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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한 번 순위권 안에 들면 그건 운이다. 하지만 매번 순위권 안에 든다면 그건 실력이다. 흔히들 세상은 1등만을 기억한다고 하지만 꼭 그렇지도 않았다.
브레이크다운이 좋은 예시였다. 참가만 했다 하면 무조건 10위 안에 드는 메크. 아이아콘 5000에 스파크를 바친 메크라면 브레이크다운을 모를래야 모를 수 없었다.
그를 알아본 메크도 그런 부류 중 하나일 거라 브레이크다운은 짐작했다.
"브레이크다운... 맞지?"
의문문이지만 답을 확신한 문장이었다. 최대한 침착하게 말하려 노력했지만 끝내 숨기지 못한 흥분이 삐져나와 말끝이 바르르 떨렸다. 이즈음의 브레이크다운은 어느 정도 이름이 팔린 터라, 직장에서 모르는 메크가 아는 척을 해도 그닥 놀랍지 않았다.
"그렇다고 한다면?"
"오, 프라이머스 맙소사... 실제로 보니 훨씬 더 멋지잖아!!"
머리부터 발끝까지 그야말로 온몸으로 미니봇은 '기쁨'을 뿜어냈다. 브레이크다운의 경기를 보고 홀딱 반해버렸다던 그는 조금 빠른 어조로 자기소개를 했다.
"나, 나, 나는 B-127이야. 친구들은 날 B라고 불러. 너도 B라고 불러주면 죽어도 여한이 없을 거 같... 아니, 내 말은! 그렇게 불러주면 정말 기쁘겠지만 강요할 생각은 없어. B 아니면 B-127 혹은 삐딱한 트론이라거나?"
"삐딱한 트론?"
"아."
폭포수처럼 쏟아지던 말이 뚝 끊겼다. 얼마 못 가 B-127의 얼굴이 시퍼렇게 달아올랐다. 지금 당장 터져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다. 브레이크다운의 빅팬이 모기만한 소리로 부탁했다.
"마, 마지막 말은 못 들은 걸로 해줘."
이랬다가 저랬다가 표정이 휙휙 바뀌는 게 재밌어서 브레이크다운은 일부러 짓궂게 굴었다.
"왜 그래, 삐딱한 트론? 제법 멋진 이름이잖아."
저명한 대학 교수의 생애 첫 논문, 소설가로서 등단하기 전 집필한 첫 원고 등등... 타인에 의해 발굴 당한 첫 작품을 강제로 마주한 전문가처럼 B-127은 기겁했다.
"으아아아아악!!!!"
예상을 벗어나지 않는 반응에 브레이크다운은 웃지 않으려고 입술 안쪽을 꽉 깨물었다. '말실수는 엎어진 물과 같다'라는 말이 있다지만, 자칭 그의 빅팬은 바닥을 핥아먹는 한이 있더라도 말실수를 치워버리고 싶은 눈치였다.
"진정해. 어, 그러니까... B?"
"세상에, 세상에, 세상에...! 브레이크다운이 내 이름을 불러줬어!!"
트리플 체인저가 아닌데도 저렇게 얼굴이 휙휙 바뀔 수 있군. 브레이크다운은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B-127은 묻지도 않은 입덕 과정을 재잘거리며 늘어놓았다. B-127이 알면 섭섭한 생각이지만, 처음엔 이름 좀 팔린 유명인에게 콩고물이라도 얻어먹어 볼 속셈으로 다가온 줄 알았다.
"4번째 경기에서 네 드리프트를 봤을 땐 정말 스파크가 터지는 줄 알았다니까. 거기서 속력을 줄이는 대신 회전력을 이용하다니...!"
그는 당사자도 기억이 가물가물한 경기까지 상세하게 꿰고 있었다. 잠깐이나마 의심한 게 머쓱할 정도였다. 이 녀석, 진심으로 나 좋아하나봐. 사심이라곤 전혀 없는 순수한 팬심에 브레이크다운의 디펜스가 조금씩 허물어졌다.
한참 떠들다 말고 B-127이 브레이크다운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레 물었다.
