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k Text:
갈라드리엘은 다시 초소로 돌아갈 때의 결심과는 다르게 그가 오기 전 도시로 돌아갔다. 결심 했으나 그를 언제 그리고 어떻게 보낼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리고 그를 보낸다고 생각하니 공격받은 에레기온이 떠올랐다. 그 먼 옛날의 전쟁처럼 시체가 즐비하고 매캐한 냄새가 풍기던 에레기온의 모습은 켈리브림보르의 죽음만큼이나 자신을 찢어놓았다. 모두 자신의 오판에 의한 결과이고 결코 되갚지 못 하리라 생각했었다. 아다르도 사우론 만큼이나 그 모든 비극에 얽혀있다. 그는 자신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사우론을 죽이겠다는 일념으로 에레기온을 공격했다.
아다르는 동족을 죽였다. 그리고 그 결과로 그 자신의 동족에게 죽었다.
그를 보낸다면 만약 그가 다시 오르크를 규합한다면 그 화살은 어디로 향할까? 요정이 그에게 무사할까? 아니. 만에 하나 그가 사우론만을 노린다고 하여도 요정이 그를 두고 보지 않을 테고 결국 전쟁이 일어난다. 이 사실만은 분명했다. 하지만 오히려 그가 살아 돌아간다면 사우론 아래 규합해야 할 오르크들은 분열한다. 그렇다면 사우론의 힘은 약해진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요정의 가정이었다. 엘론드라면 그를 린돈으로 데려가 대왕 앞에 무릎 꿇게 하고 재판했겠지만, 그는 엘론드가 아니다. 아론디르라면 그를 죽이고 목을 가져갔겠지만, 그는 아론디르가 아니다. 갈라드리엘은 그들과 달랐다. 그들은 사우론을 모르고 배제당하지 아니하였다.
그 모든 불안과 의심에도 불구하고 갈라드리엘은 그를 보낼 참이다. 종족을 대신에 그를 용서하는 것도 적을 살리는 것도 아니다. 모두가 그렇게 볼지라도.
“오르크 다섯을 보았습니다. 바란두인 강을 넘어 숲과 산으로 숨어든 것들이었습니다. 숲에 더 포진해있으리라 예상합니다. 대대적인 수색이 필요합니다.”
수색대를 지휘하는 대장이 길 갈라드에게 말했다.
“북부 사령관이 남서쪽에서 처리한 오르크도 있지.”
“네. 그래서 여기.” 대장이 정중한 몸짓으로 남서쪽 부근을 가리켰다. 갈라드리엘은 그곳이 어디인지 한눈에 알아보았다.
“지난 전쟁 때 썼던 경비초소가 버려져 있습니다. 그곳을 수리해 병사를 상시 주둔시키는 것은 어떠할지요.”
갈라드리엘은 심장이 쿵쾅거리는 걸 느꼈다.
“너무 남서쪽에 치우쳐 있어. 대부분 오르크가 남동쪽을 통한다.” 서부 사령관이 말했다. 그는 갈라드리엘의 생각을 알 리 없었으나 적절한 말이 고마웠다.
“남동쪽에도 경비초소가 있지만 그들이 포진한 쪽보다 너무 북쪽에 치우쳐 있습니다.”
“어디도 답이 아니라면 새로 짓는 편이 낫겠지.”
대장의 말에 대왕이 대답했다.
“그리고 방비는 단단히 하는 편이 좋으니 버려진 경비초소도 관리하는 건 어떻겠습니까?” 서 부사령관이 덧붙였다. 대왕은 고개를 끄덕였다.
“경비초소 문제는 대장이 계속 맡는 것으로 하지.”
“네. 며칠 내에 상태를 살피고 수리를 시작하겠습니다.”
요정에게는 여유가 사라졌다. 그는 망설이지 않고 필요한 물건을 전부 챙겨 해가 지자마자 산을 올랐다. 오르는 길은 유독 길고 힘들었다. 이번에도 몰래 빠져나왔지만, 전처럼 그를 눈치채지 못했다는 확신이 들지 않았고 꼭 누군가가 자신을 미행하는 기분이었다.
