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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tegory:
Fandom:
Relationship:
Language:
한국어
Series:
Part 2 of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
Stats:
Published:
2024-06-26
Words:
2,677
Chapters:
1/1
Kudos:
2
Hits:
23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 -2

Work Text:

이사벨라는 호크를 하이타운까지 데려갈 수 없었다. 견갑 달린 로브를 입고 몸을 가누지 못하는 호크는 이사벨라에게는 빌어먹게 무거운 단검 같았다. 심지어 날이 다 무뎌져서 쓸모없는 녹슨 단검. 이사벨라는 결국 호크를 자신의 묵는 매달린 남자 근처 숙소로 옮겼다. 접수대의 직원은 호크를 알아보곤 잠깐 겁먹은 표정이 되었다가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꼴을 보곤 고개를 저었다.

호크는 딱 그런 존재였다. 함부로 대할 수 없고 다가가기 힘든 무서운 배교자. 하지만 직접 대하면 상상하던 이미지와는 다른 ‘인간’.

성기사들이 활개 치고 다니는 가운데 ‘쿠나리 사건’ 때문에 메레디스가 그를 봐주고 있다는 건 커크월 모두가 아는 사실이었다. 아마 그가 누구와 사적인 관계를 맺는다는 건 상상하기 힘든 일일 테다.

하지만 호크를 아는 사람들에게 호크는 전혀 달랐다. 이제 호크는 그 음울한 엘프와 잠시나마 사귀었었고 심지어 이사벨라와도 하룻밤을 보냈다. 그렇게만 보면 으레 누구든 좋은 자유분방한 마법사 같지만, 그도 아니었다. 메릴이 호크와 동거하게 된 후로 호크는 나름대로 정조를 지켰다. 이사벨라가 알기로는.

뭐, 그럴 시간조차 없었을 만큼 바쁘기도 했지만.

어쨌거나, 그 연인을 지킨다고 그 연인의 부족을 당사자와 함께 몰살할 정도면 그게 사랑이 아니고 무엇이겠나. 적어도 마리안 호크에게는. 그에게는 일반적인 기준은 어울리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이렇게 술에 취해 침대에 엎어져 있는 꼴을 보아하니 과한 평가일지도 모른다.

“지팡이는 내려 놓고 눕지 그래?”

이사벨라는 지팡이를 깔고 침대에 엎어진 호크를 보며 말했다. 영 불편해 보였다. 게다가 지팡이 끝에 달린 날 때문에 이불이 찢어질 것 같았다. 그럼 이사벨라가 물어줘야 했다.

“이건 내 무기야 몸에서 떼어 놓을 수 없어.”

호크가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헛소리. 이사벨라는 틈이 생긴 차 지팡이를 휙 빼앗아 벽에 기대두었다.

“로브도 벗고.” 이사벨라는 비척비척 일어나는 호크 앞에 서 말했다. 호크는 의외로 순순히 말에 따르는 듯 장갑 한쪽을 벗었다.

“그래. 착하지.”

이사벨라는 허리춤에 손을 얹고 호크를 감시했다. 호크는 한 대쪽 장갑을 마저 벗고 로브에 붙은 장식용 털을 떼어내고 견갑을 벗기 시작했다. 하지만 취한 탓에 계속 헛손질했다. 이사벨라는 한숨을 푹 쉬며 손을 뻗었다.

그는 메릴이 떠날 거라는 말을 끝으로 입을 꾹 닫았다. 이곳까지 오는 내내 어르고 달래도 이유는 말하지 않았다. 그 꼴을 보고 있으니 한심하게 느껴지는 동시에 걱정이 되기도 했다. 어쩌면 이미 이별을 고했을 수도 있지. 자존심에 인정을 안하는 걸지도 모르고. 호크라면 충분히 가능했다.

“메릴이 헤어지자고 했어?”

견갑이 떨어져 나갔다. 호크는 로브 매듭을 풀기 시작했다.

“아니면 다시 따로 살 쟤?”
“….”

호크는 상체만 벗고 일어서선 아래로 당겨 로브를 벗으려다가 넘어질 뻔했다. 이사벨라가 잡아주자 그를 뿌리쳤다. 하지만 중심을 잃고 그대로 넘어졌다. 이사벨라는 우스꽝스럽게 넘어진 호크를 일으켜주지 않았다. 어차피 또 뿌리칠 테니까.

