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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ting:
Archive Warning:
Category:
Fandom:
Relationship:
Language:
한국어
Series:
Part 1 of 동굴
Stats:
Published:
2024-09-27
Words:
1,855
Chapters:
1/1
Kudos:
7
Hits:
81

동굴-1

Summary:

아다르는 반지와 검을, 갈라드리엘은 사우론에게 캘레브림보르에게 받은 반지를 빼앗긴다.
오르크 군대는 에레기온을 떠나고 사우론이 사라진 이후 다시 린돈에 모인 요정들은 다시 요정을 공격할 사우론에 대비하여 모르도르에 관한 정보를 얻으려 하지만 정찰병이 돌아오지 않는다.
그러한 때 갈라드리엘은 네냐를 통해 환상을 본다. 그 환상에는 사라진 아다르가 등장하는데 낯익은 숲이다.
갈라드리엘은 아다르의 행방을 알면 사우론을 찾을 수 있다 생각하여 아다르를 쫓는다.

Work Text:

새벽 숲은 서늘했다. 잠들지 않는 낮은 울음소리가 갈라드리엘의 발소리를 듣고 멈췄다. 주변이 마치 낯선 침입자를 경계하듯 조용해졌다. 그는 습관처럼 왼손에 낀 은빛 반지를 손끝으로 만졌다. 어떤 환상도 보이지 않았지만, 반지는 존재만으로도 그의 마음을 가라앉혔다. 처음 반지를 끼었을 때처럼. 손이 움직이자 망토 안으로 서늘한 공기가 들어왔다.

그는 잠시 멈춘 발을 다시 옮겼다. 발을 디딜 때마다 새벽이슬이 공기 중에 흩어지는 듯 물기가 서렸다. 요정의 밝은 눈이 저 멀리 숲 가장자리를 훑었다. 익숙한 기척은 없다. 오르크도, 요정도, 심지어 짐승조차도. 멀지 않은 곳에 돌이 겹겹이 쌓여 동굴처럼 만들어진 야트막한 곳이 보였다. 그를 인식하자 그 안에서 풍기는 냄새가 풍겨왔다. 익숙한 죽음의 냄새. 갈라드리엘은 ‘동굴’로 다가갔다.

가까워질수록 검은 형체가 보였다. 움직임 없이 버려져 있는 사체 같은 형체. 하지만 그는 그것이 살아있다는 걸 알고 있다. 그가 다가가자 그것이 움직였다. 반쯤 감은 눈을 간신히 뜨고 갈라드리엘을 올려다보았다.

검은 갑옷 위로는 검은 피가 보이지 않았지만, 요정의 눈에는 부서진 갑옷과 그 사이로 말라붙은 피가 보였다. 흰 피부가 찢어진 검은 소매와 피로 얼룩덜룩했다. 갈라드리엘은 그것이 죽지 않았음을 알았지만, 고개를 숙여 그를 살폈다.

“죽지 않았군.”

다리와 팔이 부러져 비틀렸고, 온몸에 자상이 있었다. 그에 흘린 피의 양을 보면 죽지 용케 죽지 않았다. 갈라드리엘은 이것의 상처가 누구에 의한 것인지 알지 못했다. 사우론은 이런 짓을 하지 않는다. 아니, 어쩌면 사우론과 이 모리온도르의 과거와 관련이 있을지도. 그는 섣부른 판단을 하지 않으려 노력하며 죽어가는 몸을 한 팔로 수색했다. 검은 피만 묻어나올 뿐 아무것도 없었다.

파란 눈이 짙은 눈동자와 마주쳤다. 그의 입술이 뭐라 말하듯 움직였지만, 요정의 귀에는 어떤 말도 들리지 않았다.

“…사우론을….”

모리온도르가 간신히 말했다. 갈라드리엘은 ‘사우론’이라는 단어만을 듣고 그의 귀에 바짝 다가갔다. 어차피 지금의 그것은 갈라드리엘의 적수가 되지 못한다.

“사우론을 죽이지 못했군.”

사이사이 힘겹게 이어진 짧은 문장에는 어떤 정보 값도 없었다. 갈라드리엘의 미간이 구겨졌다.

“…아니라면 날 찾지 않았겠지.”

문장이 이어졌다. 이번에는 좀 더 분명했다. 마치 갈라드리엘이 그의 기운을 북돋아 준 것처럼 느껴졌다. 그에 그는 불쾌감을 느끼며 몸을 일으켰다.