"한 번쯤 네 경기를 직관하는 게 내 평생소원이었는데... 또 언제 참가해?"
아이아콘의 지도자가 바뀌면서 덩달아 많은 것이 바뀌었지만 아이아콘 5000은 여전히 개최되었다. 옵티머스가 바란 건 아이아콘의 보다 나은 미래였지, 센티넬의 잔재를 완벽히 지우는 게 아니었다. 무엇보다 아이아콘 5000은 시민들에게 무척 인기 좋은 스포츠였다. 그걸 하루아침에 없애버렸다간 무슨 후폭풍을 불러올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었다.
브레이크다운은 어깨만 으쓱할 뿐, 확실한 답을 주지 않았다.
"글쎄. 지금은 휴식 기간이라."
"그래... 아쉽네. 아, 아니! 아쉽지만 좋은 퍼포먼스를 내려면 휴식도 중요하지! 내 말은 너무 신경 쓰지 마."
가만히 듣고 있던 브레이크다운이 B-127에 대한 인상을 입으로 툭 내뱉었다.
"너 참 희한해."
"희한하다니, 뭐가?"
"보통은 1등을 좋아하지, 나처럼 매번 순위권 안에서만 오르락내리락하는 선수를 좋아하는 경우는 잘 없으니까."
아는 것과 좋아하는 것은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특히 유명세는 둘의 구분선을 불분명하게 만든다. 명성을 얻자고 참가한 건 아니었다. 그러나 원치 않게 메크들 입에 연신 오르내리고 다른 선수들과 비교당하는 일을 당하면, 제아무리 남들 시선을 신경 쓰지 않는 브레이크다운이라도 순위를 자꾸 신경 쓰게 된다. 재참가를 몇 번이고 망설이게 하는 결정적 이유였다.
시시콜콜 털어놓지 않았어도 어떤 속사정을 짐작했는지 B-127은 황급히 입을 열었다.
"네가 1등이든 꼴등이든 상관 없어!"
B-127 입장에서는 기죽지 말라고 건넨 말이었지만 오히려 브레이크다운에게 미미한 스크래치를 남겼다.
"아니, 그건 좀. 꼴등은 내가 싫은데."
"그게 아니라... 내 말은... 으으, 뭐라고 해야 좋지..."
문득 브레이크다운은 스스로가 한심하게 느껴졌다. 오늘 처음 만난 메크에게 대체 뭘 바라는 거람. 적당히 주제를 돌려야겠다고 생각하던 와중, 드디어 할 말을 찾아낸 B-127이 입을 열었다.
"난 네가 경기에 임하는 모습이 좋아."
"뭐?"
"자칫 코스에서 튕겨 나갈 뻔한 위기를 재치 있게 극복하는 것도, 뒤따라 잡혔다고 생각했을 때 보란 듯이 치고 나가는 것도, 1등은 정해졌어도 마지막까지 즐겁게 달리는 것도."
브레이크다운의 경기에서 좋았던 점을 하나씩 나열하는 B-127의 눈이 반짝거렸다. 파랗고 하얗게 반짝이는 두 눈에서 브레이크다운은 시선을 뗄 수 없었다. 곱게 빻은 별가루를 뿌려놓은 듯 찬란하게 반짝이는 눈이 수줍게 말했다.
"전부 다 좋아해."
"어, 음... 그러니까... 고마워?"
희한하다고 했지만 브레이크다운 본인도 B-127더러 뭐라 할 처지가 못 됐다. 보통 메크 같았다면 오늘 처음 보는 이가 자길 좋아한다 해도(연애적 호감이 아니지만 넓게 보자면 그렇다는 이야기다) 일단 벽을 세울 것이다. 지금의 자신처럼 얼굴을 붉히고 내심 좋아할 게 아니라.
'이건 분명 직장 스트레스 때문이야.'
브레이크다운을 낯 뜨겁게 만든 장본인은 컴링크를 받고는 친구가 자길 찾는다며 바람같이 사라졌다. 멀어지는 뒤통수를 빤히 지켜보던 와중에 기시감이 들었다.
