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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 took my heart (i was sleeping)

Summary:

호킨스에 겨울이 찾아왔고, 마이크와 윌은 더 이상 대화하지 않았다. 마이크의 집에 얹혀 살던 윌은 마치 투명 인간이 된 듯 그의 시간 대부분을 지하실에서 보내곤 했다.

전기가 나갔을 때, 윌이 마이크를 마주하는 것보다 더 두려워했던 것은 단 두 가지였다.

1. 추위,

- 그리고

2. 이제는 친구가 아닌 그와 7일동안 같은 침대에서 잠을 자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Notes:

(See the end of the work for notes.)

Chapter Text

숟가락이 윌의 손가락에서 미끄러져 시리얼 그릇에 경쾌하게 부딪혔다. 그 소리는 11월 아침의 윌러네 식탁에서 시끄럽게 울렸고, 윌은 그 소리에 마치 잠에서 방금 깬 듯 깜짝 놀랐다.

"죄송해요," 윌이 작게 읊조리며 매사 깨끗한 식탁에 쏟아버린 우유를 소매로 빠르게 닦아냈다.

거실로부터 윌러 아저씨가 신문지를 넘기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는 마치 그를 향한 경고처럼 짧고 날카로웠다. 윌러 아저씨는 그간 윌과 조나단을 집에서 쫓아낼 이유를 찾고 있었기에, 소파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뉴스를 읽는 그의 신성한 아침 루틴을 방해하는 건 아마 윌의 상황에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었다.

홀리는 그녀의 숟가락을 시리얼에 떨어트리곤 키득거렸다. 그녀와 윌러 아주머니는 평소처럼 일찍 일어났다. 윌은 이 시간을 가장 좋아했다 - 윌, 홀리, 그리고 윌러 아주머니까지 단 세 명이 주방에 있는 시간을.

"얘야, 많이 피곤해 보이는데 괜찮니?" 윌러 아주머니가 말을 건넸다. 그녀의 목소리는 홀리가 숟가락으로 만들어내는 소음 위를 동동 떠다녔다. 그녀는 홀리의 가방에 점심 도시락을 넣으며 물었다. "잘 못 잤어?"

윌은 자신의 숟가락을 그릇에서 건져냈다. "아녜요, 그런 거. 저 괜찮아요."

윌러 아주머니는 아침에서까지 완벽한 상태의 립스틱을 얹은 입으로 웃어 보이며 말했다. "너도 알겠지만 겨울엔 지하실이 몹시 추워지니까, 히터 눈치 보지 말고 틀어. 알겠지?"

사실은, 히터는 매일 밤마다 최대치로 틀어져 있었고 윌은 윌러네 집에서 꽁으로 얹혀사는 데 이어 그들에게 전기세 폭탄까지 선사하는 데에 있어 꽤나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그 죄책감은 그가 한기에 갖고 있는 두려움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추위에 대한 공포보다 더 심한 공포는 단 하나 있었는데, 그건 바로 -

"아님 겨울 동안만이라도 마이크한테 방 같이 쓰자고 물어봐도 되구. 겨울엔 2층이 훨씬 따뜻해."

거실로부터 부자연스러운 기침 소리와 신문지 넘기는 소리가 들려왔고, 곧이어 윌과 윌러 아주머니가 캐치하지도 못한 작은 중얼거림이 들려왔다.

"무슨 일 있어요, 여보?" 그녀의 얼굴에는 남편이 무슨 개소리를 지껄일지 이미 짐작하고 있다는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 그녀는 윌러 아저씨가 보이기를 원하는 것에 반해 그를 덜 무섭게 보이도록 하는 방법이 있었다.

"다 큰 남자애들끼리는 같은 방에서 자면 안돼." 윌러 아저씨가 이번엔 더 크게 말했다. 윌러 아주머니가 기가 찬다는 표정을 지었긴 했지만, 아저씨의 단어 하나하나가 윌이 식은땀을 나게 했다. 물론 윌러 아주머니는 그의 말을 가볍게 무시했다.

"나 홀리 학교 데려다주고 와야 해," 그녀가 윌의 어깨를 두드렸다. "이따 저녁 때 보자."

그녀가 홀리를 데리고 나가자 집 안에는 침묵만이 감돌았고, 거실에서 나는 신문지 넘기는 소리만 때때로 들렸다. 윌은 숟가락을 다시 들어 그릇에 고개를 박은 채 흐물흐물해진 시리얼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마침내 몇분간의 평화가 찾아왔다.

그때, 계단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

윌은 굳이 계단을 쳐다보진 않았지만, 그게 마이크임을 단번에 알아챘다. 윌은 시리얼 속 우유만 저어대며 이미 오랫동안 머릿속에 새겨진 마이크의 발소리를 모르는 척했다.

"엄마, 혹시 -"

마이크가 문턱에서 멈췄다. 그의 머리는 방금 막 일어난 듯 엉망이었다. 머리는 작년보단 짧아졌지만, 아직도 그의 곱슬머리는 귀를 덮고 있었다. 그의 티셔츠는 정리도 되지 않은 채 아무렇게나 그의 몸에 올려져 있었다. 식탁에 앉아 있던 윌을 보자마자 그의 움직임이 뻣뻣해졌다.

"어, 안녕."

"좋은 아침." 윌이 중얼거렸다. 이번이 그가 백만 번째로 그냥 아침을 지하실에서 먹을지, 아님 아예 그냥 공유된 공간을 피할지 고민한 때였다. 그와 마이크 둘 다 그들이 더 이상 가까운 사이가 아니라는 어색하고 서먹한 자각을 피하기 위해서라면 뭐든지 하고 싶었다. 윌은 그저 숟가락으로 그릇의 바닥을 긁어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마이크는 방을 가로지르며 윌만은 쳐다보지 않으려 애를 썼다. 그는 구석에 처박힌 그의 가방을 들고 와, 아침을 먹기 위해 부엌에서 시리얼을 부었다. 그는 잠시 주저하다가 윌의 맞은편에 있는 빈 의자들을 응시했다.

