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Text
드레이코는 타오르는 파란 불꽃 앞에 섰다. 양피지 두루마리를 얼마나 세게 잡았는지 손가락에 쥐가 날 지경이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떨렸고, 식은땀이 목을 따라 흘러내렸다.
제대로 미친 짓이었다. 그가 한 일 중 가장 또라이 같은 짓일 것이다. 정신이 나간 게 틀림없었다. 그래도, 드레이코는 아주 명확하게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알고 있었다.
새벽 2시 24분이었다. 6시간 36분 후, 그와 그의 부모님은 위즌가모트 재판에 회부될 것이다. 거의 아무도 오지 않는 서쪽 별관에서, 드레이코는 똑딱거리는 시계 소리에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낡은 벽난로 위에 달린 오래된 시계는 남은 자유의 시간을 세어나가며 그를 조롱하고 있었다. 재판 결과가 안 좋다면, 자유뿐만 아니라 남은 삶의 시간도 카운트 다운되고 있는 셈이다. 과연 재판에서 살아 나올 수 있을까? 그의 팔에 새겨진 어둠의 표식이 그의 죄를 입증한다. 죽음을 먹는 자였다는 사실 외에도 그는 많은 잘못을 저질렀다. 6학년 때 케이티 벨과 론 위즐리를 죽일 뻔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호그와트에 죽음을 먹는 자들을 들였으며, 이로 인해 덤블도어가 죽었다. 그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을 괴롭혔고 다치게 하였다. 그가 한 끔찍한 짓들과 그의 손에 묻은 피를 생각할 때마다 드레이코는 속이 울렁거렸다. 오러들은 그를 심문하며 온갖 욕설을 내뱉었고, 드레이코는 충분히 욕먹을 만하다고, 저들은 그럴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다. 재판이 끝나고 오늘 저녁에 디멘터의 키스를 받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하지만 드레이코는 무서웠다. 전쟁에서 겨우 살아남았는데, 가족들이 전부 무사한데, 이제 와서 이런 방식으로 죽고 싶진 않았다. 목덜미에 지팡이가 또 겨눠지길 원하지 않았다.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이 필요했다. 원점으로 돌아가서, 그의 잘못을 고쳐야 했다.
그는 파란 불꽃을 집요하게 쳐다보았다. 눈을 감아도 눈앞에서 불꽃이 넘실거리는 듯했다.
드레이코가 아주 어렸을 때, 아버지께서 이 벽난로에 대해 말해주신 적이 있었다. 호그와트에 입학하기도 전의 일이었다. 이 벽난로는 플루 네트워크 입구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말포이 대저택이 건축될 때부터 이 벽난로는 이 자리에 수백 년 동안 있었으며, 고대의 마법이 아직도 깃들어 있다고 아버지께서 이야기하셨었다.
“ 당연히 타임 터너에 대해선 알겠지만 , 이 마법은 타임 터너와 다르고 , 훨씬 더 강력하단다 . 이 벽난로는 시간을 실제로 되돌릴 수 있다고 하더구나 . 단순히 방관자로서가 아니라 , 너의 실제 옛날 몸으로 말이다 . 어렸을 적의 날들을 다시 살 수도 있고 , 과거를 바꿀 수도 있겠지 .”
“아버지, 그러면 제가 실수를 했을 때 그냥 뛰어 들어가서 고치면 되는 건가요?” 드레이코는 눈을 크게 뜨고 물어봤었다.
“그건 아니란다.” 아버지는 엄숙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으며 바로 대답했었다. “이 벽난로는 몇 세기 전에 고장 났고, 그 누구도 고치지 못했다. 고치려고 시도하는 것조차 멍청한 짓이지. 네가 과거로 돌아가도 너는 미래를 까먹기 때문에, 이 벽난로를 사용해도 안전한지 알 수가 없단다.”
“그럼 과거의 자신에게 메시지를 남기면 되는 거잖아요? 아니면―” 드레이코는 눈썹을 찌푸리고 말대꾸했었다.
“드레이코.” 그의 아버지는 엄격하게 말을 끊었었다. “시간을 가지고 노는 것은 매우 위험하단다. 무언가 잘못되면, 너는 영원히 림보에 빠지게 될 거야. 목숨을 걸 가치가 없어. 알겠니?”
드레이코는 아버지가 무언가 명령할 때마다 항상 그랬던 것처럼 고개를 끄덕였었다. 착한 아이는 아버지의 말에 절대 거스르지 않는다.
그렇게 충성했더니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 봐라!
드레이코는 손에 든 양피지를 더 꽉 쥐고, 가쁜 숨을 내쉬었다.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자신과 가족을 위해 뭐라도 바꿀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다. 내일 이 시간에 디멘터의 키스를 받을 바엔, 차라리 영원한 림보에 빠지는 위험을 감수하고 시간을 되돌리려고 시도라도 하는 게 낫지 않겠는가?