'왜인지 아주 낯설지가 않은데...'
어디서 봤던가? 자기처럼 경주에 참가한 적 있는 메크였던가? 아니면 술집? 혹은 아이아콘 5000을 제외한 다른 레이싱 경기장? 어디서 지나가다 봤다면 언젠가 또 볼 수도 있겠지. 이름이라도 알았으니 되었나.
오전 일을 마치고 식당으로 가던 직장 동료가 창밖에 있는 브레이크다운을 보고 말을 걸었다.
"브레이크다운. 점심시간인데 여기서 뭐 해? 벌써 식사 다했어?"
직장 동료의 질문에 브레이크다운은 시간을 확인했다.
"아니, 아직.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어?"
"안 먹었음 같이 가게. 그것보다, 너 들었어? 우리 병원에 옵티머스 프라임이 왔다는데."
"옵티머스 프라임이 여길 왜?"
"모르지. 건강 검진이라도 받으러 왔나? 아, 우리 오후에 환자 이송 잡혔어. 시간은 조율하는 대로 병동에서 알려준다고 했으니까 그렇게 알고 있어."
브레이크다운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벌써 피곤이 몰려오는 기분이었다.
"저번처럼 초대형 개체만 아니면 좋겠어."
코그를 가진 메크여도 치명적인 부상을 입거나, 심각한 오염 물질에 노출되면 트랜스폼이 불가능했다. 또는 상세 불명의 메인 회로 전산 오류가 발생하거나.
얼마 전, 브레이크다운과 체격이 비슷한 메크 3명이 붙어서 겨우 옮긴 환자가 있었다. 어찌나 힘들었던지. 일이라는 게 입맛대로 골라 오지 않다는 걸 알지만 그래도 피할 수 있다면 피하고 싶었다.
"발명가들은 뭐 하는 걸까? 어떤 물체든 줄였다, 늘렸다 하는 물건 좀 만들어주지. 그거 하나 성공하면 말 그대로 대박이 날 텐데."
직당 동료의 농담에 적당히 맞장구치며 식당으로 이동하던 브레이크다운은 조금 전에 만났던 자신의 빅팬을 먼발치서 다시 볼 수 있었다. 이번엔 혼자가 아니었다. 직장 동료가 미니봇의 동행자를 보고 헉 소리를 냈다.
"헐, 옵티머스 프라임이야! 솔직히 반신반의 했는데 진짜였나봐."
"...그러게."
브레이크다운은 옵티머스 프라임의 과거, 그러니까 오라이언 팩스를 직접 본 적 없지만 들은 소문은 몇 있었다. 엉뚱하고 괴팍한 광부, 가는 곳마다 일을 키우는 사고뭉치, 겁을 상실한... 하지만 자신의 눈으로 본 젊은 지도자는 소문 속 오라이언 팩스와 달라도 너무 달랐다.
역시 소문은 소문일 뿐인가? 오라이언 팩스를 아는 메크 특히 광부 동기들이 브레이크다운의 생각을 들었다면 대번에 나설 소리다. 특히 엘리타 원은 손가락까지 꼽아가며 오라이언 팩스가 저지른 바보 같은 실수 TOP 10을 친절히 나열할 것이다.
B-127은 처음 만났을 때와 다르게 배틀 마스크를 쓴 상태였다. 얼굴을 가렸을 뿐인데도 보다 침착한 인상을 주었다. 그제야 브레이크다운은 B-127에게서 느낀 기시감이 어디서 왔는지 알아차렸다.
'아하, 어디서 봤나 했더니.'
옵티머스 프라임은 미디어를 이용해 자신의 모습을 대대적으로 내보내는 일이 적었다. 대신 이따금 미디어를 통해 나설 때마다 프라임 근처엔 늘 미니봇이 있었다. 아이아콘처럼 녹슬지 않는 황금빛 메크가.
현관을 통해 병원을 벗어나는 둘에게서 브레이크다운은 한참 동안 시선을 떼지 못했다.
"나 다음 아이아콘 5000에 참가할까봐."
"갑자기?"
