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Text
"새로운 시대 그리고 새로운 프라임을, 위하여!"
"위하여!!"
높이 치켜든 술잔들이 가벼이 부딪혔다. 광부 아니, 이제 진짜 아이아콘 시민이 된 그들은 단숨에 술을 들이켰다.
"캬아, 술이 달다, 달아!"
"좀 천천히 마셔. 너 그러다 훅 쓰러진다."
"무슨 소리야. 이런 날일수록 마셔줘야지!"
"내버려 둬. 내일 호되게 앓아봐야 정신을 차릴 걸."
"그래, 이제 늦게 일어난다고 뭐라 할 녀석도 없으니까."
"정말이지, 꿈만 같아. 에너존을 캐러 가지 않아도 된다니."
예전 같았다면 꿈도 못 꿀 일이다. 배정된 시각 보다 늦으면 기다리는 건 감독의 폭언과 폭력이었다. 아프거나 다쳐도 예외는 아니었다. 벌써 술에 취한 메크 하나가 자기 가슴을 쿵쿵 두드렸다.
"그게 다가 아니야. 우리도 이제 코그가 있어. 변신할 수 있다고!"
"너무 기뻐. 흑, 또 눈물 나..."
"뚝! 기쁜 날엔 울지 말고 웃어야지. 자자, 건배!"
"건배!"
센티넬 프라임이 권력을 잡기 위해 사이버트론과 프라임들을 배신했다. 그야말로 하늘과 땅이 뒤집히는 대사건이었다. 진실이 일파만파 퍼졌을 때 누군가는 이렇게 생각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사이버트론을 이끌어오던 센티넬이 그런 식으로 죽었으니 분명 혼란이 찾아오겠구나. 많은 이들이 그렇게 생각하며 불안에 떨었다.
하지만 혼란과 변화는 종이 한 장 차이다. 가장 큰 변화는 단연 광부들이었다. 메말라버린 에너존이 다시 흘러넘치게 풍족해졌으니 더 이상 일을 할 필요가 없어졌다. 무엇보다 자신들에게도 태어날 때부터 코그가 있었다는 사실은 주눅 들던 어깨를 활짝 펴기에 충분했다. 코그는 단순히 변신을 가능케 해주는 기관 정도가 아니다. 그들 또한 사이버트론의 후손이라는 정체성이었다. 그걸 되찾았으니 기쁨이 오죽할까. 이제야 진정한 사이버트론의 시민으로 거듭난 이들은 희망찬 미래를 얻은 것에 기뻐하며 파티를 기획했다. 오늘이 바로 그날이었다.
파티 장소는 광부들이 많이 찾던 술집이었다. 몸집이 커진 손님들을 위해 술집 주인은 큰맘 먹고 가게를 확장했다. 그래도 손님 전부를 수용하기엔 공간이 턱없이 모자랐다.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꽃을 피우거나, 미리 틀어놓은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와중에 재즈가 무대 위로 올라갔다. 주위가 차츰 어두워졌다. 스포트라이트를 따라 자연스럽게 모두의 시선 또한 무대 위의 가수에게 집중됐다. 익살스러운 인사말을 시작으로 경쾌하고 신나는 노래가 터져 나왔다. 술과 음악에 취한 관중들은 열광의 도가니에 빠져들었다.
무대와 동떨어진 자리에서 조용히 지켜보던 엘리타 곁으로 누군가가 다가왔다.
"합석해도 돼?"
오늘 파티의 주인공. 옵티머스 프라임이었다. 엘리타는 손짓으로 맞은 편의 빈자리를 권했다.
"고마워."
"인기가 많아, 프라임. 더 즐기다 오지. 예상보다 빨리 탈출했네?"
그녀의 시선이 옵티머스의 안테나에 닿았다. 양쪽 안테나에 하나씩 걸려있는 미니 고깔이 참으로 앙증맞았다. 엘리타의 잔이 비었음을 알아차린 옵티머스는 재빨리 빈 잔을 채워주었다.
"그건 내가 할 소리지. 너야말로 왜 혼자 여기 있어?"
"원래 이런 자리는 좀 어색하거든."
"말도 안 돼. 엘리타, 네가?"
"왜 말이 안 돼?"
"그야, 넌 언제나 누군가를 이끄는 자리에 있었으니까. 그래서 메크들에게 둘러싸이는 걸 좋아한다고 생각했어."
