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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ndom:
Relationship:
Language:
한국어
Series:
Part 3 of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
Stats:
Published:
2024-06-26
Words:
2,075
Chapters:
1/1
Comments:
1
Kudos:
1
Hits:
28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 -完

Summary:

호크는 언제 정신을 차릴까?

Work Text:

“하필 앤더스도 없는 때에.”

베릭이 중얼거렸다. 호크를 하이타운의 집까지 데려갈 시간은 없었다. 그가 떠올린 건 매달린 남자의 베릭이었다. 이 시간이면 주점에는 아무도 없을 테니 눈을 피하기도 좋았다.

그리고 예상대로 주정뱅이 몇이 테이블 위에서 잠든 주점은 조용했다. 베릭은 호크를 보자마자 이마를 짚었다. 독이 퍼지며 열이 펄펄 끓었다. 호크는 간신이 눈을 떴다가 다시 감았다. 다시 상처가 벌어져 피가 흐르는 게 느껴졌다.

“어떤 독인지 모르잖아.”

베릭의 말에 펜리스는 허리춤에 꽂아 넣었던 검을 바닥으로 던졌다. 베릭도 활을 쏘는 도적이었지만 해독에 대해서는 잘 몰랐다. 암살자면 몰라도.

“이사벨라는?”

“이사벨라도 보기만 해서는 몰라. 치유사가 있어야 해. 최소한 해독마법을 아는 마법사가 있어야 하고. 아니면 이런 건 데일리시 엘프가 알 텐데. 지금 어느 것도 없군.”

“협회에는 있겠지.”

펜리스가 치유사를 찾아 방을 나서려 하자 베릭이 그를 붙잡았다. 다른 이도 아니고 펜리스가 마법사를 제 발로 찾는 건 그에게도 급한 상황이란 걸 보여줬지만 답은 아니었다.

“협회? 안돼. 그대로 호크를 데려가게 내버려 두려고? 내가 생각이 있어. 넌 여기서 호크를 지켜 아무도 못 건들게 해.”

호크는 둘의 대화를 들었지만 어떤 상황인지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고 통증이 시작되었다. 그가 몸을 웅크리자 더 벌어진 상처에 통증이 심해졌다. 다른 것도 아니고 다 죽인 도적 때문에 죽는다고? 간신히 붙든 정신에 호크는 얼굴도 모르는 도적을 떠올렸다.

커크월 용사가 한심하게 죽어가는 도적에게 죽을 수는 없었다. 그는 몸을 일으키려 했다. 아니 생각 했다. 하지만 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펜리스는 앓는 소리를 내며 누운 호크를 보았다. 누런 시트 위로 빨갛게 피가 번졌다. 그는 호크를 바로 눕히고 로브를 벗겼다. 등의 상처는 심하지 않았지만, 비정상적으로 피가 흘렀다.

“호크, 지혈을 할 거야. 버텨,” 그가 말했다. 호크는 대답도 반응도 하지 않았다.

이대로 죽으면 메릴이 돌아올까? 까무룩 해지는 정신 끝에 호크가 생각했다.

펜리스는 그를 옆으로 눕히고 베릭의 서랍에서 깨끗한 옷을 찾아내 강하게 누르기 시작했다. 상처가 아프다. 누워있는데도 어지럼증이 느껴졌다. 눈앞에 베릭이 놓고 간 비앙카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호크, 웃기지 마. 나도 널 오래 보아왔잖아. 메릴이 널 그리워할 리 없어. 네가 한 짓이 있는데. 넌 그 애 가족을 전부 죽였다고.

“제기랄.”

펜리스는 흠뻑 젖은 옷을 보며 작게 욕했다.

그게 메릴의 복수라면 그렇게 받아들이지. 호크는 비앙카에게 대답했다. 그리고 펜리스가 재차 욕하는 소리를 마지막으로 다시 정신을 잃었다.

 


 

머리가 아팠다. 그리고 온몸이 아프고 힘이 없다. 마치 독감에 걸렸을 때처럼. 하지만 호크는 일곱 살 이후 그런 병을 앓지 않았다. 몇 번 칼에 찔렸지만, 마법으로 해결했다. 마법으로 치료할 수 없는 상처는 매우 드물었다.

“일어나셨네요.”
호크는 간신히 눈을 떴다. 잊었던 목소리가 들렸다. 반듯하게 정리된 머리에 깍듯한 태도. 손에는 앉아 읽던 책을 들고있었다.

“다들 용사가 죽을까 걱정했습니다.”

“크리스티안.”