곧 그들의 눈이 마주쳤다.

침묵이 감돈 공기가 무겁게만 느껴졌다.

'앉을래?' 단 하나의 단어가 윌의 목구멍까지 솟구쳤지만 윌은 그저 말을 삼켜냈다. 물어보는 것의 의미가 없었다. 대신 그는 그저 식탁을 바라보며 얼굴에 아무 표정도 드러나지 않길 바랐다. 윌은 마이크에게서 뭔가를 기대하는 것을 멈췄다. 평생 해내온 일이었으니까.

마이크는 불편함을 지우지 못한 채 그대로 서 있었다.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그가 작년에 팀으로써 함께 일하는 것 다시 절친이 되는 것 에 관해 말한 것들과는 달리 그들은 제대로 된 대화조차 하지 않았다. 제대로 말하자면 그들은 윌이 이사하기 전부터 서서히 멀어지고 있었다. 그걸 고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는 게 멍청했다.

"나는, 음," 마이크가 어색하게 그릇을 손에 든 채로 입을 뗐다. "나는 내 방에 가서 먹을게. 그, 요즘 새로 나온 만화책을 보면서 먹고 싶어서..."

윌은 그 만화책이 뭔지 묻고 싶었다. 그게 존재하기나 했으면 말이다. 하지만 그는 묻지 않기로 했다. 그들은 사적인 질문을 할만한 사이는 되지 못했다.

"그래." 윌은 이 대답이 아무 감정 없이 들리도록 바랐다.

마이크는 마치 마음을 바꿀 것처럼 몇 초간 식탁 옆에 서 있었지만 그러지는 않았다. 윌은 그의 발소리가 계단 위로 사라져 집안이 모든 소리를 삼킬 때까지 식탁에 머물러 있었다.

창가 옆 히터가 조용히 돌아갔다. 윌은 삐걱이는 그의 의자에 기대었다. 그는 무릎을 바라보며 몇 년 전 같은 식탁 의자에 앉아 있었던 때를 기억했다. 다리가 지금 길이의 절반도 채 되지 않았고, 발이 바닥에 닿지도 않았던 그 시절의 윌과 마이크는 의자를 바닥 여기저기에 끌며 놀았고, 윌러 아주머니가 그들을 혼낼 때마다 웃곤 했다.

그는 마이크의 집에서 슬립오버를 하는 게 가장 행복했던 때를 떠올렸다. 게임들과 웃음, 비밀들로 가득 차서 그들의 하루하루가 그들을 더 가까워지게 할 것이라는 희망을 품었을 때였다.

그들은 단지 같이 살기 위해 서로의 엄마에게 입양되는 일을 함께 상상하곤 했다.

지금 마이크와 함께 사는 일은 그저 슬프기만 했다.

한심한 그림 하나에 마음을 전부 쏟아붓고, 베프에게 고백해 보려다 처참하게 실패해 졸지에 그가 다시 여자친구와 잘되게 도와주는데 그 그림을 이용한 건 그래도 견딜 수 있었다. 하지만 그다음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둘은 같은 집에서 지내야만 했고, 서로를 마주해도 할 말이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다는 사실을 매일같이 깨달아야 했으니까.

무엇보다도 외로웠다.

맥스가 혼수 상태에 빠져 있어 루카스는 매 오후를 병원에서 보냈고, 더스틴은 거의 늘 스티브와 로빈과 붙어 다녔다. 엘은 조이스와 호퍼에게 훈련을 받느라 바빴고 조나단은 낸시와의 관계를 바로잡느라 애쓰고 있었다. 그래서 이제는 윌과 같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사람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루카스, 더스틴, 그리고 마이크와 윌은 아직도 학교에서 같이 점심을 먹긴 하지만, 예전의 느낌은 사라지고 없었다.

그들의 대화 사이에 빈틈이 너무 컸다. 모두가 맥스나 에디에 관한 얘기는 일부러 피하고 있었고, 마이크와 윌이 친했다면 오갔을 모든 문장의 자리에 침묵이 대신 쌓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니네들이 분위기 다 망치고 있는 거야, 알지?" 무비나잇 도중 윌 옆에 앉기를 마이크가 거부했을 때 더스틴이 잔뜩 쏘아붙였다. 윌이 더스틴의 화난 모습을 본 건 그때가 거의 처음이었다. "지금도 상황은 충분히 좆같은데 너네들은 그걸 더 안 좋게 만들고 있잖아. 도대체 뭘 두고 싸웠길래 이래?"

그들은 직접적으로 싸운 적이 없었다. 그냥 대화하길 멈춘 것이었다. 윌은 그날 밤 마이크를 제대로 볼 수 없었다. 마이크는 시선을 TV에 고정한 채 미간을 찌푸리고 윌 옆의 소파 자리가 비어 있었음에도 어떻게든 루카스와 엘 사이로 몸을 낑겨넣고 있었다.

"됐다, 그냥." 더스틴이 고개를 돌리며 중얼거렸다. 윌은 더스틴의 얼굴에 잠깐 비친 실망과 상처를 목격했다.

루카스도 비슷하게 힘들어하고 있었다. 가끔 그는 윌에게 마이크가 뭘 했든 제발 용서해달라고 빌기까지 했다.

문제는 용서할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는 것이었다. 고칠 것도 없었고 말할 것도 없었다.

아무것도 없었다.

그들은 한때 친했지만 이젠 아니었다. 그냥 그게 다였다.

 

그날 밤, 윌이 지하실로 내려가자 특유의 옅은 먼지와 쇳내가 났다. 히터가 너무 세게 틀어둔 탓에 파이프들이 덜컹거리며 약간의 소음을 냈다. 윌은 히터에 등을 대고 이불을 잔뜩 끌어안은 채 잠드는 것을 좋아했다.