경비초소까지 그는 혼자였다. 온 신경은 곤두세웠지만, 새와 곤충의 소리를 제외하면 어떤 기척도 없었다. 갈라드리엘은 안심하며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경비초소의 문을 열었다. 불빛이 들어오지 않는 초소는 조용했고 그는 전과 달리 침대에 누운 채 잠들어있었다. 마치 갈라드리엘이 오지 않으리라 생각한 것처럼.
갈라드리엘은 조용히 다가갔다. 그를 깨우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라 마치 누군가에게 들킬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는 갈라드리엘이 그의 어깨에 손을 뻗기 전 일어섰고 그대로 갈라드리엘의 팔을 잡고 밀었다. 갈라드리엘은 중심을 잃고 뒤로 넘어졌고 아다르는 족쇄 끝 뾰족한 끝을 그에게 향했다. 갈라드리엘은 자신의 가슴께를 누르는 팔을 느꼈다. 하지만 그는 상대를 확인하곤 바로 일어섰다. 다리는 여전히 온전치 않아 절뚝거렸다.
“누구라고 생각한 거지?”
“오늘 낮 이 부근을 어슬렁거리는 요정이 있었다. 무장을 했더군.”
“곧 이곳을 수리해서 원래의 용도… 경비초소로 쓸 예정이야. 그 때문이지.”
“우루크 때문인가?”
갈라드리엘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다리를 절며 침대로 향했다.
“그럼….”
그가 입을 여는데 갈라드리엘은 망토 안에 숨긴 묵직한 가방을 내려놓고 그에게 다가갔다. 갈라드리엘은 전 며칠과 달리 검을 차고 있었고 아다르는 그에 경계했다. 하지만 어떤 적대적인 분위기도 없었고 오히려 부드러웠으며 왼손의 네냐가 보였다. 갈라드리엘은 조심스럽게 그에게 확인시켜주듯 반지 낀 손을 눈앞에 올리고 아직 낫지 않은 다리 위에 올렸다. 반지의 힘이 그의 다리를 치유했다. 아다르는 아무 말 하지 않았지만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당황한 듯 보였다.
“왜?”
갈라드리엘은 말없이 내려놓은 가방으로 가 신발과 장갑을 꺼내 그의 앞에 놓았다.
“떠나야 해.”
요정은 그를 바라보지 않은 채 말했다. 전후 설명 없는 간단한 문장에 그는 멈칫했다.
“…널 대왕에게 데려갈 수 없어.” 갈라드리엘은 간신히 그를 보았다. 어둠 속에서는 어느 것도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네가 들키면 나도 곤란해져.”
그는 말없이 신발을 신고 장갑을 끼었다. 갈라드리엘의 눈썰미대로 꼭 맞았다. 짙은 푸른색의 요정의 옷을 입은 아다르의 모습은 어둠 속에서 영락없이 요정 같아 보였다. 갈라드리엘은 망토 안의 검을 고정한 벨트를 벗어 그에게 주었다. 첫날 그를 찾아왔을 때 가져왔던 갈라드리엘의 검이었다. 그는 말없이 받아 허리에 찼다. 이어 요정은 망토를 벗었다. 십자 요양의, 린돈의 요정들이 주로 쓰는 브로치와 함께 그에게 건넸다. 그는 잠시 파란 보석으로 장식한 브로치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이내 어두운 하늘빛의 망토를 두르고 익숙하게 핀을 끼웠다. 이 모든 일은 천이 스치는 소리만을 내며 아주 조용히 이뤄졌다.
이제 갈라드리엘에게는 어떤 무기도 없었다. 그가 그대로 요정이 준 검을 뽑아 갈라드리엘을 벤다면 속수무책으로 당할 테지만 요정은 아다르가 그러리란 가능성을 생각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갈라드리엘은 작은 가방을 주었다.