호크는 정신을 차리려 노력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익숙한 공간. 하이타운의 집이다. 하지만 크리스티안을 초대한 기억은 없었다. 그가 초대 없이 제 발로 올 일은 더 없었고.

“기억은 나시나요?”

호크는 무거운 팔을 들어 올려 얼굴을 쓸었다. 펜리스가 제이콥을 찾았다고 했다. 그리고. “칼에 찔렸었어.” 그가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크리스티안이 고개를 끄덕이는 게 보였다. 펜리스는? 베릭이 봤던 거 갔기도 했다. 호크가 몸을 일으키려 하자 크리스티안이 만류했다. 그가 만류하지 않아도 일어나기 힘든 지경이었지만.

“베릭이 저에게 치유사를 찾아달라 부탁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성당의 수사님께 부탁드려 성당을 돌보는 치유사를 모셨습니다. 협회 마법사를 부르지 않아도 되어 운이 좋았습니다.”

베릭이 있었던 건 착각이 아니었다.

“지금 베릭은 치유사와 대가를 협상하고 있고….”

“펜리스는?”
“…당신이 깨어나지 않자 계속 치유사를 죽이려고 해서 이사벨라와 함께 그의 집으로 가는 길일 겁니다.”

“얼마나 지났지?”
“하루 반 정도.”

크리스티안은 호크의 질문에 전부 순순히 답해주었다. 탓하는 것도 추궁도 없었다. 정확히는 호크가 겪은 일에 큰 관심이 없었다. 단지 안드라스테의 말씀을 지키기 위해서였을 테다.

메릴은? 소식이 없나? 호크는 이어지는 의문을 삼켰다. 크리스티안도 배교자를 좋아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메릴에 관한 일을 모를테니 질문을 삼켰다. 그에 대해 떠올리자 다시 기절하기 전 ‘비앙카에게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 독 때문에 잠시 정신이 나갔다. 하지만 단지 환청은 아닐지도 모른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호크는 아직 온전치 않은 머리로 생각했다. 처음부터 만나지 말았어야 했다. 메릴을 쫓아냈어야 했다. 잠깐의 온정으로 치부했어야 했다. 입안에 굴리던 사탕일 뿐이라고, 아니면 단지 순간의 치기라고.

“그만 가봐도 좋아.”

단지 생각뿐인데 그 옆의 안드라스테의 신도가 신경 쓰였다. 그에게 무어라 지성체의 윤리적 도덕적 책무에 관해 연설이라도 할 것만 같았다. 메릴이 돌아올 이유가 하나라도 있냐고 따지고 든다면 호크는 할 말이 없었다.

“치유사 말로는 반나절 정도는 침대에 누워있어야 한다고 하더군요.”

“가봐.”

하지만 크리스티안은 거부했고 호크의 말은 명령조로 바뀌었다.

“베릭이 이럴거라 말했습니다. 당신이 쓸데없는 고집을 부릴 거라고요.”

호크는 다시 몸을 일으키려 애썼다. 하지만 앉을 수도 없었다.

“독의 기운이 완전히 빠져나가려면 하루, 움직이려면 반나절 정도 있어야 한다고요. 당신이 얼마나 강하든 주께서 안배한 다 같은 인간의 몸 아니겠습니까.”

호크는 그의 말을 듣고 한숨 쉬며 다시 누웠다. 호크가 다시 조용해지자 크리스티안은 잠시 덮어두었던 책을 펼쳤다. 호크는 반대로 고개를 돌려 창을 가린 커튼만 바라보았다.

“아, 경비대장이 다녀갔는데 썬더마운틴에 연기가 올라왔다는 보고가 들어왔다고 전해달라 했습니다. 어제저녁쯤에요. 산불은 아니라고 했습니다. 무언가 모아놓고 태웠다고 하더군요. 당신에게 말하면 무슨 말인지 알거라 하셨습니다.”

호크는 대답하지 않았다. 막연히 남은 물건들을 태웠을 테지. 그리고 떠날 거라고. 커텐 뒤로는 썬더마운틴이 있다. 하루 정도 걸리는 산. 돌아오고도 남았을 시간이다. 가만히 누워있으려니 상념을 멈출 수 없었다. 그래서 무얼 하겠다는 건지. 구호소 얘기는 왜 했던 건지. 앤더스에게 모든 걸 넘기고 갔을지도 모른다. 앤더스는 돌아와야만 하는 이유가 있으니까.

“크리스티안-. 오 호크 일어났구나!”

그때 벌컥 문이 열리며 이사벨라의 목소리가 들렸다.

