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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드리엘의 손끝이 켈레나르돈부터 에네드와이스를 가로질렀다. 그리고 닌 인 엘리프를 통과해 글란두일까지.
“언제 출발했는지 알 수는 없지만, 낮에도 이동했다 가정하면 숲을 통과했을 겁니다. 오스트 인 에딜을 마주 본 숲에서 공성전을 펼치고 밤이 되어야 숲에서 나왔고요.”
갈라드리엘은 마치 그날 전장을 직접 겪은 것처럼 말했다.
“사우론이 남은 군대를 규합하겠지만 현재로서는 그가 어디로 향했는지 불분명합니다. 이탈한 오르크들이 린돈 근처의 숲까지 왔다는 걸 그를 증명합니다. 그리고….”
서부, 동부, 남부의 사령관 그리고 길 갈라드 대왕까지, 자리에 있는 모든 요정의 시선이 갈라드리엘의 손끝으로 향했다.
“잠깐.” 대왕이 그의 말을 막아섰다. “사령관. 오르크들이 자신의 군대에서 빠져나갔다고? 사우론에게 복종하지 않고?”
갈라드리엘은 그를 보았다.
“아다르가 죽었으니 주인은 잃은 오르크는 뿔뿔이 흩어졌을 겁니다. 사우론이 그들의 주인이 되었는지는 불분명합니다.”
대왕의 시선이 지도를 펼친 테이블 옆 작은 선반 위 검은 피가 묻은 아다르의 장갑 위에 미쳤다. 갈라드리엘이 다시 동굴로가 가져온 물건이었다. 시체가 없어 미심쩍은 게 분명했다.
“왜 이곳까지 왔으리라 생각하지?”
“과슬로강을 건너 정찰을 보낸 게 분명합니다. 전투가 끝나기 전까지 돌아가지 않은 정찰병이 분명합니다.”
남부 사령관이 말했다. 갈라드리엘은 남부 사령관이 아닌 대왕의 반응을 살폈다. 그는 잠시 고민하는 표정이었지만 다시 지도로 시선을 향했다.
“계속하게.”
“정찰병들은 배운 대로 몸을 숨기기 위해 계속 숲과 산을 통해 이동했을 겁니다. 하지만 떨어져 나간 규모를 파악하지 못하는 이상 발 빠르고 실력 있는 병사들을 파견한다면 오르크 잔병들에 당하지 않을 겁니다. 또 숲이 아닌 평야를 통하게 한다면 적이 쉽사리 접근하지 못할 테고, 평야를 통하면 움직임이 노출될 수 있지만 해가 진 뒤 조심한다면 훈련받은 병사들이니 충분합니다.” 갈라드리엘이 단호하게 말했다. “제가 명단을 추려 놓았으니….”
대왕이 손을 들어 그를 제지했다.
“남부 사령관, 자네가 맡아 병사들은 선별하게. 북부 사령관이 만든 명단을 참고하고.”
“네.”
남부 사령관이 대답했다. 갈라드리엘의 표정이 굳었다. 길 갈라드는 그런 갈라드리엘을 보았지만,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남부의 일이니, 남부 사령관이 맡아야지.’ 갈라드리엘은 빈 복도를 걸으며 그렇게 마음을 정리했다.
그가 밤중에 산으로 향한 이유는 불안한 마음이 들어서고 – 길 갈라드는 네냐를 바라보았다. - 숲에서 오르크를 만났고, 그들의 대화를 들었으며 그중 하나가 아다르의 장갑을 끼고 있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었고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오히려 길 갈라드의 의심을 증폭시켰을지도 모른다.
대왕은 에레기온 전투 이후 나랴를 의심하지 않았으나 사우론이 아홉 개의 반지를 더 만들었다는 사실과 크자핫 둠의 소식에 반지의 힘을 경계했다. 그라면 분명히 반지가 보여주는 환상과 갈라드리엘의 행동이 관련 있으리라 확신했을 테다.
갈라드리엘은 대왕의 조심성을 이해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자신을 배제하길 원하지 않았다. 그가 옳다 하더라도. 갈라드리엘은 신뢰를 되돌리는 일은 매우 어려운 일이란 걸 고통스러운 경험으로 배웠지만, 여전히 답답하고, 부당했다. 자신의 정보였고 자신이 맡아야 할 작전이었다. 자신이 믿는 병사들을 모아서 정보를 얻고 요정을 규합하고.
갈라드리엘은 반지를 만졌다. 실망감이 사라지지 않는다. 어떻게 해야만 다시 이전으로 되돌릴 수 있을까? 의심받는 건 지긋지긋하다.
갈라드리엘은 아치형으로 난 창가에 섰다. 새벽녘 그가 돌아올 즈음 비는 그쳤다. 하지만 해가 떠야 할 낮 내내 하늘이 어두웠고, 어두워진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자연스레 남서쪽 산을 바라보았다.
“갈라드리엘, 여기 계셨군요.”
“엘론드?”