지난 1년간 그는 이 공간을 자기만의 곳으로 만들어 왔다. 따뜻함을 느끼며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테이블은 방열기 바로 옆으로 밀어뒀고 매트리스는 반대편 벽을 따라 놓아 두었다. 조나단의 소파는 대개 쓰이지 않았다. 지난달부터 그대로인 담요 몇 장과 반쯤 빈 머그컵 하나가 그의 증거였다. 매일 조나단이 낸시의 방으로 몰래 올라가 잔 탓이었다.

호킨스의 11월은 항상 거칠었지만, 아직 게이트가 열려 있고 깊은 균열들이 도로를 가르고 있었던 만큼, 공기 자체가 이상하게 느껴졌다. 마치 뒤집힌 세계의 추위가 균열들을 통해 호킨스로 기어들어온 것처럼 여름마저 추웠다.

이 추위가 윌이 뒤집힌 세계로부터 기억하는 몇 안 되는 것들 중 하나일 것이다.

가끔 그는 실체가 없는 추위와 어두움에 관한 꿈을 꿨다. 그건 보통의 추위와는 달랐다.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움직이고, 듣고, 문 밑으로 스며들어 윌의 피부를 짓눌렀다. 그러면 그는 숨을 헐떡이며 잠에서 깼다. 아직도 숨을 쉬고 있다는 사실에 스스로 놀라면서. 그 악몽들은 어둠이 아직도 여전히 그의 안 어딘가에 남아 있다는 걸 끊임없이 상기시켜 주고 있었다.

악몽들이 심해질 때마다, 윌은 그의 등에 붉은 화상 선들이 남을 때까지 히터에 몸을 세게 눌렀다. 그 상처들은 그가 아직 호킨스에 있다는 것, 그의 몸을 컨트롤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의 체온을 낮추려는 어두운 힘 같은 건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처럼 느껴졌다.

니 몸에서 다 태워버려야 돼, 그의 엄마가 85년도의 마인드 플레이어 사건 이후의 가을 즈음에 윌에게 말했었다. 열이 그 연결고리를 약화시키거든.

그리고 윌은 그 생각을 떨쳐내고 싶어했음에도 어딘가 베크나가 힘을 얻으며 기다리고 있음을 잘 알고 있었다. 결국엔 그가 돌아올 거였다. 그때까지는, 따뜻하고 안전하게 지내는 것 외엔 윌이 딱히 할 일은 없었다.

그는 히터 옆으로 웅크리고 눈을 감았다. 그만 겁쟁이가 되라고 되뇌었다. 베크나는 어느 시점에는 돌아올 것이었지만, 오늘 밤은 그 밤이 아니었다. 왜냐면 이만큼 추운 건 정상 이었다. 겨울이었으니까. 모두가 추위에 떨고 있었다.

그의 머리 위에 있는 집은 조용했다. 멀리선가 바람이 나무 사이로 부는 것만이 들렸다.

여기 밑에서는 안정적인 히터 소리만이 들려왔다.

 

윌은 오후와 주말엔 되도록이면 윌러네 집에서 벗어나 있으려고 했다. 마이크와 마주치는 상황을 줄이기 위해서였다.

그는 자전거를 타고 호킨스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다. 목적지는 대부분 호퍼의 오두막이나, 엘이 훈련을 받는 인근 폐차장이었다. 엘이 처음으로 공중에 떠올랐을 때 그는 폐차장에 있었다. 그녀가 해서는 이치를 벗어나는 일들, 특히 중력을 거스르는 모습을 보는 건 윌에게 묘한 감정을 안겨주었다. 세상이 끊임없이 그들에게 주는 시련들에 대해 적어도 조금은 대항할 수 있겠다는 느낌을 그는 그 순간에야 받았다.

지금 그녀는 눈을 감은 채 지면에서 약 두어 미터쯤 떠 있었다. 그녀의 머리칼이 바람에 물결치듯 흔들렸다. 윌이 손을 뻗자 손끝이 그녀의 발목을 살짝 스쳤다. 윌은 엘의 집중을 깨지 않으려 조심스럽게 굴었다. 하지만 엘은 이미 능숙해져 있었다. 몸이 흔들리기는 커녕, 그녀는 그저 눈을 뜨고 윌을 내려다보며 웃어 보일 뿐이었다.

"진짜 대단해." 윌이 말했다.

"그치?" 엘이 환하게 웃었다. 겨울 햇살이 그녀의 속눈썹에 걸려 반짝였다.

하늘이 보랏빛으로 물들 때 즈음에, 윌은 다시 윌러네 집을 향해 자전거 페달을 밟았다. 숲 가까이에 이르자 그는 속도를 더 냈다. 해가 진 후로 나무 사이에 옮겨 다니는 그림자들을 윌은 몹시 싫어했다. 마치 숲이 아직도 자신을 기억하는 것 같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가 차도에 닿기도 전에, 그는 뭔가 잘못됐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집 안이 불이 꺼진 채 어두웠다. 다만 아주 옅어 출처마저 알 수 없는 희미한 빛의 깜빡거림만이 있었다. 차도의 감지등도 켜지지 있었다.

윌은 자전거를 잔디 위에 내던지고 문 앞에 섰다. 숨이 가빠졌다. 그의 심장이 옥죄여 왔다. 그는 몇 초 동안 머뭇거리다가 조심스레 문을 열었다.

"계세요?"

거실 쪽에서 따뜻한 오렌지빛 불빛이 은은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낮고 조용한 목소리들이 들렸다. 윌은 안도의 숨을 내쉬며 신발을 가지런히 신발장에 놓고 집 안으로 들어섰다.

하지만 뭔가 이상했다. 윌러 가족들과 조나단이 커피 테이블 하나를 둘러싸 모여 앉아 있었다. 집 안은 유독 어두웠고, 벽에는 몇 개의 촛불만이 만든 그림자들이 일렁이고 있었다.