“치유사는 헌금 받고 나갔고 베릭은 잠깐 나갔다 다시 온다 했어. 들어오다 마주쳤거든. 호크. 네 돈으로 지급했는데 이의 없지? 네가 성가회를 싫어하는 거 알지만.”

이사벨라는 크리스티안과 호크를 번갈아 보고 말했다.

“그럼 전 오늘 오후 미사에 참석해야 해서.” 크리스티안은 기다렸다는 듯 일어섰다. “세라 호크, 건강 잘 챙기시길 바랍니다. 이사벨라, 다음에 뵙지요.” 그리곤 격식 차려 인사하곤 바로 나갔다.

“크리스티안이 도와준 게 어디야.” 그가 나가자마자 이사벨라가 말했다.

“네가 저 청년의 신실한 신념을 짓밟아 버렸는데도 그 신념을 지키기 위해 널 도와줬잖아.”

이사벨라는 비아냥인지 아닌지 모를 말투로 말하며 크리스티안이 앉아있던 소파에 다리를 꼬고 앉아 말했다.

“썬더마운틴 얘긴 들었지? 무려 경비대장이 친히 와서 널 살피고 갔다고.”

“아벨린이?”

“네가 아벨린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기고 싶어 해도, 아벨린은 어쨌거나 널 걱정해. 용사를 걱정하는 건지 마리안 호크인지는 모르겠지만. 네가 죽으면 메레디스가 더 눈치 안 보고 날뛸 테니.”

이사벨리의 말은 평소보다 더 신랄하게 들렸다. 하지만 호크는 반응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그럴 기운이 없었다. 하지만 이미 너무 오래 잤기 때문인지 치유사의 마법 때문인지 더는 잠도 오지 않았다.

“나도 네가 죽는 건 곤란해. 지하가도에서 나온 무한한 돈을 나에게 넘긴다는 유언장도 안썼잖아.”

이사벨라는 농담조로 말했지만 반쯤 진심이 섞여 있었다.

“펜리스는 제 성격 못 이겨서 난리였고- 문신 번쩍거리는 거 한두 번 본 거 아니지만 이번엔 좀 무서웠어. 그 난리 통에 베릭이 없었으면 너 진짜 죽었을지도 몰라. 베릭한테 고마워 해야 해. 뭐, 네 이야기가 페이지 하나를 차지하는 걸로 끝나겠지만. 죽을 뻔한 영웅 이야기는 언제나 인기가 많으니까.”

호크가 반응하지 않아도 이사벨라는 계속 떠들었다. 하루 반만큼 밀린 얘기를 다 실토하겠다는 듯 계속 말했다. 평소라면 입 좀 다물라 했겠지만, 호크는 그의 말의 반은 한 귀로 흘리며 창밖만 보았다. 이사벨라의 시선도 창밖으로 향했다.

“아벨린이 도닉을 보냈다고 했어. 오늘 중으로 돌아올 거야. 크리스티안에게는 말하지 않았어. 아는 사람이 적는 게 낫잖아. 이런 일은.” 호크가 이사벨라를 보았다.

“나중에 아벨린한테 고맙다고 해. 화풀이 그만하고. 좀 인간답게 굴어 봐.”

 


 

하지만 이사벨라의 말과 다르게 해가 지고 날이 지나도 메릴은 오지 않았다. 그가 간신히 움직이고 포리지를 먹을 정도는 되었을 때 이사벨라는 호크에게 잘 지내라며 마치 영원히 떠날 것처럼 뺨에 입을 맞추고 다시 찾아온 베릭과 함께 매달린 남자로 갔다. 그리고 자정이 되기 전 사냥을 나가는 펜리스가 그를 확인하고 갔다.

호크는 홀로 남았다. 근 며칠간 절대 피하고 싶던 상황에 맞딱드렸다. 마음은 펜리스를 따라가 노예상을 죽이고 싶었지만, 몸은 아직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았고 마법조차 그랬다. 급기야 그는 며칠 동안 방치 했던 마법진 관련 서적을 펼쳤지만, 눈이 피곤해 볼 수 없었다. 잠에 들기도 두려웠다. 이 상황에서 그런 꿈을 꾼다면 정말 악마가 나타날 것 같은, 막 마법이 발현하던 어릴 적 이후 해본 적 없는 비이성적인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정신이 육체를 따라가는지, 육체가 정신을 따라가는지 호크는 이제 알 수 없었다. 몸을 단련하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그는 누워있는 걸 그만두고 일어나 침대 옆 소파로가 앉았다. 그리고 억지로 억지로 다른 생각이 끼어들지 않길 바라며 책을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문장은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같은 문장을 여섯 번 쯤 읽고 가슴이 답답해 창문을 열었다.

