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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tegory:
Fandom:
Relationship:
Characters:
Language:
한국어
Series:
Part 1 of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
Stats:
Published:
2024-06-25
Words:
2,230
Chapters:
1/1
Kudos:
5
Hits:
45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 -1

Summary:

·레드호크
·3막이 막 시작하고 메릴 개인 퀘스트를 끝난 시점입니다.
- 2막 성기사 도움, 키퍼 사망, 부족 몰살 배경

메릴이 거의 안나오는 메릴호크

(경)좀 구질 구질함(고)

Work Text:

계속 비슷비슷한 장면이 반복되지. 그들은 욕망의 악마도 무엇도 아니야. 단지 날 괴롭히려는 내 기억의 문제지.

그 꿈에서는 어머니가 등장해. 어머니가 그렇게 돌아가신 건 몇 년이나 지났는데도. 손에 만져졌던 피가 흐르지 않는 차갑던 육체만큼이나 생생하게 목소리가 들려. 어머니의 것 같지 않았던 그 목소리가 말이야.

그런데 내용은 전혀 기억나지 않아. 그때의 기억이 벌써 희미해진 탓일까? 분명 분노했던 건 맞지만 이미 복수는 끝났어. 지난 일이라고.

꿈에서, 기억나지 않는 어느 순간 잠에서 깨면… 다시 잠들 수 없어. 다시 잠든다 해도 계속 반복되지. 다시 꾸는 꿈에선 베서니가 나오기도 하고 카버가 나오기도 해. 전부 다 나에게 안겨서 죽어. 그 끔찍한 모습으로.

“오늘도 그래서 찾아온 건가?”

펜리스의 말에는 어떤 감정도 담기지 않은 것 같았다. 호크의 착각이든 아니든 그러했다. 엘프는 갑옷을 입고 있지 않았다. 아주 보기 힘든 모습이었다. 그건 호크도 마찬가지였었다. 지팡이도 없이 비무장 상태로 새벽에 다짜고짜 문을 두드린 건 그 자신도 놀란 일이니까.

하지만 더는 그 저택에 있을 수 없었다.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릴 것 같았다.

“너에겐 그 배교자가 있잖아.”

호크는 펜리스가 그의 행색을 보곤 말없이 준 술을 들이켰다. 도저히 맛이 느껴지지 않았지만, 냄새만은 고약했다.

‘배교자’ 호크 자신도 그러한데, 그는 마치 침대에 남겨두고 온 메릴이라는 데일리쉬 엘프 배교자와 마리안 호크라는 로더링 출신 배교자가 다른 듯 말했다. 사실 별로 다르지 않은데. 단지 호크는 자신이 마법사라고 해서 다른 마법사와 ‘연대 의식’ 같은 걸 느끼지 않는 것뿐이다.

“메릴에게는 그 일을 소화할 시간이 필요해. 내 꿈 얘기가 아니라.”

펜리스는 대꾸하지 않았다. 징징거리지 말라고, 평소처럼 쏘아붙일 수 있지만 – 보통 이런 역할은 호크가 했다. - 웬일인지 조용했다.

“배릭은 내 꿈을 이야깃거리 삼을 거고, 이사벨라는 이해하지 못할 거야. 아벨린은… 이런 상황에서 날 불안 요소라 생각할 거고. 그리고 아무리 너라도 앤더스나 크리스티안에게 가라는 말은 안 하겠지.”

“남은 게 나라는 거군.”

“맞아.”

호크는 이마를 손끝으로 문질렀다. 없던 두통이 생기는 기분이다.

그는 커크월을 구한 뒤 용사가 되었다. 소수는 그를 추켜세웠고 다수는 무서워했다. 그는 가차 없는 존재였다. 호크는 과거를 마음에 두지 않았다. 과거는 과거일 뿐. 현재를 똑바로 보는 것이 그보다 배는 중요하다. 과거에 얽매이지 말아라. 어차피 지금 네 행동이 널 만든다. 과거에 잘못이 있다면 교훈으로 삼아라. 그렇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징징거리지 말고, 투덜거리지 말고, 다른 일이 산더미인데 지나간 일을 생각할 시간이 없다.

“…그리고 내 비위를 맞춘다고 좋은 소리 하지도 않을 테고.”