게다가, 성공할 가능성도 충분했다. 드레이코는 사라지는 캐비닛을 고친 적이 있었으며, 이 벽난로를 고치는 덴 그때보다 더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 자기 집에서 일어나는 온갖 간악한 짓들에서 벗어나고 싶었을 때, 미치지 않기 위해 뭐라도 해야 했을 때, 그는 이 벽난로를 고치며 시간을 보냈다. 서재 구석에 숨겨진 책장에서 벽난로와 고대 마법에 대한 책을 발견해서 운이 좋았다.
지금 눈앞의 벽난로는 책에서 말한 것과 똑같았다. 일단 완벽한 파란색―지나치게 어둡지도, 밝지도 않은, 적당한 바다색―불꽃이 타오르고 있었다. 만졌을 때 뜨겁지 않았지만, 신기하게도 따스한 온기를 뿜어냈다. 책에 쓰인 것과 똑같았다. 처음 벽난로를 고치기 시작할 때에는 매우 뜨거운 하늘색 불꽃이 타오르고 있었으니, 희망이 있었다.
“할 수 있는 건 다했어.” 그는 자기 목소리가 얼마나 흔들리는지에 질겁하며 중얼거렸다.
모든 것을 바로 잡을 유일한 기회였다. 아버지가 원했던 길을 선택하지 않고, 착한 사람이 되어서 승리하는 편에 설 수 있는 마지막 기회. 이 기회를 잡아야 했다.
“가볼까.” 그는 진정하려고 깊게 숨을 들이쉰 후, 불꽃에 걸어 들어갔다. 불꽃은 이상하고 마법적인 열기로 그의 옷을 뚫고 피부를 쓰다듬으며 그를 간지럽혔다. 아주 기묘한 느낌에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1991년, 1월 31일.” 그의 말이 텅 빈 방에 명확하게 울려 퍼졌다.
몇 분 동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드레이코는 실패했다고 생각했다. 그때, 파란색 불꽃이 그를 감쌌고, 책에서 읽은 것처럼 하얗게 변하더니, 하얗게, 하얗게 시야가 가득 찼다.
드레이코는 벽난로에서 기침하면서 걸어 나와, 다소 과격하게 바닥에 쓰러졌다. 그는 눈을 깜빡이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왜 서쪽 별관에 있는 거지? 방금 전까지만 해도 다이애건 앨리에 가는 것을 기대하며 잠 못 이루고 침대에 누워 있지 않았던가?
벽난로에서 푸른 불꽃이 잦아들었고, 벽에 걸린 횃불의 빛만이 부드럽게 방 안을 밝혔다. 벽난로 위의 낡은 시계가 새벽 2시 반을 알리며 쿵- 하고 크게 울렸다.
“살라자르, 이게 무슨―” 드레이코는 중얼거리다가, 손에 들린 양피지를 눈치챘다. 돌돌 말려 말포이 가문 문장으로 닫혀 있는 양피지였다. 그는 주변에 누가 없는지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둘러본 후, 바닥에서 일어나 앉아 양피지를 한 번 더 바라보았다. 조심스럽게 양피지를 펼치자, 초록색 잉크에 깔끔하고 왠지 모르게 익숙한 필체로 쓰인 편지가 드러났다.
드레이코 ,
믿기 어렵겠지만 , 이 편지는 미래에서 왔어 . 내가 벽난로를 고쳤거든 ( 너한텐 7 년 후의 일이겠네 ). 내가 성공했다면 , 이 편지는 1991 년 , 호그와트에 입학하기 전 11 살의 너에게 도착할 거야 .
나는 우리 미래를 바꾸고 , 너와 나 , 그리고 부모님을 구하기 위해 11 살의 너에게 편지를 보내 . 과거에 우리 가족은 많은 잘못을 저질렀거든 , 나는 네가 올바른 선택들을 내리길 바라 .
해리 포터와 친해지렴 . 너는 오늘 그를 말킨 부인의 로브 전문점에서 만날 거고 , 꼭 해리 포터와 친구가 되어야 해 . 욕하고 싶어도 그의 친구들을 욕하지 마 . 정중하게 행동하고 , 절대 잘난 체하면 안 돼 . 포터는 우리 세상에 대해 많이 알지 못하니까 , 네가 잘만 행동한다면 포터에게 이것저것 소개해줄 수도 있겠지 . 나처럼 입을 잘못 놀린다면 , 포터는 너를 싫어할 거고 , 지금은 이해할 수 없겠지만 포터의 적이 된다면 너의 미래는 암울할 거야 . 그러니 , 그의 친구가 되렴 . 언젠간 포터를 필요로 할 테니 .