마법사들이 이래서 흉물이 되는걸까? 그래서 메레디스가 안식자로 만들어야 한다고 외치는 걸까. 아무리 그러해도 호크는 메레디스의 그 의견에 만큼은 동의하지 않았다. 호크가 다른 마법사에게 연대의식 따위를 느끼지 않는다고 하여도. 하지만 처음 겪어보는 일렁이는 감정은 그가 느끼기에도 위험했다. 취약한 마법사는 약마의 먹잇감이 된다. 평소에 하던 생각이 그를 옥죘다.

잘못을 인정한다 해도 변하는 건 없었다. 늦었다. 그래. 그냥 잊는 수밖에 없다. 메릴에게 말했듯이.

그때 1층이 수선해졌다. 호크는 긴장해 문만 바라보았다. 익숙한 기척이 느껴졌다. 그는 귀를 의심하며 지팡이를 잡아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들어올 사람이 누군지 알았지만 믿을 수 없었다. 꿈일까? 악마가 나오는 꿈. 그를 노린다면 지금이 적기였다. 문은 아주 조용히 열렸다. 방안 촛불이 일렁이고 들어오는 이의 그림자를 길게 드리웠다.

“마리안?”

메릴의 목소리가 방 안을 채웠다. 바로 침대로 향했던 큰 눈이 창문 앞 호크와 마주치자 달려오듯 그를 끌어안았다. 호크는 창턱을 잡으며 무게를 버텼다. Ar lath ma, vhenan. 메릴이 속삭였다. 호크는 가만히 안겨있었다.

“걱정했어요.”

메릴이 호크의 목을 끌어안은 채 뺨에 입을 맞췄다. 호크는 메릴의 팔을 잡았다.

“도닉 덕에 무사히 도착했어요. 성기사들을 피해오느라….” 메릴이 뒤로 물러서며 말했다. 그가 움직일 때마다 초의 불빛이 일렁였다.

“장막이 약해진 곳에 방비를 해두느라 장례식이 늦어졌어요. 남은 물건도 정리 해야 했고요. 앤더스가 많이 도와줬어요.”

메릴이 그의 손을 잡은 채 말했다. 호크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랐다. 그가 돌아온다면 어떻게 대해야 할지 생각해보지 않았다. 무엇보다 믿기지 않았다. 그리고 자신의 추측이 틀렸다는 사실이 이상했다.

메릴은 한마디도 하지 않고 심각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는 호크를 보았다. 호크는 말을 골랐다. 이사벨라의 말이 떠올랐다. ‘인간답게 굴어 봐.’

“왜 날 만나지 않고 간 거야?”

하지만 결국 나온 말이 이거였다. 이사벨라가 잘 대해주라고 했었는데. 이유는 알고 싶었다. 왜 며칠 동안 괴롭게 했는지.

“앤더스의 일정에 맞춰야 했어요. 저도 아벨린이 구호소에 관해 답변을 주기 전에 어서 의식을 치르고 싶었고요. 그래서 보단에게 말을 전했어요.”

호크의 미간이 좁아졌다.

“앤더스와 동행이라 말했으면 반대했을 거야. 지금 이런 시기에 배교자 둘이 도시를 벗어나는 건 위험한 짓이야. 메릴, 너도 알고 있잖아. 며칠 내내 다들 걱정했어.”
호크는 분명히 짚어야 할 말이라 생각했다. 걱정한 건 실상 그 자신 정도였지만 드러내고 싶지 않았다. 무엇보다 자신을 어떤 위험에 처하게 했는지, 메릴도 알아야 했다. 말에 메릴은 잠시 말이 없었다.

“하지만 호크, 그건 당신이 결정할 일이 아니에요.” 메릴이 호크만큼이나 단호하게 말했다. “그때 그렇게 방치했잖아요. 그래서는 안 됐어요. 그 뒤에 당신은 반대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제 생각은 더 명확해졌어요. 저라도, 아니 제가 책임지고 제 ‘사람’들을 보내줘야 한다고요. 게다가 거긴 엘프의 묘지가 있는 곳이니까.” 메릴이 강한 어조로 말했다.

“제가 누구에게 부탁하겠어요? 제가 할 일을 제대로 이해할 건 앤더스 뿐이에요. 당신이 이해해주리라고 기대하지 않았어요. 이해해 줄 필요도 없고요. 그래서 묻지 않았어요.”

“그런 거였다면….”

“호크. 저도 당신을 알 만큼 알아요. 절 위해 거짓말 할 필요는 없어요. 이미 가지 말라고 말했잖아요.”