“널 찾은 게 아니다.”

“그럼, 이곳까지 찾아올 이유가 무엇이지?”
그것은 마치 모든 것을 다 아는 듯 말했다. 언젠가의 대화처럼. 그때와 달리 눈빛은 혼탁했다. 형형한 적대감도, 비웃음도 없었다.

에레기온은 무너졌고, 켈레브림보르는 죽었다. 사우론은 반지를 빼앗아 도망쳤다. 갈라드리엘은, 아니 요정은 패배했다. 그들은 패배의 아픔을 달랠 시간도 없이 다시 사우론을 추적해야 한다. 하지만 막대한 피해를 본 이후 갈라드리엘은 곧바로 다른 요정에게 몸을 던지라 명하기 힘들었다. 피해를 파악하고, 방비를 다시 해야 했다. 전력 피해가 심했고 오르크가 이곳저곳에 남아 에레기온에서 다른 요정 영지로 가지 못한 자들 가차 없이 죽였다. 그것들은 승리에 취해있었고, 요정은 공포에 질렸다.

갈라드리엘은 망토 안에서 반지를 매만졌다. 그 가운데 네냐는 모호한 환상을 비췄다. 모호함 속에 모리온도르가 있었다. …그리고 갈라드리엘은 그것의 말대로 아직 사우론을 죽이지 못했기 때문에 그를 찾았다. 그의 소식은 사우론과 함께 사라졌기에 그와 함께하리라 생각했다. 다시 그에게 굴복했을 것이라 확신했다. 하지만 모리온도르는 죽어간다.

“사우론의 짓인가?”

갈라드리엘이 물었다. 그는 잠시 침묵을 지켰다. 그리고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갈라드리엘은 왼손을 망토 밖으로 뻗었으나 이내 다시 내렸다. 자기 반지가 어떤 식으로든 그것에 닿으면 상처를 치유하리라는 예감이 들어서였다.

“어디로 갔지?”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미지의 형태에 공포에 떨고….” 그것은 대답하지 않았다. “네가 기댈 것은 그 반지뿐인가? 한심하군.”

갈라드리엘은 그 자리에서 허리에 찬 검을 꺼내 그의 가느다란 숨을 끊을 수 있었다. 그리고 분명히 이것도 그러기를 원했다. 그는 간신히 검을 잡으려는 충동을 억누르고 그의 옆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

“너도 알겠지만, 요정의 의술이라면 널 살릴 수 있다.” 갈라드리엘은 마치 말을 숨기려는 듯 속삭였다. “사우론에 관한 정보를 알려주면 널 살려주지.”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모리온도르는 작게 웃었다. 믿을 수 없다는 뜻이었다. 갈라드리엘은 왼손을 뻗었다. 요정 자신도 확신할 수 없었지만 시도해봄 직했다. 그는 숲속에서 부하의 상처를 고쳤을 때처럼 검은 피가 말라붙은 더러운 상처 위에 손을 올렸다. 곧이어 상처가 아물고 부러진 뼈가 고통에 찬 신음과 함께 제자리로 돌아와 붙었다. 갈라드리엘은 바로 손을 떼었다. 꼼작도 못 하던 팔이 움직여 그의 손목을 잡았다. 갈라드리엘은 뿌리치지 않고 그를 보았다.

“왜 이런 짓을 하는 거지?”

그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지금까지 했던 말과 달리 급하게 튀어나왔다. 갈라드리엘은 그의 손을 빠져나오며 일어섰다. 네냐는 다시 망토 안으로 들어갔다.

“넌 돌아갈 곳도, 군대도 없어.”

그것은 한 팔로 지탱해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실패했다. 도망가지 못한다. 고통은 느낄 테지만 쉽사리 죽지도 않는다. 지금까지 죽지 않은 것을 보아하면, 이 주변에는 그를 공격할 짐승도 없었다. 갈라드리엘은 하루, 아니 며칠쯤은 그가 죽지 않으리라 확신했다. 요정으로 시작한 몸은 끈질길 테니.

“하지만 사우론에게 복수하고 싶어질 테지.”

갈라드리엘은 훨씬 밝아진 동굴 밖을 보며 말했다. 동굴 밖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다시 오지.”

요정은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동굴을 나갔다.

 


 

“다시 정찰을 보내야 합니다.”