윌은 벽의 스위치에 손을 뻗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윌!" 조나단은 이미 일어나 윌의 팔을 붙잡고 있었다. "잘 돌아와서 다행이다. 그 전기가 나가가지고, 우리가 연락을 해보려고-"

"아, 그래요." 윌러 아저씨는 무전기를 마치 처음 보는 물건처럼 어색하게 들고 있었다. 윌이 늘 친구들과 썼던 물건을 그가 쥐고 있는 모습이 묘하게 낯설었다.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말씀이세요?"

잠깐 무전기가 지직거린 뒤, 이미 수백 번은 반복했을 말투의 지치고 기계적인 목소리가 무전기를 넘어 흘러나왔다. "죄송합니다, 현재 고객님의 댁 뿐만 아니라 해당 구역 전체에 정전이 발생했습니다. 복구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 그때까지는 초랑 담요를 준비해 따뜻하게 지내 주시기 바랍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윌러 아저씨는 들리지도 않는 뭔가를 중얼거리며 서툰 손길로 안테나를 다시 밀어 넣고 옆에 조용히 앉아 있는 마이크에게 무전기를 돌려줬다. 희미한 촛불을 아래에서 윌은 두 사람의 얼굴이 묘하게 닮아 있다는 걸 눈치채지 않을 수가 없었다. 미간에 똑같이 자리 잡은 찌푸린 표정까지. 윌은 문득 생각했다. 마이크도 언젠가는 그의 아버지처럼 되어 버릴까, 하고.

"오늘은 불 안 켜?" 홀리가 들뜬 목소리로 물었다.

"어, 안 켜. 그래도 괜찮아. 촛불로 아늑하게 만들면 되잖아, 그치?" 윌러 아주머니가 홀리에게 손전등을 하나 건네며 말했다. "위층으로 먼저 올라가 있을래? 금방 가서 재워줄게. 계단 조심하구!"

홀리는 손전등을 이리저리 튕기며 종종걸음으로 사라졌다. 윌러 아저씨는 소파에 앉아 꺼진 TV 화면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뚫어지게 쳐다보면 다시 켜지기라도 할 것처럼. 낸시는 서랍을 뒤지며 촛불을 더 찾고 있었다.

"아, 히터는," 윌은 갑자기 히터를 떠올렸다.

"작동을 안 해." 조나단이 윌의 우려에 쐐기를 박았다. "근데 괜찮을 거야. 우린 담요들이 있으니까."

"너네들." 윌러 아주머니가 윌과 조나단을 바라보며 말했다. "지하실은 히터가 돌아가도 추워. 조나단, 너는 소파를 써도 되고 윌, 너는 마이크랑 방을 -"

"아녜요!" 윌이 윌러 아저씨나, 더 심하면 마이크 가 안 된다고 하기 전에 덧붙였다. 그의 눈이 방 건너편의 마이크의 눈과 마주쳤다. 아직도 눈썹을 찌푸리고 있던 그의 감정은 읽을 수 없었다. 윌은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아, 제 말은, 그, 괜찮아요. 견딜만 할 것 같아요."

"하지만 지하실이 너무 추워지면 -"

"저희가 바로 말씀드릴게요."

 

밤은 불빛의 깜빡임과 그림자 속에서 흘러갔다. 촛불, 차가운 남은 음식들, 얼음처럼 찬 물 아래에서 그릇들이 부딪히는 낮고 부드러운 소리. 낸시와 마이크는 벽난로에 불을 붙였다. 방 안에 온기가 올라오기까지는 꽤 시간이 걸렸다.

윌러 아저씨는 배터리 라디오를 켜고 정전에 관한 새 정보가 나오길 바라며 주파수를 이리저리 넘겼다.

"로안 카운티 수전력국에 연락이 닿았습니다." 잡음 너머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변인에 따르면 이번 정전의 원인은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윌러 아저씨는 낮게 투덜거리며 채널을 돌려 음악을 들으려 했지만, 좋은 음악이 나올 때마다 그는 주파수를 바꿨다. 윌과 조나단은 서로를 보고 고통스러운 눈빛을 주고받으며 슬쩍 눈을 굴렸다.

"윌," 윌러 아저씨가 잡음 가득한 채널에서 말을 알아들으려는 듯 라디오에 귀를 바짝 대고 있는 동안, 조나단은 카펫 위에 앉아 있는 윌 옆으로 다가와 낮게 속삭였다. "계속 생각하고 있던 건데, 오늘 밤에 나도 너랑 같이 지하실에서 잘까?"

"아냐, 괜찮아."

"확실해? 너 도움 필요하면 바로 말할 거지? 제발 그럴 거라고 해줘." 그가 윌의 어깨를 눌렀다. "... 니네 요즘 사이가 안 좋은 건 아는데, 너가 물어보면 마이크는 너가 걔 방에서 자는 거 괜찮다고 할 걸."

윌은 고개를 젓기 전에 잠깐 망설였다.

"윌," 조나단의 목소리가 부드러워지고, 눈썹이 올라갔다. "난 너가 걔랑 말 안 하겠다고 고집부리다가 얼어 죽는 걸 원하지 않아."

이 얘기를 조나단이랑 하는 건 쉽지 않았다. 조나단은 레노라에서도 늘 그들과 함께 있었으니까. 백미러 때문에 조나단의 눈이 윌의 눈물에 젖은 얼굴과 마주쳤던 순간도 있었다. 조나단은 아마 자기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걸 알고 있을 것이었다. 그 그림에 대해서도, 실패한 고백에 대해서도, 윌이 얼마나 모든 일을 크게 망쳐버렸는지도.

"안 그럴게." 윌이 말했다. "걱정하지 마, 알겠지? 그냥 하룻밤이잖아. 괜찮을 거야."

 

윌이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다는 걸 깨닫고 그는 복도를 가로질러 지하실 쪽으로 걸어갔다. 거실 문에서 반쯤 벗어났을 때, 마치 보이지 않는 벽을 통과한 것처럼 갑작스러운 한기가 몸을 감쌌다.