직장 동료는 깜짝 놀라 물었다. 놀라기는 브레이크다운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왜 이런 말을 했지? 그는 점심 메뉴를 읊는 회사원처럼 최대한 덤덤히 말했다.
"너무 오래 쉬었잖아. 도전할 때가 됐지."
"뭐, 그렇긴 하지. 잘해봐라."
"좋은 일 있었어? 들떠 보이는데."
"아, 티 났어?"
B-127은 큰 소리로 말하려다가 아직 근무 중임을 깨닫고 귓속말로 소곤거렸다.
"나 있지, 브레이크다운을 봤어!"
"브레이크다운이라면... 아이아콘 5000의 그?"
"맞아!"
B-127의 긍정엔 흥분이 잔뜩 묻어났다. 가슴께까지 올라온 두 주먹을 불끈 쥔 게 그가 얼마나 신이 났는지 알 수 있었다. 옵티머스가 채 묻기도 전에 미니봇은 신이 나서 브레이크다운과 나눈 대화를 종알종알 얘기했다.
"광부였을 때부터 줄곧 팬이었거든! 가까이서 실제로 보니까 영상 속에서 본 것보다 훨씬 멋지더라. 아, 사인 받아놨어야 했는데 깜빡했어. 다음번에 찾아가서 신청하면 받아줄까? 그런데 또 찾아가면 부담스럽겠지? 아직 경기 참가 계획이 없다는 메크를 내가 또 찾아가면... 아, 옵티머스는 모를 수도 있겠구나. 브레이크다운은 주기적으로 경기에 참가했는데 이번엔 정해진 기간을 훌쩍 넘었거든. 본인 말로는 휴식 기간이라고 하지만 어쩌면 부상 이슈가... 어쩌구 저쩌구..."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B-127의 수다를 곧잘 경험한 옵티머스는 어느 정도 면역이 있었다. 잠깐 생각할 여유까지 지닌 정도였다. 아이아콘 5000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많은 이들이 좋아했다. 광부들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아주 빠삭하진 않아도 오라이언 팩스 역시 경기에 관해 남들과 대화를 나눌 만큼의 지식은 있었다.
참가할 때마다 순위권 안에 드는 레이서, 다소 과격한 무대포 기질의 소유자(해설자들의 평가였다), 위기에 처할수록 강해지는 선수... 브레이크다운에 대해 아는 것이라곤 이게 전부였다.
어느덧 B-127의 수다 주제는 흘러 흘러 아이아콘 5000 굿즈로 떠내려갔다.
"왜 아이아콘 5000은 굿즈 생산을 안 할까? 브레이크다운 피규어나 스티커가 나오면 내 전 재산을 털어서라도 다 살 텐데."
"...글쎄."
B-127의 소원이 실현된다면 그가 어떤 결말을 맞이할지 옵티머스는 잠깐 미래를 엿본 거 같았다. 패가망신. B-127이 알면 섭섭할 생각이지만 옵티머스는 감히 확신했다. 가슴 안의 매트릭스도 걸 수 있었다.
"없다면 직접 만들어보는 게 어때?"
나왔다. 오타쿠를 향한 순진하고도 악의 한 점 없는 일반인의 질문. 과거 D-16이 그 말에 어이없어하는 한편(그게 말처럼 쉬운 줄 아냐?), 흔들리다가 끝내 도전하는 계기가 되었다.
메가트로너스 프라임 피규어가 세상에 없는 건 아니었으나, 광부 수입으로는 엄두도 못 낼 만큼 비싼 까닭도 있었다.
결과는... 간단히 말하자면 D-16은 포기했다. 손재주가 없어도 너무 없었기 때문이다. 그가 포기를 택하고 남긴 말은 지극히 오타쿠스러웠다.
나의 메가트로너스 프라임은 이렇지 않아...
반면 B-127은 손뼉을 치며 뛸 듯이 기뻐했다.
"듣고 보니 그러네. 내가 왜 그 생각을 못 했지? 옵티머스, 너 정말 똑똑하다!"