이어지는 말에 펜리스는 자세를 고쳐 앉았다. 그는 분명 저택 구석에서 찾았을 좀먹은 진한 보라색의 로브를 입고 있었다.

“내가 해줄 말은 이것뿐이다. 네가 악마가 되면 내 손으로 죽여주지.”

호크는 펜리스의 말이 끝나자마자 그만 크게 웃어버렸다. 세간살이라고 할 게 없는 저택에 호크의 웃음소리가 울렸다. 펜리스는 그 웃음에 미간을 찌푸렸다.

펜리스는 전혀 모르겠지만.

지금은 깨진 엘루비안을 눈앞에 두고 호크도 같은 말을 했었다. 메릴에게. 그때는 아직 연인이 되기 전이었다. 그때는 그 말이 적절하다 생각했지만, 전혀 달랐다. 메릴에게 그런 걱정은 아주 작은 걱정이었을 텐데. 아니, 결과적으론 그랬다. 메릴에게 중요한 건 자신이 악마가 되는 것 따위가 아니었다.

“농담으로 들려서는 아니야. 네가 그런 말을 농담으로 할 리는 없지.”

“그러면 왜 웃은 거지?”

“…그냥… 예전 일이 생각나서. 요즘 내가 꿈은 그런 거랑은 달라. 차라리 악마였으면 쉽겠지. 죽이면 되니까.”

“네가 나약하다는 말은 아니었다.”

“알아.”

“그런 문제는 해결해 줄 수 없어.”
“알아.”

“세 번째야. 이런 일로 날 찾아온 게.”

호크는 손으로 얼굴을 쓸었다. 해결을 요해서 온 건 아니었다. 그저 메릴을 깨울 수 없었다. 이런 말을 할 상대는 정말로 펜리스 뿐이었다. 그는 마법사를 끔찍하게 여겼고 그의 말대로 호크가 조금의 탈선이라도 보인다면 망설임 없이 가슴을 뚫고 심장을 움켜쥘 테지만 그러했다. 그는 포장해 말하지 않았다. 특히 마법사에 관해선. 그 깊은 혐오감이 낳은 냉정함이 이럴 때 필요했다. 어쭙잖은 위로 따위 원하지 않았다.

펜리스의 얼굴은 다시 평소의 그 음울한 얼굴로 돌아왔다. 호크는 몇 모금 남지 않은 술병의 목을 잡고 빙글빙글 돌리며 액체가 찰랑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원하지 않는다면 찾아오지 않을게.”

“아니. 그런 말은 아니다. 하지만 날 찾아오는 것 이외의 해결책은 필요해 보인다.”

펜리스는 합리적인 말을 했다. 호크는 남은 술을 들이켜고 그를 보았다.

“이틀 뒤 새벽에 로타운 창고지대 쪽으로 노예상이 온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그때도 잠이 오지 않는다면 그쪽으로 와.”

대단히 펜리스적인 해결책이었다.

 


 

마레타리가 죽었다. 메릴의, 아니 부족의 어머니 같던 존재다. 엄밀히 말하자면 그는 과거의 문제로 자멸한 것이지만 메릴이 마지막 쐐기를 꽂았다. 누군가는 분명 메릴이 죽였다고 말할 사건이었다. 부족에게 메릴은 계륵 같은 존재였다. 아니 이미 그곳을 벗어나 살고 있으니 잘라버린 옹이와 같았다. 메릴은 그들에게 위험 요소였다.

마레타리는 아니었어도, 그의 부족은 자꾸만 솀렌을 데려오는 과거의 부족민을 싫어했다. 그러니 그 모든 일의 원인은 메릴이었어야 했다. 그들은 솀렌을 끼고 온 메릴과 대화할 생각이 없었다. 어떤 악마가 씌지 않았는데도 명백히 메릴을 악으로 삼았다. 그들을 지팡이를 들고, 활과 검을 들고 메릴과 그 일행을 막아섰다. 그들에게 남은 답은 하나뿐이었다. 폭력과 살육. 메릴은 직접 언젠가 대화를 나누고 식사를 함께했던 친구를 죽였다. 언젠가 치료해준 동료를 죽였다. 언젠가 같은 천막을 쓴 가족을 죽였다.