“요즘 펜리스랑 붙어 다니던데.”

호크가 몸을 일으켰다. 로브 안에 입는 얇은 옷가지가 드러났다. 마주친 눈이 이글이글했다. 그건 절대 아니라는 거지.

“아니야.”

호크는 다시 침대에 앉았다. 방 안이 어두웠지만, 평소와 표정이 다르다는 걸 알 정도로 흐트러져 있었다. 뾰로통해져 보이기도 했고 화가 나 보이기도 했다.

이사벨라는 다시 입을 다문 호크를 뚫어져라 보다 한숨을 푹 쉬었다.

“정말, 맘대로 해. 말하기 싫으면 하지 마. 애초에 자기 얘길 하는 사람도 아니니. 난 펜리스한테 가보든지 할 테니까 다른 데 갈 생각 말고 여기서 자.”

호크는 여전히 말이 없었다. 잘가라는 얘기도 무엇도 없이 멍하니 앉아있었다. 이사벨라는 머리를 긁적이다 문으로 향했다.
“…어.”

그가 문을 열려는데 호크가 중얼 거렸다. 이사벨라는 바로 뒤돌았다.

“뭐?”

“떠났다고.”

“누가, 어딜. 메릴이? 어디로?”

 


 

참 어렵게 떨어진 호크의 입에서 나온 말은 한 번에 이해하기 어려웠다.

이사벨라는 메릴이 커크월 엘프들을 대상으로 구호 활동을 한다는 걸 알았다. 며칠 전 로타운을 다니다 격리촌으로 가는 메릴을 마주친 적도 있었다. 그때 메릴은 기쁜 얼굴로 호크의 도움으로 구호소를 만들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었다. 그러니 둘 사이에는 문제가 없는 줄 알았지. 하지만 호크의 말은 달랐다.

이야기의 시작은 훨씬 전으로 돌아간다. 메릴의 부족이 전부 죽고 커크월에는 흉흉한 소문이 퍼졌었다. 호크가 그들을 혈마법의 재료로 썼다는 소문. 복수심에 찬 엘프 마법사가 용사를 거짓말로 꼬드겨 부족 전체를 몰살했다는 소문. 성기사들이 그 소문에 용사를 조사한다는 얘기까지 돌았었다.

조사자체는 사실이었다. 메레디스는 쿠나리 사건 이후 호크를 호시탐탐 노렸으니까. 하지만 아벨린을 통해 들은 말로는 어떤 혈마법의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고 그걸로 마무리되었다. 메레디스가 호크를 잡기 좋은 건수였지만 결과를 조작해 잡아들일 타이밍은 아니라고 판단했음이 분명했다.

이사벨라는 그 일 이후 썬더마운틴에 있던 데일리시 엘프 부족에 대해 생각한 적이 없었다. 몰살 이후 에도 메릴에게 직접 들은 간략한 이야기가 전부였다. 그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메릴을 위로해줬고 그걸로 끝이었다. 그와 함께 한 호크에 관해서는 자신이 잘 이해 못하는 무언가가 있겠거니 했다. 언제나처럼 깔끔하게 처리했을 거라고. 좋은 일도 아니니 깊게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부족이 전부 죽은 이후 호크의 말을 빌리자면 ‘메릴은 내가 제대로 위로해 주지 못해서 메릴이 격리촌으로 갔다. 그 전부터 겉돌았다.’ 그런데도 호크는 하이타운에 있었고. 메릴은 괴로워했지만 호크가 찾아간 뒤 그 괴상한 귀신 들린 거울을 파괴했다. 그리고 메릴이 돌아왔다.

호크는 그대로 잊히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며칠 뒤 호크는 베릭을 통해 몰살이 있던 날 도시로 왔던 부족 몇 명이 다시 산으로 돌아간 걸 알게 되었다. 그 남은 부족은 어떻게 되었는지 베릭도 알지 못했다. 그보다 늦게 호크가 아닌 베릭 사실을 알게 된 메릴은 썬더마운틴으로 가려했지만 죄책감 때문에 가지 못했다. 호크도 메릴이 알게된 걸 알고 그를 만류했다.