마이크는 계단의 끝에 걸터앉아 무전기에 대고 낮은 목소리로 무언가를 말하고 있었다. 손전등은 그의 무릎 사이에서 켜진 채 맞은편 벽에 빛을 희미하게 비추고 있었다. 윌이 마이크를 지나치려는 순간, 무전기 너머 흘러나오는 루카스의 목소리가 들렸다.

"- 비상 전력이 며칠 정도는 버틸 수 있대. 근데 그 다음엔 심박동기도 충전이 필요하고..."

윌이 얼어붙었다. 혼수 상태의 맥스. 병원. 비상 전력.

"진짜 걱정이 너무 많이 돼," 루카스가 윌이 한 번도 들어보지 적 없을 정도로 떠는 목소리로 말을 이어 나갔다. "정전 되자마자 병원으로 왔어, 나는 걔가 -"

"알아, 루카스," 마이크가 부드럽게 말했다. "다 괜찮아. 맥스도 괜찮을거고."

그 목소리는 윌이 몇 달 동안 들어보지 못했던 마이크의 목소리였다. 잊힐 수 없던 조용하고 다정한 마이크의 목소리. 그때 마이크가 고개를 들어 윌을 바라봤고, 그제야 윌은 자신이 그 자리에 멈춰 서 있었다는 걸 자각했다. 자신이 끼지 못한 대화를 엿듣는 채로.

만약 마이크와 사이가 예전처럼 괜찮았다면, 윌도 저 대화 속에 있었을 지 모른다. 마이크 옆에 앉아 무전기를 함께 잡고 루카스를 위로하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어쩌면 더스틴이 맞았던 것인지도 몰랐다. 자신들이 이 무리를 망치고 있었다.

윌은 마이크의 눈을 피하고 빠르게 지하실로 내려갔다.

 

그가 조나단에게 말한 건 사실이 아니었다. 윌은 괜찮지 않았다.

지하실에서, 한기는 기억처럼 윌을 휩쓸었다.

계단에서마저 윌은 추위가 그의 옷들을 파고드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윌은 습관처럼 전등 스위치에 손을 뻗었다. 당연히 아무것도 켜지지 않았다. 첫 번째 초에 불을 붙일 즈음에는 손이 너무 심하게 떨려서 불꽃이 금세 꺼져버렸다. 그는 낮게 욕을 내뱉고, 다시 한번 시도했다.

윌은 언제나 촛불을 싫어했다. 너무 깜빡임이 잦았고 그림자도 너무 많았다.

이건 그냥 정전일 뿐이야. 괜찮아. 그냥 겨울이잖아. 히터 없이는 이렇게 추운 게 정상이야.

윌은 서랍에서 스웨터 하나를 더 꺼내 이미 입고 있던 것 위에 겹쳐 입고는 매트리스 앞에 쪼그려 앉았다. 히터를 확인해 봤지만 역시나 죽어 있었다. 윌은 거의 젖은 것처럼 차갑게 식은 이불 속으로 몸을 밀어 넣고, 저녁 내내 잡고 싶었던 무전기를 집어 들었다. 엘은 아마 이제 잠자리에 들었겠지. “엘?”

지직거리는 잡음이 들렸다. 그러다-

"윌?"

안도감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받아서 다행이야. 너 괜찮아?"

"별로," 엘이 말했다. 그녀가 몸을 뒤척이는지, 베개에 스치는 바스락거림이 무전기 너머로 들려왔다. "TV가 안 돼서 엄마랑 우리가 제일 좋아하는 프로그램도 못 봤어."

윌은 엘의 말에 작게 웃다가, 차가운 공기 속에서 자신의 입김이 피어오르는 것을 봤다. "미친..."

"넌 좀 어때?"

"난 괜찮아."

"거짓말이지?"

윌은 그의 이가 딱딱 부딪히지 않게 애썼지만 엘은 늘 그랬듯 윌의 속내를 너무 쉽게 간파했다. "아마도. 아니, 잘 모르겠어. 난 그냥... 긴장돼." 윌은 잠깐 망설이다 말을 이었다. "혹시 가 정전을 일으킨 걸까?"

정적이 감돌았다. 엘은 절대 질문을 대충 대답하는 일이 없었다. 그녀는 언제나 생각을 하고 대답했다. "모르겠어," 마침내 그녀가 말했다. "넌 그가 느껴져?"

"아니, 그런 건 아니야. 설명하긴 어려운데, 이건 그냥 너무 추워서, 자꾸 그때를 -"

"알아," 엘이 속삭였다.

"난 그냥 좀 걱정됐었나 봐. 내 말은, 만약 그가 날 찾고 있으면 어떡해? 다시 데려가려고?"

"윌..." 그녀의 목소리는 부드럽고 따뜻했다. "내가 그 일이 안 일어나게 할게. 절대로. 내가 거기로 갈까? 아님 너가 여기로 와서 잘래? 내 침대에서 자면 되잖아."

"아냐, 아냐." 엘이 오밤중에 윌을 데려온다고 조이스와 호퍼를 깨우는 건 상상도 하기 싫었다. 그의 엄마는 이미 평생 그를 충분히 많이 걱정했다. "괜찮아, 나는 그저... 니 목소리를 듣고 싶었어."

고요 속에서도 윌은 그녀가 미소 짓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조나단 오빠랑 지하실 같이 써서 다행이야.” 엘은 단정하듯 말했다. 목소리는 다른 사람을 안심시키려고 일부러 지나치게 밝게 말할 때의 웅얼거림에 가까웠다. 어딘가 엄마 같은 느낌... 아마 조이스에게서 배운 걸지도 몰랐다. “혼자가 아니잖아. 무슨 일 생기면 오빠가 우리한테 연락할 수도 있고.”