호크는 그게 무슨 의미인지 잘 몰랐다. 그에게 가족은 메릴과 같은 존재가 아니었다. 그에게 대항한다는 것은 목숨을 걸고 하는 일임을 모두가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살육에는 어느 정도의 정당성이 있었다. 어떤 감정적 동요도 없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호크는 메릴에게 ‘어쭙잖은 위로’ 같은 걸 하지 못했다. 슬퍼해도 된다고 말하지 않았다. 과거로부터 나아가라고, 그가 아는 유일한 해답을 말했다. 메릴은 받아들였다. 적어도 그렇게 보였다.

메릴은 그 대신 호크에게 부탁했다. 자신이 커크월의 엘프들을 돕고 싶다고. 메릴은 완전히 호크의 저택으로 ‘돌아온’ 것 같았지만 그건 호크의 착각이었다. 하지만 호크는 말릴 수 없었다. 말릴 자격 따위 없었다. 메릴이 그 ‘구호 활동’을 위해 호크의 재산을 쓰고 싶다고 했을 때 호크는 흔쾌히 허락했다. 심지어 앤더스에게 어떻게 일하는지 배우고 싶다고 했을 때도 메릴을 격려했다. 메릴은 낮이면 앤더스에게, 그리고 격리촌으로 향했고 저녁나절 돌아왔다. 정기적인 일처럼. 호크는 그게 메릴만의 ‘교훈’이라 생각했다.

메릴은 시시콜콜 제 일을 늘어놓고 호크의 반응을 기다렸다. 하지만 호크는 할 말이 없었다. 그건 메릴의 일이었다. 마지못해 맞장구를 쳐 주곤 했지만 애초에 호크는 그런 성정이 아니다. 아벨린은 호크에게 경고했다. 메릴의 일은 지금 너무 위험하다고. 하지만 호크는 메릴에게 말하지 않았다.

그리고 악몽을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마리안 호크를 질책하듯이.

“몇 되지 않는군.”

호크가 죽은 노예상 시체를 툭 차며 말했다. 펜리스는 노예상 우두머리의 머리채를 붙잡고 있었다. 이미 피투성이가 된 남자는 벌벌 떨고 있었다.

“누가 너에게 노예를 넘기려 한 거지?”

펜리스가 그 남자에게 물었다. 바로 죽이지 않고 취조하는 걸 보니 이편이 더 효율적이라는 걸 몇 년간의 경험으로 깨달은 게 틀림없었다. 그전까진 바로 가슴을 뚫었으니까.

호크는 등 뒤로 벌벌 떠는 노예상과 희미하게 빛나는 리륨 문신의 빛을 느끼며 부관으로 보이던 노예상의 시체를 뒤지기 시작했다.

“그, 그냥, 격리촌에서 잡아가려 했습니다.”

호크는 글씨를 휘갈긴 종이 한 장을 찾아냈다.

“흠. 퍼렐던인 같은데. 제이콥이 누군지 알아?”

호크가 쪽지를 들고 펜리스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펜리스의 인상이 험악하게 구겨졌다.

“제이콥 루피너스. 최근 자주 들리는 이름이다. 퍼렐던 출신 노예상이지.”

펜리스는 쪽지를 건네받고 붙잡힌 노예상의 눈앞에 내밀었다.

“모, 모르는 사람입니다. 정말입니다. 저, 저, 마, 마법사님이 쪽지를 찾은 남자는 어제 만났습니다. 절 도, 도와주겠….”

컥 하는 소리와 함께 남자의 심장이 펜리스의 손에 짓이겨졌다. 펜리스가 꺼낸 손에는 내장 찌꺼기와 피로 젖은 쪽지가 있었다. 호크는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손을 털어내는 그를 보았다.

“정보를 더 얻을 필요는 있었을 텐데?”

“제이콥 루피너스는 내가 개인적으로 쫓고 있다. 저 남자보단 내가 더 잘 알고 있지.”

펜리스가 방금 자신이 심장을 터트린 남자의 옷을 뒤지며 말했다. 그에게는 별다른 게 나오지 않았다. 그는 시체의 옷으로 피를 닦았다.

“격리촌에서 없어진 엘프가 한둘이 아니야. 아주 공격적이지.”

“아벨린은 알고 있나?”