테이블 위 넓게 펼친 지도 위로 붉은 보석이 빛났다. 길 갈라드는 단호한 표정으로 갈라드리엘을 보았다. 그는 대왕이 입을 열지 않아도 무어라 대답할지 알고 있었다.

“이미 두 번이나 파견했지만 아무도 돌아오지 못했소.”

“지금 당장 사우론의 행방을 찾지 못하면, 더 어려워집니다.”

“에레기온 이후 전력을 다시 회복하지 못했는데 어디서 무엇을 찾을지 정확히 알지 못한 채 다시 정찰병을 보낼 수 없습니다. 사령관.”
대왕에 이어 남부 사령관이 그를 거들었다. 계속 같은 상황을 반복했다. 갈라드리엘의 의견은 번번이 묵살 되었다. 하지만 그는 그때처럼, 사우론이 다시 나타나기 전처럼 자신의 의견을 관철할 수 없었다. 갈라드리엘은 숨을 가다듬고 대왕을 보았다.

“정보를 모으기 위해서라도 정찰이 필요합니다.” 그가 지도를 보며 말했다. “사우론은 오르크의 군대를 차지하기 위해 모르도르로 향했을 가능성이 제일 큽니다.” 갈라드리엘은 화산 바로 아래 모르도르를 가리켰다. 화산 폭발과 함께 황폐해져 오르크의 근거지가 된 남부는 한 장소라고 하기에는 광활했다. 해도 들지 않아 모든 생명체가 꺼리는 지역이었지만 해를 두려워하는 오르크들이 밀집해 있었다.

“그 지역에는 검은 요정이 있지 않습니까? 아무리 사우론이라 해도 에레기온을 떠나 바로 적진으로 향하진 않을 겁니다. 그곳엔 아직 남은 군대의 수가 많습니다.”

가만히 지켜만 보던 엘론드가 말했다. 시선이 모두 갈라드리엘에게 향했다.

“사우론은 군대가 필요합니다. 아다르의 군대도 피해를 보았고, 사우론은 반지를 가졌으니 더 강해졌습니다. 그러니 오히려 지금이 적기입니다. 오르크 군대를 피해 갈 정확한 길을 찾고 뛰어난 이들을 보낸다면 정보를 가지고 돌아올 겁니다.”

갈라드리엘은 확신에 차 말했다. 하지만 길 갈라드를 포함한 모두는 그의 의견에 반신반의했다. 대왕은 갈라드리엘의 반지를 바라보았다. 마치 그 반지가 무엇을 보여줬는지 아는 눈초리였다. 갈라드리엘은 천천히 손을 테이블 위에서 내렸다.

“하지만 그런 길을 어떻게 찾습니까?”

서부 사령관이 갈라드리엘에게 물었다.

 


 

갈라드리엘은 린돈에 익숙했다. 어느 곳을 통해야 몰래 빠져나갈 수 있는지, 경비의 교대시간이 어떤지 전부 파악하고 있었다.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고 빠져나가는 일은 에레기온에서 몰려온 요정 때문에 복잡한 상황에서는 더 쉬웠다.

요정은 린돈의 경비를 피해 샛길로 도시를 빠져나와 다시 숲속 동굴로 향했다. 깊은 밤 그를 본 자는 숲의 짐승이나 발라 뿐일 테다. 갈라드리엘은 무의식적으로 반지의 은빛 고리를 느꼈다. 손끝에 닿는 고리는 그를 옥죌 것 같다가도 끊어지지 않는 선으로 그를 지탱했다. 그럴 때마다 갈라드리엘은 네냐, 자신의 소유인 이 반지의 존재가 두렵다가도 고마웠다. 하지만 이내 만도스의 전당에서 이 반지에 얽힌 모든 것들 때문에 자신이 어떤 판결을 받을지 눈에 그려졌다.

악을 불러일으킨 자. 어쩌면 …종족의 배신자로.

갈라드리엘은 어두운 생각을 머릿속에서 지웠다. 지금 그가 하는 일은 요정을 위해서다. 그때와는 다르다. 사우론이 그럴듯한 모습을 하고 자신을 속였던 때와는. 그러므로 오늘은 달랐다. 그는 동굴 앞에 서서 반지를 빼 미리 준비해온 끈으로 목에 묶어 옷 안으로 숨겼다. 차가운 기운이 가슴께에 닿았다. 들고 온 가방 안에는 요정의 약이 있었다. 네냐와 비교하면 느리고 인내심이 필요한 약이었다.

