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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은 괜찮아?”
“보면 알잖아.”
“괜찮다니 다행이네.”
쌀쌀 맞은 대답에도 배릭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호크의 태도에 하나하나 반응하는 건 피곤한 일이기 때문이다. 격리촌이 들여다보이지만 격리촌에서는 볼 수 없는 곳에서 호크와 나란히 서 있었다.
호크는 완전무장 상태였고, 배릭도 마찬가지였다. 배릭이야 곧 일이 있다지만 호크가 일정도 없이 무장 상태로 몸소 로타운까지 온 건 꽤 놀랄만한 일이었다. 다른 이라면 모르겠지만 적어도 호크의 지인이라면 이유를 알았다. 격리촌에서 음식을 나눠주고 치료해주는 엘프 때문이었다.
호크의 눈은 예전에 입던 녹색 로브를 입고 지팡이도 없이 노숙하는 남자 엘프에게 빵을 건네주는 메릴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그리고 메릴과 뜻을 함께하는 인간이 몇 있었다. 메릴이 혈마법사임을 모르는 이들이었다. 어젯밤 들은 말로는 앤더스가 도와준 사람들이라 했다.
호크는 말하지 않았지만, 못내 불안했다. 앤더스와 친한 자들은 모두 위험하다.
“메릴이 부탁한 건가?”
호크는 대답하지 않았다. 분명 아니라는 뜻이었다. 호크의 반응에 배릭이 웃자 그는 불쾌한 표정으로 그를 내려다보았다.
지금 이렇게 몰래 ‘스토킹’하는 걸 보니 이사벨라의 걱정과는 달리 잘 해결된 게 틀림없었다. 그리고 대체 어떤 방식으로 해결됐는지 모르겠지만 분명한 건 호크의 태도가 바뀌었다는 점이었다. 그는 메릴이 하는 사적인 일에 관해선 신경을 쓰지 않았다. 짐짓 응원하는 척했지만 배릭을 속일 수는 없었다.
“가서 말 좀 걸어. 도와주겠다고.”
배릭은 그가 거절할 걸 알면서도 단지 놀리기 위해 말했다. 호크는 대답하지 않고 팔짱을 끼었다.
아벨린은 메릴의 부탁을 완곡하게 거절했다. 메릴의 말로는 ‘도와주고 싶지만, 상황이 여의찮다.’라고 했다. 호크는 머리로는 이해했으나 핑계처럼 들렸다. 평소 커크월 난민과 격리촌 상황을 걱정하던 건 말뿐인가. 아직도 엘프를 노예로 팔기 위해 잡아가려는 노예상들이 심심하면 항구로 들어오는데. 메릴은 분명하게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고 했지만, 호크는 그의 기대와 상관없이 아벨린은 위선자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건 부당한 평가다. 아벨린은 가능하다면 최대한 그를 도와줬을 테니까.
호크는 생각을 정정했다. 하지만 누구의 도움도 없이 배교자가 돌아다니는 건 위험하다. 게다가 메릴은 적어도 로타운 내에서는 꽤 유명했다. ‘호크의 무리’는 전부 얼굴이 알려져 있으니까.
멀리 보이는 메릴에게 격리촌 주변을 돌아다니던 경비대원이 다가갔다. 호크가 움찔했다.
“배넌이군. 경비대원 중 하나야. 나쁜 놈은 아니니 걱정하지 마.”
배릭이 얼굴을 알아보고 말했다. 그는 로타운을 맡은 경비대원 얼굴을 거의 다 알았다.
대화는 길게 이어졌다. 메릴은 심각하게 손으로 턱을 짚었다가 배넌에게 길게 말했다. 배넌은 그 말을 듣자 메릴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호크의 손이 천천히 내려갔다. 배릭이 그를 올려다 봤을 때 당장이라도 주문을 외 배넌을 태우던지 얼릴 기세였다. 아니면 감전시키던가.
배넌이 양손으로 메릴의 어깨를 잡았을 때 호크는 배릭의 추측을 시행하기 위해 – 정확히 타격하기에는 거리가 멀어 – 다가가려 했다. 배릭은 그의 팔을 잡았다.
“지켜보라고.”
“도와주려면 지금 도와줘야지.”
“위험한 상황도 아니잖아. 경비대원이 손 좀 얹었다고 네가 뛰어오면 격리촌 엘프들이 메릴을 경계할걸? 무엇보다 메릴은 제 몸 정도는 지킬 수 있어.”
어쩌라는 거야?
호크는 입을 꾹 다물곤 다시 팔짱을 끼었다. 배넌은 곧 메릴에게 정중하게 인사한 뒤 즐거운 미소로 자리를 떴다. 호크는 당장이라도 멱살 잡고 저 경비대원을 끌고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 ‘대화’하고 싶었다.