윌은 뭔가 말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대신 눈을 감고, 잠깐만이라도 스스로를 속이기로 했다. 엘이 진실을 알 필요는 없었다. 아니, 차라리 모르는 게 나았다. “응,” 그가 말했다. “그래. 네 말이 맞아.”

서로 잘 자라고 말하고 곧 무전기가 잠잠해지자, 윌은 담요 아래로 몸을 웅크렸다. 무릎 사이로 손을 끼워 넣은 채, 엘의 목소리가 남긴 부드러움과 온기가 공기 속에 조금이라도 더 머물기를 바랐다. 그는 담요를 얼굴까지 끌어올려, 천에 머금은 자신의 따뜻한 숨이 다시 피부에 닿게 애썼다.

하지만 담요에 잔뜩 감겨 있었음에도 그는 떨고 있었다. 그의 손과 발은 한기에 얼어 아파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제야 그는 이 모든 게 그저 멍청하다는 걸 깨달았다. 정말 정말 정말 멍청하다는 것을.

그는 내일 아침에 배달올 신문을 상상했다. 그가 맨 앞 장에 실려 있을지도 몰랐다.

죽음에서 돌아온 소년 -혹은 좀비 보이-, 한 때 친구였던 소년에게 방을 같이 쓰자 묻지 못해 얼어 죽다.

촛불이 깜빡였다. 윌은 벽과 가구들에 잔뜩 드리운 그림자들이 보이지 않도록 눈을 세게 감았다.

집중해, 그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그저 정전일 뿐이야. 하나도 이상할 거 없어. 전 세계 어느 곳에서나 일어나는 흔한 일이야. 춥긴 하지만, 널 죽이진 않겠지. 아 그리고, 이 한기는 베크나가 밖에서 돌아다니고 있을 거라는 뜻이 아니야. 지금은 11월의 끝이잖아.

윌러 아저씨가 침실로 향할 때까지 기다린다면 어쩌면 소파에서 잘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거실에서 대략 두세 시까지는 깨어 있었다. 반쯤 그의 소파에서 잠든 채로 말이다.

어쩌면 윌은 낸시와 조나단의 방에서 밤을 보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윌이 아는 낸시는 윌이 여기서 자도 되냐고 묻는 순간에 마이크의 방문을 세게 두드려 둘 다에게 정신 차리고 방 같이 써. 라고 할 존재였다.

이만큼 차가운 그의 몸은 베크나의 그릇이 되기 딱 좋아.

그의 잡생각이 채 떨쳐내지기도 전에 윌의 머릿속에 자리 잡았다. 맞지 않나? 마인드 플레이어는 추위를 사랑하니까. 마인드 플레이어가 숙주의 체온을 낮춰야 하는 이유였다. 그래서 빌리가 태양 아래에서 거의 녹아내렸던 거고, 그래서 윌이 한 때 숙주였을 때 따뜻한 목욕을 거부했던 거였다.

윌이 만약에 잠들면 그의 몸은 완전히 무방비 상태일 거였다. 차갑고 텅 빈 그릇, 도움도 닿지 못하는 연약한 상태의 소년. 그의 몸을 잠식하는 데엔 1분도 걸리지 않을 것이었다. 그리고 아무도 그걸 목격할 사람은 없었다. 윌이 그걸 싸워서 이길 가능성은 더더욱 없었고.

그렇게 생각하는 게 말이 안 되는 걸까? 누가 베크나가 다시 그를 찾아내지 못할 거라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베크나는 살아 있고, 기다리고 있고, 숨어 있었다. 모두가 베크나가 그럴 걸 알고 있었다. 어쩌면 그는 이미 집 밖에서 윌이 잠에 들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에겐 식은 죽 먹기였을 터였다. 과연 윌이 알아채기나 할 수 있을까? 아니면 누구도?

윌러 아주머니가 마이크와 방을 같이 쓰라고 한 걸 후회했다. 그걸 그렇게 빨리 거절하면 안 됐었다. 하지만 윌러 아저씨가 허락하더라도, 마이크가 알겠다고 했을까?

마이크가 싫다고 말 했을 수도 있었다.

마치 올해 윌이 마이크와 시간을 보내기 위해 시도한 모든 때처럼 말이다. 마이크는 언제나 바빴다. "지금은 놀 기분이 아니야," "미안, 나 오늘은 진짜 피곤해서." 이건 마이크의 뻔한 레파토리였다. 윌은 그래서 마이크에게 놀자고 근 몇 달간 물어보지도 않았다. 의미가 없었다.

그의 옷과 몸은 담요 아래에서도 열을 느끼기엔 너무나 차가웠다. 고칠 수 없는, 피할 수 없는 추위가 끝 없는 고통같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 감각은 익숙했다. 한 때 그가 알던 잊고 지낸 한기. 어둡고 얼어붙었던 그 곳. 바이어스 성, 그리고 땅바닥에서 몸을 떨며 누군가 자신을 찾아주길 기다리던 어린 소년. 멀리서 들려오는 날카로운 울음소리. 그리고 마른 뿌리를 짓밟은 거대한 발걸음의 둔탁한 울림.

멀지 않은 곳에서, 그들은 점점 가까워졌다. 그의 향을 맡아 찾아내고 있다. 그들이 거의 다 왔다. 그리고 윌은 곧 사라질 것이었다. 영원히.

윌은 깜짝 놀라 잠에서 깼다. 뭔가를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소리의 출처를 찾아내기 위해 잔뜩 어질러진 방을 훑어보았다. 촛불의 일렁임이 좀 더 세졌나? 그의 몸은 경직되었고, 어깨는 귀까지 올라왔다. 그는 시간이 몇 시인지도 몰랐다.

곧이어 한 번 더 큰 소리가 들려왔다. 노크 같은 소리였다. 계단 위에서부터 들려오는.