요정은 모리온도르를 완전히 회복시킬 생각이 없다. 그만큼 순진하진 않았다.

갈라드리엘은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어둠에도 밝은 요정의 눈에 모리온도르의 모습이 보였다. 갈라드리엘은 그것의 앞에 섰다. 네냐의 영향인지 이틀 전보다 나아 보였으나 몸 어디도 성한 곳이 없어 차이를 느끼기 힘들었다. 하지만 갈라드리엘은 어둠 속에서 그의 눈빛이 달라졌음을 눈치챘다.

“돌아왔군.”

모리온도르는 여전히 시체처럼 누워있는 처지임에도 막사 안 의자에 앉아있을 때처럼 말했다. 목소리를 들으니 네냐가 팔만 치료한 것은 아님이 분명했다. 요정이 반지의 힘을 더 오래 사용했다면 그대로 도망칠 수 있었다.

“혼자 온 것을 보니 분명 다른 요정들에게 말하지 않았고.”

그것은 마치 비웃듯 말했다. 요정의 표정이 굳었다. 하지만 그 이상 반응하지 않고 어깨에 멘 가방을 내려놓았다.

“날 데려가 고문이라도 하는 편이 빠르지 않나?” 갈라드리엘은 가방을 열었다. 다른 요정의 눈을 속여 가져온 약병이 보였다. 그도 오랫동안 전장에 있었고 그보다 더 오랜 시간을 살았기 때문에 웬만한 치료사보다 의학지식이 있었다. 무엇이 뒤틀린 몸을 낫게 하는지, 어떻게 고정해야 뼈가 뒤틀리지 않고 붙는지 또 어떤 약을 써야 회복이 빠른지.

그리고 가방 제일 밑바닥에는 혹시 모를 상황을 위한 족쇄가 있었다. 갈라드리엘은 다시 한번 족쇄와 그를 고정할 못을 확인했다.

“그건 모르고스의 방식이지, 사우론의 방법이고.”

“마치 요정은 그렇지 않은 것처럼 말하는군.”

“고통을 통해서는 어떤 진실도 구할 수 없어.”

“요정의 가르침이라….”

자신과 같은 억양으로 들리는 요정의 언어에 갈라드리엘은 입을 다물었다. 그것과는 이런 대화를 할 이유가 없었다. 갈라드리엘이 그를 필요로 하는 이유는 분명했다.

“네가 원하는 정보를 알려주면, 그다음에는? 날 치료한 뒤 고발 할 텐가? 네게 협력하지 않는다 해도 결과는 같을 텐데.”

“말라죽길 원하는 줄은 몰랐군.”

“어떤 죽음도 모르고스의 고문보다 더하진 않아.”

모리온도르는 또렷하게 말했다. 아주 명확하게 두 쪽 난 돌덩이처럼.

“…그에 비하면 요정의 감옥이야 탈출하는 건 어렵지 않겠지.”

그 말 또한 아주 명확했다. 하지만 순간 갈라드리엘은 망설였다. 네냐의 환상이 어떠하였던가, 그것이 사우론과 함께 했던가.

언제나 반지의 환상은 모호했다. 켈레브림보르의 죽음을 그대로 보여주지 않았듯이 모리온도르에 관해서도 마찬가지다. 이제라도 모두에게 알릴 수 있다. 사실 그것은 자신의 군대와 함께 모르도로로 돌아가지 않았다고. 하지만 그가 가진 불명확한 정보 때문에 그를 살릴 거라는 확신이 없었다. 아니 무엇보다 아직도 그들은 갈라드리엘을 염려했다. 그가 다시 잘못을 저지를까 봐. 몇 번이나 자신의 옳음을 증명했지만 소용없었다. 의심의 씨앗은 언제나 있었다.

갈라드리엘은 엘론드의 말을 잊지 않았다. 자존심 때문에 눈이 멀었다는 질책은 잊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는 반항했고, 이겨냈고, 결국엔 유혹에 넘어가지 않았다. 그것만큼은 분명했다. 자존심을 버린다고 해서 모든 게 해결되지 않는다. 모리온도르에게 속았던 순간이 이를 증명했다.

갈라드리엘은 말을 더하지 않고 약을 꺼냈다.

 


 

요정의 약은 인간의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이 효험이 있다. 그러니 그때의 사우론도 구할 수 있었다.