호크는 그가 설득도 없이 자신 대신 앤더스를 선택했다는 야속함에 마음에도 없는 말로 따지려 했지만 메릴은 가차 없이 그의 이기심을 끊어버렸다. 그리고 그게 사실이었다. 그런 메릴의 어조는 차갑게 들렸다. 호크는 긴장했다. 처음 보는 태도였다. 메릴은 언제나 호크의 말을 들어주었고 그의 의견을 따르려 한다고 생각했다.

“제 예상대로 산 짐승들이 시체를 뜯어먹고 성기사단이 시체 몇 구를 가져갔지만 대부분 죽은 그대로 있었어요. 모두를 수습하고 전부 태웠어요. 정식으로 한 명 한 명 묻고 싶었지만, 시간이 부족했고, 앤더스가 전염병을 걱정해서 어쩔 수 없었어요. 재는 모아서 묘지에 묻었고요. 그거라도 해야 했어요. 내 책임이니까.”

메릴의 말은 명료하고 표정은 전과 달리 단단해 보였다. 호크는 메릴의 그런 얼굴을 처음 본다고 생각했다. 아니, 보지 않으려 했을지도 모른다. 오히려 평소 하던 말과 다르게 자기 연민에 빠져 메릴을 평가한 건 호크 자신일 테다.

“네가 커크월을… 날 떠났다고 생각했어.”

그리고 그에 답하는 호크의 말은 비루하기 짝이 없었다. “반지도 놓고 갔잖아.” 호크는 메릴의 손을 놓았다. 호크는 이런 말을 하는 자신이 부끄러워 시선을 피했다. 하지만 메릴은 진지하게 그의 말을 듣고 있었다.

“그 반지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줄 몰랐어요.” 메릴이 답했다. “마리안.” 메릴이 그의 뺨을 감쌌다. “내가 말했잖아요. 난 좀 더 당신을 닮고 싶다고.”

호크는 그의 손 위에 손을 겹쳤다. 손은 따뜻하고 뺨을 문지르는 손가락은 다정했다. 그가 알던 메릴 이었다. 호크는 이 편이 편안했다. 하지만 이어지는 말은 달랐다. 태도도, 어조도.

네가 변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호크는 지질한 말을 삼켰다. 처음 만났을 때와 전혀 다른 건 호크도 마찬가지였다. 그저 자신에게 기대고 길을 잃을까 졸졸 따라다니던 어린 엘프는 이제 없었다. 마냥 귀여워 할 수 없다.

“날 구해줄 필요는 없어요. 과거는 바꿀 수 없으니 거기서 교훈을 얻으면 되는 거라고, 그렇게 말했잖아요. 그거면 됐어요.”

이런. 호크는 그 말에 모든 긴장이 풀렸다. 메릴은 모를 며칠 간의 추태가 너무나도 부끄러워졌다. 메릴은 약하지 않다. 지켜줄 필요가 없다는 말은 그런 얘기였다. 호크는 자신이 그렇게 믿는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네게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맞아요. 구호소가 아직이거든요. 아벨린이 오늘쯤 기별을 준다고 했어요. 날이 지났으니 오늘 맞죠? 출근 시간에 맞춰 병영에 찾아가려고요.”

메릴이 즐거운 목소리로 호크의 손을 내리며 말했다. 절대 구호소에 관해 도와달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래도 저 말고 펜리스랑 더 오랜 시간을 보내는 건 싫어요.” 메릴이 작은 목소리로 덧붙였다.

“그럼, 안 가면 돼. 펜리스도 혼자 할 수 있으니까.”

호크의 대답에 메릴은 활짝 웃으며 그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호크는 물러나는 메릴을 끌어당겨 다시 입을 맞췄다. 입맞춤이 끈적해지자 메릴이 그를 힘겹게 뒤로 밀어냈다. 둘 사이로 밤바람이 불었다. 호크는 불빛에 반짝이는 눈동자를 보았다.

“내일까진 참아요. 아직 환자잖아요.” 메릴이 말했다. “무엇보다 너무 졸려요. 하루 종일 계속 걸어왔다고요. 너무 피곤해요.”

메릴은 호크의 품에서 벗어나 입은 로브를 아무렇게나 벗으며 침대로 다가갔다. 호크는 별수 없이 반대쪽 침대로 가 먼저 이불 안으로 들어갔다. 메릴은 속옷 차림 그대로 들어가 호크에게 바짝 붙었다. 피곤하다더니 눈을 깜박이더니 얼마 되지 않아 바로 잠들었다. 호크도 그의 숨소리를 따라 두려울 새도 없이 잠들었다.

꿈도 꾸지 않은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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