여긴 성안에서도 인적이 드문 곳이었다.
“한참 찾았습니다. 산에서 오르크를 만나셨다고요. 다친 곳은 없으십니까?”
엘론드가 갈라드리엘을 살폈다.
“겨우 오르크 둘이었어.”
“한밤중에 대체 산에는 왜 가신 겁니까?”
“오늘 작전 회의에 나타나지 않았던데.”
엘론드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지만, 갈라드리엘은 바로 화제를 돌렸다. 엘론드는 그가 물었던 질문을 더 하지 않고 가만히 갈라드리엘을 보았다. 그의 얼굴은 달이 가려진 하늘만큼 어두워 보였다.
“대왕께 사령관 자리를 내려놓겠다 말씀드렸습니다.”
“어째서?” 갈라드리엘이 그의 한쪽 팔을 잡았다. “에레기온의 일이라면 그건 전적으로 자네 책임이 아니야. 그건….”
“아니요. 갈라드리엘. 저는 사령관이었고 제 책임이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네가-.”
“절 변호하려 하지 마세요. 괜찮습니다. 생각할 시간이 필요할 뿐입니다.”
엘론드가 갈라드리엘의 손에서 천천히 빠져나왔다. 희미한 빛에 반지가 반짝거렸다. 엘론드는 쉽게 좌절하지 않는다. 그는 언제나 갈라드리엘 자신보다 어린 요정으로, 제대로 된 전쟁을 겪은 바가 없고 희망을 믿었다. 전쟁은 언제나 크고 작은 상흔을 남겼으나 이런 방식이길 바라진 않았다. 특히 엘론드에게는.
“난쟁이에게서는….”
“아직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보다 아다르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정말입니까?”
“오르크가 그의 장갑을 끼고 있었으니 분명하지.”
“다행입니다. 다만 작전에 관한 얘기를 들었습니다. 남부 사령관이 맡게 되었다고요. 너무 마음을 쓰지 마세요.”
엘론드는 의심 없는 얼굴로 갈라드리엘에게 말했다. 갈라드리엘은 그런 말을 해야 할 쪽은 자신이라 생각했으나 언제나 엘론드가 먼저였다. 언제나 위로의 말은 어색하고 낯설었다.
갈라드리엘은 망설임 끝에 망토를 둘렀다. 오르크의 피로 물들지 않은 깨끗한 망토였다. 그가 한밤중 남서쪽 산으로 향했다는 일을 대왕이 아는 이상 이틀 연속 산으로 가기에는 위험했으나 마음이 답답해 참을 수 없었다.
남부 사령관이 진행하는 갈라드리엘이 제안한 ‘작전’은 빠르게 진행되었다. 하지만 남부 사령관은 갈라드리엘이 고른 병사는 단 한 명도 선택하지 않았다. 그는 남부 사령관의 결정을 이해할 수 없었다. 북부 사령관인 자신이 심사숙고해 고른 명단은 뛰어난 병사보다도 더 출중한 이들이었다. 갈라드리엘이 오랫동안 지켜보았던 자들이다.
어쩌면 갈라드리엘이 그 명단을 만들지 않았다면 자신이 고른 병사 중 몇은 작전에 포함했을지도 모르지.
이런 생각이 들 때마다 갈라드리엘은 참을 수 없었다. 자신의 목표는 그들과 같다. 요정 전체의 안녕, 그리고 모두의 적인 사우론은 죽이는 것. ‘실수’가 언제까지 그를 따라다닐까? 캘레브림보르의 죽음으로도 끝나지 않는가?
건물 밖은 그가 처음 산으로 향할 때처럼 길가에 켜 놓은 불빛만 보였다. 내려다보이는 건물에 드문드문 불빛이 보였지만 요정 대부분이 잠든 때였다. 그는 익숙하게 경비의 시선을 피해 산길로 접어들었다. 구름이 걷히고 있는 하늘에 희미하게 달이 보였다. 요정은 한참 목적지를 향해 산길을 올랐다. 새 소리와 바람 소리만 조용했다. 그는 누가 쫓아오는 듯 종종 뒤를 돌아보았다. 도시는 그의 성급한 마음만큼 점점 멀어졌다. 갈라드리엘은 산길 입구에서 멈추는 불빛이 거의 보이지 않을 때쯤 멈추어 섰다.
하지만 왜 그곳에 가는 거지? 그를 더 제대로 결박하기 위해서? 에레기온 침공의 잘못을 따지려고? 아니면 그도 모를 것에 질문하기 위해서? 갈라드리엘은 망설였으나 더 깊게 모자를 앞으로 당겨썼다.
지금은 아무래도 상관없다.
요정은 다시 어두운 숲속으로 걷기 시작했다. 그만이 아는 길을 향해.