윌은 그의 담요를 떠나고 싶지 않아서 마치 망토처럼 그걸 두르고 계단을 올랐다. 발밑의 모든 발자국들이 삐걱거리는 소리를 냈다. 윌은 마침내 문의 손잡이에 손을 뻗었다. 그리고 잠시 고민했다. 베크나가 설마 노크 를 하진 않겠지?

윌이 문을 열었다.

그리고 문 앞에는 예상 외의 존재가 서 있었다. 랜턴을 든 마이크가 있었고, 빛이 그의 얼굴에 금빛과 그림자를 드리워 눈이 마치 검은 구슬 같이 보였다.

"미안," 그가 말했다. "혹시 내가 너 깨웠어?"

"아냐, 나 안 자고 있었어." 윌은 거짓말이 이렇게 쉬워질 줄은 몰랐다. 한 때, 마이크에게 거짓말하는 건 정말 불가능했다. 이제는 진실은 아무 의미 없는 것처럼 거짓말들이 쉽게 나왔다.

"음," 마이크가 자세를 바꾸며 말했다. "엄마가 너 확인하고 오래서."

당연히 윌러 아주머니가 마이크를 시켰겠지. "난 다 괜찮아."

"여기 얼어 죽을 것 같은데."

윌은 몸을 바로 세우며 목소리에 묻은 떨림을 억지로 눌러 담았다. 담요를 움켜쥔 손이 떨리고 있지 않길 바라면서.

"난 괜찮아, 마이크. 내가 알아서 할게. 이제 가도 돼."

마이크의 시선이 윌의 얼굴 위를 훑었다. 마치 관찰하듯, 살펴보듯. 솔직히 이건 불공평했다, 진짜로. 왜냐면 지난 한 해 동안 윌은 이런 상황에서 쉽게 벗어날 수 있었다. 그가 괜찮지 않았을 때 괜히 괜찮다고 거짓말하고 핑계 대면 마이크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런데 왜 이제 와서 이러는 걸까. 갑자기 다시 맞추고 싶은 퍼즐이라도 된 것처럼, 왜 지금 그를 들여다보는 거지?

"나 엘이랑 얘기했어," 마이크가 느릿하게 말을 건넸다. 그림자 때문에 그의 얼굴선이 더 날카로워 보였고, 그 모습에 윌의 속이 잔뜩 뒤틀렸다. "너가 무서워한다고... 하더라."

어떡해. 윌의 가슴이 화끈거리며 조여왔다. 이게 모두 너무 익숙한 망할 동정심이었다. 마이크는 그의 엄마 뿐만 아니라 엘에게서까지 윌을 챙기라고 압박받고 있었다.

"이런 거 안 무서워. 난 애가 아니잖아, 마이크." 윌이 목소리의 짜증을 최대한 감추며 말했다.

"그런 뜻으로 한 말은 아니야. 근데 걔가 조나단 형이 여기서 너랑 같이 자서 다행이라곤 하더라."

"어, 맞아. 형이 같이 여기서 자고 있긴 하니까." 윌은 그가 바보같이 구는 걸 알았다. 마이크는 여기서마저 빈 소파를 볼 수 있었으니까. 빛이 만든 착시일수도 있지만, 잠깐 마이크의 눈이 굴러가는 것처럼 보였다.

"... 나도 귀는 있어, 알지? 형이 매일 밤마다 낸시 누나 방으로 올라가는 거 다 들려. 바로 옆방이니까."

"그냥 가면 안돼? 나 괜찮다니까."

"너 안 믿어. 그냥 일 크게 만들고 싶지 않거나 그런 거잖아."

"아니, 나 진짜 혼자 있고 싶어서 그래. ... 너랑 얘기하기 싫어. 알겠어?"

그들이 만약 지금 친했다면 마이크는 이 말에 상처받았을 거였다. 하지만 그는 눈도 깜빡이지 않고 가만히 윌을 응시했다.

"알겠어." 마이크는 윌 너머의 벽을 바라보았다. "몇 시간 전에 너가 내 방에서 자기 싫다고 명확하게 말하긴 했는데, 난 그냥... 너가 내 방에서 자도 된다고 말하려고 내려온 거야. 막 따뜻하진 않은데 그래도 여기보단 나아."

괜찮다는 말이 거의 튀어나올 뻔했지만, 그 순간 윌은 자신이 얼마나 간절히 그 제안을 받아들이고 싶었는지 깨달았다. 그냥 그의 말을 따르고, 그가 잊으려 노력했던 모든 기억이 가득한 이 방에서 혼자 버티는 고문 같은 시간을 끝내고 싶었다.

하지만 일렁이는 촛불 속에서 보이는 마이크의 얼굴, 정확히는 검게 가라앉은 그의 눈을 보는 순간, 윌은 그와 단둘이 밤을 보내느니 차라리 얼어 죽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을 했다. 

"고맙긴 한데," 윌은 딱딱하게 말했다. "됐어."

마이크는 그 자리에서 윌이 그의 마음을 바꾸길 기다리듯 가만히 몇 초간 더 서 있었다. "그래," 그가 마침내 말했다. 마이크는 뭔갈 더 말하고자 입을 열었지만,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마이크가 목을 가다듬었다. "잘 자."

"너도," 윌이 말했다.

마이크가 문을 닫자 랜턴의 빛이 그와 함께 사라졌다.

윌은 그 자리에 선 채로 몸을 떨며 지금까지 자신이 만든 선택들을 곱씹었다.

... 정말.

너무 멍청했다.

그는 촛불의 하찮은 불빛을 향해 몸을 돌렸다. 그의 몸은 너무 차가워서 감각마저 사라지고 있었다.

이건 진짜 -

그는 작게 욕을 내뱉고 돌아가 촛불을 불어 끈 뒤, 베개와 담요를 챙겼다. 그리고 손전등을 쥔 채 계단을 찬찬히 올라가기 시작했다.

집은 어둡고 공허했다. 거실에서 윌러 아저씨가 코를 고는 소리만 빼면 집은 쥐 죽은 듯 고요했다.