잊으라고. 그 일을 교훈으로 삼으라며 또 한 훈계했다. 메릴은 단념한 듯 했다고, 호크가 말했다.

“그 말 때문에?”

이사벨라의 질문에 호크는 다시 입을 다물었다.

“내가 좋은 애인은 아니잖아.”

잘 아네. 이사벨라는 말을 삼켰다.

“위로해 주는 방법도 몰라. 내 해결책은 그것뿐이야. 난 항상 그랬어. 더 좋은 말은 할 줄 몰라.”

호크는 억울하다는 듯 말했다. 하지만 이사벨라는 그의 편을 들어주고 싶지 않았다.

“앤더스랑 썬더마운틴을 간 것뿐이잖아.”

“돌아온다고 쓰여있지 않았어. 내가 준 반지도 놓고 갔고.”

“반지?”

금시초문이었다. 반지를 줬다고 그 마리안 호크가? 그런 행동을 할 수 있는 사람이었나? 어쨌거나 본인은 이러나 저러나 해도 진심이었다는 거다. 그러니 그런 요망한 물건도 준거고. 이사벨라는 호크가 어떤 반지를 줬을지 잠시 상상했다. 커다란 보석이 박힌 걸 주었으려나.

“오늘 아침에 만나자고 했어. 일이 생각보다 늦게 끝나긴 했지만 잠시 들를 틈이 있어서 집으로 갔는데 기다리지 않고 그냥 떠났어. 심지어 쪽지도 없이. 보단에게 말만 전하고.”

호크는 두 손에 얼굴을 묻었다. 이사벨라는 한숨 쉬었다. 확실히 오해할만한, 아니 그렇게 추측할만한 상황이었다.

“일단, 호크. 날이 밝으면 아벨린에게 가보자. 썬더마운틴으로 향하는 두 명의 마법사라면 본 사람이 있을 거야. 아니면 찾아봐달라고 해. 그 정도는 들어주겠지. 네가 지금 움직이는 건 위험해.”
호크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부츠를 벗었다. 이사벨라는 쪽지를 보냈던 베릭을 원망했다. 차라리 키스를 받아 줄 걸 그랬나. 괜한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사벨라는 호크가 잠들 때까지 기다렸다. 그 정도는 해줄 수 있었다.

 


 

호크는 아벨린에게 큰 기대하지 않았다. 커크월의 경비대장은 메릴과 호크가 사귄다는 걸 알게 됐을 때부터, 정확히는 호크가 아니라 크리스티안과의 대화를 통해 알게 됐을 때부터 둘의 관계를 탐탁지 않게 여겼다. 그건 크리스티안도 마찬가지였었다. 신실한 청년은 예의를 가장해 드러내진 않았지만. 아벨린이 아무리 호크를 잘 안다고 해도 둘은 마법사였고 심지어 메릴은 심지어 혈마법사였다. 호크도 그 점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아벨린과 친분이 있다해도 둘은 마법사다. 그리고 메릴이 협회로 끌려가거나 성기사들이 그를 안식자로 만들지 않는 건 용사의 비호 덕이었기 때문이라는 걸.

하지만 개인 대 개인으로 아벨린은 메릴을 귀여워했다. 호크가 믿을 건 그뿐이었다. 아벨린과 아벨린에게 쿠엔틴의 일을 책망했을 때부터 거리가 좀처럼 좁혀지지 않았다. 호크는 자신이 실수했다고 생각했으나 사과하고 싶진 않았다.

제일 큰 문제는 앤더스가 끼어 있다는 사실이었다. 앤더스는 아벨린에게도 주의를 요하는 마법사였으니까. 이사벨라가 메릴 때문에 호크의 입맞춤을 거절하듯 아벨린이 메릴을 아끼는 마음으로 앤더스와의 동행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길 바랐다. 아니면 말하지 않는 편이 낫겠지. 앤더스에 관해선…. 앤더스가 최근 분명 어떤 일을 꾸미고 있다는 걸 알았지만 호크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그는 호크와 가까웠지만 딱 그 정도였다. 그가 하는 일, 앤더스가 일방적으로 호크가 마법사이기에 가지는 호감. 호크는 그 모든 게 싫었다.