경비 초소 주변은 조용했다. 다른 누군가 다녀간 흔적은 없었다. 그가 발견됐다면 이미 성에서 마주했을 테니. 갈라드리엘은 조용히 문을 열었다. 건물 안은 비가 오는 날보다 밝았다. 전날의 상황 때문에 보이지 않은 낡은 가구와 주인 잃은 투구, 그리고 좀먹은 책이 널려있었고 문에서 멀리 떨어진 벽 쪽에 선반이 있고 갈라드리엘이 음식을 싸 준 천이 부스러기와 함께 널려있었다. 그리고 그는 옆 야전 침대에 앉아있었다. 어둠이 익숙해 보였다.
“빈손이군.”
그가 갈라드리엘을 보자마자 말했다. 그의 말대로였지만 갈라드리엘은 그가 바로 알아보았다는 사실이 못내 불쾌했다.
요정은 조용히 문을 닫고 그에게 다가갔다. 그의 앞으로 갈라드리엘의 그림자가 드리웠다. 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였다. 갈라드리엘도, 그리고 그도. 그때 요정은 무기도 없이 이곳에 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와 맞붙어도 이길 수 있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가 무기도 없이 무작정 다른 곳도 아닌 이곳에 와 그와 마주 보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전혀 다르게 보이는 낯선 공간만큼이나 갈라드리엘은 이 상황이 자신과 분리된 느낌이 들었다. 자신의 그림자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 눈에 그를 뚫어져라 보았다. 지지 않겠다는 듯이. 갈라드리엘은 그 아래 네냐가 채 치료하지 못한 어깨의 깊은 상처를 보았다.
“…왜 오르크가 널 죽이려 한 거지?”
“우루크.”
“그들이 네 아이라 하지 않았나?”
“‘아이’는 언제나 아버지를 넘어선다.”
“아니. 아이는 아버지를 죽이지 않아. 아버지가 배신하지 않는 이상. 역시 그런가? 네가 배신해서? 너의 말, 너의 행동 그 모든 것들이 거짓이라.”
사슬이 신경질적으로 절그럭거렸다. 그의 눈빛이 매섭게 변했다. 곧 갈라드리엘에게 달려들 것 같았다.
“그러니 네 ‘자식’들이 널 죽였다. 그렇지? 단순한 시도가 아니라 목숨을 끊기 위해. 그리고 요정이 그를 발견하고 널 모욕하게 만들기 위해서 이곳까지 와 버렸어. 태양을 볼 수 있는 자는 진정한 지도자가 아님을 그것들도 깨달은 거야.”
갈라드리엘은 이상하게 끓어오르던 화를 그를 향해 내뱉다 오히려 침착해지는 모리온도르의 표정에 입을 다물었다. 요정의 입이 닫히자 그는 심지어 미소 지었다.
“알타리엘. 그 아이들이 마음이 있다고, 배신이라는 감정을 가질 수 있음을 인정하는 건가? 대단한 일이야.”
그의 입에서 유려한 요정의 언어가 흘러나왔다. 갈라드리엘은 그 어느 말보다 심한 모욕을 느끼고 망토 안에서 주먹을 꽉 쥐었다. 아무도 보고 있지 않지만 그런 말 때문에 그를 공격하는 한심한 짓은 하고 싶지 않았다. 그에 따르는 결과도 결국 자신의 책임이었기 때문이다.
“우루크는 나약한 지도자를 허용하지 않는다.”
그가 시선을 내렸다. 복잡한 설명 없이 한 문장으로 요약했다. 갈라드리엘은 그의 ‘자식’들이 그를 공격하는 장면을 상상했다. 그리고 그의 말대로 요정이 발견하길 바라며 하지만 마지막 남은 ‘존경’과 ‘연민’으로 그를 동굴에 버리는 장면까지.
그리고 자연히 자신의 앞에 검을 내려놓던 부하들과, 자신을 비난하던 친구와, 자신을 서녘으로 떠나보내려던 동족을 떠올렸다. 그들은 같지 않다. 그 오르크들과 그리고 자신도 저 모리온도르와, 아다르와는 다르다. 달라야 했다.
갈라드리엘은 모자를 벗었다. 금빛 머리칼이 드러났다. 그림자가 옅어지는 듯했다.
“사우론은 네 아이를 지배할 거야.” 갈라드리엘은 속삭이듯 말했다. “그러면, ‘우루크’는 널 용서하지 않을 거고. 살아 돌아가면 널 사우론 앞에 데려가겠지.”
갈라드리엘은 망토 안에서 습관처럼 네냐의 모서리를 훑었다. 그는 움직이는 망토의 물결을 보았다.
“하지만 다시 사우론을 죽인다면….”
갈라드리엘은 문장을 끝마치지 않고 입을 다물었다. 검은 요정과 같은 가정. 그는 꼭 모리온도르 앞에 벌거벗은 것 같았다. 목이 뜨겁다. 이곳에 오지 말아야 했다.
갈라드리엘은 말없이 뒤돌아 버려진 건물을 나가 모자를 뒤집어썼다. 망토 사이로 들어오는 밤바람이 유독 차갑게 느껴졌다.