"남을 이끄는 것과 함께 하는 건 달라. 너도 곧 알게 될 거야. 이미 알 수도 있고."
기타를 연주하며 노래를 부르던 재즈가 인파들 틈으로 보이는 프라울을 가리켰다.
"거기, 잘생긴 신사 분! 홀로 우두커니 앉아있지 말고 여기로 와요!"
그 말에 프라울을 제외한 모두가 세상 떠나가라 웃었다. 갑작스레 시선을 한 몸에 받게 된 프라울은 썩은 미소로 화답했다. 거절한다는 의미로 손을 저었으나 효과는 없었다. 결국 프라울은 재즈 손에 이끌려 무대 위로 올라오고 말았다. 술에 취한 메크들이 한마음으로 외쳤다.
"보여줘! 보여줘!"
"보여주긴 뭘 보여줘?!"
"하하하하!!!"
모두의 시선이 무대로 쏠린 틈을 타, 엘리타가 본론을 물었다.
"그래서, 여기 왜 왔어?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눈치인데."
"아니, 난, 그냥..."
옵티머스는 횡설수설했다. 섣불리 꺼내기 힘든 주제인 모양이었다. 엘리타는 옵티머스의 잔을 채워주며 그를 진정시켰다.
"괜찮아. 지금이라면 아무도 못 들어. 다들 무대만 보고 있잖아."
옵티머스는 깊은 한숨과 함께 속내를 꺼냈다.
"아무도 D에 대해 말하지 않아."
깊게 가라앉은 푸른 눈이 빈 옆자리를 응시했다. 빈 자리가 2개 있으면 옆자리는 언제나 D-16의 것이었다.
"처음부터 D-16이란 광부는 없었다는 듯이. 누구도 녀석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지 않아. 실수로 누가 입에 올리면 내 눈치를 보면서 주제를 돌려."
"그건 다들 널 배려해서..."
"알아. 나도 안다고. 난 그저..."
답답한 마음에 옵티머스는 엘리타가 따라준 잔을 두고 아예 병째로 들이부었다. 병나발 부는 프라임이라니. 오랫동안 프라임들을 보필해온 이들이 봤다면 제발 위엄을 지키라며 뒷목 잡을 광경이었다. 엘리타는 등받이에 몸을 기대었다. 그녀는 직설적으로 물었다. 애당초 빙빙 돌려 묻는 건 자신의 성미와 맞지 않을 뿐더러 비효율적이었다.
"넌 어떻게 하고 싶어?"
옵티머스는 쉬이 말을 꺼내지 못했다. 내 눈치 볼 필요 없다 말하고 싶은가? 함께 욕해주길 원하나? 그도 아니면 D-16을 그리워 하거나 편들어 주길 원하는 걸까? 그는 솔직히 대답했다.
"잘 모르겠어."
"옵티머스, 저기 봐."
엘리타는 무대를 감상하는 관중들을 하나씩 가리키며 말했다. 광부였던 시절, 같은 구역에서 일했던 이들이라 얼굴과 이름 정도는 옵티머스도 알고 있었다.
"휠잭과 퍼셉터는 얼마 전부터 공부를 시작했어. 듣자 하니 과학에 관심이 많은 거 같아. 라쳇은 의학 쪽으로 진학할 계획이래. 재즈는 보다시피 음악에 취미를 붙였지."
소소한 뿌듯함을 느끼며 옵티머스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거 잘됐네."
"하지만 쟤들처럼 방향을 잡은 건 극소수야. 대부분은 아직도 방황하고 있어."
엘리타가 이어 말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에게 선택지란 없었어. 광부로 태어나 광부로 죽는 게 유일한 길이었지. 좁은 통로인 줄 알았던 길이 갑자기 펼쳐지면서 허허벌판이 됐는데, 거기서 당황하지 않고 척척 걸어갈 수 있는 메크는 몇 없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야?"
"D를 신경 쓰기엔 다들 자기 앞가림도 벅차다는 소리야."
한평생을 광부라는 틀에 맞춰 살아왔다. 그걸 깨트리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코그를 얻고 몸은 변했어도 의식까지 바뀌려면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당장은 기쁨이 더 커서 내색하지 않을 뿐이지, 앞날을 걱정하는 자들도 많았다.