그에겐 어떤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까. 취미는 취미로 즐기라는 말이 있다지만, 진심일수록 잘하고 싶은 게 메크 마음이다.
문제 해결형 타입인 옵티머스로서는 자기가 내놓은 해결책이 받아들여져서 기분이 좋았다. 한편으로는 꺼림칙한 마음도 들었다. 그저... B-127이 수다 주제를 브레이크다운에서 다른 걸로 옮겼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브레이크다운처럼 거친 성향을 가진 메크는 B와 상성이 맞지 않을 거 같은데...'
문제 해결형 타입의 장점이자 맹점은 모든 걸 일단 분석하고 보려는 성향이다. 때문에 옵티머스는 자기가 느끼는 부정적인 감정을 그저 B-127이 이상한 메크와 어울릴까 걱정하는 걸로 분석해버렸다.
걱정과 다르게 B-127의 일상은 평온히 흘러갔다. 옵티머스는 차츰 브레이크다운에 대한 일을 잊어갔다. 계속 기억하고 있기엔 그가 너무 바쁜 메크인 점도 한몫 했다. 그러던 어느 날, B-127이 잔뜩 흥분한 얼굴로 옵티머스를 찾아왔다. 어깨가 연신 들썩이는 폼이 그가 얼마나 허둥지둥 뛰어왔는지 가늠케 했다.
"옵티머스, 이거 봤어?!"
다짜고짜 B-127은 데이터 패드를 내밀었다. 피곤함에 찌든 옵티머스의 시선이 데이터 패드로 옮겨갔다. 미니봇이 보여준 건 금일 개최된 아이아콘 5000 참가자 목록이었다. 빼곡히 나열된 이름들 사이로 그들이 아는 이름이 보였다.
"브레이크다운...?"
"그래, 브레이크다운! 브레이크다운의 경기를 직관하는 게 내 평생 꿈이었는데. 같이 보러 갈래, 옵티머스? 너 휴일도 없이 계속 일했잖아. 한 번쯤은 숨돌릴 시간도 필요해."
좋은 자리는 지금쯤 매진이겠지만 운이 좋으면 말단석 정도는 얻을 수 있었다. 흔쾌히 그러겠다고 자리에서 일어날 줄 알았지만 옵티머스는 쓴 미소와 함께 거절을 표했다.
"미안."
"왜... 별로야?"
"그게 아니라. 오늘까지 검토해야 할 안건이 많아. 경기는 다음 번에 같이 보러 가자. 미안해, B."
말은 이렇게 했지만 지켜지기 어려운 약속임을 둘 다 알았다. 옵티머스 프라임은 언제나 바빴다. 해결해야 할 문제는 아이아콘의 시민들보다 많았으며, 어느 하나 쉬이 해결하기 어려운 일들 뿐이었다. 그의 곁에는 뜻을 함께하는 이들이 많았다. 그런데도 옵티머스는 아이아콘에 상주하는 모든 문제를 프라임 혼자 해결해야 된다는 메크처럼 굴었다. 바로 지금처럼.
상심한 B-127의 표정을 볼 자신이 없었던 옵티머스는 일부러 패드에만 시선을 고정했다. 실망 어린 목소리로 알았다는 답변이나, 집무실을 나서는 무거운 발걸음을 기다렸다. 그러나 B-127의 선택은 의외였다.
"내가 도와줄 일이 있을까?"
"뭐?"
의외의 반응에 옵티머스는 자신의 청각 센서를 의심했다. 저도 모르게 옵티머스는 B-127을 보고 말았다. 미니봇의 얼굴엔 실망도, 분노도 없었다. 눈앞의 친구를 돕고 싶다는 안쓰러움만이 가득했다. 옵티머스는 손을 저으며 사양의 뜻을 내비쳤다.
"아니, 괜찮아."
"괜찮기는. 옵티머스, 너 최근에 거울 본 적 없지? 옵틱 밑이 아주 새까매. 그늘이 턱까지 내려왔다구. 누가 보면 광산에 구르다 온 줄 알겠어."
"광산에 구르다 온 건 맞지."