“이미 조사하고 있다고 하더군. 하지만 관료주의는 느리다. 너도 알겠지만. 성기사나 마법사는 노예 문제에 신경 쓰기에는 너무 바빠 보이더군.”

호크는 높이 걸린 게 성기사 문양이 그려져 있는 깃발을 보았다. 요즘 커크월 이곳저곳에는 같은 깃발이 많았다. 쿠나리를 성공적으로 몰아낸 성기사들은 메레디스를 필두로 마법사를 더 압박했다. 호크도 용사가 아니었다면 자유롭게 다니지 못할 수준이었다. 모든 마법사는 협회로. 그것도 모자라서 다른 조처한다는 소문이 퍼지고 있었다.

그러니 호크도 몸을 사릴 필요가 있었다. 소식을 들은 배릭은 조심하라 일렀지만, 호크는 평소대로 그의 조언을 들을 생각은 없었다. 그리고 이렇게 몸을 움직이고 나니 펜리스의 해결책은 아주 훌륭했다. 눈 뜬 채 침대에서 밤을 보내기보단 몸을 움직이는 편이 나았다. 거기에 노예상을 죽이는 건 덤이다.

“오늘 일은 끝났군.” 호크가 창고지대를 지나 골목으로 들어가며 말했다. “이런 일이 있으면 또 말해. 나도 도와주지.”

펜리스가 그를 보며 대답을 망설였다. 그는 도움 따위 필요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호크도 이번 일은 예외라는 걸 알았다.

“하나보단 둘이 빠르잖아.”

호크는 효율을 가장했지만, 그도, 그리고 그의 옆에 리륨문신을 한 엘프도 그 말이 다가 아니라는 것쯤은 알았다. 그리고 왜 호크가 그 말에 숨는지도.

“좋아.”

펜리스가 대답했다.

 


 

“마리안?”

메릴이 몸을 일으키며 장갑을 끼고 있는 호크를 불렀다. 늦은 새벽이었다.

“오늘도 그 일이 있나요?”

메릴은 아직 졸음이 덕지덕지 붙은 얼굴로 간신히 눈을 뜨며 물었다.

“일어나지 않아도 돼.”

호크가 나직이 말했다. 하지만 메릴은 눈을 비비며 똑바로 앉았다.

“하지만….” 메릴은 말을 줄였다. 그 모습이 호크는 자신도 모르게 한숨 쉬었다. 할 말이 있다면 똑바로 해주길 바랐다.

“언제쯤 돌아오나요? 할 말이 있어요.”

메릴이 말했다. 호크는 ‘할 말’에 순간 가슴이 내려앉는 듯했다. 하지만 겉으로 드러내진 않았다. 그는 손을 뻗어 헝클어진 메릴의 머리칼을 정리해주고 뺨을 쓸었다.

“아침나절에는 올 거야.”

분명 메릴이 원한 답이었지만 엘프의 표정은 나아지지 않고 오히려 더 어두워졌다. 믿지 않는 눈치였다. 호크는 그때야 문득 같은 집에 살면서도 거의 나흘간 대화하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호크는 이런 상황에 대해 말하고 싶지 않았다.

메릴은 호크가 잠드는 아침나절에 저택을 나갔고 호크가 밖으로 나가는 저녁나절에 저택에 들어왔다. 호크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합리화했다. 그렇지 않으면 결국 다시 그런 꿈을 꾸게 될 테니까.

“그러지 말고 지금 말하는 건 어때?”

호크는 침대를 등진 채 무장을 마쳤다. 지팡이를 잡으려다 다시 돌아서며 말했다. 하지만 메릴은 다시 금세 잠들었고 대답은 없었다.

용 앞에서도 무서운 적은 없었지만, 호크는 문득 두려워졌다.

 


 

“이사벨라!”

새벽녘의 일은 꽤 오래 걸렸다. 펜리스와 호크는 각각 도망친 도적과 혈마법사를 쫓았고 임무를 완수한 뒤 ‘매달린 남자’에 모였다. 그때가 늦은 오후였다. 하지만 저녁으로 주문한 음식의 반은 눈앞에서 차갑게 식었고 대신 술잔이 늘어났다. 늦은 저녁 이사벨라까지 합세하니 더 시끄러워졌다.