“호크, 이사벨라. 오랜만이야.”
아벨린은 자신의 사무실에 앉아있는 익숙한 모습의 둘을 반갑게 맞이했다. 하지만 호크는 눈만 마주칠 뿐 굳은 얼굴로 평소처럼 인사도 하지 않았다. 이사벨라와 눈이 마주치자 이사벨라는 오늘 호크의 상태가 좋지 않다는 이유로 고개를 저었다. 그렇다고 해도 아벨린이 호크의 비위를 맞추지 않겠지만.

호크는 일어서며 마법으로 열린 사무실 문을 닫았다. 아벨린은 익숙한 듯 포기한 얼굴로 그를 보았다.

“무슨 일이 있긴 한가 봐.”

“그게….”

“날 조사했던 이후에 썬더마운틴에 간 적 있어?”

이사벨라가 조심스럽게 운을 띄우는데 호크가 끼어들었다. 잔뜩 날이 서 있었다. 아벨린을 보니 여지없었던 전날 밤의 악몽이 떠올랐다. 그에게 화풀이하듯 쿠엔틴을 빨리 잡지 못했던 일을 추궁했었다.

“무슨 말이야?”
“내가 혈마법을 썼다고 생각하고, 성기사가 썬더마운틴으로 가 엘프 시체들을 조사했잖아.”

예의 따위는 찾아볼 수도 없는 태도에 아벨린의 표정이 굳었다. 호크는 자기 행동이 비이성적이라 생각하면서도 참을 수 없었다.

“호크, 성기사가 조사한 건 나도 자세히 몰라. 그쪽 연줄이 있어서 건너 건너 들은 정도야.”

아벨린은 책상 뒤 의자에 앉았다. “성기사가 널 의심했던 건 맞아. 하지만 혈마법과 관련 없다고 결론 났어. 그걸로 끝났다고 그 때 말했잖아.”

“내가 말하는 건 그게 아니야. 그 이후에 경비대원들을 파견하거나 네가 직접 간 적이 있는지 묻는 거야. 거기 상태가 어떤지.”

“없어.” 아벨린은 단호하게 대답했다. “경비대는 커크월을 지켜. 치안과 직접 관련된 일이 아니면 데일리시 엘프의 일에는 개입하지 않아.”

“그래? 지금 배교자 둘이 함께 그곳으로 갔는데 그 건 치안 문제가 아닌가?”

이사벨라는 톡 쏘는 말투에 눈을 굴렸다. 이래서는 부탁을 할 수도 없다. 아벨린이 들어줄 리 없었다. 이 일을 공적인 일로 치부하면 아벨린이 선을 그을 게 뻔했다. 저 바보 같은 마법사.

“아벨린.” 이사벨라가 끼어들며 입을 열었다. “호크는 무슨 의-도가 있어서 한 말은 아니니까 귀에 담지 마.” 그가 아벨린의 책상으로 다가가며 말했다. 호크가 뭐라 말을 꺼내려 하자 제지했다.

“넌 좀 조용히좀 해. 니 일이 아니야. 메릴에 관한 일이잖아.” 그 말에 호크는 팔짱을 끼며 불편한 속내를 숨기려 하지 않았다. “최근에 메릴을 본 적 있어?” 이사벨라가 물었다.

“메릴? 메릴이라면 며칠 전에 로타운에 설치할 엘프 구호소 문제로 찾아왔었지. 구호소를 지켜 줄 경비대원을 요청하면서 문서를 줬었어. 구호소 운영에 관한 문서였고 검토해보겠다고 했었어.”

문서? 호크가 일어서려 하자 이사벨라가 다가와 어깨를 잡고 다시 앉혔다. “넌 도움 안 되니까 아벨린한테 화풀이할 생각이 사라지기 전까지 조용히 있어.” 이사벨라가 속삭였다. 호크는 자리를 박차고 나가고 싶었다. 이사벨라와 달리 아벨린은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았다.

“메릴이 썬더마운틴으로 간 것 같아.”

“썬더마운틴으로?”

“그래. 거기 엘프 묘지가 있잖아. 성묘하러 갔을지도 몰라. 그런데 별다른 얘기도 없이 가서 걱정하고 있어. 너도 알다시피 요즘 분위기가 너무 안 좋잖아.”

그 말에 아벨린의 시선이 호크에게 향했다.

“혹시 들은 게 없나 해서.”