"아잇, 내 말은 그런 뜻이 아니라. 얼굴이 아주 초췌해서 못 쓰겠어!"
"그건 좀... 아픈데."
공격 받은 메크처럼 옵티머스가 가슴을 움켜쥐었다. 혹여 자기가 말실수를 한 걸까 깜짝 놀란 B-127이 급히 사과했다.
"미, 미안해. 상처 주려고 한 말은 아니었어. 나는 그저 옵티머스가 쉬었으면 해서..."
조금씩 나아지고 있지만 지금처럼 갈등이 생길라치면 B-127은 눈에 띄게 불안해했다. 친구 사이라면 짓궂게 주고 받을 수 있는 농담이라도. 이대로 뒀다간 사고가 어디로 튈지 몰라 옵티머스는 여기서 적당히 장난을 끊었다.
"농담이었어, B. 그보다 정말 아이아콘 5000은 안 가봐도 되겠어? 평생소원이라며."
"아쉽지 않다면 거짓말이지만, 괜찮아. 언젠가 기회는 또 오겠지."
"그렇다면..."
옵티머스가 일어났다. 오래 앉아있던 탓에 전신이 뻐근했다. 그는 데이터 패드들로 어수선한 테이블을 대충 치웠다. 딱 찻잔 2개를 놓을 정도의 공간이 생겼다.
"너 말대로 숨 좀 돌리고 다시 할까. 차 마실래?"
"와, 프라임이 손수 내주는 차라니. 나 진짜 출세했나봐."
"그렇게 대단한 건 아니야."
그새 손님 접대에 능숙해졌다고 차를 준비하는 옵티머스의 행동엔 막힘이 없었다. 프라임의 권유대로 접대용 의자에 앉아 차를 기다리는 동안 B-127은 누군가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미안, 사정이 생겨서 직관은 못 할 거 같아. 오늘 경기 잘해. 응원할게!]
브레이크다운의 미간이 구겨졌다. 대기실에서 몸을 풀던 스윈들이 그에게 헤드락을 걸었다.
"이봐, 왜 갑자기 뭐 씹은 얼굴이야?"
"알 거 없어."
"우리 사이에 그리 매정하게 굴 것까진 없잖아."
메크가 문자 보고 기분이 나빠지면 둘 중 하나다. 돈(이라 쓰고 빚이라 읽는다) 아니면 연애 문제. 느낌 상 돈은 아닌 것 같고...
"애인에게 차였어?"
"애인은 무슨.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그럼 썸이네. 이름은 뭐야? 나이는? 어디서 사는데? 뭐 하는 친구고?"
"몰라. 알아도 안 가르쳐 줄 거야."
"모르는데 썸이라니 말이 돼? 치사하게 굴지 말고. 어쩌다 알게 됐어? 응? 응?"
대답해 줄 때까지 멈추지 않겠다는 듯이 뺨을 콕콕 찌르는 손가락 공격에 브레이크다운은 손을 쳐내며 마지못해 답했다.
"어쩌다 보니... 내 팬이라나, 뭐라나."
"어이쿠야. 봄이네, 봄이야. 좋으시겠어요, 브레이크다운 씨."
"시끄러워."
대기실 천장에 설치된 스피커에서 안내 방송이 나왔다.
[곧 경기가 시작되오니 선수들은 경기장으로 속히 입장하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번 알려드립니다. 곧 경기가 시작되오니 선수들은 경기장으로 속히 입장하시기 바랍니다.]
방송이 끝나자 선수들은 하나둘 경기장으로 향했다. 스윈들 역시 그들 틈에 섞였다.
"나중에 기회 되면 얼굴 보여줘. 누군지 몰라도 진짜 궁금하거든."
가르쳐 줄까보냐. 브레이크다운은 속마음을 숨기고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아직 이동 전인 선수들을 향해 스태프들이 입장을 채근했다. 스태프들에게 등 떠밀라며 브레이크다운은 재빨리 답장을 보냈다.
[경기는 라이브로 보지 말고 내일 봐. 리차징 못 들 만큼 끝내주는 경기를 보여줄테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