“위키드 그레이스로 날 이기려면 더 잘해야지. 호크. 지하 가도에서 번 무한한 돈은 내가 가져갈 거야. 기대해, 자기야.”

이사벨라는 호크에게 윙크하며 눈앞의 동전을 자신 앞으로 전부 쓸어모았다. 이사벨라의 수완을 생각하면 푼돈을 모으면 푼돈이 아니라 가랑비에 못 젖는 줄 모른다고, 거금이 되었다. 하지만 그가 말했듯, 호크에겐 지하 가도에서 번 무한한 돈이 있었다. 심지어 광산에서 나오는 일정액의 수수료까지.

“배릭, 너도 껴.”

“난 이사벨라가 낀 판은 사양이야. 호크.”

호크의 얼굴을 이미 벌게져 있었고 펜리스는 그런 호크와 이사벨라를 슬쩍 보곤 패를 섞었다. 단호한 눈빛으로.

“펜리스도 계속 도전하잖아.”

그 말에 펜리스의 미간이 좁아졌다.

“어머, 펜리스는 내 호구라고.”

“이사벨라!”

펜리스가 소리쳤다.

“32전 32승 0패가 내 전적이야. 너에 관해서. 침대에서는 모르겠지만.”

이사벨라의 말에 펜리스는 휙 시선을 돌렸다. 호크는 패를 받아 든 뒤 이사벨라를 노려보았다. 펜리스는 작게 욕하며 남은 동전을 던지곤 패를 엎었다.

“벌써? 네가 섞은 패니까 핑계도 없겠지? 호크 너는?”
“이 카드놀이가 이렇게 빨리 판결 나는 놀이였나?”
배릭이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이사벨라가 가진 패를 보았지만 이사벨라는 자신의 몸쪽으로 패를 당기며 카드를 가렸다. 펜리스는 이사벨라를 한번 보곤 일어났다.

“난 그만 일어나지.”

“벌써 파산?” 이사벨라가 호크 다음으로 카드를 가져가며 말했다. “오늘 일 없지? 방 잘 치워 놓고 있어.”

이사벨라의 말에 펜리스는 화가 난 건지 부끄러운 건지 모를 얼굴로 주점을 나갔다. 배릭은 그런 엘프를 보고 낄낄 웃었다.

“나도 내일은 거래가 있어서 말이야.” 배릭이 일어서며 말했다. “호크, 들어가야 하지 않겠어? 이미 취했잖아. 더 마신다고 해서 패가 늘어나진 않아.”

“시끄러.”

호크의 신경질에 배릭이 눈을 굴렸다. 이사벨라는 배릭을 보며 호크가 듣지 못하게 입 모양으로 말했다. ‘내가 처리할게.’ 배릭은 이사벨라와 눈빛을 주고받고는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를 떠났다.

주점은 아직도 시끌벅적했고 호크가 있는 모습은 그리 놀라울 필요가 없었기에 아무도 그 둘을 신경 쓰지 않았다. 호크가 이곳에 오는 이유 중 하나였다. 여기선 아무도 그를 용사라고 특별 취급하지 않았으니까.

이사벨라는 눈으로 동전을 헤아리다 패를 내밀었다. 호크의 표정이 구겨졌다.

“그렇게 취해선 길 가던 너그한테도 질 거야.”

이사벨라가 말했다. 호크는 고개를 저었다. 눈앞이 핑그르르 도는 착각이 들었다. 이사벨라도 함께 마셨지만 아주 멀쩡했다. 이사벨라는 주머니에 자신이 딴 돈을 쓸어 넣으며 일어섰다. 그리고 패를 정리해서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호크는 그를 말리지 않고 거의 바닥난 잔을 입에 털어 넣었다.

“가자. 너한테 돈을 더 따는 건 강도질 같아서 말이야.”

“넌 도적이잖아.”

“그래. 엉뚱한 소릴 하는 거 보니 갈 때가 됐구나.”

이사벨라가 그에게 다가가 팔을 잡고 일으켰다. 호크는 신경질적으로 팔을 뿌리치고 지팡이를 잡았다. 이사벨라는 크게 한숨을 쉬며 비틀거리며 걷는 그를 따라 나갔다.