“성기사단 부탁으로 경비대 쪽에서 배교자들을 보면 보고하는 게 원칙이지만 아직 들어온 보고는 없어.”

아벨린은 한껏 누그러진 태도로 말했다.

“앤더스도 같이 나갔어.” 호크가 말했다. “이 정도면 찾아볼 이유가 될까?”

날 선 태도였던 호크도 최대한 침착하게 말했다. 아벨린은 잠시 생각하는 표정이 되었다.

“앤더스는 요즘 다시 세력을 모으고 있어. 그래서 우리가 감시 중이지. 성기사단도 알 거야.”

“어떤 의도가 있어서 같이 간 건 아니야. 메릴은 그런 일에는 관심 없어.” 호크가 항변했다. “그 일이 있을 때 도시에 남아있는 부족이 있다는 얘길 들었어. 그들을 찾으려 했을지도 몰라.” 그리고 호크가 빠르게 덧붙였다. 아벨린은 잠시 침묵했다.

“왜 너와 함께 가지 않고? 앤더스와 가면 의심받을 걸 알았을 텐데.”

호크는 대답하지 않았다. 아벨린의 말은 마치 호크 자신을 탓하는 양 들렸다.

“메레디스 때문에 도시 밖을 나가는 시민들, 특히 마법사에 관해서는 전부 기록하게 되어있어. 물론 그걸 피해 갔을 확률이 높지만.” 아벨린은 호크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말했다.

“썬더 마운틴 방향에 있는 경비대원 중 입이 무거운 대원에게 말해놓고 일이 생기면 바로 연락할게. 그만 가봐도 좋아.”

아벨린은 호크를 보지도 않고 책상에 놓인 서류를 보며 사무적으로 대답했다. 이사벨라는 한시름 놓은 표정이었지만 호크는 여전히 굳은 그 표정으로 아벨린을 보며 일어섰다.

“…고마워.”

호크가 나지막이 말했다. 그러자 아벨린은 깜짝 놀라며 문이 닫힐 때까지 호크를 바라보았다.

 


 

호크는 당장 썬더마운틴으로 가고 싶었다. 하지만 이사벨라가 극구 만류했고 베릭도 마찬가지였다. ‘호크, 너까지 가면 성기사가 옳다구나 하고 널 쫓아갈 거야. 메레디스는 널 눈엣가시로 여기는데 앤더스까지 마법사 셋이 간 걸 알게 되면 작당 모의라도 하는 줄 알겠지. 그럼 모든 게 끝이야. 커크월로 정말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어.’

‘네가 용사인 건 썬더마운틴에서는 중요하지 않잖아. 메릴을 핑계로 지켜줄 엘프 부족도 거긴 없다고. 심지어 엘프 유적에는 마법의 기운이 넘쳐나지. 메레디스는 한 번의 의혹으로 널 안식자로 만들어 버릴 수도 있어. 네가 성기사를 전부 죽이지 않는 이상.’

어차피 로더링을 떠나왔다. 다른 곳으로 또 가지 못할 건 없지. 자신이나 메릴이 죽는 것보다야 낫게 느껴졌다. 호크에게 남은 건 별로 없었다. 몇 명의 동료와 복잡한 일에 휘말린 덕에 얻은 알량한 명성. 그 정도는 다른 곳에 가서도 얻을 수 있다. 오만한 생각이었지만 자신은 있었다.

“호크?”

펜리스가 그를 불렀다. 호크는 정신이 돌아온 듯 그를 보았다.

“메릴 일은 들었다. 선더마운틴으로 가는 건 어리석은 짓이야.”

“알아.”

호크는 간단하게 대답했다. 펜리스 까지 이 일에 대해 말하고 싶어 할 줄은 몰랐는데. 잊으라고나 할 줄 알았지.

새까만 새벽 호크는 어김없이 펜리스와 함께 노예상을 두 발로 찾아가고 있었다. 드디어 제이콥 루피너스와 접촉할 기회를 잡았기 때문이다. 펜리스가 손을 써두어 일이 더 쉬워졌다. 펜리스는 제이콥을 잡기 위해서라면 노예인 척 위장하는 정도는 감수 할 수 있다. 호크는 알려진 얼굴이지만 마법사란 두건을 쓰면 비슷해 보여 평범한 로브에 두건을 뒤집어썼다. 게다가 밤에 보면 그놈이 그놈처럼 보이는 게 마법사 두건이었다.