갈라드리엘은 며칠 새에 아문 모리온도르의 상처를 보며 생각했다. 한쪽 팔은 족쇄와 사슬에 묶여있었었지만, 며칠 전과 달리 앉아있었다. 아직 두 다리는 성하지 않아 일어서지 못했다. 하지만 그럴만한 기력은 충분해 보였다. 갈라드리엘은 말없이 그의 앞에 지도를 펼쳤다. 지도는 큰 지역명과 도로, 다리 정도만 표현되어 있었다. 그가 정보 공유를 약속했다고 해도 상세한 지도는 보여줄 수 없었다.

“제대로 된 지도가 아니군.”

그는 지도를 한번 훑고 말했다.

“이 정도면 충분해,” 갈라드리엘이 말했다. 그것이 지도를 잡았다. 쇠가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불빛 없는 동굴은 여전히 어두웠다. 더 쌀쌀해진 공기가 망토 안으로 스몄다. 그것은 갈라드리엘이 준 모포를 망토처럼 두르고 있었다. 그 아래에는 얇고 찢어진 옷이 전부였다. 입고 있던 깨진 갑옷은 그것의 옆에 있었다. 팔과 손을 감싼 장갑까지.

어둠 속의 모습은 마치 요정 같았다. 희다고 하기엔 창백한 피부가 짙은 암흑 속에서 채 드러나지 않았고, 검은 피가 그림자에 가려지기 때문이라. 갈라드리엘은 떠오른 심상을 지웠다. 적에 굴복한 요정의 피는 검고 오르크를 자식이라 부른다. 이것과 자신의 공통점은 없다.

“모르도르는….” 그는 뚫어지라 모르도르가 있는 남부를 보았다. 옛날 지도이기에 모르도르라는 지역명 대신 남부라 적혀있었다. 무너진 에레기온마저 멀쩡하다 그리고 끊긴 다리도 전부 세월과 다르게 그대로였다. 그의 눈동자가 지도를 훑다가 다시 내려놓았다. 골똘이 생각하는 얼굴이었다.

“사네 군대였던 오르크는 다시 모르도르로 돌아갔나?”

“우루크.” 그것은 언제나처럼 지적했다. “모두가 돌아가진 않겠지. 일부는 흩어질 거고.”

“모르도로로 안전하게 갈 길이 있나?”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검은 눈이 갈라드리엘을 훑었다. 반지를 끼지 않은 왼 손에 시선이 미쳤다가 다시 옮겨갔다. 꼭 약점을 찾는 짐승의 눈 같았다. 경계 없이 먹이를 노리는 눈. 순순히 붙잡혀있지는 않겠다는 선언. 하지만 갈라드리엘은 놓아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는 시선을 피하지 않고 그것을 보았다. 그것은 이내 다시 지도로 시선을 돌렸다.

“이 지역까지 우루크가 낸 길이 있다. 아직 전부 완성하진 못했지.”

“오르크가 낸 길을 따라간다면-.”

“우루크.”

그가 말 허리를 자르고 정정했다.

“…우루크가 낸 길로 간다면 길목마다 군대가 있겠지.”

“우루크를 피하는 완벽한 길 따위는 없어. 그들은 강하다. 너희는 패배했고.” 그것은 더 볼 필요도 없다는 태도로 지도를 던졌다. 갈라드리엘은 이를 물었다. 미간이 좁아졌다.

“너희는 약해. 그러니 정찰병들이 돌아오지 못했겠지.”

모리온도르의 말이 끝나자마자 갈라드리엘은 허리에 참 검을 빼 들었다. 유연하게 휜 검 끝이 그것의 목 바로 앞에서 멈췄다. 하지만 그것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당당한 승리자의 태도로 갈라드리엘을 올려다보았다.

정찰병에 관해선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은 갈라드리엘만큼, 어쩌면 갈라드리엘보다 오랜 세월을 살았을 것이고 그만큼 전투 경험도 많았다. 그러니 바로 알아챘을 것이다. 왜 그를 죽이지 않는지, 요정이 바라는 바가 무엇인지.

“더 자세한 지도를 가져와.”

검 끝이 떨렸다. 그것을 죽여선 안 된다. 일순간의 화로 일을 그르칠 수 없다. 아직은. 앞으로 기회가 있을 테니, 그때를 노린다. 족쇄를 찬 모리온도르는 도망치지 못한다. 갈라드리엘은 검을 거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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