“봐봐 아무 일 없잖아. 게다가 좋은 일 같은데?”
배릭이 말했지만, 호크는 듣지 않았다.
메릴은 하던 일을 계속했다. 심지어 위험하게도 마법을 이용해 아픈 엘프들을 돌보기까지 했다. 호크는 당장이라도 달려가 말리고 싶었다. 성기사가 보기라도 한다면 체포되기에 십상이다. 물론 성기사는 이런 로타운에 잘 오지 않지만.
“데이지가 이런 일 까지 할 줄은 몰랐는데.” 배릭이 수염으로 꺼끌한 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거 생각나? 처음 로타운에 왔을 때 길을 잃어버린다고 진짜 털실 공을 가지고 다녔잖아.” 호크가 그를 보았다. “이사벨라 부츠에는 구슬을 잔뜩 넣어두고. 질 낮은 밀주를 잔뜩 마셨다가 고생한 적도 있었지. 그런데 지금은 다른 사람을 도와주면서 길도 잘 찾아다니네.”
메릴을 처음 만났을 때는 꼭 혹을 붙여온 것 같았는데. 게다가 혈마법사라니. 하지만 호크는 그 큰 눈을 반짝이며 자신을 따르는 메릴에게 자꾸 눈길이 갔다. 어딘가 서툴지만 언제나 진지하고 남을 생각했던 메릴. 그게 그릇된 방식이라도, 심지어 호크가 어떻게 대했어도.
“그대로일 줄 알았는데….”
호크는 저도 모르게 머릿속에만 있던 생각을 입 밖으로 내뱉었다. 배릭이 놓치지 않고 웃었다.
“그런 취향인 줄 몰랐는데.”
“무슨 취향?”
“메릴은… 어리잖아?”
호크가 인상을 구겼다. 모욕적인 평가다.
“지금 내가 어린애나 밝히는 변태란 거야?”
호크는 곧 지팡이라도 들 기세로 말했다.
“아니면 위험한 쪽을 선호하나?”
호크는 대답할 가치가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나와 이사벨라는 너희 둘 사이가 제일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란 말이야.”
“남 사생활 가지고 이러쿵저러쿵하지 말고 네 일이나 신경 써.”
호크는 협박조였다. 배릭은 어깨만 으쓱했다. 배릭에게 호크의 협박이 통하는 일은 없었다.
“뭐, 메릴은 다정하지. 하지만 넌- 어디까지나 친구로서 말하는데, 네 성격을 감당할 사람은 몇 없거든.”
배릭은 ‘마바라는 개 냄새가 나고 커크월은 더러워.’ 정도의 사실을 말하는 듯 지껄였다. 호크는 대답할 가치도 없다고 생각했다. 인제 와서 이유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그것보단 당연히 호크의 자기중심적인 성격에 기반해 자신이 메릴을 그리고 메릴이 호크 자신을 사랑한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뭐, 이러나저러나 너희 둘이 괜찮다니 다행이야. 우울한 마리안 호크는 재미없거든. 소재로도 별로고.”
배릭은 두 손을 깍지 껴 머리 뒤로 하며 말했다. 메릴은 짐을 정리하고 있었다. 호크는 배릭에게 인사도 없이 격리촌으로 향했다.
메릴에게 고정된 시선은 다른 이들을 볼 때와 달랐다. 항상 누굴 죽일 듯이 보던 눈빛과는 확연히 다르다. 다른 이는 몰라도 배릭은 그걸 알았다. 찔러도 피 한방울 나오지 않을 천하의 마리안 호크가…. 아니, 이번에 보니 나긴 하던데.
배릭은 실없는 생각을 하며 자리를 뜨지 않고 둘을 지켜보았다. 메릴은 호크를 보자 웃으며 인사했다. 호크는 그가 다가오자 손을 잡고 머리를 쓰다듬어 귀 뒤로 넘겨주었다. 단호한 태도로 팔짱을 끼었던 모습과는 전혀 달랐다. 심지어 어린 엘프가 다가와 신기한 듯 호크의 로브를 만지는 대도 내버려 두었다. 메릴이 웃으며 목걸이를 꺼냈다. 그 끝에는 반지가 매달려있었다.
배릭은 자기도 모르게 어이없이 웃었다. 마리안 호크가 메릴에게 반지를 주었더라, 하는 이사벨라의 말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떤 오해라고 생각했지.
호크는 아마 저 반지를 보고도 한마디도 하지 않겠지. 하지만 메릴은 괜찮을 거고.
배릭은 아주 좋은 소재가 되겠다고 생각하며 커크월의 용사가 반지를 잠깐 만지곤 다시 메릴의 품 안으로 넣는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