펜리스는 등에 평소에 쓰던 검보다 더 작은 숨긴 채 망토를 뒤집어쓰고 두건에 평범한 로브를 걸친 호크와 함께 다크타운 지하도로 가는 문을 열었다. 몇 번이나 맡은 익숙한 냄새가 났다. 시궁창의 악취.

“정말 여긴 변하질 않는군.”

펜리스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호크는 그의 리륨 문신이 희미하게 빛났다가 사라지는 걸 보았다.

“함정일지도 몰라.” 호크가 속삭였다.

“전부 처리하면 돼.”

펜리스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제이콥을 잡으면?”

“죽일 거다.”

“그건 당연하고. 그놈이 끝이 아니잖아.”

“다른 정보가 들어오면 그곳으로 가야지. 너도 원하는 바가 아니었나?”

펜리스가 호크를 보았다.

“맞아.”

호크가 대답했다. 멀리 인기척이 느껴졌다. 둘은 동시에 입을 다물었다. 호크는 망토 모자를 더 푹 눌러쓰는 펜리스를 보았다. 진 통로 끝 몇 번이나 보았던 큰 방이 희미한 불빛 속에 보였다. 호크는 발걸음을 재촉하지 않고 침착하게 그곳으로 향했다. 통로 바로 앞에 검사 둘이 있었다. 복장을 보아선 제이콥이 직접 부리는 부하 같았다.

당장 눈에 보이는 수는 몇 되지 않았다. 제이콥 루피너스 본인은 마법사인 뻔한 조합이다. 하지만 이곳저곳에 숨어있을 수도 있다. 노예상이 전투 인력으로 이 정도 수를 부린다는 건 매우 큰 집단이라는 증거였다. 방심하면 안 된다.

“네가 한나인가?”

“그래.” 호크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꽤 호리호리하군. 흠.”

이름만 물은 제이콥은 바로 펜리스에게 시선을 돌렸다. 주변이 어두워 그의 얼굴이 보일 리 만무했다. 그리고 ‘한나’인 호크에게 시선을 돌려 등 뒤의 지팡이를 보았다.

“꽤 좋은 지팡이인데?”

“협회 마법사는 이런 지팡이를 가지지 못해. 너도 알다시피. 자유인이니 가능한 거지.”

제이콥은 다가오지 않고 위아래로 호크를 찬찬히 훑였다. 그리고 자신의 뒤에 있는 검사와 도적을 향해 뒤돌았다.

“호크.” 펜리스가 속삭였다. “나도 알아.” 호크가 대답하며 지팡이를 잡았다. 호크는 망설임 없이 제이콥을 향해 빙결 마법을 시전했다. 하지만 그보다 빨리 제이콥은 보호막을 펼쳐 호크의 마법을 튕겨냈다. 펜리스는 망토를 풀어헤치고 검을 잡았다.

“역시 너희군.”

펜리스의 리륨 문신이 번쩍거렸다. 도약하는 기합과 함께 바로 그를 가로막은 검사와 도적들이 뒤로 넘어졌다. 제이콥은 보호막을 펼친 채 주문을 외고 있었고 호크는 그에게 달려드는 도적을 떼어내고 있었다.

예상한 것보다 숨은 도적의 수가 많았다. 호크가 화염구로 도적 셋에게 불을 붙이는데 바로 그때 제이콥의 보호막이 사라졌다. 호크는 재빨리 전격 마법으로 그를 마비 시켰다. 그를 보자마자 펜리스는 자신에게 달려드는 노예상을 뿌리치고 제이콥에게 달려갔다. 펜리스가 도착하기 직전 그는 마법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호크를 노리고 있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호크가 더 빨랐다. 그는 지팡이 끝으로 자신의 팔을 잡으려 하는 도적을 찌르곤 처음 실패했던 빙결 마법을 시전했다. 제이콥의 발이 묶였다. 펜리스가 그를 넘어트리는 동안 호크는 그를 향해 활을 쏘는 궁수를 무시하고 마비의 마법을 썼다. 제이콥과 그 주변의 움직임이 전부 멈췄다. 펜리스가 자리를 뜨는 순간 다시 화염구를 날렸다.

