마 손님이군요!”
노점 주인이 싱글벙글 웃으며 꼬치 값부터 받고는 매운맛 꼬치 하나를 집어들었다. 그리고 구석의 빨간 양념통 뚜껑을 열었다. 거기서 풍겨나오는 톡 쏘는 공기에 코일도 얼굴이 굳었다.
시뻘건 양념을 두 겹 바르고 그릴에 한 차례 꼬치를 데우자 매운 향이 확 솟았다.
테슬러는 돈 잃어버린 셈 치고 그냥 가자고 하고 싶었다. 그러나 코일은 떨리는 손으로도 기어이 꼬치를 받아들어 앙 물었다.
“괜찮아?”
“으응...... 맵긴 한데 그래도 먹을 만 해.”
말과는 달리 첫 번째 조각을 다 씹어 삼킨 코일의 얼굴이 벌써 한껏 찡그려져 있었다. 그래도 굴하지 않고 두 번째 조각을 입에 넣었다.
“코일, 무리하지 말고......”
테슬러는 이미 가까운 곳에 우유나 음료수 파는 곳은 없는지 둘러보고 있었다. 마침 바로 맞은편에 아이스크림 노점이 있었다.
“괜찮다니까아, 아......에페페!”
결국 두 번째를 삼키는 대신 뱉어버린 코일이 와앙 울음을 터뜨렸다.
“너무해애, 이게 사람이 먹을 수 있는 거야?”
혀가 얼얼한지 발음 새는 소리로 우는 코일을 토닥이며 테슬러가 아이스크림 노점으로 이끌었다. 먼저 온 손님에게 수북한 콘을 내미는 아이스크림 노점 주인도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으로 웃고 있었다.
그런데 주문을 하기도 전에 그 손님이 받아든 콘을 코일에게 내밀었다.
“많이 매울 텐데 이거 먹어요. 아저씨가 사주는 거예요.”
“에?”
아이스크림 콘을 받아들며 코일이 눈물 맺힌 눈으로 그 아저씨를 쳐다보았다.
40대 초중반쯤 되어 보이는 온화한 인상의 남자였다. 벌써 새치가 났는지 희끗희끗한 흑발이나 허름한 작업복이 얼핏 평범한 노동자 같았지만, 그렇게 단정짓기엔 어딘가 위화감이 느껴졌다. 이런 시골에서 보기 힘든 단정한 외모와 세련된 몸가짐이 눈에 띄었다.
아이스크림을 덥석 무는 대신 코일이 빤히 보고만 있자 그가 머리를 긁적였다.
“그냥, 두 사람 사이 좋은 모습을 보니까 옛날 생각이 나서요. 형제지간인가요?”
테슬러는 잠시 머뭇거렸다.
만약 ‘가족인가요?’라는 질문을 받았다면 당연하게도 ‘그래, 맞아.’라고 답했을 것이다.
그런데 자신과 코일이 형제인가?
빈민가에서 같이 뛰어놀 때부터 반란군을 결성하고 총통과 대위가 된 지금까지, 코일이 가족이 아니라고 생각한 순간은 찰나도 없었다. 세뇌되었던 동안엔 존재 자체를 잊었기에 생각할 수도 없었다.
‘가족’이외의 다른 이름이 필요하다고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 뜻을 함께하고 서로 보살피는 것으로 충분하니까.
굳이 따지자면 나이 차를 고려할 때 ‘형제’가 가장 어울리겠지만...... 그 단어가 주는 거부감이 뚜렷하게 치고 올라와 입을 열지 못하게 했다.
침묵이 길어지자 남자가 당황한 듯 손을 내저었다.
“실례되는 질문이었군요. 죄송합니다. 아무튼 아이스크림은 나쁜 뜻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냥,”
“거기들 계셨군요~!”
디스티의 고성이 말을 끊었다.
테슬러와 코일은 잠시 이대로 도망치고 싶은 기분으로 눈빛을 교환했다. 그러나 이 시장통에서, 그것도 남과 이야기하다 말고 도망치면 디스티의 그 패션보다도 더 눈에 띌 게 뻔했다.
“또 저만 빼놓고 둘만 가다니, 진짜 너무해요!”
역시나 또 그 화려한 드레스로 치장한 디스티가 전속력으로 달려와 그들 사이에 끼어들었다. 화려한 레이스와 롤머리를 보며 그 온화한 인상의 남자도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 사람은 대체......”
전력 질주 끝에 헉헉거리는 디스티를 테슬러가 서둘러 잡아끌었다.
“모르는 사람, 아니, 일행은 아닌 게 아니고...... 아무튼 우리가 챙겨갈 테니 신경 쓰지 마. 아이스크림 고마워. 잘 먹을게.”
거의 숨도 쉬지 않고 다다다 말한 테슬러 곁에서 코일도 같이 끄덕였다.
“응, 이건 신경 쓰지 마. 우리 갈게.”
그런데 디스티가 끌려오지 않았다. 그 자리에 버티고 서더니, 남자의 당황한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왜 또 이래?”
또 한 대 갈겨야 하나 코일이 주먹을 움켜쥐는 동안 디스티의 눈이 크게 뜨였다.
마치 그 눈빛이 반사된 것처럼 상대도 눈이 커지고,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졌다. 그리고 곧바로 돌아서서 달렸다.
“잡아요!”
디스티의 새된 목소리를 다 듣기도 전에 테슬러가 코일에게 눈짓했다.