윌은 지하실 문을 빠르게 닫았다. 윌러 아저씨가 한밤중에 자기 아들 방으로 몰래 올라가는 윌을 목격하는 일을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았다. 두 겹의 양말로 소리를 죽인 채, 윌은 조용히 계단을 올랐다.

그는 담요를 끌어안고 마이크의 문 앞에서 멈춰 섰다. 윌은 극심하게 떨고 있었다. 손에 쥔 손전등의 빛도 속절없이 흔들렸다. 그리고 윌은 그의 방문을 두드렸다. 너무 작게 두드려서 윌은 마이크가 듣지 못했을 것을 거의 확신했다. 그리고 만약 마이크가 소리를 듣지 못했다면, 윌은 다시 문을 두드릴 용기조차 남아 있을지 확실하지 않았다.

문이 열렸다. 따뜻한 불빛이 방으로부터 흘러나왔다. 마이크의 눈은 어두웠고, 의문을 가득 담고 있었다.

"생각을 바꿨어," 윌이 말했다.

둘은 서로를 바라본다. 몇 달째 그래왔듯, 마이크의 표정은 읽을 수가 없었다. 한때는 그렇게 속마음을 그대로 드러내던 사람이었는데, 도대체 언제부터 이랬을까.

마이크가 옆으로 비켜선다.

 

그는 이 생각이 얼마나 안 좋은 선택이었는지를 문이 닫히고 방이 조용해질까진 알지 못했다. 갑자기 그들이 몇 달간 피해 왔던 상황이 눈 앞에 닥친 거였다.

어린 윌은 마이크와 단 둘이 밤을 보내는 것에 대해 잔뜩 상상했을 거다. 그는 어지럽게 돌아가는 일들을 피하기 위해 마이크에 관한 작은 가짜 시나리오들을 잔뜩 만들며 밤을 샜었다.

그리고 이제 그는 마이크의 방 안에 서 있었다. 온몸이 얼 듯 차가웠다. 마이크는 침대 옆에 서서, 바지 끈을 어색하게 만지작거렸다. 오랜만에 진짜 대화를 나누려 하니, 말이 나오질 않을 것만 같았다.

"저기," 윌은 다시 밑으로 돌아가는 것을 진지하게 고려해 봤지만 지금 다시 마음을 바꾸면 모든 걸 더 이상하게 만들 게 뻔했다. "너 아직도 그 매트리스 갖고 있어? 우리가 슬립오버 때 쓰던 거?"

윌은 자신이 내뱉은 말에 당황했다. 어릴 때를 연상시키려는 의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마이크는 되려 드디어 주어진 일에 안심한 듯 보였다. "어, 갖고 올게."

마이크가 자신의 침대 아래서 매트리스를 끌 동안, 윌은 그의 방 안을 둘러봤다. 그가 마지막으로 있었던 때와 크게 다르진 않았다. 그게 좀 이상하게 느껴졌는데, 마이크는 너무 많이 달라졌기 때문이었다. 포스터들, 어지럽게 흩어진 물건들 모두가 달라진 삶, 달라진 마이크, 그리고 달라진 윌의 메아리 같았다.

윌은 방의 벽에서 그가 열두 살 즈음 그렸던 그림들을 발견했다. 가장 최근에 마이크를 위해 그렸던 건, 마이크가 어떻게 생각하던 윌의 얼굴을 붉혔던 그 그림은, 어디서도 보이지 않았다.

"다 됐어."

"고마워."

마이크는 윌이 매트리스 위에 베개를 놓을 동안 침대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방 안이 너무 조용했다. 전등이나 라디오의 지직거림 마저도 없었다. 전기는 전선에 사라진 지 오래였고, 윌은 이 부자연스러운 침묵의 원인을 전기에 탓하기로 했다.

그는 담요 밑으로 들어갔다. 그의 시선 끝에 마이크도 이불을 덮는 모습이 걸쳐졌다. 차라리 이게 나았다. 둘 다 잠든다면 굳이 말을 섞지 않아도 됐으니까.

"촛불 켜둘까 아님 -"

"켜주면 좋겠어." 윌이 조금 빨리 말해버렸다.

"알겠어."

그리고 다시 정적이 방 안을 가득 채웠다. 윌은 체온을 올리기 위해 담요를 턱까지 올리고 몸을 웅크렸다. 아직도 추웠지만 지하실만큼은 아니었다. 그리곤 그는 너무 가까이에 있는 마이크가 이불이 움직이는 모든 소리를 듣게 될까 봐 최대한 움직이지 않았다.

둘 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일 분이 흘렀다. 또 시간이 흘렀다.

"그럼," 마이크가 결국엔 말을 내뱉고 윌에게 등을 돌렸다. "잘자."

윌은 그의 등을 응시했다. "너도." 윌이 작게 읊조렸다.

집 전체가 고요해졌다. 불빛은 아직도 깜빡이며 벽에 그림자를 만들어냈다. 윌은 여전히 추위를 느꼈지만 옆에서 들려오는 마이크의 숨소리가 그를 두려움 속으로 다시 빠지지 않게 마음을 잔뜩 흐트려 놓았다. 그 소리는 마치 자신의 숨소리처럼 익숙했다.

마이크의 숨이 규칙적으로 오르내렸다. 윌은 귀 아래로 검은 곱슬머리가 살짝 말려 있는 마이크의 등을 바라봤다. 그는 숨을 마이크의 호흡에 맞춰보려 애썼다.

오늘 밤은 많이 못 잘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잠들 것이다. 이 밤을 견딜 수 있을 것이다. 내일이면 전기도 들어오고, 모든 게 다시 정상으로, 정확히 말하면 지금 그들에게 통하는 이상한 정상 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었다. 마이크는 더 이상 자신이 윌을 챙겨야 한다는 부담을 느끼지 않아도 되고, 윌은 무너진 자신의 체면을 다시 세울 수 있을 것이었다.

결국에는, 잠이 찾아올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