“몇 주는 버틸 수 있을 거야. 어쩌면 한 달 넘게.”
그는 의심스러워하는 눈초리로 가방 안을 보았다. 표정은 거의 바뀌지 않았으나 분명 놀란 게 틀림없었다.
“램바스?”
그가 말했다. 램바스는 특별한 이유가 아니면 만들지 않으며 흔히 볼 수 있는 음식은 아니었고, 아다르도 그걸 알고 있었다.
“오늘 병사가 왔으면 내일 바로 이쪽으로 올 거야.” 갈라드리엘이 빈 가방을 들며 말했다. “지금 떠나야 해. 거래는 끝났어.” 갈라드리엘은 문으로 향하며 말했다. 아다르는 서두르며 문으로 향하는 그를 보고만 있었다.
“다른 속셈은 없으니 의심하지 마.” 그는 항변했다. “남은 흔적은 내가 치울 거야. 동굴도 마찬가지고. 네가 이곳에 있었다는 건 누구도 알 수 없을 거다. 추적자도 없어.”
아다르가 그를 보았다. 갈라드리엘은 초를 켜 그의 표정을 확인하고 싶었다.
“…달라졌군.”
아다르가 말했다. 갈라드리엘은 그의 시선을 피했다. 무엇이 달라졌는지 알았다. 하지만 드러내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하면 걷잡을 수 없다.
“널 여전히 믿는 오르크들이 있겠지. 그렇다면 사우론 군대의 수도 줄어들 거야.” 아다르는 여전히 요정을 똑바로 보고 있었다.
“오르크가 요정을 공격하지 않겠다는 다짐이라도 하길 바라나?”
“아니. 그럴 수 없겠지.”
갈라드리엘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는 다시 회피했던 시선을 마주했다.
공통의 적을 위해 연합한다면? 불가능하다. 특히 지금 시점에서는. 그에게 항복을 요구한다면? 갈라드리엘은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했다. 그때야말로 검을 꺼내겠지. 그에게는 굴욕적인 처사다. 그는 다시 요정이 되고 싶거나 그의 편을 들고자 하는 게 아니다.
“누군가 날 알아보고, 차림새를 파악한 뒤 널 의심할 수 있다.”
아다르가 말했다. 갈라드리엘은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결심이 흔들렸다. 치료하고, 보내주겠다고 말하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마치 자신만큼이나 미련이 남은 듯, 아니라면 다른 이유가 있는 것처럼 문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이해할 수 없었다.
“이미 난 누군가에게는 절대 용서받지 못 할 일을 했어. 거기서 더한다고 해서 달라지지 않아.” 갈라드리엘은 감정을 억누르며 말했다. 그는 반지의 매끄러운 표면을 만지며 진정하려 했었다.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거지?”
“나의 뜻이다.”
갈라드리엘은 문간에 서서 문을 열었다. 서늘한 공기가 들어왔다. 아다르는 문으로 향하다가 요정에게 다가갔다. 갈라드리엘이 그를 보았다. 그가 손을 올리자 요정은 뒤로 물러섰다. 하지만 문틀이 그를 막아섰다. 갈라드리엘은 알 수 없는 감정에 긴장했고 치맛자락을 그러쥐었다. 아다르는 가만히 앞으로 내려온 그의 머리카락을 조심스레 쓸어 귀 뒤로 넘겼다.
아주 가까이 숨이 느껴졌다. 갈라드리엘은 다음에 올 그의 행동을 미리 알기라도 하듯 망토 위로 그의 팔을 잡았다. 모리온도르는 부드럽게 그리고 찰나처럼 요정에게 입 맞췄다.
“안녕히. 갈라드리엘.”
아다르는 처음부터 어떤 미련도 가지지 않은 듯 초소를 나갔다. 갈라드리엘은 요정의 눈으로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을 때까지 그가 사라진 방향을 한참 바라보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