 

혼자 울고 있던 그 작은 소년은 나와 같은 백발이었다.
어머니 돌아가신 후로도 몇 번이나 갈아치워진 황후의 아이. 가족이기에 더 꺼림칙한 관계임은 잘 알지만 도저히 지나칠 수 없었던 건 그래서였다.
누구든 단 한 명이라도 나를 돌아봐 주고 달래주었으면 하던 시절이 내게도 있었으니까.
같은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형제, 자르곤에게도 그렇게 해주려 노력했지만 그때는 나도 아직 어리고 서툴러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
그래도 나이를 헛먹지는 않았는지 클라프로트는 금방 다시 웃게 해줄 수 있었다.
내게 마음을 열고 내민 손을 잡아준 그 아이가, 그걸 후회하지 않게 해주고 싶어졌다.
정략적인 고려 같은 것은 하지 않았다. 두려움에 굴복해 신경질적으로 자라버린 자르곤과 달리 다정하고 그릇이 큰 사람으로 자라는 것, 그것만이 그 아이에게 바란 유일한 소원이었다.
그런데 어디서부터 잘못되었을까.
그날 말에 태우지 않았으면 괜찮았을까?
아버지가 늙고 돌아가실 때까지, 세 형제 모두 한 치의 빈틈도 보이지 않고 살아남는 것이 가능했을까?
시찰지의 숙소에서 독배를 받고 잠시 아무 생각도 하지 못했다.
마시면 죽을 것이 그토록 확연하거늘 눈앞에서 치울 엄두가 나지 않았다. 제국의 황태자라는 위인이.
‘결국 나도 내가 바란 만큼 강한 사람은 못 되었구나.’
자조하며 독배를 집으려는 순간 구원의 손길이 다가왔다.
이런 때까지 나를 따라주리라 기대해본 적은 없던 시종들이 가짜 시체까지 준비해놓고 살 길을 보여주었다. 아버지의 심복인 줄만 알았던 교사도 못 본 척 해주었다.
그렇게 두 번째 인생이 시작되었다.
먹을 것은 못 구해도 검정 염색약은 꼭꼭 사고 눈에 안 띄는 시골구석만 골라 떠도는 인생에는 생각보다 금방 적응했다.
그러는 동안 신문에는 자르곤의 황태자 책봉 소식이 실리고, 채 일 년도 되지 않아 서거 소식도 실렸다. 놀라지 않았다.
클라프로트가 황태자가 되었을 때는 ‘생각보다 늦었네’라는 감상만 들었다.
당연한 수순으로 황제 즉위 소식이 들려왔을 때 역시, 아버지가 공식 발표대로 노환으로 돌아가신 게 아니라고 자연스럽게 깨달았다. 자식을 당신과 꼭 닮게 키워낸 대가를 마침내 치르셨다고.
그리고 클라프로트는 아버지보다 더 많은 전쟁을 벌였다. 더 많은 사람들이 죽어갔다.
불만을 누르기 위해 식민지를 수탈한 부를 선심 쓰듯 뿌리는 한편 반란은 무자비하게 진압했다.
전 같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입소문을 탈 정도로 강성한 반란군이 테슬러 열차밖에 안 남았을 때쯤엔 내심 그들이 끝까지 살아남기를 바라게 되었다.
“총통 테슬러는 이가 상어처럼 삐죽빼죽해서 아주 무시무시하게 생겼대.”
“또 어디서 이상한 소리 주워듣고 왔구만. 머리에 뿔도 났다고 하지 그래?”
식당 손님들이 수군대는 소리를 들으며 음식을 날랐다.
계속 옮겨다녀야 하니 안정된 직업을 가질 수 없었다.
이 마을에선 그래도 오래 있을 줄 알았건만, 하필 새 역과 관청이 들어서게 되었다. 곧 제국군도 들어차고 불순분자도 색출하게 될 것이다.
“손님들, 음식 나왔습니다.”
반란군 총통이 요새를 다 씹어먹어 버리더란 소릴 늘어놓는 손님들 앞에 쟁반을 내려놓고 나직이 덧붙였다.
“이제 그런 소리 함부로 하면 위험해요. 여기도 곧 군인들이 들어찬 마을이 될 겁니다.”
손님들의 입맛을 싹 걷어간 종업원이 되어버렸지만 이제까지처럼 자유롭고 한가한 시골이 아니게 되었으니 어쩔 수 없다. 말 몇 마디 잘못 했다가 험한 꼴 보는 사람은 한 명이라도 줄이고 싶다.
오늘은 점심때까지만 일하겠다고 한 날이었다. 이사를 결심했으니 정리하고 처분할 게 많았다.
얼마 안 되는 살림을 고물상에 처분하고 시장통을 마지막으로 거닐었다. 염색약도 지금 사 둬야 했다.
어렸을 적엔 황실 특유의 백발을 자랑스러워해야 한다고 배웠다. 지금은 염색이 쉽다는 것이 유일한 장점으로 느껴졌다.
“울트라 매운맛 하나 주세요!”
소년의 기세 좋은 목소리가 어디선가 들려왔다.

Notes:

외전 본문에선 명확한 언급이 없지만, 클라프로트와 세레스는 약 열 살 정도 터울이라고 가정해서 썼습니다.
자르곤이 세레스의 친동생이라는 언급은 외전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