또―해리 포터의 친구가 되는 것만큼 중요한 이야기니까 집중해―아버지가 하는 말을 전부 믿진 말고 , 그의 마음에 들려고 시키는 대로 하지 마 . 그가 추구하는 이상은 우리 가족의 근간을 망칠 거야 . 순혈 우월주의는 모순되고 편협하며 , 그 개 같은 사상을 믿으면 넌 앞으로 있을 중대한 전쟁에서 지는 쪽에 서게 될 거야 . 순혈이라고 해서 혼혈이나 머글 태생보다 우월하지 않아 . 동족의 배신자 같은 것도 다 헛소리지 . 그릇된 편견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마 .
어두운 마법사들은 절대 이기지 못해 . 선을 향해 나아가 . 호그와트에 가서 올바른 친구들을 사귀고 그들과 다니도록 하렴 .
너는 이 편지를 믿지 않겠지 . 아버지가 가르친 것과 정반대인 말을 하는데 , 네가 이걸 어떻게 믿겠어 ? 대신 , 네가 내 말을 듣지 않는다면 , 네가 어떤 미래를 맞이할지 보여줄게 . 이 편지를 들고 , ‘ 오스텐드 미히 ’ 라고 말해 .
네가 본 것이 미래에 일어나지 않길 바란다면 , 오늘 해리 포터에게 상냥하게 대해 줘 .
마음을 담아 ,
1998 년 8 월 15 일 , 드레이코 말포이가
드레이코는 서명과 1998년 8월 15일이라는 날짜를 입을 벌리고 쳐다보았다. “오 멀린이시여...”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속임수가 틀림없었다. 복도 어딘가에서 테오도르 노트가 엿들으며 비웃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편지는 아주 흥미로웠고, 그는 자기도 모르게 아래 문단을 다시 읽었다.
“오스텐드 미히.” 그는 주문을 속삭였고, 그의 말에 편지에서 글자가 사라지자 놀란 숨을 들이쉬었다. 순식간에 모든 것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조금 시간이 지난 후 흔들림이 잦아들자, 그는 기차의 어느 칸에 서 있었다. 시야 가장자리가 흐릿했지만, 주변에 집중할 여유 따위 없었다. 그 순간 뒤에서 자신의 목소리가 들렸기 때문이다. 드레이코는 휙 돌아보았다.
“너는 곧 어느 마법사 가문이 더 좋은지 알게 될 거야, 포터.” 미래의 자신이 안경을 쓴 소년―검정 머리카락이 엉망진창이었다―에게 말하고 있었다. “나쁜 부류의 아이들과 사귀고 싶지는 않겠지. 난 널 도와줄 수 있어.” 그는 소년에게 손을 내밀었지만, 소년은 손을 잡지 않았다. 오히려, 소년은 화나 보였다.
“어떤 아이가 나쁜 부류인지는 나 혼자서도 판단할 수 있어, 고마워.” 예상하지 못한 답변이었다. 미래의 자신은 쪽팔리고 화가 나서 얼굴이 새빨개졌다.
그 후 장면이 바뀌었다. 모든 것이 다시 흔들리기 시작했고, 정신을 차리자 그는 큰 화장실에 서 있었다. 세면대 쪽에 한 소년이 주저앉아 울고 있었다. 그 소년은 드레이코처럼 금발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었고, 나이가 들었으며, 슬리데린 교복을 입고 있었다. 유령 여자애가 위안하려는 듯 소년 위를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난 못해.” 소년은 울었다. “하기 싫어. 하지만 ‘그’는 내 부모님을 죽이겠지. 나, 나도 살해당할 거야.”
유령이 무언가 말했지만, 드레이코는 제대로 듣지 못했다. 또 세상이 흔들렸고, 다음에 드레이코는 아주 큰 방에 도착했다. 너무 커서 벽이 없는 것처럼 보였으며, 아주 독특한 물건들로 가득 찬 방이었다. 방금 화장실에서 본 소년이 매우 빠르게 퍼지는 불꽃에서 도망치며 다급하게 소리지르고 있었다. 드레이코는 겨우 그 소년을 알아보았다. 미래의 자신이었다. 자기에게 편지를 쓴 그 드레이코 말포이였다.
끔찍한 비명이 귓가에 울리며 다시 장면이 바뀌었다. 이제 드레이코는 불타는 성을 바라보고 있었다. 호그와트였다.
기억의 향연이 끝나고 서쪽 별관으로 돌아왔을 때, 드레이코는 나뭇잎처럼 파들파들 떨고 있었다. 그는 편지를 바닥에 떨어뜨리고, 편지에서 최대한 멀어지려고 정신없이 기었다. 등이 문에 부딪혀서야 드레이코는 퍼뜩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싫어.” 드레이코는 소리를 질러야 할지, 울어야 할지 혼란스러운 심정으로 속삭였다. “싫어.”
나이 든 드레이코의 목소리로, 편지에 적힌 조언이 계속 머리에 맴돌았다.
네가 본 것이 미래에 일어나지 않길 바란다면 , 오늘 해리 포터에게 상냥하게 대해 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