호크는 마법을 쓰지도 않을 거면서 지팡이에 의지한 채 어두워진 로타운 길을 걸었다. 이사벨라는 넘어질 듯 말 듯 하는 호크를 따라갔다.

“아니, 집으로 가야지. 집.”

이사벨라가 엉뚱한 골목으로 향하는 호크를 붙잡았다. 그때 호크가 이사벨라를 벽으로 밀쳤다.

“뭐 하는 거야?”

이사벨라가 붙잡힌 채 호크를 보았다. 얼굴만 보면 전혀 취한 것 같지 않은데, 온몸에서 술 냄새가 진동했다. 이사벨라는 호크의 뺨에 손을 올렸다.

이사벨라는 오늘 매달린 술집에 올 계획이 없었다. 오직 배릭의 부탁 때문이었다. 호크가 오후에 여길 오더니 가질 않는다. 내 말은 안들은 테니 네가 와달라는, 비밀스럽고 이상한 전언이었다. 이사벨라는 호기심에 주점으로 갔고, 상황은 자신이 생각했던 것과 조금 달랐다.

“무슨 일이야?”

펜리스와 노예상 사냥을 다닌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건 매우 매우 호크다운 일이라 이상할 게 없었다. 하지만 이건 이상한 일이지.

“아무것도.”

“아무것도 아닌데, 온종일 술을 마셔? 천하의 마리안 호크가 주문도 제대로 못 외울 상태로.”

“주문을 못 외운다니?”

호크가 그 말에 발끈하며 손짓했지만 이사벨라의 말 대로 무언가 이상했다. 눈감고도 하던 마법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머릿속이 엉켰다.

그걸 본 이사벨라의 입이 벌어졌다. 호크는 대뜸 그의 턱을 잡고 입을 맞추려 했다. 이사벨라는 고개를 돌리며 피했다.

“아니, 안돼.” 이사벨라가 순식간에 그의 손을 낚아채며 말했다.

“왜? 지난번엔 우리 집에 쳐들어와서 했잖아. 잊은 거야?”

분명 취했는데도 발음은 또렷했다. 이사벨라는 고개를 저었다. 본인 일에 관해선 강박적일 정도로 입을 닫았지만 이런 식으로 피할 줄은 전혀 몰랐다. 고주망태가 되어서 아무 여자나 잡고 휘두르려 하다니, 최악이다. 메릴이 대체 마리안 호크의 뭘 보고 사귀는지 알 수 없다고, 이사벨라는 항상 하던 생각을 다시금 했다.

혹시 재산일까? 아니 그런 순진한 아기 고양이가 그럴 리 없었다. 게다가 호크는 빨리 죽을 위인도 아니다. 시쳇더미에서도 살아남겠지.

“넌 임자가 있잖아. 난 그사이에 끼는 거 딱 질색이야.”

“네가? 언제부터?”

“오래전부터. 칼 맞을 뻔한 뒤로?”

하지만 호크는 다시 다가왔다. 입술이 가볍게 마주쳤다. 이사벨라는 그의 입맞춤을 받아주는 듯 하다 다시 고개를 돌렸다. 상처받을 메릴의 얼굴이 머릿속에 아른거렸다. 혈마법사를 배신하는 건 좋은 선택이 아니다. 친구를 배신하는 것도.

“아니, 아니, 아니. 호크.” 이사벨라가 호크의 가슴 한 가운데를 손으로 밀며 그를 지나쳤다. “메릴이 상처받을 거야. 마리안. 그만둬.”

이사벨라는 메릴의 이름이 나오자마자 굳어진 호크의 표정을 보고 놀랐다. 예상보다 뻔한 답이었다. 연애 문제. 사람 마음은 어떻게 안 된다더니. 이사벨라는 당장이라도 추궁해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불쑥 다가가면 꾹 자물쇠를 채울 게 뻔했다.

“메릴이?”

“당연하지. 네가 바람을 피우면 상처받는 건 메릴이야.” 이사벨라의 대답에 호크는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벽에 기댔다.

“메릴 때문이지?” 호크는 이사벨라의 질문에 주변을 둘러보았다. 로타운 골목은 아주 조용했고 때때로 바람 소리만 들렸다. 호크는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은 채였다.

“메릴이 날 떠날 거야. 분명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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