제이콥을 제외한 노예상은 그대로 까만 숯덩이가 되었다. 펜리스는 호크를 막으려 하는 검사들을 베어 넘기고 마법이 풀리기 시작한 제이콥에게 향했다. 제이콥이 주문을 외기 시작하자 펜리스는 그의 지팡이 잡은 팔을 그대로 베어버렸다. 제이콥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

“이 정도로 우릴 죽일 수 있으리라 생각했나.”

펜리스가 잘린 부위를 발로 꾹 밟으며 말했다. 호크는 불에 타지 않은 시체들을 살폈다.

“노예상을 사냥하는 엘프.” 제이콥이 펜리스를 보고 말했다. “너도 노예였지? 네 주인에 관해 들은 적 있어. 드네리어스라고 했나? 찾고 있지?”

펜리스가 움찔했다.

“테빈터의 매지스터 말이야.”

호크는 제이콥을 보았다. 무언가 이상했다. 팔이 잘렸는데 저렇게 떠들 수는 없었다. 그는 펜리스와 제이콥에게 다가갔다.

“드네리어스에 대해 아나?”

“날 보내 준다 약속하면 정보를 넘기지.”

펜리스는 대답대신 잘려나간 부위를 더 강하게 밟았다. 하지만 노예상은 인상만 좀 찌푸릴 뿐이었다.

“치유마법을 쓰고 있나?”

둘 옆으로 온 호크가 말했다. 제이콥의 손이 익숙한 형태를 그리고 있었다. 호크는 그 손을 툭 차곤 강하게 밟았다. 으스러지는 소리와 함께 잘린 팔에서 피가 울컥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내버려 둬도 곧 죽을 거야.”

펜리스는 잠시 고민하다 제이콥의 머리채를 잡고 위로 끌어당겼다. 호크는 그걸 확인한 뒤 으레 하던 습관대로 다시 시체를 살폈다. 저 멀리 병사의 주머니에서 떨어진 곳에서 불빛에 반짝거리는 것이 보였다. 반지였다. 그가 반지를 향해 뒤도는 동시에 펜리스는 제이콥의 가슴을 뚫었다.

“드네리어스의 정보를 가지고 있을 수 있잖아.”

“시간을 벌려는 수작이었으니 제대로 된 정보를 가지고 있을리 없어.”

펜리스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호크는 반지를 들고 불빛을 향해 비췄다. 흔한 은반지였다. 그런데 그때 커다란 그림자가 호크의 그림자와 겹쳤다. 호크가 반응하기 전 펜리스가 그의 뒤를 향해 달려들었다. 펜리스의 피 묻은 손이 호크의 뒤로 향하기 직전 그 순간 등에 짜릿한 통증을 느꼈다. 호크는 반사적으로 뒤 돌아 지팡이 끝으로 자신을 공격한 자의 숨통을 끊었다.

“이래서 확인 사살을 해야 하는 법인데.”

호크가 말했다. 칼에 찔린 건 처음이 아니었기에 놀라진 않았다. 방심한 사이에 당했다는 사실이 수치스러웠다. 호크는 등으로 손을 뻗었다. 손이 잘 닿지 않았다. 움직일 때마다 통증이 심했다.

“호크, 가만히 있어.”
펜리스가 그에게 다가가 말했다. 그런데 그의 표정이 이상했다. 처음 보는 것도 아닐 텐데 사색이 되어있었다.

“일단 앉는 게 좋겠어.”

“왜 그렇게 놀라? 처음 보는 것도 아니잖아.” 호크가 의아해하며 말하는데 순간 어지럼증을 느끼며 주저앉았다. 지팡이가 바닥으로 쓰러졌다. 펜리스는 호크의 등에 꽂힌 검을 뺐다. 붉은 피에 어두운 녹색 액체가 섞여 있었다. 분명 독액이다. 호크는 보자마자 본능적으로 치유마법을 사용했다. 하지만 그는 공격에 능했지, 치유마법은 형편없었기에 상처를 닫고 잠시 독이 퍼지는 걸 늦추는 정도밖에 되지 못했다.

“치유사에게 가야해.” 펜리스가 핏기가 사라진 호크의 얼굴을 보며 말했다. 하지만 호크는 그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앞으로 쓰러지는 호크의 몸을 펜리스가 받아 어깨에 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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