"D가 그런 선택을 내린 건 나도 유감이야. 언젠가는 네 진심이 통해서 후회하고 돌아올지도 모르지. 그래, 언젠가는. 하지만 지금 당장은 아니야. 자기가 틀렸을 수도 있겠다고 순순히 인정하는 메크는 생각보다 많지 않아. 돌이킬 수 없는 과오가 크면 클수록 더더욱."
그 말을 들은 옵티머스는 침묵에 잠겼다. 하지만 엘리타는 알았다. 침묵이 수긍은 아니란 걸. 상대방의 얼굴이 점점 어두워졌다. 엘리타는 속으로 혀를 찼다. 파티의 주인공이 이러면 즐기는 이들도 불편해진다.
"나가서 바람 좀 쐬고 오는 게 좋겠어. 누가 널 찾으면 내가 잘 둘러댈게."
바깥으로 나온 옵티머스는 정처 없이 걸었다. 모든 게 낯설었다. 눈높이 하나 달라졌다고 세상이 이리 달라 보일 수 있다니. 지나치는 행인들 대부분이 술에 취해 인사불성이었다. 개중에 정신이 멀쩡한 자들은 옵티머스를 알아보고 존경을 표했다. 못내 어색하고 껄끄러워 쫓기듯 자리를 벗어났다. 지금은 아무도 없는 곳으로 가고 싶었다. 한 쌍의 호박석이 그의 시야를 가로지르기 전까지는.
"D...?"
건물들 사이로 D-16이 서 있었다. 코그를 얻기 전의 모습을 하고. 시선이 마주쳤다고 느낀 순간, D-16이 뒤돌아서서 달려갔다. 점점 멀어지는 뒷모습에 초조해진 옵티머스는 황급히 그를 쫓아갔다.
"잠깐만, 기다려...!"
어떻게든 쫓아가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커다랗게 변한 몸으로는 역부족이었다. 상체가 건물들 틈에 꽉 끼어서 옴짝달싹도 할 수 없었다. 이러다 D를 놓치기라도 하면. 혹시나 자길 기다려주고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 앞을 보면, 누군가의 눈인 줄 알았던 빛은 고장 난 네온사인의 반짝임이었다. 옵티머스는 맥이 탁 풀렸다.
"...하... 하하하..."
자신의 처지가 너무 우스웠다. 딱 잘라 추방형을 내려놓을 땐 언제고 구질구질하게 궁상이나 떨고 있다. 누가 보기 전에 어서 빠져나가자. 옵티머스는 상체를 뒤로 당겼다. 그러나 꼼짝도 하지 않았다. 몇 번을 시도해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상체가 틈에 끼어 하체만 엉거주춤하게 내민 꼴이었다. 이를 어쩌나 싶은 순간, 발소리가 들렸다. 프라임의 체면이고 뭐고 옵티머스는 도움을 요청하기로 마음 먹었다.
"저기, 잠깐만! 여기 좀 도와줘요."
발소리가 멈췄다가 탁탁 소리가 내며 점점 가까워졌다. 친근한 목소리가 말을 걸어왔다.
"옵티머스? 너야?"
"B?"
"거기서 뭐 해? 너도 숨바꼭질 중이야?"
뭘 잘못 봐서 건물 사이에 몸을 들이박았다고 말 할 수 없었다. 그는 적당히 둘러댔다.
"어, 뭐, 비슷하지... 그보다 나 좀 도와줄래? 나 혼자서는 도저히 몸을 뺄 수가 없어서 말이야."
"흐음, 잠깐만 있어 봐."
쉭하고 좁은 틈에서 작고 날렵한 것이 튀어나오는 소리가 났다. 옵티머스는 이 소리를 들어본 적 있다. 이건 B-127이 내장형 무기를 꺼낼 때 나는 소리였다.
"어, B? 검은 왜 꺼내?"
"가만히 있어. 금방 꺼내줄게."
"아니, 도와주는 건 고마운데. 칼은 넣어두면 안 될까?"
설마 가드들을 동강 내던 것처럼 날 동강 내서 꺼내겠단 계획은 아니겠지? 옵티머스는 아등바등 몸부림쳤다. B-127이 경고했다.
"옵티머스, 가만히 있어. 움직이면 안 돼?"
프라이머스 맙소사. 이러다 최연소로 생을 마감한 프라임으로 기록되게 생겼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